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영응기
세종 31년(1449) 7월 19일 계묘일에 〈주상께서〉 의정부에 전지하기를, “태종께서 일찍이 <건물>문소전건물> 옆에 불당을 세운 것은 선열의 성상들에게 명복을 드리기 위함이었는데, <건물>문소전건물>을 지금 이미 옮겨 세우고서도 불당을 아직 세우지 못했으니 나는 선왕님들의 소원을 떨어뜨릴까 염려된다.”라고 하시고는 곧 의정부 좌참찬 신 정분(鄭苯), 중추원사 신 민신(閔伸), 판내시부사 신 최습(崔濕), 사직 신 권환(權懽), 부사직 신 변대해(邊大海), 행 직장 신 이명민(李命敏)에게 명하여 경영하고 주선하게 하고, 안평대군 신 이용(李瑢)에게 지휘하게 하였다. 또 행 내시부 알자 신 이춘(李春), 호군 신 안견(安堅), 행 사용 신 이양미(李揚美), 신 장길생(張吉生), 행 사표국 승 신 황사의(黃思義)에게 단청의 일을 맡도록 명하시고, 금성대군 신 이유(李瑜), 의창군 신 이강(李玒)에게 주관하게 하니, 지휘자 이용 등이 궁성의 북쪽에 터를 잡고, 7월 28일 임자일에 시작하여 11월 20일 임인일에 마치니, 총계 26칸이다. 모든 제도가 일시의 풍성함을 다하였다.
애초에 태조강헌대왕께서 황금으로 삼신여래를 주조하시다 마치지 못하고 승하하시었는데, 지금에 이르러 주상께서 행 첨내시부사 신 한홍(韓洪), 동판내시부사 신 전균(田畇), 안견(安堅), 행 사직 신 김남흡(金南洽), 행 부사직 신 강승(姜升), 좌부승직 신 최읍(崔浥), 행 내시부 알자 신 김결(金潔)에게 명하여, 뛰어난 주철공을 거느리고 이어서 남은 작업을 완성하게 하고, 아울러 약사여래와 아미타불과 보살 나한상을 조성하라 하시었습니다. 이용(李瑢)과 임영대군(臨瀛大君) 신 이구(李璆)에게 주관하게 하고, 대자암 주지 신 신미(信眉)와 신 김수온(金守溫)에게 명하여 <작품>‘삼불예찬문’작품>을 짓게 하시었습니다.
또 〈임금께서〉 친히 새로운 노래를 지으시니, <작품>앙홍자지곡작품>, <작품>발대원지곡작품>, <작품>융선도지곡작품>, <작품>묘인연지곡작품>, <작품>포법운지곡작품>, <작품>연감로지곡작품>, <작품>의정혜지곡작품>이다. 그 악장은 아홉이 있으니, <작품>귀삼보작품>, <작품>찬법신작품>, <작품>찬보신작품>, <작품>찬화신작품>, <작품>찬약사작품>, <작품>찬미타작품>, <작품>찬삼승작품>, <작품>찬팔부찬작품>, <작품>희명자작품>라 이른다.
행 상호군 신
박연(朴堧), 행 우부승직 신
임동(林童), 전악 신
김윤산(金允山), 신
황귀존(黃貴存), 행 내시부 급사 신
안충언(安忠彥)에게 명령하여 영인
(악공)
을 거느리고 예속하게 하고,
수양대군 신
이유(李瑈)에게는 새 악보를 가지고 인솔하게 하였다. 악기를 잡은 자가 45인이고, 죽간자를 잡은 자가 2인이며, 노래하는 자가 10인이고, 동자로 꽃을 잡고 춤추는 자가 10인데, 푸른 연꽃을 잡은 이가 1, 누런 연꽃을 잡은 이가 1, 붉은 연꽃을 잡은 이가 1, 흰 연꽃을 잡은 이가 1, 누런 모란을 잡은 이가 1, 붉은 모란을 잡은 이가 1, 흰 모란을 잡은 이가 1, 누런 작약을 잡은 이가 1, 붉은 작약을 잡은 이가 1, 흰 작약을 잡은 이가 1인이다.
