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복남수성(福男守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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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남수성(福男守城)


1:88ㄱ

福男守城

1:88ㄴ

兵使 주001)
병사(兵使):
조선 시대 종2품의 무관직으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라고 불리던 직명.
李福男 주002)
이복남(李福男):
(?~1597)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史)를 역임한 이전(李戩)의 손자이다. 1592년(선조 25)에 나주 판관(羅州判官)으로 벼슬에 올라 전라방어사(全羅防禦使), 충청조방장(忠淸助防將), 남원부사(南原府使),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재임 시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성에서 왜군과 싸우던 중 김경로(金敬老), 신호(申浩)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쟁 직후 자헌대부병조판서(資憲大夫兵曹判書)에 증직되었다가, 이후에 숭정대부(崇政大夫)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京都人丁酉倭亂爲全羅兵使聞總兵楊元在南原城中賊直搗城外甚急福男謂助防將 주003)
조방장(助防將):
주장(主將)을 도와서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
金敬老 주004)
김경로(金敬老):
남원부(南原府)에 살았다. 젊었을 때에 일찍이 과거 공부를 하다가 중년에 붓을 던져 버리고 무과에 급제하여 당상관(堂上官)에 승진하였다. 정유년(丁酉年, 1597년 선조 30년) 재란(再亂) 때 공이 이복남에게 말하기를, “진주(晋州)는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요새이고 군사 또한 수만 명이었는데도 열흘이 안 되어 함락당하였소. 지금 이곳 남원의 형세는 진주만 못한데, 명(明)나라 양 총병(楊總兵)이 단지 3천의 군사와 말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고 우리나라의 여러 장수는 한 사람도 와서 원조하는 자가 없으니, 며칠이 못가서 성(城)은 반드시 함락될 것이오. 하지만 어떻게 명나라 군사가 우리나라의 일로 혼자서 죽게 할 수 있겠소?”라고 하자, 이복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공의 말이 정말로 나의 뜻과 합치되오.”라 하고, 마침내 공과 함께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리기를, “우리를 따르기 원하는 자는 남고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 이는 떠나시오.”라고 하였는데, 군중의 장사(壯士) 임사미(林士美) 등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1백여 명이었다. 이에 양 총병이 감동하여 탄식하기를, “조선[東國]의 남자는 오직 이 두 사람 뿐이다.”라고 하였다.
吾等 주005)
오등(吾等):
우리들.
爲閫帥寧坐視此耶並馬率兵馳往望見賊屯抵掌大言曰捐身報國此其時矣鳴螺吹角略無怖色直入城內勸元留守元不聽而走城陷福男死 昭敬大王贈職今 上朝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병 니복남은 셔울 사이니 뎡유왜난의 졀라 병 주006)
졀라 병:
졀라(全羅) + 병(兵使) + -ㅣ(주격 조사).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여 총병 양원이 남원셩듕의 이셔 도적기 셩 받긔 바 주007)
바[直]:
바로. 이 뒤에는 ‘바로’의 형태가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텨셔 주008)
텨셔:
쳐들어와서.
심히 급단 마 듣고 복남이 조방쟝 김경노려 닐러 로 우리 등 주009)
우리 등[吾等]:
우리들.
쟝 주010)
쟝:
쟝슈(將帥) + -ㅣ(주격 조사). 장수가.
되여 얻디 주011)
얻디:
어찌. ‘엇디’의 말음 ㅅ이 받침에서 ㄷ과의 혼용으로 ‘얻디’가 되었다.
안자 이 보랴 고  []고 주012)
고[並]:
‘고’의 잘못된 표기이다. ‘다’는 ‘함께 하다, 나란히 하다’의 뜻이다.
군 거리고 려가 도적긔 딘 틴  주013)
딘 틴 :
진을 치고 있는 곳.
 라보고 손벽 티고 크기 주014)
크기:
이는 ‘크게’의 방언형으로 보임.
말여 오 모 려 주015)
려:
버려[棄].
나라 갑미 주016)
갑미:
갚-[報] + -(명사형 어미) + -이(주격 조사). 갚음이. ‘갑미’는 ‘가미’의 중철 표기이다.
이 그 주017)
[時]:
때. 15세기에는 ‘’로 표기되었는데, 3자 합용병서의 폐지에 따라 ‘’로 교체되었다.
로다 쥬라 주018)
쥬라:
붉은 칠을 한 소라 껍데기로 만든 대각(大角). 주라.
불리고 주019)
불리고[吹]:
불게 하고.
된각 주020)
된각:
나발의 하나.
불리고 죡곰도 주021)
죡곰도:
조금도.
두려 주022)
두려[怖]:
두리-[怖] + -어(연결 어미) + -[爲] + -(관형사형 어미). 두려워하는. 15세기부터 ‘두리-’는 동사로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에 와서 연결 어미 ‘-어/아’를 매개로 하여 ‘두리-’ 동사와 ‘-’ 동사가 합성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예로 ‘깃거-, 저허-, 믜여-’ 등을 볼 수 있다.
비치 주023)
비치:
빛[色] + -이(주격 조사). 기색이.
업서 바로 셩 안 드러 양원을 권여 머무러 주024)
머무러:
