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계백오전(階伯鏖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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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백오전(階伯鏖戰)


1:12ㄱ

階伯鏖戰

1:12ㄴ

階伯 주001)
계백(階伯):
(?~660) 백제 말기의 장군으로 관등은 달솔(達率)이다.
扶餘縣人仕百濟爲達率唐蘇定方 주002)
소정방(蘇定方):
당나라 장군. 이름은 열(烈). 자(字)는 정방(定方). 하북(河北) 출생. 660년(백제 의자왕 20) 3월 나 ·당(羅唐)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산동 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협공, 사비성(泗沘城)을 함락, 의자왕과 태자 융(隆)을 사로잡아 당나라로 송치하였다. 그 이듬해인 661년(고구려 보장왕 20)에는 나 ·당 연합군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군하였다.
新羅兵 주003)
신라병(新羅兵):
신라의 병사. 이 문헌에는 ‘신라’와 ‘신나’가 혼기(混記)되고 있다. ¶신라 무렬왕이 이찬으로 당의 드러가(충신도 1 : 1ㄴ).
來伐階伯爲將軍至黃山之野設三 주004)
영(營):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 진영(陣營).
將戰誓衆曰昔勾踐以五千人破吳七十萬 주005)
중(衆):
무리. 여기서는 군대(軍隊)를 가리킨다.
今日宜各奮勵 주006)
분려(奮勵):
기운을 내어 힘씀. 여기서는 ‘분전(奮戰)’의 뜻으로 쓰인 말이다.
決勝以報國恩遂鏖戰無不以一當千羅兵乃却如是進退至四合力屈而死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계은 부여현 사이라 졔예 벼슬여 달솔 주007)
달솔(達率):
백제의 16관등(官等) 중 제2위의 품관(品官). 달솔은 백제 16관등의 하나로, 1품관인 좌평(佐平)의 다음가는 2품관이다.
이 되엿더니  소이 신나으로 더브러 와 티거 계이 군이 되여 황산 주008)
황산(黃山):
본래 백제 때의 황등야산현(黃等也山縣)이었는데, 신라의 땅이 된 뒤 757년(경덕왕 16)에 황산군으로 고쳐 진령(鎭嶺)·진주(珍周)의 두 현을 속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에 연산(連山)으로 고쳤으므로 황산의 명칭은 183년간 사용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드르헤 주009)
드르헤:
드르ㅎ[野] + -에(처격 조사). 들에. ‘드르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니르러 세 을 베프고 주010)
베프고:
베프-[設] + -고(대등적 연결 미). 베풀고. 배치하고.
 싸호려  제 모 사의게 셔여 오 주011)
녜:
옛날.
구쳔이 오쳔인으로 옫나라 주012)
옫나라:
중국 오(吳)나라. ‘옫’의 ㄷ말음은 사이ㅅ을 혼기(混記)한 것이다.
칠십만 을 헷티니 주013)
헷티니:
헷티-[破] + -니(종속적 연결 어미). 헤치니. 무너뜨리니. 이 문헌에는 ‘헤티-’로도 사용되었다. ¶도적이  뇌  거 헤티고 내라(충신도 1 : 44ㄴ).
오날 맏이 주014)
맏이:
마땅히. 말음에 쓰인 ㅅ과 ㄷ의 혼용으로 ‘맛당이’로도 나타난다.
각각 분녀여 이긔믈 주015)
이긔믈:
이긔-[勝] + -ㅁ(명사형 어미) + -을(목적격 조사). 이기기를.
결단 주016)
결단(決斷):
단호하게 결심함.
여  나라 은혜 주017)
은혜:
은혜(恩惠)를.
갑 주018)
갑:
갚-[報] + -(관형사형 어미). 갚을. 여기서는 어간 ‘갚-’의 말음 ㅍ을 ㅂ과 ㅎ으로 재음소화해서 표기하고 있지만 이 문헌에는 ‘갚-’을 그대로 연철 표기한 예도 있고, 또한 어간 말음을 이중으로 표기한 ‘갑ㅍ-’과 같은 중철의 예도 등장한다. ¶다  번 주거 나라 가 이라(충신도 1 : 43ㄴ). 댱 죵휘 원슈 갑려 군을 닐와다(충신도 1 : 37ㄴ).
거시라 고 드듸여 즏텨 주019)
즏텨:
즛티-[拍] + -어(연결 어미). 마구 쳐서. 짓쳐서. 말음 ㅅ, ㄷ의 혼용으로 ‘즛티다’와 ‘즏티다’가 함께 쓰였다.