이에 11월 28일 경술일에 대궐 안에서 재계를 시작하고, 12월 초2일 갑인일에 모든 관원에게 형벌, 살인, 도살을 금지시키었다. 이날에, 신미 및 판선종사 신 탄주(坦珠), 판교종사 신 희인(希忍), 선덕(禪德) 신 홍준(洪濬), 전 대자암 주지 신 지해(智海), 선덕 신 신능(信能), 신 성균(性均), 전 개경사 주지 신 경전(敬田), 개경사 주지 신 수미(守眉), 진관사 주지 신 심명(心明), 대선사 신 신유(信柔), 입선 신 성한(性寒), 선덕 신 법장(法藏), 대선사 신 지우(智牛), 선덕 신 도응(道膺), 중덕(中德) 신 해우(海祐), 선덕 신 의전(義全), 신 학열(學悅), 전 승가사 주지 신 신경(信敬), 중덕 신 설휘(雪徽), 대선(大選) 신 의림(義琳), 선덕 신 경의(敬義), 신 상제(尙濟), 신 인비(仁丕), 신 해상(海祥), 신 일중(一中), 대선 신 도전(道傳), 선덕 신 신관(信觀), 신 홍계(洪戒), 신 성비(省丕), 신 학관(學觀), 신 지선(智禪), 신 의현(義玄), 신 홍정(洪正), 신 혜철(惠哲), 신 일은(一誾), 신 경행(景行), 신 조명(祖明), 신 보문(普門), 신 상혜(尙惠), 신 성종(性宗), 신 불천(佛川), 신 극허(克虛), 신 탁봉(卓峰), 신 칠정(七淨), 신 의륜(義倫), 신 법융(法融), 신 신정(信正), 신 수정(水精), 신 극순(克馴), 신 성정(省正) 등 51비구가 새 절에 모였는데, 이유, 이용에게 명하여, 가서 모여 정분(鄭苯), 민신(閔伸), 박연(朴堧), 판내시부사 신 엄자치(巖自治), 최습(崔濕), 행 내시부좌승직 신 안로(安璐), 한홍(韓洪), 행 동판내시부사 신 인평(印平), 도승지 신 이사철(李思哲), 행 동지내시부사 신 이귀균(李貴畇), 소윤 신 정효강(鄭孝康), 임동(林童), 행 내시부 알자 신 이운(李芸), 권환(權懽), 최읍(崔浥), 변대해(邊大海), 이명민(李命敏), 주서 신 성임(成任) 및 신 김수온(金守溫) 등과 함께 여러 업무에 배치하게 하시다.
초3일 을묘 새벽에,
이유(李瑈)가
한홍(韓洪),
정효강(鄭孝康),
안견(安堅),
김남흡(金南洽),
임동(林童),
최읍(崔浥) 및 신
김수온(金守溫)을 거느리고 부처님을 대궐로 영접하니, 주상께서
효령대군 신
이보(李{示+甫}),
이구(李璆),
이유(李瑜),
영응대군 신
이염(李琰),
광덕대부 신
안맹담(安孟耼)에게 명하여, 부처님을 모시고 가게 하였다. 불상이 <건물>교태전건물>에서 정원을 거쳐 <건물>현무문건물>으로 나와 절로 향하니
임동이
김윤산(金允山),
황귀존(黃貴存)과 함께 영인
(伶人; 배우)
을 거느리고 <건물>현무문건물> 밖에 서 있다가, 부처를 바라보자 새 음악을 연주하며
이용과 비구 등 및
정분(鄭苯),
민신(閔伸),
박연(朴堧),
최습(崔濕),
이사철(李思哲),
전균(田畇),
권환(權懽),
변대해(邊大海),
이명민(李命敏),
성임(成任) 등을 앞에서 인도했다. 꽃 향기의 당번으로 법라를 불고 법고를 쳐서 크게 범패를 하며 절 뒤의 산마루 위에서 영접하니, 가까이 모시는 행렬의 무리가 다 감동하여 울었다. 도시의 남녀가 물결처럼 내달려 바라보며 머리 조아려 예배하며 이에 새로운 전각에 불상을 평안히 모셨다.
초4일 병진일에, 이유(李瑈)에게 명하여 분향을 올리게 하니, 이유가 대궐로 가서 이염(李琰)과 함께 향을 받들어 왔다.
