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군해대사(君解代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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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해대사(君解代死)


1:1ㄱ

君解代死

1:1ㄴ

溫君解 주001)
온군해(溫君解):
신라 때 사람 이름. 648년 진덕여왕의 명을 받고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군사 원조를 청하고 돌아오는 김춘추(金春秋)를 경호하고 귀국하던 중 고구려 군사에 포위되자, 기지로 김춘추를 작은 배에 태워 피신시키고, 그의 의관을 바꿔 입고 사신 김춘추로 위장하여 결국 고구려 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김춘추는 무사히 소임을 다하고 돌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대아찬(大阿飡)을 추증하였다.
慶州府 주002)
경주부(慶州府):
경주 지방. ‘부(府)’는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 목(牧) 아래 군(郡)의 위이다. 여기서 ‘경주(慶州)’의 ‘州’가 ‘’로 표음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16세기의 한자 입문서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州’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석(釋)과 음을 달아 놓고 있다. ¶州 고을쥬(예산본 훈몽자회 중 : 4ㄴ). 州 큰고올쥬(신증 유합 상 : 19ㄱ). 州 고쥬(석봉 천자문 26ㄴ). 州 고을쥬(주해 천자문 26ㄴ). 州 고을(광주 천자문 26ㄴ). 그리고 ‘州’의 한자 표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公州ㅣ 江南 저샤 子孫 치신(용비어천가 15장). 네 荊州ㅣ 오로 브터(초간 두시언해 8 : 43ㄴ). 그듸 오히려 荊州ㅣ 와 나그내 외얏니(중간 두시언해 19 : 30ㄴ).   梓州ㅣ 사로라(중간 두시언해 2 : 1ㄱ) 東동州 밤 계오 새와(송강 관동별곡) 등. 이상의 예에서 볼 때 한자 표기 ‘州’에는 하나같이 ㅣ모음이 붙어 있다. 이로써 ‘州’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州’의 음은 ‘쥬’이고, ‘州’에 붙어 있는 ㅣ모음은 처격 내지 관형격 조사의 표기로 보는 견해이다. 둘째는 『광주 천자문』이나 『송강가사』에서 ‘’로 표음하고 있는 것을 보면 ‘州’의 현실 발음이 ‘’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人 新羅武烈王以伊湌入唐還至海上遇高句麗邏兵溫君解從之高冠大衣坐於船上邏兵以爲武烈殺之武烈乘小船得免王贈君解大阿湌優賞子孫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온군 경부 사 주003)
사:
사람[人]. 이 문헌에 ‘사’을 ‘사롬’으로 표기한 곳도 있다. ¶안시 튱 사롬이니(열녀도 5 : 79ㄴ).
이라 신라 주004)
신라(新羅):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3국 가운데,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지금의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세운 나라. 3국을 통일하였으나,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망하였다.
무렬왕 주005)
무열왕(武烈王):
(604~661, 재위 654~661) 신라 제29대 임금 김춘추(金春秋)는 진지왕(眞智王)의 손자이며, 이찬 용춘(龍春 : 龍樹라고도 함)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고, 부인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 곧 나중의 문명부인(文明夫人)이다. 재위 7년째인 660년,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백제 정벌의 비원을 이룩하였으나, 고구려까지 통합하는 삼국통일의 대업은 기틀을 잡는 선에서 아들인 문무왕에게 물려주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무열왕이라는 시호에 더하여 신라 왕실에서 유일하게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이찬 주006)
이찬(伊湌):
신라의 관직명. 신라의 17등(等) 가운데의 둘째 위계(位階). 진골(眞骨)이 하던 벼슬로 3대 유리왕(儒理王) 9년(32)에 베풀었으며, 공복(公服)은 자색(紫色)이었음.
으로 당의 주007)
당의:
당(唐) + -의(처격 조사). 당나라에. 당나라는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선양(禪讓)을 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며, 안사(安史)의 난 이후 쇠퇴하여 907년에 주전충(朱全忠)에게 망하였다.
드러가 주008)
드러가:
들어가[入].
도라와 샹의 주009)
샹의:
샹(海上) + -의(처격 조사). 바다 위에.
