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경언해』 해제
이유기(동국대학교 교수)
『지장보살본원경』(약칭 : 지장경)은 지장보살의 중생 구제 서원을 밝힌 책이다.
주001) 이하에서는 『지장보살본원경』을 약칭 『지장경』으로 부르기로 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뒤부터 미륵불이 이 세상에 올 때까지 부처 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6도(道)의 중생들을 제도(濟度)한다는 대비(大悲) 보살이다.
‘지장(地藏)’은 산스크리트어 kṣitigarbha(크쉬티가르바)의 번역어이다. ‘지(地)’는 ‘대지(大地), 토지(土地), 인류(人類)’ 등을 뜻하며, ‘장(藏)’은 ‘자궁(子宮), 태아(胎兒), 회태(懷胎)’ 등을 뜻한다.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참고 견디며 포용하는 것이 마치 대지와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묘당보살(妙幢菩薩), 보수보살(寶手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 걸차저벽바(乞叉底蘗婆), 지사제게바(枳師帝揭婆)’ 등으로도 불린다.
주002) 경성(京城) 종남산(終南山=남산) 약사전(藥師殿)에서 간행된 『지장경언해』(1765)는, 이 역주서의 저본인 견성암판 『지장보살본원경언해』(1762)보다 3년 뒤에 간행된 책인데, 이 책의 서문과 본문 사이에 끼워진 별지(別紙)에는(후술) ‘지장(地藏)’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순 한글로 ‘디언견후광함장(=地言堅厚廣含藏)’이라 적혀 있다. ‘지(地)’는 ‘견고하고 후덕함’을 뜻하고, ‘장(藏)’은 ‘풍부한 복덕을 머금었음’을 뜻한다고 풀이한 것이다.
요컨대 지장보살은 망자(亡者)를 포함한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광대무변의 서원을 품고 실천하는 보살이다. ‘지장보살’ 앞에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는 것은, 지장보살의 중생 구제 서원이 매우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지장 신앙은 한국, 중국, 일본의 민중 불교 신앙에서 관음 신앙과 함께 짝을 이루는 대표적인 민중 신앙이다. 관음보살은 현세 구원의 보살이고, 지장보살은 내세 구원의 보살이다.
주003) 지장보살이 내세만을 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장보살이 존망(存亡: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구제를 담당한다는 것은 이 책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지장 신앙이 드러난 불경에는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약칭 : 지장십륜경)과 『지장경』이 있다. 『지장십륜경』은 당(唐) 현장(玄奘)이 652년에 저술한 책인데, 총 8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장경』은 『지장십륜경』을 바탕으로 개편한 불경이다.
한역본 『지장경』에는 두 계통이 있다. 하나는 당(唐)의 실차난타(實叉難陀, 652 ~ 710)가 한역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唐)의 법등(法燈)이 한역한 것이다. 법등이 어떤 인물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남권희(2006:58)에서는 1127년에 입적(入寂)한 송대(宋代)의 승려(字 傳照)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였으나, 확실한 근거에 의한 것은 아니다. 실차난타의 번역은 상권·하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법등의 번역은 상권·중권·하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중 법등의 한역본이 주로 유통되었다.
『지장경』은 석가의 일대기와는 관련이 없는 대승 경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장경』의 일부(1품, 2품)가 『석보상절』(제11권)에 실리고, 『월인석보』(제21권)에서 전체(총 13품)가 수록된 것은, 「석보상절 서」에서 밝힌 소헌왕후의 추천(追薦)이라는 편찬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지장보살이 품은 망자(亡者) 구원의 서원(誓願)과 구제력(救濟力)은, 『석보상절』과 『월인석보』 편찬의 동기 및 목적과 정확하게 부합한다. 『지장경』에 반영된 효(孝) 사상은 두 책의 편찬 동기나 목적과도 부합하지만, 유교 이념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책의 효 사상은 지장보살의 전생담(前生譚)에서 잘 드러난다. 광목(廣目)이라는 여인이 현세에서 죄를 많이 지은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한 끝에 각화정자재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구원하게 된다. 이 광목이 바로 지장보살의 전신(前身)이다. 이 책이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간행된 것은, 내세의 구원에 대한 보편적 소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유교 이념과 통하는 측면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지장경』은 『석보상절』 제11권에서 처음으로 언해되어 실렸다. 그러나 거기서는 제1품과 제2품만 수록되어 있고, 분량도 열 장(張)이 채 안 될 정도로 아주 간략하다. 부처가 석제환인의 요청에 따라, 세상을 떠난 마야 부인이 있는 도리천에 간다는 이야기에 이어서, 제1품 「도리천 신통품」과 제2품 「분신집회품」까지만 나온다. 그러던 것이 『월인석보』 제 21권(상·하)에서는 총13품 모두가 완역되었으며, 분량도 총 187장 반(半)으로 크게 늘어난다.
주004) <풀이>『월인석보』 제 21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권 222ㄴ(하권의 장차는 새로이 시작되지 않고, 상권의 장차를 이어받아서, 115로 시작하여 224에서 끝난다.)에서 끝나는데, 187ㄱ중간부터는 세존이 도리천에서 『지장경』을 설법하는 동안 우전왕과 바사닉왕이 세존을 그리워하며 불상을 조성하는 이야기, 세존이 돌아와 조성된 불상을 보며, 부촉(咐囑)한 이야기(이상의 저경은 『석가보』)에 이어서, 인욕태자의 효행 이야기와 녹모부인의 공덕 이야기(이상의 저경은 『대방편불보은경』)로 끝난다.풀이>
현전하는 언해본에는 두 종류가 있다. 이 역주서의 역주 대상은 (1가)이다.
주005) <풀이>『지장보살본원경』의 판본에 대한 연구는 남권희(2006)에서 종합적으로 이루어졌다. 한문본, 구결본, 언해본, 음역본, 필사본이 소개되어 있다.풀이>
(1) 언해본의 판본
가. 견성암판(見性菴版) 지장보살본원경언ᄒᆡ
: 1762년(영조 38) 함경도 문천(文川) 두류산(頭流山) 견성암 간행,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나. 약사전판(藥師殿版) 지장보살본원경언ᄒᆡ
: 1765년(영조 41) 경기도 종남산(終南山) 약사전 간행, 규장각 등 소장.
이 책은 목판본이며 상·중·하 3권 1책이다. 판식(板式)은 4주(四周) 단변(單邊)이며, 반곽(半廓) 23.1☓16.3cm에 유계(有界) 10행 16자이다. 어미(魚尾)는 상하향(上下向) 혼엽화문어미(混葉花紋魚尾)이다.
서문이 끝나면, 다음 장 첫 줄의 권수제 위치에 ‘지장보살본원경언ᄒᆡ권샹’이라고 적혀 있고, 다음 두 줄에 걸쳐서 ‘월린쳔강지곡졔이십일’과 ‘셕보샹졔이십일’이 적혀 있다.