초5일 정사일에, 세 번 점안이 끝나고, 초6일 무오일에 법 자리를 펴고 낙성식을 하였다. 이날 저녁 이용과 이염을 불러 명하시기를, “너희들은 곤룡포 2벌, 침수향 1봉지를 받들고 가서 세존에게 드려라.” 하시고, 또 신미와 모인 대중에게 이르시기를, “나의 효성이 어찌 감히 부처님의 영감에 합격할 수가 있겠느냐? 그러나 대중의 힘에 의지하여 감응을 얻는다면 역시 가신 분을 천도하는 마음에 만족하지 않겠는가? 사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오늘이 아니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려야 되겠는가? 오늘 밤에 정성으로 간절히 애걸하기를 부지런히 하리라.” 하시니, 이에 대중들이 머리 조아려 감동해 울며, 곧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세수하고 다투어 정성을 피며 서로 언약하기를, “지금 성상께서 조상을 추모하여 끝이 없는 정으로 큰 소원을 발하시어 복밭을 창건하시고, 생각하시기를 백성들과 및 돌아가신 분에게까지 함께 좋은 업을 숭상하여 착한 인연을 맺고자 하시니, 실로 보살들의 큰 소원과 함께해도 다를 것이 없도다. 세존의 자비는 사물에 대응하여 곧 나타나는 것이 마치 달이 강물에 인 찍히는 것 같고, 골짜기가 메아리로 답하는 것과 같다. 본디 소원의 힘으로 항상 건너고 벗어나는 기미를 구하면 큰 신통력을 들어내 뭇 중생을 건져 주시니 진실로 정성을 이룬다면 작은 것까지도 비추시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오늘 성상이 지성으로 세존에게 간절히 측은한 생각으로 진신부처님을 보기 원했으니 세존께서 감응하시거나 감응하지 않거나 함이야 무슨 의아함이 있으리오. 다만 우리들의 정성이 이르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다. 우리들이 만약 사리를 얻지 못한다면 장차 삼계의 죄인이다. 살아서는 재앙 앙화를 받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으리니, 무슨 낯으로 다시 세상 사람을 볼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응당 죽음으로 기한을 삼더라도 기필코 반듯이 얻어야 한다.”라고 하고는, 곧 그 장소에 모인 대중들이 귀하고 천함을 따질 것 없이 함께 부처님 앞에 들어가니, 모두 2백 61인이었다. 팔뚝을 태우며 참회하고, 이에 이용과 신미가 곤룡포를 올리고 나자, 이유가 다시 엄숙히 공경으로 향을 사르며 이룬 일을 보고하니, 범패 한 곡조가 나무석가모니불을 불렀다.
그때 즉시 사리탑 사이에서 흰 기운이 옆으로 뻗쳤다. 스님과 신도들이 일제히 화답하며, 앞뒤에서 춤을 추며, 정성 드려 깊이 기도하며, 징과 북이 점점 빨라져 대중의 의지가 더욱 간절해졌다. 첫 마당의 시작에는 누구나 숨이 막혀 혹은 책상 위에 엎어지는 자, 혹은 입을 벌려 다물지 못하는 자, 혹은 쓰러져 남에게 의지하는 자가 있었다. 2경의 1점에서 3점에 이르러 둘째 마당이 끝났다. 이러는 사이에 안팎의 사부 대중이 모두 불전 위에 광채가 난다 하며 가리키는 곳을 우러러 보며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니, 특이한 향기가 널리 퍼져 안팎이 모두 향내를 맡았다.
드디어 사리탑 앞으로 나아가 보며 사리보를 덮고 나니, 권신사리 2잎이 촛불에 들려 비치어 고루 둥글게 빛이 통하여 광채가 뛰어났다. 한 장소에 모인 대중이 절하거나 울거나 하며 보기 드문 마음을 내고 일찍이 없었던 일에 감탄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비노차나(毗盧遮那)의 위없는 세존을 뵙고 오랜 세월 쌓인 업이 모두 다 소멸되었습니다. 우리 부처여래님께서 일체를 가엾이 여기시기 때문에 이런 상서로움을 나타내시니 오로지 성상의 지성에 감동하심입니다.”라고 하며, 머리 조아려 예배하며 깊은 마음으로 우러러 대하였다. 곧바로 성상에게 알리니 성상께서 최읍(崔浥)을 보내어 곤룡단 2필과 채백 비단 2필을 받들고 사리에 헌정하게 하였다. 곧 향 꽃과 음악과 갖가지 공양 도구로 공경하여 공양을 하니 환희의 경사를 어떻게 다 서술하랴. 신령한 광채가 빛나 멀고 가까움 없이 널리 부처의 세계가 한가지로 경사롭고 행복하였다.
봉해 올리고 물러났다가 다음날 아침에 또 2잎을 얻으니 합쳐서 4잎이었다. 성상께서 또 최읍을 보내어 곤룡단 2필과 채단비단 2필과 향기로운 꽃과 음악의 갖가지 이바지로 지성으로 공양하였다. 아울러 견직 천으로 대중들에게 주시니, 일체의 대회 대중이 함께 발원하기를, “우리들은 오늘 우리 성상의 덕을 힘입어 화장의 회합에 참여하여 친히 세존을 공양할 수 있었으니, 아난 가섭과 무엇이 다르리이까? 함께 발원하되 이 도량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겁겁에 함께하여 이별 없이 미혹을 깨달음에 통달하고 잠긴 자 구제함을 들어내어 함께 여래의 바다 같은 지혜에 들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향을 사르고 분신사리와 시방 모든 부처님 보살과 연각과 성문과 팔부 신중(神衆)을 체험하고, 스님과 신도 대중이 서로 마주보며 함께 절을 올렸다.
