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오전 - 계백이 온 힘을 다해 싸우다
계백은 부여현(扶餘縣) 사람이다. 백제에서 벼슬하여 달솔(達率)이 되었는데,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신라 군사와 더불어 〈백제를 향해〉 진격해 오므로 계백이 장군이 되어 황산벌에 이르러서 백제 군사를 세 진영으로 나눠 배치하고, 〈나ㆍ당 연합군과〉 장차 싸우려 할 때 모든 병사에게
맹세 주029) 맹세(盟誓):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함. 맹세. 이 문헌에는 ‘셔’와 ‘셰’가 혼용되고 있다. ¶달이 님애 셰야 오(충신도 1 : 13ㄴ).
하여 이르기를, “옛날 월왕(越王)
구천(句踐) 주030) 구천(句踐):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월(越)나라의 임금. 아버지 윤상(允常)이 죽은 뒤 월나라의 왕위를 이어받자 오왕(吳王) 합려(闔閭)와 싸워서 그를 죽였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섶나무 위에서 자며 복수심을 불태웠다고 한다. 2년 후인 B.C 494년에 구천은 부차에게 패배하여 회계산(會稽山)에 숨었다가, 버티지 못하고 용서를 빌어 오왕의 신하(臣下)가 되었다. 그 후로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쓸개를 핥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이것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故事)이다. 그리하여 끝내 부차를 꺾어 자살하게 하고, 서주(徐州)에서 제후(諸侯)와 회맹(會盟)하여 패자(覇者)가 되었다.
은 5천 인으로써 오(吳)나라의 70만 대군을 격파했으니, 오늘 마땅히 각자가 분전(奮戰)하여 승리할 것을 결단함으로써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하고, 마침내 거침없이 싸워 한 사람이 1천 인을 당해 내지 않은 병사가 없으니, 신라 병사들이 물러갔다. 이와 같이 해서 진퇴(進退)를 네 번이나 거듭하며 접전한 끝에 힘이 부쳐서 〈계백은〉 전사하였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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