니러 주010)
니러:
니-[至] + -어(연결 어미). 이르러. ‘지(至)’의 뜻으로 쓰이는 동사는 15세기에 ‘니를다’와 ‘니르다’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니를에(월인석보 서 : 19ㄴ), 니를오(석보상절 13 : 13ㄴ), 니르러(두시언해 6 : 5ㄴ), 니르르시고(월인석보 18 : 4ㄴ), 니를며(월인석보 21 : 60ㄱ)’ 등은 어간 ‘니를-’의 활용형들이며, ‘니르게(석보상절 19 : 38ㄴ), 니르며(능엄경언해 2 : 48ㄱ), 니르시니(석보상절 13 : 17ㄱ), 니르거든(능엄경언해 8 : 4ㄴ)’ 등의 형태는 어간 ‘니르-’의 활용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니러’는 동사 어간 ‘니-’의 활용형이다.
고구려 주011)
고구려(高句麗):
우리나라 고대의 3국 가운데 동명왕 주몽(朱蒙)이 기원전 37년에 세운 나라. 광개토 대왕 때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요동 지방까지 영유하였으며, 668년에 신라와 중국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나병 주012)
나병(邏兵):
순찰하는 병사. 순라병(巡邏兵).
을 만나 온군 조차셔 주013)
조차셔:
좇-[從] + -아셔(종속적 연결 어미). 좇아서. 따라서.
노픈 관 주014)
노픈 관:
높-[高] + -은(관형사형 어미) + 관(冠). 높은 갓. 높은 신분의 사람이 쓰는 관.
큰 옷 주015)
큰 옷:
크-[大] + -ㄴ(관형사형 어미) + 옷[衣]. 승려가 입는 세 가지 가사(袈裟) 중 가장 큰 옷을 말함. 세 가지 가사를 삼의(三衣)라고 하는데, 그 세 가지는 대의(大衣), 칠조(七條), 오조(五條) 가사를 이른다.
고 주016)
:
배[船].
우희 주017)
우희:
우ㅎ[上] + -의(처격 조사). 위에. ‘우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ㅎ종성 체언이란 형태가 중세 국어에 존재한다. 이는 체언의 말음(末音) ㅎ이 체언 뒤에 연결된 조사(助詞)에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地]라는 명사에 ‘-이, -, -로, -애, -, -과, -도’ 등의 조사가 연결되면 ‘히, , 로, 해, , 콰, 토’와 같은 형태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하여 ‘ㅎ’와 같은 명사를 ㅎ종성 체언 또는 ㅎ끝소리 명사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ㅎ종성 체언으로 15세기 문헌에서 70여 낱말이 등장한다. 이에는 ‘나, 둘, 세, 네, 열’과 같은 수사도 있고, 복수 접미사 ‘-’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체언 말음 ㅎ은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체언 단독으로 쓰이거나 사이시옷 앞에서는 ㅎ이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 허위며 소리고 라오거늘”(석보상절 6 : 32ㄴ)와 “ 마시 티 오”(월인석보 1 : 42ㄱ)에서와 같다. 그리고 ㅎ종성 체언의 ㅎ 소실은 15세기 국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낱말에 따라 임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하’[天]의 경우는 ‘하리, 하, 하, 하로, 하도’ 등과 같이 ㅎ이 소실된 형태와, ‘하히, 하, 하, 하로, 하토’ 등과 같이 ㅎ을 유지하고 있는 형태가 15세기의 한 문헌 안에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안자시니 주018)
안자시니:
앉-[坐] + -아(연결 어미) + 시-(有. ‘이시-’에서 ‘이’가 탈락한 형태) + -니(종속적 연결어미). 앉아 있으니.
나병이 주019)
:
-으로써[以]. 그것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하여.
무렬이라 야 주겨 주020)
주겨:
죽-[死] + -이-(사동 접미사) + -어(종속적 연결 어미). 죽이므로.
무렬이 져근 주021)
져근:
젹-[小] + -은(관형사형 어미). 작은. 15세기에도 ‘쟉다’와 ‘젹다’가 함께 사용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작다’[小]와 ‘적다’[少]의 의미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小’의 의미로 ‘쟉다’와 ‘젹다’가 구분 없이 사용되었고 여기서도 구분되지 않고 있다. ¶ 킈 쟈(석보상절 24 : 8ㄱ). 져겟다가  큰 모 現며(석보상절 21 : 37ㄱ-ㄴ).
 고 주022)
고:
-[乘] + -고(대등적 연결어미). 타고. 승선(乘船)하고.
