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

  • 역주 동국신속삼강행실도 3집(충신도 권1)
  • 동국신속삼강행실 충신도 제1권 주해
  • 충신도 제1권
  • 온달서중(溫達誓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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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서중(溫達誓衆)


1:13ㄱ

溫達誓衆

1:13ㄴ

溫達平壤府人陽岡王 주001)
양강왕(陽岡王):
고구려의 제25대 평강왕(平岡王. 일명 평원왕)의 잘못이다.
少女自媒爲達妻後周武帝伐遼東 주002)
요동(遼東):
중국 요하(遼河)의 동쪽 지방. 지금의 요녕성(遼寧省) 동남부 일대를 일컫는다.
先鋒 주003)
선봉(先鋒):
부대의 맨 앞에 나서서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
奮擊大克王賜爵大兄及平岡王 주004)
평강왕(平岡王):
고구려 25대 평강왕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559년부터 589년까지의 재위기간 동안 흔들렸던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고 고구려 문명의 번영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양성이며, 24대 양원왕의 첫째 아들이다. 평강왕은 담력이 크고, 말을 잘 타며, 활쏘기도 잘하였다.
卽位達奏曰新羅割我漢北 주005)
한북(漢北):
한강의 북쪽.
之地爲郡縣願大王不以臣不肖授兵往必復吾地王許之達臨行誓曰鷄立峴竹嶺 주006)
죽령(竹嶺):
충청북도 단양군의 대강면 용부원리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소백산맥의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에 위치한다. 이 고개는 문경의 새재,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 대로의 3대 관문이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158)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에서 ‘죽령’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以西不歸於我則不返也遂與羅人戰於阿旦城下爲流矢所中而死
Ⓒ 편찬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온달 주007)
온달(溫達):
(?~590(영양왕 1)) 고구려 시대의 장군.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몹시 가난해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거리를 다니며 걸식을 하였다. 그런데 용모가 파리하고 우스꽝스러워 사람들로부터 ‘바보 온달’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평강왕의 공주를 처로 맞아들이면서 가세가 펴지게 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은 평양부 사이라 의 져근 주008)
져근:
젹-[少] + -은(관형사형 어미). 작은.
리 주009)
리:
[女] + -이(주격 조사). 딸이.
스스로 듕 주010)
중매(仲媒):
혼인을 할 만한 남녀를 소개해 주는 일.
야 달의 안해 주011)
안해:
아내[妻].
되엿더니 후쥬 무뎨 뇨을 틸 션봉이 되여 분로여 텨 주012)
분로여 텨[奮激]:
분발해서 공격함으로. ‘분로여’는 이 문헌 「충신도」에 모두 6회가 등장한다. 어근을 ‘분로’로 표기한 경우가 3회, ‘불로’로 표기한 경우가 3회로 각각 나타난다. 활용형도 오로지 ‘-야/여’의 형태만 나타난다. 이 낱말은 흔히 ‘분노(憤怒)’를 ‘분로/불로’로 표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한문 원문에서 ‘분로여/불로여’에 대응되는 한자를 찾아보면 모두 ‘분(奮)’ 내지 ‘분연(奮然)’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다 문맥상으로도 ‘분노(憤怒)’는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다음의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칼 분로여 딘을 텨 奮劒突陣(충신도 1 : 50ㄴ). 모 불로야 도적의 딘의 돌입여 죽다 奮身突入賊陣而死(충신도 1 : 54ㄴ).  불로야 바로 압 가 奮臂直前(충신도 1 : 63ㄴ). 이상의 예문에서 ‘칼 분로여’는 ‘칼을 들고 떨쳐 일어나’의 뜻으로, ‘모 불로야’도 ‘몸을 떨치고 일어나’ 정도로, ‘ 불로야’는 ‘팔뚝을 걷어붙이고’의 뜻으로 각각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분로/불로’는 ‘분노(憤怒)’를 나타내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크기 주013)
크기:
크게.
이긔니 이 대 벼슬 주엇더니 밋 평이 즉위호매 달이 엳와 주014)
엳와:
엳-[奏] + -아(연결 어미). 여쭈워.
