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응정돌진(應井突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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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정돌진(應井突陣)


1:50ㄱ

應井突陣

1:50ㄴ

縣監邊應井 주001)
변응정(邊應井):
(1557(명종 12)~1592(선조 25)) 조선 중기 때 무신. 자는 문숙(文叔)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공조 좌랑 변열(邊悅)의 아들이다. 일찍이 공부에 열중했으나, 과거에서 실패를 거듭하자 학문을 버리고 무예에 전념, 드디어 무과에 급제,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되었다가 추천되어 선전관(宣傳官)으로 뽑혔다. 이어 해남 현감(海南縣監)으로 부임, 1592년에 왜병이 대거 내침해 오자 얼마 안 되는 군사로 출전하여 적선을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수사(水使)로 임명, 적의 대군이 금산(錦山)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 달려가 김제 군수 정담(鄭湛)과 함께 적과 싸워 전과가 컸으나, 적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京都人少業儒爲人慷慨壬辰爲海南 주002)
해남(海南):
현 전라남도 해남군.
縣監聞倭賊大擧入寇上疏請襲對馬島此是孫臏直走魏都之勢可以掣內顧之心云識者奇之與元帥權慄 주003)
권율(權慄):
(1537~1599)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명장. 자는 언신(彦愼)이고, 호는 만취당(晩翠堂)ㆍ모악(暮嶽)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군대를 총지휘하였으며, 행주 대첩 등에서 크게 이겼다. 정유재란 때 병사하였다.
及義兵將趙憲 주004)
조헌(趙憲):
(1544~1592) 조선 중기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백천(白川)이고, 자는 여식(汝式)이며, 호는 중봉(重峯)ㆍ도원(陶原)ㆍ후율(後栗)이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하생.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정주 교수(定州敎授)가 되고, 1572년(선조 5) 정자(正字)로 왕이 절에 향(香)을 하사하는 것을 반대하여 삭직된 뒤 곧 저작(著作)에 기용되고, 1574년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규 등 승병과 합세해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함께 모두 전사하였다. 뛰어난 학자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約挾攻錦山賊慄軍不至憲竟以無援而敗應井曰與人期而失約使義士盡殲乎此吾死所奮劒突 주005)
진(陣):
진영(陣營).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
殺數賊而死今 上朝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현감 변응졍은 셔울 사이니 져머셔 주006)
져머셔:
젊어서.
션 여 사이론디 주007)
사이론디:
사[人] + -이-(서술격 조사) + -로-(삽입모음) + -ㄴ(관형사형 어미) + 디(의존 명사). 사람인 것이. 사람됨이.
강개 주008)
강개(慷慨):
의기에 북받쳐 원통하고 슬픔.
더니 임진의 남 현감 여 왜적이 크게 드러와 도적질 호 듣고 그 주009)
그:
글[文] + (목적격 조사). 글을.
올려 마도 징이다 주010)
징이다:
-[圍] + -아(연결 어미) + -징이다(상대 높임 원망법 어미). 둘러싸고 싶습니다. 포위하고자 합니다. 상대 높임법의 ‘-징이다’는 15세기에 ‘-지다’로 표기되었다. 이 문단의 “마도 징이다”라고 한 것은 변응정이 중국 손빈(孫臏)의 옛 전술을 본떠 대마도를 공격하려 한 상소의 구절이다. 변응정의 상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 왜적이 동쪽과 남쪽 수천 리에 각각 군사를 두어 진을 치고 있는데, 그 세력이 30만 명이 아니고는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오랑캐가 군사 30만 명을 내보냈으니, 그 나라 안은 반드시 비었을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수군(水軍) 4, 5만 명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 순식간에 왜국에 가서 바로 본거지를 두들겨 부숴 놓으면 나머지는 반드시 저절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옛날 손빈(孫臏)이 한(韓) 나라를 구원하지 아니하고 바로 위(魏) 나라로 달려갔던 전술입니다.”
