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3~1592)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자는 창진(昌辰)이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영암(靈巖) 출신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거산도찰방(居山道察訪)ㆍ웅천현감(熊川縣監)을 지냈다. 제주 판관(濟州判官) 때 목사(牧使)와의 불화로 파직되었다가 1591년(선조 24) 녹도(鹿島) 만호(萬戶)가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 해전ㆍ당포 해전ㆍ한산도 대첩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부산포 해전에서 추격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정운(鄭運):(1543~1592)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자는 창진(昌辰)이며,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영암(靈巖) 출신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거산도찰방(居山道察訪)ㆍ웅천현감(熊川縣監)을 지냈다. 제주 판관(濟州判官) 때 목사(牧使)와의 불화로 파직되었다가 1591년(선조 24) 녹도(鹿島) 만호(萬戶)가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선봉장이 되어 옥포 해전ㆍ당포 해전ㆍ한산도 대첩 등의 여러 해전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부산포 해전에서 추격 도중 적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