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사리영응기

  • 역주 사리영응기
  • 사리영응기(舍利靈應記)
  • 왕명으로 예불참문을 지음 1
메뉴닫기 메뉴열기

왕명으로 예불참문을 지음 1


주001)
상(上):
임금[君主]. 더 높여 존칭할 때는 성상(聖上)이라 함. 일반적으로, 호칭으로 말할 때는 주상전하(主上殿下)라 함. 여기서는 세종을 가리킴.
三十有一年 주002)
삼십유일년(三十有一年):
31년. 유(有) 자는 ‘또’, ‘거기에 더함’의 의미이니, 정확한 해석은 “30이요 또 한 해”이다. “현재 임금이 즉위한 지 31년”이란 뜻이니, 서기 1449년이다.
秋七月 주003)
추칠월(秋七月):
7월. 옛날의 역법(曆法)에는 날짜의 기록에 4가지 순서가 있다. 연(年), 시(時, 4계절), 달[月], 날짜[日]이다. 그래서 달 앞에 춘하추동 사시(四時)를 꼭 기재했다. 오늘날에는 달만을 표시하니, 번역에 사시는 생략한다.
十九日癸卯 주004)
계묘(癸卯):
앞의 날짜의 간지이니, 그날이 계묘라는 의미이다. 옛날의 역법(曆法)에는 연월일의 4단계를 육십갑자(六十甲子)의 간지(干支)로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만약 오늘 이 시간이 임진년 유월 13일 12시라면, 임진(壬辰)년 갑오(甲午)월 무오(戊午)일 병오(丙午)시가 된다. 생년월일시를 사주(四柱)라 함은 이 네 단계의 시간 계산법인 것이다.
傳旨 주005)
전지(傳旨):
임금님의 뜻을 전하다. 지(旨)는 ‘뜻, 곧 임금의 뜻’이고, 전(傳)은 ‘전하다’임.
주006)
우(于):
~에. 전치사의 구실을 한다.
議政府 주007)
의정부(議政府):
조선 시대 임금을 보좌하고 정무를 총괄하던 최고의 행정기관. 정종(定宗) 2년(1400)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로 고치고, 종전과 같이 문하부(門下部)의 영부사(領府事) 1인, 좌·우정승(左右政丞) 각 1인, 판부사(判府事) 2인, 찬성사(贊成事) 2인, 정당문학(政堂文學) 1인, 지부사(知府事) 2인, 사인(舍人) 2인, 검상(檢詳) 1인, 좌사(左使) 1인, 우사(右使) 1인 등으로 합의체를 구성하였다가, 태종(太宗) 원년(1401)에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 체제를 확립시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1인, 좌·우정승 각 1인,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 2인,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2인, 문학(文學) 1인,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1인, 참의정부사(參議政府事) 2인, 사인 2인, 검상 1인, 녹사 1인을 두었다. 태종 14년에 좌·우정승과 찬성사·참찬의정부사·지의정부사·참지의정부사를 없애고, 판의정부사를 좌의정·우의정으로, 동판의정부사를 촤참찬·우참찬으로 고쳤고, 이듬해에 좌참찬을 찬선(贊成), 우참찬을 참찬9(參贊)으로 고쳤다. 세조 12년(1466)에 영의정부사를 영의정으로, 녹사를 사록(司錄)으로 고치고,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경장으로 총리대신(總理大臣) 1인, 좌·우찬성 각 1인, 사헌(司憲) 5인, 참의(參議) 5인, 주사(主事) 31인을 두었다. 이듬해에 의정부를 내각(內閣)으로 고쳤다. 건양(建陽) 원년(1896)에 다시 의정부로 고치고 의정(議政) 1인, 참정(參政) 1인, 찬정(贊政) 5인, 참찬(參贊) 1인, 참서관(參書官) 2인, 주사 8인을 두었다가, 광무(光武) 11년(1907)에 다 내각으로 고쳤다.
太宗 주008)
태종(太宗):
1367~1422. 조선 제3대 임금. 재위 19년.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 태조의 제5남. 어머니는 신의왕후(神懿王后). 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아버지 이성계(李成桂)의 휘하에서 구세력을 숙청하고 신진세력의 기반을 확고히 하여 아버지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 성공하였다. 조선 개국후 정안대군(靖安大君)에 봉해졌다. 태조가 계비(繼妃) 강씨(康氏) 소생 의안대군(宜安大君)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세자를 보필하는 정도전(鄭道傳)과 방석을 죽이고, 형인 영안대군(永安大君) 방과(芳果; 定宗)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하고, 회안대군(懷安大君) 방간(芳幹)의 난을 평정하는 등 두 번의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정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배불정책을 확실히 하며 관제(官制)의 개혁에 주력하였고 종이 화폐를 창안하여 경제유통을 원활히 하고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민정을 살피고, 호패법(號牌法)을 신설하여 호구 수를 명확히 하는 등 제반 제도를 완비했다. 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서책의 간행도 힘썼다. 태종의 시호는 ‘태종공정성덕신공건천체극대정계우문무예철성렬광효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建天體極大正啓佑文武睿哲成烈光孝大王)’이다.
