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번역소학

  • 역주 번역소학 권4
  • 번역소학 제4권
  • 내편(內篇)○제3편 경신(敬身)○명위의지칙(明威儀之則)
  • 명위의지칙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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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위의지칙 001


冠관義의예 曰왈 凡범人之지所소以이爲위人者쟈 禮례義의也야ㅣ니 禮례義의之지始

번역소학 권4:9ㄴ

시 在於어正容體톄며 齊졔顔안色며 順슌辭令이니 容體톄正며 顔안色齊졔며 辭令順슌而後후에 禮례義의備비니 以이正君군臣신며 親친父부子며 和화長幼유ㅣ니 君군臣신正며 父부子親친며 長幼유和화而後후에 禮례義의立립리라
Ⓒ 구결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冠관義의예 로 믈읫 주001)
믈읫:
무릇[凡]. 믈읫〉무릇. ‘믈읫’은 본래 ‘믈[衆]+읫(관형격 조사)’의 구조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믈읫’은 대개 ‘凡’ 또는 ‘諸’의 번역으로 쓰였다. ‘諸’의 번역인 경우에는 ‘여러’(관형사)를 뜻한다. ‘凡’의 번역으로 쓰인 경우에는 두 가지로 나뉜다. 문장 전체를 꾸미는 경우도 있고 명사(명사구)를 꾸미는 경우도 있다. ‘읫’의 ‘ㅅ’은 관형격 조사인데, ‘의’는 관형격 조사인지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인지 분명치 않다. ‘앳/엣’의 존재를 고려하면, ‘읫’의 ‘의’도 부사격 조사일 가능성이 있다.
사미 주002)
사ᄅᆞ미:
사람이. ‘사ᄅᆞ미 사ᄅᆞᆷ ᄃᆞ외옛논 아ᄎᆞᆫ’이 『소학언해』(3:9ㄱ)에서는 ‘믈읫 사ᄅᆞᆷ의 ᄡᅥ 사ᄅᆞᆷ 되연ᄂᆞᆫ 바ᄂᆞᆫ’으로 바뀌었다. 주격 조사가 이른바 주어적 관형격 조사로 바뀌었다. 서술어가 관형사형이거나 명사형일 때에 주격 조사 위치에 관형격 조사가 쓰이기도 하는 규칙을 여기서는 반영하지 않았는데, 『소학언해』에서는 반영하고 있다. 한편 원문의 ‘以’를 이 책에서는 번역하지 않았는데 『소학언해』에서는 번역하였다. 의역과 직역의 차이를 보여 준다.
사 외옛논 주003)
ᄃᆞ외옛논:
되어 있는. ᄃᆞ외-[爲]+어(연결 어미)+잇-[在]+ᄂᆞ(현재 시제 표지)+오(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어(아) 잇-’은 완료 지속상 표지인데,‘-엣/앳-’과 ‘-엇/앗-’을 거쳐 ‘-었/았-’으로 발달하였다. ‘ᄃᆞ외옛논’이 『소학언해』(3:9ㄱ) ‘되연ᄂᆞᆫ’으로 바뀌었다.
아 주004)
아ᄎᆞᆫ:
까닭은. 앛[所以, 因]+ᄋᆞᆫ(보조사). 중세 국어 시기에 ‘까닭’을 뜻하는 말에는 ‘젼ᄎᆞ’도 있었다. ‘앛’은 대개 보조사 ‘ᄋᆞᆫ’이나 서술격 조사가 결합한 ‘아ᄎᆞᆫ, 아치라, 아치니라, 아치니, 아치며 …’로 나타나고, ‘젼ᄎᆞ’는 부사격 조사 ‘로’나 서술격 조사가 결합한 ‘젼ᄎᆞ로, 젼ᄎᆡ라, 젼ᄎᆡ니, 젼ᄎᆡ니라, 젼ᄎᆡ니ᅌᅵ다 …’로 나타난다. 여기의 ‘아ᄎᆞᆫ’이 『소학언해』(3:9ㄱ)에서 ‘바ᄂᆞᆫ’으로 바뀌었다.
禮례와 義의 주005)
의:
의(義)가. 의(義)+Ø(주격 조사). ‘禮와 義 이실ᄉᆡ니’에서는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義왜’가 쓰이지 않고 ‘義’가 쓰인 점이다. 접속 명사구에서 마지막 접속항에도 접속 조사가 쓰이는 것이 중세 국어의 일반적인 질서인데, 여기서는 그것이 쓰이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義’ 뒤에 주격 조사가 쓰이지 않은 사실이다. 이것은 ‘의(義)’가 음절 부음 [j]로 끝난 데에 따른 것이지만, 다음 예문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無量義ㅣ  句에 나디 아니니라〈법화경언해 6:62ㄴ〉. 이 대목과 짝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소학언해』(3:9ㄱ)에도 ‘禮와 義ㅣ ᄀᆞᆫᄂᆞ니(=禮義備ᄒᆞᄂᆞ니)’가 보인다.