오 신래 주015)
신래:
신라(新羅) + -ㅣ(주격 조사). 신라가.
우리 한븍  주016)
:
ㅎ[地] + -(목적격 조사). 땅을.
버혀 주017)
버혀:
버히-[割] + -어(연결 어미). 베어서. 잘라서.
군현 주018)
군현(郡縣):
옛날의 지방 행정 단위인 군(郡)과 현(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사마시니 주019)
사마시니:
삼-[爲] + -아시-(완료 시상 선어말 어미) + -니(종속적 연결 어미). 삼았으니.
원컨댄 대왕이 신으로 블쵸타 주020)
블쵸타:
블쵸-[不肖] + -다(평서법 어미). 못나고 어리석다.
마샤 주021)
마샤:
말-[勿] + -시-(주체 높임법) + -어(연결 어미). ~지 마시어.
군을 주어셔 가게 시면 반시 주022)
반시:
반드시[必]. 15세기에는 ‘반기’로 사용되었다.
내  다시 가지다 주023)
가지다:
가지-[持] + -리-(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 --(상대 높임법 선어말 어미) + -다(평서법 어미). 가지겠습니다. 탈환하겠습니다. 원래는 ‘-리다’인데, 이것이 줄어서 ‘-다’가 된 것이다.
이 허셔 주024)
허셔:
허-[許] + -시-(주체 높임법) + -어(종속적 연결 어미). 허락하시므로.
달이 님애 주025)
님애:
님(臨行) + -애(처격 조사). 출발할 때.
셰야 오 계립현 주026)
계립현(鷄立峴):
『신증 동국여지승람』 권14, 「충청도 연풍현(延豊縣)」 기록에 의하면 주정산(周井山) 인근에는 계립령(鷄立嶺)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마골재[麻骨岾]라고 불렀다. 이는 연풍현 북쪽 43리에 있다고 했는데 계립현은 이곳을 말한다. 그리고 주정산은 연풍현 북쪽 38리에 있다고 하였다.
듁녕으로 션녁키 주027)
션녁키:
셔(西) + -ㅅ(사이시옷) + 녘(쪽. 의존 명사) + -이(주격 조사). 서쪽이. ‘션녁’은 ㅅ이 ㄴ에 동화되어 ㄴ으로 소리나는 것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녘’은 15세기에 ‘녁’으로 사용되던 것이 유기음화한 것이다. 이 문헌에서 ‘녘’ 다음에 모음의 조사가 연결되면 ‘녁히, 녁희, 녁흘, 녁흐로…’처럼 ㅋ을 ㄱ, ㅎ으로 재음소화해서 표기하기도 하고, 여기서처럼 ‘녁키, 녁킈, 녁클, 녁크로…’ 등으로 중철 표기하기도 하였다. ¶동던 사이 다 네 녁흐로 흐터디거(충신도 1 : 73ㄴ).
내게 아니 오면 도라오디 아니호리라 드듸여 신나 사으로 더브러 아됴 아래 사호다가 흐 주028)
흐:
흐르는[流]. 날아오는.
살의 주029)
살의:
살[矢] + -의(처격 조사). 화살에.
마친 배 주030)
마친 배:
맞-[的中] + -히-(사동 접미사) + -ㄴ(관형사혀 어미) + 바(所. 의존 명사) + -ㅣ(주격 조사). 맞힌 바가.
되야 주그니라
Ⓒ 언해 | 이성 / 1617년(광해군 9)

온달서중 - 온달이 무리들에게 맹세하다
온달(溫達)은 평양부(平壤府) 사람이다. 고구려 25대 평강왕 주031)
평강왕(平岡王):
고구려 제26대 영양왕의 잘못.
