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대원역전(大源力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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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역전(大源力戰)


1:34ㄱ

大源力戰

1:34ㄴ

萬戶李大源 주001)
이대원(李大源):
(1566~1587) 조선 중기의 무신.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희곡리 194번지에서 부친 이춘방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570년부터 1576년까지 한문 공부는 물론, 매일같이 무술을 연마하고, 활쏘기, 말타기, 칼쓰는 법, 병법 등을 공부했다. 장군은 18세 어린 나이에 본래 문신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무과에 응시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으로 등과(登科)했고, 21세 되던 해(선조 19년. 1586)에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고흥반도 지방의 녹도 만호(鹿島萬戶)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전라남도 고흥 앞바다 손죽도 인근 해상에 침공한 왜구 20여 척을 무찔러 1차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1587년 2월 17일 당시 여천군 삼산면 손죽도 앞바다에 왜구가 침입하였는데, 이때 녹도 만호 이대원 장군(22세)이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적의 포로가 되어 왜적은 장군을 매어달고 참혹하게 칼로 찔러 장군은 순국하였다. 그 이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고, 고향 양성(陽城. 현 평택)에 충신(忠臣)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水原府 주002)
수원부(水原府):
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人丁亥春爲鹿島萬戶追擊倭寇至損竹島 주003)
손죽도(損竹島):
행정 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이다. 소거문도, 평도, 광도와 함께 손죽열도를 이룬다. 여수 시내에서 약 74km 떨어져 있다.
射殺甚衆水使 주004)
수사(水使):
조선 시대 주진(主鎭)에 주둔하며 거진(巨鎭)ㆍ제진(諸鎭) 등을 총괄하여 지휘하던 정3품 외관직 무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약칭이다.
沈巖擁兵不救大源矢盡力竭被害 昭敬大王命誅巖 贈職大源今 上朝 주005)
금 상조(今上朝):
지금 임금 때에.
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만호 주006)
만호(萬戶):
조선 시대 각도(各道)의 진(鎭)에 딸린 종4품의 무관직. 원래는 몽고의 병제(兵制)를 모방한 고려의 군직이었다. 개경(開京)의 순군만호(巡軍萬戶)를 비롯하여 합포(合浦 : 마산)ㆍ전라(全羅)ㆍ탐라(耽羅)ㆍ서경(西京) 등에 5개 만호가 증설되었다. 그러나 지방의 만호는 거느리는 군대도 없이 금부(金符)만을 차고 다니는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본래 만호ㆍ천호(千戶)ㆍ백호(百戶) 등은 그 관할하는 민호(民戶)의 수를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그 민호의 수효와는 관계없이 진장(鎭將)의 품계를 나타내는 말로 변하였다. 육군에서보다는 수군(水軍)에서 이 관직명이 오래 남아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만호ㆍ부만호(副萬戶)ㆍ천호ㆍ백호 등의 관직을 두었으나, 점차 정리되었다.
니대원은 슈원부 사이라 년 보 주007)
보:
봄[春] + -(처격 조사). 봄에.
녹셤 주008)
녹셤[鹿島]: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속하는 섬.
만호 되여셔 주009)
예:
왜(倭). 일본 사람.
도적을 와 주010)
와:
오-[追] + -아(연결 어미). 따라서. 추격하여.
손듁도의 니러 아 주기기 만히 니 슈 심암 주011)
심암(沈巖):
이대원 장군이 활약했을 때 전라좌수사임. 1587년 1월 말경 일본 규수 북서쪽 나가사키현의 오도(五島)와 평호도(平戶島) 출신들이 탄 왜선 두어 척이 흥양 녹도진[현재 고흥군 녹동] 앞바다를 침범했다. 보통 때 같으면 동남풍이 부는 4월 이후에 왜선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일찍 침범하여, 녹도 만호 이대원이 경황이 없어 주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채 혼자서 출동하여 그들을 쳐서 수급(首級)을 베었다. 그러자 전라좌수사 심암(沈巖)은 전공(戰功)을 독차지했다고 이대원을 시기하여 두 사람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 군 이고 주012)
이고:
이-[擁] + -고(대등적 연결 어미). 감싸고. 꾸리고. 이 문헌에는 ‘이-’가 ‘리-’로 표기된 예도 등장한다. ¶난이 덥퍼 린대 도적이 주기고(충신도 1 : 83ㄴ).
구티 아니니 대원이 살이 진고 주013)
진고:
진-[盡] + -고(대등적 연결 어미). 다하고. 다 떨어지고.
힘이 갈야 주014)
갈야[竭]:
지쳐서. 다 빠져서.
해 니브니라 쇼대이 야 암이 버히시고 대원을 증직 주015)
증직(贈職):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追增)하던 일.
