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 넣을 둥그런 돌로 된 탄알. 조선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완구(碗口)에 사용된 포탄(砲彈)의 일종이다. 재료는 화강석으로 박[瓢]과 같이 둥글게 다듬어 완구로 발사, 공수성(攻守城) 또는 인마(人馬) 살상용으로 사용하였다. 그 제원과 발사요령을 『융원필비(戎垣必備)』 단석조에 따르면, 별대완구용(別大碗口用)은 수마석(水磨石) 120근(斤)을 발사할 경우, 화약 40냥에 격목(檄木)의 길이 7촌 5분, 지름 6촌 5분이다. 사거리는 400보에 이르고, 대완구용은 수마석 45근에 화약이 35냥, 격목의 길이가 5치 2분인데 사거리는 500보이며, 중완구용은 수마석 35근에 화약 35근, 격목길이가 4치 4분, 지름 3치 5분으로 사거리는 5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 특히, 단석은 완구 제작 당시부터 사용되었고 그 뒤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李長孫)이 비격진천뢰를 제작한 뒤로는 이와 함께 병용되었으며, 더욱이 완구는 육전뿐 아니라 해전에서도 사용하였다.
유통식(有筒式) 화기의 한 종류. 조선 태종 때 최해산이 만들었다고 전함. 1985년 경상남도 하동군 동화리에서 등산하던 주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선조 23년(1590) 9월에 함경도 지방의 이물금(李勿金)이 만들었고, 한 번 포탄을 발사하면 사정거리가 1리(里)에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 완구는 함경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후 임진왜란 때 도망가는 왜군을 쫓기 위해 이 곳 경상남도 하동까지 운반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땅에 묻힌 상태였지만 전혀 외상이 없고 만든 기술이 정교하며 주조시기가 확실하고, 임진왜란 때 직접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로 화기 발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애 中듕藥약線션이 半반 오리오 火화藥약이 열석 兩
화포식언해 7ㄱ
냥이오 檄격木목이 네 치니 團단石셕을 노흐라 돌 므긔 셜흔너 斤근이니 五오百 步보 가니라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중완구에는 중간치 심지 반 오리를 쓰고 화약은 13 냥이요, 뇌관은 네 치이며 둥그런 돌 탄환을 쏴라. 돌의 무게는 34근인데 5백 보를 날아간다.
포단석(砲團石):포에 넣을 둥그런 돌로 된 탄알. 조선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완구(碗口)에 사용된 포탄(砲彈)의 일종이다. 재료는 화강석으로 박[瓢]과 같이 둥글게 다듬어 완구로 발사, 공수성(攻守城) 또는 인마(人馬) 살상용으로 사용하였다. 그 제원과 발사요령을 『융원필비(戎垣必備)』 단석조에 따르면, 별대완구용(別大碗口用)은 수마석(水磨石) 120근(斤)을 발사할 경우, 화약 40냥에 격목(檄木)의 길이 7촌 5분, 지름 6촌 5분이다. 사거리는 400보에 이르고, 대완구용은 수마석 45근에 화약이 35냥, 격목의 길이가 5치 2분인데 사거리는 500보이며, 중완구용은 수마석 35근에 화약 35근, 격목길이가 4치 4분, 지름 3치 5분으로 사거리는 5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 특히, 단석은 완구 제작 당시부터 사용되었고 그 뒤 선조 때 화포장 이장손(李長孫)이 비격진천뢰를 제작한 뒤로는 이와 함께 병용되었으며, 더욱이 완구는 육전뿐 아니라 해전에서도 사용하였다.
중완구(中碗口):유통식(有筒式) 화기의 한 종류. 조선 태종 때 최해산이 만들었다고 전함. 1985년 경상남도 하동군 동화리에서 등산하던 주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선조 23년(1590) 9월에 함경도 지방의 이물금(李勿金)이 만들었고, 한 번 포탄을 발사하면 사정거리가 1리(里)에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이 완구는 함경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후 임진왜란 때 도망가는 왜군을 쫓기 위해 이 곳 경상남도 하동까지 운반된 것으로 보인다. 오랜 세월 땅에 묻힌 상태였지만 전혀 외상이 없고 만든 기술이 정교하며 주조시기가 확실하고, 임진왜란 때 직접 사용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로 화기 발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