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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안총(三眼銃)


화포식언해 20ㄱ

三삼眼안銃츙애 每一일穴혈애 小쇼藥약線션三삼寸촌이오 火화藥약三삼錢젼이오 土토隔격二이分분이오 鐵텰丸환一일箇개라
Ⓒ 구결 | 이서 / 1635년(인조 13)

三삼眼안銃츙주001)
삼안총(三眼銃):
일명 삼혈총통(三穴銃筒). 세 개의 총구멍을 하나의 손잡이에 연결한 권총의 일종. 삼안총은 기본적으로 불씨를 손으로 붙여서 탄환을 발사하는 지화식(指火式) 화기의 일종이다. 하나의 총신에 세 개의 총구멍 또는 세 개의 총신이 하나의 손잡이에 묶여져 있는 독특한 형식의 화기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삼안총, 삼혈총’이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보통 인마 살상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전투・훈련 시에는 소리를 이용한 신호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삼안총은 원래 중국에서 사용해 온 화기로 임진왜란 중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의 조총을 앞세운 보병전술에 힘없이 무너졌다. 초기 전투의 경험을 토대로 화기와 전술상의 약점을 뼈저리게 실감한 조선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명나라의 앞선 화기를 도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당시 명나라군은 대장군, 불랑기(佛狼機), 멸로포(滅虜砲), 호준포(虎蹲砲), 백자총(百子銃), 삼안총(三眼銃), 쾌창(快槍), 조총(鳥銃) 등 다양한 화기를 갖추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는 이러한 화기를 활용,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따라서 조선은 명나라 군으로 부터 삼안총, 호준포, 백자총통, 불랑기 등을 들여와서 전란을 이겨내고자 하였다. 이후 삼안총은 구한말까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이는데, 순조 8년(1808)에 발간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적혀 있는 각 군영의 무기 재고 상태를 보면 훈련도감에 153점, 어영청에 60점의 삼안총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안총(삼혈총통)〉

〈삼안총(삼혈총통)〉

애 每  굼긔 小쇼藥약線션이 세 치오 火화藥약이 세 돈이오 土토隔격이 두 分분이오 鐵텰丸환이  낫이라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삼안총(三眼銃)에는 매 한 구멍에 작은 심지가 세 치요, 화약이 서 돈이요, 화약 다지는 흙이 두 푼이요, 쇠탄알이 한 개다.
Ⓒ 역자 | 정호완 / 20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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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삼안총(三眼銃):일명 삼혈총통(三穴銃筒). 세 개의 총구멍을 하나의 손잡이에 연결한 권총의 일종. 삼안총은 기본적으로 불씨를 손으로 붙여서 탄환을 발사하는 지화식(指火式) 화기의 일종이다. 하나의 총신에 세 개의 총구멍 또는 세 개의 총신이 하나의 손잡이에 묶여져 있는 독특한 형식의 화기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삼안총, 삼혈총’이라는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 보통 인마 살상을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전투・훈련 시에는 소리를 이용한 신호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삼안총은 원래 중국에서 사용해 온 화기로 임진왜란 중에 중국으로부터 들여왔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일본군의 조총을 앞세운 보병전술에 힘없이 무너졌다. 초기 전투의 경험을 토대로 화기와 전술상의 약점을 뼈저리게 실감한 조선은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명나라의 앞선 화기를 도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였다. 당시 명나라군은 대장군, 불랑기(佛狼機), 멸로포(滅虜砲), 호준포(虎蹲砲), 백자총(百子銃), 삼안총(三眼銃), 쾌창(快槍), 조총(鳥銃) 등 다양한 화기를 갖추고 있었다. 명나라 군대는 이러한 화기를 활용, 평양성 탈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따라서 조선은 명나라 군으로 부터 삼안총, 호준포, 백자총통, 불랑기 등을 들여와서 전란을 이겨내고자 하였다. 이후 삼안총은 구한말까지 널리 보급된 것으로 보이는데, 순조 8년(1808)에 발간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적혀 있는 각 군영의 무기 재고 상태를 보면 훈련도감에 153점, 어영청에 60점의 삼안총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안총(삼혈총통)〉〈삼안총(삼혈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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