이실니 주006)
이실ᄉᆡ니:
있기 때문이니. 이시-[在]+ㄹᄉᆡ(연결 어미)+Ø(서술격 조사 어간)+니(연결 어미). 연결형인 ‘이실ᄉᆡ’에 서술격 조사가 결합하였다. 이것은 연결형이 명사적 자격으로 쓰인 예이다. 연결형뿐 아니라 종결 형식 뒤에도 조사가 쓰일 수 있었다. ¶觀音ㅅ 號 觀世音이시다도 며 觀自在시다도 며 뎌글 普門이시다도 며 圓通이시다도 니〈석보상절 21:19ㄱ〉. 특히 종결 어미 ‘-다’ 뒤에 관형격 조사 ‘ㅅ’이 붙기도 하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닷’은 비음동화 환경에서 ‘-단’으로 바뀌어, 현대 국어의 ‘-다는’으로 발달하기도 한다. ¶둘짯 句 本來善 업스며 惡 업닷 마리니〈남명집언해 상 9ㄱ〉. 이 예문의 ‘업닷’은 현대 국어 ‘없다는’에 해당한다. ‘업닷’이 비음동화 환경에서 ‘업단(없단)’으로 변한 뒤에, 이 ‘없단’을 ‘없다고 하는’의 축약형으로 오해한 언중들이 ‘없다는’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조사 ‘ㅅ’이 어미 ‘-ㄴ’으로 바뀐 셈이다.
禮례義의 주007)
례의:
예의(禮義)가. 예(禮)와 의리(義理)가. 례의+Ø(주격 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이른바 주어적 관형격 조사를 쓴 ‘禮義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조사가 외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의’가 아니라 ‘이’의 이형태인 ‘Ø’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비로

번역소학 권4:10ㄱ

소
주008)
비로소ᄆᆞᆫ:
비롯함은. 비롯-[始]+옴(명사형 어미)+ᄋᆞᆫ(보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비르솜은’으로 바뀌었다. ‘비릇다’가 ‘비롯다’보다 더 고형(古形)인데, 여기서는 거꾸로 되어 있다. ‘비르서’는 먼저 ‘비르소, 비르수, 비로소, 비루소, 비루수’ 등으로 발달하였다. ‘비르서’는 동사 어간 ‘비릇-’에 연결 어미 ‘-어’가 결합한 ‘비르서’가 부사로 굳어진 것이고, ‘비르소, 비르수, 비로소’는 동사 어간 ‘비릇-, 비롯-’에 부사 파생 접미사 ‘-오, -우’가 결합한 것이며, ‘비루소, 비루수’의 ‘루’는 모음 ‘ㅗ’가 ‘ㅜ’로 변화한 것이다. 오늘날 ‘비로소’의 오용 사례인 ‘비로서’는 ‘비르서’와 ‘비로소’의 혼태(混態, blending)일 가능성이 있다.
모 히 주009)
져ᇰ히:
정(正)히. 바르게.
며 비 주010)
ᄂᆞᆺ비ᄎᆞᆯ:
낯빛을. 얼굴빛을. ᄂᆞᆾ[顔]+빛[色]+ᄋᆞᆯ. ᄂᆞᆾ→ᄂᆞᆺ. 8종성 표기 규칙에 따라 ‘ㅊ’을 ‘ㅅ’으로 표기한 것이다. ‘얼굴’은 [身, 體]를 뜻한다. 그리고 ‘낯’은 [箇]를 뜻한다.
기 주011)
ᄀᆞᄌᆞ기:
가지런히. [齊]+이(부사 파생 접미사). ‘ᄀᆞᄌᆞᆨ’은 대개 ‘-ᄒᆞ-’와 결합하여 쓰인다. ¶①며 싁싁며 므거워 次第로 녀 비로 니니라〈능엄경언해 1:35ㄱ〉 ②이 萬化 보아 그 디 아니호 보고 다 解 내니〈능엄경언해 10:25ㄴ〉. 이 중 ②의 ‘ᄀᆞᄌᆞᆨ디’는 ‘ᄀᆞᄌᆞᆨᄒᆞ디’에서 ‘ᄒᆞ’가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ᄀᆞᄌᆞᆨ’이 대개 ‘-ᄒᆞ-’와 결합하여 쓰이는 것은 불규칙적 어근의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므로, ‘ᄀᆞᄌᆞ기’의 ‘-이’는 어미가 아니라 접미사로 보인다.
