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두 글귀는 제법을 밝히신 것이고, 이 아래에서는 다 이 한 마음을 나타내시니라. 논에 일심을 가리켜 이르되, 여래장이라 하니, 그러므로 능가경에서 또 이르시되, 적멸한 것이 이름이 일심이니, 일심이 이름이 여래장이라 하시며, 이 경 아래에서 이르시되, 원각 묘심이라 하시며, 열반경에서 곧 이름이 불성이라 하시니, 이제 이 한 글귀는 모아서 표하심이고, 다음의 두 글귀는 공장이고, 나중의 세 글귀는 불공장이라. 통칭하여 여래장이라 이르심은 세 가지 뜻을 말미암은 까닭이니, 하나는 감추어 덮은 뜻이니, 이르되 여래를 덮어 감추므로 이르되 감춤이니, 그러므로 이취반야경에서 이르시되, 일체 중생이 다 여래장이라 하시며, 승만이 이르되 생사 두 가지 법이 이름이 여래장이며, 여래 법신이 번뇌장에서 벗어나지 아니함이 이름이 여래장이라 하며, 여래장경에서 이르시되, 일체 중생이 탐진치 많은 번뇌 중에 여래의 몸이 있어서, 늘 더러움이 없어 덕상이 갖추어져 나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 하심에 이르시고, 곧 아홉 가지 비유함으로 비유하시니, 하나는 시든 꽃의 부처 몸이고【시든 꽃은 탐사(貪使)이고 부처의 몸은 법신체이니, 시든 꽃으로 탐심을 비유하신 것은 불성론에서 이르되, 연꽃이 처은 피어 있을 때에는 사람이 매우 사랑하여 즐기다가 나중에 시들면 사람이 싫증을 내듯하여, 탐사도 또 그러하다 하니라. 사(使)는 이것은 무명이 시킨 것이니, 무명이 시켜 탐구하케 하기 때문이니, 진과 치도 또 그러하니라. 화불로 법계신을 비유하심은 세간의 법이 참된 부처를 비유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화불을 가지고 비유하신 것이니라.】, 둘은 바위의 벌의 순(淳)한 꿀이고【바위의 벌은 진사(瞋使)이고, 순(淳)한 꿀은 하나의 맛인 법을 일컬으심이니, 벌로써 진(瞋)에 비유하신 것은 벌이 꿀을 간수하므로 일체 사람과 중생을 화를 내어 쏘나니, 많은 중생이 여래장을 알지 못하여 나를 위하여 나를 간수하므로 화를 냄과 같으니라. 순(淳)한 꿀로 한 가지 맛의 법을 비유하심은 논에 이르되, 모든 보살 위하시어 매우 깊은 제1의체(第一義諦)의 법장을 펼쳐 설하심이다.】, 셋은 겨의 갱미(粳米)이고【겨는 치사(癡使)이고 갱미(粳米)는 가지가지 법을 일컬으심이니, 겨로써 치(癡)에 견주심은 겨는 꽃이 번성하고 시들어 가히 탐내며 가히 싫증냄 같지 아니하며, 또 벌의 성냄 같지 아니하여 오직 이 평평한 심경이며, 또 고쳐 변하는 상이 없고 오직 능히 귀한 쌀을 덮으므로 치상(癡相)과 서로 같으니라. 갱미로 갖가지 법을 설하심에 비유하심은 논에 이르되, 명자와 장구(章句)의 가지가지 차별이 세체(世諦)를 말미암으므로 갖가지의 다른 맛과 같으니라.】, 넷은 똥의 진금이고【똥은 증상탐 등이고, 진금은 진여가 개변하지 아니함이니, 똥으로 증상탐 등에 견주심은 3독이 현행(現行)하는 모습이 거칠고 꼴사나워 사람이 싫증을 내며 보므로 똥 같으니라. 위의 셋은 종자이고, 이제 현행에 추(麤)하게(=거칠게) 나타남을 밝히니, 몸과 입과 뜻에 발(發)하여 일체 업을 지으므로 이르되 증상(增上)이라. 