주006) ‘월인’이 ‘월린’으로 되어 있고, ‘셕보샹’도 한 글자가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 글자가 빠진 ‘셕보샹’은 견성암판을 따르고 있는 약사전판(1765)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견성암판에서 한 글자가 빠진 원인은 분명치 않다. 의도적인 누락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장경』은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상(祥)’과 ‘절(節)’ 중 ‘상(祥)’에 해당한다. 『석보상절』의 중심 내용으로 기획한 석가의 일대기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견성암판에서 ‘절(節)’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명을 자의적으로 바꾸어 썼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수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서는 ‘12품’의 제목에 붙은 번호에서도 실수를 범하였다. ‘뎨 십이(第十二)’라고 적어야 할 것을 ‘뎨 십’이라고 적은 것이다(하8ㄴ). 또 언해문의 내용 중에도 누락된 부분이 있다. ‘댜ᇰ쟈아’(중19ㄱ) 뒤에서 ‘閻浮衆生 若能爲其父母 乃至眷屬’(벽송암판 중15ㄴ-16ㄱ)이 언해되지 않고 누락되었다. 그 밖에도 실수가 아주 많아서, ‘셕보샹’ 역시 실수로 보인다.
제4행부터 본문이 시작된다. 판심제(版心題)는 ‘지샹, 지즁, 지하’로 나타나며, 장차(張次)는 권별(卷別)로 따로 매겼다.
이 책과 같이 『지장경』 총 13품을 모두 언해한 『월인석보』(21)은 권수제가 ‘月·ᅌᅯᇙ印·ᅙᅵᆫ千쳔江가ᇰ之징曲·콕第·똉二·ᅀᅵᆼ十·씹一·ᅙᅵᇙ’이며, 이어서 ‘釋·석譜·봉詳쌰ᇰ節·져ᇙ第·똉二·ᅀᅵᆼ十·씹一·ᅙᅵᇙ’이 나오고, 본문이 시작된다. 본문은 월인천강지곡 ‘기 412-기 417’로 시작되고, 이어서 산문이 이어진다. 견성암판 언해본은 『월인석보』(21)와 내용이 같지만, ‘월인천강지곡’의 곡차(曲次) 표시가 없다. 이 책에 곡차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총 25권의 『월인석보』와 달리, 이 책은 ‘지장보살본원경’ 부분만으로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월인천강지곡』이나 『월인석보』에 표시된 곡차는 이 책에서는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간혹 각 곡(曲)의 절(節)이 끝날 때 빈 칸을 두거나, 아예 그 행의 남은 칸을 다 비우기도 하였는데, 매우 불규칙적이다. 심지어 월인천강지곡이 끝나고, 산문이 시작되는 대목(상2ㄱ:1)에서는 행도 바꾸지 않았을뿐더러, 빈 칸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앞에 붙은 서문(序文)과 끝에 붙은 간기(刊記)와 시주질(施主秩)은 한자로 기록되어 있다. 용봉(龍峯)이 쓴 「지장경언해서(地藏經諺解序)」에는 서문을 쓴 해가 ‘임오년(壬午年)’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임오년은 간기에 적힌 ‘건륭 27년(乾隆二七年; 1762)’과 같은 해이다. 서문에서는 또 이 책이 공덕주 신명화(申命和)의 원력(願力)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신명화는 재주가 뛰어난 세 아들이 높은 벼슬에 올랐다가, 동시에 모두 죽어서 슬퍼하는 꿈을 꾼 뒤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 후에 또 꿈에 용을 타고 월궁(月宮)에 갔다가 내려왔는데,
두유산(斗游山) 주007) 서문에는 ‘두유산(斗游山)’으로 적혀 있는데, 간기(刊記)에는 ‘두류산(頭流山)’으로 적혀 있다.
에서 그곳과 같은 장소가 있어서, 거기에다 견성암(見性菴)을 지었다는 이야기 등을 전하고 있다. 서문에서는 또 이 책의 언해자가 ‘묘향산인(妙香山人) 관송장로(觀松長老)’임을 밝혔다.
간기에는 대공덕주(大功德主) 신명화(申命和)와, 위연화주(偉演化主) 거사(居士) 설징(雪澄), 도감(都監) 법균(法均) 등의 명단과 판하(版下)를 쓴 별좌(別座) 윤기(允紀), 각원(刻員) 비구(比丘) 우천(宇天) 등의 명단이 적혀 있다. 이어서 건륭 27년
문천(文川) 주008) <정의>함경도 문천군이다. 지금은 북한의 강원도에 속한다.정의>
두류산(頭流山) 견성암(見性菴)에서 개판한 사실이 드러나 있으며, 그에 이어서 시주질(施主秩)이 나온다.
본문은 온전히 한글로만 적혀 있다. 상·중·하 3권 1책인데, 상권 앞에는 부처가 석제환인의 요청에 따라, 세상 떠난 어머니가 있는 도리천에 간다는 이야기에 이어서, 『월인천강지곡』의 제 412-417곡이 나오고, 다음으로는 부처가 석제환인의 요청에 따라,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 부인 앞에서 설법하기 위해 33천에 간다는 이야기가 나온 뒤에, 『지장경』의 제1품이 시작된다. ‘지장경’ 부분은 13품(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품의 시작 위치와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각 품의 시작 위치와 내용
제1 도리텬궁신통품(忉利天宮神通品) : 상2ㄱ
여래가 도리천궁에서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을 하면서 큰 신통을 나타내 보임.
제2 분신집회품(分身集會品) : 상14ㄱ
도리천궁에 모여든 지장보살의 한량없는 분신들과 대중들 앞에서 여래가 중생 구제를 부촉함.
제3 관중ᄉᆡᆼ업연품(觀衆生業緣品) : 상17ㄱ
지장보살이 마야 부인에게 중생들의 업의 인연을 설하고, 지옥의 종류를 소개함.
제4 즁ᄉᆡᆼ업감품(衆生業感品) : 상22ㄴ
주009) 한문본인 벽송암판(상19ㄴ)과 송광사판(상16ㄱ)에는 ‘閻浮衆生業感品’으로 적혀 있다.
여래가 지장보살의 전생담(前生談)을 소개하고, 지장보살은 염부제 중생들의 업에 따른 과보를 설명하여, 제도한다고 밝힘.
제5 디옥명호품(地獄名號品) : 중1ㄱ
보현보살의 요청에 의해 지장보살이 다양한 지옥의 이름과 그 고통을 소개함.
제6 여ᄅᆡ찬탄품(如來讚嘆品) : 중5ㄱ
여래가 지장보살의 불가사의한 위신력과 원력을 찬탄함.
제7 존망니익품(存亡利益品) : 중14ㄴ
주010) 한문본인 벽송암판(중12ㄱ)과 송광사판(중11ㄴ)에는 ‘利益存亡品’으로 적혀 있다.
죄업의 길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하고, 49재가 산 자와 죽은 자에게 미치는 공덕을 설함.
제8 염나왕즁찬탄품(閻羅王衆讚嘆品) : 중19ㄴ
여래가 도리천에 모여든 염라대왕의 무리들의 중생 교화 원력을 찬탄함.
제9 칭불명호품(稱佛名號品) : 중28ㄱ
지장보살이 여래에게 만약 사람들이 과거의 많은 부처님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이익과 공덕이 한량없을 것이라고 말함.
