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달리 신제총통(新制銃筒)이라고 함. 조선 초기의 화약무기 대부분은 세종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신제총통은 세조대에 만들어진 총통으로 가늠되고 있다. 최초로 기록에 보이는 것은 세조 13년 7월의 기록이다. 신제총통은 크기면에서 사전총통보다는 작고 세총통보다는 크다. 세총통은 나무자루를 끼워서 드는 것이 아니라, 쇠집게인 철흠자를 사용해서 고정하는데 반하여, 이 신제총통은 사전총통과 마찬가지로 나무자루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실물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많이 사용했던 총통으로 생각된다. 채연석(전 한국우주연구원장) 박사가 재구성하여 복원한 것이다.
애
화포식언해 30ㄴ
小쇼藥약線션이 半반半반 오리오 火화藥약이 돈이오 鐵텰丸환이 낫이라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영자총통(盈字銃筒)에는 작은 심지는 반의 반 오리요, 화약은 한 돈이요, 쇠탄알이 한 개다.
영자총통(盈字銃筒):이는 달리 신제총통(新制銃筒)이라고 함. 조선 초기의 화약무기 대부분은 세종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이 신제총통은 세조대에 만들어진 총통으로 가늠되고 있다. 최초로 기록에 보이는 것은 세조 13년 7월의 기록이다. 신제총통은 크기면에서 사전총통보다는 작고 세총통보다는 크다. 세총통은 나무자루를 끼워서 드는 것이 아니라, 쇠집게인 철흠자를 사용해서 고정하는데 반하여, 이 신제총통은 사전총통과 마찬가지로 나무자루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실물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많이 사용했던 총통으로 생각된다. 채연석(전 한국우주연구원장) 박사가 재구성하여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