면호믈 주023)
면호:
면-[免] + -오-(삽입모음) + -ㅁ(명사형 어미) + -(목적격 조사). 면하기를. 당하지 않음을. 중세 국어에서 명사형 어미 ‘-ㅁ’의 경우에는 그 앞에 삽입모음 ‘-오/우-’의 첨가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선어말 어미로서 퍽 생산적이던 ‘-오/우-’는 화자의 강한 의도를 나타낸다든지, 관형사형 어미와 결합하면 그 뒤의 명사가 관형사형의 목적어가 된다든지, 1인칭 주어와의 호응 관계를 나타낸다든지 하는 문법 기능들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밝혀진 내용들이다. 그리하여 ‘-오/우-’에 대해서 의도법 선어말 어미라는 문법적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기능이 명확하지 않은 ‘-오/우-’의 사용례들이 있어 의도법 선어말 어미라는 명칭으로는 전체를 아우를 수 없는 면이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그냥 삽입모음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이 삽입모음은 아무 곳이나 삽입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어미에 한해서 그 앞에 삽입된다. 필수적으로 ‘-오/우-’가 삽입되는 어미로는 명사형 어미 ‘-ㅁ’이 있고 이 밖에 연결 어미로 ‘-’와 ‘-려’가 있다. 반면에 이러한 삽입모음을 취하기도 하고 취하지 않기도 하는 부류도 있는데, 이에 속하는 어미로는 관형사형 어미 ‘-ㄴ, -ㄹ’이 있고, 연결 어미 ‘-니, -니, -리니’와 종결 어미 ‘-리라’가 있다. ‘-오/우-’는 15세기 후반에 동요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소멸이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표기상으로는 더 후대에까지 존속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이하에서는 ‘이 문헌’으로 표현한다)도 시대적으로는 삽입모음 ‘-오/우-’가 소멸된 시기의 문헌이지만 언해문의 표기에서 여기서처럼 ‘-오/우-’가 첨가된 경우를 일부 발견할 수 있다.
어드니라 주024)
어드니라:
얻-[得]+ -으니(확정법 선어말 어미) + -라(평서법 종결 어미). 얻었다. 선어말 어미 ‘-니-’ 다음에 연결되는 어말 어미로는 평서법의 ‘-라’와 의문법의 ‘-아, -야, -여, -오’ 정도이다.
왕이 군 주025)
군:
군(君解. 사람 이름) + -(여격 조사). 온군해(溫君解)에게. 중세 국어에서는 여기의 경우처럼 여격 조사가 출현해야 할 자리에 목적격 조사가 쓰인 예를 볼 수 있다. 이는 ‘주다’[與] 동사 앞에 이중(二重)으로 목적격 조사가 출현하는 문장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때 유정 명사에 붙은 ‘-//을/를’은 여격 조사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의 ‘-//을/를’에 대해서는 목적격 조사 대신 여격 조사로 명명한다. ¶四海 년글 주리여(용비어천가 20장). 나 죠고맛거슬 주어시든(석보상절 6 : 44ㄴ).
대아찬 주026)
대아찬(大阿湌):
신라 시대의 관등. 17등 관계(官階) 중의 제5등으로서, 일명 ‘대아간(大阿干)’이라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이사금 때 제정되었다고 하였으나, 520년(법흥왕 7)의 율령(律令) 공포 때 제정된 것으로 생각된다. 진골만이 받을 수 있는 관등으로, 공복(公服)의 빛깔은 자색(紫色)이었다. 집사부(執事部)의 장관직인 중시(中侍)나 그 밖에 중앙의 제1급 중앙행정관서의 장관직인 영(令)에 취임하기 위해서는 대아찬 이상의 관등을 가져야 하였으므로, 바로 아래 관등인 아찬(阿飡)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을 주고 손을 주027)
손을:
자손(子孫)에게.
만히 주028)
만히:
만-[多] + -이(부사 접미사). 많이. 16세기 문헌에 드물게나마 ‘마니’로 쓰인 예가 발견된다. ¶내 마니 고져 노라(번역 노걸대 하 : 26ㄱ). 마니 드리면 마니 갑고(번역 박통사 상 : 20ㄱ).
