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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영응기 089


光德大夫 주001)
광덕대부(光德大夫):
조선의 관계(官階), 의빈부(儀賓府)에 속한 종1품의 관계.
安孟聃 주002)
안맹담(安孟聃):
1415~1462. 자 덕수(德壽). 본관 죽산(竹山).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결혼하여 연창위(延昌尉)로 봉해짐. 세조를 도와 운종공신으로 책봉됨.
資憲大夫 주003)
자헌대부(資憲大夫):
조선시대 문무관의 정2품의 관계(官階).
議政府 주004)
의정부(議政府):
조선시대 임금을 보좌하고 정무를 총괄하던 최고의 행정기관. 정종(定宗) 2년(1400)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로 고치고, 종전과 같이 문하부(門下部)의 영부사(領府事) 1인, 좌·우정승(左右政丞) 각 1인, 판부사(判府事) 2인, 찬성사(贊成事) 2인, 정당문학(政堂文學) 1인, 지부사(知府事) 2인, 사인(舍人) 2인, 검상(檢詳) 1인, 좌사(左使) 1인, 우사(右使) 1인 등으로 합의체를 구성하였다가, 태종(太宗) 원년(1401)에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 체제를 확립시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1인, 좌·우정승 각 1인,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 2인,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2인, 문학(文學) 1인,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1인, 참의정부사(參議政府事) 2인, 사인 2인, 검상 1인, 녹사 1인을 두었다. 태종 14년(1414)에 좌·우정승과 찬성사·참찬의정부사·지의정부사·참지의정부사를 없애고, 판의정부사를 좌의정·우의정으로, 동판의 정부사를 촤참찬·우참찬으로 고쳤고, 이듬해에 좌참찬을 찬선(贊成), 우참찬을 참찬(參贊)으로 고쳤다. 세조 12년(1466)에 의정부사를 영의정으로, 녹사를 사록(司錄)으로 고치고,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경장으로 총리대신(總理大臣) 1인, 좌·우찬성 각 1인, 사헌(司憲) 5인, 참의(參議) 5인, 주사(主事) 31인을 두었다. 이듬해에 의정부를 내각(內閣)으로 고쳤다. 건양(建陽) 원년(1896)에 다시 의정부로 고치고 의정(議政) 1인, 참정(參政) 1인, 찬정(贊政) 5인, 참찬(參贊) 1인, 참서관(參書官) 2인, 주사 8인을 두었다가, 광무(光武) 11년(1907)에 다 내각으로 고쳤다.
左參贊 寶文閣大提學 兼判戶曹事 臣鄭苯 주005)
정분(鄭苯):
?~1454. 자는 자의(子畏), 호는 면재(勉齋), 애일당(愛日堂), 본관 진주. 판중추부사 정이오(鄭以吾)의 아들. 태종 16년(1416년) 정시문과에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세종 3년(1421)에 이조 좌랑(吏曹佐郞), 세종 7년(1425)에 병조 정랑(兵曹正郞)이 되고, 세종 10년(1428)에 사인(舍人)으로 함길도 경차관(咸吉道敬差官)이 되어 수재민을 구호했다. 세종 12년(1430)에 집의(執義)로 성개(成槩)의 노비 사건을 논하지 않아 유배되었다. 세종 14년(1432)에 풀려나 우승지(右承旨), 충청도관찰사,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28년(1447)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숭례문(崇禮門) 건축을 감독했다. 문종 1년(1451)에 좌찬성 호조판서(戶曹判書)를 겸임하고 다음해 문종이 승하할 때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과 어린 세자(단종)의 보호를 부탁받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낙안으로 유배되어 사사되었다. 뒤에 신원(伸寃)되어 장흥(長興)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되었다.
資憲大夫 中樞院使 臣閔伸 주006)
민신(閔伸):
?~1453. 호 둔암(遯庵), 본관 여흥. 문종 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 수양대군이 명나라로 사신을 갈 때 부사로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단종(端宗) 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현릉(顯陵) 비역(碑役)을 감독하고 있던 중 삼군진무(三軍鎭撫) 서조(徐遭)에게 김종서(金宗瑞)의 일파라 하여 참살을 당하였다.
