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 역주 번역소학 권3
  • 번역소학 제3권
  • 내편(內篇)○제2편 명륜(明倫)○명군신지의(明君臣之義)
  • 명군신지의 004
메뉴닫기 메뉴열기

명군신지의 004


○入입公門문에 鞠국躬如여也야샤 如여不블容이러시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번역소학 권3:4ㄱ

대ᄀᅿᆯ믄의 주001)
대ᄀᅿᆯ믄의:
대궐문에. 한자어 ‘大闕’이 한자 없이 훈민정음으로만 적혔는데, 특이하게도 ‘闕’의 독음이 ‘ᄀᅿᆯ’로 적혀 있다. 근대 국어 문헌에서 ‘ ᅟᅿ’가 더러 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 ᅟᅿ’는 오각으로 보인다. 『소학언해』(2:38ㄴ)에는 ‘대궐문의’로 적혀 있다. ‘門’의 독음이 원문에서는 ‘문’으로 적혀 있고 언해문에서는 ‘믄’으로 적혀 있는데, ‘믄’은 오각이거나 자획이 마멸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면(面)에서 ‘무ᇇ, 문(2개)’이 더 나온다. ‘門’의 독음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 ‘몬’으로 나타난다(법화경언해 7:20ㄴ, 법화경언해 7:189ㄴ, 원각경언해 하1-1:5ㄴ, 선종영가집언해 상:2ㄴ). 그런데 이 책이 간행될 무렵인 16세기 초 문헌에서부터 ‘문’으로 적힌 예가 보인다(훈몽자회 중:4ㄱ, 법집별행록 3ㄴ, 유합 상:23ㄴ, 왜어유해 상:32ㄱ). 그러므로 여기에 적힌 ‘믄’은 오각일 가능성이 있다. ‘몬〉문’의 변화는 경기 방언이 확산된 결과일 것이다. ‘의’는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이다. 대개 신체 지칭어, 방위 지칭어, 시간 지칭어 등 어휘가 ‘애, 에, 예’ 대신 이러한 부사격 조사를 취한다.
드르실 주002)
드르실:
들어가실. 들-[入]+으시+ㄹ. 현대 국어에서는 어간 말 ‘ㄹ’이 매개모음 ‘으’를 가진 어미 ‘-으니, -으시-’와 결합할 때 매개모음 ‘으’는 외현되지 않고 ‘ㄹ’이 탈락한다. 이를테면 동사 ‘울다’가 ‘우니, 우시니’와 같이 활용하는 것이다. ‘들다’도 마찬가지로 ‘드니, 드시니’와 같이 활용한다. 중세 국어에서는 여기의 ‘드르실’처럼 매개모음 ‘으’가 탈락하지 않는다.
저긔 주003)
저긔:
적에. 때에. ‘의’는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이다. ‘드르실 저긔’가 『소학언해』(2:38ㄴ)에서는 ‘들으실ᄉᆡ’로 바뀌었다. 이 책의 ‘-ㄹ 저긔’가 『소학언해』에서 ‘-ㄹᄉᆡ’로 바뀌는 것은 아주 규칙적이다. ‘-ㄹᄉᆡ, -ㄹᄊᆡ’는 대개 ‘-므로’에 해당하는데, 여기의 ‘-ㄹᄉᆡ’는 ‘-할 때에’에 해당한다.
모 구피시 주004)
구피시:
굽히듯이. 굽-[曲]+히(사동 접미사)+ᄃᆞᆺ이(부사형 어미). [曲]을 뜻하는 형용사 ‘굽다’는 중세 국어 문헌에서 ‘곱다’로도 나타나고 ‘굽다’로도 나타난다. ‘ㅗ〉ㅜ’의 변화가 늦어도 이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구피다’의 용례는 매우 많다. ‘구피다’의 소급형일 것으로 짐작되는 ‘고피다’는 드물지만 다음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①그제 善宿ㅣ 손 고펴 날 혜여 닐웨예 다라 즉재 裸形村中에 가〈월인석보 9:36 상ㄱ〉 ②닐 제  허릴 고피며 올어나 눕거나 야 알포 며〈구급방언해 하:81ㄴ〉 ③그 두 머리 고펴 서 다게 면 너븨 네 치 되니〈가례언해 6:2ㄱ〉.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과 ‘(-)ᄃᆞ시’가 다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먼저 발생하였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 (-)ᄃᆞ시’는 많이 보이지만 ‘(-)듯, (-)드시’의 예는 아주 드물다. ¶①金剛杵ㅅ 머리마다 브리 술위 두르듯 야〈월인석보 7:35ㄴ〉 ②새집과 살기 門이 별 흗드시 사니(草閣柴扉星散居)〈두시언해 초간본 25:23ㄱ〉.
샤 주005)
샤:
하시어. ‘ᄒᆞ샤’에서 단모음화가 이루어진 ‘ᄒᆞ사’는 1895년에 간행된 『국민소학독본』에서 나타난다. 그 이전의 복각 문헌에서도 ‘ᄒᆞ사’가 보이지만 오각일 가능성이 있다. 『한중록』에도 보이기는 하는데, 시기를 짐작하기 어렵다. ¶世宗大王이 아 外國에 다 其國 文字ㅣ 有되 我國에 無다 샤 訓民正音을 지으시고 冊板 삭이 法이 不便다 사 活字 鑄시니〈국민소학독본 6ㄴ〉. 여기서 보면 ‘ᄒᆞ샤’와 ‘ᄒᆞ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라사대’도 ‘ᄀᆞᄅᆞ샤ᄃᆡ(ᄀᆞᆯᄋᆞ샤ᄃᆡ)’에서 단모음화가 일어난 결과이다.
드디 주006)
드디:
들어가지. 들-[入]+디(보조적 연결 어미). ‘ㄷ’ 앞에서 어간 말 ‘ㄹ’이 탈락한 것이다.
몯 주007)
몯:
못할. ‘몯’은 근대 국어 시기에 ‘못’으로 변화하게 된다.
시 주008)
시:
듯이.
더시다 주009)
더시다:
하셨다. ‘-더시다’를 형태 구조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시더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 국어의 ‘-시더라’가 청자와 직접 대면한 상황에서 쓰는 해라체 종결 형식임에 비해 ‘-더시다’에는 그러한 화용적 성격이 없으므로, 현대역에서는 ‘-셨다’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여기서는 ‘-더시-’가 쓰였는데, 중세 국어에서는 ‘-더시-’와 ‘-시더-’가 모두 활발하게 쓰였다. ¶俱夷  고개 안고 우르시더라〈석보상절 3:34ㄴ〉.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대궐문에 들어가실 때에는 몸을 굽힐 듯이 구부리셔서 들어가지 못할 듯이 하셨다.
〈해설〉 출전 : 논어 향당편(鄕黨篇). 주석(소학집설) :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셨다. “국궁(鞠躬)은 몸을 구부리는 것이다. 대궐 문이 높고 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신 것은 공경의 지극함이다.”(朱子曰 鞠躬曲身也 公門高大而若不容 敬之至也). 『소학』은 인용문의 출처에 따라 장(章)이 바뀌는데,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의 표시 방법 면에서 이 책은 『소학집설(小學集說)』과 같다. 즉 새로운 장(章)이 시작될 때 『소학집성(小學集成)』에서는 ‘一, 二, 三 …’과 같은 일련 번호를 붙였고, 『소학집설(小學集說)』에서는 ○으로 표시하였는데, 이 책에서는 『소학집설』과 같이 ○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단, 새로운 편(篇)이 시작되는 위치에서는 ○ 표시가 없다. 굳이 표시하지 않아도 첫 장(章)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소학언해』도 이 책과 같은 방식을 취하고 있다.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立립不블中門문시며 行不블履리閾역이러시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셔 주010)
셔:
서되. 셔-[立]+오ᄃᆡ. ‘셔-’는 본래 평성인데 여기서는 상성으로 나타난다. 동사 어간 말음 ‘ㅏ, ㅓ, ㅗ, ㅜ’가 명사형 어미 ‘-옴/움’이나 연결 어미 ‘-오ᄃᆡ’의 ‘오, 우’와 결합하면서 ‘오, 우’는 탈락하고 성조가 상성으로 변화하는 일반적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주011)
:
문(門)의. 중세 국어의 관형격 조사에는 ‘ㅅ’과 ‘/의/ㅣ’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높임의 대상인 체언 또는 무정 명사 뒤에는 ‘ㅅ’이, 평칭의 인칭 체언 뒤에서는 ‘/의/ㅣ’가 쓰였다. 아래의 ‘문ㅅ젼’과 표기 방식이 대조적이다.
