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지화투수(枝華投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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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화투수(枝華投水)


1:72ㄱ

枝華投水

1:72ㄴ

學官 주001)
학관(學官):
삼국 시대 이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급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던 관원을 이르는 말. 교관(敎官)ㆍ교수관(敎授官)이라고도 하였다.
朴枝華京都人少師花潭博學能文平生高潔自守潛心性理 주002)
성리(性理):
인간의 성품과 자연의 이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를 이른다.
而尤邃於易人莫窺其造詣之深壬辰倭亂避賊山谷中人送馬勸走不聽端坐川邊及賊將至義不辱投水而死今 上朝旌門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관 박지화 주003)
박지화(朴枝華):
(1513~1592) 조선 중기의 학자. 정선 박씨의 시조. 서얼 출신이다.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수암(守菴)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 유불선(儒佛仙)에 모두 조예가 깊고, 특히 기수학(氣數學)에 뛰어나 명종 때 으뜸가는 학자로 꼽혔다. 어려서부터 명산(名山)을 즐겨 찾았으며, 솔잎을 따먹고 생식을 하였다. 일찍이 중국 사신이 올 때 필찰(筆札)을 맡아보던 이문학관(吏文學官)을 잠시 역임했으며, 벼슬은 현감(縣監)을 지냈을 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친구인 정굉(鄭宏)과 함께 백운산(白雲山)으로 피란하였다가, 왜병(倭兵)이 가까이 닥치자 두보(杜甫)의 오언율(五言律) 한 수를 써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그 아래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
 셔울 사이니 져머셔 주004)
져머셔:
졈-[少] + -어셔(종속적 연결 어미). 젊어서.
화담 주005)
화담(花潭):
(1489~1546) 서경덕(徐敬德)의 호.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학문 연구에서 격물(格物)을 통해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독창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을 제창하였다. 본관은 당성(唐城)이고, 자는 가구(可久)이며, 호는 복재(復齋)이다. 송도(松都) 화담(花潭) 부근에 서재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여 화담이라는 별호로 더 알려져 있다. 시호(諡號)는 문강(文康)이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송도에 머무르며 학문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하여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 3절(松都三絶)’로 불리기도 한다. 1489년(성종 20년) 황해도 개성 화정리(和井里)에서 종8품 수의부위(修義副尉)를 지낸 서호번(徐好蕃)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급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탐구심이 많아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들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치를 생각하느라 밤늦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14세 때에는 『서경(書經)』을 공부하다가 태음력(太陰曆)의 수학적 계산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 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터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을 스승야 너비 주006)
너비[博]:
널리.
화 주007)
화[學]:
배워.
그 주008)
그:
글[文] + -(목적격 조사). 글을. 시문(詩文)을.
잘고 평의 놉고 가 주009)
가:
-[潔] + -아(연결 어미). 깨끗하여.
스스로 디킈고 주010)
스스로 디킈고[自守]:
행동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
셩니예 을 겨호 주011)
을 겨호[潛心]:
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하되.
더옥 주012)
더옥:
더욱.
쥬역 주013)
주역(周易):
동양 고전의 하나. 『역경(易經)』 또는 역(易)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지배하는 신은 천(天)이었으며, 땅의 생산력과 곡식의 신 및 천문지리와 역법(曆法)에 관한 지식 등은 농경사회의 풍요를 도모하는 자원이었다. 이처럼 하늘의 이법과 땅의 이치를 밝게 알려준 경이 『주역』이다. 『주역』의 연원과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하도(河圖)의 출현을 보면 복희가 인정(仁政)을 했는데, 그때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낙서
(洛書: 낙수에서 나온 영묘한 거북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
의 출현 역시 우임금이 치수 사업을 할 때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주역』의 유래는 곧 하도낙서를 시원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주역』은 중국 상고 시대에 비롯된 것으로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저술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깁니 주014)
깁니:
깊-[深] + -니(종속적 연결 어미). 깊으니. ‘깁니’는 ‘깊니’의 중철 표기이다.