시다 금 됴애 문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대원역전 - 이대원이 온 힘을 다해 싸우다
만호 직에 있던 이대원(李大源)은 수원부의 사람이다. 선조 20년(1587) 봄에 녹도 만호가 되어 있을 때, 〈왜적이 남쪽 변경을 침공하므로〉 이대원이 왜구를 추격하여 손죽도(損竹島)에 이르러서 쏘아 크게 격파하였으나, 수사(水使) 심암(沈巖)이 군사는 감싸면서 이대원은 구하지 않았다. 이대원은 화살이 다 떨어지고 힘은 지쳐서 전사하였다. 이에 선조 임금은 명을 내려 심암을 목베어 죽이고, 이대원에게는 병조 참판을 추증하셨다. 지금의 임금(광해군)께서는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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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이대원(李大源):(1566~1587) 조선 중기의 무신.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희곡리 194번지에서 부친 이춘방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1570년부터 1576년까지 한문 공부는 물론, 매일같이 무술을 연마하고, 활쏘기, 말타기, 칼쓰는 법, 병법 등을 공부했다. 장군은 18세 어린 나이에 본래 문신 집안임에도 불구하고 무과에 응시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으로 등과(登科)했고, 21세 되던 해(선조 19년. 1586)에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로 고흥반도 지방의 녹도 만호(鹿島萬戶)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 전라남도 고흥 앞바다 손죽도 인근 해상에 침공한 왜구 20여 척을 무찔러 1차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1587년 2월 17일 당시 여천군 삼산면 손죽도 앞바다에 왜구가 침입하였는데, 이때 녹도 만호 이대원 장군(22세)이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적의 포로가 되어 왜적은 장군을 매어달고 참혹하게 칼로 찔러 장군은 순국하였다. 그 이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되고, 고향 양성(陽城. 현 평택)에 충신(忠臣)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주002)
수원부(水原府):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주003)
손죽도(損竹島):행정 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손죽리이다. 소거문도, 평도, 광도와 함께 손죽열도를 이룬다. 여수 시내에서 약 74km 떨어져 있다.
주004)
수사(水使):조선 시대 주진(主鎭)에 주둔하며 거진(巨鎭)ㆍ제진(諸鎭) 등을 총괄하여 지휘하던 정3품 외관직 무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약칭이다.
주005)
금 상조(今上朝):지금 임금 때에.
주006)
만호(萬戶):조선 시대 각도(各道)의 진(鎭)에 딸린 종4품의 무관직. 원래는 몽고의 병제(兵制)를 모방한 고려의 군직이었다. 개경(開京)의 순군만호(巡軍萬戶)를 비롯하여 합포(合浦 : 마산)ㆍ전라(全羅)ㆍ탐라(耽羅)ㆍ서경(西京) 등에 5개 만호가 증설되었다. 그러나 지방의 만호는 거느리는 군대도 없이 금부(金符)만을 차고 다니는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본래 만호ㆍ천호(千戶)ㆍ백호(百戶) 등은 그 관할하는 민호(民戶)의 수를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그 민호의 수효와는 관계없이 진장(鎭將)의 품계를 나타내는 말로 변하였다. 육군에서보다는 수군(水軍)에서 이 관직명이 오래 남아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만호ㆍ부만호(副萬戶)ㆍ천호ㆍ백호 등의 관직을 두었으나, 점차 정리되었다.
주007)
보:봄[春] + -(처격 조사). 봄에.
주008)
녹셤[鹿島]: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속하는 섬.
주009)
예:왜(倭). 일본 사람.
주010)
와:오-[追] + -아(연결 어미). 따라서. 추격하여.
주011)
심암(沈巖):이대원 장군이 활약했을 때 전라좌수사임. 1587년 1월 말경 일본 규수 북서쪽 나가사키현의 오도(五島)와 평호도(平戶島) 출신들이 탄 왜선 두어 척이 흥양 녹도진[현재 고흥군 녹동] 앞바다를 침범했다. 보통 때 같으면 동남풍이 부는 4월 이후에 왜선이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일찍 침범하여, 녹도 만호 이대원이 경황이 없어 주장에게 보고하지도 않은 채 혼자서 출동하여 그들을 쳐서 수급(首級)을 베었다. 그러자 전라좌수사 심암(沈巖)은 전공(戰功)을 독차지했다고 이대원을 시기하여 두 사람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주012)
이고:이-[擁] + -고(대등적 연결 어미). 감싸고. 꾸리고. 이 문헌에는 ‘이-’가 ‘리-’로 표기된 예도 등장한다. ¶난이 덥퍼 린대 도적이 주기고(충신도 1 : 83ㄴ).
주013)
진고:진-[盡] + -고(대등적 연결 어미). 다하고. 다 떨어지고.
주014)
갈야[竭]:지쳐서. 다 빠져서.
주015)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追增)하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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