싸화 나흐로 주020)
나흐로:
나ㅎ[一] + -으로(조격 조사). 하나로써. 이 문헌에는 ‘나ㅎ’ 형과 ‘나ㅎ’ 형이 공존한다. ¶나 유 최뉼 안해라(열녀도 5 : 49ㄴ).
일쳔을 티 주021)
티:
-[當] + -디(보조적 연결 어미). 당하지.
아니리 주022)
아니리:
아니-[不] + -ㄹ(관형사형 어미) + 이(人. 의존 명사) + Ø(zero 주격 조사). 아니할 사람이.
업스니 신나이 믈러가다 주023)
믈러가다:
물러가다.
톄로 주024)
톄로:
~처럼.
므르 주025)
므르:
므르-[退] + -(반복을 나타내는 어미). 물러났다가.
나 주026)
나:
낫-[進] + -(반복을 나타내는 어미). 나아갔다가. 활용할 때 ㅅ이 모음 사이에서 ㅿ으로 교체되는 15세기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는 ㅿ이 완전히 소멸한 시기여서 ‘나’의 등장은 돌출적이라 할 수 있다.
네 번 합젼 주027)
합전(合戰):
접전(接戰).
매 니르러 힘이 굴여 주028)
굴(屈)여:
〈힘이〉 부쳐서.
주그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계백오전 - 계백이 온 힘을 다해 싸우다
계백은 부여현(扶餘縣) 사람이다. 백제에서 벼슬하여 달솔(達率)이 되었는데, 당나라 소정방(蘇定方)이 신라 군사와 더불어 〈백제를 향해〉 진격해 오므로 계백이 장군이 되어 황산벌에 이르러서 백제 군사를 세 진영으로 나눠 배치하고, 〈나ㆍ당 연합군과〉 장차 싸우려 할 때 모든 병사에게 맹세 주029)
맹세(盟誓):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함. 맹세. 이 문헌에는 ‘셔’와 ‘셰’가 혼용되고 있다. ¶달이 님애 셰야 오(충신도 1 : 13ㄴ).
하여 이르기를, “옛날 월왕(越王) 구천(句踐) 주030)
구천(句踐):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월(越)나라의 임금. 아버지 윤상(允常)이 죽은 뒤 월나라의 왕위를 이어받자 오왕(吳王) 합려(闔閭)와 싸워서 그를 죽였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섶나무 위에서 자며 복수심을 불태웠다고 한다. 2년 후인 B.C 494년에 구천은 부차에게 패배하여 회계산(會稽山)에 숨었다가, 버티지 못하고 용서를 빌어 오왕의 신하(臣下)가 되었다. 그 후로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쓸개를 핥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이것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故事)이다. 그리하여 끝내 부차를 꺾어 자살하게 하고, 서주(徐州)에서 제후(諸侯)와 회맹(會盟)하여 패자(覇者)가 되었다.
은 5천 인으로써 오(吳)나라의 70만 대군을 격파했으니, 오늘 마땅히 각자가 분전(奮戰)하여 승리할 것을 결단함으로써 나라의 은혜를 갚아야 할 것이다.” 하고, 마침내 거침없이 싸워 한 사람이 1천 인을 당해 내지 않은 병사가 없으니, 신라 병사들이 물러갔다. 이와 같이 해서 진퇴(進退)를 네 번이나 거듭하며 접전한 끝에 힘이 부쳐서 〈계백은〉 전사하였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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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계백(階伯):(?~660) 백제 말기의 장군으로 관등은 달솔(達率)이다.
주002)
소정방(蘇定方):당나라 장군. 이름은 열(烈). 자(字)는 정방(定方). 하북(河北) 출생. 660년(백제 의자왕 20) 3월 나 ·당(羅唐) 연합군의 대총관으로서 13만의 당군을 거느리고 산동 반도에서 황해를 건너 신라군과 함께 백제를 협공, 사비성(泗沘城)을 함락, 의자왕과 태자 융(隆)을 사로잡아 당나라로 송치하였다. 그 이듬해인 661년(고구려 보장왕 20)에는 나 ·당 연합군을 거느리고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철군하였다.
주003)
신라병(新羅兵):신라의 병사. 이 문헌에는 ‘신라’와 ‘신나’가 혼기(混記)되고 있다. ¶신라 무렬왕이 이찬으로 당의 드러가(충신도 1 : 1ㄴ).
주004)
영(營):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 진영(陣營).
주005)
중(衆):무리. 여기서는 군대(軍隊)를 가리킨다.
주006)
분려(奮勵):기운을 내어 힘씀. 여기서는 ‘분전(奮戰)’의 뜻으로 쓰인 말이다.