제10 보시교량공덕연품(布施校量功德緣品) : 하1ㄱ
주011) 한문본인 벽송암판(하1ㄱ)과 송광사판(하1ㄱ)에는 ‘교량보시공덕연품(校量布施功德緣品)’으로 나타난다. 이 책(하1ㄴ)의 품명(品名)이 ‘보시교량공덕연품’인 것은, ‘염부뎨 보시 공덕 경즁 혜아리믈 니니’(1ㄴ)의 원문 ‘說閻浮提 布施校量 功德輕重’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근본 원인은 ‘閻浮提’이다. ‘閻浮提’가 쓰인 이상 그 바로 뒤에 ‘閻浮提’의 피수식어인 ‘布施’가 나와야 한다. ‘說閻浮提 校量布施 功德輕重’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閻浮提’를 떼어 내고 어법에 맞는 품명(品名)을 만들고자 한다면, ‘閻浮提’의 피수식어였던 ‘布施’를 ‘校量’과 ‘功德’ 사이로 이동시켜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익숙한 본문 ‘說閻浮提 布施校量 功德輕重’을 살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여래가 지장보살에게 여러 가지 보시의 공덕을 비교하여 설명함.
제11 디신옹호품(地神擁護品) : 하5ㄴ
주012) 한문본인 벽송암판(하5ㄱ)과 송광사판(하5ㄱ)에는 ‘地神護法品’으로 적혀 있다.
토지의 신(神)인 견뢰지신(堅牢地神)이 지장보살의 중생 교화 원력을 다른 보살과 비교하여 찬탄함.
제12 견문니익품(見聞利益品) : 하8ㄴ
여래가 관세음보살에게 중생들이 잠깐 동안 지장보살을 보고, 지장보살 이름을 듣고 우러러 예배하여도 그 이익이 아주 큼을 설함.
제13 쵹누인쳔품(囑累人天品) : 하19ㄴ
여래가 지장보살에게 모든 사람들과 천신들을 잘 보살피라고 부촉함.
약사전판은 견성암판보다 3년 뒤에 간행되었는데, 견성암판에 없던 구두점이 있고, 견성암판의 내용을 고친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약사전판은 견성암판과 같이 10행 16자이며, 글자 모양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같다.
주013) 서문은 견성암판이 9행 16자, 약사전판이 8행 17자이다.
견성암판의 내용이 수정된 경우에도 글자 수에 차이가 없다. 견성암판의 ‘월인천강지곡’ 부분(1ㄱ-ㄴ)에는 빈칸이 있다. 곡(曲) 단위로 빈칸을 둔 곳도 있고, 한 곡의 절(節) 단위로 빈칸을 둔 곳도 있다. 그런데 매우 매우 불규칙적이다. 약사전판에서는 그것조차도 그대로 반영하였다.
약사전판에는 서문과 ‘지장경언해’ 사이에 견성암판에는 없는 별지(別紙) 한 장이 추가되어 있다. 별지의 장차가 ‘일(一)’로 붙어 있지만, 다음 장(張)에서 본문이 다시 ‘일(一)’로 시작되므로, 이 장차는 무의미한 것이다. 판식도 본문의 것과 다르고, 글자 모양에도 차이가 있다. 본문과 달리 초성과 종성의 ‘ㅇ’이 모두 ‘ㅿ’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며, ‘ㅎ’의 ‘ㅇ’ 부분도 ‘ㅿ’ 모양으로 나타난다. ‘지장법회 계청(啓請)’에 해당하는 내용, ‘귀경게(歸敬偈)’에 해당하는 내용, ‘ᄀᆡ경게(開經偈)’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3) 지심귀명녜 어장경에 니시 보살이 칠월 삼십일에 야 계시니 가히 맛당히 셜을 닷가 공양 녜찬면 복을 지으리라
이 부분은 재(齋), 즉 지장법회를 권장하는 ‘계청(啓請)’에 해당한다. ‘책’의 첫머리에 ‘법회’를 권유하는 글을 실은 것이다. 여기의 ‘어장경, 칠월 삼십일, 보살’이 수수께끼인데, 이것은 국립중앙도서관본 『지장보살본원경』(1485, 실차난타 역)』의 앞머리에 적혀 있는 ‘按藏經云 菩薩是七月三十日生 可宜修齋供養禮讚作福’을 번역한 것이다.
주014) ‘가히 맛당히 셜을 닷가 공양 녜찬면 복을 지으리라’는 오역인 듯하다. ‘가히 맛당히 셜을 닷가 공양 녜찬야 복을 지어야 ᄒᆞ리라’가 옳은 번역으로 보인다.
약사전판의 ‘귀경게(歸敬偈)’에 해당하는 내용과 ‘ᄀᆡ경게’ 부분은 한글로 적혀 있는데, 이 둘은 국립중앙도서관본의 내용을 음역(音譯)한 것이다. 약사전판의 별지 한 장 전체가 국립중앙도서관본 『지장보살본원경』(1485)의 내용을 옮긴 것이다.
‘어장경’은 ‘按藏經(안장경)’을 옮겨 적은 것이다. ‘按藏經(안장경)’은 ‘장경(藏經)을 보니’를 뜻하는 듯한데, 그렇다면 ‘장경(藏經)’은 경전 이름일 것이고, ‘어장경’의 ‘어’는 ‘於(어조사)’일 것이다. ‘보살’은 구체적인 날짜를 보아, 실존했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근거가 충분치 않지만, 이 ‘보살’은 당나라에서 ‘김지장(金地藏)’으로 불리며,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던 신라 출신 김교각 스님(金喬覺, 695~794)으로 보인다. 김교각 스님이 열반에 든 날이 바로 7월 30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주015) 김교각 스님의 등신불이 중국 안휘성 구화산 화성사 육신보전(中國 安徽省 九華山 化城寺 肉身寶殿)에 모셔져 있다. 동판(銅版)에는 ‘新羅國王子 姓金 名喬覺 唐 貞觀二年 七月三十日生’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김교각 스님은 신라 왕자 출신이었다고 하는데, 누구의 아들인지는 분명치 않다. 33대 성덕왕의 첫째 아들 중경(重慶) 또는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4세에 당나라에서 출가하여, 안휘성 구화산(九華山)을 지장보살 성지로 일으켜 세우고, 속세 나이 만 99세 때에 열반하였다고 한다. 육신을 항아리에 3년간 넣어 두었다가, 개금(蓋金)을 하기 위해 항아리에서 꺼냈는데, 몸이 살아있을 때와 같았다고 한다. 797년에 구화산에 등신불을 세웠다.
구화산 화성사(化城寺)에서는 지금까지도 7월 30일을 기해, 3일간 지장법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비관경(費冠卿)이 쓴 『구화산화성사기(九華山化城寺記)』와. 이용(李庸)이 편찬한 『구화산지(九華山志)』에 스님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강맹산 1993). 이백(李白, 701~762)이 스님을 찬탄한 시 「지장보살찬(地藏菩薩贊)」이 전하고 있기도 하다. 약사전판에 기록된 ‘보살’이 김교각 스님이라면, 김교각 스님과 관련된 중국의 지장 신앙이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같은 낱말이 서로 다르게 표기된 예가 아주 많다. 대표적인 예가 ‘사람’에 해당하는 낱말을 6가지로 표기한 것인데, 대부분의 예에서 ‘ㆍ’의 소멸을 반영하고 있다.
(4) ‘사람’의 표기
주016) 한 문장 안에서 ‘사름, 사ᄅᆞᆷ’이 공존하는 경우(중26ㄱ)도 있다.
가. 사ᄅᆞᆷ(중21ㄴ, 중23ㄱ, 중26ㄱ)
나. 사름(중18ㄱ, 중19ㄱ, 중24ㄱ, 중25ㄱ, 중26ㄱ)
다. 살음(중10ㄴ, 하21ㄴ)
라. 사롬(중9ㄱ)
마. 살ᄋᆞᆷ(중12ㄱ)
바. 살름(중28ㄴ)
‘구완’도 ‘구안’으로 적힌 예가 있다.
