언해두창집요 상16ㄴ
又曰 出盛而內外壅熱 煩渴譫狂 宜用猪尾膏
【方見旱】
Ⓒ 저자 | 임원준 / 1446년(세종 28) 월 일
오 만히 돋고 안밧긔 열이 옹야
번갈고주001) 번갈고:목이 마르고 가슴이 답답하고. 기본형은 ‘번갈(煩渴)다’임.
뷘 입 십고 미치거든
뎨미고주002) 뎨미고(猪尾膏):저미고(돼지꼬리를 이용한 약제). 구개음화와 단모음화에 따라서 ‘뎨미고〉저미고’가 되었음. 저미고는 허준이 만들어 낸 마마를 고치는 신약이다. 허준 이후 당시의 전염병으로 마마가 얼마나 심하였는가에 대한 일화를 들어보기로 한다. 〈청구야담(靑邱野談)〉에는 저미고와 관련한 이야기가 있다. 유상이 입궐하여 진찰을 하고 저미고(猪尾膏)란 약재를 쓰기로 하자, 숙종의 어머니 명성대비(明聖大妃)가 약의 성질이 강한 준제(峻劑)라며 써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다른 방도가 없다며 아무리 청해도 허락이 떨어지지 않자 유상은 소매 속에 몰래 약을 넣고 들어가 쓰니, 병세가 누그러졌고 이내 쾌유되었다. 어느 쪽이 맞는 이야기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후자가 좀 더 사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한다. 전염병에 관한 의원 이야기는 제법 여럿 남아 전한다. 정조 때의 문인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예의홍익만전(㾐醫洪翼曼傳)’이란 전을 남겼다. 주인공 홍익만은 특별하게도 전염병 전문의인데 그의 인간됨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그는 가슴 속에 경계를 두지 않아 성품이 탁 트였고, 사람의 위급함을 보면 비록 평소 모르는 사이라도 오직 그 급한 처지를 구원하려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품이었기에 그는 임술년(1742, 영조18)과 계해년(1743, 영조19) 전염병이 돌았을 때 치료하여 살린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홍익만이 어느 날 밤길을 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일흔쯤 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이 이 고장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러고는 추운 날에 피곤하실 터이니 자신의 집으로 가서 박주(薄酒)일망정 한 잔 마시지 않겠느냐고 말을 건넸다. 익만이 노인을 따라 한참을 갔더니 노인은 홀연 보이지 않고, 움집에 시신 네댓이 가로 세로로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그를 인도했던 노인이었다. 그리고 노인이 말했던 것처럼 술 한 병이 시렁 위에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신 뒤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고 떠났다. 이 이야기도 전염병이 돌던 상황을 배경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전염병으로 죽은 노인이 술을 미끼로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이끈다는 비합리적인 설정이지만, 전염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홍익만이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을 두려움 없이 묻어주었다는 것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홍익만이 민중을 위한 의원이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를 맛당이 라
Ⓒ 언해 | 허준 / 1608년(선조 41) 월 일
또 일렀으되, 많이 돋고 안팎이 열이 심하고 목이 바짝 마르며 빈 입을 씹고 헛소리하면 저미고를 마땅히 써라.
Ⓒ 역자 | 정호완 / 2009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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