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종도수성(宗道守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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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도수성(宗道守城)


1:86ㄱ

宗道守城

1:86ㄴ

郡守趙宗道 주001)
조종도(趙宗道):
(1537~159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백유(伯由)이며, 호는 대소헌(大笑軒)이다. 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어려서 정두(鄭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생이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에서 초유사(招諭使) 김성일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 모집에 진력하였고, 그 해 가을 단성 현감을 지냈다. 1596년에는 함양 군수가 되었는데, 다음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을 받고 안음 현감 곽준(郭䞭)과 함께 의병을 규합,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수축하고 가족까지 이끌고 들어가 성을 지키면서 가토오(加藤淸正)가 인솔한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기개가 높고 해학을 즐겼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咸安郡人丁酉倭亂入黃石山城禦賊士卒潰散宗道往見郭䞭執手相告曰勢已至此有死而已其子英混勸乘馬賊已入城矣遂被害宗道嘗有詩曰崆峒山外生雖樂巡遠城 주002)
순원성(巡遠城):
중국 당나라 현종 때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원 현령(眞源縣令) 장순(張巡)이 의병을 일으켜 동지 허원(許遠)과 함께 수양성을 수비하다가 순절(殉節)했으므로 장순과 허원의 각 이름자를 따서 수양성을 순원성(巡遠城)이라 일컫게 되었다.
中死亦榮今 上朝旌門復戶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군슈 됴종도 함안군 주003)
함안군(咸安郡):
현재 경상남도의 중남부에 위치한 군. 북쪽으로 낙동강과 남강을 끼고 창녕군·의령군과 접한다. 함안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신라 경덕왕 때이다.
사이니 유왜난의 셕 산의 드러 도적을 막더니 군히 궤산 주004)
궤산(潰散):
허물어져 흩어짐. 군대가 싸움에 져서 흩어져 도망함.
야 되 곽쥰을 가 보고 손을 자바 서 닐러 오 주005)
셰:
셰(勢) + ø(zero 주격 조사). 세력이. 형세(形勢)가.
셔 주006)
셔:
벌써.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쎠’로만 나타나나 『능엄경 언해』(1462)에 와서는 ‘쎠’와 ‘셔’의 두 형태가 함께 등장한다.
이러야시니 주007)
이러야시니[至此]:
이렇게 되었으니.
주글 이라 야 그 아 혼이 권야  라 니 도적이 셔 의 드럿더라 주008)
드럿더라:
들-[入] + -엇더-(과거 시상 선어말 어미) + -라(평서법 어미). 들어왔다.
주기믈 닙다 되 해 주009)
해[嘗]:
일찍이. ‘해’는 ‘늘, 항상’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이지만, 여기서는 원문의 한자 ‘상(嘗)’의 뜻을 좇아 ‘해’를 ‘일찍이’로 풀이한다. 15세기에는 ‘녜’로 쓰였다.
글을 지어시되 뫼 주010)
뫼[崆峒山]:
중국 감숙성(甘肅省) 평량(平凉)에 위치한 산. 이 산은 도교 제일의 명산으로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감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중국 상고 시대 황제가 이 산에 갔다는 고사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선조 임금이 평안도 지방으로 피란한 사실을 비유하고 있다.
밧긔 살기 비록 즐거우나 슌원 온 주011)
온[中]:
가운데. ‘중(中)’을 나타내는 말로 처음에는 ‘가’가 쓰였다. ¶긼 가 大小乘ㅅ 라(월인석보 14 : 80ㄱ). 그 이후 ‘가 〉 가온 〉 가운데’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가운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 쓰인 ‘온’의 ‘’는 어두에 사이시옷이 붙은 표기이다. 이 문헌에는 ‘가온’와 ‘가온대’가 혼용되고 있다.
주그미  홰라 주012)
홰라:
화(榮華) + -ㅣ라(서술격 조사). 영화이다. 영광(榮光)이다.
얏더라 금 됴애 문 복호 주013)
복호(復戶):
조선 시대 국가가 특정한 대상자에게 그 호(戶)의 조세(租稅)나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던 일.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종도수성 - 조종도가 성을 지키다