(5) ‘구완’의 표기
가. 구완 : 상12ㄱ, 상22ㄴ, 상25ㄱ, 상25ㄴ, 상27ㄱ, 상30ㄴ, 중18ㄴ, 중23ㄱ, 하21ㄴ, 중28ㄱ
나. 구안 : 상2ㄱ, 상12ㄱ
‘구완’의 현대국어 어형은 ‘구완’이다. 주로 합성어 ‘병구완’의 구성 요소로 쓰인다.
주017) <풀이>『표준국어대사전』에는 현대국어 ‘구완’이 한자어 ‘救患’에서 변한 것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중세국어 문헌에 한글로 표기된 ‘구완’이 많이 나타나는 사실로 보아, 이 추정을 믿기 어렵다. 여러 용례를 보면, 의미 면에서 보더라도 중세국어의 ‘구완’은 ‘환란에서 구해 줌’보다는 ‘도와 줌’의 의미에 가깝다. 만약 한자어 ‘救患’이었다면, 중세국어 시기의 집필자들이 그것을 몰랐을 가능성은 적고, 그것을 알았다면 ‘救患’(한자 표기) 또는 ‘구환’(한글 표기)으로 적었을 것이다. ‘구안’ 또는 ‘구완’은 ‘救援’에서 비롯된 말일 가능성이 있다. ‘援’의 독음은 『동국정운』(3:26ㄱ)에서는 ‘ᅌᅯᆫ, ·ᅌᅯᆫ’으로 나타나지만, 『번역소학』(6:12ㄴ), 『동국신속삼강행실도』(충 6ㄴ), 『여씨향약언해』(화산 34ㄴ)에서 ‘救援’이 ‘구완’으로 나타난다.풀이>
모음으로 끝나는 한자어 뒤에 주격 조사 ‘ㅣ’나, 관형격 조사 ‘ㅣ’ 및 서술격 조사 어간 ‘ㅣ-’가 결합할 때에 ‘ㅣ’를 한자어의 마지막 음절에 붙이지 않고 독립시켰다.
(6) 한자어 뒤의 조사 표기
가. 문슈ㅣ=文殊ㅣ(상1ㄱ, 상2ㄴ)
나. 법왕ㅣ=法王子ㅣ(상1ㄴ)
다. 쳔엽연화ㅣ=千葉蓮花ㅣ(상2ㄴ)
라. ᄇᆡᆨ년화ㅣ 곧=白蓮華ㅣ(상3ㄱ)
주018) <풀이>‘년화ㅣ 곧’(상3ㄱ)은 ‘백연화(白蓮華) 꽃’이란 뜻이다. 『월인석보』(21상 6ㄴ)에는 주격의 ‘白蓮花ㅣ’로 표기되어 있던 것인데, 여기서는 관형격 조사가 쓰였다. 동어 반복의 ‘화’와 ‘곧’ 사이에서 관형격 조사가 쓰인 것이다.풀이>
마. 마야ㅣ=摩耶ㅣ(상3ㄱ)
바. 수이=數ㅣ(상28ㄱ)
사. 실달다ㅣ면=悉達多ㅣ면(상3ㄱ)
아. 졍쥬니라=淨住ㅣ리라(중27ㄴ)
주019) ‘졍쥬니라’는 ‘淨住ㅣ리라(월석21:129ㄱ-ㄴ)’의 ‘-리-’를 ‘-니-’로 잘못 옮긴 것이다. 제대로 적은 곳도 있다. ‘결ᄉᆡ 스러디거늘(상3ㄴ)’이 그것인데, ‘결ᄉᆡ’는 ‘結使ㅣ’(월석 21:7ㄴ)를 옮겨 적은 것이다.
한편, ‘샹회ㅣ=相好ㅣ(상7ㄴ), 셩녜ㅣ=聖女ㅣ(상8ㄴ)’와 같은 중복 표기도 보인다.
이 책에는 근대국어 문헌의 특징인 과잉교정의 사례가 아주 많다.
(7) 구개음화 관련 과잉교정
가. 일워디다=이루어지이다(상28ㄱ)
나. 오딕=오직(중7ㄴ, 중16ㄱ, 하7ㄴ)
다. 디으며=造(중16ㄱ)
라. 딜드려=길들여(중21ㄴ)
마. 딥=집(하5ㄴ, 하6ㄴ, 하11ㄴ)
바. 가딛=가지(種)의(상16ㄱ, 하22ㄴ), 가디(중8ㄱ)
사. 가디로=함께(상24ㄱ)
(8) 원순모음화 관련 과잉교정
가. 믈이=衆(중8ㄱ, 중26ㄴ, 하4ㄴ)
나. 셩문벽디블=聲聞辟支佛地(상7ㄱ)
주020) ‘佛’의 전통음이 ‘불’이었으므로, ‘블’은 원순모음화의 추세에 이끌린 과잉교정이고, ‘支’의 전통음이 ‘지’였으므로, ‘디’는 구개음화의 추세에 이끌린 과잉교정이다.
(9) 7종성표기법 관련 과잉교정
가. 이욷=이웃(상24ㄱ)
나. 나랃=나라의(상24ㄱ)
다. 읻ᄂᆞᆫ=있는(상24ㄱ)
라. 걷=것(상24ㄴ)
이 책에는 오각이 아주 많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
(10) 가. 즈믄=千(월석 21상 5ㄴ) → 몯(상2ㄴ)
나. 즈믄=千(월석 21상 14ㄱ) → 몯(상6ㄱ)
다. 즈믄=千(월석 21상 18ㄱ) → ᄌᆞᄆᆞᆮ(상7ㄴ)
라. 즈믄=千(월석 21상 16ㄴ) → 스므(상7ㄱ)
마. 모댓ᄂᆞ니ᄅᆞᆯ=모인 이를(월석 21상 14ㄱ) → 모닷ᄂᆞᆫ 일ᄋᆞᆯ(상6ㄱ)
주021) 이 경우는 각수의 실수가 아니라 언해자가 『월인석보』(21)을 오독한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 책의 서문에서 ‘이 경이 일찍이 언해된 적이 없다(此經曾無諺解)’고 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이 책의 권수제 위치의 ‘지장보살본원경언ᄒᆡ’ 바로 다음 줄에 ‘월린쳔강지곡졔이십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언해된 적이 없다’고 한 말과 배치된다.
바. 願ᄒᆞᆫ ᄃᆞᆫ=원하는 것은(월석 21상 22ㄱ) → 원(상10ㄱ)
사. 돌=石(월석 21상 81ㄱ) → ᄂᆞᆯ(중4ㄴ)
자. 제왕(월석 21상 61ㄱ) → 뎨앙(상29ㄱ)
차. 瞋恚(월석 21상 61ㄱ) → 진유(상31ㄱ)
‘즈믄’을 틀리게 적은 예가 많은 것이 특이하다. 한편 이 책 상권의 끝(상33ㄱ-상34ㄴ)에는
주022) 『지장경』에는 없는 ‘구죡수화 길샹광명 대긔명쥬 총디쟝구(具足水火 吉祥光明 大記明呪 摠持章句)’ 즉 ‘츰부다라니’가 실려 있다.