주009)
상(嘗):
일찍이, 부사. 일찍이 ~을 한 적이 있다.
建佛堂於文昭殿 주010)
문소전(文昭殿):
전각의 이름. 조선의 태조와 비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위패를 봉안했던 전각. 태조 5년(1396)에 건립한 인소전(仁昭殿)에 정종(定宗)이 즉위하여 모후인 신의왕후의 영정을 봉안하고, 태종 8년(1408)에 문소전으로 이름을 고치고 태조의 영정도 함께 봉안하였다가, 세종(世宗) 14년(1432)에 경복궁(景福宮) 안에 새로 문소전을 짓고 태조의 위패와 광효전(廣孝殿)에 있던 태종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옛 문소전은 폐하였다. 경복궁 안의 문소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之側 所以 주011)
소이(所以):
① 원인, 이유의 표시. ② 인과 관계의 표시. ‘~하는 바이다. 그런 이유이다. 그런 까닭이다’로 풀이된다.
追冥福 주012)
추명복(追冥福):
추(追)는 ‘추도(追悼) 추천(追薦)’의 준말로, ‘죽은 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려는 기도’이고, 명복(冥福)은 ‘죽은 이가 저승에서 누리는 복’이다.
주013)
어(於):
전치사로서, ‘~에, ~에게’의 뜻. ‘어(扵)’는 ‘어(於)’의 속자(俗字)인데 원문에서는 대다수 속자를 썼음.
列聖 주014)
열성(列聖):
지난 여러 임금. 성(聖)은 ‘성상(聖上)’의 준말로 임금을 높여서 부르는 말.
者也 文昭殿今旣徙建 而佛堂未營 주015)
미영(未營):
미(未)는 ‘아직 ~못했다’의 의미이고, 영(營)은 ‘건조(建造)’의 의미이다.
주016)
여(予):
나. 여기서는 군왕이 자신을 낮추어 이른 말.
恐墜先王 주017)
선왕(先王):
선대의 임금. 앞서 가신 임금.
之願 卽命議政府左參贊 주018)
참찬(參贊):
벼슬 이름. ① 참잔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의 준말. ②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의 정2품 벼슬. 좌참찬(左參贊)·우참찬(右參贊)이 있었다. 태종 14년(1414)에 동판부사 (同判府事)를 좌·우참찬으로 고쳤다가 동왕 15년에 좌참찬을 찬성(贊成)으로 우참찬을 참찬으로 고쳤다.
주019)
신(臣):
신하. 임금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명시하는 것이니, 임금을 상대로 하는 글에는 관용적으로 써야 한다. 글자의 호수도 한 품수 낮추는 것이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을 높이는 예의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편집의 편의상 글자 크기를 같게 하였다.
鄭苯 주020)
정분(鄭苯):
?~1454. 자는 자의(子畏)이고, 호는 면재(勉齋), 애일당(愛日堂)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판중부사 정이오(鄭以吾)의 아들로서, 태종 16년(1416년)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세종 3년(1421)에 이조 좌랑(吏曹佐郞), 1425년에 병조 정랑(兵曹正郞)이 되고, 세종 10년(1428)에 사인(舍人)으로 함길도 경차관(咸吉道敬差官)이 되어 수재민을 구호했다. 세종 12년(1430)에 집의(執義)로 성개(成槩)의 노비 사건을 논하지 않아 유배되었다. 세종 14년(1432)에 풀려나 우승지(右承旨), 충청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28년(1447)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숭례문(崇禮門) 건축을 감독했다. 문종 1년(1451)에 좌찬성 호조판서(戶曹判書)를 겸임하고 다음해 문종이 승하할 때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과 어린 세자(단종)의 보호를 부탁받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낙안으로 유배되어 사사되었다. 뒤에 신원(伸寃)되어 장흥(長興)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되었다.
中樞院使 주021)
중추원사(中樞院使):
중추원은 조선 초기의 중앙관청. 계복(啓復, 임금에게 알리고 하달하는 직책), 차섭(差攝, 임금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함), 병기(兵器), 군정(軍政), 숙위(宿衛), 경비(警備) 등을 관장하였다. 사(使)는 종2품. 태조 원년(1392)에 두었는데, 정종(定宗) 2년(1400)에 삼군부(三軍府)로 고쳤다.