샹시니라 주029)
샹시니라:
샹-[施賞] + -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 + -니-(확정법 선어말 어미) + -라(평서법 어미). 상을 주셨다.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군해대사 - 온군해가 대신해서 죽다
온군해(溫君解)는 경주부(慶州府) 사람이다.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이었던 김춘추가 이찬(伊湌)의 관직에 있으면서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해상(海上)에 이르러 고구려의 순라병(巡邏兵)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김춘추의 시종인 온군해가 좇아서 높은 사람이 쓰는 관과 귀한 사람이 입는 복장을 하고 배 위에 앉아 있으니 순라병이 온군해를 김춘추로 알고 죽이는 바람에 김춘추는 화를 면하여 작은 배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다. 임금이 이 일을 듣고 온군해를 대아찬(大阿湌)으로 추증하고 그 자손들에게 후한 상을 내려주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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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온군해(溫君解):신라 때 사람 이름. 648년 진덕여왕의 명을 받고 당(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군사 원조를 청하고 돌아오는 김춘추(金春秋)를 경호하고 귀국하던 중 고구려 군사에 포위되자, 기지로 김춘추를 작은 배에 태워 피신시키고, 그의 의관을 바꿔 입고 사신 김춘추로 위장하여 결국 고구려 군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김춘추는 무사히 소임을 다하고 돌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대아찬(大阿飡)을 추증하였다.
주002)
경주부(慶州府):경주 지방. ‘부(府)’는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 목(牧) 아래 군(郡)의 위이다. 여기서 ‘경주(慶州)’의 ‘州’가 ‘’로 표음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16세기의 한자 입문서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州’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석(釋)과 음을 달아 놓고 있다. ¶州 고을쥬(예산본 훈몽자회 중 : 4ㄴ). 州 큰고올쥬(신증 유합 상 : 19ㄱ). 州 고쥬(석봉 천자문 26ㄴ). 州 고을쥬(주해 천자문 26ㄴ). 州 고을(광주 천자문 26ㄴ). 그리고 ‘州’의 한자 표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公州ㅣ 江南 저샤 子孫 치신(용비어천가 15장). 네 荊州ㅣ 오로 브터(초간 두시언해 8 : 43ㄴ). 그듸 오히려 荊州ㅣ 와 나그내 외얏니(중간 두시언해 19 : 30ㄴ).   梓州ㅣ 사로라(중간 두시언해 2 : 1ㄱ) 東동州 밤 계오 새와(송강 관동별곡) 등. 이상의 예에서 볼 때 한자 표기 ‘州’에는 하나같이 ㅣ모음이 붙어 있다. 이로써 ‘州’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州’의 음은 ‘쥬’이고, ‘州’에 붙어 있는 ㅣ모음은 처격 내지 관형격 조사의 표기로 보는 견해이다. 둘째는 『광주 천자문』이나 『송강가사』에서 ‘’로 표음하고 있는 것을 보면 ‘州’의 현실 발음이 ‘’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주003)
사:사람[人]. 이 문헌에 ‘사’을 ‘사롬’으로 표기한 곳도 있다. ¶안시 튱 사롬이니(열녀도 5 : 79ㄴ).
주004)
신라(新羅):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3국 가운데,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지금의 영남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세운 나라. 3국을 통일하였으나, 935년에 고려 태조 왕건에게 망하였다.
주005)
무열왕(武烈王):(604~661, 재위 654~661) 신라 제29대 임금 김춘추(金春秋)는 진지왕(眞智王)의 손자이며, 이찬 용춘(龍春 : 龍樹라고도 함)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평왕의 딸 천명부인(天明夫人)이고, 부인은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 곧 나중의 문명부인(文明夫人)이다. 재위 7년째인 660년, 당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백제 정벌의 비원을 이룩하였으나, 고구려까지 통합하는 삼국통일의 대업은 기틀을 잡는 선에서 아들인 문무왕에게 물려주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무열왕이라는 시호에 더하여 신라 왕실에서 유일하게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받았다.
주006)
이찬(伊湌):신라의 관직명. 신라의 17등(等) 가운데의 둘째 위계(位階). 진골(眞骨)이 하던 벼슬로 3대 유리왕(儒理王) 9년(32)에 베풀었으며, 공복(公服)은 자색(紫色)이었음.
주007)
당의:당(唐) + -의(처격 조사). 당나라에. 당나라는 618년에 중국의 이연(李淵)이 수나라 공제(恭帝)의 선양(禪讓)을 받아 세운 통일 왕조. 도읍은 장안(長安)이며, 안사(安史)의 난 이후 쇠퇴하여 907년에 주전충(朱全忠)에게 망하였다.
주008)
드러가:들어가[入].