주023) 한문본인 벽송암판(상27ㄴ-상29ㄴ)과 송광사판(상24ㄴ-상26ㄴ)에는 이 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벽송암판에는 독음도 함께 적혀 있는데, 『월인석보』(21)의 된소리가 예삿소리로 나타나는 등의 차이가 있다.
츰부다라니는 『지장십륜경』에 있는 것을 『월인석보』(21:70ㄱ-73ㄱ)에서 수록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견성암판의 다라니 독음 중에는 『월인석보』(21)의 독음과 다른 것이 많이 있다. 언해자가 『월인석보』(21)의 것을 오독한 결과일 수도 있고, 각수의 실수일 수도 있다. ‘머때→머패, 더때→더패, 미리띠→미리피, 미리때→미리패, 번자띠→번자퍼’ 등이 그 예인데, 모두 자양(字樣)의 유사성 때문에 일어난 잘못이다.
이 책에는 음운 소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오독하게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주024) 이 사실 외에도 혼란스러운 표기, 적지 않은 오각 등 때문에,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월인석보』(21) 및 한문본과의 철저한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는 그러한 몇 가지 예를 살펴보고자 한다.
(11) 가. 이(중10ㄴ)
나. 만나던(상31ㄱ)
다. ᄒᆞ노니(상11ㄴ)
(11가)의 ‘이ᄅᆞᆯᄉᆡ’는 중세국어의 ‘이럴ᄊᆡ’에 해당한다. ‘ㅓ’가 ‘ㆍ’로 적힌 셈이다. 이 현상은 두 가지 전제를 통해 해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첫째는 ‘ㆍ’가 이미 소실하여 ‘ㅡ’로 변화한 사실이고, 둘째는 언해자에게는 ‘ㅓ’와 ‘ㅡ’가 비변별적이었을 가능성이다. 즉 ‘ㆍ’가 ‘ㅡ’와 합류하게 되자, ‘ㅡ’와 비변별적인 ‘ㅓ’조차도 ‘ㆍ’로 표기하게 된 것(보수적인 표기)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1나)의 ‘만나던’은 『월인석보』(21:64ㄴ)의 ‘맛나ᄃᆞᆫ’이 바뀐 것이다. 조건을 뜻하는 연결 어미 ‘-아ᄃᆞᆫ’의 ‘ㆍ’가 ‘ㅡ’로 변화한 후, ‘ㅡ’와 ‘ㅓ’를 혼동하여 ‘ㅓ’로 적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1다)의 ‘ᄒᆞ노니’는 ‘ᄒᆞ-+ᄂᆞ+오/우+니’로 간주하기 쉽다. 실은 이 ‘ᄒᆞ노니’는 중세국어의 ‘ᄒᆞᄂᆞ니’가 발달한 것이다. ‘ㆍ’의 음운 소실에 따라 ‘ㆍ’가 ‘ㅗ’로 변한 것이다. 이처럼 음운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오독하기 쉬운 예들이 이 책에는 아주 많다.
주025) 이와 반대로, 문법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공시적 구조를 오해하기 쉬운 예도 있다. ‘닷그되=닦되(중17ㄱ)’가 그것이다. ‘닷그되’에서 매개모음 ‘으’를 분석해 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으’는 매개모음이 아니다. 『월인석보』(21:107ㄴ)에는 ‘닷고ᄃᆡ’로 나타나므로, 중세국어의 ‘-오ᄃᆡ’가 이 책에서 ‘-으되’로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으’는 ‘오’의 흔적인 것이다.
이 책에 쓰인 조사 중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12) 가. 젼오(중16ㄱ, 중25ㄱ)
주026)
나. 녀어나(중31ㄱ)
(12가)의 ‘젼ᄎᆡ오’는 중세국어 문헌의 ‘젼ᄎᆞ오’에 해당한다.
주027) ‘젼ᄎᆞ오’의 ‘오’는 널리 알려진 ‘ㄱ’ 약화(유성성문마찰음화)의 일반적 환경에서 벗어난다. ‘ㄱ’ 약화의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구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젼ᄎᆞ오’의 ‘오’는 의문 보조사 ‘고’의 이형태인데, 서술격 조사 어간 ‘이-’ 뒤에 쓰이는 일이 없었다. ‘젼ᄎᆡ오’의 서술격 조사는 두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첫째는 ‘고/오’의 문법적 성격이 보조사에서 종결 어미로 변화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세국어의 ‘젼ᄎᆞ오’에 ‘이-’가 생략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주028) 한편 여기서 ‘고/오’의 청자 대우 기능이 문제가 된다. 의문 보조사 ‘고/오’는 ‘ᄒᆞ라체’에 속한다. 그런데 이 대목은 지장보살이 석가 세존께 말하는 대목으로서, ‘ᄒᆞ쇼셔체’를 써야 하는 장면이다. ‘젼ᄎᆡ오’가 내적 화법, 즉 독백으로 쓰인 것이거나, 아니면 ‘젼ᄎᆡ오’가 청자 대우와 무관하게 쓰일 수 있는 관용성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다른 곳에서도 ‘ᄒᆞ쇼셔체’ 대화 속에 개입한 ‘젼ᄎᆞ오(중25ㄱ), 젼ᄎᆡ오(중25ㄴ)’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중세국어어 시기의 ‘고’는 보조사가 아니라 어미가 될 것이다.
(12나)의 ‘녀어나’는 『월인석보』(21:136ㄱ)의 ‘女ㅣ어나’가 바뀐 것이다. 서술격 조사 어간이 개입하지 않고, ‘-어나’가 붙은 특수한 예인데, 구어체의 반영일 가능성도 있다.
이 책에서는 ‘에’가 관형격 조사로 쓰인 예가 아주 많다.
(13) 블가ᄉᆞ의에(상3ㄴ), 타방국토애(상5ㄱ), 사바셰계예(상5ㄱ, 상5ㄴ),
ᄯᅳ데(상10ㄱ), 셰존에(상23ㄴ), 근원에(상27ㄱ)
관형격 조사가 ‘에’로 표기된 현상은, 현대국어 관형격 조사 ‘의’가 실제로는 [에]로 발음되는 현상과 관련하여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현대국어의 규범 표기 ‘의’와는 무관하게, 관형격 조사는 18세기 무렵부터 [e]로 실현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주029) 전광현(1997:39)에서는 18세기 후반기에 ‘에, 애’가 단모음화하였다고 하였다.
‘마하살로(하8ㄱ)’의 ‘로’는 주격 위치에 쓰인 것이다. 『월인석보』(21:148ㄴ)에는 ‘摩訶薩ᄋᆞᆫ’으로 적혀 있고, 벽송암판(하5ㄱ)에는 ‘摩訶薩’으로 적혀 있다. 실수일 가능성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현대국어의 ‘저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와 같은 문장에서 ‘로’는 주격의 위치에 쓰인 것이다. 물론 현대국어 ‘로서’는 ‘로셔’의 발달형일 것이고, ‘로셔’의 구조가 ‘로+이시/시-[在]+어’라면, ‘로셔’의 ‘로’는 부사격 조사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마하살로’의 ‘로’가 주격 조사일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본다.
이 책에는 다른 문헌에서는 보기 어려운 낱말 몇 가지가 있다.
