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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신포(鐵信砲)


鐵텰信신砲포애 中듕藥약線션 半반條됴ㅣ오 火화藥약十십三삼兩냥이오 土토隔격二이寸촌이니 用용習습陣딘時시고 及급烟연臺相샹應응放방之지라
Ⓒ 구결 | 이서 / 1635년(인조 13)

화포식언해 13ㄱ

鐵텰信신砲포애주001)
텰신포애:
철신포(鐵信砲)에. ‘텰〉쳘〉철’로 소리가 단순화한 것은 단모음화와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소리가 변동한 한 것이다. 구개음화 현상은 국어사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어에서부터 먼저 시작하여 북부지역어로 번져 나아간 발음경제에 따른 소리의 달라짐 현상이다.
철신포(鐵信砲) : 고려와 조선 시대에 신호용으로 사용했던 포. 철로 만들어졌다. 각 봉수대에 설치해 급할 때 사용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때 연기대신 신포(信砲)를 활용했다. 최무선의 화통도감(火筒都監)에서 제작한 18종류의 화기 중에 신포가 있었으나, 철신포는 기록에 따르면, 세종 24년(144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길이가 1척 3촌 8리(39.94센티)로 약통(藥筒)·격목통(檄木筒)·취·부이(附耳:손잡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군화통이나 총통완구와는 달리 약통의 안지름보다 격목통의 아래 지름이 더 좁아졌다가, 취에서 다시 넓어지는 것이 두드러진 점이다. 이처럼 격목을 장치하는 격목통의 내경이 약통의 내경보다 좁아졌다가 다시 취에서 넓어지는 것은 철신포의 포 소리를 크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살[箭]을 사용하지 않으며, 포의 약통에 심지를 끼우고 화약을 넣은 다음 격목을 끼운 뒤 발사했다. 사용한 심지는 중간 치기로 길이는 반조(半條:14센티)이며, 사용한 화약의 양은 13냥, 뇌관의 길이는 2촌이었다. 연대(烟臺:봉수대)에서 상대방의 신호에 응해 발사한다고 한 점으로 보아, 뒤에 격목 대신 토격을 사용한 것 같다. 현재 전하는 유물은 없다.
 中듕藥약線션 半반 오리오 火화藥약이 열석 兩냥이오 土토隔격이 두 치니 習습陣딘 적의주002)
습딘(習陣) 적의:
진법 훈련을 할 때에. 진(陣) 치기 훈련을 할 때에. 전설모음화와 구개음화를 따라서 ‘습딘〉습진〉십진’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전설모음화를 거치면서 ‘습진〉십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습진(習陣) : 진(陣) 치기 훈련. 마구 법석을 떨거나 고함을 치면서 미친 것처럼 나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 쓰이는 십진은 본래 진을 치는 습진(習陣)에서 나온 말이다. 진을 친다는 것은 대장이 깃발을 들어 지휘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므로 명령을 받는 쪽에서는 정신없이 바쁘게 나대야 한다. 발광(發狂)은 말 그대로 광증이 일어나서 주위를 살피지 않고 미친 듯이 행동함을 이른다. 정신없이 나대는 모습과 자기를 못 이기고 미친 사람처럼 격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십진발광을 한다” 는 속담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50권의 경우를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전교하기를, ‘지금 이 진법(陣法)과 포(砲)쏘는 법은 다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것인데 애써 훈련을 시켜 진법도 정제(整齊)하고 포 쏘는 것도 능숙하니 매우 가상한 일이다. 상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뒤따라 참여했다는 사람들도 모두가 포 쏘는 법을 가르친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들에게도 똑같이 상을 내려 권장해야 한다. 그들을 각각 승직(陞職)시켜라. 그 중에서 신경진과 이복숭은 이미 정직(正職)이 되었으니, 자궁(資窮)이 되지 않았으면 가자(加資)하고 자궁이 되었으면 숙마(熟馬) 1필을 내리라. 역관 이억례에게도 숙마 1필을 내리고, 최덕순에게는 직을 제수하라. 조경은 처음부터 도감당상(都監堂上)으로서 포를 쏘는 것을 전담하여 가르쳤고, 오응정은 중군으로서 진법을 전해 익히게 하였으니, 이 2인에 대하여는 마땅히 특가(特加)가 있어야할 것같다. 이 한 조항에 관하여 대신에게 하문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대신에게 물었더니, 대신들이 조경·오응정이 작은 공훈이 있기는 하지만은 상은 중대한 일이어서 아래에서 감히 함부로 논할 수없는 것이나 오랫동안 전관(專管)한 것으로 말한다면 조경이 조금 낫다. 오직 상의 재량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다면 조경에게는 가자하고, 오응정은 우선 후일로 미루고 이번에는 숙마 1필만을 내리라.’ 하였다.”