며 말 주012)
말ᄉᆞᆷ:
말. 중세 국어와 근대 국어의 ‘말, 말ᄊᆞᆷ(말ᄉᆞᆷ)’은 모두 [+높임]과 [-높임] 및 [+겸양]과 [-겸양]의 상황에 두루 쓰였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각자병서가 쓰인 ‘말’으로 나타난다. ¶①語는 말미라〈훈민정음언해 1ㄱ〉 ②이 말 眞實야 決定히 虛티 아니니라〈월인석보 10:122ㄴ〉 ③다시 말 펴 다시 觀體 標호〈선종영가집언해 하 31ㄱ〉 ④阿難이 비록  이 말 듣와〈능엄경언해 1:102ㄴ〉 ⑤桃源ㅅ 나그내 더브러 말 傳라〈두시언해 초간본 8:61ㄱ〉.
슌히 주013)
슌히:
순(順)하게. 온순하게.
호매 주014)
호매:
함에. ᄒᆞ-[爲]+옴(명사형 어미)+애(부사격 조사). ‘호매’는 ‘ᄒᆞ요매’와 공존하였다. ¶行요매 붓그러우믈 두며〈내훈 1:13ㄱ〉. 두 명사형 ‘홈, ᄒᆞ욤’은 모음 충돌을 막는 방법의 차이를 보여 준다. 전자는 ‘ㆍ’를 탈락시킨 것이고, 후자는 반자음 [j]를 개입시킨 것이다.
잇니 주015)
잇ᄂᆞ니:
있나니. 잇-[在]+ᄂᆞ+니. 『소학언해』(3:9ㄱ)에서는 자음동화가 반영된 ‘인ᄂᆞ니’로 바뀌었다.
모미 며 비치 며 말미 슌 후에 주016)
후에ᅀᅡ:
후에야. 후(後)+에(부사격 조사)+ᅀᅡ(보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후에’로 바뀌었다. ‘ᅀᅡ’는 ‘강조, 의무, 당연’ 등을 뜻하는데, 어미나 체언 및 조사 뒤에 쓰일 때에는 보조사이고, 선어말 어미 ‘-거-’ 뒤에 나타날 때에는 ‘-거-’와 어울려서 어말 어미를 이룬다. 이 책에는 ‘ㅿ’이 쓰인 예도 있고 ‘ㅇ’으로 변화한 예도 있다. ¶①할아며 기리논 예〈번역소학 6:24ㄴ〉, 어버ᅀᅵ〈번역소학 9:8ㄱ〉 ②ᄉᆞ이〈번역소학 8:11ㄴ, 10:9ㄴ〉, 어버이〈번역소학 9:8ㄴ〉.
禮례와 義의왜 주017)
의왜:
의(義)가. 의(義)+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마지막 접속항에도 접속 조사 ‘와/과’가 쓰이는 중세 국어의 특징을 보여 준다. 이를 집단 곡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禮와 義왜’가 『소학언해』(3:9ㄱ)에서는 ‘禮와 義ㅣ’로 바뀌었다. 이 대목의 바로 앞 ‘禮와 義 이실ᄉᆡ니’에서는 마지막 접속항 뒤에서 접속 조사가 쓰이지 않았다.
리라 주018)
ᄀᆞᄌᆞ리라:
갖추어지리라. ᄀᆞᆽ-[具]+ᄋᆞ리(선어말 어미)+라(평서문 종결 어미).
일로 주019)
일로:
이로. 이(지시 대명사)+ㄹ+로(부사격 조사). ‘ㄹ’은 문법적 기능은 없는 첨가음으로 보인다.