주009)
샹의:샹(海上) + -의(처격 조사). 바다 위에.
주010)
니러:니-[至] + -어(연결 어미). 이르러. ‘지(至)’의 뜻으로 쓰이는 동사는 15세기에 ‘니를다’와 ‘니르다’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니를에(월인석보 서 : 19ㄴ), 니를오(석보상절 13 : 13ㄴ), 니르러(두시언해 6 : 5ㄴ), 니르르시고(월인석보 18 : 4ㄴ), 니를며(월인석보 21 : 60ㄱ)’ 등은 어간 ‘니를-’의 활용형들이며, ‘니르게(석보상절 19 : 38ㄴ), 니르며(능엄경언해 2 : 48ㄱ), 니르시니(석보상절 13 : 17ㄱ), 니르거든(능엄경언해 8 : 4ㄴ)’ 등의 형태는 어간 ‘니르-’의 활용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니러’는 동사 어간 ‘니-’의 활용형이다.
주011)
고구려(高句麗):우리나라 고대의 3국 가운데 동명왕 주몽(朱蒙)이 기원전 37년에 세운 나라. 광개토 대왕 때에는 한반도 남부에서 요동 지방까지 영유하였으며, 668년에 신라와 중국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다.
주012)
나병(邏兵):순찰하는 병사. 순라병(巡邏兵).
주013)
조차셔:좇-[從] + -아셔(종속적 연결 어미). 좇아서. 따라서.
주014)
노픈 관:높-[高] + -은(관형사형 어미) + 관(冠). 높은 갓. 높은 신분의 사람이 쓰는 관.
주015)
큰 옷:크-[大] + -ㄴ(관형사형 어미) + 옷[衣]. 승려가 입는 세 가지 가사(袈裟) 중 가장 큰 옷을 말함. 세 가지 가사를 삼의(三衣)라고 하는데, 그 세 가지는 대의(大衣), 칠조(七條), 오조(五條) 가사를 이른다.
주016)
:배[船].
주017)
우희:우ㅎ[上] + -의(처격 조사). 위에. ‘우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현대 국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ㅎ종성 체언이란 형태가 중세 국어에 존재한다. 이는 체언의 말음(末音) ㅎ이 체언 뒤에 연결된 조사(助詞)에 그대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地]라는 명사에 ‘-이, -, -로, -애, -, -과, -도’ 등의 조사가 연결되면 ‘히, , 로, 해, , 콰, 토’와 같은 형태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하여 ‘ㅎ’와 같은 명사를 ㅎ종성 체언 또는 ㅎ끝소리 명사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ㅎ종성 체언으로 15세기 문헌에서 70여 낱말이 등장한다. 이에는 ‘나, 둘, 세, 네, 열’과 같은 수사도 있고, 복수 접미사 ‘-’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체언 말음 ㅎ은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체언 단독으로 쓰이거나 사이시옷 앞에서는 ㅎ이 나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 허위며 소리고 라오거늘”(석보상절 6 : 32ㄴ)와 “ 마시 티 오”(월인석보 1 : 42ㄱ)에서와 같다. 그리고 ㅎ종성 체언의 ㅎ 소실은 15세기 국어에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낱말에 따라 임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령 ‘하’[天]의 경우는 ‘하리, 하, 하, 하로, 하도’ 등과 같이 ㅎ이 소실된 형태와, ‘하히, 하, 하, 하로, 하토’ 등과 같이 ㅎ을 유지하고 있는 형태가 15세기의 한 문헌 안에 함께 등장하기도 한다.
주018)
안자시니:앉-[坐] + -아(연결 어미) + 시-(有. ‘이시-’에서 ‘이’가 탈락한 형태) + -니(종속적 연결어미). 앉아 있으니.
주019)
:-으로써[以]. 그것을 가지고. 그것으로 인하여.
주020)
주겨:죽-[死] + -이-(사동 접미사) + -어(종속적 연결 어미). 죽이므로.
주021)
져근:젹-[小] + -은(관형사형 어미). 작은. 15세기에도 ‘쟉다’와 ‘젹다’가 함께 사용되었지만 오늘날과 같은 ‘작다’[小]와 ‘적다’[少]의 의미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小’의 의미로 ‘쟉다’와 ‘젹다’가 구분 없이 사용되었고 여기서도 구분되지 않고 있다. ¶ 킈 쟈(석보상절 24 : 8ㄱ). 져겟다가  큰 모 現며(석보상절 21 : 37ㄱ-ㄴ).