머물러. 동사 ‘머물-’은 원래 15세기에 ‘머믈-’이었고, 사동형도 ‘머믈우-’였다. ¶아니한 도 머므러 잇디 몯야(석보상절 19 : 11ㄱ). 목수믈 머믈우들 몯시니(월인석보 10 : 15ㄴ). 이로 보아 여기에서의 ‘머무러-’는 ‘므, 브, 프 〉 무, 부, 푸’의 원순모음화를 확인하는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헌 어디에서도 원순모음화 현상은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머무러’의 등장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딕킈라 니 원이 듣디 아니코 라나다 셩이 함호매 복남이 죽다 쇼경대왕이 증직시고 금 샹됴의 졍문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복남수성 - 이복남이 성을 지키다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은 서울 사람인데, 정유재란 때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명나라 총병(總兵)인 양원(楊元)이 남원성에 있어도 왜적이 성 밖에 바로 쳐들어와 심히 위급하다는 말을 듣고, 이복남은 조방장(助防將)인 김경로(金敬老)에게 이르기를, “우리들이 장수가 되어서 어찌 앉아서 이를 보고만 있으리오.” 하고, 말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갔다. 왜적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바라보고 손뼉을 치며 크게 말하기를, “몸을 던져 나라의 은혜를 갚을 때가 바로 이때다.”라고 하고, 주라를 불게 하고 나발을 불게 하니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으므로 바로 성 안으로 들어가 양원을 권하여 성에 머물러 지키라 하였으나 양원이 듣지 아니하고 달아났다. 성이 함락되매 이복남은 전사하였다. 선조 임금께서 증직하시고, 지금의 임금께서는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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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병사(兵使):조선 시대 종2품의 무관직으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라고 불리던 직명.
주002)
이복남(李福男):(?~1597)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史)를 역임한 이전(李戩)의 손자이다. 1592년(선조 25)에 나주 판관(羅州判官)으로 벼슬에 올라 전라방어사(全羅防禦使), 충청조방장(忠淸助防將), 남원부사(南原府使),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등을 역임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전라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재임 시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성에서 왜군과 싸우던 중 김경로(金敬老), 신호(申浩)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쟁 직후 자헌대부병조판서(資憲大夫兵曹判書)에 증직되었다가, 이후에 숭정대부(崇政大夫)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주003)
조방장(助防將):주장(主將)을 도와서 적의 침입을 방어하는 장수.
주004)
김경로(金敬老):남원부(南原府)에 살았다. 젊었을 때에 일찍이 과거 공부를 하다가 중년에 붓을 던져 버리고 무과에 급제하여 당상관(堂上官)에 승진하였다. 정유년(丁酉年, 1597년 선조 30년) 재란(再亂) 때 공이 이복남에게 말하기를, “진주(晋州)는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요새이고 군사 또한 수만 명이었는데도 열흘이 안 되어 함락당하였소. 지금 이곳 남원의 형세는 진주만 못한데, 명(明)나라 양 총병(楊總兵)이 단지 3천의 군사와 말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고 우리나라의 여러 장수는 한 사람도 와서 원조하는 자가 없으니, 며칠이 못가서 성(城)은 반드시 함락될 것이오. 하지만 어떻게 명나라 군사가 우리나라의 일로 혼자서 죽게 할 수 있겠소?”라고 하자, 이복남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공의 말이 정말로 나의 뜻과 합치되오.”라 하고, 마침내 공과 함께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리기를, “우리를 따르기 원하는 자는 남고 따르기를 원하지 않는 이는 떠나시오.”라고 하였는데, 군중의 장사(壯士) 임사미(林士美) 등 따르기를 원하는 자가 1백여 명이었다. 이에 양 총병이 감동하여 탄식하기를, “조선[東國]의 남자는 오직 이 두 사람 뿐이다.”라고 하였다.
주005)
오등(吾等):우리들.
주006)
졀라 병:졀라(全羅) + 병(兵使) + -ㅣ(주격 조사).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주007)
바[直]:바로. 이 뒤에는 ‘바로’의 형태가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주008)
텨셔:쳐들어와서.
주009)
우리 등[吾等]:우리들.
주010)
쟝:쟝슈(將帥) + -ㅣ(주격 조사). 장수가.
주011)
얻디:어찌. ‘엇디’의 말음 ㅅ이 받침에서 ㄷ과의 혼용으로 ‘얻디’가 되었다.
주012)
고[並]:‘고’의 잘못된 표기이다. ‘다’는 ‘함께 하다, 나란히 하다’의 뜻이다.
주013)
딘 틴 :진을 치고 있는 곳.
주014)
크기:이는 ‘크게’의 방언형으로 보임.
주015)
려:버려[棄].
주016)
갑미:갚-[報] + -(명사형 어미) + -이(주격 조사). 갚음이. ‘갑미’는 ‘가미’의 중철 표기이다.
주017)
[時]:때. 15세기에는 ‘’로 표기되었는데, 3자 합용병서의 폐지에 따라 ‘’로 교체되었다.
주018)
쥬라:붉은 칠을 한 소라 껍데기로 만든 대각(大角). 주라.
주019)
불리고[吹]:불게 하고.
주020)
된각:나발의 하나.
주021)
죡곰도:조금도.
주022)
두려[怖]:두리-[怖] + -어(연결 어미) + -[爲] + -(관형사형 어미). 두려워하는. 15세기부터 ‘두리-’는 동사로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에 와서 연결 어미 ‘-어/아’를 매개로 하여 ‘두리-’ 동사와 ‘-’ 동사가 합성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은 예로 ‘깃거-, 저허-, 믜여-’ 등을 볼 수 있다.
주023)
비치:빛[色] + -이(주격 조사). 기색이.
주024)
머무러:머물러. 동사 ‘머물-’은 원래 15세기에 ‘머믈-’이었고, 사동형도 ‘머믈우-’였다. ¶아니한 도 머므러 잇디 몯야(석보상절 19 : 11ㄱ). 목수믈 머믈우들 몯시니(월인석보 10 : 15ㄴ). 이로 보아 여기에서의 ‘머무러-’는 ‘므, 브, 프 〉 무, 부, 푸’의 원순모음화를 확인하는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헌 어디에서도 원순모음화 현상은 보여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머무러’의 등장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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