주020)
ᄡᅥ:
써. ‘’는 [用]을 뜻하는 ‘ᄡᅳ-’의 활용형인 ‘ᄡᅥ’가 부사로 굳어진 것이다. [수단]이나 [도구]를 뜻하는 부사격 조사 ‘로’ 뒤에 쓰여서 복합 조사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연결 어미 뒤에 쓰이기도 하고 부사 뒤에 쓰이기도 하므로 중세 국어에서는 완전한 조사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①이 眞實ㅅ 信 내요미니  法相 업슨 젼라〈금강경삼가해 4:39ㄴ〉 ②우리도 받  敎化 여루리라〈월인석보 25:3ㄱ〉 ③마 體 업수 알면 엇뎨  매 너기료〈능엄경언해 2:84ㄱ〉. ‘ᄡᅥ’는 다음과 같이 동사적 성격과 명사적 성격을 다 지닌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혹 일후믈 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 며 시혹 일후믈 摩訶般若波羅蜜經이라 논 그 디 이 시니라〈금강경삼가해〉. ‘禮와 義왜 ᄀᆞᄌᆞ리라 일로 ᄡᅥ’가 『소학언해』(3:7ㄱ)에서는 ‘禮와 義ㅣ ᄀᆞᆫᄂᆞ니 ᄡᅥ’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ᄡᅥ’가 부사격 조사 ‘로’ 뒤에 쓰였지만, 『소학언해』에서는 연결 어미 ‘-니’ 뒤에 쓰였다.
님금과 臣신下하 케 주021)
져ᇰ케:
정(正)하게. 바르게. ‘님금과 臣下ᄅᆞᆯ’은 ‘임금과 신하를’이 아니라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을 뜻한다. 이어지는 ‘아비와 아ᄃᆞᄅᆞᆯ 친케 ᄒᆞ며 얼운과 아ᄒᆡᄅᆞᆯ 화케 호미니’가 그 근거이다.
며 아비와 아 친케 며 얼운 주022)
얼운:
어른. ‘얼-[婚姻](동사 어간)+우+ㄴ(동명사 어미)’이 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우’의 문법적 자격은 분명치 않다. ‘-운’을 동명사 어미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얼우신’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동명사 어미 ‘-운’ 사이에 ‘-시-’가 개입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 주023)
아ᄒᆡ:
아이. 한자어 ‘兒孩(아해)’에서 온 것으로 보이나, 『국민소학독본』(1895) 이전의 한글 문헌에서는 한자로 표기된 ‘兒孩’가 보이지 않는다. ¶七八歲 된 兒孩가 그릇 물 속에 지거〈국민소학독본 11ㄴ〉. 아주 이른 시기에 한자어라는 인식이 엷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 책에는 ‘아희’도 쓰였다(3:33ㄴ).
화케 주024)
화케:
화(和)하게. 화목하게.
호미니 주025)
호미니:
함이니. ᄒᆞ-[爲]+옴(명사형 어미)+이-(서술격 조사 어간)+니. 중세 국어에서 명사형 ‘홈’과 ‘ᄒᆞ욤’이 공존하였다. ¶能은 내 요미오 所 날 對 境界라〈월인석보 8:16ㄴ〉. ‘홈’에서는 어간의 ‘ㆍ’가 탈락하였고 ‘ᄒᆞ욤’에서는 반자음 [j]가 개입하였는데, 둘 다 모두 모음충돌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님금과 臣신下하왜 주026)
신하왜:
신하가.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신하(臣下)+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신해’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명사구의 접속에서 마지막 접속항에도 접속 조사 ‘와’를 쓴 것이고 『소학언해』에서는 ‘와’가 삭제된 것이다.
며 아비와 아왜 주027)
아ᄃᆞᆯ왜:
아들이. 아ᄃᆞᆯ[子]+과(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ㄹ’ 뒤에서 ‘ㄱ’이 약화하여 유성 성문 마찰음 [ɦ]으로 변한 것을 ‘ㅇ’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때의 ‘ㅇ’은 음운론적으로는 자음이기 때문에 연철되지 않는다.
친며 얼운과 아왜 화 후에 禮례와 義의왜 주028)
의왜:
의(義)왜 : 의(義)가. 의(義)+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義ㅣ’로 바뀌었다. 접속 명사구의 마지막 접속항 뒤에 쓰인 접속 조사를 삭제한 것이다.
셔리라
Ⓒ 언해 | 찬집청 / 1518년(중종 13) 월 일

「관의(冠義)」에서 이르되, 무릇 사람이 사람이 되어 있는 까닭은 예(禮)와 의리(義理)가 있기 때문이니, 예와 의리가 비롯되는 것은 몸가짐을 바르게 가지며 얼굴빛을 가지런히 가지며 말을 순(順)하게 함에 있으니, 몸이 바르며 얼굴빛이 가지런하며 말이 순한 후에야 예(禮)와 의(義)가 갖추어지리라. 이로써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바르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을 서로 친하게 하며, 어른과 아이를 화목하게 하나니,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바르며,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친하며 어른과 아이가 화목한 후에야 예(禮)와 의(義)가 서게 될 것이다.