閔伸 주022)
민신(閔伸):
?~1453. 호는 둔암(遯庵), 본관은 여흥이다. 문종 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 수양대군이 명나라로 사신을 갈 때 부사로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현릉(顯陵) 비역(碑役)을 감독하고 있던 중, 삼군진무(三軍鎭撫) 서조(徐遭)에게 김종서(金宗瑞)의 일파라 하여 참살을 당하였다.
判內侍府事 주023)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내시부는 궁중의 일을 관장하던 부서로 판사(判事)는 그 일을 총괄하는 책임자이다. 품계는 종3품.
崔濕 주024)
최습(崔濕):
미상.
司直 주025)
사직(司直):
오위(五衛)에 속한 관원으로 정5품의 관직. 태조 3년(1394)에 중랑장(中郞將)을 고친 이름이다.
權懽 주026)
권환(權懽):
미상.
副司直 주027)
부사직(副司直):
오위(五衛)에 속한 관원으로 종5품의 관직.
邊大海 주028)
변대해(邊大海):
미상.
行直長 주029)
행 직장(行直長):
직장은 조선조의 관직, 종7품으로 의금부(義禁府) 상서원(尙瑞院)을 비롯하여 30여 부서에 있었다. 행(行)은 그 관직을 이행했다는 의미로 과거의 직책인 셈이다.
李命敏 주030)
이명민(李命敏):
?~1453. 자는 이회(而晦). 호는 지지당(知止堂). 본관 경주. 정종(定宗) 때 호조 좌랑(戶曹佐郞),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 단종(端宗) 1년(1452) 직장(直長) 안악 군수(安岳郡守) 등을 역임하고 다음 해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사사되었다가, 숙종(肅宗)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추증(追贈)되어 정문이 세워지고, 영월의 팔충신조사단(八忠臣朝士壇)에 제향.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經度之 주031)
경탁지(經度之):
그 일을 경영하고 헤아리다. 경은 경영의 의미이고, 탁(度)은 ‘헤아리다’의 뜻으로 독음도 ‘탁’이라 한다. 지(之)는 재지시대명사로 ‘그것’이라 풀이 되지만, 우리 어법으로는 해석하지 않는 것이 옳다. ¶學而時習之(배우고 때때로 익힌다.) - ‘之’가 앞의 배운 것[學]이니, ‘習之’는 배운 그것을 익히다이다. 그러나 우리 국어의 일상적 어법은 ‘익히다’로 만족하지, 꼭 ‘그것을 익히다’ 하지 않는다.
安平大君 주032)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이름 용(瑢). 자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琅玕居士), 매죽헌(梅竹軒). 대군은 왕자의 봉호.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沈氏). 세종 10년(1428) 안평대군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좌부대언 정연(鄭淵)의 딸과 결혼. 세종 12년(1430) 여러 왕자들과 함께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닦았다. 세종 20년(1438) 함경도에 진(鎭)을 설정하자, 왕자들과 함께 북변의 경계 임무를 맡아 야인(野人)들을 토벌하였다. 차츰 조정에서 배후의 실력자로 등장, 문신들을 포섭하여 권신 황보인(黃甫仁), 김종서(金宗瑞)와 제휴하고, 수양대군 측의 무신 세력과 맞서 인사행정의 하나인 황표정사(黃標政事)를 장악, 측근의 문신들을 요직에 앉혔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가게 되어 외교권을 빼앗겼으나, 그 동안 이징옥(李澄玉)을 시켜 경성(鏡城)에 있는 무기를 서울로 옮기는 한편, 무계정사(武溪精舍)를 건립하여 장사들을 모아 무력을 양성하였으나, 귀국한 수양대군에 의해 황표정사가 폐지되어 실권을 상실했다. 이듬해 9월 다시 황표정사를 실시케 하는 등 실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다음달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황보인, 김종서 등이 살해된 후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교동(喬洞)으로 옮겨 사사되었다. 시문에 뛰어났고 당대의 명필로 문종 2년(1452)의 경자자(庚子字)를 개주(改鑄)한 임자자(壬子字)의 자모(字母)를 직접 썼다.

사리영응기:1ㄴ

領之 주033)
영지(領之):
통솔하게 하다. 영(領)은 ‘거느리다’이고, ‘지(之)’는 ‘그것을’(재지시대명사)이다.
又命行內侍府謁者 주034)
알자(謁者):
내시부에 딸린 종7품의 관직. 나라에 일이 있을 때 명령을 전하고 인도하는 일을 맡은 관원.
李春 주035)
이춘(李春):
미상.
護軍 주036)
호군(護軍):
중앙군(中央軍)인 오위(五衛)에 속해 있던 정4품의 무관직. 태조(太祖) 원년(1392)에 십위(十衛)를 설치하고 상장군(上將軍), 대장군(大將軍), 장군(將軍) 등을 두어 지휘통솔하게 하였다가, 동왕 3년에 십위를 십사(十司)로 고치고 상장군을 도위사(都尉使)로, 대장군을 도위첨사(都尉僉事)로, 장군을 사마(司馬)로 고쳤다. 태종(太宗) 6년(1406)에 상호군(上護軍), 대호군(大護軍), 호군으로 각각 고쳤다. 중앙군의 편제인 십사는 태종 18년에 12사로, 문종(文宗)원년(1451)에 5사로, 세조(世祖) 3년(1457)에 5위로 개편되었다.