고 밋 烟연臺주003)
연대(烟臺):
봉화대(烽火臺)의 불을 피워 연기를 내는 곳. 지금도 제주도의 차자도에 가면 연대가 보존되어 있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운용하였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였는데, 제주도에는 봉수 24개소, 연대 38개소가 있다. 제주도 해안선 곳곳에 돌로 쌓아 만든 연대는 모양이 각진 네모꼴을 이루고 있다. 한편 계단을 두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연대에는 별장 6명과 봉군 12~36명이 배치되어, 3개조로 나누어 3교대로 24시간 연대를 지켰다.
서르 應응야주004)
서르 응(應)야:
서로가 상응하여. ‘서르〉서로’는 모음조화 현상을 깨트리면서 소리가 변하였다. 이는 청각인상을 보다 또렷하게 하여 강화효과를 가져 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모음조화 현상은 우리 국어의 음운론적인 두드러진 특징이다. 앞 음절의 모음과 뒤음절의 모음이 같은 성향의 모음끼리 만나서 쓰인다. 말하자면 ‘양성*양성-음성*음성-양(음)*중성’과 같이 어울리는 음운현상의 한 경향성을 말한다. ‘서르’의 어원은 사이를 뜻하는 ‘설’에서 비롯한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서리’(狄人ㅅ서리예 가샤[狄人與處]〈용비어천가 4〉)이다. 나이를 뜻하는 ‘살’의 모음교체 형인데 이는 ‘’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로 보인다. ‘’의 기원형은 ‘’이고 ‘’는 ㅎ종성체언이기에 ‘(ㅎ)’으로 쓰이다가 유착되어 ‘(ㅎ)-(ㅅ)-(ㄷ)〉(ㄹ)〉’로 형태변동이 일어난다. ‘’과 ‘피(〈비-미)’가 합성되면서 사이를 ‘피’로 굳어져 한 단어로 굳혀져 쓰이게 된 것이다. 특히 우륵의 인연지인 성열(省熱)의 ‘-살’과 ‘사이’와 관련한 논의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정호완, 2011).
‘성열(省熱)’은 이두식 표기이며 지역 간의 사이[間]를 이른다는 것이다. 형태 분석을 하자면, 성열(省熱)은 ‘省(훈독, 살(필)-살)+-熱(음차, -ㄹ(말음첨기))’과 같다.
* 살피 : 물건(지역) 사이의 구분을 지은 표. 살피다(이정표가 있는 곳) - 성현(省峴-南省峴驛)〈청도〉, 삼성리(三省里)〈경산〉, 살피재〈거창 省草〉〈서울상도동 장승배기〉살+품〉살품.
* 살품 : 옷소매와 가슴 사이/옷과 몸의 사이/가슴 둘레/청풍(淸風) -살미(薩味), 청주(淸州〈薩買), 청천강(淸川江-薩水), 살+피(〈표), ‘매(買忽)-미(味鄒忽)-무(務安)’.
* 살 : 가장 중심이 되는 핵의미소(核意味素). 살()의 단어족을 통한 담론의 갈래는 다음과 같다.
1) ‘살’의 기본 의미 : 사이에 들어 있는 물체, 조직[間].
살소매 : 옷소매와 팔 사이의 빈 곳
살품 : 옷매와 가슴 사이
살미 : 궁궐이나 성문 등의 기둥 위와 도리 사이에 장식하는 촛가지.
살피재 : 지역의 경계가 되는 고개(지경리(地境里), 관간목(官間목)〈남해〉).
살평상 : 바닥에 나무오리로 사이를 띄어 죽 박아 만든 평상.
살바람 :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살 : 피부와 뼈 사이의 근육 조직. 과일 따위의 껍질과 씨방 사이의 부드러운 과육(果肉)(‘살’의 옛 표기 : 白米曰漢菩薩〈鷄林類 事〉의 ‘薩’).
2) ‘살()’의 단어족 : 단어족은 같은 기본 의미를 공유하는 낱말의 집단. 모음교체(陽-陰-中)형/음절첨가형.