가온 주012)
가온:
가운데에. 가온ᄃᆡ+Ø(부사격 조사). 가ᄫᆞᆫᄃᆡ〉가온ᄃᆡ. 중세 국어에서는 시간이나 장소를 뜻하는 낱말들이 하향 이중 모음의 음절 부음 [j]로 끝나는 경우에는 부사격 조사 ‘애, 에, 예, , 의’가 외현되지 않는다.
아니시며 주013)
아니시며:
(서지) 아니하시며. ‘셔  가온 아니시며’는 직역이다. 이 책은 『소학언해』에 비해 의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대목은 축자역에 해당한다.
녀 주014)
녀:
가되. 녀-[行]+오ᄃᆡ. ‘녀-’는 본래 거성이다. 동사 어간 말음 ‘ㅏ, ㅓ, ㅗ, ㅜ’가 명사형 어미 ‘-옴/움’이나 연결 어미 ‘-오ᄃᆡ’의 ‘오, 우’와 결합하면서 ‘오, 우’는 탈락하고 성조가 상성으로 변화하는 일반적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문ㅅ젼을 주015)
문ㅅ젼을:
문지방을. 문(門)+ㅅ(관형격 조사)+젼+을. 젼〉전. 원문의 ‘閾(역)’은 ‘문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번역한 ‘젼’은 현대 국어의 ‘전’에 해당하는 낱말로서, ‘물건의 위쪽 가장자리가 조금 넓적하게 된 부분’을 가리킨다. 이 부분이 『소학언해』(2:39ㄱ)에는 ‘문젼을’로 적혀 있다. ‘문ㅅ젼’은 위의 ‘무ᇇ 가온ᄃᆡ’와 표기 방식이 대조적이다.
디 아니더시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설 때에는 문의 가운데에 서지 아니하시며, 갈 때에는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셨다.
〈해설〉 출전 : 논어 향당편(鄕黨篇). 주석(소학집설) :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셨다. “중문(中門)은 문 가운데에 서는 것이다. 역(閾)은 문지방이다.” 사씨(謝氏)가 말하였다. “설 때에 문의 한가운데에 서면 존자(尊者)의 자리를 차지하는 셈이 되고, 다닐 때에 문지방을 밟으면 조심스럽지 못한 것이다.”(朱子曰 中門 中於門也 閾 門限也 謝氏曰 立中門則當尊 行履閾則不恪). 궁궐 문의 중앙은 왕과 사신이 다니는 곳이며 문의 끝을 밟는 것은 조심스럽지 않은 행위이다. 주자의 주석에 나오는 ‘문한(門限)’은 ‘문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사씨(謝氏)는 송(宋)나라 때의 사양좌(謝良佐: 1050~1130)이다. 자(字)는 현도(顯道)이며, 정호(程顥)와 정이(程頤)의 문인이다.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過과位위예 色勃如여也야시며 足죡躩확如여也야시며 其기言언이 似不블足죡者쟈ㅣ러시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번역소학 권3:4ㄴ

님금 주016)
님금:
임금. ‘님금’에서 변한 ‘님굼, 님군’도 쓰였으며 『삼강행실도』에 ‘ㄴ’이 탈락한 ‘임금’이 나타난다. 먼저 ‘님굼’의 예를 보자. ¶①되 님굼 셤규믄 매 資賴  업스니〈두시언해 초간본 3:67ㄱ〉 ②안뎨란 님굼이 시듕 벼슬 이시니라〈삼강행실도 동경 효자:8ㄱ〉 ③급뎨야 벼슬야 나라 돕와 님굼 진심야 셤기오며〈번역박통사 50ㄴ〉 ④엄호모로 님굼 리이더니〈번역소학 9:38ㄱ〉. 다음은 ‘님군’의 예이다. ¶①禹 님군 우〈석봉천자문 26ㄴ〉 ②이 도리로 님군을 속이면 상망 되로소이다〈계축일기 상 20ㄱ〉. 다음은 ‘임금’의 예이다. ¶임금도 마 몯 반며 도 티 몯 거시니〈삼강행실도 동경대본 열녀:20ㄴ〉. 한편 17세기에는 ‘능금’을 뜻하는 ‘님금(林檎)’도 나타난다. ¶셋재 줄 열여 뎝시에 柑子와 石榴와 香水梨와 櫻桃와 고와 굴근 님금과 유황고와 굴근 외얏이오〈박통사언해 상:4ㄴ〉.
안시 주017)
안시:
앉으시는. 앉-[坐]+ᄋᆞ시+ᄂᆞ(현재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位위 주018)
위ᄅᆞᆯ:
위(位)를. 중세 국어 문헌에서 ‘位ᄅᆞᆯ, 位를, 位ㄹ’이 다 나타난다. ‘ᄅᆞᆯ, 를’이 붙은 예가 많고 ‘ㄹ’이 붙은 예는 아주 적다. ¶①다 王位 리시고 조차 出家야〈석보상절 13:30ㄴ〉 ②君位를 보라  큰 命을 알외요리라〈용비어천가 83〉 ③阿僧祇 前世劫에 님금 位ㄹ 리샤 精舍애 안잿더시니〈월인천강지곡 상:기3〉. ‘를, ᄅᆞᆯ’은 각각 ‘ㄹ+을’, ‘ㄹ+ᄋᆞᆯ’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런 형태소의 겹침을 ‘형태소의 중가(重加)’라 한다.
디나가실 주019)
디나가실:
지나가실. 디나-[過]+아(연결 어미)+가-[行]+시+ㄹ. 연결 어미 ‘-아’가 외현되지 않은 것이다. 중세 국어 문헌에서 ‘디나가다’와 ‘디나아가다’가 다 나타나는데, ‘디나가다’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디나아가다’도 적지 않다. ¶①貴 보 가져 어려 길흘 디나가며 그 中에  사미 닐오〈석보상절 21:6ㄱ〉 ②일롯 西方로 十萬億 부텻  디나가 世界 이쇼〈월인석보 7:63ㄱ〉 ③갓 디나가 나그내 므를 보디외 主人의 恩惠 얻디 몯리로다〈두시언해 7:10ㄴ〉 ④五百 前世 怨讐ㅣ 나랏 쳔 일버 精舍 디나아가니〈월인천강지곡 상:기4〉 ⑤寶珠를 어두리라 珍寶山 디나아가시니  導師 리시고 길 무르샤〈월인석보 22:6ㄱ〉 ⑥茅堂  묏 그틀 디나아갈가 외오 疑心더니〈두시언해 중간본 15:46ㄴ〉.
저긔 주020)
저긔:
적에. 때에. 적[時]+의(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 ‘디나가실 저긔’가 『소학언해』(2:39ㄱ)에서는 ‘디나가실ᄉᆡ’로 바뀌었다. 두 책의 이런 차이는 아주 규칙적이다. ‘-ㄹᄉᆡ, -ㄹᄊᆡ’는 대개 ‘-므로’에 해당하는데, 여기의 ‘-ㄹᄉᆡ’는 ‘-할 때에’에 해당한다.
비 주021)
비:
낯빛을. ᄂᆞᆾ+빛+ᄋᆞᆯ. ‘ᄂᆞᆾ’이 ‘ᄂᆞᆺ’으로 표기된 것은 8종성 표기 규칙에 따른 것이다. ‘’은 [顔]을 뜻하고 ‘낯’은 [箇]를 뜻하며 ‘얼골, 얼굴’은 [體, 形]을 뜻한다.
고텨 주022)
고텨:
바꾸어. 고티-[改]+어(연결 어미).
가지시며 주023)
가지시며:
가지시며.