安堅 주037)
안견(安堅):
?~?. 조선 초기 화가. 자는 가도(可度),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본관 지곡(池谷). 화원(畵員)으로 호군(護軍)까지 역임했다. 세종 29년(1447)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고 이듬해 의장도(儀仗圖)를 그렸다. 총명 정박(精博)하여 널리 고화(古畵)를 보고 그 깊은 경지를 터득, 여러 화가의 장점을 절충하여 많은 명작을 남겼다. 산수화(山水畵)에 특히 뛰어나, 성현(成俔)은 그의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를 최고의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行司勇臣李揚美 주038)
이양미(李揚美):
미상.
張吉生 주039)
장길생(張吉生):
미상.
司𥔰局丞 주040)
사표국승(司𥔰局丞):
사표국은 조선 초기 염초(焰硝)를 굽는 일을 맡아 보던 관사. 세종 27년(1445)에 궐내(闕內)에 두고 관원은 내시부(內侍府)의 관속으로 임명하였다. 승(丞)은 종8품이다.
黃思義 주041)
황사의(黃思義):
미상.
丹雘 주042)
단확(丹雘):
선명하게 붉은 흙이라는 의미로 화려한 색칠인 단청 작업을 말함.
之事 錦城大君 주043)
금성대군(錦城大君):
1426~1457. 세종의 여섯째 아들. 이름이 유(瑜).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세종 15년(1433)에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세종 19년(1437) 방석(芳碩)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단종 3년(1455) 수양대군에 의해 모반 혐의로 삭녕(朔寧)으로 유배, 이어 광주로 옮겨졌다. 세조 3년(1456)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순흥(順興)에 안치(安置), 그 곳에서 다시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영조 14년(1738)에 신원(伸寃). 초시(初諡)는 의민(義愍), 뒤에 정민(貞愍)으로 개시(改諡)됨.
義昌君 주044)
의창군(義昌君):
세종의 아들. 신빈김씨(愼嬪金氏) 소생, 이름이 강(玒)이다.
領之 瑢等卜地 주045)
복지(卜地):
터를 잡다. 복(卜)은 점치다의 의미. 지(地)는 터.
于宮城之北 始於七月二十八日壬子 畢於冬十一月 二十日壬寅 總二十六 주046)
간(間):
‘칸’. ① 길이의 단위. 10자에 해당한다. ② 집의 간살의 수효를 세는 단위. ③ 집의 간살의 면적의 단위. 보통 7자 내지 9자의 평방에 해당함.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佛殿 주047)
불전(佛殿):
부처님이나 보살들을 안치한 전당(殿堂). 혹은 본존불(本尊佛)을 안치하여 가람의 중심을 이룬 전당. 불당(佛堂).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전(大殿).
一間 補簷 주048)
보첨(補簷):
부연(附椽)을 달아서 꾸민 처마.
八間 僧堂 주049)
승당(僧堂):
스님들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당사(堂舍). 운당(雲堂), 좌당(坐堂), 불당(佛堂) 등으로 부름.
三間 禪堂 주050)
선당(禪堂):
좌선당(坐禪堂)의 약칭. 승당과 구별하여 선당이라 할 때는 승당은 좌선이나 수면이나 음식 등의 장소를 말하고, 선당은 오로지 참선하는 도량을 이르게 됨.
三間 正門三間 廚舍 주051)
주사(廚舍):
음식을 장만하는 부엌. 주방(廚房).
三間 주052)
고(庫):
고방(庫房). 창고(倉庫).
三間 浴室三間】
凡百 주053)
범백(凡百):
일체(一切). 범(凡)은 모두의 의미. 백(百)은 수의 극치로 인정하여 모든 수의 의미.
制度 주054)
극(極):
다하다. 극한에 이름.
