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물부수 - 김여물이 물에 뛰어들다
목사(牧使)인 김여물(金汝岉)은 서울 사람인데, 인물이 뛰어나고 재주와 용기가 있었다.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을 따라 달천(㺚川)을 등지고 배수진을 쳤지만, 김여물은 틀림없이 패할 것을 알고 편지를 써서 그의 아들
김유(金瑬) 주021) 김류(金瑬): (1571~1648) 조선 중기의 문신. 김여물(金汝岉)의 아들이다. 인조 반정 때 정사 1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이조판서ㆍ좌의정ㆍ도체찰사ㆍ영의정 등을 역임하면서 인조 초ㆍ중반의 정국을 주도하였다.
에게 부쳤는데, 거기에 이르기를, “나는 이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하였으니, 가족은 〈난리에 도망 가지 말고〉 임금께서 가시는 곳[行在所]으로 가거라”고 하였다. 뒤미쳐 왜적이 달천(㺚川)에 다다르니, 우리 나라 군대는 흩어져 도망하므로 신립 장군은 말을 돌이켜 김여물을 불러 이르기를, “그대는 이곳을 벗어나려 하는가?”라고 하자, 김여물이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어찌 목숨을 아낄 사람이겠습니까?” 하고, 탄금대로 달려가 신립과 더불어 왜적 20여 명을 죽인 다음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 지금의 임금께서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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