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화포식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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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려포(蒺藜砲)


蒺질藜녀砲포 用용地디火화筒통야 穿쳔穴혈고 以이小쇼發발火화藥

화포식언해 20ㄴ

약線션으로 納납其기穴혈야 兩냥筒통相샹合합고 以이苧뎌縄승으로 付부結결야 使不불相샹離니고 先션於어砲포筒통內底뎌애 布포火화藥약고 次納납付부結결地디火화及급菱릉鐵텰고 又우以이艾애葉엽으로 塡뎐其기空공處쳐야 使不불搖요動동고 以이蓋개로 塞其기口구而이膠교之지고 以이紙지塗도其기全전體톄四五오襲습라 藥약線션穴

화포식언해 21ㄱ

혈二이ㅣ 在底뎌니 臨님時시穿쳔之지라 投투擲텩之지時시예 恐공火화滅멸故고로 二이處쳐穿천穴혈라 若약用용船션上샹則즉有유菱릉鐵텰니 名명曰왈蒺질藜녀砲포ㅣ오 用용於어陸륙地디則즉無무菱릉鐵텰니 名명曰왈散산花화砲포ㅣ라
Ⓒ 구결 | 이서 / 1635년(인조 13)

蒺질藜려砲포주001)
질려포(蒺藜砲):
질려포통(蒺藜砲筒). 수류탄 같은 포. 조선 초기에 개발된 투척식 무기로 일종의 원시적인 수준의 수류탄이다. 질려포통은 나무와 종이, 그리고 마름쇠와 쑥을 넣어 만든다. 포통 속에 화약이 담긴 종이상자인 지화통(地火筒)과 발화통(發火筒), 그리고 쇠로 만든 마름쇠(질려)와 마른 쑥이 들어가는 구조로 돼 있다. 각 부품은 고유의 기능을 가진다. 질려포통 속에 들어가는 지화통은 폭발력이 약하지만 연기와 화염을 좁은 구멍으로 뿜어내면서 격렬히 요동한다. 발화통은 폭발과 함께 불을 붙이는 구실을 한다. 네 끝이 뾰족한 마름쇠는 원래 성 주변에 뿌려 적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구실을 하는 무기인데, 질려포통 안에 들어 있는 마름쇠는 일종의 파편 구실을 하게 된다. 마른 쑥은 타면서 독한 연기를 내뿜게 된다. 이런 각 부품의 기능이 어우러져 손으로 질려포통을 던지면 땅에 떨어지는 동시에 요동하면서 발화통과 자체 화약이 폭발하고, 마름쇠를 적에게 뿜어내게 된다. 연막·파편·폭발력·화염 등 여러 가지 효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질려포통은 크기에 따라 대·중·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단순히 질려포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에 마름쇠를 넣지 않은 것을 산화포통(散火砲筒)이라고 부른다. 대질려포통은 지름 35cm, 높이 29cm이며 중질려포통과 소질려포통의 지름은 각각 22.3cm, 18.1cm다. 실전에서는 육군보다 수군이 배 위에서 주로 사용했다. 적의 군함이 아군 군함에 접근했을 때 질려포통을 던지면 좁은 갑판 위에서 폭발,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려포통은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진 무기이므로 오랜 세월 보존하기 힘들다. 당연히 실물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전기의 무기 관련 책자인 〈병기도설(兵器圖說)〉이나 조선 중기의 책자인 이 『화포식언해』 등 문헌기록을 토대로 현대에 와서 질려포통을 복원한 과학자는 채연석 박사다. 1970년대 후반 최초로 복원된 질려포통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첫해인 1592년에 벌어진 당포(唐浦) 해전에서 승리했음을 조정에 보고한 문서인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당시 해전에서 사용한 무기 중의 하나로 질려포(蒺藜砲)를 거론하고 있다.

〈질려포통〉

地디火화주002)
지화(地火):
지화통(地火筒). 땅에 묻어 놓는 조선 시대에 썼던 폭탄. 크기는 길이가 13.2센티 정도다. 적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땅에 매설하여 폭발시키는 폭탄이다. 지화통을 땅에 묻어놓은 뒤 점화선을 이용해 불을 붙이면 지화통 속의 화약에 불이 붙어 화약이 타면서 땅 위로 불을 뿜어낸다. 마치 로켓모터를 분사구멍이 위로 가도록 땅에 묻어놓은 것과 같다. 지화통은 종이를 말아서 만들며, 로켓 화기인 주화(走火)나 신기전(神機箭)의 약통과 같이 종이통 속에 화약을 쟁인다. 크기는 길이가 13.2센티, 종이통의 안지름이 1.4센티, 통의 두께가 4밀리이다. 통의 윗면에 있는 분사구멍은 지름이 4밀리 정도다.

