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 역주 번역소학 권3
  • 번역소학 제3권
  • 내편(內篇)○제2편 명륜(明倫)○명군신지의(明君臣之義)
  • 명군신지의 013
메뉴닫기 메뉴열기

명군신지의 013


○孔子ㅣ 曰왈 君군子ㅣ 事君군호 進

번역소학 권3:8ㄱ

진思盡진忠며 退퇴思補보過과야 將順슌其기美미며 匡救구其기惡악故고로 上下하ㅣ 能相親친也야ㅣ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孔子ㅣ 샤 주001)
ᄀᆞᄅᆞ샤ᄃᆡ:
이르시되. ᄀᆞᆮ-[曰]+ᄋᆞ시+오ᄃᆡ. ‘-샤ᄃᆡ’는 ‘-시-’의 고형(古形)인 ‘-샤-’의 ‘ㅏ’ 뒤에서 ‘-오ᄃᆡ’의 ‘오’가 탈락한 것이다. ᄀᆞᄅᆞ샤ᄃᆡ〉가라사대. 어간 ‘ᄀᆞᆮ-’의 존재는 ‘일ᄏᆞᆮ다(=가리켜 말하다. 칭송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ᄏᆞᆮ다’는 ‘일훔[名]’을 통해 알 수 있는 재구형 ‘잃-[稱]’에 ‘-[曰]’이 결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ᄏᆞᆮ다’는 ‘잃-[稱]’에 ‘-[曰]’이 결합한 비통사적 합성어이다. ‘ᄀᆞᄅᆞ샤ᄃᆡ’는 ‘니ᄅᆞ샤ᄃᆡ’(월인석보 21하:116ㄴ)와 의미나 사용 환경이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다른 동사에 쓰인 ‘-샤ᄃᆡ’가 ‘-시ᄃᆡ’로 변화하지만, ‘ᄀᆞᄅᆞ샤ᄃᆡ’의 ‘-샤ᄃᆡ’는 다른 길을 취하였다. 즉 ‘ᄀᆞᄅᆞ샤ᄃᆡ’는 오늘날의 ‘가라사대’로 이어졌다. 활용형이 어휘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ᄀᆞᄅᆞ샤ᄃᆡ’는 이 책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이전의 문헌에서는 ‘ᄀᆞ로ᄃᆡ’는 쓰였지만, ‘ᄀᆞᄅᆞ샤ᄃᆡ’는 쓰인 적이 없다. 이 책 중에서도 3·4·6권에서만 나타난다(3:8ㄱ, 3:9ㄱ, …, 4:1ㄴ, 4:4ㄴ, …, 6:1ㄴ, 6:2ㄴ). ‘ᄀᆞᆯᄋᆞ샤ᄃᆡ’는 『소학언해』에서 처음 나타난다(2:17ㄴ, 2:18ㄱ, …).
君군子 주002)
군ᄌᆞ:
군자(君子). 『국어(國語)』 「노어(魯語) 상편(上篇)」에는 “군자는 다스리기에 힘쓰고 소인은 노동에 힘쓴다.(君子務治 小人務力)”라는 조귀(曹劌)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군자’는 당시의 통치 계급을 가리키고 ‘소인’은 육체 노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춘추 말년 이후 ‘군자’는 점차 도덕 수양을 갖춘 사람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예기』 「곡례(曲禮)」에서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방자하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博聞强識而讓 敦善行而不怠 謂之君子)”라 하였다(다음백과). 여기의 ‘태(怠)’는 ‘방자(放恣)함’을 뜻하며, ‘삼감’을 뜻하는 ‘경(敬)’과 의미적으로 대립한다.
ㅣ 님금을 셤교 주003)
셤교:
섬기되. 셤기-[事]+오ᄃᆡ. 어간 ‘셤기-’ 뒤에는 겸양법 선어말 어미 ‘-ᅀᆞᇦ-’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국어에서는 이 ‘-ᅀᆞᇦ-’이 ‘-오-’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때의 ‘-오ᄃᆡ’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겸양 선어말 어미)+오ᄃᆡ’이다.