(14) 가. ᄇᆞ열(상20ㄱ)
나. 슨(중16ㄱ), 쓴(중25ㄱ, 중25ㄴ)
다. 니르거나(중9ㄴ, 중15ㄱ), 닐으면(중10ㄴ), 니ᄅᆞ거나(중11ㄴ),
닐으며(중24ㄱ, 하7ㄱ), 닐ᄅᆞ거나(중11ㄴ), 닐으되(하7ㄴ),
일은=읽은(하8ㄱ), 닐너(하15ㄱ)
라. ᄀᆞ라(중15ㄱ)
(14가)의 ‘ᄇᆞ열’은 ‘창자’를 뜻한다. ‘ᄇᆡᅀᆞᆯ’이 ‘ᄇᆡ알’과 ‘ᄇᆞ얄’을 거쳐, ‘ᄇᆞ열’로 변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국어의 ‘배알, 밸’에 해당한다. ‘ᄇᆡᅀᆞᆯ’의 ‘ᅀᆞᆯ’은 본래 ‘ᄉᆞᆯㅎ[肌]’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ᄇᆞ열’의 ‘열’은 ‘아이들이 자기 나이에 비해 더 유치하다’를 뜻하는 현대국어 ‘열없다’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다. ‘열’이 ‘속’을 뜻한다면 가능한 현상이다.
(14나)의 ‘슨/쓴’은 추가 용례를 찾지 못하였다. ‘엇디 슨 젼ᄎᆡ오(중16ㄱ), 엇디 쓴 젼오(중25ㄱ), 얻디 쓴 젼ᄎᆡ오(중25ㄴ)의 원문은 모두 ‘何以故’(벽송암판 중13ㄴ, 중21ㄴ, 중21ㄴ)이다. 짐작하건대 ‘슨(쓴)’은 ‘되다’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스다(쓰다)’의 관형사일 가능성이 있다. 현대 전라 방언의 ‘쓰다’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14다)의 ‘니르/닐으- …’ 등은 ‘읽-[讀]’을 뜻한다. 다른 문헌에서는 용례가 드문데, 이 책에서는 많이 나타난다. 중세국어 어휘는 ‘닑다’인데, ‘닑다’가 ‘니르다’로 발달하기는 어렵다. 근대국어 이전 시기에 방언 ‘니르다’가 이미 쓰였을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는 ‘책 이른다(=책 읽는다)’가 일부 방언에서 널리 쓰였다.
(14라)의 ‘ᄀᆞ라’는 [替]를 뜻하는 동사 ‘ᄀᆞᆯ다’의 활용형일 수도 있고, 활용형이 부사로 굳어진 것일 수도 있다. ‘ᄀᆞ라 바다 더러 디거나 혹 오올오 디거나’의 원문은 ‘替與減負 或全與負’(벽송암판 중12ㄱ-ㄴ)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월인석보』(21:102ㄴ)에는 ‘ᄀᆞᄅᆞᆺ 바다 더러 지거나 시혹 오로 지거나’로 언해되어 있다. 『월인석보』(23)에도 용례가 있는데, 여기서도 ‘바다(=받아)’와 연결되어 있다. <용례>¶그 무렛 弟子ㅣ 서르 바다 니 다 그리면 이도 正法이오<출처>〈월인석보 23:49ㄴ〉출처>.용례> 종래의 사전 중에는 ‘ᄀᆞᄅᆞᆺ’을 풀이하지 않은 사전이 있다. 『이조어사전』에서는 ‘ᄀᆞᄅᆞᆺ 바다’를 표제어구로 제시하고, 『월인석보』(21:102ㄴ)의 예문을 들었을 뿐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고, 『교학 고어사전』에는 아예 이 낱말이 수록되지 않았다.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에는 ‘대신해서’를 뜻하는 어찌씨 ‘ᄀᆞᄅᆞᆺ’이 실려 있다. 그렇다면 『월인석보』(21)의 부사 ‘ᄀᆞᄅᆞᆺ’을 『지장경』에서는 ‘ᄀᆞ라’로 대체한 것인데, 당시에 ‘ᄀᆞᄅᆞᆺ’이 생산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ᄀᆞᄅᆞᆺ’의 문법적 구조는 박재연(2001:132)에서 암시를 받을 수 있다. 박재연(2001:132)에서는 [갈다, 갈음하다, 대신하다]를 뜻하는 동사 ‘ᄀᆞᄅᆞᆾ다’의 풍부한 예를 들고 있다. <용례>¶날을 ᄀᆞᄅᆞ차 ᄒᆞ나흘 ᄎᆞᄌᆞ라=替我訪一箇<출처>〈오륜전비언해 1:15ㄱ〉출처>.용례> <용례>내 벗을 ᄀᆞᄅᆞ차 죽으려 ᄒᆞ노라=替我朋友死<출처>〈오륜전비언해 7:20ㄱ〉출처>.용례> 그렇다면 ‘ᄀᆞᄅᆞᆺ’은 동사 어간 ‘ᄀᆞᄅᆞᆾ-’이 영파생에 의해 부사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替]를 뜻하는 동사 ‘ᄀᆞᆯ다’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ᄀᆞᆯ-’이 존재한다면 ‘ᄋᆞᆾ’도 형태소일 것이다. ‘ᄋᆞᆾ-’ 또는 ‘ᄀᆞᆾ-’(‘ㄹ’ 뒤의 ‘ㄱ’ 약화 현상 고려)이라는 동사 어간이 ‘ᄀᆞᆯ-’에 결합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이 책의 ‘ᄀᆞ라’의 의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원문의 ‘替與減負’와 ‘全與負’에 대한 면밀한 천착이 필요하다. ‘替’는 ‘대신함, 번갈아함’을 뜻하고 ‘與’는 ‘줌, 베풂’을 뜻한다. 그렇다면 ‘替與減負’는 ‘짐을 {①대신 들어줌/②교대로 들어줌}으로써 상대방에게 減負(짐이 덜어짐)를 베풂’을 뜻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①② 중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답은 다음 내용에 있다. 이어지는 ‘全與負’가 ‘짐을 완전히 짊어져 주는 시혜’이므로, ‘替與減負’는 ‘짐을 교대로 들어줌으로써, 상대방에게 減負(짐이 덜어짐)를 베풂’이 될 것이다. 이러한 추정이 옳다면, ‘ᄀᆞᄅᆞᆺ’의 의미를 ‘대신해서’로 본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의 기술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국어사 자료의 낱말을 대할 때에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는, 현대국어의 간섭 현상이다. 같은 낱말이 현대국어에서 사용되고 있을 때에, 그 낱말의 의미가 현대국어의 경우와 같으리라는 선입견을 가지기 쉽다. 이런 선입견의 사례는 종래의 사전에서조차도 흔히 찾을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훈민정음언해』의 「세종어지」에 나오는 ‘ᄆᆞᄎᆞᆷ내’도 그런 예에 속한다. 현대국어의 ‘마침내’는 긍정문에 쓰이지만 「세종어지」의 ‘ᄆᆞᄎᆞᆷ내’는 부정문에 쓰였으므로, ‘ᄆᆞᄎᆞᆷ내’의 통사적 특성을 현대국어 ‘마침내’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만약’의 뜻을 지닌 한자어 ‘若干’도 주의해야 할 대상이다. 이런 낱말의 의미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문맥에 유의해야 하고, 원전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원전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쓰인 낱말 중 현대국어의 간섭을 경계해야 할 몇 가지를 살펴보자.
(15) 가. 오히려(상6ㄱ, 상29ㄱ)
나. 일뎡(一定)(상23ㄱ)
다. 잠간(중19ㄱ)
라. 브즐러니(상15ㄱ) : 벽송암판(상14ㄱ)에 ‘勤’으로 나타남.