〈지화통〉


디화 : 지화(地火). ‘디화〉지화’는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한 소리의 변동이다. 구개음화(口蓋音化) 현상은 국어사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어에서부터 먼저 시작하여 북부지역어로 번져 나아간 발음경제에 따른 소리의 달라짐이다. 유희(柳僖)의 『언문지(諺文志)』에서는 ‘ㄷ(ㅌ)’음의 보기를 들고 있다. 댜(탸)가 쟈(챠)보다 훨씬 소리 내기가 어려워 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의 스승이었던 정동유(鄭東愈)의 고조 형제의 이름 가운데 디화(知和)가 있고 지화(至和)가 있었다고 함을 예로 든 것을 보면 적어도 유희 학생이전의 시기에는 구개음화가 널리 쓰이지 않고 있음을 미루어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평안도 같은 관서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북한 지역어에서는 전기불을 ‘뎐기불’로 발음하여 흔히 ‘뎡거쟝에 뎐기불이 번뎍번뎍 하더라’는 다소 희화적인 예를 들기도 한다. 국어에서 본디 구개음이 아닌 ‘ㄷ, ㅌ’이 ‘ㅣ’ 앞에서 구개음인 ‘ㅈ, ㅊ’으로 바뀌는 음운현상을 구개음화라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나, 사실은 복잡한 음운론적 층위로 구성되어 그 위상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음운과정이다. 구개음화라는 음운현상에 대하여 통시론적 접근을 통하여 국어사에서의 구개음화의 시기와 공간의 자리매김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어사에서 구개음화의 등장 시기는 크게 두 가설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 구개음화 하면 근대국어의 음운현상이라는 것이다(이기문). 그는 근대국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음운변화의 하나가 구개음화라는 주장을 앞서 밝힌 유희의 『언문지』와 문헌자료를 토대로 밝히고 있다. 현재 전하는 자료에서 구개음화의 예는 18세기 초의 『왜어유해(倭語類解)』에 처음 보이며, 『동문유해(同文類解)』의 예들은 그 완성을 가늠하게 것으로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구개음화의 시기를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시기로 상정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구개음화의 시기를 훨씬 앞당겨 잡은 주장이 있다(박병채). 고대 삼국어의 지명 자료에서 일본어나 몽고어와의 음운대응으로 미루어 고구려어의 일부가 어중에서 ㄷ구개음화를 경험하였고, 신라어는 어두에서도 구개음화를 겪었는데, 그에 비해 백제어는 표기 체계의 뒤섞임으로 미루어 볼 때 병존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본다. 앞의 두 가설은 구개음화의 시기 설정에서 고대국어와 근대국어라는 커다란 거리를 보인다. 이는 방언적인 차이로 보아 이미 고대국어시기에서도 일부 지역어에서는 구개음화를 겪은 소리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筒통을  굼글 둛고 小쇼發발火화藥약線션으로 그 굼긔 녀허 두 筒통식 서르

화포식언해 21ㄴ

合합고 모시로[노]흐로 브텨 여 여곰 서르 어긋나디 몯게 고 몬져 砲포筒통 안 밋틔 火화藥약을 펴고 버거 브텨  地디火화와 밋 마람쇠를 녀코주003)
마람쇠를 녀코:
마름쇠를 넣고.
 닙으로 그 븬 곳의 몌워 여곰 움즈기디 몯게 고 두에로 그 부리를 막아 브티고 죠로 그 왼몸을 네다 을 르라 藥약심 굼우 둘히 밋틔 이시니 臨님時시에 으라 드리틸 제 블리 딜가 저허