나가 주004)
나가:
나아가서는. 나ᇫ-[進]+아(연결 어미)+가-[行]+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합성 동사이다. 현대 국어라면 ‘-아서는’이 쓰일 환경에 ‘-아ᄂᆞᆫ’이 쓰인 것이다. ‘가-’ 뒤의 ‘-아’는 외현되지 않았다.
忠誠장 주005)
장:
충성(忠誠)껏. 정성껏. 튜ᇰ셔ᇰ+ᄭᆞ자ᇰ(보조사). 관형격 조사 ‘ㅅ’과 [한계]를 뜻하는 명사 ‘ᄀᆞ자ᇰ’이 결합하여 보조사로 굳어진 것이다. 중세 국어의 관형격 조사에는 ‘ㅅ’과 ‘ᄋᆡ, 의’가 있었는데, ‘ㅅ’은 무정 명사나 존대의 대상인 유정 명사 뒤에 쓰이고, ‘ᄋᆡ, 의’는 존대의 대상이 아닌 유정 명사 뒤에 쓰였다. ‘ᄀᆞ자ᇰ’은 [매우]를 뜻하는 부사로도 쓰였다. ¶大愛道  道理  씨니〈석보상절 3:3ㄴ〉.
주006)
홀:
할. ᄒᆞ-[爲]+오(선어말 어미)+ㄹ(관형사형 어미).
이 각 주007)
각:
생각. ‘ᄉᆡᇰ각’은 한자어가 아니고 고유어로 알려져 있는데, 한자 ‘生覺’으로 표기된 예가 『몽어노걸대』(1790)에 많이 나타나고 『인어대방』(1790)에 한 예가 보이며, 그 후의 문헌에서는 아주 많이 보인다.¶①내 生覺니 내게 남은 銀 이시니〈몽어노걸대 6:6ㄱ〉 ②그 일을 生覺면 所謂 如履薄氷이더니〈인어대방 3:16ㄱ〉(1790년).
고 믈러와 주008)
믈러와:
물러와서는. 므르-[退]+어(연결 어미)+오-[來]+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합성 동사이다. ‘므르-’는 ‘ᄅᆞ/르’ 불규칙 활용 동사이다. 현대 국어라면 ‘-아서는’이 쓰일 환경에 ‘-아ᄂᆞᆫ’이 쓰인 것이다.
허믈 주009)
허믈:
허물. 과실(過失). ‘허믈’이 ‘흔적(痕迹)’을 뜻하는 예도 있다. ¶댓 그르메 버을 러도 드트리 뮈디 아니고 리 못 미틀 들워도 므리 허믈 업스니라(竹影이 掃階야도 塵不動고 月穿潭底야도 水無痕니라)〈금강경삼가해 4:16ㄴ〉.
깁올 주010)
깁올:
기울. 보완할. 글자가 많이 지워져서, ‘깁’ 자가 받침 ‘ㅂ’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소학언해』(2:42ㄴ)에는 ‘깁보태욤ᄋᆞᆯ’로 적혀 있다. 깁-[補]+ᄉᆞ오(겸양 선어말 어미)+ㄹ(관형사형 어미). ‘-ᄉᆞ오-’는 ‘-ᄉᆞᄫᆞ-’가 변한 것이다.
이 각야 아다온 주011)
아다온:
아름다운. 아ᄅᆞᆷ(불규칙적 어근)+답(형용사 파생 접미사)+ᄋᆞᆫ(관형사형 어미).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답-’이 ‘-다오-’로 교체된 것이다.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ᄅᆞᆷ다ᄫᆞᆫ’이 ‘아ᄅᆞᆷ다온’으로 변한 것이다. ‘아ᄅᆞᆷ’은 명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접미사 없이 단독으로 쓰인 예가 없으므로 불규칙적 어근이다.
일란 주012)
일란:
일은. 일일랑은. 일[事]+란(보조사). ‘란’은 [차이]나 [대조]를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거스란’과 같이 ‘ㄹ’ 외의 받침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서는 ‘으란’으로 나타난다.