브즐어니(상16ㄱ) : 벽송암판(상15ㄱ)에 ‘은근(慇懃)’으로 나타남.
부즐어니(상23ㄴ) : 벽송암판(상20ㄴ)에 ‘慇懃’으로 나타남.
부즈러니(중19ㄱ) : 벽송암판(중6ㄱ)에 ‘勤懇’으로 나타남.
브즈러니(하21ㄴ) : 벽송암판(하18ㄱ)에 ‘殷勤’으로 나타남.
마. ᄀᆞᆺ곰(하14ㄴ)
(15가)의 ‘오히려’는 국어사 문헌에서 대개 ‘아직, 지금도, 마치, 조차,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을 뜻한다.
주030) 종래의 모든 고어사전에서 ‘오히려’의 의미는 현대국어 ‘오히려’와 같은 것으로 기술되었다.
의미 변화의 구체적 양상은 여기서 상론하지 않겠지만, 20세기 초의 문헌에서도 ‘오히려’가 ‘아직’의 뜻으로 쓰인 예를 볼 수 있다. ‘오히려’는 대개 한문 원문의 ‘猶, 尙’과 대응되는데, 이 두 글자의 전통적 훈(訓)인 ‘오히려’의 기본 의미는 [같음]이다. ‘오히려’의 옛 의미는 「선운사 동구」(서정주)와 20세기 초 신문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주031) ‘오히려’의 의미에 대하여는 이유기(2016:435-441)를 참조할 것.
현대국어 ‘오히려’의 기본 의미는 [양보] 또는 [의외성]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같음]이 [양보]와 [의외성]으로 변한 계기는 ‘오히려’의 의미 중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는 [사태의 불변]과 [양보]의 의미가 다 들어있다.
(15나)의 ‘일뎡(一定)’ 역시 현대국어 ‘일정(一定)’과 같은 의미를 가진 것으로 오해하기 쉬운 낱말이다. ‘일뎡ᄒᆞ다(一定ᄒᆞ다)’는 대개는 ‘확정하다, 결정하다’를 뜻하는 타동사로 쓰였고, 드물게 ‘고르다, 균일하다’를 뜻하는 형용사로 쓰이기도 했다. ‘一定야’에는 동사의 활용형도 있고, 부사로 굳어져서 ‘반드시, 꼭, 마치’의 뜻을 나타내는 것도 있다.
(15다)의 ‘잠간(暫間)’은 중세국어 문헌에서는 한자로 표기되기도 하고 한글 ‘자ᇝ간’으로 표기되기도 하였는데, 대개는 ‘잠깐’ 또는 ‘조금’을 뜻하였다. 그러나 ‘자ᇝ간, 잠간’과 대응되는 한문 원문은 비교적 다양하다. ‘잠간도 힘을 득디 몯ᄒᆞ리라’(중19ㄱ)의 원문은 ‘了不得力’(벽송암판 중15ㄴ)이다. ‘了’는 ‘끝내’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법집별행록』(36ㄴ)에서는 ‘잠간’이 원문의 ‘曾(일찍이)’과 대응된 예도 보인다.
(15라)의 ‘브즐러니 …’ 등은 모두 현대국어 ‘부지런히’의 소급형이다. 중세국어 문헌에서 이들은 현대국어와 같은 의미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간절하게, 곡진하게. 진심으로’ 등을 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듯하다. 한자 ‘勤’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종래의 사전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경향이 있다. 이 책에는 한문본의 ‘殷勤’(벽송암판 하17ㄴ)을 번역하지 않고, ‘은근이’(하20ㄴ)로 적은 것도 보인다.
(15마)의 ‘ᄀᆞᆺ곰’은 형태적 측면에서는 현대국어 ‘가끔’의 소급형일 것으로 보이지만, 의미는 아주 다르다. ‘ᄀᆞᆺ곰 득ᄒᆞ며 ᄀᆞᆺ곰 니저’(하14ㄴ)가 『월인석보』(21하 167ㄱ)에는 ‘닐그며 미조차 니저(=읽고 바로 뒤쫓아 잊어)’로 나타난다. 원문은 ‘旋讀旋忘’(벽송암판 하13ㄱ)이다. 그러므로 ‘ᄀᆞᆺ곰 Aᄒᆞ며 ᄀᆞᆺ곰 Bᄒᆞ다’는 ‘A하자마자 Bᄒᆞ다’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ᄀᆞᆺ곰’은 ‘금방, 방금’을 뜻하는 부사 ‘ᄀᆞᆺ’에 보조사 ‘곰’이 결합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의 언해문 중에는 오역으로 의심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월인석보』(21)의 언해에 따른 경우이고, 둘째는 『월인석보』(21)의 언해와 달라진 경우이다. 『월인석보』(21)의 언해는 그 이전의 구결 달린 한문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사례만 제시하고자 한다.
(16) 가. 원문
若非蒙福 救拔吾難 以是業故 未合解脫(벽송암판 상:22ㄴ-23ㄱ)
나. 지장경언해
복을 닙펴 내 난 구완티옷 안니면 이 업 젼로 버서나디 몯리라(상:27ㄱ)
다. 월인석보
福 니펴 내 難 救티옷 아니면 이 業 젼로 버서나디 몯리라(21상:56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제(時制)이다. 무비(2001:145)에서는 ‘만약 복을 지어 그 힘으로 나를 고난에서 빼내어 구원해 주지 않았다면 이 업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다.’라고 번역하였다. ‘蒙福 救拔吾難’의 시제 표현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참고하여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광목아 네 대민야 능히 엄미 위야 일런 대원 발니 보 네 엄미 열세
히 주032) <풀이>‘히’는 ‘ᄒᆡ[歲]’이다. 방언인 듯하다.풀이>
면 이 보 리고 범지 되야 목수미 ᄇᆡᆨ 셰리니 이 보 디낸 후에 무우국토에 나 목수미 몯 혈 겁쉬리라’(상 28ㄱ)를 보면, ‘어머니를 위해 대원을 발한 것’으로 광목의 역할은 끝나고, 이 서원의 가피력(加被力)으로 광목의 어머니가 구원 받았음을 청정연화목여래가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蒙福 救拔吾難’은 과거의 사건이다. ‘버서나디 몯리라’의 시제도 부적절하다. 여기서의 ‘벗어남’은 ‘지옥으로부터의 벗어남’이고,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과거의 사태이다.
(17) 가. 원문
若見有人 讀誦是經 乃至一念 讚歎是經 或恭敬是經者(벽송암판 중8ㄴ)
나. 지장경언해
다가 아모 살음이나 경을 독숑커나 이 경을 념 찬탄호매 니거나 혹 이 경을 공경 이 보와(중10ㄴ)
다. 월인석보
아 恭敬리 보아(21상:93ㄴ-94ㄱ)
원문에서 ‘見’의 대상은 세 가지이다. ‘讀誦是經, (乃至)一念讚歎是經, (或)恭敬是經’이다. ‘(有)人’은 이 셋의 주어이다. ‘讚歎’과 ‘恭敬’은 모두 ‘誦讀’ 다음에 이루어지는 반응이며, 둘의 관계가 순차적이다. 그러나 ‘誦讀’은 이 둘과는 구별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원문의 구조는 ‘[若見[有人[讀誦是經][乃至一念讚歎是經 或恭敬是經]者]]’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현대역은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독송하고, (나아가서는) 잠시라도 이 경을 찬탄하고 혹은 이 경을 공경하기에 이르는 것을 보면’이 될 것이다. 이것이 옳다면 언해자는 ‘至(=니ᄅᆞ거나)’의 지배 범위를 착각한 셈이 된다. 이 오역의 근원은 한문본이 운문체라는 사실에 있는 듯하다. 독송을 전제로 한 운문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으면 오역을 하기 쉽다.