금으로 진여를 비유하심은 성이 개변하지 아니하여 사취(邪聚) 중생의 몸에 있어도 다름이 없어 광명이 비치기 때문이니라.】 다섯은 가난한 집의 보배 장(藏)이고【가난한 집은 근본이 무명(無明)이고, 보배 장(藏)은 법신이니, 가난한 집으로써 근본 무명에 비유하심은 논에 이르되, 아라한의 몸 속에 가지고 있는 번뇌가 땅 안의 보배를 천안(天眼)이 없어 보지 못함과 같아서 이같이 자재한 지혜가 무명의 덮음이 됨이라 하니, 범부도 또 같건만 오직 추(麤)하며(=거칠며), 무거움의 닥침이라 이 상이 나타나지 못하므로 나한에 나아가 나타내니, 가난한 집은 2승의 사람이 오직 더운 괴로움을 벗어나고, 제불의 무량 복지 보배의 장을 다 얻지 못함이 세상의 사람이 맑게(=아무것도 없어) 가난하여 일이 없으나, 국왕의 장자라 일컫지 못함과 같으므로, 이르시되 가난한 집이라 보배의 장으로 법신 불성에 견주심은 논에 다섯 가지 비유함 중에 비유하신 법을 모아 나타내어 이르되, 불성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장 같고, 〖이는 다섯째의 비유하심이다.〗 둘은 나무의 과실 같으니, 〖여섯째이다.〗 무시(無始) 세계로부터 옴에 자성 청정한 마음이 무상도를 수행하되, 〖만행이 본래 갖추어져 있음을 꿰뚫어 밝히니라.〗 두 가지의 불성을 말미암아〖다섯과 여섯의 비유함이다.〗, 세 가지의 몸을 내나니, 〖일곱 번째의 법신과 여덟 번째의 보신과 아홉 번째의 화신이다.〗 처음의 비유하심을 말미암은 까닭으로〖보배의 장이다.〗, 첫 법신 있음을 알고〖있음을 앎은 곧 이것이 성인 뜻이니, 법신이 만득(萬得)에 말미암음이 보배 장이 이것이 옷과 밥과 가산과 만사에 말미암음과 같으니라.〗, 둘째의 비유하심을 말미암아〖암라(菴羅)이다.〗 2 불신 있음을 아나니〖또 이것이 성(性)인 뜻이니, 과실의 덜 익음과 익음이 점점 (차이가 나는) 차례인 까닭으로 보(報)와 화(化)와 2신을 비유하심이다.〗 진불(眞佛)의 법신 깨끗하심이 진금상 같으시고〖일곱 번째의 금상(金像)은 전(纏)에 난 법신을 비유하신 것이다.〗, 큰 법왕위를 증하심이 전륜성왕 같으시고〖여덟 번째의 윤왕은 보신(報身)을 비유하심이니라.〗 거울의 상체(像體)를 말미암으시므로 화불상(化佛像)이 계시니라. 【아홉 번째의 지은[鑄] 상(像)은 화신(化身)을 비유하신 것이다. 지음(鑄)은 때를 좇아 고쳐 옮음을 표하신 것이므로 화신 같으시니라. 논에 이르되, 거울의 상은 기연(機緣)을 대함을 따르시어 마음 없이 나타내심이 그림자 같음을 겸하여 취하셨다 하니라.】】 여섯은 암라(菴羅)의 속알맹이고【암라는 견혹(見惑)이고, 〖암라는 과일의 이름이다.〗 속알맹이는 2신 불성이니, 암라로 견혹에 비유하심은 논에 이르되 범부의 몸 속에 잡힌 번뇌이니, 처음 출세간 법지가 능히 그침을 일컬음이 견도(見道)에서 끊어지는 번뇌라, 그러므로 게(偈)에 이르되, 자(子)의 거죽을 여의면 차례로 싹들이 남과 같아서, 견도(見道)에 번뇌가 그치면 차례로 제지(諸地)가 나느니라.】, 일곱은 헌 것의 금상(金像)이고【헌 것은 수혹(修惑)이고, 금상은 법신이니라. 