공손히 생각건대, 우리 주상전하께서 잘 따르시고 잘 이으시어 세상을 화락 태평으로 이끄시고 백성을 인자 장수로 건지시어 예의가 갖추고, 음악이 이루어져 태평성대로 올라 동방에서는 없는 태평을 이루었는데, 효도의 생각이 끝이 없어서 선조들을 추모해 마지않아 서리 이슬 계절의 감회가 더욱 깊고, 보이는 듯한 사모가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모든 삼보(三寶)를 높이시는 것이나 선조의 도움을 받듦에 있어 지극 정성을 쓰지 않음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이런 상서로운 주심이 이렇듯 성대함을 이루었습니다. 신은 엎드려 일을 시작하던 처음부터 직접 보아왔습니다. 날마다 독려되는 3천여 인부가 누구 하나도 나무 돌에 부딪치거나 터럭 하나 손상되는 이 없었고, 역시 누구 하나 감기에 걸리는 이도 없었습니다. 불상을 안치하기 이전 사흘부터 구름이 어둡고 안개 짙고 불볕이 찌는 듯하더니, 그날 새벽 전 한밤이 되자 큰 바람이 홀연히 일어 하늘이 확 맑아지고 싸늘히 찬 기운이 살을 에는 듯하다가 불상이 길을 떠나자 바람이 오히려 세어지다가 절 뒤의 고개마루에 이르려 하니 조용히 바람이 멎고 햇빛이 부드러웠습니다.
도량을 건설하는 7일 동안에는 온화한 기후가 천지에 가득하여 벌, 나비, 벌레들이 도량 안을 날아들었으니, 이것이 곧 세존께서 도리천의 환희동산에 있어 어머니를 위하여 설법하던 날 모든 묘화의 과일이 계절이 아닌데도 익었던 상서로움과 같았습니다. 대회가 끝나기에 이르러 다시 추위가 어는 듯하여 큰 눈이 쌓이었으니, 감응하신 모습이 이렇듯이 들어났던 것입니다.
또 사리를 소원하신 일이 임금님 마음에서만 결정되어 밖의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용(李瑢), 이염(李琰)이 명령을 받고 대궐을 나서지도 않았는데도 절 안이 떠들썩했고, 안평대군과 영응대군이 향 폐백의 함을 받들고 사리를 소원하러 왔고, 사리가 처음 2개가 출현했던 저녁에도 또 분신사리가 4잎이라고 떠들썩하게 말들을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이르러 과연 4잎을 얻었으니 신통합니다. 이렇듯 영험스럽고 기특함을 말하려면 하나 둘이 아닙니다. 모두가 우리 성상의 지극한 덕에 빈틈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도리가 큰 영웅과 합치하였고 효성의 감동이 빛나고 빛나기가 이런 극진함에 이르렀음도 실로 고금을 뛰어넘는 훌륭하고 좋은 인연으로 우리 국가 만세토록 무궁한 아름다움입니다.
대체로 적멸 도량 안의 일은 진실로 측량할 수 없고, 해탈의 경계는 본래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찌 신들의 찬탄이 미칠 바이겠습니까? 그러나 신들이 이런 기이한 계기를 만나 기쁜 경사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만 졸렬한 붓을 희롱하여 삼가 위와 같이 쓰고, 이어 시로써 이어서 장차 후세에 물리며 드날려 알리는 만분의 하나에라도 기대해 봅니다. 시로 쓰되,
하늘이 동방을 열어 우리의 높은 국운을 시작하니
성인 나고 신령이 이어 요임금 같고 순임금 같구나.
우리 임금께서 중흥에 태어나셔 덕은 삼황 오제 겸하시니
모든 하시는 일은 움직이면 반드시 옛 것에까지 닿다.
도가 정치에 흡족하여 예의 갖추고 음악 지으시니
백성들 태평을 즐기며 시대가 안정으로 오르네.
오! 여러 성상님들 영원히 신선 구역을 비장하여
서리 이슬의 계절에 감흥, 정으로 애절히 사모했네.
이에 신령한 판단을 내려 부처님 사찰을 경영하시니
높은 표식으로 벌려 있어 깊은 골짜기에 비치다.
이에 도량을 열어 성인의 진리를 걸어 드날리니
법의 자리가 맑고 맑아 높은 흐름이 출렁이다.
북의 음악이나 노래가 미묘한 음정을 알리니
그 소리 온화하고 우아하여 대중의 마음 기쁘게 하다.
위대하도다 저 사리여 빛나도다 그 영혼이시여
그것이 어찌 딴 뜻이랴 임금님의 정성이로다.
부처님 마음은 끝이 없어 허공과 한가지이니
시방은 가로로 퍼졌고 삼제는 세로로 다하다.
두드리면 울리니 마치 골짜기의 소리 같아
사람들 이것이 감응이라 오직 부처님 정기라 하나
나는 그렇지 않다 우리 임금의 덕스런 향기라네.
오! 덕스런 향기여 이처럼 빛나는 광채여
일만 하고도 일천의 영겁 길이 끝없이 전파되리.
승의랑 수 병조정랑 신 김수온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