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의 윤(尹)으로 있는 위 장인에게 받들어 부친다[奉寄河南韋尹丈人]
尸鄕餘土室 難說祝雞翁
【尸鄕은 在河南ㅅ 偃師니 列仙傳에 祝분류두공부시언해 권21:2ㄴ
雞翁이 居尸鄕야 養鷄千餘니라 甫의 故廬ㅣ 在偃師니 韋尹이 頻有訪問 感恩야 有此句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尸鄕애 주087) 시향(尸鄕)애 시향(尸鄕)+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시향에. 시향(尸鄕)은 고지명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언사현(偃師縣) 서남쪽의 신채진(新蔡鎭)에 해당한다.
지비 주088) 지비 [土]#집[家, 室]+이(주격 조사). 흙집이. 토실(土室)이. ‘흙’이란 형태가 처음 나타나나는 것은 〈속삼강행실도〉(1514)이다. ¶나히 스믈힌 제 남진 宋孝從이 죽거 親히 흙 지여 집 뒤헤다가 묻고(나이 스물인 제 남편 송효종이 죽거늘 친히 흙 지어 집 뒤에다가 묻고)〈속삼 열:19ㄱ〉.
나맛니 주089) 나맛니 남[餘]-+-아(연결 어미)#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남아 있나니. 남아 있는 것이니.. ¶부텻 웃입시우렛 터리 나히 나마 잇거시(부처의 윗입술의 털이 하나가 남아 있으시거늘)〈석상 23:57ㄱ〉.
祝雞翁 주090) 축계옹(祝雞翁) 축계옹(祝雞翁)+(관형격 조사). 축계옹의. 축계옹(祝雞翁)은 낙양인으로, 시향(尸鄕)에 살면서 닭 천여 마리를 길렀다고 한다. 이는 숭간(崇簡)이 벼슬살이를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숨어 사는 뜻을 가져, 아래의 구(句)가 있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 주091) 難히 주092) 난(難)히 난(難)+-(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강세 보조사). 어렵게야. 물론 어렵게. 현대어에서 보조사 ‘야’는 ‘당연히, 물론’의 뜻을 나타낸다.
니리로다 주093) 니리로다 니[說]-+-리(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로다(감탄 어미). 이르리로다. 이를 것이로다.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는 동명사 어미 ‘-ㄹ’과 지정 형용사 ‘이-’가 재구조화된 것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시향여토실 난설축계옹【시향(尸鄕)은 하남에 있는 언사현(偃師縣)이니, 열선전(列仙傳)에 축계옹(祝雞翁)이 시향에 살아 천여 마리 닭을 키운 것이다. 두보의 옛 오두막이 언사에 있어, 위윤이 자주 방문하였기 때문에 은혜를 고맙게 여겨 이 구가 있게 된 것이다.】
【언해역】 시향(尸鄕)에 흙집이 남아 있나니, 축계옹(祝雞翁)의 일을 물론 어렵게 이를 것이로다.
Ⓒ 역자 | 임홍빈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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