군수(郡守)인 조종도(趙宗道)는 함안군(咸安郡) 사람인데, 정유왜란 때 황석 산성으로 들어가 왜적을 막고 있었는데, 군사들이 흩어져 도망하므로 조종도가 곽준을 가서 만나보고 손을 잡아 서로 이르기를, “형세(形勢)가 이미 기울어졌으니 죽을 따름이오.”라고 하니, 그의 아들 조영혼(趙英混)이 말을 타고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왜적이 이미 성에 들어와 있어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조종도가 일찍이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공동산(崆峒山) 밖에서 사는 것이 비록 즐거울지라도 순원성(巡遠城) 안에서 죽는 것이 또한 영광이로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임금께서는 정문을 내리시고, 조세와 부역을 면제해 주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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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조종도(趙宗道):(1537~159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백유(伯由)이며, 호는 대소헌(大笑軒)이다. 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어려서 정두(鄭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생이기도 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남에서 초유사(招諭使) 김성일과 함께 창의하여 의병 모집에 진력하였고, 그 해 가을 단성 현감을 지냈다. 1596년에는 함양 군수가 되었는데, 다음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명을 받고 안음 현감 곽준(郭䞭)과 함께 의병을 규합, 황석산성(黃石山城)을 수축하고 가족까지 이끌고 들어가 성을 지키면서 가토오(加藤淸正)가 인솔한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경사(經史)에 밝았으며, 기개가 높고 해학을 즐겼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주002)
순원성(巡遠城):중국 당나라 현종 때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진원 현령(眞源縣令) 장순(張巡)이 의병을 일으켜 동지 허원(許遠)과 함께 수양성을 수비하다가 순절(殉節)했으므로 장순과 허원의 각 이름자를 따서 수양성을 순원성(巡遠城)이라 일컫게 되었다.
주003)
함안군(咸安郡):현재 경상남도의 중남부에 위치한 군. 북쪽으로 낙동강과 남강을 끼고 창녕군·의령군과 접한다. 함안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신라 경덕왕 때이다.
주004)
궤산(潰散):허물어져 흩어짐. 군대가 싸움에 져서 흩어져 도망함.
주005)
셰:셰(勢) + ø(zero 주격 조사). 세력이. 형세(形勢)가.
주006)
셔:벌써.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는 ‘쎠’로만 나타나나 『능엄경 언해』(1462)에 와서는 ‘쎠’와 ‘셔’의 두 형태가 함께 등장한다.
주007)
이러야시니[至此]:이렇게 되었으니.
주008)
드럿더라:들-[入] + -엇더-(과거 시상 선어말 어미) + -라(평서법 어미). 들어왔다.
주009)
해[嘗]:일찍이. ‘해’는 ‘늘, 항상’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이지만, 여기서는 원문의 한자 ‘상(嘗)’의 뜻을 좇아 ‘해’를 ‘일찍이’로 풀이한다. 15세기에는 ‘녜’로 쓰였다.
주010)
뫼[崆峒山]:중국 감숙성(甘肅省) 평량(平凉)에 위치한 산. 이 산은 도교 제일의 명산으로 호랑이가 웅크리고 용이 감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중국 상고 시대 황제가 이 산에 갔다는 고사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선조 임금이 평안도 지방으로 피란한 사실을 비유하고 있다.
주011)
온[中]:가운데. ‘중(中)’을 나타내는 말로 처음에는 ‘가’가 쓰였다. ¶긼 가 大小乘ㅅ 라(월인석보 14 : 80ㄱ). 그 이후 ‘가 〉 가온 〉 가운데’의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가운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 쓰인 ‘온’의 ‘’는 어두에 사이시옷이 붙은 표기이다. 이 문헌에는 ‘가온’와 ‘가온대’가 혼용되고 있다.
주012)
홰라:화(榮華) + -ㅣ라(서술격 조사). 영화이다. 영광(榮光)이다.
주013)
복호(復戶):조선 시대 국가가 특정한 대상자에게 그 호(戶)의 조세(租稅)나 부역(賦役)을 면제해 주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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