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피건대, 사리란 혹은 사리라(舍利羅)라 하기도 하고, 혹은 설리라(設利羅)라 하기도 하는데 모두 범어이니, 한역하면 영골(靈骨), 또는 영신(靈身)이라 하여 곧 부처 여래가 남기신 뼈를 이르는 것이다. 여래께서 일찍이 이르기를, “나는 참 마음 비고 고요하고 영험의 앎이 있으니, 이것이 나에게 있는 참 몸이 광대하고 원만한 것이다.”라고 했으니, 이는 법신의 몸체가 허공과 같아서 이미 나고 죽음의 모습이 없으니, 어찌 가고 오는 자취가 있겠는가? 달에다 견주면, 물이 맑으면 달이 드러나는데 달이 밝지 않음은 달의 잘못이 아니라 중생의 물이 흐린 것이다. 종에다 견주면, 치면 울리는데 종이 울림이 없다면 종의 잘못이 아니라 중생의 종채가 적기 때문이다.
지금 신씨 부인이 두 성상에게 축원하며 선왕, 선왕후와 광평대군과 어머니 왕씨를 추모하는 정성이 지극하기에, 감응이 깊고 깊기 때문에 쉽게 오셨으니, 이는 대체로 빠르지 않아도 빠르고, 기약이 없어도 스스로 이르니, 역시 부처님의 신통 묘용함이 불가사의한 도리이다. 부인의 정성 공경을 알려고 한다면 의당히 신령 경이로운 강림을 볼 것이고, 모든 부처님의 변화를 보려 하면 의당히 사리의 오묘함을 보아야 하니, 어쩌면 지극한 정성의 덕이 천지를 감동하기에 알맞아 여래의 공적한 법체가 법계에 충만한 것이었던가? 이것이 바로 이 기를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절을 지은 전말과 지난 날 법회를 열었던 성대함은 우리 주상전하가 동궁시절 이 절에 친히 오시어 쓰신 한 편의 시가 전각 기둥 사이에 밝히 빛나고 있음이, 또 실로 이 절 백년 무궁한 경사이리라.
세조 11년(을유년, 1465) 9월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