一時之盛

사리영응기
세종 31년(1449) 7월 19일 계묘일에 〈주상께서〉 의정부에 전지하기를, “태종께서 일찍이 문소전 옆에 불당을 세운 것은 선열의 성상들에게 명복을 빌기 위함이었는데, 문소전을 지금 이미 옮겨 세우고서도 불당을 아직 세우지 못했으니, 나는 선왕님들의 소원을 떨어뜨릴까 염려된다.”라고 하시고는 곧 의정부 좌참찬 신 정분(鄭苯), 중추원사 신 민신(閔伸), 판내시부사 신 최습(崔濕), 사직 신 권환(權懽), 부사직 신 변대해(邊大海), 행직장 신 이명민(李命敏)에게 명하여 경영하고 주선하게 하고, 안평대군이용(李瑢)에게 지휘하게 하였다. 또 행내시부 알자 신 이춘(李春), 호군 신 안견(安堅), 행사용 신 이양미(李揚美), 신 장길생(張吉生), 행사표국승 신 황사의(黃思義)에게 단청의 일을 맡도록 명하시고, 금성대군 신 이유(李瑜), 의창군 신 이강(李玒)에게 주관하게 하니, 지휘자 이용 등이 궁성의 북쪽에 터를 잡고, 7월 28일 임자일에 시작하여 11월 20일 임인일에 마치니, 총계 26칸이다.【불전 1칸에 부연의 처마가 8칸, 승당 3칸, 선당 3칸, 정문 3칸, 주벙 3칸, 창고 3칸, 욕실 3칸】 모든 제도가 일시의 풍성함을 다하였다.
Ⓒ 역자 | 이종찬 / 2013년 10월 2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상(上):임금[君主]. 더 높여 존칭할 때는 성상(聖上)이라 함. 일반적으로, 호칭으로 말할 때는 주상전하(主上殿下)라 함. 여기서는 세종을 가리킴.
주002)
삼십유일년(三十有一年):31년. 유(有) 자는 ‘또’, ‘거기에 더함’의 의미이니, 정확한 해석은 “30이요 또 한 해”이다. “현재 임금이 즉위한 지 31년”이란 뜻이니, 서기 1449년이다.
주003)
추칠월(秋七月):7월. 옛날의 역법(曆法)에는 날짜의 기록에 4가지 순서가 있다. 연(年), 시(時, 4계절), 달[月], 날짜[日]이다. 그래서 달 앞에 춘하추동 사시(四時)를 꼭 기재했다. 오늘날에는 달만을 표시하니, 번역에 사시는 생략한다.
주004)
계묘(癸卯):앞의 날짜의 간지이니, 그날이 계묘라는 의미이다. 옛날의 역법(曆法)에는 연월일의 4단계를 육십갑자(六十甲子)의 간지(干支)로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만약 오늘 이 시간이 임진년 유월 13일 12시라면, 임진(壬辰)년 갑오(甲午)월 무오(戊午)일 병오(丙午)시가 된다. 생년월일시를 사주(四柱)라 함은 이 네 단계의 시간 계산법인 것이다.
주005)
전지(傳旨):임금님의 뜻을 전하다. 지(旨)는 ‘뜻, 곧 임금의 뜻’이고, 전(傳)은 ‘전하다’임.
주006)
우(于):~에. 전치사의 구실을 한다.
주007)
의정부(議政府):조선 시대 임금을 보좌하고 정무를 총괄하던 최고의 행정기관. 정종(定宗) 2년(1400)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를 의정부로 고치고, 종전과 같이 문하부(門下部)의 영부사(領府事) 1인, 좌·우정승(左右政丞) 각 1인, 판부사(判府事) 2인, 찬성사(贊成事) 2인, 정당문학(政堂文學) 1인, 지부사(知府事) 2인, 사인(舍人) 2인, 검상(檢詳) 1인, 좌사(左使) 1인, 우사(右使) 1인 등으로 합의체를 구성하였다가, 태종(太宗) 원년(1401)에 문하부를 혁파하고 의정부 체제를 확립시켜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1인, 좌·우정승 각 1인,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 2인,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 2인, 문학(文學) 1인,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1인, 참의정부사(參議政府事) 2인, 사인 2인, 검상 1인, 녹사 1인을 두었다. 태종 14년에 좌·우정승과 찬성사·참찬의정부사·지의정부사·참지의정부사를 없애고, 판의정부사를 좌의정·우의정으로, 동판의정부사를 촤참찬·우참찬으로 고쳤고, 이듬해에 좌참찬을 찬선(贊成), 우참찬을 참찬9(參贊)으로 고쳤다. 세조 12년(1466)에 영의정부사를 영의정으로, 녹사를 사록(司錄)으로 고치고, 고종(高宗) 31년(1894) 갑오경장으로 총리대신(總理大臣) 1인, 좌·우찬성 각 1인, 사헌(司憲) 5인, 참의(參議) 5인, 주사(主事) 31인을 두었다. 이듬해에 의정부를 내각(內閣)으로 고쳤다. 건양(建陽) 원년(1896)에 다시 의정부로 고치고 의정(議政) 1인, 참정(參政) 1인, 찬정(贊政) 5인, 참찬(參贊) 1인, 참서관(參書官) 2인, 주사 8인을 두었다가, 광무(光武) 11년(1907)에 다 내각으로 고쳤다.