쳥니 이 손빈 주011)
손빈(孫臏):
중국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병법가. 손무(孫武)의 후손.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서 신비한 병법을 배워 기원전 367년 경 위(魏)나라 군사를 계릉(桂陵)에서 크게 이기고, 기원전 353년 조(趙)나라를 도와 위(魏)나라 군사를 재차 하남 대량(河南大樑)에서 격파하여 명성이 높았다.
의 바 위도 주012)
위도(魏都):
위나라의 수도.
로 라가 셰로 주013)
셰로:
셰(勢) + -로(조격 조사). 세력으로. 기세로.
가히  안흘 주014)
안흘:
안ㅎ[內] + -을(목적격 조사). 안을. 국내(國內)를. ‘안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도라보 을 막다 주015)
막다:
막-[防] + -ㄴ다(평서법 어미). 앞질러 가로막는다.
닐으더니 아 사이 긔트기 주016)
긔트기:
기특하게.
녀기더라 원슈 권뉼과 믿 의병쟝 됴헌으로 더브러 언약여 금산 도적을  티쟈 엳더니 뉼의 군이 니르디 아니호매 헌이 내 구완 주017)
구완:
구원(救援).
리 업서 패니 응졍이 닐오 사으로 더브러 긔약여 언약을 일허 주018)
일허:
잃-[失] + -어(연결 어미). 잃어.
의로 여곰 다 죽게 랴 이 내 주글 고디라 고 칼 분로여 주019)
분로여:
떨쳐 일어나.
딘을 텨 주020)
텨:
-[穿] + -티-(강세 접미사) + -어(연결 어미). 꿰뚫어.
두어 주021)
두어:
둘쯤 되는 수량. 15세기에는 ‘두’로 나타난다.
도적을 주기고 주그니라 금 샹됴의 졍문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응정돌진 - 변응정이 적진으로 돌진하다
현감(縣監)인 변응정(邊應井)은 서울 사람인데, 젊어서 선비가 되고 사람됨이 강개(慷慨)하였다. 임진년(1592)에 해남 현감으로 있을 때 왜적이 대거 침입하여 노략질한다는 것을 듣고 상소를 올려 대마도를 포위하고자 요청하니, “이는 옛날 중국의 손빈(孫臏)이 한(韓)나라를 구원하지 아니하고 바로 위(魏)나라의 수도로 달려갔던 전술로서, 가히 국내(國內)를 돌아보는 마음을 차단하는 것이다.”고 하므로, 아는 사람은 기특하게 생각하였다. 으뜸 장수인 권율(權慄) 장군 및 의병장 조헌(趙憲)과 더불어 합류하여 금산의 왜적을 공격하자고 약속하였으나 권율의 군사가 오지 않아 조헌은 끝내 구원병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하니, 변응정이 이르기를, “사람과 더불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아 의로운 군사들로 하여금 다 죽게 하겠는가? 이 곳은 내가 죽을 곳이다.”라고 하고, 칼을 들고 떨쳐 일어나 적진을 꿰뚫고 공격하여 두어 명의 왜적을 죽이고 죽었다. 지금의 임금께서는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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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변응정(邊應井):(1557(명종 12)~1592(선조 25)) 조선 중기 때 무신. 자는 문숙(文叔)이고, 시호는 충장(忠壯)이며,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공조 좌랑 변열(邊悅)의 아들이다. 일찍이 공부에 열중했으나, 과거에서 실패를 거듭하자 학문을 버리고 무예에 전념, 드디어 무과에 급제, 월송 만호(越松萬戶)가 되었다가 추천되어 선전관(宣傳官)으로 뽑혔다. 이어 해남 현감(海南縣監)으로 부임, 1592년에 왜병이 대거 내침해 오자 얼마 안 되는 군사로 출전하여 적선을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수사(水使)로 임명, 적의 대군이 금산(錦山)에 머물고 있음을 알고 달려가 김제 군수 정담(鄭湛)과 함께 적과 싸워 전과가 컸으나, 적의 야습을 받아 전사하였다.