받와 주013)
받와:
받들어. 받-[奉, 捧, 承]+ᄌᆞᆸ(겸양 선어말 어미)+아.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ᄌᆞᆸ-’이 ‘-ᄌᆞ오-’로 교체된 것이다. 중세 국어 겸양의 선어말 어미 ‘-ᄉᆞᇦ/ᄌᆞᇦ/ᅀᆞᇦ-’은 중세 국어에서는 객체(목적어나 부사어로 나타나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겸양을 표시하다가 근대 국어 시기에 청자에 대한 화자의 겸양을 나타내게 되면서 청자 존대 형태소로도 쓰이게 된다. 한편 ‘받다’가 지닌 ‘떠받들다’란 의미와 ‘계승하다’란 의미는 그 뿌리가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윗사람을 떠받드는 것과 그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承’이 ‘받들다’란 의미와 ‘물려받다’란 의미를 다 지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順슌從고 주014)
슌고:
순종(順從)하옵고. ᄒᆞ-[爲]+ᅀᆞᆸ+고. 여기의 ‘-ᅀᆞᆸ-’은 행위의 대상인 ‘님금’에 대하여 주체인 ‘군ᄌᆞ’를 겸양하는 것이다.
주015)
왼:
그른. 잘못된. 외-[惡]+ㄴ(관형사형 어미).
일란 주016)
일란:
일은. 일[事]+란(보조사).
正케 주017)
케:
정(正)케. 바르게. 져ᇰ(正)+ᄒᆞ-[爲]+게(연결 어미). 중세 국어에서 ‘-게’와 ‘-긔’는 구별되지 않고 쓰인 듯하다. 다음 예문 ①②에서 ‘버서나게’와 ‘버서나긔’가 다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①一切 外道 얽요 버서나게 호리니〈석보상절 9:8ㄱ〉 ②내 福德威神力으로 一切 受苦 다 버서나긔 호리라〈석보상절 9:9ㄱ〉. 『월인석보』에서도 『석보상절』과 같이 이 둘이 혼용되고 있으나, 『월인석보』를 편찬할 때에 새로 집필한 「월인석보 서」에서는 ‘-게’만이 나타난다. ¶菩薩이 큰 慈悲로  너비 救샤 다 버서나게 실〈월인석보 8:16ㄴ〉.
야 救구홀 디니 주018)
구홀 디니:
구(救)할지니. 구해야 하리니. ᄒᆞ-[爲]+오(선어말 어미)+ㄹ(관형사형 어미)+ᄃᆞ(의존 명사)+이-(서술격 조사 어간)+니. ‘-올 디니’가 하나의 어미에 가깝게 재구조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로 주019)
이런 ᄃᆞ로:
이런 까닭으로. ᄃᆞ(의존 명사)+로(원인 부사격 조사). 의존 명사 ‘ᄃᆞ’ 자체에는 [원인]의 의미가 없지만, ‘이런 ᄃᆞ로’는 [원인]을 나타낸다. 형태소의 기본 의미를 벗어난 관용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콰 주020)
우콰:
위와. 윗사람과. 우ㅎ[上]+과(접속 조사).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ㅎ종성체언’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이지만, 종성은 일반적으로 음절말음을 가리키는데 ‘ㅎ’은 어말에 붙으므로, ‘ㅎ말음체언’이 더 적절하다.
아래왜 주021)
아래왜:
아래가. 아랫사람이. 아래[下]+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중세 국어에서는 마지막 접속항 뒤에도 접속 조사 ‘과, 와’가 쓰인다. 이를 집단 곡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能히 서 주022)
서:
서로. 『소학언해』(2:42ㄴ)에도 ‘서ᄅᆞ’로 나타난다. 15세기에는 ‘서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는데, 아주 드물게 ‘서로’도 쓰였다. ¶닙니피 서로 次第로 나고〈월인석보 8:12ㄱ〉. ‘서르’가 ‘서로’로 변한 것은 부사격 조사 ‘-로’로 인해 ‘-로’로 끝나는 부사어가 많아짐에 따른 유추 현상으로 보인다. ‘서ᄅᆞ’는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초간본)에 한 예가 보이고, 16세기 이후에는 매우 많이 나타난다. ¶①남지 받 갈며 겨지븐 누에 츄믈 서 失業디 아니터니라〈두시언해 초간본 3:62ㄱ〉 ②아려나 하히 우리 서 마조 보게 삼길가 라노라〈순천김씨언간 13:7〉 ③즉시 모 신하 블러 두고 서 의론시더니〈장수경언해 39ㄱ〉 ④그러호로 은혜 내 몯니 서 토려 말오 됴 이 내 베플 미니라〈번역소학 7:44ㄴ〉 ⑤모 며리  서 親며 랑야〈소학언해 6:86ㄴ〉. ‘서ᄅᆞ’가 쓰이게 된 것은 ‘서르〉서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즉 ‘서르’가 ‘서로’로 변화한 뒤에, ‘서로’에 대한 과잉교정에 의해 ‘서ᄅᆞ’가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 국어 문헌에서는 ‘서르, 서로, 서ᄅᆞ’ 모두 많이 쓰였다.