주008)
태종(太宗):1367~1422. 조선 제3대 임금. 재위 19년. 이름은 방원(芳遠), 자는 유덕(遺德). 태조의 제5남. 어머니는 신의왕후(神懿王后). 비는 원경왕후(元敬王后).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하여 아버지 이성계(李成桂)의 휘하에서 구세력을 숙청하고 신진세력의 기반을 확고히 하여 아버지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 성공하였다. 조선 개국후 정안대군(靖安大君)에 봉해졌다. 태조가 계비(繼妃) 강씨(康氏) 소생 의안대군(宜安大君) 방석(芳碩)을 세자로 정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세자를 보필하는 정도전(鄭道傳)과 방석을 죽이고, 형인 영안대군(永安大君) 방과(芳果; 定宗)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하고, 회안대군(懷安大君) 방간(芳幹)의 난을 평정하는 등 두 번의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정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배불정책을 확실히 하며 관제(官制)의 개혁에 주력하였고 종이 화폐를 창안하여 경제유통을 원활히 하고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민정을 살피고, 호패법(號牌法)을 신설하여 호구 수를 명확히 하는 등 제반 제도를 완비했다. 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서책의 간행도 힘썼다. 태종의 시호는 ‘태종공정성덕신공건천체극대정계우문무예철성렬광효대왕(太宗恭定聖德神功建天體極大正啓佑文武睿哲成烈光孝大王)’이다.
주009)
상(嘗):일찍이, 부사. 일찍이 ~을 한 적이 있다.
주010)
문소전(文昭殿):전각의 이름. 조선의 태조와 비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위패를 봉안했던 전각. 태조 5년(1396)에 건립한 인소전(仁昭殿)에 정종(定宗)이 즉위하여 모후인 신의왕후의 영정을 봉안하고, 태종 8년(1408)에 문소전으로 이름을 고치고 태조의 영정도 함께 봉안하였다가, 세종(世宗) 14년(1432)에 경복궁(景福宮) 안에 새로 문소전을 짓고 태조의 위패와 광효전(廣孝殿)에 있던 태종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옛 문소전은 폐하였다. 경복궁 안의 문소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주011)
소이(所以):① 원인, 이유의 표시. ② 인과 관계의 표시. ‘~하는 바이다. 그런 이유이다. 그런 까닭이다’로 풀이된다.
주012)
추명복(追冥福):추(追)는 ‘추도(追悼) 추천(追薦)’의 준말로, ‘죽은 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려는 기도’이고, 명복(冥福)은 ‘죽은 이가 저승에서 누리는 복’이다.
주013)
어(於):전치사로서, ‘~에, ~에게’의 뜻. ‘어(扵)’는 ‘어(於)’의 속자(俗字)인데 원문에서는 대다수 속자를 썼음.
주014)
열성(列聖):지난 여러 임금. 성(聖)은 ‘성상(聖上)’의 준말로 임금을 높여서 부르는 말.
주015)
미영(未營):미(未)는 ‘아직 ~못했다’의 의미이고, 영(營)은 ‘건조(建造)’의 의미이다.
주016)
여(予):나. 여기서는 군왕이 자신을 낮추어 이른 말.
주017)
선왕(先王):선대의 임금. 앞서 가신 임금.
주018)
참찬(參贊):벼슬 이름. ① 참잔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의 준말. ②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의 정2품 벼슬. 좌참찬(左參贊)·우참찬(右參贊)이 있었다. 태종 14년(1414)에 동판부사 (同判府事)를 좌·우참찬으로 고쳤다가 동왕 15년에 좌참찬을 찬성(贊成)으로 우참찬을 참찬으로 고쳤다.
주019)
신(臣):신하. 임금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명시하는 것이니, 임금을 상대로 하는 글에는 관용적으로 써야 한다. 글자의 호수도 한 품수 낮추는 것이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을 높이는 예의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편집의 편의상 글자 크기를 같게 하였다.
주020)
정분(鄭苯):?~1454. 자는 자의(子畏)이고, 호는 면재(勉齋), 애일당(愛日堂)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판중부사 정이오(鄭以吾)의 아들로서, 태종 16년(1416년)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세종 3년(1421)에 이조 좌랑(吏曹佐郞), 1425년에 병조 정랑(兵曹正郞)이 되고, 세종 10년(1428)에 사인(舍人)으로 함길도 경차관(咸吉道敬差官)이 되어 수재민을 구호했다. 세종 12년(1430)에 집의(執義)로 성개(成槩)의 노비 사건을 논하지 않아 유배되었다. 세종 14년(1432)에 풀려나 우승지(右承旨), 충청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이듬해 공조 참판(工曹參判)으로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세종 28년(1447)에 좌참찬(左參贊)으로 숭례문(崇禮門) 건축을 감독했다. 문종 1년(1451)에 좌찬성 호조판서(戶曹判書)를 겸임하고 다음해 문종이 승하할 때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과 어린 세자(단종)의 보호를 부탁받았다.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낙안으로 유배되어 사사되었다. 뒤에 신원(伸寃)되어 장흥(長興)의 충렬사(忠烈祠)에 제향(祭享)되었다.