사이 그 나아간  깁픈 거 여어 주015)
여어:
엿-[窺] + -어(연결 어미). 엿보아. 동사 ‘엿다’의 어간 말음 ㅅ은 모음의 어미 앞에서 탈락한다. 15세기에는 ‘여’로 표기되었다. 그러면서 17세기까지 ‘엿다’는 동사로서 기능을 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단독 동사의 기능을 상실하고 어간 ‘엿-’은 다른 동사 앞에 붙어 뜻을 더해 주는 파생 접두사로 문법화하였다. ‘엿듣다. 엿보다’ 등.
보디 몯더라 임진왜난의 도적글 묃골 주016)
묃골:
뫼ㅎ[山] + -ㅅ(사이시옷) + 골[谷]. 산골. 종성의 ㅅ이 ㄷ과 혼용됨으로써 원래의 ㅅ종성이 ㄷ으로 표기된 경우를 이 문단에서만도 여러 낱말에서 볼 수 있다. ‘묃골’ 외에도 ‘피엿더니 → 피엳더니’, ‘냇 → 낻’, ‘밋 → 믿’, ‘쟝 → 쟝’ 등이 있다. 이 문헌에는 ‘묏골’ ‘묏’의 표기도 등장한다.
가온 피엳더니 사이  주017)
:
[馬] + -(목적격 조사). 말을.
보내여 라나기 권대 듣디 아니고 낻 주018)
낻:
냇가[川邊]에.
단졍히 안자 주019)
안자:
앉아[坐].
믿 주020)
믿[及]:
및. 미쳐.
도적기 쟝 니게 되거 의예 욕 아니 머글 거시라 주021)
의예 욕 아니 머글 거시라[義不辱]:
의리를 지켜 욕은 당하지 않겠다.
야 므 주022)
므:
믈[水] + -(처격 조사). 물에.
뎌 주023)
뎌:
디-[沒] + -어(연결 어미). 빠져.
주그니라 금 샹됴애 졍문 시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지화투수 - 박지화가 물속에 몸을 던져 죽다
학관(學官)인 박지화(朴枝華)는 서울 사람인데, 젊어서부터 화담 서경덕(徐敬德)을 스승으로 모시고 많이 배워 시문(詩文)에 능하고, 평생을 고상하고 깨끗하게 살면서 스스로 언행을 조심하며 지켰다. 성리학(性理學)에 뜻을 기울이면서 주역(周易)에 더욱 깊이 들어가니 사람들이 그 나아간 데의 깊은 경지를 엿볼 수 없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침략해 오자 산골 속으로 피하였는데, 사람이 말을 보내어 달아나기를 권하였으나 이를 듣지 아니하고 냇가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뒤이어 왜적이 곧 이르게 되니 의리를 지켜 욕 먹지는 않겠다면서 물에 빠져 죽었다. 지금의 임금께서 정문을 내리셨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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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학관(學官):삼국 시대 이래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급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하던 관원을 이르는 말. 교관(敎官)ㆍ교수관(敎授官)이라고도 하였다.
주002)
성리(性理):인간의 성품과 자연의 이치를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를 이른다.
주003)
박지화(朴枝華):(1513~1592) 조선 중기의 학자. 정선 박씨의 시조. 서얼 출신이다. 자는 군실(君實)이고, 호는 수암(守菴)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 유불선(儒佛仙)에 모두 조예가 깊고, 특히 기수학(氣數學)에 뛰어나 명종 때 으뜸가는 학자로 꼽혔다. 어려서부터 명산(名山)을 즐겨 찾았으며, 솔잎을 따먹고 생식을 하였다. 일찍이 중국 사신이 올 때 필찰(筆札)을 맡아보던 이문학관(吏文學官)을 잠시 역임했으며, 벼슬은 현감(縣監)을 지냈을 뿐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친구인 정굉(鄭宏)과 함께 백운산(白雲山)으로 피란하였다가, 왜병(倭兵)이 가까이 닥치자 두보(杜甫)의 오언율(五言律) 한 수를 써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그 아래 물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
주004)
져머셔:졈-[少] + -어셔(종속적 연결 어미). 젊어서.