親친니라 주023)
친니라:
친(親)하느니라. 친애하느니라. ‘-ᄂᆞ-’가 쓰였으므로 여기의 ‘친ᄒᆞ-’는 동사이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공자께서 말씀하시되, 군자가 임금을 섬기되, 임금 앞에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일을 생각하고 집으로 물러나서는 임금의 허물을 기워서 바로잡을 일을 생각하여, 아름다운 일은 받들어 순종하옵고 그 그릇된 일은 바르게 하여 구(救)해 낼지니, 이런 까닭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능히 서로 친애(親愛)하느니라.
〈해설〉 출전 : 효경(孝經). 주석(소학집해) : “진씨(眞氏)가 말하였다. 장(將)은 승(承: 받듦)과 같다. 나아가서 그 임금을 뵈오면 자기의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집에 물러나서는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을 것을 생각하여, 한 때 한 생각이라도 임금에게 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선(善)이 있으면 받들어 따라서 더욱 선에 나아가게 하고, 악(惡)이 있으면 바로잡고 구(救)해 내어 그 악이 사라지게 하니, 이는 임금을 사랑함이 지극한 것이다. 신하가 충성과 사랑으로 그 임금을 가까이하면 임금도 또한 그 충성과 사랑을 믿고 그를 가까이한다.”(眞氏曰 將猶承也 進見其君 則思盡己之忠 退適私室 則思補君之過 無一時一念之不在君也 有善 承順之 使益進於善 有惡 正救之 使潛消其惡 此愛君之至也 臣以忠愛而親其君 則君亦諒其忠愛而親之也). 장씨(張氏)가 말하였다. “임금을 바로잡는 의(義)는 반드시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나아가서는 자기의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을 일을 생각하며, 자기 마음으로 하여금 털끝만큼도 미진(未盡)함이 없게 한다. 그리 한 후에 임금이 아름다운 일이 있으면 받들어 따르고, 악함이 있으면 바로잡는다. 임금의 마음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또한 자기를 바로잡는 것일 뿐이다.”(張氏曰 正君之義 必先正其身 故進則思盡己之忠 退則思補君之過 使己之心 無一毫之不盡然後 君有美則將順之 有惡則匡救之 格君心之非 亦曰正己而已). 두 가지 설(說)이 다 통한다(二說皆通). 진씨(眞氏)는 남송(南宋)의 진덕수(眞德秀: 1178~1235)이다. 주자(朱子)의 학통을 이어받았으며, 『대학연의(大學衍義)』, 『서산집(西山集)』 등을 저술하였다. 장씨(張氏)는 북송(北宋)의 장재(張載: 1020~1077)이다. 횡거진(橫渠鎭) 출신이어서 ‘횡거(橫渠)’를 호(號)로 삼았다. 횡거 선생(橫渠先生)으로 불린다. 이정(二程)과 주자(朱子)의 학설에 영향을 끼쳤다.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ᄀᆞᄅᆞ샤ᄃᆡ:이르시되. ᄀᆞᆮ-[曰]+ᄋᆞ시+오ᄃᆡ. ‘-샤ᄃᆡ’는 ‘-시-’의 고형(古形)인 ‘-샤-’의 ‘ㅏ’ 뒤에서 ‘-오ᄃᆡ’의 ‘오’가 탈락한 것이다. ᄀᆞᄅᆞ샤ᄃᆡ〉가라사대. 어간 ‘ᄀᆞᆮ-’의 존재는 ‘일ᄏᆞᆮ다(=가리켜 말하다. 