(平岡王. 은 평강왕의 잘못)
의 작은 딸이 〈궁중에서 나와〉 스스로 짝을 찾아 온달의 아내가 되었다. 북주
(北周. 후주는 북주의 잘못)
의 무제(武帝)
주032)
북주(北周)ㆍ무제(武帝):
중국 북조(北朝)의 왕조(557~581). 서위(西魏)의 실권가인 우문태(宇文泰)가 죽고 아들 우문각(宇文覺)이 뒤를 이었을 때, 그를 보좌한 우문각의 사촌 우문호가 서위의 공제(恭帝)를 제위에서 밀어내고 이 왕조를 세웠다. 서위(西魏) 시대부터 고대의 주(周)를 본받았기 때문에 명칭을 북주라 하였는데,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 이래로 한화(漢化) 주의, 문벌(文閥) 주의를 배척하고 북족 존중(北族尊重)주의를 취하였으며, 소박(素朴) 주의 정치를 지향하였다. 제3대 무제(武帝) 때 북제(北齊)를 평정하여 화북(華北) 통일을 실현하고, 불교를 폐하여 왕권 강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무제의 아들 선제(宣帝)가 폭군이었기 때문에 민심을 얻지 못하였다.
가 요동(遼東)에 쳐들어오자 〈온달이〉 선봉이 되어 분발해서 공격함으로 크게 이기니, 왕이 대형(大兄) 주033)
대형(大兄):
고구려 관명의 하나. 일명 ‘힐지(虺支)’라고도 한다. 고구려의 초기 관제에는 보이지 않으나 3세기말의 사서에서부터 나타나 후기의 관제에는 14관등 중 제7위를 점하고 있다. 대형은 태대형·조의두대형·소형·제형 등과 함께 ‘형(兄)’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형은 본래 연장자 또는 족장의 뜻을 지닌 말인데, 고구려가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직 체계 안에 편입되면서 그 지위에 따라 이와 같이 다양하게 분화, 개편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만이 고구려의 단위부대장인 말객(末客)의 관직에 임명될 수 있었다.
벼슬을 주었다. 뒤미처 26대 영양왕 주034)
영양왕(嬰陽王):
(?~618) 고구려 제26대 임금. 25대 평강왕의 장남으로 이름은 원(元), 또는 대원(大元)이다.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는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임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왕이었다. 그는 566년 태자로 책봉되어 25년 동안을 태자로 생활하다가, 590년 왕위에 올라 618년까지 29년간 재위하였다. 586년 수도를 평양 장안성으로 옮기는 등 많은 변동이 있었다.
(嬰陽王. 평왕은 영양왕의 잘못)
이 즉위하니 온달이 여쭈어 이르기를, “신라가 우리의 한강(漢江) 이북 땅을 잘라서 자기들의 군ㆍ현(郡縣)으로 삼았으니, 원하건대 대왕께서 저를 불초하다고 보지 마시고 병사를 주어 쳐들어가게 하신다면 반드시 우리의 땅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허락하셨다. 온달이 길을 출발할 때 맹세 주035)
맹세(盟誓):
바로 앞 장에서는 ‘셔’로 표기되었다.
하여 이르기를,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의 서쪽 땅이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 하고는 드디어 신라군과 더불어 아조성(阿朝城) 주036)
아조성(阿朝城):
한문 원문에는 ‘아단성(阿旦城)’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한 『삼국사기』백제본기 책계왕(責稽王)에는 ‘아차성(阿且城)’으로 나온다.
아래에서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은 바 되어 전사하였다.
Ⓒ 역자 | 김문웅 / 2015년 5월 15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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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양강왕(陽岡王):고구려의 제25대 평강왕(平岡王. 일명 평원왕)의 잘못이다.
주002)
요동(遼東):중국 요하(遼河)의 동쪽 지방. 지금의 요녕성(遼寧省) 동남부 일대를 일컫는다.
주003)
선봉(先鋒):부대의 맨 앞에 나서서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
주004)
평강왕(平岡王):고구려 25대 평강왕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559년부터 589년까지의 재위기간 동안 흔들렸던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고 고구려 문명의 번영을 이루었던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양성이며, 24대 양원왕의 첫째 아들이다. 평강왕은 담력이 크고, 말을 잘 타며, 활쏘기도 잘하였다.
주005)
한북(漢北):한강의 북쪽.
