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곽문충효(郭門忠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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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문충효(郭門忠孝)


1:85ㄱ

郭門忠孝

1:85ㄴ

縣監郭䞭 주001)
곽준(郭䞭):
1551~1597. 자는 양정(養靜)이고, 호는 존재(存齋)이며, 곽재우(郭再祐)의 종부(從父)이다. 타고난 자질이 밝고 순수하였으며, 효도와 우애도 지극하였다. 중년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성현의 학문에 몰두하여 의리를 연구하였으며, 사람을 만나면 자상하게 가르치고 지도하여 각기 그 업에 따라서 힘쓰게 하니, 어진 사람 어리석은 사람 할 것 없이 그를 사랑하고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천거로 고을 원이 되었는데 백성이 편하고 정사가 거행되어 한 지방이 잘 다스려졌다. 아버지는 충성을 위하여 죽고 아들은 효도를 위하여 죽고 딸은 절개에 죽었으니, 삼강(三綱)이 한 집안에 갖추어진 것이다. 곽준에게 병조 참판을 증직하고, 두 아들에게는 공조 정랑을 증직하였다.
玄風縣人素以孝行 주002)
효행(孝行):
부모를 잘 섬기는 행실.
丁酉倭亂 주003)
정유왜란(丁酉倭亂):
흔히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도 함.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 휴전 교섭이 결렬된 뒤, 선조 30년(1597)에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이 14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와 일으킨 전쟁. 이순신 등의 활약으로 큰 타격을 입은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철수하였다.
安陰縣 주004)
안음현(安陰縣):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이며, 영조 43년(1767)에 안의(安義)로 바뀌고, 1914년 부군현(府郡縣) 통폐합으로 함양군에 통합되었다.
監入守黃石山城 주005)
황석산성(黃石山城):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육십령(六十嶺)으로 통하는 관방(關防)의 요새지에 축조된 삼국 시대부터의 고성이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에 수축한 바 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때에 커다란 싸움이 있었던 유서 깊은 성터이다. 1597년(선조 30)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은, 이 성이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새이므로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여 인근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백사림(白士霖)이 성을 넘어 도망하자 왜군이 난입하여 끝까지 싸우던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안음 현감 곽준(郭䞭)은 전사하였다.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피바위가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아 전략적 가치가 큰 곳임을 알 수 있다.
倭賊迫城別將 주006)
별장(別將):
조선 시대 지방의 산성(山城), 나루[渡津], 포구, 보루(堡壘), 소도(小島) 등의 수비를 맡아보던 종9품의 무관직.
白士霖開門出走䞭終始不離極力捍禦從者奔告曰軍人皆散縣監當出䞭叱之曰有死而已吾將火軍器 주007)
군기(軍器):
전쟁에 쓰는 도구나 기구, 즉 병기(兵器)를 말함.
後當自剄耳城陷其子履祥履厚同死 昭敬大王 주008)
소경대왕(昭敬大王):
조선조 제14대 선조 임금(재위 1567~1608).
贈職今 上朝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현감 곽쥰은 현풍 주009)
현풍(玄風):
오늘날 현 대구 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고려 초에 현풍현(玄風縣/玄豊縣)으로 하여 밀성군(密城郡 : 密陽郡)에 이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달성군에 병합되었다.
현 사이라 본 효으로 일홈 주010)
일홈[名]:
이름.
나더니 유왜난의 안음 현감으로셔 셕 산의 드러셔 딕희더니 주011)
딕희더니:
지키더니. 15세기에는 ‘딕희다’와 ‘디킈다’가 함께 사용되었다.
왜적이 의 다와다 주012)
다와다:
다왇-[迫] + -아(종속적 연결 어미). 닥쳐오니.
별쟝 림이 문을 열고 나 거 주013)
거:
-[走] + -거(종속적 연결 어미). 달리므로.
쥰이 내 나디 아니고 힘지 주014)
힘지:
힘[力] + -지(파생 접미사). 힘껏.
막더니 주015)
막더니[扞禦]:
가로막더니. 방어하더니. 한문 원문에 ‘막다’에 해당하는 표현이 ‘한어(扞禦)’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방어(防禦)’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조 사 주016)
조 사[從者]:
따르는 사람. 따라 다니는 사람.
라와 주017)
라와:
-[走] + -아(연결 어미) + 오-[來] + -아(연결 어미). 달려와. 동사 어간 ‘-’이 모음의 어미를 만나면 ‘-’로 교체된다.
닐오 군이 다 헤여디니 주018)
헤여디니[散]:
흩어지니.
현감이 맏당이 나가라 쥰이  주019)
[叱]:
꾸중.
야 닐오 주글 이라 내 군긔 블 디 주020)
블디:
불지른. 불을 붙인.
후의 스로 멱 디련노라 주021)
디련노라:
찌르려 한다. ‘디련노라’는 ‘디렷노라’의 ㅅ이 비음 앞에서 비음화한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디렷노라’는 ‘디려 노라’를 줄인 표현이다. 이는 ¶廣熾 너비 光明이 비취닷 디오(월인석보 2 : 9ㄴ) 에서 ‘비취닷 디오’가 ‘비취다 논 디오’를 줄인 표현임과 같은 것이다.
더라 함 주022)
함성(陷城):
성이 함락됨.
호매 그 아 니과 니후로 더브러  주023)
:
함께. ‘’는 15세기의 ‘[一時]’가 변한 형태이다.
죽다 쇼경대왕이 증직 주024)
증직(贈職):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는 일.