칭송하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ᄏᆞᆮ다’는 ‘일훔[名]’을 통해 알 수 있는 재구형 ‘잃-[稱]’에 ‘-[曰]’이 결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ᄏᆞᆮ다’는 ‘잃-[稱]’에 ‘-[曰]’이 결합한 비통사적 합성어이다. ‘ᄀᆞᄅᆞ샤ᄃᆡ’는 ‘니ᄅᆞ샤ᄃᆡ’(월인석보 21하:116ㄴ)와 의미나 사용 환경이 동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다른 동사에 쓰인 ‘-샤ᄃᆡ’가 ‘-시ᄃᆡ’로 변화하지만, ‘ᄀᆞᄅᆞ샤ᄃᆡ’의 ‘-샤ᄃᆡ’는 다른 길을 취하였다. 즉 ‘ᄀᆞᄅᆞ샤ᄃᆡ’는 오늘날의 ‘가라사대’로 이어졌다. 활용형이 어휘화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ᄀᆞᄅᆞ샤ᄃᆡ’는 이 책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 이전의 문헌에서는 ‘ᄀᆞ로ᄃᆡ’는 쓰였지만, ‘ᄀᆞᄅᆞ샤ᄃᆡ’는 쓰인 적이 없다. 이 책 중에서도 3·4·6권에서만 나타난다(3:8ㄱ, 3:9ㄱ, …, 4:1ㄴ, 4:4ㄴ, …, 6:1ㄴ, 6:2ㄴ). ‘ᄀᆞᆯᄋᆞ샤ᄃᆡ’는 『소학언해』에서 처음 나타난다(2:17ㄴ, 2:18ㄱ, …).
주002)
군ᄌᆞ:군자(君子). 『국어(國語)』 「노어(魯語) 상편(上篇)」에는 “군자는 다스리기에 힘쓰고 소인은 노동에 힘쓴다.(君子務治 小人務力)”라는 조귀(曹劌)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군자’는 당시의 통치 계급을 가리키고 ‘소인’은 육체 노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춘추 말년 이후 ‘군자’는 점차 도덕 수양을 갖춘 사람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예기』 「곡례(曲禮)」에서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선한 행동에 힘쓰면서 방자하지 않은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博聞强識而讓 敦善行而不怠 謂之君子)”라 하였다(다음백과). 여기의 ‘태(怠)’는 ‘방자(放恣)함’을 뜻하며, ‘삼감’을 뜻하는 ‘경(敬)’과 의미적으로 대립한다.
주003)
셤교:섬기되. 셤기-[事]+오ᄃᆡ. 어간 ‘셤기-’ 뒤에는 겸양법 선어말 어미 ‘-ᅀᆞᇦ-’이 붙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 국어에서는 이 ‘-ᅀᆞᇦ-’이 ‘-오-’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때의 ‘-오ᄃᆡ’는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겸양 선어말 어미)+오ᄃᆡ’이다.
주004)
나가:나아가서는. 나ᇫ-[進]+아(연결 어미)+가-[行]+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합성 동사이다. 현대 국어라면 ‘-아서는’이 쓰일 환경에 ‘-아ᄂᆞᆫ’이 쓰인 것이다. ‘가-’ 뒤의 ‘-아’는 외현되지 않았다.
주005)
장:충성(忠誠)껏. 정성껏. 튜ᇰ셔ᇰ+ᄭᆞ자ᇰ(보조사). 관형격 조사 ‘ㅅ’과 [한계]를 뜻하는 명사 ‘ᄀᆞ자ᇰ’이 결합하여 보조사로 굳어진 것이다. 중세 국어의 관형격 조사에는 ‘ㅅ’과 ‘ᄋᆡ, 의’가 있었는데, ‘ㅅ’은 무정 명사나 존대의 대상인 유정 명사 뒤에 쓰이고, ‘ᄋᆡ, 의’는 존대의 대상이 아닌 유정 명사 뒤에 쓰였다. ‘ᄀᆞ자ᇰ’은 [매우]를 뜻하는 부사로도 쓰였다. ¶大愛道  道理  씨니〈석보상절 3:3ㄴ〉.