3) 모음교체형 : 같은 음절에 받침 자음의 교체(양성모음계) : 살()-삳(샅)-삿(ㄱ) (삳자리-삿자리, 삳갓-삿갓, 샅바) *삿(ㄱ)〉〉삯-싹, 삿(ㄱ)+-이〉삿()〉시〉〉이〉사이(새)(삿기〉사〉새끼), 살∞설(한 설∞한 살) -섣달(설달 : (지난해와 새 해 사이)설이 있는 달) 살(ㄱ)(살그머니, 살쾡이(고양이와 호랑이 사이의 짐승))/사리(사립문(사리ㅅ문〉사리ㄷ문〉사림문〉사립문 : 집 밖과 안의 사이 문)). 싸리재〈평창〉). (음성모음계) : 설-섣-섯(ㄱ)(다〉섞다)/서리(서리[間] : 狄人 서리예 가샤(용비어천가). (중성모으계) : 싯(ㄱ)(싯그다〈방언〉)-싣(싣다)-실(두 줄을 꼬아 만든 줄, 실내〉. 시내, 밤실, 한실, 得烏-絲浦〈삼국유사〉).
기원적으로 ‘’는 ‘사이’를 뜻하며 물질로는 ‘해-새()-시’를 이른다. 사이라는 개념은 쇠의 방언형 ‘쉬-사이-소이-시’와도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 돌도, 나무도, 흙도 아닌 새로운 소재로서 철기문화가 가져온 문명의 지평을 열었다. 땅을 파는 도구로서 ‘삽(鍤)’도 ‘삷’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우리의 말인데 이에 상응하는 한자를 들여다 쓴 것이다. 사이라는 개념은 사물 인식의 바탕을 이룬다. 공간과 시간, 관계는 인식 논리의 기본 틀이다. 철기문화가 문명 발달의 축을 이루면서 새로운 여러 가지의 병기가 생겨났다. 전쟁에서 누가 좀 더 나은 철기를 이용한 병기를 활용하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열쇠였으니, 청지스칸의 철기군이 바로 그런 좋은 보기다. 잘 달리는 군마를 탄 활과 칼을 잘 쓰는 군사, 거기에 지략이 뛰어난 제갈량 같은 지략과 용병술을 가진 장수가 있다면 전쟁의 결과는 밤에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이 없으나 전쟁이 있는 곳이면 이로운 쇠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병기가 되며 이기가 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김수로가 그렇고 주몽이, 박혁거세나 석탈해와 김알지가, 강수가 모두 쇠를 생산하고 다룰 줄 아는 야장이요, 과학기술자이면서 정략가이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구자들이었다. 사이 곧 관계를 잘하는 개인이나 겨레가 살아남아 온 누리를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 ‘사이’의 개념은 고조선 시대의 교황과 같은 말이었던 ‘스승’과도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 스승은 ‘슷(슷 間(훈몽자회))’에 접미사 ‘-응’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옛날 무당은 거룩한 제사장이자 행정의 머리였다. 신라시대까지만 해도, 『삼국사기』에서 보듯 왕을 자충(慈充)이라 하고 있다. 이 무렵에는 ㅈ-ㅊ같은 파찰음 소리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자충은 사승-스승으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승이 『삼국지』 위서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단을 모으거나 높은 산에 성황목, 곧 신나무를 세운 거룩한 곳을 소도라고 하였다. 그곳은 살인자가 들어와도 체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제사를 모시는 사제가 곧 스승이었다. 그것은 소도가 ‘숟-솟-슷-스승’의 변이형으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웅(桓雄)도 따지고 보면 거룩하고 위대한 스승이란 말로 뒤칠 수 있다. 수컷 웅(雄)이라고 하는바, ‘숫-솟-숟-스승’과 같이 소도와의 걸림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바뀜을 따라 스승이 담당한 영역의 변천을 간추리면, 제사장〉정치〉교육-종교〉교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점을 치는 무당도 마찬가지인데, 제사장은 길흉화복을 알아서 미리 알려 주는 예언의 기능과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닦아 주는 해원(解怨)의 구실을 해 냈다. 국어사로 보면, ‘’는 본디의 의미를 잃고 의존명사가 되고 주체존대 어미인 ‘-시-’로 더 나아가서는 -계 활용어미로 발달하여 -계 의존명사의 활용어미와 함께 우리말의 형태론적인 발달에 깊이 관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놋니라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철신포에는 가운데 치 심지가 반 오리요, 화약이 열석 냥이다. 화약을 다지는 흙이 두 치니 훈련할 때 쓰고 밑의 봉수대에 서로 상응하여 쏘느니라.