헌 것으로 수혹에 비유하심은 성인의 몸 속의 잡힌 번뇌가 출세간법 수도지(修道智)가 능히 그침과 같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게에서 이르되, 신견(身見) 등을 깨뜨려버려 미묘한 성도(聖道)를 잡아 가져 수도(修道)에서 번뇌를 그치므로 헌 옷이라 이르니라.】, 여덟은 가난한 계집의 윤왕(輪王)이고【가난한 계집은 깨끗하지 아니한 땅의 때이고, 윤왕은 보신이시니, 가난한 계집으로 깨끗하지 아니한 땅의 때를 비유하심은 논에 이르되, 초지(初地)로 부터 7지에 이르기까지 잡힌 번뇌이니, 자주 관(觀)에 나 유루(有漏)의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이다. 8지로부터 위의 3지 중의 수도지(修道智)가 능히 그치느니라.】. 아홉은 초모(焦模)의 주조한 상(像)이다【초모는 깨끗한 땅의 많은 때이고, 주조한 상은 화신이시니, 〖초(焦)는 불이 타는 것이다. 모(模)는 법이니, 쇠그릇 만들 때의 거푸집이다.〗 초모로 깨끗한 땅의 때에 비유하심은 또 이르되, 8지로부터 위의 보살신 중에 잡힌 번뇌이니, 금강 삼매지(三昧智)가 능히 그치는 까닭이다. 8지의 위는 공(功) 없이 운(運)을 맡겨 마음마음이 적멸하여 자연히 불지 대해(佛智大海)에 흘러들기 때문에 이름이 깨끗한 땅이다.】. 둘은 머금어 잡은 뜻이니, 이르되, 여래 법신이 신상(身相)과 국토와 신통 대용(神通大用)과 무량 공덕을 머금어 잡은 까닭이며, 또 일체 중생을 머금어 잡아 다 여래장 안에 있는 까닭이다. 셋은 내는 뜻이니, 이르되, 이 법신이 이미 많은 덕을 머금어 있으므로 알아 깨달아 들면 곧 능히 냄인 까닭이다. 십지론에서 이르되, 지지(地智)가 능히 무루인과(無漏因果)를 내며 또 능히 사람과 하늘의 도행(道行)을 내어 이룬다 하니라. 이 세 뜻이 처음은 미혹한 때를 잡고 나중은 안 때를 잡고 중간은 일정한 체(體)이니【일정한 체는 이르되, 법신이 본래 번뇌가 없어 능히 숨겨 덮을 것이 없고, 본래 덕용(德用)이 갖추어져 냄을 기다리지 아니함이다.】, 그러나 참(眞)과 거짓(妄)과 섞어 합함을 잡는다면, 모두 두 가지의 행상(行相)이 있나니, 이르되, 이 경전 아래에서 이르시되, 여래장 자성(自性) 차별이라 하시며, 논에서 이르되, 진여(眞如) 생멸(生滅)이라 하니, 그러나 참과 거짓이 각각 두 뜻이 있나니, 참은 이르되, 변하지 아니함과 연(緣) 좇음이고, 거짓은 이르되, 체(體)가 비어 있음과 일 이룸이니, 참 속에 변하지 아니함과 거짓 중에 체(體)가 비어 있음은 곧 진여(眞如) 자성(自性)이고, 참 속에 연(緣) 좇음과 거짓 중에 일 이룸은 곧 생멸(生滅) 차별이라. 처음 진여 성중(性中)에 또 두 상(相)이 있으니, 승만(勝鬘)이 이르되, 두 가지의 여래장(如來藏) 공지(空智)가 있나니, 이른바 공여래장(空如來藏)은 일체 번뇌장(煩惱藏)을 벗어나 여읨이고, 불공 여래장(不空如來藏)은 항하사를 지난(보다 많은) 불사의(不思議)한 불법이 갖추어어졌다 하며, 논중에 또 여실히 공(空)하며 여실히 불공(佛空)을 이르니, 뜻이 온전히 이와 같으니라. 나중의 생멸 중에 또 두 상이 있나니, 이르되, 루(漏)와 무루(無漏)이라. 무루가 또 둘이니,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라. 