주006)
홀:할. ᄒᆞ-[爲]+오(선어말 어미)+ㄹ(관형사형 어미).
주007)
각:생각. ‘ᄉᆡᇰ각’은 한자어가 아니고 고유어로 알려져 있는데, 한자 ‘生覺’으로 표기된 예가 『몽어노걸대』(1790)에 많이 나타나고 『인어대방』(1790)에 한 예가 보이며, 그 후의 문헌에서는 아주 많이 보인다.¶①내 生覺니 내게 남은 銀 이시니〈몽어노걸대 6:6ㄱ〉 ②그 일을 生覺면 所謂 如履薄氷이더니〈인어대방 3:16ㄱ〉(1790년).
주008)
믈러와:물러와서는. 므르-[退]+어(연결 어미)+오-[來]+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합성 동사이다. ‘므르-’는 ‘ᄅᆞ/르’ 불규칙 활용 동사이다. 현대 국어라면 ‘-아서는’이 쓰일 환경에 ‘-아ᄂᆞᆫ’이 쓰인 것이다.
주009)
허믈:허물. 과실(過失). ‘허믈’이 ‘흔적(痕迹)’을 뜻하는 예도 있다. ¶댓 그르메 버을 러도 드트리 뮈디 아니고 리 못 미틀 들워도 므리 허믈 업스니라(竹影이 掃階야도 塵不動고 月穿潭底야도 水無痕니라)〈금강경삼가해 4:16ㄴ〉.
주010)
깁올:기울. 보완할. 글자가 많이 지워져서, ‘깁’ 자가 받침 ‘ㅂ’ 외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소학언해』(2:42ㄴ)에는 ‘깁보태욤ᄋᆞᆯ’로 적혀 있다. 깁-[補]+ᄉᆞ오(겸양 선어말 어미)+ㄹ(관형사형 어미). ‘-ᄉᆞ오-’는 ‘-ᄉᆞᄫᆞ-’가 변한 것이다.
주011)
아다온:아름다운. 아ᄅᆞᆷ(불규칙적 어근)+답(형용사 파생 접미사)+ᄋᆞᆫ(관형사형 어미).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답-’이 ‘-다오-’로 교체된 것이다.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ᄅᆞᆷ다ᄫᆞᆫ’이 ‘아ᄅᆞᆷ다온’으로 변한 것이다. ‘아ᄅᆞᆷ’은 명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접미사 없이 단독으로 쓰인 예가 없으므로 불규칙적 어근이다.
주012)
일란:일은. 일일랑은. 일[事]+란(보조사). ‘란’은 [차이]나 [대조]를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거스란’과 같이 ‘ㄹ’ 외의 받침으로 끝나는 명사 뒤에서는 ‘으란’으로 나타난다.
주013)
받와:받들어. 받-[奉, 捧, 承]+ᄌᆞᆸ(겸양 선어말 어미)+아.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ᄌᆞᆸ-’이 ‘-ᄌᆞ오-’로 교체된 것이다. 중세 국어 겸양의 선어말 어미 ‘-ᄉᆞᇦ/ᄌᆞᇦ/ᅀᆞᇦ-’은 중세 국어에서는 객체(목적어나 부사어로 나타나는 대상)에 대한 주체의 겸양을 표시하다가 근대 국어 시기에 청자에 대한 화자의 겸양을 나타내게 되면서 청자 존대 형태소로도 쓰이게 된다. 한편 ‘받다’가 지닌 ‘떠받들다’란 의미와 ‘계승하다’란 의미는 그 뿌리가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윗사람을 떠받드는 것과 그의 뜻을 계승하는 것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承’이 ‘받들다’란 의미와 ‘물려받다’란 의미를 다 지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주014)
슌고:순종(順從)하옵고. ᄒᆞ-[爲]+ᅀᆞᆸ+고. 여기의 ‘-ᅀᆞᆸ-’은 행위의 대상인 ‘님금’에 대하여 주체인 ‘군ᄌᆞ’를 겸양하는 것이다.