嘉靖大夫 주007)
가정대부(嘉靖大夫):
조선조의 관계로 종 2품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와 같은 계열이었는데 후기에 가의대부(嘉義大夫)로 고쳤다.
龍騎侍衛司 주008)
용기시위사(龍騎侍衛司):
조선 초기의 군사조직의 하나. 태종 9년(1409)에 용기순위사(龍騎巡衛司)를 고친 이름.
上護軍
修文殿 주009)
수문전(修文殿):
조선 초기 학사들이 모여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임금의 고문(顧問)에 대비하여 설치한 관아. 문신 2품 이상으로, 대제학(大提學)을 두고, 3·4품으로 직제학(直提學) 직전(直殿)을 두었다.
提學 臣朴堧 주010)
박연(朴堧):
1378~1458. 음악가. 자 탄부(坦夫), 호 난계(蘭溪). 본관 밀양.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 세종에 의해 악학별좌(樂學別坐)가 되어 악기의 조율과 악보의 찬집을 했다. 조정에서 속악을 금하고 아악을 정립하였다. 중추원부사를 거쳐 예문관대제학을 지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아들이 처형되었으나, 본인은 3조(朝)에 봉사한 공으로 사면되었다.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신라의 우륵(于勒)과 함께 우리나라 3대악성이라 한다.
嘉靖大夫 判內

사리영응기:20ㄴ

侍府事 臣嚴自治 嘉善大夫 주011)
가선대부(嘉善大夫):
조선의 관계(官階). 종 2품으로 문관 무관에게 두루 주었다.
判內侍府寺 주012)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내시부는 고려 때부터 궁중의 일이나 명령을 전달하던 관아로 조선에서도 그대로 계승된 관아. 판사(判事)는 1인으로 정2품이다.
崔濕 嘉善大夫 行內侍府左承直 주013)
승직(承直):
고려에서 조선 초기까지, 내시부(內侍部)의 5품 관원.
安璐 嘉善大夫 行僉內侍府事 臣韓洪 嘉善大夫 行同判內侍府事 臣印平 通政大夫 주014)
통정대부(通政大夫):
조선의 관계(官階)로 정3품의 당상관.
承政院都承旨 주015)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
승정원은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 관장하던 관청. 도승지는 승정원의 6승지의 우두머리.
經筵參贊官 주016)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
경연은 임금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신하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궁중으로 불러 경적(經籍), 사서(史書) 등을 강론하는 것. 이때 참여하는 정3품관으로 승지 및 부제학이 겸임하였다.
尙瑞尹 주017)
상서윤(尙瑞尹):
상서원(尙瑞院)의 수장. 상서원은 새보(璽寶), 부패(符牌), 절월(節鉞) 등을 맡은 관청. 윤은 정3품의 상서정(尙瑞正)이다.
修文殿直提學 知製敎 주018)
지제교(知製敎):
임금에게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맡은 관원. 지(知)는 맡다의 의미.
充春秋館修撰官 주019)
수찬관(修撰官):
춘추관에서 시정(時政)을 기록하는 정3품관으로 승정원이나 홍문관의 부제학이 맡았다.
兼判奉常寺事 知吏曹內直 司樽院 주020)
사준원(司樽院):
제례에 쓸 술이나 술잔 등을 맡은 기관.
事 兼簷事院簷事 臣李思哲 通政大夫 行同知內侍府事 臣李貴 通政大夫 同判內侍府事 臣田畇 通政大夫 行知內侍府事 臣朴恭

광덕대부 신 안맹담(安孟聃), 자헌대부 의정부좌참찬 보문각대제학 겸판호조사 신 정분(鄭苯), 자헌대부 중추원사 신 민신(閔伸), 가정대부 행 용기시위사 상호군 수문전제학 신 박연(朴堧), 가정대부 판내시부사 신 엄자치(嚴自治), 가선대부 판내시부사 신 최습(崔濕), 가선대부 행 내시부좌승직 신 안로(安璐), 가선대부 행 첨내시부사 신 한홍(韓洪), 가선대부 행 동판내시부사 신 인평(印平), 통정대부 승정원도승지 경연참찬관 겸상서윤 수문전직제학 지제교 충춘추관 수찬관 겸판봉상시사 지이조내직 사준원사 겸첨사원첨사 신 이사철(李思哲), 통정대부 행 동지내시부사 신 이귀(李貴), 통정대부 동판내시부사 신 전균(田畇), 통정대부 행 지내시부사 신 박공(朴恭),
Ⓒ 역자 | 이종찬 / 2013년 10월 20일

威毅將軍 行忠武 주021)
충무위(忠武衛):
오위(五衛)의 후위(後衛)로, 충순위(忠順衛)의 정병과 장용위(壯勇衛)의 600명을 여기에 소속시켜 군대를 편성하였다.
