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사의 - 정기원이 의를 위하여 죽다
행호군(行護軍)인 정기원(鄭期遠)은 서울 사람인데, 정기원은 정유년 가을에 명나라
총병(總兵) 주026) 총병(總兵): 명청(明淸) 시대, 군대를 통솔하고 한 지방을 지키던 벼슬. 오늘날의 군단장 급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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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楊元) 주027) 양원(楊元): 명나라 장수. 정유재란이 시작되자 1597년 5월 8일 요동기병 3,000인을 이끌고 조선에 다시 응원군으로 참전, 총병 마귀의 휘하에 들어가 6월 18일부터 전라도 남원성에 부임해 성의 방비 강화에 힘썼다. 8월 13일부터 남원 전투가 시작되자 일본 좌군의 공격으로 고립무원 속에서 농성전을 버텼으나 8월 15일 남원성은 함락되었다. 다음날 양원은 남원성을 겨우 탈출하였으나 패전의 죄를 추궁 당해 명군의 의해 처형당했다.
의 접반사(接伴使)가 되어 양원을 따라 남원성(南原城)에 들어갔다. 그때에 많은 수의 왜적이 성 밖에 진을 치니 순찰사와 조도사가 모두 나가 달아나므로 양원이 정기원을 권하여 왜적을 피하라고 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다. 이에 편지를 써서 서숙(庶叔) 정기생(鄭己生)에게 맡겨 그로 하여금 노모(老母)께 전하게 하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소자(小子)는 나라를 위하여 이미 한 번 죽기를 각오하였으며 아우가 모두 많으니, 원하옵기는 소자를 염려하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곧 성이 함락되자 양원은 포위망을 헤쳐 나오고 정기원은 왜적에게 해(害)를 입어 죽었다. 지금의 임금께서는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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