주021)
중추원사(中樞院使):중추원은 조선 초기의 중앙관청. 계복(啓復, 임금에게 알리고 하달하는 직책), 차섭(差攝, 임금을 대신하여 일을 처리함), 병기(兵器), 군정(軍政), 숙위(宿衛), 경비(警備) 등을 관장하였다. 사(使)는 종2품. 태조 원년(1392)에 두었는데, 정종(定宗) 2년(1400)에 삼군부(三軍府)로 고쳤다.
주022)
민신(閔伸):?~1453. 호는 둔암(遯庵), 본관은 여흥이다. 문종 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역임. 수양대군이 명나라로 사신을 갈 때 부사로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다. 단종 1년(1453)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현릉(顯陵) 비역(碑役)을 감독하고 있던 중, 삼군진무(三軍鎭撫) 서조(徐遭)에게 김종서(金宗瑞)의 일파라 하여 참살을 당하였다.
주023)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내시부는 궁중의 일을 관장하던 부서로 판사(判事)는 그 일을 총괄하는 책임자이다. 품계는 종3품.
주024)
최습(崔濕):미상.
주025)
사직(司直):오위(五衛)에 속한 관원으로 정5품의 관직. 태조 3년(1394)에 중랑장(中郞將)을 고친 이름이다.
주026)
권환(權懽):미상.
주027)
부사직(副司直):오위(五衛)에 속한 관원으로 종5품의 관직.
주028)
변대해(邊大海):미상.
주029)
행 직장(行直長):직장은 조선조의 관직, 종7품으로 의금부(義禁府) 상서원(尙瑞院)을 비롯하여 30여 부서에 있었다. 행(行)은 그 관직을 이행했다는 의미로 과거의 직책인 셈이다.
주030)
이명민(李命敏):?~1453. 자는 이회(而晦). 호는 지지당(知止堂). 본관 경주. 정종(定宗) 때 호조 좌랑(戶曹佐郞), 선공감 부정(繕工監副正). 단종(端宗) 1년(1452) 직장(直長) 안악 군수(安岳郡守) 등을 역임하고 다음 해 계유정난(癸酉靖難)에 사사되었다가, 숙종(肅宗) 때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추증(追贈)되어 정문이 세워지고, 영월의 팔충신조사단(八忠臣朝士壇)에 제향.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주031)
경탁지(經度之):그 일을 경영하고 헤아리다. 경은 경영의 의미이고, 탁(度)은 ‘헤아리다’의 뜻으로 독음도 ‘탁’이라 한다. 지(之)는 재지시대명사로 ‘그것’이라 풀이 되지만, 우리 어법으로는 해석하지 않는 것이 옳다. ¶學而時習之(배우고 때때로 익힌다.) - ‘之’가 앞의 배운 것[學]이니, ‘習之’는 배운 그것을 익히다이다. 그러나 우리 국어의 일상적 어법은 ‘익히다’로 만족하지, 꼭 ‘그것을 익히다’ 하지 않는다.
주032)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 조선 세종의 셋째 아들, 이름 용(瑢). 자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琅玕居士), 매죽헌(梅竹軒). 대군은 왕자의 봉호.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沈氏). 세종 10년(1428) 안평대군으로 봉해지고, 이듬해 좌부대언 정연(鄭淵)의 딸과 결혼. 세종 12년(1430) 여러 왕자들과 함께 성균관에 입학하여 학문을 닦았다. 세종 20년(1438) 함경도에 진(鎭)을 설정하자, 왕자들과 함께 북변의 경계 임무를 맡아 야인(野人)들을 토벌하였다. 차츰 조정에서 배후의 실력자로 등장, 문신들을 포섭하여 권신 황보인(黃甫仁), 김종서(金宗瑞)와 제휴하고, 수양대군 측의 무신 세력과 맞서 인사행정의 하나인 황표정사(黃標政事)를 장악, 측근의 문신들을 요직에 앉혔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가게 되어 외교권을 빼앗겼으나, 그 동안 이징옥(李澄玉)을 시켜 경성(鏡城)에 있는 무기를 서울로 옮기는 한편, 무계정사(武溪精舍)를 건립하여 장사들을 모아 무력을 양성하였으나, 귀국한 수양대군에 의해 황표정사가 폐지되어 실권을 상실했다. 이듬해 9월 다시 황표정사를 실시케 하는 등 실권을 회복하려 했으나, 다음달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황보인, 김종서 등이 살해된 후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교동(喬洞)으로 옮겨 사사되었다. 시문에 뛰어났고 당대의 명필로 문종 2년(1452)의 경자자(庚子字)를 개주(改鑄)한 임자자(壬子字)의 자모(字母)를 직접 썼다.