주022)
고:-[乘] + -고(대등적 연결어미). 타고. 승선(乘船)하고.
주023)
면호:면-[免] + -오-(삽입모음) + -ㅁ(명사형 어미) + -(목적격 조사). 면하기를. 당하지 않음을. 중세 국어에서 명사형 어미 ‘-ㅁ’의 경우에는 그 앞에 삽입모음 ‘-오/우-’의 첨가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선어말 어미로서 퍽 생산적이던 ‘-오/우-’는 화자의 강한 의도를 나타낸다든지, 관형사형 어미와 결합하면 그 뒤의 명사가 관형사형의 목적어가 된다든지, 1인칭 주어와의 호응 관계를 나타낸다든지 하는 문법 기능들이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로 밝혀진 내용들이다. 그리하여 ‘-오/우-’에 대해서 의도법 선어말 어미라는 문법적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기능이 명확하지 않은 ‘-오/우-’의 사용례들이 있어 의도법 선어말 어미라는 명칭으로는 전체를 아우를 수 없는 면이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그냥 삽입모음이라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이 삽입모음은 아무 곳이나 삽입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어미에 한해서 그 앞에 삽입된다. 필수적으로 ‘-오/우-’가 삽입되는 어미로는 명사형 어미 ‘-ㅁ’이 있고 이 밖에 연결 어미로 ‘-’와 ‘-려’가 있다. 반면에 이러한 삽입모음을 취하기도 하고 취하지 않기도 하는 부류도 있는데, 이에 속하는 어미로는 관형사형 어미 ‘-ㄴ, -ㄹ’이 있고, 연결 어미 ‘-니, -니, -리니’와 종결 어미 ‘-리라’가 있다. ‘-오/우-’는 15세기 후반에 동요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소멸이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표기상으로는 더 후대에까지 존속한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이하에서는 ‘이 문헌’으로 표현한다)도 시대적으로는 삽입모음 ‘-오/우-’가 소멸된 시기의 문헌이지만 언해문의 표기에서 여기서처럼 ‘-오/우-’가 첨가된 경우를 일부 발견할 수 있다.
주024)
어드니라:얻-[得]+ -으니(확정법 선어말 어미) + -라(평서법 종결 어미). 얻었다. 선어말 어미 ‘-니-’ 다음에 연결되는 어말 어미로는 평서법의 ‘-라’와 의문법의 ‘-아, -야, -여, -오’ 정도이다.
주025)
군:군(君解. 사람 이름) + -(여격 조사). 온군해(溫君解)에게. 중세 국어에서는 여기의 경우처럼 여격 조사가 출현해야 할 자리에 목적격 조사가 쓰인 예를 볼 수 있다. 이는 ‘주다’[與] 동사 앞에 이중(二重)으로 목적격 조사가 출현하는 문장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때 유정 명사에 붙은 ‘-//을/를’은 여격 조사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의 ‘-//을/를’에 대해서는 목적격 조사 대신 여격 조사로 명명한다. ¶四海 년글 주리여(용비어천가 20장). 나 죠고맛거슬 주어시든(석보상절 6 : 44ㄴ).
주026)
대아찬(大阿湌):신라 시대의 관등. 17등 관계(官階) 중의 제5등으로서, 일명 ‘대아간(大阿干)’이라 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이사금 때 제정되었다고 하였으나, 520년(법흥왕 7)의 율령(律令) 공포 때 제정된 것으로 생각된다. 진골만이 받을 수 있는 관등으로, 공복(公服)의 빛깔은 자색(紫色)이었다. 집사부(執事部)의 장관직인 중시(中侍)나 그 밖에 중앙의 제1급 중앙행정관서의 장관직인 영(令)에 취임하기 위해서는 대아찬 이상의 관등을 가져야 하였으므로, 바로 아래 관등인 아찬(阿飡)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주027)
손을:자손(子孫)에게.
주028)
만히:만-[多] + -이(부사 접미사). 많이. 16세기 문헌에 드물게나마 ‘마니’로 쓰인 예가 발견된다. ¶내 마니 고져 노라(번역 노걸대 하 : 26ㄱ). 마니 드리면 마니 갑고(번역 박통사 상 : 20ㄱ).
주029)
샹시니라:샹-[施賞] + -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 + -니-(확정법 선어말 어미) + -라(평서법 어미). 상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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