侍衛 司後領護軍 臣安堅 內謁大夫 주022)
내알대부(內謁大夫):
내알사(內謁司)의 관리. 내알사는 액정서(掖庭署)로 왕명의 전달, 임금의 필기구, 대궐의 열쇠 등의 일을 맡은 관청.
上林園 주023)
상림원(上林園):
조선 초기 궁중 정원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 세조 12년(1466)에 장원서(掌苑署)로 개칭, 관원으로 제조(提調), 별좌(別坐), 별감(別監), 급사(給事) 등이 있었다.
司直 臣金南洽 內謁大夫 掖庭署 주024)
액정서(掖庭署):
앞의 내알대부 참조.
司謁 臣高重陽 內謁大夫 行上林園副司直 臣姜升 朝散大夫 주025)
조산대부(朝散大夫):
조선시대 문관의 종4품의 관계(官階).
司僕少尹 주026)
사복소윤(司僕小尹):
조선시대 궁중의 수레, 말, 목장 등을 관리하던 관아. 소윤은 정4품.
臣鄭孝康, 宣節將軍 주027)
선절장군(宣節將軍):
조선 초기 무관의 종4품의 관계.
行中軍司直 주028)
사직(司直):
조선시대 오위(五衛)에 속했던 관직. 부호군(副護軍)의 밑이고 부사위(副司尉)의 위이다.
任幹 朝奉大夫 주029)
조봉대부(朝奉大夫):
종친(宗親)이나 문관의 종4품의 관계.
行內侍府司謁 臣劉進

사리영응기:21ㄱ

奉承大夫 주030)
봉승대부(奉承大夫):
조선 초기 액정서(掖庭署)에 속했던 관계. 봉어대부(奉御大夫)라 하기도 함.
掖庭署司鑰 주031)
사약(司鑰):
열쇠를 맡은 관원.
韓得敬 朝奉大夫 行內侍府右副承直 臣林童 通德郞 주032)
통덕랑(通德郞):
정5품의 동반(東班)의 관계.
行內侍府謁者 주033)
알자(謁者):
조선 초기 내시부, 액정서에 소속된 관리의 하나. 나라에 의식이 있을 때에 말을 전하거나 인도하는 일을 맡은 관원.
李芸

위의장군 행 충무시위 사후영호군 신 안견(安堅), 내알대부 행 상림원사직 신 김남흡(金南洽), 내알대부 액정서 사알 신 고중양(高重陽), 내알대부 행 상림원 부사직 신 강승(姜升), 조산대부 사복 소윤 신 정효강(鄭孝康), 선절장군 행 중군 사직 신 임간(任幹), 조봉대부 행 내시부 사알 신 유진(劉進), 봉승대부 액정서 사약 신 한득경(韓得敬), 조봉대부 행 내시부우부승직 신 임동(林童), 통덕랑 행 내시부 알자 신 이운(李芸),
Ⓒ 역자 | 이종찬 / 2013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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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광덕대부(光德大夫):조선의 관계(官階), 의빈부(儀賓府)에 속한 종1품의 관계.
주002)
안맹담(安孟聃):1415~1462. 자 덕수(德壽). 본관 죽산(竹山). 세종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결혼하여 연창위(延昌尉)로 봉해짐. 세조를 도와 운종공신으로 책봉됨.
주003)
자헌대부(資憲大夫):조선시대 문무관의 정2품의 관계(官階).
