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투애 - 김천일이 낭떠러지에 몸을 던지다
판결사인 김천일(金千鎰)은 나주(羅州) 사람인데, 임진왜란 때 앞장서서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바로 투입하고, 그리고 강화도로 진을 옮겨 방책(防柵)을 쌓아 지킴으로써 충청도 전라도로 통하는 길을 확보하게 되니, 경기도 백성이 의지하여 그들이 보장 받는 길로 삼았다. 뒤미처 진주성으로 들어가서 모든 장수들과 더불어 죽기를 각오하고 성 지키기를
맹세 주018) 맹세(盟誓): 실천할 것을 다짐함. ‘盟誓’에 대해서도 이 문헌에서는 ‘셰’와 ‘셔’의 두 가지 표기가 공존하고 있다.
하였으나 끝내 성이 적군에게 함락되니, 좌우의 사람들이 피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김천일은 일어나지 않고 이르기를, “나는 마땅히 여기서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고,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촉석루 위에서 통곡하고는 스스로 바위 아래로 몸을 던져 죽었다. 선조 임금께서 좌찬성을 추증하시고, 지금의 임금께서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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