주006)
죽령(竹嶺):충청북도 단양군의 대강면 용부원리와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소백산맥의 연화봉과 도솔봉 사이에 위치한다. 이 고개는 문경의 새재, 영동의 추풍령과 함께 영남 대로의 3대 관문이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158)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는 기록에서 ‘죽령’이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주007)
온달(溫達):(?~590(영양왕 1)) 고구려 시대의 장군. 어린 시절에는 집안이 몹시 가난해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거리를 다니며 걸식을 하였다. 그런데 용모가 파리하고 우스꽝스러워 사람들로부터 ‘바보 온달’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평강왕의 공주를 처로 맞아들이면서 가세가 펴지게 되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주008)
져근:젹-[少] + -은(관형사형 어미). 작은.
주009)
리:[女] + -이(주격 조사). 딸이.
주010)
중매(仲媒):혼인을 할 만한 남녀를 소개해 주는 일.
주011)
안해:아내[妻].
주012)
분로여 텨[奮激]:분발해서 공격함으로. ‘분로여’는 이 문헌 「충신도」에 모두 6회가 등장한다. 어근을 ‘분로’로 표기한 경우가 3회, ‘불로’로 표기한 경우가 3회로 각각 나타난다. 활용형도 오로지 ‘-야/여’의 형태만 나타난다. 이 낱말은 흔히 ‘분노(憤怒)’를 ‘분로/불로’로 표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한문 원문에서 ‘분로여/불로여’에 대응되는 한자를 찾아보면 모두 ‘분(奮)’ 내지 ‘분연(奮然)’으로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에다 문맥상으로도 ‘분노(憤怒)’는 전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다음의 경우가 해당될 것이다. ¶칼 분로여 딘을 텨 奮劒突陣(충신도 1 : 50ㄴ). 모 불로야 도적의 딘의 돌입여 죽다 奮身突入賊陣而死(충신도 1 : 54ㄴ).  불로야 바로 압 가 奮臂直前(충신도 1 : 63ㄴ). 이상의 예문에서 ‘칼 분로여’는 ‘칼을 들고 떨쳐 일어나’의 뜻으로, ‘모 불로야’도 ‘몸을 떨치고 일어나’ 정도로, ‘ 불로야’는 ‘팔뚝을 걷어붙이고’의 뜻으로 각각 풀이할 수 있을 듯하다. 따라서 ‘분로/불로’는 ‘분노(憤怒)’를 나타내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013)
크기:크게.
주014)
엳와:엳-[奏] + -아(연결 어미). 여쭈워.
주015)
신래:신라(新羅) + -ㅣ(주격 조사). 신라가.
주016)
:ㅎ[地] + -(목적격 조사). 땅을.
주017)
버혀:버히-[割] + -어(연결 어미). 베어서. 잘라서.
주018)
군현(郡縣):옛날의 지방 행정 단위인 군(郡)과 현(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주019)
사마시니:삼-[爲] + -아시-(완료 시상 선어말 어미) + -니(종속적 연결 어미). 삼았으니.
주020)
블쵸타:블쵸-[不肖] + -다(평서법 어미). 못나고 어리석다.
주021)
마샤:말-[勿] + -시-(주체 높임법) + -어(연결 어미). ~지 마시어.
주022)
반시:반드시[必]. 15세기에는 ‘반기’로 사용되었다.
주023)
가지다:가지-[持] + -리-(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 --(상대 높임법 선어말 어미) + -다(평서법 어미). 가지겠습니다. 탈환하겠습니다. 원래는 ‘-리다’인데, 이것이 줄어서 ‘-다’가 된 것이다.
주024)
허셔:허-[許] + -시-(주체 높임법) + -어(종속적 연결 어미). 허락하시므로.
주025)
님애:님(臨行) + -애(처격 조사). 출발할 때.
주026)
계립현(鷄立峴):『신증 동국여지승람』 권14, 「충청도 연풍현(延豊縣)」 기록에 의하면 주정산(周井山) 인근에는 계립령(鷄立嶺)이 있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마골재[麻骨岾]라고 불렀다. 이는 연풍현 북쪽 43리에 있다고 했는데 계립현은 이곳을 말한다. 그리고 주정산은 연풍현 북쪽 38리에 있다고 하였다.