바 주024)
바:
발을. 발[足]+ᄋᆞᆯ. 15세기 국어에서 ‘발’과 ‘ᄇᆞᆯ’은 구별되었다. ‘ᄇᆞᆯ’에는 여러 동음이의어가 있었다. ‘ᄇᆞᆯ(평성)’은 ㅎ말음체언(ㅎ종성체언)으로서 현대 국어의 ‘팔[臂, 腕]’에 해당한다. ‘ᄇᆞᆯ(거성)’에는 ‘옷 한 벌’의 ‘벌’에 해당하는 ‘ᄇᆞᆯ’과 ‘땅’을 뜻하는 ‘ᄇᆞᆯ’과 ‘횟수’를 뜻하는 ‘ᄇᆞᆯ’이 있었다. ‘ᄇᆞᆯ(평성)’에는 길이 단위를 뜻하는 ‘ᄇᆞᆯ’과 [倍]를 뜻하는 ‘ᄇᆞᆯ’이 있었다. 한편 16세기 초 문헌에서 이미 [臂, 腕]을 뜻하는 ‘ᄇᆞᆯ’이 ‘ᄑᆞᆯ’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肱 ᄑᆞᆯ 굉 臂  비〈훈몽자회 比叡 상:13ㄴ〉.
조심야 주025)
조심야:
조심(操心)하여. 훈민정음 창제 초기 한글 문헌에서 한자어 ‘操心’이 훈민정음으로만 표기되었는데, 그것은 국어화의 정도가 컸기 때문이다. 중세 국어에서는 훈민정음 ‘조심’으로 표기되다가 근대 국어 문헌에서 한자 ‘操心’으로 표기되는 예가 나타난다. 먼저 중세 국어의 예를 보자. ¶① 조심 아니샤 브를 긔 야시〈석보상절 11:26ㄱ〉 ②이런 寶珠를 어드란 이런 險 길헤 조심야 딕야 리로소다〈월인석보 22:48ㄴ〉. 다음 예들은 한자로 표기된 근대 국어 시기 자료이다. ¶①기리라 娘子ㅣ아 네 너무 操心다〈오륜전비언해 4:3ㄴ〉 ②이리 닐으지 말라 操心미 됴흐니라〈몽어노걸대 2:20ㄴ〉 ③부 操心여 몸가지기 잘소〈인어대방 5:9ㄴ〉. 한편 근대 국어 말기 문헌에서는 ‘됴심’으로 표기된 예가 보인다. 중세 국어 시기 ‘操’의 독음이 ‘조’였으므로 ‘됴’는 과잉교정이다. ¶모로미 삼가고 됴심여〈태상감응편 4:22ㄴ〉.
드듸시며 주026)
드듸시며:
디디시며. 드듸-[踏]+시+며. ‘디디다’의 준말로 보이는 현대 국어 ‘딛다’는 중세 국어에서 쓰이지 않았다. 중세 국어의 ‘딛다’는 ‘불을 때다’를 뜻한다. ¶남기 업거늘 부텨 세 야 디니라〈금강경삼가해 5:49ㄴ〉.
말미 주027)
말미:
말씀이. 말ᄉᆞᆷ[辭]+이. 중세 국어와 근대 국어의 ‘말, 말ᄊᆞᆷ(말ᄉᆞᆷ)’은 모두 [+높임]과 [-높임] 및 [+겸양]과 [-겸양]의 상황에 두루 쓰였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각자병서가 쓰인 ‘말’으로 나타난다. ¶①語는 말미라〈훈민정음언해 1ㄱ〉 ②이 말 眞實야 決定히 虛티 아니니라〈월인석보 10:122ㄴ〉 ③다시 말 펴 다시 觀體 標호〈선종영가집언해 하:31ㄱ〉 ④阿難이 비록  이 말 듣와〈능엄경언해 1:102ㄴ〉 ⑤桃源ㅅ 나그내 더브러 말 傳라〈두시언해 초간본 8:61ㄱ〉.
不블足죡 주028)
블죡ᄒᆞᆫ:
부족(不足)한. ‘不’의 독음이 ‘블’로 적혀 있는데, 동국정운음은 ‘·부ᇙ’이다(동국정운 3:2ㄴ).
더시다 주029)
ᄒᆞ더시다:
듯하셨다. 여기의 ‘ᄒᆞ다’는 대동사(代動詞)가 아니다. 의존 명사 ‘ᄃᆞᆺ’과 결합하여 보조 용언을 구성하고 있다. 만약 이 ‘ᄒᆞ-’가 대동사라면 ‘말ᄉᆞ미’가 아니라 ‘말ᄉᆞᄆᆞᆯ’이 적혔어야 한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임금이 앉으시는 빈 자리를 지나가실 때에는 낯빛을 바꾸어 가지시며 발을 조심하여 디디시며 그 말씀이 부족한 듯하셨다.
〈해설〉 출전 : 논어 향당편. 주석(소학집설) :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셨다. “위(位)는 임금의 빈 자리이다. 임금이 비록 자리에 없더라도 지나갈 때에 꼭 공경스럽게 하는 것은 빈 자리라 해도 감히 함부로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부족한 것처럼 하셨다는 것은 말씀을 감히 함부로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朱子曰 位君之虛位 君雖不在 過之必敬 不敢以虛位而慢之也 言似不足 不敢肆也). 공자의 말씀 가운데 충(忠)에 관한 일을 인용하고 있다.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攝셥齊升堂실 鞠국躬如여也야시며 屛氣긔샤 似不블息식者쟈ㅣ러시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옷기슬글 주030)
옷기슬글:
옷자락을. 치맛자락을. 옷[裳]+기슭+을. 현대 국어의 ‘기슭’은 ‘산이나 처마 따위에서 비탈진 곳의 아랫부분’을 뜻한다. ‘옷기슭’이 합성어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합성어로 간주해 둔다. ‘기슭’의 다양한 용례를 보면 의미의 폭이 아주 넓었음을 알 수 있다. ¶①입과 窓과 메  초 보고 담과 집기슭 예  마고 보고〈능엄경언해 2:28ㄴ〉 ②木通散은 小便 不通야  기슭 알파 디 몯릴 고티니〈구급방언해 상 69ㄱ〉 ③斬衰 기슭 아니 호온 오시라〈내훈 1:54ㄴ〉 ④齊衰  사오나온 뵈로 니 기슭 호온 오시라〈내훈 1:58ㄴ〉 ⑤집 기슭 그르메 微微히 뎟고〈두시언해 3:26ㄱ〉 ⑥비 나죗 집 기슭 대예 븟거〈두시언해 9:23ㄴ〉 ⑦옷기슭 긋우믈 어듸 가 王門을 어드리오〈두시언해 11:7ㄱ〉 ⑧屋簷爛草節(집기슭 서근 새 )〈구급간이방 3:68ㄴ〉. 다음은 자전류의 예이다. ¶①麓 묏기슭 록〈훈몽자회 상:2ㄱ〉 ②簷 기슭 쳠 甍 기슭 〈훈몽자회 중:3ㄴ〉 ③襋 옷깃 극 襟 옷깃 금 袵 기슭 〈훈몽자회 중:12ㄱ〉.
거두드러 주031)
거두드러:
걷어들어. 걷-[收]+우(부사 파생 접미사)+들-[擧]+어. 부사 ‘거두’와 동사 ‘들다’가 결합하여 합성 동사가 된 것이다. ‘거두’가 동사와 결합하여 합성 동사가 된 예는 아주 많다. ¶①攝化 거두자바 敎化실 씨라〈월인석보 8:99ㄴ〉 ②입시우리 아래로 드리디 아니며  우흐로 거두쥐디 아니며〈월인석보 17:52ㄴ〉 ③摳衣는 옷 거두들 씨라〈선종영가집언해 서:13ㄴ〉 ④慰勞논 말로 서르 거두자바 깃거 날로 親케 니〈선종영가집언해 상:47ㄴ〉 ⑤믈 건나디 아니커든 거두드디 말며〈내훈 1:45ㄱ〉 ⑥과 몰앳 서리예 추미 거두밀옛니〈두시언해 초간본 17:39ㄴ〉 ⑦黃屋 北녁 미 거두부니라〈두시언해 초간본 24:33ㄴ〉 ⑧굳고 누 티고 헌 로  드러 거두혀며 뷔트리혀미 이시락 업스락 거든〈구급간이방 1:7ㄴ〉 ⑨손바리 거두주여 그 즈ᇰ이  마니와 다디 아니호〈구급간이방 1:38ㄴ〉 ⑩비마 거플 밧기고 라 골 라 머릿 바기예 브티면 즉재 거두혀 들리라〈구급간이방 7:66ㄴ〉 ⑪空花  三界 미  거두티 고〈선가귀감언해 24ㄱ〉 ⑫코히 븟 치 브으며 녑구리 거두혀고 터럭이 니〈마경초집언해 상:103ㄱ〉.