주005)
화담(花潭):(1489~1546) 서경덕(徐敬德)의 호.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학문 연구에서 격물(格物)을 통해 스스로 터득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독창적인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을 제창하였다. 본관은 당성(唐城)이고, 자는 가구(可久)이며, 호는 복재(復齋)이다. 송도(松都) 화담(花潭) 부근에 서재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여 화담이라는 별호로 더 알려져 있다. 시호(諡號)는 문강(文康)이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송도에 머무르며 학문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하여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 3절(松都三絶)’로 불리기도 한다. 1489년(성종 20년) 황해도 개성 화정리(和井里)에서 종8품 수의부위(修義副尉)를 지낸 서호번(徐好蕃)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급 무관의 집안에서 태어나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어려서부터 탐구심이 많아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들에 나물을 캐러 갔다가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치를 생각하느라 밤늦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14세 때에는 『서경(書經)』을 공부하다가 태음력(太陰曆)의 수학적 계산에 의문이 생기자 보름 동안 궁리하여 스스로 터득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주006)
너비[博]:널리.
주007)
화[學]:배워.
주008)
그:글[文] + -(목적격 조사). 글을. 시문(詩文)을.
주009)
가:-[潔] + -아(연결 어미). 깨끗하여.
주010)
스스로 디킈고[自守]:행동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
주011)
을 겨호[潛心]:어떤 일에 마음을 두어 깊이 생각하되.
주012)
더옥:더욱.
주013)
주역(周易):동양 고전의 하나. 『역경(易經)』 또는 역(易)이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의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지배하는 신은 천(天)이었으며, 땅의 생산력과 곡식의 신 및 천문지리와 역법(曆法)에 관한 지식 등은 농경사회의 풍요를 도모하는 자원이었다. 이처럼 하늘의 이법과 땅의 이치를 밝게 알려준 경이 『주역』이다. 『주역』의 연원과 유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하도(河圖)의 출현을 보면 복희가 인정(仁政)을 했는데, 그때 황하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낙서<세주>(洛書: 낙수에서 나온 영묘한 거북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의 출현 역시 우임금이 치수 사업을 할 때 낙수(洛水)에서 거북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주역』의 유래는 곧 하도낙서를 시원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주역』은 중국 상고 시대에 비롯된 것으로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저술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014)
깁니:깊-[深] + -니(종속적 연결 어미). 깊으니. ‘깁니’는 ‘깊니’의 중철 표기이다.
주015)
여어:엿-[窺] + -어(연결 어미). 엿보아. 동사 ‘엿다’의 어간 말음 ㅅ은 모음의 어미 앞에서 탈락한다. 15세기에는 ‘여’로 표기되었다. 그러면서 17세기까지 ‘엿다’는 동사로서 기능을 하였으나, 그 이후로는 단독 동사의 기능을 상실하고 어간 ‘엿-’은 다른 동사 앞에 붙어 뜻을 더해 주는 파생 접두사로 문법화하였다. ‘엿듣다. 엿보다’ 등.
주016)
묃골:뫼ㅎ[山] + -ㅅ(사이시옷) + 골[谷]. 산골. 종성의 ㅅ이 ㄷ과 혼용됨으로써 원래의 ㅅ종성이 ㄷ으로 표기된 경우를 이 문단에서만도 여러 낱말에서 볼 수 있다. ‘묃골’ 외에도 ‘피엿더니 → 피엳더니’, ‘냇 → 낻’, ‘밋 → 믿’, ‘쟝 → 쟝’ 등이 있다. 이 문헌에는 ‘묏골’ ‘묏’의 표기도 등장한다.
주017)
:[馬] + -(목적격 조사). 말을.
주018)
낻:냇가[川邊]에.
주019)
안자:앉아[坐].
주020)
믿[及]:및. 미쳐.
주021)
의예 욕 아니 머글 거시라[義不辱]:의리를 지켜 욕은 당하지 않겠다.
주022)
므:믈[水] + -(처격 조사). 물에.
주023)
뎌:디-[沒] + -어(연결 어미).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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