주002)
해남(海南):현 전라남도 해남군.
주003)
권율(權慄):(1537~1599)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명장. 자는 언신(彦愼)이고, 호는 만취당(晩翠堂)ㆍ모악(暮嶽)이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군대를 총지휘하였으며, 행주 대첩 등에서 크게 이겼다. 정유재란 때 병사하였다.
주004)
조헌(趙憲):(1544~1592) 조선 중기의 문신ㆍ의병장. 본관은 백천(白川)이고, 자는 여식(汝式)이며, 호는 중봉(重峯)ㆍ도원(陶原)ㆍ후율(後栗)이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이이(李珥)ㆍ성혼(成渾)의 문하생.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병과로 급제, 정주 교수(定州敎授)가 되고, 1572년(선조 5) 정자(正字)로 왕이 절에 향(香)을 하사하는 것을 반대하여 삭직된 뒤 곧 저작(著作)에 기용되고, 1574년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영규 등 승병과 합세해 청주를 탈환하였다. 이어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금산 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의병들과 함께 모두 전사하였다. 뛰어난 학자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이이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주005)
진(陣):진영(陣營).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
주006)
져머셔:젊어서.
주007)
사이론디:사[人] + -이-(서술격 조사) + -로-(삽입모음) + -ㄴ(관형사형 어미) + 디(의존 명사). 사람인 것이. 사람됨이.
주008)
강개(慷慨):의기에 북받쳐 원통하고 슬픔.
주009)
그:글[文] + (목적격 조사). 글을.
주010)
징이다:-[圍] + -아(연결 어미) + -징이다(상대 높임 원망법 어미). 둘러싸고 싶습니다. 포위하고자 합니다. 상대 높임법의 ‘-징이다’는 15세기에 ‘-지다’로 표기되었다. 이 문단의 “마도 징이다”라고 한 것은 변응정이 중국 손빈(孫臏)의 옛 전술을 본떠 대마도를 공격하려 한 상소의 구절이다. 변응정의 상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금 왜적이 동쪽과 남쪽 수천 리에 각각 군사를 두어 진을 치고 있는데, 그 세력이 30만 명이 아니고는 그렇게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조그마한 오랑캐가 군사 30만 명을 내보냈으니, 그 나라 안은 반드시 비었을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수군(水軍) 4, 5만 명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 순식간에 왜국에 가서 바로 본거지를 두들겨 부숴 놓으면 나머지는 반드시 저절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옛날 손빈(孫臏)이 한(韓) 나라를 구원하지 아니하고 바로 위(魏) 나라로 달려갔던 전술입니다.”
주011)
손빈(孫臏):중국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병법가. 손무(孫武)의 후손.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서 신비한 병법을 배워 기원전 367년 경 위(魏)나라 군사를 계릉(桂陵)에서 크게 이기고, 기원전 353년 조(趙)나라를 도와 위(魏)나라 군사를 재차 하남 대량(河南大樑)에서 격파하여 명성이 높았다.
주012)
위도(魏都):위나라의 수도.
주013)
셰로:셰(勢) + -로(조격 조사). 세력으로. 기세로.
주014)
안흘:안ㅎ[內] + -을(목적격 조사). 안을. 국내(國內)를. ‘안ㅎ’은 ㅎ종성 체언이다.
주015)
막다:막-[防] + -ㄴ다(평서법 어미). 앞질러 가로막는다.
주016)
긔트기:기특하게.
주017)
구완:구원(救援).
주018)
일허:잃-[失] + -어(연결 어미). 잃어.
주019)
분로여:떨쳐 일어나.
주020)
텨:-[穿] + -티-(강세 접미사) + -어(연결 어미). 꿰뚫어.
주021)
두어:둘쯤 되는 수량. 15세기에는 ‘두’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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