堂 주032)
당:
당(堂)에. ‘ᄋᆡ’는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이다. 대개 신체 지칭어, 방위 지칭어, 시간 지칭어 등 어휘가 ‘애, 에, 예’ 대신 이러한 부사격 조사를 취한다.
오실 저긔 주033)
저긔:
적에. 적[時]+의(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 ‘오ᄅᆞ실 저긔’가 『소학언해』(2:39ㄴ)에서는 ‘오ᄅᆞ실ᄉᆡ’로 바뀌었다. 두 책의 이 차이는 아주 규칙적이다.
모 구피시 주034)
구피시:
굽히듯이. 굽-[曲]+히(사동 접미사)+ᄃᆞᆺ이(부사형 어미). [曲]을 뜻하는 형용사 ‘굽다’는 중세 국어 문헌에서 ‘곱다’로도 나타나고 ‘굽다’로도 나타난다. ‘구피다’의 용례는 매우 많다. ‘구피다’의 소급형일 것으로 짐작되는 ‘고피다’는 드물지만 다음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①그제 善宿ㅣ 손 고펴 날 혜여 닐웨예 다라 즉재 裸形村中에 가〈월인석보 9:36 상ㄱ〉 ②닐 제  허릴 고피며 올어나 눕거나 야 알포 며〈구급방언해 하:81ㄴ〉 ③그 두 머리 고펴 서 다게 면 너븨 네 치 되니〈가례언해 6:2ㄱ〉.
시며 氣긔韻운 주035)
긔운:
기운(氣韻). 숨 호흡.
갈마 주036)
갈마:
감추어. 저장하여. 갊-[屛, 藏]+아. ‘갈무리’는 ‘갊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수믈 주037)
수믈:
숨을. 호흡을.
아니 주038)
아니:
아니. ‘아니 쉬ᄃᆞ시’는 현대 국어 ‘쉬지 않듯이’에 해당한다. 현대 국어의 부정 형식 ‘동사 어간+지 않다’와는 구조가 다른 ‘아니+동사’ 구성의 부정 형식이 중세 국어에서 널리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 국어에서도 ‘-디 아니ᄒᆞ-’ 구문이 상당히 많이 쓰였다.
쉬시 주039)
쉬시:
쉬듯이. 쉬-[息]+ᄃᆞ시(연결 어미). ‘ᄃᆞ시’가 관형사형 어미 뒤에 나타나는 예도 있다. ¶①제 모맷 고기 바혀 내논 시 너겨 며〈석보상절 9:12ㄱ〉 ②새려 시름호매 누니 들올 시 라노라〈두시언해 20:18ㄴ〉. 한편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과 ‘(-)ᄃᆞ시’가 다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먼저 발생하였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 (-)ᄃᆞ시’는 많이 보이지만 ‘(-)듯, (-)드시’의 예는 아주 드물다. ¶①金剛杵ㅅ 머리마다 브리 술위 두르듯 야〈월인석보 7:35ㄴ〉 ②새집과 살기 門이 별 흗드시 사니(草閣柴扉星散居)〈두시언해 초간본 25:23ㄱ〉.
더시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옷자락을 걷어 들고서 당(堂)에 오르실 때에 몸을 굽히듯이 하시며 숨을 감추어서 마치 숨을 쉬지 않는 듯이 하셨다.
〈해설〉 출전 : 논어 향당편. 주석(소학집설) :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셨다. “섭(攝)은 잡는 것이다. 자(齊)는 옷의 아래 솔기이다. 『예기』에서 이르기를, ‘장차 당(堂)에 오를 때에는 두 손으로 옷자락을 치켜들어서 땅에서 한 자 떨어지게 하라.’ 하였으니, 옷자락을 밟아서 비틀거리거나 넘어져 체통을 잃을까 염려한 것이다. 병(屛)은 감추는 것이고, 식(息)은 코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이다. 지존(至尊)에게 가까워지므로 숨 쉬는 것과 몸가짐을 엄숙히 하는 것이다.”(朱子曰 攝摳也 齊衣下縫也 禮 將升堂 兩手摳衣 使去地尺 恐躡之而傾迭失容也 屛藏也 息鼻息出入者也 近至尊 氣容肅也). 공자(孔子)가 임금을 만나기 위해 당(堂)에 오를 때의 정중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齊’는 ‘옷 아래 꿰맨 자락’을 뜻할 때에는 ‘ᄌᆡ’로 읽혔다. 이 책(3:27ㄱ)에서는 ‘ᄌᆞ’로 나타난다. 후대에 ‘자’로 굳어져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자전석요 하 64ㄱ). ‘齊’가 ‘상복(喪服)’을 뜻할 때도 있는데, 그 경우에도 중세 국어 시기의 독음은 ‘ᄌᆡ’이고(이 책 4:17ㄴ), 오늘날의 독음은 ‘자’이다.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出츌降一일等샤 逞顔안色샤 怡이怡

번역소학 권3:5ㄱ

이如여也야시며 沒몰階계샤 趨추翼익如여也야시며 復복其기位위샤 踧츅踖젹如여也야ㅣ러시다 주040)
ㅣ러시다:
원문 구결의 ‘ㅣ러시다’는 한 문장 끝에 서술격 조사 어간을 붙인 것이다. ㅣ-(서술격 조사 어간)+더+시+다. 서술격 조사 어간 ‘이/ㅣ-’ 뒤에서는 ‘-더-’가 ‘-러-’로 교체된다.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주041)
나:
나와. 나-[出]+아(연결 어미).
주042)
:
한. 여기서는 ‘첫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졀 주043)
계졀:
층계. 한자어 ‘階節’이 한자 없이 훈민정음으로만 적혔다.
리샤 주044)
리샤:
내려서시고는. ᄂᆞ리-[降]+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현대 국어에서는 ‘먹어는 보았다’에서와 같이 ‘본용언+보조용언’ 구성에서 ‘-어는/아는’이 쓰이지만, 절(節)이 연결되는 위치에서는 ‘-어는/아는’이 거의 쓰이지 않는 듯하다. 이를테면 “나와서 한 층계를 내려는 곧장 달려갔다.”와 같은 문장이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는/아는’의 공백을 ‘-고는’이나 ‘-고서는’ 및 ‘-고 나서는’이 메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서, 나서’의 구성 요소인 ‘서’가 기원적으로는 [在]를 뜻하는 동사 ‘시-’에 연결 어미 ‘-어’가 결합한 것이니, ‘-어는/아는’이 재구조화된 연결 형식 속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비 주045)
비:
낯빛을. ᄂᆞᆾ+빛+ᄋᆞᆯ. ‘ᄂᆞᆾ’이 ‘ᄂᆞᆺ’으로 표기된 것은 8종성 표기 규칙에 따른 것이다.
주046)
펴:
펴. 펴-[逞, 舒]+어.
和화悅열히 주047)
화열히:
화열(和悅)히. 기쁘게.
시며 계졀에 주048)
계졀에:
계절(階節)에서. 층계에서. 문맥으로 보아 여기의 ‘에’는 ‘동작의 출발점’을 뜻하는 부사격 조사로 보인다.
주049)
다:
다. 모두. 부사 ‘다’는 동사 ‘다ᄋᆞ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즉 ‘다ᄋᆞ-[盡](동사 어간)+아(연결 어미)’로 이루어진 활용형 ‘다아’가 부사로 파생된 뒤에 ‘다’로 축약된 것이다. 동사 ‘다ᄋᆞ다’는 후대에 ‘다다’를 거쳐 오늘날의 ‘다하다’로 발달하였다. ¶①죽을 힘을 다여〈서궁일기 38ㄴ〉 ②지아비 죽거 셜워호믈 다고 복을 고 오히려 졔복 벗디 아니더니〈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열녀 1:35ㄴ〉.
리샤 리 주050)
리:
빨리. ‘/르’ 불규칙 용언인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ㄹㄹ’형의 모습을 보인다. -[速]+이(부사형 어미). ‘/르’ 불규칙 활용 중 ‘ㄹㄹ’형에는 ‘-[速], 모-’ 등이 있고, ‘ㄹㅇ’형에는 ‘다-[異], 그르-[解], 게으르-[怠], 므르-[退]’ 등이 있다.
가샤매 주051)
가샤매:
가심에. 가시는데. 가-[行]+시/으시(주체존대 선어말 어미)+옴(명사형 어미)+애(조사). 통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시-’의 고형(古形) ‘-샤-’와 ‘-옴’이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ㅏ’ 뒤에서는 ‘-옴’의 ‘ㅗ’가 탈락한다.