화포식언해 22ㄱ

故고로 두 곳애 굼글 으라 만일  우희  적이어든 마람쇠주004)
마람쇠:
마름쇠. 마름 풀 가시 같이 생긴 네 발이 달린 쇠를 말함. 능철(菱鐵), 또는 질려(蒺藜), 철질려(鐵蒺藜)라고도 한다. ‘말〉말왐〉말암〉마람〉마름’, ‘마람쇠〉마름쇠’. 옛날에는 마름 씨의 날카로운 가시를 전쟁의 방어용 무기로 썼다. 이보다 더 발전한 것이 마름 씨에서 암시를 얻어 만든 마름쇠[菱鐵]다.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잡기(寄齋雜記)』에는 전주 부윤 이윤경(李潤慶)이 마름쇠로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윤경이 재빠르게 복병을 배치하고 마름쇠를 길에 깔아놓았다. 광대를 시켜 모두 색옷을 입고 마름쇠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재주를 넘게 했다. 적이 보고 일제히 달려들다가 복병에 죽고 혹은 마름쇠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 하였다. 임진왜란 때도 마름쇠가 적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무기였다. 과거에는 사람도 무논 같은 데 자라는 마름을 자원으로 이용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마름의 싹까지 걷어다 나물로 먹었다. 열매에 전분이 많으니 싹에도 영양가가 많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옛 글에 선비가 낙향하여 마름이나 뜯어다 나물 반찬을 하겠다는 내용이 보인다. 마름은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묻혀 지내는 한적한 삶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이규보(李奎補)의 시에 “여강으로 돌아가 물가에서 마름이나 바라볼까[欲歸江郡詠汀蘋]”라고 했다. 그는 부귀영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마름꽃이나 바라보면서 욕심 없이 살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청빈한 삶이야말로 선비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었다.
이시니 일홈이 온 蒺질藜녀砲포이오 뭇희  적이면 마람쇠 업스니주005)
마람쇠 업스니:
마름쇠[菱鐵]가 없으니. ‘마람쇠’ 뒤에는 마땅히 주격조사가 와야 되나 ‘쇠’가 ‘소이’와 같은 이중모음으로 소리가 나므로 주격조사 ‘-이’가 동음생략을 거치면서 생략된 형이다. 중세 국어 시기의 주격 조사에는 ‘-이-ㅣ-∅’가 있었다. 이들은 선행 체언의 음운 환경에 따라 상보적으로 쓰였다. ‘대왕이, 아들이, 친흠이’에서처럼 자음 뒤에서는 ‘-이’가 쓰였고, ‘선조ㅣ’ 같이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다. ‘-ㅣ’모음 뒤에서는 ‘새’에서처럼 ‘∅’가 실현되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16세기 중엽에 등장한 새로운 주격 조사 ‘-가’가 쓰이기 시작했다. ‘-가’는 ‘배가’에서와 같이 모음 뒤에서 쓰였다. ‘긔력이’와 같이 자음 뒤에서 ‘-이’가 쓰이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일반 ‘배’에서는 여전히 주격 조사 ‘∅’가 쓰임을 통해 ‘-가’의 쓰임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격조사 ‘-가’ 는 근대 국어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현대 국어에서는 선행 체언이 자음일 때 ‘-이’가, 모음일 때는 ‘-가’가 주격 조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주격 조사가 아니라 화제를 표시하는 주제격 보조사다. ¶시혹 地獄이 이쇼 鐵蒺藜 이며【蒺藜 말미라】시혹 地獄이 이쇼 火槍 만히 비븨며〈월인석보 21:80〉.
일홈이 온 散산花화砲포ㅣ라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질려포(蒺藜砲)는 지화통
(땅에 묻어 놓은 폭탄)
을 써서 구멍을 뚫고 작은 도화선 심지로써 그 구멍에 넣어 두 통씩을 서로 합하고 모시줄로 붙여 맨다. 하여 서로가 어긋나지 못하게 하고 먼저 포통 안의 밑에 화약을 편다. 그 다음에 붙여 맨 지화와 마름쇠 가시를 넣는다. 또 쑥잎으로써 비어 있는 공간을 메운다. 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덮개로 그 입구를 막아 붙이고 종이로 포탄 전체를 네다섯 번을 바른다. 화약 심지에 구멍 둘이 밑에 있으니 우선 뚫어 놓으라. 적진에 던질 때 불이 꺼질 수도 있으므로 두 곳에 구멍을 뚫어라. 만일 배위에서 쓸 때에는 마름쇠가 있으니 이른바 질려포라 하고, 육지에서 쓸 적이면 마름쇠가 없으니 이른바 산화포(散花砲)라고 한다.