Ⓒ 역자 | 정호완 / 20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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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텰신포애:철신포(鐵信砲)에. ‘텰〉쳘〉철’로 소리가 단순화한 것은 단모음화와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소리가 변동한 한 것이다. 구개음화 현상은 국어사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어에서부터 먼저 시작하여 북부지역어로 번져 나아간 발음경제에 따른 소리의 달라짐 현상이다.
철신포(鐵信砲) : 고려와 조선 시대에 신호용으로 사용했던 포. 철로 만들어졌다. 각 봉수대에 설치해 급할 때 사용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때 연기대신 신포(信砲)를 활용했다. 최무선의 화통도감(火筒都監)에서 제작한 18종류의 화기 중에 신포가 있었으나, 철신포는 기록에 따르면, 세종 24년(1442)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길이가 1척 3촌 8리(39.94센티)로 약통(藥筒)·격목통(檄木筒)·취·부이(附耳:손잡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군화통이나 총통완구와는 달리 약통의 안지름보다 격목통의 아래 지름이 더 좁아졌다가, 취에서 다시 넓어지는 것이 두드러진 점이다. 이처럼 격목을 장치하는 격목통의 내경이 약통의 내경보다 좁아졌다가 다시 취에서 넓어지는 것은 철신포의 포 소리를 크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살[箭]을 사용하지 않으며, 포의 약통에 심지를 끼우고 화약을 넣은 다음 격목을 끼운 뒤 발사했다. 사용한 심지는 중간 치기로 길이는 반조(半條:14센티)이며, 사용한 화약의 양은 13냥, 뇌관의 길이는 2촌이었다. 연대(烟臺:봉수대)에서 상대방의 신호에 응해 발사한다고 한 점으로 보아, 뒤에 격목 대신 토격을 사용한 것 같다. 현재 전하는 유물은 없다.
주002)
습딘(習陣) 적의:진법 훈련을 할 때에. 진(陣) 치기 훈련을 할 때에. 전설모음화와 구개음화를 따라서 ‘습딘〉습진〉십진’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전설모음화를 거치면서 ‘습진〉십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습진(習陣) : 진(陣) 치기 훈련. 마구 법석을 떨거나 고함을 치면서 미친 것처럼 나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 쓰이는 십진은 본래 진을 치는 습진(習陣)에서 나온 말이다. 진을 친다는 것은 대장이 깃발을 들어 지휘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므로 명령을 받는 쪽에서는 정신없이 바쁘게 나대야 한다. 발광(發狂)은 말 그대로 광증이 일어나서 주위를 살피지 않고 미친 듯이 행동함을 이른다. 정신없이 나대는 모습과 자기를 못 이기고 미친 사람처럼 격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 “십진발광을 한다” 는 속담이 되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50권의 경우를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전교하기를, ‘지금 이 진법(陣法)과 포(砲)쏘는 법은 다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것인데 애써 훈련을 시켜 진법도 정제(整齊)하고 포 쏘는 것도 능숙하니 매우 가상한 일이다. 상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뒤따라 참여했다는 사람들도 모두가 포 쏘는 법을 가르친 사람들이니 당연히 그들에게도 똑같이 상을 내려 권장해야 한다. 그들을 각각 승직(陞職)시켜라. 그 중에서 신경진과 이복숭은 이미 정직(正職)이 되었으니, 자궁(資窮)이 되지 않았으면 가자(加資)하고 자궁이 되었으면 숙마(熟馬) 1필을 내리라. 역관 이억례에게도 숙마 1필을 내리고, 최덕순에게는 직을 제수하라. 조경은 처음부터 도감당상(都監堂上)으로서 포를 쏘는 것을 전담하여 가르쳤고, 오응정은 중군으로서 진법을 전해 익히게 하였으니, 이 2인에 대하여는 마땅히 특가(特加)가 있어야할 것같다. 이 한 조항에 관하여 대신에게 하문하라.’ 하였다. 회계하기를, ‘대신에게 물었더니, 대신들이 조경·오응정이 작은 공훈이 있기는 하지만은 상은 중대한 일이어서 아래에서 감히 함부로 논할 수없는 것이나 오랫동안 전관(專管)한 것으로 말한다면 조경이 조금 낫다. 오직 상의 재량에 달려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그렇다면 조경에게는 가자하고, 오응정은 우선 후일로 미루고 이번에는 숙마 1필만을 내리라.’ 하였다.”
