眇然貞觀初 難與數子偕
【言房玄齡 주060) 방현령(房玄齡) 당 초기의 정치가로, 제주임치(濟州臨淄:山東) 사람(578~648). 자(字)는 교(喬)이다. 태종(太宗)이 돈황공(敦煌公)이었을 때부터 섬기어 621년 진왕부(秦王府) 18학사(學士)의 일원이 되었으며, 두여회(杜如晦)와 같이 당조(唐朝) 대각(臺閣)의 규모와 전장문물(典章文物)의 제정을 맡았다. 태종의 신망은 매우 두터웠는데, 626년 장손무기(長孫無忌) 등과 현무문의 변을 꾀하여 태종의 위기를 구하였으며, 630년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감수국사(監修國史)로 올랐고, 이어서 칙령을 받들어 위징(魏徵) 등이 편찬한 북제(北齊), 양(梁), 진(陳), 수(隋), 주(周)의 각서(各書)를 총감(總監)하여 완성시켰다. 재상으로 있기 15년 뒤에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임명되고 사후에 태위병주도독(太尉幷州都督)에 추증되었다.〈위키백과 참조〉
杜如晦 주061) 두여회(杜如晦) 당 초기의 명재상(585~630). 자는 극명(克明). 경조두릉(京兆杜陵) 출생으로 대대로 벼슬을 하던 관료 집안 출신. 수나라 때 현위(縣尉)까지 벼슬을 한 후 초야에 묻혀 지내다가, 당 고조가 장안을 평정하자 진왕부병참군(秦王府兵參軍)으로 태종의 휘하에 들어갔다. 문학관(文學館) 18학사의 한 사람으로 방현령(房玄齡)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태종 즉위 후에는 요직을 거쳐 채국공(蔡國公)에 봉해졌다. 626년 장손무기(長孫無忌) 등과 현무문의 변을 획책하여 태종의 지위를 안정케 하고, 병부상서(兵部尙書)에 발탁되어 629년 상서우복야(上書右僕射)가 되었다. 태종의 신임이 두터워 현령, 위징(魏徵)과 함께 당조의 기반인 대각(臺閣)의 규모, 전장문물(典章文物)의 제정을 맡아 명신(名臣)으로서 당의 법률제도의 인사행정을 정비하여 정관의 치를 구축하였다.〈위키백과 참조〉
等이 輔佐야 致觀貞斗米三錢之盛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아란 주062) 아란 아라[杳然, 渺然, 眇然]-+-ㄴ(관형사형 어미). 아득한. 아스라한. ¶아란 東山애 漢ㅅ 女妓 자바 갯니 긴 대 王 도라가 기들우놋다(아스라한/아득한 동산에 한나라 여자 기생을 잡아 가 있으니 맑은 긴 대나무 왕의 돌아가는 것을 기다리는구나.)〈두시 8:15ㄱ〉.
貞觀 주063) 정관(貞觀) ‘정관’이란 말은 당(唐) 태종(太宗)인 이세민(李世民)의 제위시대 연호이다. ‘정관의 치’란 말이 있듯이 정치가 잘 되었던 시기이다. 이때 도움을 준 인물들이 방현령과 두여회와 같은 신하들이다.
ㅅ
처미여 주064) 처미여 처[初]+이여(호격 조사). 처음이여. ¶내 伽耶城 菩提樹ㅅ 아래 안자 最正覺 일워 無上 法輪을 轉야 그제 敎化야 처 道心 發케 호니 이제 다 不退예 住니 다 반기 成佛리라(내가 가야성 보리수의 아래 앉아 최정각을 이루어 무상 법륜을 굴리어서 그때에야 교화하여 처음 도심 내게 하니, 이제 다 불퇴(不退)에 머무르게 하니 다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법화 5:111ㄱ~ㄴ〉.
두 주065) 두 둘[二]+서[三]. 두세. 두어. ‘두’는 ‘둘’에서 받침 ‘ㄹ’이 탈락한 형태이며, ‘’는 ‘서이’에서 ‘이’가 탈락하고 ‘서’의 ‘ㅅ’이 모음 사이에서 유성음으로 변한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菩薩이 城밧 甘蔗園에≪城은 자시라 甘蔗 프리니 시믄 두 자히 나 대 고 기리 열자 남니 그 汁으로 肆糖 니라 園은 東山이라≫ 精舍 오≪精舍 조심 지비라≫ 오 안자 잇더시니 도 五百이≪五 다시오 百 오니라≫ 그윗 거슬 일버 精舍ㅅ 겨로 디나가니(보살이 성밖 감자원에≪성은 잣이다. 감자는 풀이니 심은지 두어 햇째 나되 대 같고 길이 열자 남직하니 그 즙으로 사탕을 만드는 것이다. 원은 동산이다.≫ 정사 만들고≪정사는 도를 닦는 집이다.≫ 혼자 앉아 있으시더니 도적 5백이≪오는 다섯이고 백은 온이다.≫ 관청 것을 훔쳐서 정사 곁으로 지나가니)〈월석 1:6ㄱ〉.
사과
다야 주066) 다야 다[與]-+-y(조음소)-+-아(연결 어미). 더불어 하여. 더불어. 같이하여. 함께. ¶사 이 어그르추미 하니 그듸와 다야 기리 서르 라리로다(사람의 일은 어그러지는 것이 많으니 그대와 함께하여 길이 서로 바라볼 것이로다.)〈두시(초) 8:68ㄴ〉. 디난 惠詢ㅅ 믈와 다야 中年에 滄洲예 노로 期約호라(지난 때에 혜순(惠詢)의 물과 함께하여 중년에 창주에서 놀 것을 기약하노라.)〈두시(초) 9:3ㄴ〉.
오미 주067) 오미 [竝]-+-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아우름이. 아우르는 것이. 나란히 함이. 필적함이. ¶ㄱ 엄쏘리니 君군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 쓰면 虯ㅸ字 처 펴아 나 소리 니라(ㄱ은 엄소리이니 君ㄷ 字 처음 발음되는 소리 같으니 병서하면 虯ㅸ字 처음 발음되는 소리 같은 것이다.)〈훈언 4ㄱ〉. 우아래 圓滿샤 師子王이 샤 威嚴이 리 업스샤미 四十六이시고(몸의 위아래가 원만하시어 사자왕과 같으시어 위엄이 겨를 사람 없으심이 46이시고)〈법화 2:17ㄱ〉.
어렵도다 주068) 어렵도다 어렵[難]-+-도(감탄의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어렵도다. ‘-도다’를 감탄형 어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는 재구조화를 적용한 것이다. ¶有頂에셔 衆 爲야 無量 녀나 經을 불어 닐어도 어렵디 아니커니와(유정천에서 대중을 위하여 그지없는 그밖의 경전을 설명하여 설하여도 또 어렵지 아니하거니와)〈법화 4:141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묘연정관초 난여수자해【방현령(房玄齡)과 두여회(杜如晦) 등이 보좌하여 ‘정관(貞觀)의 치(治)’에 쌀 한 말 값이 3전 하는 성대(盛代)를 보게 된 것을 말한다.】
【언해역】 아스라한 정관(貞觀)의 처음이여, 두어 사람과 함께 필적함이 어렵도다.
Ⓒ 역자 | 임홍빈 / 2011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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