(18) 가. 원문
何況塑畵形像 供養讚歎 其人獲福 無量無邊(벽송암판 중:24ㄱ)
나. 지장경언해
믈며 형샹을 소화야 공양ᄒᆞ면 그 살름의 복 어드미 무량무변리다(중:28ㄴ)
다. 월인석보
며 形像 塑畵야 供養 讚歎면 그 사 福 어두미 無量無邊리다(21하:131ㄱ-ㄴ)
두 언해문과 구결 모두 오역으로 보인다. 의문사 ‘何’를 언해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의문문이 아니라, 평서문으로 언해하였다. ‘何況’ 구문은 15세기에 ‘이ᄯᆞ니ᅌᅵᆺ가’계 구문으로 언해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何況塑畵形像 供養讚歎’에서 문장이 끊어지는 것으로 봐야 하는데, 그것을 종속절로 오해한 것이다. 15세기라면 ‘며 形像 塑畵야 供養 讚歎홈이ᄯᆞ니ᅌᅵᆺ가’로 언해하는 것이 옳다.
(19) 가. 원문
緣是國王等 於是最貧賤輩 及不完具者 發大慈悲心 是故 福利有如此報(벽송암판 하:2ㄱ)
나. 지장경언해
이 국왕 등이 간난고 쳔 므리와 디 몯 사름을 연야 큰 비심을 발 복니 이 뵈 이셔(하:2ㄱ)
다. 월인석보
이 國王 等이 艱難 가 사과 디 몯 사게 큰 慈悲心을 發 福利 이 報ㅣ 이셔(21하:140ㄱ-ㄴ)
원문의 ‘緣’을 어떻게 언해하였는지가 초점이다. 이 책에서는 ‘ 간난고 쳔 므리와 디 몯 사름’을 ‘큰 ᄌᆞ비심을 발ᄒᆞ-’의 계기로 보았다. 이와 달리 『월인석보』(21)에서는 ‘慈悲心을 發ᄒᆞ-’를 ‘福利 이 報ㅣ 이셔’의 원인으로 보았다. 『월인석보』의 번역이 옳다. 만약 이 책과 같이 ‘ 간난고 쳔 므리와 디 몯 사름’이 사태의 계기라면 ‘緣’이 그 대목의 앞으로 이동해야 한다. 즉 ‘是國王等 於是緣最貧賤輩 及不完具者 發大慈悲心’이 되어야 한다.
주033) <풀이>『월인석보』(21)에서 잘못 언해한 것이 이 책에서 바로잡힌 것도 있다. ‘문득’(중24ㄴ)은 『월인석보』(21:122ㄴ)에서는 ‘다시’로 나타난다. 이 차이는 저본의 차이에 말미암은 듯하다. 해당 부분의 원문이 필자가 주로 참조한 벽송암판(중20ㄱ)에는 ‘更’으로 나타나지만, 송광사판(1812년, 중19ㄴ)에는 ‘便’으로 나타난다. 문맥 면에서 보면 ‘便’이 옳아 보인다.풀이>
남광우(1997), 『교학 고어사전』, 교학사.
남광우(1995), 『고금한한자전』, 인하대학교출판부.
박재연(2001), 『고어사전』, 이회문화사.
운허 용하(1961), 『불교사전』, 동국역경원.
유창돈(1964), 『이조어사전』, 연세대학교 출판부.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5), 『17세기 국어사전(상·하)』, 태학사.
한글학회(1992), 『우리말 큰사전』, 어문각.
강맹산(1993), 「중국불교와 신라사람 김교각」, 『세계 속의 한민족』(제2회 세계한민족학술회의 논문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고영근(1993), 「『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월인석보』」, 『국어사 자료와 국어학의 연구』(안병희선생 회갑기념논총), 문학과지성사.
권상로(1988), 『현토 국역 지장경』, 보련각.
김기종(2003), 「석보상절 권11과 월인석보 권21의 구성방식 비교 연구」, 『한국문학연구』 26,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김기종(2003),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의 구성 방식 비교 연구-석보상절 권24와 월인석보 권25를 중심으로-」, 『한국어문학연구』 41, 한국어문학연구학회.
김성주(2015), 「『석보상절』 권11과 『월인석보』 권21의 한문과 언해문의 대응 양상」, 『국어사연구』 20.
김영배(2000), 『국어사자료연구-불전언해중심-』, 월인.
김영배(2013), 『국어사 자료 연구 Ⅱ』. 동국대학교출판부.
남권희(2006), 「지장보살본원경의 판본 연구」, 『고인쇄문화』 13, 청주고인쇄박물관.
무비(2011), 『지장경』, 불광출판부.
손성필(2013), 『16·17세기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동향』, 동국대학교 박사논문, 동국대학교 대학원.
안병희(1992), 『국어사 연구』, 문학과지성사.
이유기(2000), 「15세기 ‘-이ᄯᆞᆫ’계 종결 형식의 기능」, 『국어국문학』 126, 국어국문학회.
이유기(2001), 「국어 의문 종결 형식의 구조」, 『동악어문론집』 37, 동악어문학회.
이유기(2002), 「{-가}계 의문 종결 형식의 구조」, 『국어국문학』 131, 국어국문학회.
이유기(2002), 『역주 남명집언해 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2003), 「18세기 경상도 어휘의 연구」, 『한국어문학연구』 41, 한국어문학연구학회.
이유기(2003), 『역주 법화경언해 7』,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2004), 「마경초집언해의 어휘 연구 (1)」, 『한국어문학연구』 43, 한국어문학연구학회.
이유기(2005), 「근대국어 종결어미 {-다}」, 『한국어문학연구』 45, 한국어문학연구학회.
이유기(2005), 「현대국어의 불규칙적 현상과 국어사」, 『한국언어문화학』 2-1, 국제한국언어문화학회.
이유기(2005), 『역주 원각경언해 4(상1의2)』,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2006), 「근대국어의 청자대우법-17세기의 ᄒᆞᄋᆞᆸ소체를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 32, 한국사상과문화학회.
이유기(2007), 「선어말 형태소 ‘-지-’의 형태론과 통사론-중세국어와 근대국어를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145, 국어국문학회.
이유기(2007),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3』,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2007),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4』,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2007), 『역주 금강경삼가해 제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2012), 「서술문 종결형식의 변천과정」, 『국어사 연구』 14, 국어사학회.
이유기(2013), 「선어말 형태소 ‘-니-’의 기능」, 『국어사 연구』 16, 국어사학회.
이유기(2016), 「서정주의 시어에 대한 국어학적 해명」, 『한국문학연구』 52,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이유기(2017), 『역주 법집별행록절요언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유기·육효창(1999), 『선종영가집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상』, 태학사.
이유기·정성준(2018), 『석보상절 권9』, 동국대학교출판부.
한재영(2010), 『역주 월인석보 21(상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재영(2010), 『역주 월인석보 21(하권)』, 세종대왕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