주003)
연대(烟臺):봉화대(烽火臺)의 불을 피워 연기를 내는 곳. 지금도 제주도의 차자도에 가면 연대가 보존되어 있다. 연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정치·군사적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통신수단을 말한다. 봉수대와는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으나 연대는 주로 구릉이나 해변지역에, 봉수대는 산 정상에 설치하여 운용하였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하였는데, 제주도에는 봉수 24개소, 연대 38개소가 있다. 제주도 해안선 곳곳에 돌로 쌓아 만든 연대는 모양이 각진 네모꼴을 이루고 있다. 한편 계단을 두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연대에는 별장 6명과 봉군 12~36명이 배치되어, 3개조로 나누어 3교대로 24시간 연대를 지켰다.
주004)
서르 응(應)야:서로가 상응하여. ‘서르〉서로’는 모음조화 현상을 깨트리면서 소리가 변하였다. 이는 청각인상을 보다 또렷하게 하여 강화효과를 가져 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모음조화 현상은 우리 국어의 음운론적인 두드러진 특징이다. 앞 음절의 모음과 뒤음절의 모음이 같은 성향의 모음끼리 만나서 쓰인다. 말하자면 ‘양성*양성-음성*음성-양(음)*중성’과 같이 어울리는 음운현상의 한 경향성을 말한다. ‘서르’의 어원은 사이를 뜻하는 ‘설’에서 비롯한다. 그 대표적인 형태가 ‘서리’(狄人ㅅ서리예 가샤[狄人與處]〈용비어천가 4〉)이다. 나이를 뜻하는 ‘살’의 모음교체 형인데 이는 ‘’에서 갈라져 나온 형태로 보인다. ‘’의 기원형은 ‘’이고 ‘’는 ㅎ종성체언이기에 ‘(ㅎ)’으로 쓰이다가 유착되어 ‘(ㅎ)-(ㅅ)-(ㄷ)〉(ㄹ)〉’로 형태변동이 일어난다. ‘’과 ‘피(〈비-미)’가 합성되면서 사이를 ‘피’로 굳어져 한 단어로 굳혀져 쓰이게 된 것이다. 특히 우륵의 인연지인 성열(省熱)의 ‘-살’과 ‘사이’와 관련한 논의의 줄거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정호완, 2011).
‘성열(省熱)’은 이두식 표기이며 지역 간의 사이[間]를 이른다는 것이다. 형태 분석을 하자면, 성열(省熱)은 ‘省(훈독, 살(필)-살)+-熱(음차, -ㄹ(말음첨기))’과 같다.
* 살피 : 물건(지역) 사이의 구분을 지은 표. 살피다(이정표가 있는 곳) - 성현(省峴-南省峴驛)〈청도〉, 삼성리(三省里)〈경산〉, 살피재〈거창 省草〉〈서울상도동 장승배기〉살+품〉살품.
* 살품 : 옷소매와 가슴 사이/옷과 몸의 사이/가슴 둘레/청풍(淸風) -살미(薩味), 청주(淸州〈薩買), 청천강(淸川江-薩水), 살+피(〈표), ‘매(買忽)-미(味鄒忽)-무(務安)’.
* 살 : 가장 중심이 되는 핵의미소(核意味素). 살()의 단어족을 통한 담론의 갈래는 다음과 같다.
1) ‘살’의 기본 의미 : 사이에 들어 있는 물체, 조직[間].
살소매 : 옷소매와 팔 사이의 빈 곳
살품 : 옷매와 가슴 사이
살미 : 궁궐이나 성문 등의 기둥 위와 도리 사이에 장식하는 촛가지.
살피재 : 지역의 경계가 되는 고개(지경리(地境里), 관간목(官間목)〈남해〉).
살평상 : 바닥에 나무오리로 사이를 띄어 죽 박아 만든 평상.
살바람 :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살 : 피부와 뼈 사이의 근육 조직. 과일 따위의 껍질과 씨방 사이의 부드러운 과육(果肉)(‘살’의 옛 표기 : 白米曰漢菩薩〈鷄林類 事〉의 ‘薩’).
2) ‘살()’의 단어족 : 단어족은 같은 기본 의미를 공유하는 낱말의 집단. 모음교체(陽-陰-中)형/음절첨가형.