〈해설〉 출전 : 예기 관의(冠義). 주석(소학집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관의(冠義)」는 『예기(禮記)』의 편명(篇名)이다. 이는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금수(禽獸)와 다른 것은 예(禮)와 의리(義理)가 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예로써 몸가짐을 꾸미고 예로써 일을 다스림은 사람의 도리이다. 그 처음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며 얼굴빛을 가지런히 하며 말을 순(順)하게 하는 데 있을 뿐이니, 몸가짐이 바르게 되어 거칠거나 방만함을 멀리하며 얼굴빛이 가지런해져 믿음직함에 가까워지며 말이 순(順)하여 비루하거나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멀리하게 되면, 사람의 도리가 온전해져서 예와 의리가 갖추어지게 된다. 예와 의리가 갖추어지면 이로 말미암아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친하게 하고 어른과 아이를 화목하게 한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상하의 분수가 정해지고, 아버지와 아들이 친해져서 자애와 효도의 도(道)가 융성해지고, 어른과 아이가 화목하여 겸손하고 순종하여 뜻이 화합하면, 사람의 도리가 바르게 되어 예와 의리가 서게 된다.”(吳氏曰 冠義禮記篇名 此言人之所以爲人 而異於禽獸者 以其有禮義也 禮以飾身 義以制事 人之道也 其始則在乎正容體 齊顔色 順辭令而已 及夫容體正而遠暴慢 顔色齊而近信 辭令順而遠鄙倍 則人道全而禮義備矣 禮義旣備 由是以正君臣 親父子和長幼 及夫君臣正而上下之分定 父子親而慈孝之道隆 長幼和而遜順之意洽 則人道正而禮義立矣). 오씨(吳氏)는 『소학집해』의 찬자(撰者)인 명(明)나라 때의 오눌(吳訥: 1372~1457)이다. 자(字)는 민덕(敏德)이고 호(號)는 사암(思庵)이다.
Ⓒ 역자 | 이유기 / 2020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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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믈읫:무릇[凡]. 믈읫〉무릇. ‘믈읫’은 본래 ‘믈[衆]+읫(관형격 조사)’의 구조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믈읫’은 대개 ‘凡’ 또는 ‘諸’의 번역으로 쓰였다. ‘諸’의 번역인 경우에는 ‘여러’(관형사)를 뜻한다. ‘凡’의 번역으로 쓰인 경우에는 두 가지로 나뉜다. 문장 전체를 꾸미는 경우도 있고 명사(명사구)를 꾸미는 경우도 있다. ‘읫’의 ‘ㅅ’은 관형격 조사인데, ‘의’는 관형격 조사인지 특수 처소 부사격 조사인지 분명치 않다. ‘앳/엣’의 존재를 고려하면, ‘읫’의 ‘의’도 부사격 조사일 가능성이 있다.
주002)
사ᄅᆞ미:사람이. ‘사ᄅᆞ미 사ᄅᆞᆷ ᄃᆞ외옛논 아ᄎᆞᆫ’이 『소학언해』(3:9ㄱ)에서는 ‘믈읫 사ᄅᆞᆷ의 ᄡᅥ 사ᄅᆞᆷ 되연ᄂᆞᆫ 바ᄂᆞᆫ’으로 바뀌었다. 주격 조사가 이른바 주어적 관형격 조사로 바뀌었다. 서술어가 관형사형이거나 명사형일 때에 주격 조사 위치에 관형격 조사가 쓰이기도 하는 규칙을 여기서는 반영하지 않았는데, 『소학언해』에서는 반영하고 있다. 한편 원문의 ‘以’를 이 책에서는 번역하지 않았는데 『소학언해』에서는 번역하였다. 의역과 직역의 차이를 보여 준다.
주003)
ᄃᆞ외옛논:되어 있는. ᄃᆞ외-[爲]+어(연결 어미)+잇-[在]+ᄂᆞ(현재 시제 표지)+오(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어(아) 잇-’은 완료 지속상 표지인데,‘-엣/앳-’과 ‘-엇/앗-’을 거쳐 ‘-었/았-’으로 발달하였다. ‘ᄃᆞ외옛논’이 『소학언해』(3:9ㄱ) ‘되연ᄂᆞᆫ’으로 바뀌었다.
주004)
아ᄎᆞᆫ:까닭은. 앛[所以, 因]+ᄋᆞᆫ(보조사). 중세 국어 시기에 ‘까닭’을 뜻하는 말에는 ‘젼ᄎᆞ’도 있었다. ‘앛’은 대개 보조사 ‘ᄋᆞᆫ’이나 서술격 조사가 결합한 ‘아ᄎᆞᆫ, 아치라, 아치니라, 아치니, 아치며 …’로 나타나고, ‘젼ᄎᆞ’는 부사격 조사 ‘로’나 서술격 조사가 결합한 ‘젼ᄎᆞ로, 젼ᄎᆡ라, 젼ᄎᆡ니, 젼ᄎᆡ니라, 젼ᄎᆡ니ᅌᅵ다 …’로 나타난다. 여기의 ‘아ᄎᆞᆫ’이 『소학언해』(3:9ㄱ)에서 ‘바ᄂᆞᆫ’으로 바뀌었다.