주004)
의정부(議政府):조선시대 임금을 보좌하고 정무를 총괄하던 최고의 행정기관. 정종(定宗) 2년(1400)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로 고치고, 종전과 같이 문하부(門下部)의 영부사(領府事) 1인, 좌·우정승(左右政丞) 각 1인, 판부사(判府事) 2인, 찬성사(贊成事) 2인, 정당문학(政堂文學) 1인, 지부사(知府事) 2인, 사인(舍人) 2인, 검상(檢詳) 1인, 좌사(左使) 1인, 우사(右使) 1인 등으로 합의체를 구성하였다가, 태종(太宗) 원년(1401)에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 체제를 확립시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1인, 좌·우정승 각 1인,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 2인,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2인, 문학(文學) 1인,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1인, 참의정부사(參議政府事) 2인, 사인 2인, 검상 1인, 녹사 1인을 두었다. 태종 14년(1414)에 좌·우정승과 찬성사·참찬의정부사·지의정부사·참지의정부사를 없애고, 판의정부사를 좌의정·우의정으로, 동판의 정부사를 촤참찬·우참찬으로 고쳤고, 이듬해에 좌참찬을 찬선(贊成), 우참찬을 참찬(參贊)으로 고쳤다. 세조 12년(1466)에 의정부사를 영의정으로, 녹사를 사록(司錄)으로 고치고,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경장으로 총리대신(總理大臣) 1인, 좌·우찬성 각 1인, 사헌(司憲) 5인, 참의(參議) 5인, 주사(主事) 31인을 두었다. 이듬해에 의정부를 내각(內閣)으로 고쳤다. 건양(建陽) 원년(1896)에 다시 의정부로 고치고 의정(議政) 1인, 참정(參政) 1인, 찬정(贊政) 5인, 참찬(參贊) 1인, 참서관(參書官) 2인, 주사 8인을 두었다가, 광무(光武) 11년(1907)에 다 내각으로 고쳤다.
주005)
정분(鄭苯):?~1454. 자는 자의(子畏), 호는 면재(勉齋), 애일당(愛日堂), 본관 진주. 판중추부사 정이오(鄭以吾)의 아들. 태종 16년(1416년) 정시문과에 급제.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세종 3년(1421)에 이조 좌랑(吏曹佐郞), 세종 7년(1425)에 병조 정랑(兵曹正郞)이 되고, 세종 10년(1428)에 사인(舍人)으로 함길도 경차관(咸吉道敬差官)이 되어 수재민을 구호했다. 세종 12년(1430)에 집의(執義)로 성개(成槩)의 노비 사건을 논하지 않아 유배되었다. 세종 14년(1432)에 풀려나 우승지(右承旨), 충청도관찰사, 평안도 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28년(1447)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숭례문(崇禮門) 건축을 감독했다. 문종 1년(1451)에 좌찬성 호조판서(戶曹判書)를 겸임하고 다음해 문종이 승하할 때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과 어린 세자(단종)의 보호를 부탁받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낙안으로 유배되어 사사되었다. 뒤에 신원(伸寃)되어 장흥(長興)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주006)
민신(閔伸):?~1453. 호 둔암(遯庵), 본관 여흥. 문종 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 수양대군이 명나라로 사신을 갈 때 부사로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단종(端宗) 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현릉(顯陵) 비역(碑役)을 감독하고 있던 중 삼군진무(三軍鎭撫) 서조(徐遭)에게 김종서(金宗瑞)의 일파라 하여 참살을 당하였다.
주007)
가정대부(嘉靖大夫):조선조의 관계로 종 2품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와 같은 계열이었는데 후기에 가의대부(嘉義大夫)로 고쳤다.
주008)
용기시위사(龍騎侍衛司):조선 초기의 군사조직의 하나. 태종 9년(1409)에 용기순위사(龍騎巡衛司)를 고친 이름.
주009)
수문전(修文殿):조선 초기 학사들이 모여 경사(經史)를 강론하고 임금의 고문(顧問)에 대비하여 설치한 관아. 문신 2품 이상으로, 대제학(大提學)을 두고, 3·4품으로 직제학(直提學) 직전(直殿)을 두었다.
