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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小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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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결 | 이서 / 1635년(인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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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小筒):
소포(小砲). 소통의 일본식 이름은 ‘코쓰스(小筒)’이다. 일본군의 총은 흔히 조총(鳥銃)이라고 알고 있으나 정확한 명칭은 코쓰스다. 1543년에 포르투갈의 사절단을 통하여 들여온 조총은 후일 일본의 기술로 자체 개량, 생산할 단계까지 발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불과 20일도 걸리지 않아 한양을 파죽지세로 점령했다.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총알이 날아오는 통에 조선의 주력무기였던 창, 활은 무력화 되고 말았다. 이 신무기는 날아가는 새도 맞춘다고 해서 조총(鳥銃)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초기 수세에 몰린 선조는 조총부대 확보를 화급한 과제로 삼았다. 1년도 안 돼 조총 생산에 들어갔고 훈련도감을 세워 조총병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활을 쏘는 기병 중심이던 조선의 군사 체제는 포수 중심으로 변화했다. 과거 시험에도 조총 사격술을 포함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에 또 한 번의 피바람이 몰아 닥쳤다. 조총을 앞세웠던 왜군과 달리 기병을 앞세운 여진족의 공격에 조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1637년 1월 남한산성이 청 태종 군사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평안병사 유림 장군은 조총의 특성과 지형을 이용해 청군을 공격했다. 이 전쟁에서 조선 조총군은 청의 장군 양구리를 사살하기도 했다. 청나라가 벌인 많은 전쟁 중 이렇게 높은 대장군이 죽은 것은 병자호란이 유일하다. 조선의 뛰어난 조총 사격술을 잘 알고 있던 청 태종은 1658년 러시아가 나선정벌로 흑룡강성까지 영토를 확장하자 조선에 조총부대 파병을 요구했다. 신유 장군과 200여명의 조총군은 러시아 선적 11대 중 7척을 격파하고 러시아군 대장을 사살해 조청 연합군의 완승을 이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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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통애:
소통(小筒)에는. ‘쇼통〉소통’에서 단모음화를 거쳐서 ‘쇼〉소’로 소리가 굳어져 쓰인 형이다. 단모음화는 국어발달사로 보아 국어발달의 시대 구분을 함에 있어 하나의 큰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보기가 중세어의 ‘ㅐ, ㅔ, ㅚ, ㅟ’가 이중 모음으로 발음되었으나 근대국어로 오면서 단모음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중 모음의 단모음화가 음운체계의 변화를 가져 왔다.
巢소藥약이 두 兩냥이오 地디火화와 小쇼發발火화具구야 열 다이니 每 네 連련線션 中듕小쇼藥약線션이 各각  오리오 마람쇠 열히오 닙은 드 대로 라 筒통밋 두 굼긔 連련線션 中듕藥약線션이  오리라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소통(小筒)에는 소약이 두 냥이요, 지화통과 소발화통을 갖추어 15종이니, 매 네 개를 잇는 중소(中小) 치 심지가 각 한 오리요, 마름쇠가 열이요, 쑥잎은 들어가는 양대로 하라. 통밑 두 구멍에는 심지를 이을 가운데 치 심지가 한 오리다.
Ⓒ 역자 | 정호완 / 20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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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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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小筒):소포(小砲). 소통의 일본식 이름은 ‘코쓰스(小筒)’이다. 일본군의 총은 흔히 조총(鳥銃)이라고 알고 있으나 정확한 명칭은 코쓰스다. 1543년에 포르투갈의 사절단을 통하여 들여온 조총은 후일 일본의 기술로 자체 개량, 생산할 단계까지 발전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불과 20일도 걸리지 않아 한양을 파죽지세로 점령했다.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총알이 날아오는 통에 조선의 주력무기였던 창, 활은 무력화 되고 말았다. 이 신무기는 날아가는 새도 맞춘다고 해서 조총(鳥銃)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초기 수세에 몰린 선조는 조총부대 확보를 화급한 과제로 삼았다. 1년도 안 돼 조총 생산에 들어갔고 훈련도감을 세워 조총병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활을 쏘는 기병 중심이던 조선의 군사 체제는 포수 중심으로 변화했다. 과거 시험에도 조총 사격술을 포함시켰다. 1636년 병자호란으로 조선에 또 한 번의 피바람이 몰아 닥쳤다. 조총을 앞세웠던 왜군과 달리 기병을 앞세운 여진족의 공격에 조선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1637년 1월 남한산성이 청 태종 군사에 의해 포위된 상황에서 평안병사 유림 장군은 조총의 특성과 지형을 이용해 청군을 공격했다. 이 전쟁에서 조선 조총군은 청의 장군 양구리를 사살하기도 했다. 청나라가 벌인 많은 전쟁 중 이렇게 높은 대장군이 죽은 것은 병자호란이 유일하다. 조선의 뛰어난 조총 사격술을 잘 알고 있던 청 태종은 1658년 러시아가 나선정벌로 흑룡강성까지 영토를 확장하자 조선에 조총부대 파병을 요구했다. 신유 장군과 200여명의 조총군은 러시아 선적 11대 중 7척을 격파하고 러시아군 대장을 사살해 조청 연합군의 완승을 이끌기도 했다.
주002)
쇼통애:소통(小筒)에는. ‘쇼통〉소통’에서 단모음화를 거쳐서 ‘쇼〉소’로 소리가 굳어져 쓰인 형이다. 단모음화는 국어발달사로 보아 국어발달의 시대 구분을 함에 있어 하나의 큰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보기가 중세어의 ‘ㅐ, ㅔ, ㅚ, ㅟ’가 이중 모음으로 발음되었으나 근대국어로 오면서 단모음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이중 모음의 단모음화가 음운체계의 변화를 가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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