주005)
의:의(義)가. 의(義)+Ø(주격 조사). ‘禮와 義 이실ᄉᆡ니’에서는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義왜’가 쓰이지 않고 ‘義’가 쓰인 점이다. 접속 명사구에서 마지막 접속항에도 접속 조사가 쓰이는 것이 중세 국어의 일반적인 질서인데, 여기서는 그것이 쓰이지 않은 것이다. 둘째는 ‘義’ 뒤에 주격 조사가 쓰이지 않은 사실이다. 이것은 ‘의(義)’가 음절 부음 [j]로 끝난 데에 따른 것이지만, 다음 예문의 경우와 대조적이다. ¶無量義ㅣ  句에 나디 아니니라〈법화경언해 6:62ㄴ〉. 이 대목과 짝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소학언해』(3:9ㄱ)에도 ‘禮와 義ㅣ ᄀᆞᆫᄂᆞ니(=禮義備ᄒᆞᄂᆞ니)’가 보인다.
주006)
이실ᄉᆡ니:있기 때문이니. 이시-[在]+ㄹᄉᆡ(연결 어미)+Ø(서술격 조사 어간)+니(연결 어미). 연결형인 ‘이실ᄉᆡ’에 서술격 조사가 결합하였다. 이것은 연결형이 명사적 자격으로 쓰인 예이다. 연결형뿐 아니라 종결 형식 뒤에도 조사가 쓰일 수 있었다. ¶觀音ㅅ 號 觀世音이시다도 며 觀自在시다도 며 뎌글 普門이시다도 며 圓通이시다도 니〈석보상절 21:19ㄱ〉. 특히 종결 어미 ‘-다’ 뒤에 관형격 조사 ‘ㅅ’이 붙기도 하는데, 이렇게 이루어진 ‘-닷’은 비음동화 환경에서 ‘-단’으로 바뀌어, 현대 국어의 ‘-다는’으로 발달하기도 한다. ¶둘짯 句 本來善 업스며 惡 업닷 마리니〈남명집언해 상 9ㄱ〉. 이 예문의 ‘업닷’은 현대 국어 ‘없다는’에 해당한다. ‘업닷’이 비음동화 환경에서 ‘업단(없단)’으로 변한 뒤에, 이 ‘없단’을 ‘없다고 하는’의 축약형으로 오해한 언중들이 ‘없다는’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조사 ‘ㅅ’이 어미 ‘-ㄴ’으로 바뀐 셈이다.
주007)
례의:예의(禮義)가. 예(禮)와 의리(義理)가. 례의+Ø(주격 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이른바 주어적 관형격 조사를 쓴 ‘禮義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조사가 외현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의’가 아니라 ‘이’의 이형태인 ‘Ø’이 쓰인 것으로 보인다.
주008)
비로소ᄆᆞᆫ:비롯함은. 비롯-[始]+옴(명사형 어미)+ᄋᆞᆫ(보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비르솜은’으로 바뀌었다. ‘비릇다’가 ‘비롯다’보다 더 고형(古形)인데, 여기서는 거꾸로 되어 있다. ‘비르서’는 먼저 ‘비르소, 비르수, 비로소, 비루소, 비루수’ 등으로 발달하였다. ‘비르서’는 동사 어간 ‘비릇-’에 연결 어미 ‘-어’가 결합한 ‘비르서’가 부사로 굳어진 것이고, ‘비르소, 비르수, 비로소’는 동사 어간 ‘비릇-, 비롯-’에 부사 파생 접미사 ‘-오, -우’가 결합한 것이며, ‘비루소, 비루수’의 ‘루’는 모음 ‘ㅗ’가 ‘ㅜ’로 변화한 것이다. 오늘날 ‘비로소’의 오용 사례인 ‘비로서’는 ‘비르서’와 ‘비로소’의 혼태(混態, blending)일 가능성이 있다.
주009)
져ᇰ히:정(正)히. 바르게.