주052)
새:
새가. 새[鳥]+Ø(주격 조사). 이중 모음의 음절 부음 [j] 뒤에서 주격 조사가 외현되지 않은 것이다.
개 주053)
ᄂᆞᆯ개:
날개. ᄂᆞᆯ애〉ᄂᆞᆯ개. ᄂᆞᆯ-[飛]+개(명사 파생 접미사). 중세 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ㄹ’ 뒤의 ‘ㄱ’이 약화하여 유성 성문 마찰음 [ɦ]으로 실현되고, 그것이 ‘ㅇ’으로 표기되었다. ¶ᄂᆞᆯ애〈월인석보 10:78ㄱ〉〈법화경언해 2:104ㄱ〉. 근대 국어 후기 문헌에도 ‘ᄂᆞᆯ애’가 나타난다. ¶ᄂᆞᆯ애〈무예도보통지 19ㄴ, 20ㄴ〉. 그러나 15세기 문헌에서도 ‘ㄹ’ 뒤의 ‘ㄱ’이 약화하지 않은 ‘ᄂᆞᆯ개’가 많이 나타난다. ¶개〈월인석보 25:30ㄱ〉〈능엄경언해 9:30ㄴ〉〈법화경언해 1:51ㄴ〉〈구급방언해 하23ㄴ〉〈두시언해 3:21ㄱ〉.
주054)
편:
편. 펼친. 펴-[舒]+ㄴ(관형사형 어미).
시 시며 그 位위예 주055)
위예:
위(位)에. 자리에. 위+예(부사격 조사). ‘위(位)’는 여기서는 본래 거처하는 자리를 뜻한다.
도라가샤 주056)
도라가샤:
돌아가셔서는. 돌-[廻]+아(연결 어미)+가-[去]+시+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 주057)
:
마음. 중세 국어의 ‘ᄆᆞᅀᆞᆷ’에는 ‘마음’이라는 뜻과 ‘심장(心臟)’이라는 뜻이 있었는데, 다의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겨래 므레 디여 간 긔운 잇 사 큰 그르세  봇가 을 울야〈구급간이방 1:77ㄱ〉.
노티 몯 주058)
몯:
못한. ‘몯’은 근대 국어 시기에 7종성 표기 관행에 따라 ‘못’으로 적혔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시다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나와서 한 층계를 내려서시고는 낯빛을 펴서 기쁜 표정을 지으셨으며, 층계에서 다 내려오셔서는 빠른 걸음으로 가심에 새가 날개를 펼친 듯이 걸으셨으며, 그 본래의 자리에 돌아가셔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듯하셨다.
〈해설〉 출전 : 논어 향당편. 주석(소학집설) : 주자(朱子)께서 말씀하셨다. “등(等)은 계단의 층계이다. 영(逞)은 펼치는 것이다. 높은 분에게서 점점 멀어지시니 (참았던) 숨을 풀고 얼굴빛을 푸신 것이다. 이이(怡怡)는 편안한 마음으로 기뻐함이다. 몰계(沒階)는 계단을 다 내려온 것이다. 추(趨)는 달려서 자리로 나아감이다. 축적(踧踖)은 공경하면서 편안하지 못한 모양이니, 자리로 돌아오셔서도 마음을 놓지 않고 삼가신 것은 공경하는 태도가 (그때까지) 남으신 것이다.”(朱子曰 等階之級也 逞放也 漸遠所尊 舒氣解顔 怡怡和悅也 沒階下盡階也 趨走就位也 踧踖恭敬不寧之貌 復位踧踖 敬之餘也).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4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대ᄀᅿᆯ믄의:대궐문에. 한자어 ‘大闕’이 한자 없이 훈민정음으로만 적혔는데, 특이하게도 ‘闕’의 독음이 ‘ᄀᅿᆯ’로 적혀 있다. 근대 국어 문헌에서 ‘ ᅟᅿ’가 더러 보이기는 하지만 이 책의 ‘ ᅟᅿ’는 오각으로 보인다. 『소학언해』(2:38ㄴ)에는 ‘대궐문의’로 적혀 있다. ‘門’의 독음이 원문에서는 ‘문’으로 적혀 있고 언해문에서는 ‘믄’으로 적혀 있는데, ‘믄’은 오각이거나 자획이 마멸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면(面)에서 ‘무ᇇ, 문(2개)’이 더 나온다. ‘門’의 독음은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서 ‘몬’으로 나타난다(법화경언해 7:20ㄴ, 법화경언해 7:189ㄴ, 원각경언해 하1-1:5ㄴ, 선종영가집언해 상:2ㄴ). 그런데 이 책이 간행될 무렵인 16세기 초 문헌에서부터 ‘문’으로 적힌 예가 보인다(훈몽자회 중:4ㄱ, 법집별행록 3ㄴ, 유합 상:23ㄴ, 왜어유해 상:32ㄱ). 그러므로 여기에 적힌 ‘믄’은 오각일 가능성이 있다. ‘몬〉문’의 변화는 경기 방언이 확산된 결과일 것이다. ‘의’는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이다. 대개 신체 지칭어, 방위 지칭어, 시간 지칭어 등 어휘가 ‘애, 에, 예’ 대신 이러한 부사격 조사를 취한다.
주002)
드르실:들어가실. 들-[入]+으시+ㄹ. 현대 국어에서는 어간 말 ‘ㄹ’이 매개모음 ‘으’를 가진 어미 ‘-으니, -으시-’와 결합할 때 매개모음 ‘으’는 외현되지 않고 ‘ㄹ’이 탈락한다. 이를테면 동사 ‘울다’가 ‘우니, 우시니’와 같이 활용하는 것이다. ‘들다’도 마찬가지로 ‘드니, 드시니’와 같이 활용한다. 중세 국어에서는 여기의 ‘드르실’처럼 매개모음 ‘으’가 탈락하지 않는다.
주003)
저긔:적에. 때에. ‘의’는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이다. ‘드르실 저긔’가 『소학언해』(2:38ㄴ)에서는 ‘들으실ᄉᆡ’로 바뀌었다. 이 책의 ‘-ㄹ 저긔’가 『소학언해』에서 ‘-ㄹᄉᆡ’로 바뀌는 것은 아주 규칙적이다. ‘-ㄹᄉᆡ, -ㄹᄊᆡ’는 대개 ‘-므로’에 해당하는데, 여기의 ‘-ㄹᄉᆡ’는 ‘-할 때에’에 해당한다.
주004)
구피시:굽히듯이. 굽-[曲]+히(사동 접미사)+ᄃᆞᆺ이(부사형 어미). [曲]을 뜻하는 형용사 ‘굽다’는 중세 국어 문헌에서 ‘곱다’로도 나타나고 ‘굽다’로도 나타난다. ‘ㅗ〉ㅜ’의 변화가 늦어도 이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구피다’의 용례는 매우 많다. ‘구피다’의 소급형일 것으로 짐작되는 ‘고피다’는 드물지만 다음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①그제 善宿ㅣ 손 고펴 날 혜여 닐웨예 다라 즉재 裸形村中에 가〈월인석보 9:36 상ㄱ〉 ②닐 제  허릴 고피며 올어나 눕거나 야 알포 며〈구급방언해 하:81ㄴ〉 ③그 두 머리 고펴 서 다게 면 너븨 네 치 되니〈가례언해 6:2ㄱ〉.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과 ‘(-)ᄃᆞ시’가 다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먼저 발생하였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 (-)ᄃᆞ시’는 많이 보이지만 ‘(-)듯, (-)드시’의 예는 아주 드물다. ¶①金剛杵ㅅ 머리마다 브리 술위 두르듯 야〈월인석보 7:35ㄴ〉 ②새집과 살기 門이 별 흗드시 사니(草閣柴扉星散居)〈두시언해 초간본 25:23ㄱ〉.
주005)
샤:하시어. ‘ᄒᆞ샤’에서 단모음화가 이루어진 ‘ᄒᆞ사’는 1895년에 간행된 『국민소학독본』에서 나타난다. 그 이전의 복각 문헌에서도 ‘ᄒᆞ사’가 보이지만 오각일 가능성이 있다. 『한중록』에도 보이기는 하는데, 시기를 짐작하기 어렵다. ¶世宗大王이 아 外國에 다 其國 文字ㅣ 有되 我國에 無다 샤 訓民正音을 지으시고 冊板 삭이 法이 不便다 사 活字 鑄시니〈국민소학독본 6ㄴ〉. 여기서 보면 ‘ᄒᆞ샤’와 ‘ᄒᆞ사’가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라사대’도 ‘ᄀᆞᄅᆞ샤ᄃᆡ(ᄀᆞᆯᄋᆞ샤ᄃᆡ)’에서 단모음화가 일어난 결과이다.