주010)
박연(朴堧):1378~1458. 음악가. 자 탄부(坦夫), 호 난계(蘭溪). 본관 밀양.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 세종에 의해 악학별좌(樂學別坐)가 되어 악기의 조율과 악보의 찬집을 했다. 조정에서 속악을 금하고 아악을 정립하였다. 중추원부사를 거쳐 예문관대제학을 지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아들이 처형되었으나, 본인은 3조(朝)에 봉사한 공으로 사면되었다.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신라의 우륵(于勒)과 함께 우리나라 3대악성이라 한다.
주011)
가선대부(嘉善大夫):조선의 관계(官階). 종 2품으로 문관 무관에게 두루 주었다.
주012)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내시부는 고려 때부터 궁중의 일이나 명령을 전달하던 관아로 조선에서도 그대로 계승된 관아. 판사(判事)는 1인으로 정2품이다.
주013)
승직(承直):고려에서 조선 초기까지, 내시부(內侍部)의 5품 관원.
주014)
통정대부(通政大夫):조선의 관계(官階)로 정3품의 당상관.
주015)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승정원은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出納) 관장하던 관청. 도승지는 승정원의 6승지의 우두머리.
주016)
경연참찬관(經筵參贊官):경연은 임금이 학문을 닦기 위하여 신하들 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궁중으로 불러 경적(經籍), 사서(史書) 등을 강론하는 것. 이때 참여하는 정3품관으로 승지 및 부제학이 겸임하였다.
주017)
상서윤(尙瑞尹):상서원(尙瑞院)의 수장. 상서원은 새보(璽寶), 부패(符牌), 절월(節鉞) 등을 맡은 관청. 윤은 정3품의 상서정(尙瑞正)이다.
주018)
지제교(知製敎):임금에게 교서(敎書) 등을 기초하여 바치는 일을 맡은 관원. 지(知)는 맡다의 의미.
주019)
수찬관(修撰官):춘추관에서 시정(時政)을 기록하는 정3품관으로 승정원이나 홍문관의 부제학이 맡았다.
주020)
사준원(司樽院):제례에 쓸 술이나 술잔 등을 맡은 기관.
주021)
충무위(忠武衛):오위(五衛)의 후위(後衛)로, 충순위(忠順衛)의 정병과 장용위(壯勇衛)의 600명을 여기에 소속시켜 군대를 편성하였다.
주022)
내알대부(內謁大夫):내알사(內謁司)의 관리. 내알사는 액정서(掖庭署)로 왕명의 전달, 임금의 필기구, 대궐의 열쇠 등의 일을 맡은 관청.
주023)
상림원(上林園):조선 초기 궁중 정원의 관리를 맡아보던 관아. 세조 12년(1466)에 장원서(掌苑署)로 개칭, 관원으로 제조(提調), 별좌(別坐), 별감(別監), 급사(給事) 등이 있었다.
주024)
액정서(掖庭署):앞의 내알대부 참조.
주025)
조산대부(朝散大夫):조선시대 문관의 종4품의 관계(官階).
주026)
사복소윤(司僕小尹):조선시대 궁중의 수레, 말, 목장 등을 관리하던 관아. 소윤은 정4품.
주027)
선절장군(宣節將軍):조선 초기 무관의 종4품의 관계.
주028)
사직(司直):조선시대 오위(五衛)에 속했던 관직. 부호군(副護軍)의 밑이고 부사위(副司尉)의 위이다.
주029)
조봉대부(朝奉大夫):종친(宗親)이나 문관의 종4품의 관계.
주030)
봉승대부(奉承大夫):조선 초기 액정서(掖庭署)에 속했던 관계. 봉어대부(奉御大夫)라 하기도 함.
주031)
사약(司鑰):열쇠를 맡은 관원.
주032)
통덕랑(通德郞):정5품의 동반(東班)의 관계.
주033)
알자(謁者):조선 초기 내시부, 액정서에 소속된 관리의 하나. 나라에 의식이 있을 때에 말을 전하거나 인도하는 일을 맡은 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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