주010)
ᄂᆞᆺ비ᄎᆞᆯ:낯빛을. 얼굴빛을. ᄂᆞᆾ[顔]+빛[色]+ᄋᆞᆯ. ᄂᆞᆾ→ᄂᆞᆺ. 8종성 표기 규칙에 따라 ‘ㅊ’을 ‘ㅅ’으로 표기한 것이다. ‘얼굴’은 [身, 體]를 뜻한다. 그리고 ‘낯’은 [箇]를 뜻한다.
주011)
ᄀᆞᄌᆞ기:가지런히. [齊]+이(부사 파생 접미사). ‘ᄀᆞᄌᆞᆨ’은 대개 ‘-ᄒᆞ-’와 결합하여 쓰인다. ¶①며 싁싁며 므거워 次第로 녀 비로 니니라〈능엄경언해 1:35ㄱ〉 ②이 萬化 보아 그 디 아니호 보고 다 解 내니〈능엄경언해 10:25ㄴ〉. 이 중 ②의 ‘ᄀᆞᄌᆞᆨ디’는 ‘ᄀᆞᄌᆞᆨᄒᆞ디’에서 ‘ᄒᆞ’가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ᄀᆞᄌᆞᆨ’이 대개 ‘-ᄒᆞ-’와 결합하여 쓰이는 것은 불규칙적 어근의 성격을 보여 주는 것이므로, ‘ᄀᆞᄌᆞ기’의 ‘-이’는 어미가 아니라 접미사로 보인다.
주012)
말ᄉᆞᆷ:말. 중세 국어와 근대 국어의 ‘말, 말ᄊᆞᆷ(말ᄉᆞᆷ)’은 모두 [+높임]과 [-높임] 및 [+겸양]과 [-겸양]의 상황에 두루 쓰였다. 훈민정음 창제 초기에는 각자병서가 쓰인 ‘말’으로 나타난다. ¶①語는 말미라〈훈민정음언해 1ㄱ〉 ②이 말 眞實야 決定히 虛티 아니니라〈월인석보 10:122ㄴ〉 ③다시 말 펴 다시 觀體 標호〈선종영가집언해 하 31ㄱ〉 ④阿難이 비록  이 말 듣와〈능엄경언해 1:102ㄴ〉 ⑤桃源ㅅ 나그내 더브러 말 傳라〈두시언해 초간본 8:61ㄱ〉.
주013)
슌히:순(順)하게. 온순하게.
주014)
호매:함에. ᄒᆞ-[爲]+옴(명사형 어미)+애(부사격 조사). ‘호매’는 ‘ᄒᆞ요매’와 공존하였다. ¶行요매 붓그러우믈 두며〈내훈 1:13ㄱ〉. 두 명사형 ‘홈, ᄒᆞ욤’은 모음 충돌을 막는 방법의 차이를 보여 준다. 전자는 ‘ㆍ’를 탈락시킨 것이고, 후자는 반자음 [j]를 개입시킨 것이다.
주015)
잇ᄂᆞ니:있나니. 잇-[在]+ᄂᆞ+니. 『소학언해』(3:9ㄱ)에서는 자음동화가 반영된 ‘인ᄂᆞ니’로 바뀌었다.
주016)
후에ᅀᅡ:후에야. 후(後)+에(부사격 조사)+ᅀᅡ(보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후에’로 바뀌었다. ‘ᅀᅡ’는 ‘강조, 의무, 당연’ 등을 뜻하는데, 어미나 체언 및 조사 뒤에 쓰일 때에는 보조사이고, 선어말 어미 ‘-거-’ 뒤에 나타날 때에는 ‘-거-’와 어울려서 어말 어미를 이룬다. 이 책에는 ‘ㅿ’이 쓰인 예도 있고 ‘ㅇ’으로 변화한 예도 있다. ¶①할아며 기리논 예〈번역소학 6:24ㄴ〉, 어버ᅀᅵ〈번역소학 9:8ㄱ〉 ②ᄉᆞ이〈번역소학 8:11ㄴ, 10:9ㄴ〉, 어버이〈번역소학 9:8ㄴ〉.
주017)
의왜:의(義)가. 의(義)+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마지막 접속항에도 접속 조사 ‘와/과’가 쓰이는 중세 국어의 특징을 보여 준다. 이를 집단 곡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禮와 義왜’가 『소학언해』(3:9ㄱ)에서는 ‘禮와 義ㅣ’로 바뀌었다. 이 대목의 바로 앞 ‘禮와 義 이실ᄉᆡ니’에서는 마지막 접속항 뒤에서 접속 조사가 쓰이지 않았다.
주018)
ᄀᆞᄌᆞ리라:갖추어지리라. ᄀᆞᆽ-[具]+ᄋᆞ리(선어말 어미)+라(평서문 종결 어미).