주006)
드디:들어가지. 들-[入]+디(보조적 연결 어미). ‘ㄷ’ 앞에서 어간 말 ‘ㄹ’이 탈락한 것이다.
주007)
몯:못할. ‘몯’은 근대 국어 시기에 ‘못’으로 변화하게 된다.
주008)
시:듯이.
주009)
더시다:하셨다. ‘-더시다’를 형태 구조에 충실하게 번역하면 ‘-시더라’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 국어의 ‘-시더라’가 청자와 직접 대면한 상황에서 쓰는 해라체 종결 형식임에 비해 ‘-더시다’에는 그러한 화용적 성격이 없으므로, 현대역에서는 ‘-셨다’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여기서는 ‘-더시-’가 쓰였는데, 중세 국어에서는 ‘-더시-’와 ‘-시더-’가 모두 활발하게 쓰였다. ¶俱夷  고개 안고 우르시더라〈석보상절 3:34ㄴ〉.
주010)
셔:서되. 셔-[立]+오ᄃᆡ. ‘셔-’는 본래 평성인데 여기서는 상성으로 나타난다. 동사 어간 말음 ‘ㅏ, ㅓ, ㅗ, ㅜ’가 명사형 어미 ‘-옴/움’이나 연결 어미 ‘-오ᄃᆡ’의 ‘오, 우’와 결합하면서 ‘오, 우’는 탈락하고 성조가 상성으로 변화하는 일반적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주011)
:문(門)의. 중세 국어의 관형격 조사에는 ‘ㅅ’과 ‘/의/ㅣ’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높임의 대상인 체언 또는 무정 명사 뒤에는 ‘ㅅ’이, 평칭의 인칭 체언 뒤에서는 ‘/의/ㅣ’가 쓰였다. 아래의 ‘문ㅅ젼’과 표기 방식이 대조적이다.
주012)
가온:가운데에. 가온ᄃᆡ+Ø(부사격 조사). 가ᄫᆞᆫᄃᆡ〉가온ᄃᆡ. 중세 국어에서는 시간이나 장소를 뜻하는 낱말들이 하향 이중 모음의 음절 부음 [j]로 끝나는 경우에는 부사격 조사 ‘애, 에, 예, , 의’가 외현되지 않는다.
주013)
아니시며:(서지) 아니하시며. ‘셔  가온 아니시며’는 직역이다. 이 책은 『소학언해』에 비해 의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대목은 축자역에 해당한다.
주014)
녀:가되. 녀-[行]+오ᄃᆡ. ‘녀-’는 본래 거성이다. 동사 어간 말음 ‘ㅏ, ㅓ, ㅗ, ㅜ’가 명사형 어미 ‘-옴/움’이나 연결 어미 ‘-오ᄃᆡ’의 ‘오, 우’와 결합하면서 ‘오, 우’는 탈락하고 성조가 상성으로 변화하는 일반적 경향을 보여 주고 있다.
주015)
문ㅅ젼을:문지방을. 문(門)+ㅅ(관형격 조사)+젼+을. 젼〉전. 원문의 ‘閾(역)’은 ‘문지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번역한 ‘젼’은 현대 국어의 ‘전’에 해당하는 낱말로서, ‘물건의 위쪽 가장자리가 조금 넓적하게 된 부분’을 가리킨다. 이 부분이 『소학언해』(2:39ㄱ)에는 ‘문젼을’로 적혀 있다. ‘문ㅅ젼’은 위의 ‘무ᇇ 가온ᄃᆡ’와 표기 방식이 대조적이다.
주016)
님금:임금. ‘님금’에서 변한 ‘님굼, 님군’도 쓰였으며 『삼강행실도』에 ‘ㄴ’이 탈락한 ‘임금’이 나타난다. 먼저 ‘님굼’의 예를 보자. ¶①되 님굼 셤규믄 매 資賴  업스니〈두시언해 초간본 3:67ㄱ〉 ②안뎨란 님굼이 시듕 벼슬 이시니라〈삼강행실도 동경 효자:8ㄱ〉 ③급뎨야 벼슬야 나라 돕와 님굼 진심야 셤기오며〈번역박통사 50ㄴ〉 ④엄호모로 님굼 리이더니〈번역소학 9:38ㄱ〉. 다음은 ‘님군’의 예이다. ¶①禹 님군 우〈석봉천자문 26ㄴ〉 ②이 도리로 님군을 속이면 상망 되로소이다〈계축일기 상 20ㄱ〉. 다음은 ‘임금’의 예이다. ¶임금도 마 몯 반며 도 티 몯 거시니〈삼강행실도 동경대본 열녀:20ㄴ〉. 한편 17세기에는 ‘능금’을 뜻하는 ‘님금(林檎)’도 나타난다. ¶셋재 줄 열여 뎝시에 柑子와 石榴와 香水梨와 櫻桃와 고와 굴근 님금과 유황고와 굴근 외얏이오〈박통사언해 상:4ㄴ〉.
주017)
안시:앉으시는. 앉-[坐]+ᄋᆞ시+ᄂᆞ(현재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주018)
위ᄅᆞᆯ:위(位)를. 중세 국어 문헌에서 ‘位ᄅᆞᆯ, 位를, 位ㄹ’이 다 나타난다. ‘ᄅᆞᆯ, 를’이 붙은 예가 많고 ‘ㄹ’이 붙은 예는 아주 적다. ¶①다 王位 리시고 조차 出家야〈석보상절 13:30ㄴ〉 ②君位를 보라  큰 命을 알외요리라〈용비어천가 83〉 ③阿僧祇 前世劫에 님금 位ㄹ 리샤 精舍애 안잿더시니〈월인천강지곡 상:기3〉. ‘를, ᄅᆞᆯ’은 각각 ‘ㄹ+을’, ‘ㄹ+ᄋᆞᆯ’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런 형태소의 겹침을 ‘형태소의 중가(重加)’라 한다.
주019)
디나가실:지나가실. 디나-[過]+아(연결 어미)+가-[行]+시+ㄹ. 연결 어미 ‘-아’가 외현되지 않은 것이다. 중세 국어 문헌에서 ‘디나가다’와 ‘디나아가다’가 다 나타나는데, ‘디나가다’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디나아가다’도 적지 않다. ¶①貴 보 가져 어려 길흘 디나가며 그 中에  사미 닐오〈석보상절 21:6ㄱ〉 ②일롯 西方로 十萬億 부텻  디나가 世界 이쇼〈월인석보 7:63ㄱ〉 ③갓 디나가 나그내 므를 보디외 主人의 恩惠 얻디 몯리로다〈두시언해 7:10ㄴ〉 ④五百 前世 怨讐ㅣ 나랏 쳔 일버 精舍 디나아가니〈월인천강지곡 상:기4〉 ⑤寶珠를 어두리라 珍寶山 디나아가시니  導師 리시고 길 무르샤〈월인석보 22:6ㄱ〉 ⑥茅堂  묏 그틀 디나아갈가 외오 疑心더니〈두시언해 중간본 15:46ㄴ〉.
주020)
저긔:적에. 때에. 적[時]+의(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 ‘디나가실 저긔’가 『소학언해』(2:39ㄱ)에서는 ‘디나가실ᄉᆡ’로 바뀌었다. 두 책의 이런 차이는 아주 규칙적이다. ‘-ㄹᄉᆡ, -ㄹᄊᆡ’는 대개 ‘-므로’에 해당하는데, 여기의 ‘-ㄹᄉᆡ’는 ‘-할 때에’에 해당한다.
주021)
비:낯빛을. ᄂᆞᆾ+빛+ᄋᆞᆯ. ‘ᄂᆞᆾ’이 ‘ᄂᆞᆺ’으로 표기된 것은 8종성 표기 규칙에 따른 것이다. ‘’은 [顔]을 뜻하고 ‘낯’은 [箇]를 뜻하며 ‘얼골, 얼굴’은 [體, 形]을 뜻한다.