3) 모음교체형 : 같은 음절에 받침 자음의 교체(양성모음계) : 살()-삳(샅)-삿(ㄱ) (삳자리-삿자리, 삳갓-삿갓, 샅바) *삿(ㄱ)〉〉삯-싹, 삿(ㄱ)+-이〉삿()〉시〉〉이〉사이(새)(삿기〉사〉새끼), 살∞설(한 설∞한 살) -섣달(설달 : (지난해와 새 해 사이)설이 있는 달) 살(ㄱ)(살그머니, 살쾡이(고양이와 호랑이 사이의 짐승))/사리(사립문(사리ㅅ문〉사리ㄷ문〉사림문〉사립문 : 집 밖과 안의 사이 문)). 싸리재〈평창〉). (음성모음계) : 설-섣-섯(ㄱ)(다〉섞다)/서리(서리[間] : 狄人 서리예 가샤(용비어천가). (중성모으계) : 싯(ㄱ)(싯그다〈방언〉)-싣(싣다)-실(두 줄을 꼬아 만든 줄, 실내〉. 시내, 밤실, 한실, 得烏-絲浦〈삼국유사〉).
기원적으로 ‘’는 ‘사이’를 뜻하며 물질로는 ‘해-새()-시’를 이른다. 사이라는 개념은 쇠의 방언형 ‘쉬-사이-소이-시’와도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 돌도, 나무도, 흙도 아닌 새로운 소재로서 철기문화가 가져온 문명의 지평을 열었다. 땅을 파는 도구로서 ‘삽(鍤)’도 ‘삷’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우리의 말인데 이에 상응하는 한자를 들여다 쓴 것이다. 사이라는 개념은 사물 인식의 바탕을 이룬다. 공간과 시간, 관계는 인식 논리의 기본 틀이다. 철기문화가 문명 발달의 축을 이루면서 새로운 여러 가지의 병기가 생겨났다. 전쟁에서 누가 좀 더 나은 철기를 이용한 병기를 활용하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열쇠였으니, 청지스칸의 철기군이 바로 그런 좋은 보기다. 잘 달리는 군마를 탄 활과 칼을 잘 쓰는 군사, 거기에 지략이 뛰어난 제갈량 같은 지략과 용병술을 가진 장수가 있다면 전쟁의 결과는 밤에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문명의 이기임에 틀림이 없으나 전쟁이 있는 곳이면 이로운 쇠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병기가 되며 이기가 된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다. 김수로가 그렇고 주몽이, 박혁거세나 석탈해와 김알지가, 강수가 모두 쇠를 생산하고 다룰 줄 아는 야장이요, 과학기술자이면서 정략가이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선구자들이었다. 사이 곧 관계를 잘하는 개인이나 겨레가 살아남아 온 누리를 다스리는 것이다. 여기 ‘사이’의 개념은 고조선 시대의 교황과 같은 말이었던 ‘스승’과도 깊은 상관성을 갖고 있다. 스승은 ‘슷(슷 間(훈몽자회))’에 접미사 ‘-응’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말이다. 옛날 무당은 거룩한 제사장이자 행정의 머리였다. 신라시대까지만 해도, 『삼국사기』에서 보듯 왕을 자충(慈充)이라 하고 있다. 이 무렵에는 ㅈ-ㅊ같은 파찰음 소리가 없었음을 고려하면 자충은 사승-스승으로 발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스승이 『삼국지』 위서에 나오는 소도(蘇塗)에서 비롯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단을 모으거나 높은 산에 성황목, 곧 신나무를 세운 거룩한 곳을 소도라고 하였다. 그곳은 살인자가 들어와도 체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제사를 모시는 사제가 곧 스승이었다. 그것은 소도가 ‘숟-솟-슷-스승’의 변이형으로 쓰인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웅(桓雄)도 따지고 보면 거룩하고 위대한 스승이란 말로 뒤칠 수 있다. 수컷 웅(雄)이라고 하는바, ‘숫-솟-숟-스승’과 같이 소도와의 걸림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바뀜을 따라 스승이 담당한 영역의 변천을 간추리면, 제사장〉정치〉교육-종교〉교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점을 치는 무당도 마찬가지인데, 제사장은 길흉화복을 알아서 미리 알려 주는 예언의 기능과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닦아 주는 해원(解怨)의 구실을 해 냈다. 국어사로 보면, ‘’는 본디의 의미를 잃고 의존명사가 되고 주체존대 어미인 ‘-시-’로 더 나아가서는 -계 활용어미로 발달하여 -계 의존명사의 활용어미와 함께 우리말의 형태론적인 발달에 깊이 관여해 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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