시고 금 샹됴애 졍문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곽문충효 - 곽씨 가문의 충성과 효도
현감인 곽준(郭䞭)은 현풍현 사람이다. 본래부터 효행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곽준은 정유왜란 때 안음 현감으로서 황석산성(黃石山城)에 들어가 지키고 있었는데, 왜적이 산성에 들이닥치니 〈성안에서 함께 지키고 있던〉 별장(別將) 백사림(白士霖)은 성문을 열고 나가 달아났지만, 곽준은 끝내 성을 떠나지 않고 힘껏 방어하였다. 그러자 따르는 사람이 달려와 이르기를, “군사들이 다 흩어졌으니 현감께서 마땅히 〈성 밖으로〉 나가시오.”라고 하니, 곽준이 꾸중하여 이르기를, “다만 죽을 뿐이다. 내가 병기(兵器)를 불태운 후 스스로 목을 찌르려 한다.”라고 하였다. 성이 함락되자 곽준의 아들 곽이상(郭履祥)과 곽이후(郭履厚)와 더불어 함께 죽었다. 선조 임금께서 〈곽준과 두 아들에게〉 증직하시고, 지금의 임금께서는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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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곽준(郭䞭):1551~1597. 자는 양정(養靜)이고, 호는 존재(存齋)이며, 곽재우(郭再祐)의 종부(從父)이다. 타고난 자질이 밝고 순수하였으며, 효도와 우애도 지극하였다. 중년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성현의 학문에 몰두하여 의리를 연구하였으며, 사람을 만나면 자상하게 가르치고 지도하여 각기 그 업에 따라서 힘쓰게 하니, 어진 사람 어리석은 사람 할 것 없이 그를 사랑하고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천거로 고을 원이 되었는데 백성이 편하고 정사가 거행되어 한 지방이 잘 다스려졌다. 아버지는 충성을 위하여 죽고 아들은 효도를 위하여 죽고 딸은 절개에 죽었으니, 삼강(三綱)이 한 집안에 갖추어진 것이다. 곽준에게 병조 참판을 증직하고, 두 아들에게는 공조 정랑을 증직하였다.
주002)
효행(孝行):부모를 잘 섬기는 행실.
주003)
정유왜란(丁酉倭亂):흔히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도 함.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 휴전 교섭이 결렬된 뒤, 선조 30년(1597)에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이 14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와 일으킨 전쟁. 이순신 등의 활약으로 큰 타격을 입은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자 철수하였다.
주004)
안음현(安陰縣):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일대의 옛 행정 구역이며, 영조 43년(1767)에 안의(安義)로 바뀌고, 1914년 부군현(府郡縣) 통폐합으로 함양군에 통합되었다.
주005)
황석산성(黃石山城):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산성. 소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육십령(六十嶺)으로 통하는 관방(關防)의 요새지에 축조된 삼국 시대부터의 고성이다.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초기에 수축한 바 있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선조 때에 커다란 싸움이 있었던 유서 깊은 성터이다. 1597년(선조 30)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은, 이 성이 호남과 영남을 잇는 요새이므로 왜군이 반드시 노릴 것으로 판단하여 인근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백사림(白士霖)이 성을 넘어 도망하자 왜군이 난입하여 끝까지 싸우던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안음 현감 곽준(郭䞭)은 전사하였다. 지금도 당시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피바위가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아 전략적 가치가 큰 곳임을 알 수 있다.
주006)
별장(別將):조선 시대 지방의 산성(山城), 나루[渡津], 포구, 보루(堡壘), 소도(小島) 등의 수비를 맡아보던 종9품의 무관직.
주007)
군기(軍器):전쟁에 쓰는 도구나 기구, 즉 병기(兵器)를 말함.
주008)
소경대왕(昭敬大王):조선조 제14대 선조 임금(재위 1567~1608).
주009)
현풍(玄風):오늘날 현 대구 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고려 초에 현풍현(玄風縣/玄豊縣)으로 하여 밀성군(密城郡 : 密陽郡)에 이속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군(郡)으로 승격하였다가, 1914년 달성군에 병합되었다.
주010)
일홈[名]:이름.
주011)
딕희더니:지키더니. 15세기에는 ‘딕희다’와 ‘디킈다’가 함께 사용되었다.
주012)
다와다:다왇-[迫] + -아(종속적 연결 어미). 닥쳐오니.
주013)
거:-[走] + -거(종속적 연결 어미). 달리므로.
주014)
힘지:힘[力] + -지(파생 접미사). 힘껏.
주015)
막더니[扞禦]:가로막더니. 방어하더니. 한문 원문에 ‘막다’에 해당하는 표현이 ‘한어(扞禦)’로 되어 있는데, 이는 ‘방어(防禦)’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주016)
조 사[從者]:따르는 사람. 따라 다니는 사람.
주017)
라와:-[走] + -아(연결 어미) + 오-[來] + -아(연결 어미). 달려와. 동사 어간 ‘-’이 모음의 어미를 만나면 ‘-’로 교체된다.
주018)
헤여디니[散]:흩어지니.
주019)
[叱]:꾸중.
주020)
블디:불지른. 불을 붙인.
주021)
디련노라:찌르려 한다. ‘디련노라’는 ‘디렷노라’의 ㅅ이 비음 앞에서 비음화한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디렷노라’는 ‘디려 노라’를 줄인 표현이다. 이는 ¶廣熾 너비 光明이 비취닷 디오(월인석보 2 : 9ㄴ) 에서 ‘비취닷 디오’가 ‘비취다 논 디오’를 줄인 표현임과 같은 것이다.
주022)
함성(陷城):성이 함락됨.
주023)
:함께. ‘’는 15세기의 ‘[一時]’가 변한 형태이다.
주024)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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