Ⓒ 역자 | 정호완 / 20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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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질려포(蒺藜砲):질려포통(蒺藜砲筒). 수류탄 같은 포. 조선 초기에 개발된 투척식 무기로 일종의 원시적인 수준의 수류탄이다. 질려포통은 나무와 종이, 그리고 마름쇠와 쑥을 넣어 만든다. 포통 속에 화약이 담긴 종이상자인 지화통(地火筒)과 발화통(發火筒), 그리고 쇠로 만든 마름쇠(질려)와 마른 쑥이 들어가는 구조로 돼 있다. 각 부품은 고유의 기능을 가진다. 질려포통 속에 들어가는 지화통은 폭발력이 약하지만 연기와 화염을 좁은 구멍으로 뿜어내면서 격렬히 요동한다. 발화통은 폭발과 함께 불을 붙이는 구실을 한다. 네 끝이 뾰족한 마름쇠는 원래 성 주변에 뿌려 적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구실을 하는 무기인데, 질려포통 안에 들어 있는 마름쇠는 일종의 파편 구실을 하게 된다. 마른 쑥은 타면서 독한 연기를 내뿜게 된다. 이런 각 부품의 기능이 어우러져 손으로 질려포통을 던지면 땅에 떨어지는 동시에 요동하면서 발화통과 자체 화약이 폭발하고, 마름쇠를 적에게 뿜어내게 된다. 연막·파편·폭발력·화염 등 여러 가지 효과로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질려포통은 크기에 따라 대·중·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단순히 질려포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기에 마름쇠를 넣지 않은 것을 산화포통(散火砲筒)이라고 부른다. 대질려포통은 지름 35cm, 높이 29cm이며 중질려포통과 소질려포통의 지름은 각각 22.3cm, 18.1cm다. 실전에서는 육군보다 수군이 배 위에서 주로 사용했다. 적의 군함이 아군 군함에 접근했을 때 질려포통을 던지면 좁은 갑판 위에서 폭발, 적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려포통은 나무와 종이로 만들어진 무기이므로 오랜 세월 보존하기 힘들다. 당연히 실물 유물은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전기의 무기 관련 책자인 〈병기도설(兵器圖說)〉이나 조선 중기의 책자인 이 『화포식언해』 등 문헌기록을 토대로 현대에 와서 질려포통을 복원한 과학자는 채연석 박사다. 1970년대 후반 최초로 복원된 질려포통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 행주산성 유물전시관에 보관돼 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첫해인 1592년에 벌어진 당포(唐浦) 해전에서 승리했음을 조정에 보고한 문서인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당시 해전에서 사용한 무기 중의 하나로 질려포(蒺藜砲)를 거론하고 있다.
〈질려포통〉
주002)
지화(地火):지화통(地火筒). 땅에 묻어 놓는 조선 시대에 썼던 폭탄. 크기는 길이가 13.2센티 정도다. 적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땅에 매설하여 폭발시키는 폭탄이다. 지화통을 땅에 묻어놓은 뒤 점화선을 이용해 불을 붙이면 지화통 속의 화약에 불이 붙어 화약이 타면서 땅 위로 불을 뿜어낸다. 마치 로켓모터를 분사구멍이 위로 가도록 땅에 묻어놓은 것과 같다. 지화통은 종이를 말아서 만들며, 로켓 화기인 주화(走火)나 신기전(神機箭)의 약통과 같이 종이통 속에 화약을 쟁인다. 크기는 길이가 13.2센티, 종이통의 안지름이 1.4센티, 통의 두께가 4밀리이다. 통의 윗면에 있는 분사구멍은 지름이 4밀리 정도다.
〈지화통〉
디화 : 지화(地火). ‘디화〉지화’는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한 소리의 변동이다. 구개음화(口蓋音化) 현상은 국어사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어에서부터 먼저 시작하여 북부지역어로 번져 나아간 발음경제에 따른 소리의 달라짐이다. 유희(柳僖)의 『언문지(諺文志)』에서는 ‘ㄷ(ㅌ)’음의 보기를 들고 있다. 댜(탸)가 쟈(챠)보다 훨씬 소리 내기가 어려워 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의 스승이었던 정동유(鄭東愈)의 고조 형제의 이름 가운데 디화(知和)가 있고 지화(至和)가 있었다고 함을 예로 든 것을 보면 적어도 유희 학생이전의 시기에는 구개음화가 널리 쓰이지 않고 있음을 미루어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평안도 같은 관서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북한 지역어에서는 전기불을 ‘뎐기불’로 발음하여 흔히 ‘뎡거쟝에 뎐기불이 번뎍번뎍 하더라’는 다소 희화적인 예를 들기도 한다. 국어에서 본디 구개음이 아닌 ‘ㄷ, ㅌ’이 ‘ㅣ’ 앞에서 구개음인 ‘ㅈ, ㅊ’으로 바뀌는 음운현상을 구개음화라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나, 사실은 복잡한 음운론적 층위로 구성되어 그 위상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음운과정이다. 구개음화라는 음운현상에 대하여 통시론적 접근을 통하여 국어사에서의 구개음화의 시기와 공간의 자리매김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어사에서 구개음화의 등장 시기는 크게 두 가설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 구개음화 하면 근대국어의 음운현상이라는 것이다(이기문). 