유루(有漏)가 또 둘이니, 이르되, 선(善)과 불선(不善)이라. 이러한 것들의 행상(行相)이 다 업용(業用)이 있나니, 처음 진성(眞性)이 두 업(業)이 있나니, 하나는 능히 자기 체(體)에 있는 항하사와 같이 많은 공덕을 지녀 본래부터 지금까지 내려옴에 잃지 아니하며 깨뜨려버리지 아니함이고, 둘은 능히 객진(客塵) 항하사 번뇌를 막아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옴에 더럽지 아니하며 흐리지 아니함이라. 나중의 생멸(生滅)이 또 두 업(業)이 있나니, 하나는 능히 혹(惑)을 일으켜 업(業)을 지어 오랜 겁(劫)에 6취의 생사를 길이 받나니, 그러므로 능가(棱伽)에서 이르시되, 여래장은 이 선(善)과 불선(不善)의 인(因)이니, 능히 널리 일체 취(趣)의 생(生)을 일으켜 지으며, 생(生)과 멸(滅)이라 하심에 이르다 하시니라. 둘은 능히 참을 알며 거짓을 달(達)하여(=알아), 발심하여 수행하여 3승과를 깨달음이니, 앞의 인용한 10지론 등 같으니라. 나중의 두 업(業)을 말미암으므로 보성론(寶性論)에 경게(經偈)를 인용하여 이르되, 비롯함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성(性)이 제법(諸法)의 의지(依止)가 되니, 법성(法性)에 제도(諸道)가 있으며, 또 열반과를 깨닫나니라 하니, 장행(長行)에 승만(勝鬘)을 인용하여 새기되, 이른바 성(性)은 여래장이고 의지(依止)는 여래장이 이것이 의지하는 바이며, 이것이 지님이며, 이것이 세움이고, 제도(諸道)는 여래장이시므로 생사를 설하나니, 이 이름이 잘 설함(善說)이고, 열반을 깨달음은 만일 여래장이 없으면 고통을 싫증을 내고 열반을 즐겨 구하지 못하리라 하니【제도(諸道)는 생사 6도이고, 열반을 깨달음은 3승도이다.】, 이미 제불의 인과가 처음과 마지막에 의지하므로 도(道)에 들어 행할 사람이 먼저 모름지기 믿고 알지니, 이것을 여의고 따로이 믿으면 믿음이 사(邪)에 떨어지리라. 그러므로 밀엄경(密嚴經)에서 악한 혜(慧)라 꾸짖으시며, 화엄경에서 또 이르시되, 능히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면 어찌 정도를 알리오? 저것이 전도(顚倒)된 혜(慧)로 말미암아 일체의 악을 기르나니라 하시니, 이를 의거한다면, 알아야 비로소 정도를 알리로다. 그러므로 승만(勝鬘)이 이르되, 만일 한없는 번뇌 소전 여래장(煩惱所纏如來藏)에 의혹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출전(出纏)한 무량한 번뇌장(煩惱藏) 법신에 또 의혹이 없으리라 하니, 화엄 첫 회에 보현이 곧 여래장신(如來藏身) 삼매에 드심이 뜻이 여기에 있으시니라. 그러나 비록 이 마음이 범(凡)과 성(聖)이 한가지로 있으나, 오직 과(果)는 (밖으로) 나타나 있어서 믿음이 쉽지만, 인(因)은 숨어 있어서 밝힘이 어려울 것이므로 얕은 식(識)의 무리가 인(因)을 가벼이 여기고 과(果)를 중히 여기나니, 원하는 바는 모든 도자(道者)가 깊이 자기의 마음을 믿을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