주015)
왼:그른. 잘못된. 외-[惡]+ㄴ(관형사형 어미).
주016)
일란:일은. 일[事]+란(보조사).
주017)
케:정(正)케. 바르게. 져ᇰ(正)+ᄒᆞ-[爲]+게(연결 어미). 중세 국어에서 ‘-게’와 ‘-긔’는 구별되지 않고 쓰인 듯하다. 다음 예문 ①②에서 ‘버서나게’와 ‘버서나긔’가 다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①一切 外道 얽요 버서나게 호리니〈석보상절 9:8ㄱ〉 ②내 福德威神力으로 一切 受苦 다 버서나긔 호리라〈석보상절 9:9ㄱ〉. 『월인석보』에서도 『석보상절』과 같이 이 둘이 혼용되고 있으나, 『월인석보』를 편찬할 때에 새로 집필한 「월인석보 서」에서는 ‘-게’만이 나타난다. ¶菩薩이 큰 慈悲로  너비 救샤 다 버서나게 실〈월인석보 8:16ㄴ〉.
주018)
구홀 디니:구(救)할지니. 구해야 하리니. ᄒᆞ-[爲]+오(선어말 어미)+ㄹ(관형사형 어미)+ᄃᆞ(의존 명사)+이-(서술격 조사 어간)+니. ‘-올 디니’가 하나의 어미에 가깝게 재구조화한 것으로 보인다.
주019)
이런 ᄃᆞ로:이런 까닭으로. ᄃᆞ(의존 명사)+로(원인 부사격 조사). 의존 명사 ‘ᄃᆞ’ 자체에는 [원인]의 의미가 없지만, ‘이런 ᄃᆞ로’는 [원인]을 나타낸다. 형태소의 기본 의미를 벗어난 관용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주020)
우콰:위와. 윗사람과. 우ㅎ[上]+과(접속 조사).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ㅎ종성체언’이라는 용어가 보편적이지만, 종성은 일반적으로 음절말음을 가리키는데 ‘ㅎ’은 어말에 붙으므로, ‘ㅎ말음체언’이 더 적절하다.
주021)
아래왜:아래가. 아랫사람이. 아래[下]+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중세 국어에서는 마지막 접속항 뒤에도 접속 조사 ‘과, 와’가 쓰인다. 이를 집단 곡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022)
서:서로. 『소학언해』(2:42ㄴ)에도 ‘서ᄅᆞ’로 나타난다. 15세기에는 ‘서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는데, 아주 드물게 ‘서로’도 쓰였다. ¶닙니피 서로 次第로 나고〈월인석보 8:12ㄱ〉. ‘서르’가 ‘서로’로 변한 것은 부사격 조사 ‘-로’로 인해 ‘-로’로 끝나는 부사어가 많아짐에 따른 유추 현상으로 보인다. ‘서ᄅᆞ’는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초간본)에 한 예가 보이고, 16세기 이후에는 매우 많이 나타난다. ¶①남지 받 갈며 겨지븐 누에 츄믈 서 失業디 아니터니라〈두시언해 초간본 3:62ㄱ〉 ②아려나 하히 우리 서 마조 보게 삼길가 라노라〈순천김씨언간 13:7〉 ③즉시 모 신하 블러 두고 서 의론시더니〈장수경언해 39ㄱ〉 ④그러호로 은혜 내 몯니 서 토려 말오 됴 이 내 베플 미니라〈번역소학 7:44ㄴ〉 ⑤모 며리  서 親며 랑야〈소학언해 6:86ㄴ〉. ‘서ᄅᆞ’가 쓰이게 된 것은 ‘서르〉서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즉 ‘서르’가 ‘서로’로 변화한 뒤에, ‘서로’에 대한 과잉교정에 의해 ‘서ᄅᆞ’가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근대 국어 문헌에서는 ‘서르, 서로, 서ᄅᆞ’ 모두 많이 쓰였다.
주023)
친니라:친(親)하느니라. 친애하느니라. ‘-ᄂᆞ-’가 쓰였으므로 여기의 ‘친ᄒᆞ-’는 동사이다.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