주019)
일로:이로. 이(지시 대명사)+ㄹ+로(부사격 조사). ‘ㄹ’은 문법적 기능은 없는 첨가음으로 보인다.
주020)
ᄡᅥ:써. ‘’는 [用]을 뜻하는 ‘ᄡᅳ-’의 활용형인 ‘ᄡᅥ’가 부사로 굳어진 것이다. [수단]이나 [도구]를 뜻하는 부사격 조사 ‘로’ 뒤에 쓰여서 복합 조사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연결 어미 뒤에 쓰이기도 하고 부사 뒤에 쓰이기도 하므로 중세 국어에서는 완전한 조사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①이 眞實ㅅ 信 내요미니  法相 업슨 젼라〈금강경삼가해 4:39ㄴ〉 ②우리도 받  敎化 여루리라〈월인석보 25:3ㄱ〉 ③마 體 업수 알면 엇뎨  매 너기료〈능엄경언해 2:84ㄱ〉. ‘ᄡᅥ’는 다음과 같이 동사적 성격과 명사적 성격을 다 지닌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시혹 일후믈 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 며 시혹 일후믈 摩訶般若波羅蜜經이라 논 그 디 이 시니라〈금강경삼가해〉. ‘禮와 義왜 ᄀᆞᄌᆞ리라 일로 ᄡᅥ’가 『소학언해』(3:7ㄱ)에서는 ‘禮와 義ㅣ ᄀᆞᆫᄂᆞ니 ᄡᅥ’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ᄡᅥ’가 부사격 조사 ‘로’ 뒤에 쓰였지만, 『소학언해』에서는 연결 어미 ‘-니’ 뒤에 쓰였다.
주021)
져ᇰ케:정(正)하게. 바르게. ‘님금과 臣下ᄅᆞᆯ’은 ‘임금과 신하를’이 아니라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을 뜻한다. 이어지는 ‘아비와 아ᄃᆞᄅᆞᆯ 친케 ᄒᆞ며 얼운과 아ᄒᆡᄅᆞᆯ 화케 호미니’가 그 근거이다.
주022)
얼운:어른. ‘얼-[婚姻](동사 어간)+우+ㄴ(동명사 어미)’이 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우’의 문법적 자격은 분명치 않다. ‘-운’을 동명사 어미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에는 ‘얼우신’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동명사 어미 ‘-운’ 사이에 ‘-시-’가 개입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주023)
아ᄒᆡ:아이. 한자어 ‘兒孩(아해)’에서 온 것으로 보이나, 『국민소학독본』(1895) 이전의 한글 문헌에서는 한자로 표기된 ‘兒孩’가 보이지 않는다. ¶七八歲 된 兒孩가 그릇 물 속에 지거〈국민소학독본 11ㄴ〉. 아주 이른 시기에 한자어라는 인식이 엷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 책에는 ‘아희’도 쓰였다(3:33ㄴ).
주024)
화케:화(和)하게. 화목하게.
주025)
호미니:함이니. ᄒᆞ-[爲]+옴(명사형 어미)+이-(서술격 조사 어간)+니. 중세 국어에서 명사형 ‘홈’과 ‘ᄒᆞ욤’이 공존하였다. ¶能은 내 요미오 所 날 對 境界라〈월인석보 8:16ㄴ〉. ‘홈’에서는 어간의 ‘ㆍ’가 탈락하였고 ‘ᄒᆞ욤’에서는 반자음 [j]가 개입하였는데, 둘 다 모두 모음충돌을 회피하는 방식이다.
주026)
신하왜:신하가. (임금과) 신하의 관계가. 신하(臣下)+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신해’로 바뀌었다. 이 책에서는 명사구의 접속에서 마지막 접속항에도 접속 조사 ‘와’를 쓴 것이고 『소학언해』에서는 ‘와’가 삭제된 것이다.
주027)
아ᄃᆞᆯ왜:아들이. 아ᄃᆞᆯ[子]+과(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ㄹ’ 뒤에서 ‘ㄱ’이 약화하여 유성 성문 마찰음 [ɦ]으로 변한 것을 ‘ㅇ’으로 표기한 것이다. 이때의 ‘ㅇ’은 음운론적으로는 자음이기 때문에 연철되지 않는다.
주028)
의왜:의(義)왜 : 의(義)가. 의(義)+와(접속 조사)+ㅣ(주격 조사). 『소학언해』(3:9ㄱ)에서는 ‘義ㅣ’로 바뀌었다. 접속 명사구의 마지막 접속항 뒤에 쓰인 접속 조사를 삭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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