그는 근대국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음운변화의 하나가 구개음화라는 주장을 앞서 밝힌 유희의 『언문지』와 문헌자료를 토대로 밝히고 있다. 현재 전하는 자료에서 구개음화의 예는 18세기 초의 『왜어유해(倭語類解)』에 처음 보이며, 『동문유해(同文類解)』의 예들은 그 완성을 가늠하게 것으로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구개음화의 시기를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시기로 상정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구개음화의 시기를 훨씬 앞당겨 잡은 주장이 있다(박병채). 고대 삼국어의 지명 자료에서 일본어나 몽고어와의 음운대응으로 미루어 고구려어의 일부가 어중에서 ㄷ구개음화를 경험하였고, 신라어는 어두에서도 구개음화를 겪었는데, 그에 비해 백제어는 표기 체계의 뒤섞임으로 미루어 볼 때 병존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본다. 앞의 두 가설은 구개음화의 시기 설정에서 고대국어와 근대국어라는 커다란 거리를 보인다. 이는 방언적인 차이로 보아 이미 고대국어시기에서도 일부 지역어에서는 구개음화를 겪은 소리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주003)
마람쇠를 녀코:마름쇠를 넣고.
주004)
마람쇠:마름쇠. 마름 풀 가시 같이 생긴 네 발이 달린 쇠를 말함. 능철(菱鐵), 또는 질려(蒺藜), 철질려(鐵蒺藜)라고도 한다. ‘말〉말왐〉말암〉마람〉마름’, ‘마람쇠〉마름쇠’. 옛날에는 마름 씨의 날카로운 가시를 전쟁의 방어용 무기로 썼다. 이보다 더 발전한 것이 마름 씨에서 암시를 얻어 만든 마름쇠[菱鐵]다.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잡기(寄齋雜記)』에는 전주 부윤 이윤경(李潤慶)이 마름쇠로 왜구를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윤경이 재빠르게 복병을 배치하고 마름쇠를 길에 깔아놓았다. 광대를 시켜 모두 색옷을 입고 마름쇠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재주를 넘게 했다. 적이 보고 일제히 달려들다가 복병에 죽고 혹은 마름쇠에 찔려 부상을 입었다.” 하였다. 임진왜란 때도 마름쇠가 적의 발목을 잡는 중요한 무기였다. 과거에는 사람도 무논 같은 데 자라는 마름을 자원으로 이용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마름의 싹까지 걷어다 나물로 먹었다. 열매에 전분이 많으니 싹에도 영양가가 많다고 믿었던 때문이다. 옛 글에 선비가 낙향하여 마름이나 뜯어다 나물 반찬을 하겠다는 내용이 보인다. 마름은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묻혀 지내는 한적한 삶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이규보(李奎補)의 시에 “여강으로 돌아가 물가에서 마름이나 바라볼까[欲歸江郡詠汀蘋]”라고 했다. 그는 부귀영달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마름꽃이나 바라보면서 욕심 없이 살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청빈한 삶이야말로 선비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었다.
주005)
마람쇠 업스니:마름쇠[菱鐵]가 없으니. ‘마람쇠’ 뒤에는 마땅히 주격조사가 와야 되나 ‘쇠’가 ‘소이’와 같은 이중모음으로 소리가 나므로 주격조사 ‘-이’가 동음생략을 거치면서 생략된 형이다. 중세 국어 시기의 주격 조사에는 ‘-이-ㅣ-∅’가 있었다. 이들은 선행 체언의 음운 환경에 따라 상보적으로 쓰였다. ‘대왕이, 아들이, 친흠이’에서처럼 자음 뒤에서는 ‘-이’가 쓰였고, ‘선조ㅣ’ 같이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다. ‘-ㅣ’모음 뒤에서는 ‘새’에서처럼 ‘∅’가 실현되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16세기 중엽에 등장한 새로운 주격 조사 ‘-가’가 쓰이기 시작했다. ‘-가’는 ‘배가’에서와 같이 모음 뒤에서 쓰였다. ‘긔력이’와 같이 자음 뒤에서 ‘-이’가 쓰이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일반 ‘배’에서는 여전히 주격 조사 ‘∅’가 쓰임을 통해 ‘-가’의 쓰임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격조사 ‘-가’ 는 근대 국어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현대 국어에서는 선행 체언이 자음일 때 ‘-이’가, 모음일 때는 ‘-가’가 주격 조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주격 조사가 아니라 화제를 표시하는 주제격 보조사다. ¶시혹 地獄이 이쇼 鐵蒺藜 이며<원주>【蒺藜 말미라】시혹 地獄이 이쇼 火槍 만히 비븨며〈월인석보 2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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