주022)
고텨:바꾸어. 고티-[改]+어(연결 어미).
주023)
가지시며:가지시며.
주024)
바:발을. 발[足]+ᄋᆞᆯ. 15세기 국어에서 ‘발’과 ‘ᄇᆞᆯ’은 구별되었다. ‘ᄇᆞᆯ’에는 여러 동음이의어가 있었다. ‘ᄇᆞᆯ(평성)’은 ㅎ말음체언(ㅎ종성체언)으로서 현대 국어의 ‘팔[臂, 腕]’에 해당한다. ‘ᄇᆞᆯ(거성)’에는 ‘옷 한 벌’의 ‘벌’에 해당하는 ‘ᄇᆞᆯ’과 ‘땅’을 뜻하는 ‘ᄇᆞᆯ’과 ‘횟수’를 뜻하는 ‘ᄇᆞᆯ’이 있었다. ‘ᄇᆞᆯ(평성)’에는 길이 단위를 뜻하는 ‘ᄇᆞᆯ’과 [倍]를 뜻하는 ‘ᄇᆞᆯ’이 있었다. 한편 16세기 초 문헌에서 이미 [臂, 腕]을 뜻하는 ‘ᄇᆞᆯ’이 ‘ᄑᆞᆯ’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肱 ᄑᆞᆯ 굉 臂  비〈훈몽자회 比叡 상:13ㄴ〉.
주025)
조심야:조심(操心)하여. 훈민정음 창제 초기 한글 문헌에서 한자어 ‘操心’이 훈민정음으로만 표기되었는데, 그것은 국어화의 정도가 컸기 때문이다. 중세 국어에서는 훈민정음 ‘조심’으로 표기되다가 근대 국어 문헌에서 한자 ‘操心’으로 표기되는 예가 나타난다. 먼저 중세 국어의 예를 보자. ¶① 조심 아니샤 브를 긔 야시〈석보상절 11:26ㄱ〉 ②이런 寶珠를 어드란 이런 險 길헤 조심야 딕야 리로소다〈월인석보 22:48ㄴ〉. 다음 예들은 한자로 표기된 근대 국어 시기 자료이다. ¶①기리라 娘子ㅣ아 네 너무 操心다〈오륜전비언해 4:3ㄴ〉 ②이리 닐으지 말라 操心미 됴흐니라〈몽어노걸대 2:20ㄴ〉 ③부 操心여 몸가지기 잘소〈인어대방 5:9ㄴ〉. 한편 근대 국어 말기 문헌에서는 ‘됴심’으로 표기된 예가 보인다. 중세 국어 시기 ‘操’의 독음이 ‘조’였으므로 ‘됴’는 과잉교정이다. ¶모로미 삼가고 됴심여〈태상감응편 4:22ㄴ〉.
주026)
드듸시며:디디시며. 드듸-[踏]+시+며. ‘디디다’의 준말로 보이는 현대 국어 ‘딛다’는 중세 국어에서 쓰이지 않았다. 중세 국어의 ‘딛다’는 ‘불을 때다’를 뜻한다. ¶남기 업거늘 부텨 세 야 디니라〈금강경삼가해 5:49ㄴ〉.
주027)
말미:말씀이. 말ᄉᆞᆷ[辭]+이. 중세 국어와 근대 국어의 ‘말, 말ᄊᆞᆷ(말ᄉᆞᆷ)’은 모두 [+높임]과 [-높임] 및 [+겸양]과 [-겸양]의 상황에 두루 쓰였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각자병서가 쓰인 ‘말’으로 나타난다. ¶①語는 말미라〈훈민정음언해 1ㄱ〉 ②이 말 眞實야 決定히 虛티 아니니라〈월인석보 10:122ㄴ〉 ③다시 말 펴 다시 觀體 標호〈선종영가집언해 하:31ㄱ〉 ④阿難이 비록  이 말 듣와〈능엄경언해 1:102ㄴ〉 ⑤桃源ㅅ 나그내 더브러 말 傳라〈두시언해 초간본 8:61ㄱ〉.
주028)
블죡ᄒᆞᆫ:부족(不足)한. ‘不’의 독음이 ‘블’로 적혀 있는데, 동국정운음은 ‘·부ᇙ’이다(동국정운 3:2ㄴ).
주029)
ᄒᆞ더시다:듯하셨다. 여기의 ‘ᄒᆞ다’는 대동사(代動詞)가 아니다. 의존 명사 ‘ᄃᆞᆺ’과 결합하여 보조 용언을 구성하고 있다. 만약 이 ‘ᄒᆞ-’가 대동사라면 ‘말ᄉᆞ미’가 아니라 ‘말ᄉᆞᄆᆞᆯ’이 적혔어야 한다.
주030)
옷기슬글:옷자락을. 치맛자락을. 옷[裳]+기슭+을. 현대 국어의 ‘기슭’은 ‘산이나 처마 따위에서 비탈진 곳의 아랫부분’을 뜻한다. ‘옷기슭’이 합성어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합성어로 간주해 둔다. ‘기슭’의 다양한 용례를 보면 의미의 폭이 아주 넓었음을 알 수 있다. ¶①입과 窓과 메  초 보고 담과 집기슭 예  마고 보고〈능엄경언해 2:28ㄴ〉 ②木通散은 小便 不通야  기슭 알파 디 몯릴 고티니〈구급방언해 상 69ㄱ〉 ③斬衰 기슭 아니 호온 오시라〈내훈 1:54ㄴ〉 ④齊衰  사오나온 뵈로 니 기슭 호온 오시라〈내훈 1:58ㄴ〉 ⑤집 기슭 그르메 微微히 뎟고〈두시언해 3:26ㄱ〉 ⑥비 나죗 집 기슭 대예 븟거〈두시언해 9:23ㄴ〉 ⑦옷기슭 긋우믈 어듸 가 王門을 어드리오〈두시언해 11:7ㄱ〉 ⑧屋簷爛草節(집기슭 서근 새 )〈구급간이방 3:68ㄴ〉. 다음은 자전류의 예이다. ¶①麓 묏기슭 록〈훈몽자회 상:2ㄱ〉 ②簷 기슭 쳠 甍 기슭 〈훈몽자회 중:3ㄴ〉 ③襋 옷깃 극 襟 옷깃 금 袵 기슭 〈훈몽자회 중:12ㄱ〉.
주031)
거두드러:걷어들어. 걷-[收]+우(부사 파생 접미사)+들-[擧]+어. 부사 ‘거두’와 동사 ‘들다’가 결합하여 합성 동사가 된 것이다. ‘거두’가 동사와 결합하여 합성 동사가 된 예는 아주 많다. ¶①攝化 거두자바 敎化실 씨라〈월인석보 8:99ㄴ〉 ②입시우리 아래로 드리디 아니며  우흐로 거두쥐디 아니며〈월인석보 17:52ㄴ〉 ③摳衣는 옷 거두들 씨라〈선종영가집언해 서:13ㄴ〉 ④慰勞논 말로 서르 거두자바 깃거 날로 親케 니〈선종영가집언해 상:47ㄴ〉 ⑤믈 건나디 아니커든 거두드디 말며〈내훈 1:45ㄱ〉 ⑥과 몰앳 서리예 추미 거두밀옛니〈두시언해 초간본 17:39ㄴ〉 ⑦黃屋 北녁 미 거두부니라〈두시언해 초간본 24:33ㄴ〉 ⑧굳고 누 티고 헌 로  드러 거두혀며 뷔트리혀미 이시락 업스락 거든〈구급간이방 1:7ㄴ〉 ⑨손바리 거두주여 그 즈ᇰ이  마니와 다디 아니호〈구급간이방 1:38ㄴ〉 ⑩비마 거플 밧기고 라 골 라 머릿 바기예 브티면 즉재 거두혀 들리라〈구급간이방 7:66ㄴ〉 ⑪空花  三界 미  거두티 고〈선가귀감언해 24ㄱ〉 ⑫코히 븟 치 브으며 녑구리 거두혀고 터럭이 니〈마경초집언해 상:103ㄱ〉.
주032)
당:당(堂)에. ‘ᄋᆡ’는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이다. 대개 신체 지칭어, 방위 지칭어, 시간 지칭어 등 어휘가 ‘애, 에, 예’ 대신 이러한 부사격 조사를 취한다.