주027)
션녁키:셔(西) + -ㅅ(사이시옷) + 녘(쪽. 의존 명사) + -이(주격 조사). 서쪽이. ‘션녁’은 ㅅ이 ㄴ에 동화되어 ㄴ으로 소리나는 것을 그대로 표기한 것이다. ‘녘’은 15세기에 ‘녁’으로 사용되던 것이 유기음화한 것이다. 이 문헌에서 ‘녘’ 다음에 모음의 조사가 연결되면 ‘녁히, 녁희, 녁흘, 녁흐로…’처럼 ㅋ을 ㄱ, ㅎ으로 재음소화해서 표기하기도 하고, 여기서처럼 ‘녁키, 녁킈, 녁클, 녁크로…’ 등으로 중철 표기하기도 하였다. ¶동던 사이 다 네 녁흐로 흐터디거(충신도 1 : 73ㄴ).
주028)
흐:흐르는[流]. 날아오는.
주029)
살의:살[矢] + -의(처격 조사). 화살에.
주030)
마친 배:맞-[的中] + -히-(사동 접미사) + -ㄴ(관형사혀 어미) + 바(所. 의존 명사) + -ㅣ(주격 조사). 맞힌 바가.
주031)
평강왕(平岡王):고구려 제26대 영양왕의 잘못.
주032)
북주(北周)ㆍ무제(武帝):중국 북조(北朝)의 왕조(557~581). 서위(西魏)의 실권가인 우문태(宇文泰)가 죽고 아들 우문각(宇文覺)이 뒤를 이었을 때, 그를 보좌한 우문각의 사촌 우문호가 서위의 공제(恭帝)를 제위에서 밀어내고 이 왕조를 세웠다. 서위(西魏) 시대부터 고대의 주(周)를 본받았기 때문에 명칭을 북주라 하였는데,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 이래로 한화(漢化) 주의, 문벌(文閥) 주의를 배척하고 북족 존중(北族尊重)주의를 취하였으며, 소박(素朴) 주의 정치를 지향하였다. 제3대 무제(武帝) 때 북제(北齊)를 평정하여 화북(華北) 통일을 실현하고, 불교를 폐하여 왕권 강화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무제의 아들 선제(宣帝)가 폭군이었기 때문에 민심을 얻지 못하였다.
주033)
대형(大兄):고구려 관명의 하나. 일명 ‘힐지(虺支)’라고도 한다. 고구려의 초기 관제에는 보이지 않으나 3세기말의 사서에서부터 나타나 후기의 관제에는 14관등 중 제7위를 점하고 있다. 대형은 태대형·조의두대형·소형·제형 등과 함께 ‘형(兄)’에서 파생되어 나왔다. 형은 본래 연장자 또는 족장의 뜻을 지닌 말인데, 고구려가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관직 체계 안에 편입되면서 그 지위에 따라 이와 같이 다양하게 분화, 개편된 것으로 보인다. 대형 이상의 관등을 가진 자만이 고구려의 단위부대장인 말객(末客)의 관직에 임명될 수 있었다.
주034)
영양왕(嬰陽王):(?~618) 고구려 제26대 임금. 25대 평강왕의 장남으로 이름은 원(元), 또는 대원(大元)이다. 훤칠한 외모를 가진 그는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할 임무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 왕이었다. 그는 566년 태자로 책봉되어 25년 동안을 태자로 생활하다가, 590년 왕위에 올라 618년까지 29년간 재위하였다. 586년 수도를 평양 장안성으로 옮기는 등 많은 변동이 있었다.
주035)
맹세(盟誓):바로 앞 장에서는 ‘셔’로 표기되었다.
주036)
아조성(阿朝城):한문 원문에는 ‘아단성(阿旦城)’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한 『삼국사기』백제본기 책계왕(責稽王)에는 ‘아차성(阿且城)’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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