주033)
영지(領之):통솔하게 하다. 영(領)은 ‘거느리다’이고, ‘지(之)’는 ‘그것을’(재지시대명사)이다.
주034)
알자(謁者):내시부에 딸린 종7품의 관직. 나라에 일이 있을 때 명령을 전하고 인도하는 일을 맡은 관원.
주035)
이춘(李春):미상.
주036)
호군(護軍):중앙군(中央軍)인 오위(五衛)에 속해 있던 정4품의 무관직. 태조(太祖) 원년(1392)에 십위(十衛)를 설치하고 상장군(上將軍), 대장군(大將軍), 장군(將軍) 등을 두어 지휘통솔하게 하였다가, 동왕 3년에 십위를 십사(十司)로 고치고 상장군을 도위사(都尉使)로, 대장군을 도위첨사(都尉僉事)로, 장군을 사마(司馬)로 고쳤다. 태종(太宗) 6년(1406)에 상호군(上護軍), 대호군(大護軍), 호군으로 각각 고쳤다. 중앙군의 편제인 십사는 태종 18년에 12사로, 문종(文宗)원년(1451)에 5사로, 세조(世祖) 3년(1457)에 5위로 개편되었다.
주037)
안견(安堅):?~?. 조선 초기 화가. 자는 가도(可度), 득수(得守) 호는 현동자(玄洞子)·주경(朱耕). 본관 지곡(池谷). 화원(畵員)으로 호군(護軍)까지 역임했다. 세종 29년(1447)에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위하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리고 이듬해 의장도(儀仗圖)를 그렸다. 총명 정박(精博)하여 널리 고화(古畵)를 보고 그 깊은 경지를 터득, 여러 화가의 장점을 절충하여 많은 명작을 남겼다. 산수화(山水畵)에 특히 뛰어나, 성현(成俔)은 그의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를 최고의 작품이라고 격찬했다.
주038)
이양미(李揚美):미상.
주039)
장길생(張吉生):미상.
주040)
사표국승(司𥔰局丞):사표국은 조선 초기 염초(焰硝)를 굽는 일을 맡아 보던 관사. 세종 27년(1445)에 궐내(闕內)에 두고 관원은 내시부(內侍府)의 관속으로 임명하였다. 승(丞)은 종8품이다.
주041)
황사의(黃思義):미상.
주042)
단확(丹雘):선명하게 붉은 흙이라는 의미로 화려한 색칠인 단청 작업을 말함.
주043)
금성대군(錦城大君):1426~1457. 세종의 여섯째 아들. 이름이 유(瑜).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세종 15년(1433)에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세종 19년(1437) 방석(芳碩)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단종 3년(1455) 수양대군에 의해 모반 혐의로 삭녕(朔寧)으로 유배, 이어 광주로 옮겨졌다. 세조 3년(1456)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순흥(順興)에 안치(安置), 그 곳에서 다시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발각되어 사사(賜死)되었다. 영조 14년(1738)에 신원(伸寃). 초시(初諡)는 의민(義愍), 뒤에 정민(貞愍)으로 개시(改諡)됨.
주044)
의창군(義昌君):세종의 아들. 신빈김씨(愼嬪金氏) 소생, 이름이 강(玒)이다.
주045)
복지(卜地):터를 잡다. 복(卜)은 점치다의 의미. 지(地)는 터.
주046)
간(間):‘칸’. ① 길이의 단위. 10자에 해당한다. ② 집의 간살의 수효를 세는 단위. ③ 집의 간살의 면적의 단위. 보통 7자 내지 9자의 평방에 해당함.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47)
불전(佛殿):부처님이나 보살들을 안치한 전당(殿堂). 혹은 본존불(本尊佛)을 안치하여 가람의 중심을 이룬 전당. 불당(佛堂).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전(大殿).
주048)
보첨(補簷):부연(附椽)을 달아서 꾸민 처마.
주049)
승당(僧堂):스님들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당사(堂舍). 운당(雲堂), 좌당(坐堂), 불당(佛堂) 등으로 부름.
주050)
선당(禪堂):좌선당(坐禪堂)의 약칭. 승당과 구별하여 선당이라 할 때는 승당은 좌선이나 수면이나 음식 등의 장소를 말하고, 선당은 오로지 참선하는 도량을 이르게 됨.
주051)
주사(廚舍):음식을 장만하는 부엌. 주방(廚房).
주052)
고(庫):고방(庫房). 창고(倉庫).
주053)
범백(凡百):일체(一切). 범(凡)은 모두의 의미. 백(百)은 수의 극치로 인정하여 모든 수의 의미.
주054)
극(極):다하다. 극한에 이름.
책목차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