주007)
달솔(達率):백제의 16관등(官等) 중 제2위의 품관(品官). 달솔은 백제 16관등의 하나로, 1품관인 좌평(佐平)의 다음가는 2품관이다.
주008)
황산(黃山):본래 백제 때의 황등야산현(黃等也山縣)이었는데, 신라의 땅이 된 뒤 757년(경덕왕 16)에 황산군으로 고쳐 진령(鎭嶺)·진주(珍周)의 두 현을 속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에 연산(連山)으로 고쳤으므로 황산의 명칭은 183년간 사용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주009)
드르헤:드르ㅎ[野] + -에(처격 조사). 들에. ‘드르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주010)
베프고:베프-[設] + -고(대등적 연결 미). 베풀고. 배치하고.
주011)
녜:옛날.
주012)
옫나라:중국 오(吳)나라. ‘옫’의 ㄷ말음은 사이ㅅ을 혼기(混記)한 것이다.
주013)
헷티니:헷티-[破] + -니(종속적 연결 어미). 헤치니. 무너뜨리니. 이 문헌에는 ‘헤티-’로도 사용되었다. ¶도적이  뇌  거 헤티고 내라(충신도 1 : 44ㄴ).
주014)
맏이:마땅히. 말음에 쓰인 ㅅ과 ㄷ의 혼용으로 ‘맛당이’로도 나타난다.
주015)
이긔믈:이긔-[勝] + -ㅁ(명사형 어미) + -을(목적격 조사). 이기기를.
주016)
결단(決斷):단호하게 결심함.
주017)
은혜:은혜(恩惠)를.
주018)
갑:갚-[報] + -(관형사형 어미). 갚을. 여기서는 어간 ‘갚-’의 말음 ㅍ을 ㅂ과 ㅎ으로 재음소화해서 표기하고 있지만 이 문헌에는 ‘갚-’을 그대로 연철 표기한 예도 있고, 또한 어간 말음을 이중으로 표기한 ‘갑ㅍ-’과 같은 중철의 예도 등장한다. ¶다  번 주거 나라 가 이라(충신도 1 : 43ㄴ). 댱 죵휘 원슈 갑려 군을 닐와다(충신도 1 : 37ㄴ).
주019)
즏텨:즛티-[拍] + -어(연결 어미). 마구 쳐서. 짓쳐서. 말음 ㅅ, ㄷ의 혼용으로 ‘즛티다’와 ‘즏티다’가 함께 쓰였다.
주020)
나흐로:나ㅎ[一] + -으로(조격 조사). 하나로써. 이 문헌에는 ‘나ㅎ’ 형과 ‘나ㅎ’ 형이 공존한다. ¶나 유 최뉼 안해라(열녀도 5 : 49ㄴ).
주021)
티:-[當] + -디(보조적 연결 어미). 당하지.
주022)
아니리:아니-[不] + -ㄹ(관형사형 어미) + 이(人. 의존 명사) + Ø(zero 주격 조사). 아니할 사람이.
주023)
믈러가다:물러가다.
주024)
톄로:~처럼.
주025)
므르:므르-[退] + -(반복을 나타내는 어미). 물러났다가.
주026)
나:낫-[進] + -(반복을 나타내는 어미). 나아갔다가. 활용할 때 ㅅ이 모음 사이에서 ㅿ으로 교체되는 15세기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때는 ㅿ이 완전히 소멸한 시기여서 ‘나’의 등장은 돌출적이라 할 수 있다.
주027)
합전(合戰):접전(接戰).
주028)
굴(屈)여:〈힘이〉 부쳐서.
주029)
맹세(盟誓):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함. 맹세. 이 문헌에는 ‘셔’와 ‘셰’가 혼용되고 있다. ¶달이 님애 셰야 오(충신도 1 : 13ㄴ).
주030)
구천(句踐):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월(越)나라의 임금. 아버지 윤상(允常)이 죽은 뒤 월나라의 왕위를 이어받자 오왕(吳王) 합려(闔閭)와 싸워서 그를 죽였다.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섶나무 위에서 자며 복수심을 불태웠다고 한다. 2년 후인 B.C 494년에 구천은 부차에게 패배하여 회계산(會稽山)에 숨었다가, 버티지 못하고 용서를 빌어 오왕의 신하(臣下)가 되었다. 그 후로 구천은 회계산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쓸개를 핥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에 힘썼다. 이것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故事)이다. 그리하여 끝내 부차를 꺾어 자살하게 하고, 서주(徐州)에서 제후(諸侯)와 회맹(會盟)하여 패자(覇者)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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