주033)
저긔:적에. 적[時]+의(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 ‘오ᄅᆞ실 저긔’가 『소학언해』(2:39ㄴ)에서는 ‘오ᄅᆞ실ᄉᆡ’로 바뀌었다. 두 책의 이 차이는 아주 규칙적이다.
주034)
구피시:굽히듯이. 굽-[曲]+히(사동 접미사)+ᄃᆞᆺ이(부사형 어미). [曲]을 뜻하는 형용사 ‘굽다’는 중세 국어 문헌에서 ‘곱다’로도 나타나고 ‘굽다’로도 나타난다. ‘구피다’의 용례는 매우 많다. ‘구피다’의 소급형일 것으로 짐작되는 ‘고피다’는 드물지만 다음 예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①그제 善宿ㅣ 손 고펴 날 혜여 닐웨예 다라 즉재 裸形村中에 가〈월인석보 9:36 상ㄱ〉 ②닐 제  허릴 고피며 올어나 눕거나 야 알포 며〈구급방언해 하:81ㄴ〉 ③그 두 머리 고펴 서 다게 면 너븨 네 치 되니〈가례언해 6:2ㄱ〉.
주035)
긔운:기운(氣韻). 숨 호흡.
주036)
갈마:감추어. 저장하여. 갊-[屛, 藏]+아. ‘갈무리’는 ‘갊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주037)
수믈:숨을. 호흡을.
주038)
아니:아니. ‘아니 쉬ᄃᆞ시’는 현대 국어 ‘쉬지 않듯이’에 해당한다. 현대 국어의 부정 형식 ‘동사 어간+지 않다’와는 구조가 다른 ‘아니+동사’ 구성의 부정 형식이 중세 국어에서 널리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중세 국어에서도 ‘-디 아니ᄒᆞ-’ 구문이 상당히 많이 쓰였다.
주039)
쉬시:쉬듯이. 쉬-[息]+ᄃᆞ시(연결 어미). ‘ᄃᆞ시’가 관형사형 어미 뒤에 나타나는 예도 있다. ¶①제 모맷 고기 바혀 내논 시 너겨 며〈석보상절 9:12ㄱ〉 ②새려 시름호매 누니 들올 시 라노라〈두시언해 20:18ㄴ〉. 한편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과 ‘(-)ᄃᆞ시’가 다 나타나는데, 어느 것이 먼저 발생하였는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중세 국어 문헌에서 ‘(-)ᄃᆞᆺ, (-)ᄃᆞ시’는 많이 보이지만 ‘(-)듯, (-)드시’의 예는 아주 드물다. ¶①金剛杵ㅅ 머리마다 브리 술위 두르듯 야〈월인석보 7:35ㄴ〉 ②새집과 살기 門이 별 흗드시 사니(草閣柴扉星散居)〈두시언해 초간본 25:23ㄱ〉.
주040)
ㅣ러시다:원문 구결의 ‘ㅣ러시다’는 한 문장 끝에 서술격 조사 어간을 붙인 것이다. ㅣ-(서술격 조사 어간)+더+시+다. 서술격 조사 어간 ‘이/ㅣ-’ 뒤에서는 ‘-더-’가 ‘-러-’로 교체된다.
주041)
나:나와. 나-[出]+아(연결 어미).
주042)
:한. 여기서는 ‘첫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043)
계졀:층계. 한자어 ‘階節’이 한자 없이 훈민정음으로만 적혔다.
주044)
리샤:내려서시고는. ᄂᆞ리-[降]+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현대 국어에서는 ‘먹어는 보았다’에서와 같이 ‘본용언+보조용언’ 구성에서 ‘-어는/아는’이 쓰이지만, 절(節)이 연결되는 위치에서는 ‘-어는/아는’이 거의 쓰이지 않는 듯하다. 이를테면 “나와서 한 층계를 내려는 곧장 달려갔다.”와 같은 문장이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어는/아는’의 공백을 ‘-고는’이나 ‘-고서는’ 및 ‘-고 나서는’이 메우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서, 나서’의 구성 요소인 ‘서’가 기원적으로는 [在]를 뜻하는 동사 ‘시-’에 연결 어미 ‘-어’가 결합한 것이니, ‘-어는/아는’이 재구조화된 연결 형식 속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주045)
비:낯빛을. ᄂᆞᆾ+빛+ᄋᆞᆯ. ‘ᄂᆞᆾ’이 ‘ᄂᆞᆺ’으로 표기된 것은 8종성 표기 규칙에 따른 것이다.
주046)
펴:펴. 펴-[逞, 舒]+어.
주047)
화열히:화열(和悅)히. 기쁘게.
주048)
계졀에:계절(階節)에서. 층계에서. 문맥으로 보아 여기의 ‘에’는 ‘동작의 출발점’을 뜻하는 부사격 조사로 보인다.
주049)
다:다. 모두. 부사 ‘다’는 동사 ‘다ᄋᆞ다’에서 파생된 것이다. 즉 ‘다ᄋᆞ-[盡](동사 어간)+아(연결 어미)’로 이루어진 활용형 ‘다아’가 부사로 파생된 뒤에 ‘다’로 축약된 것이다. 동사 ‘다ᄋᆞ다’는 후대에 ‘다다’를 거쳐 오늘날의 ‘다하다’로 발달하였다. ¶①죽을 힘을 다여〈서궁일기 38ㄴ〉 ②지아비 죽거 셜워호믈 다고 복을 고 오히려 졔복 벗디 아니더니〈동국신속삼강행실도 열녀 1:35ㄴ〉.
주050)
리:빨리. ‘/르’ 불규칙 용언인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ㄹㄹ’형의 모습을 보인다. -[速]+이(부사형 어미). ‘/르’ 불규칙 활용 중 ‘ㄹㄹ’형에는 ‘-[速], 모-’ 등이 있고, ‘ㄹㅇ’형에는 ‘다-[異], 그르-[解], 게으르-[怠], 므르-[退]’ 등이 있다.
주051)
가샤매:가심에. 가시는데. 가-[行]+시/으시(주체존대 선어말 어미)+옴(명사형 어미)+애(조사). 통시적인 측면에서 보면 ‘-시-’의 고형(古形) ‘-샤-’와 ‘-옴’이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ㅏ’ 뒤에서는 ‘-옴’의 ‘ㅗ’가 탈락한다.
주052)
새:새가. 새[鳥]+Ø(주격 조사). 이중 모음의 음절 부음 [j] 뒤에서 주격 조사가 외현되지 않은 것이다.
주053)
ᄂᆞᆯ개:날개. ᄂᆞᆯ애〉ᄂᆞᆯ개. ᄂᆞᆯ-[飛]+개(명사 파생 접미사). 중세 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ㄹ’ 뒤의 ‘ㄱ’이 약화하여 유성 성문 마찰음 [ɦ]으로 실현되고, 그것이 ‘ㅇ’으로 표기되었다. ¶ᄂᆞᆯ애〈월인석보 10:78ㄱ〉〈법화경언해 2:104ㄱ〉. 근대 국어 후기 문헌에도 ‘ᄂᆞᆯ애’가 나타난다. ¶ᄂᆞᆯ애〈무예도보통지 19ㄴ, 20ㄴ〉. 그러나 15세기 문헌에서도 ‘ㄹ’ 뒤의 ‘ㄱ’이 약화하지 않은 ‘ᄂᆞᆯ개’가 많이 나타난다. ¶개〈월인석보 25:30ㄱ〉〈능엄경언해 9:30ㄴ〉〈법화경언해 1:51ㄴ〉〈구급방언해 하23ㄴ〉〈두시언해 3:21ㄱ〉.
주054)
편:편. 펼친. 펴-[舒]+ㄴ(관형사형 어미).
주055)
위예:위(位)에. 자리에. 위+예(부사격 조사). ‘위(位)’는 여기서는 본래 거처하는 자리를 뜻한다.
주056)
도라가샤:돌아가셔서는. 돌-[廻]+아(연결 어미)+가-[去]+시+아(연결 어미)+ᄂᆞᆫ(보조사).
주057)
:마음. 중세 국어의 ‘ᄆᆞᅀᆞᆷ’에는 ‘마음’이라는 뜻과 ‘심장(心臟)’이라는 뜻이 있었는데, 다의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겨래 므레 디여 간 긔운 잇 사 큰 그르세  봇가 을 울야〈구급간이방 1:77ㄱ〉.
주058)
몯:못한. ‘몯’은 근대 국어 시기에 7종성 표기 관행에 따라 ‘못’으로 적혔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