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이
들 주027) 들 [意]+을(대격 조사). 뜻을. ¶釋譜詳節序≪序는 글 론 들 子細히 써 後ㅅ사 알의 거시라≫(석보상절서≪서는 글 만든 뜻을 자세히 써서 뒷사람에게 알게 하는 것이다.≫)〈석보 서:1ㄱ〉.
陶潛 주028) 도잠(陶潛) 중국 동진(東晋)·송대(宋代)의 시인. 자(字) 연명 또는 원량(元亮)으로 흔히 도연명(陶淵明, 365~427)으로 불림.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장시성(江西省) 주장현(九江縣)의 남서 시상(柴桑) 출생. 생활은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소지주 정도의 가정에서 자랐다. 29세 때에 벼슬길에 올라 주(州)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서 사임하였다. 그 후 군벌항쟁의 세파에 밀리면서 생활을 위하여 하는 수 없이 진군참군(鎭軍參軍)·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한 그는 41세 때에 누이의 죽음을 구실삼아 팽택현(彭澤縣)의 현령(縣令)을 사임한 후 다시는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의 퇴관성명서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유명한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가난과 병의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62세에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그 생애를 마쳤다. 후에 그의 시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칭하였다. 그의 시는 4언체(四言體) 9편과 그때에 유행하던 5언체(五言體) 47편이 전해지고 있지만, 기교를 크게 부리지 않고, 평담(平淡)한 시풍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로부터는 경시를 받았지만, 당대 이후는 6조(六朝) 최고의 시인으로 그 이름이 높아졌다.〈두산백과 참조〉.
이
아더니 주029) 아더니 알[知]-+-더(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알더니. 알았는데. 알았으니.
내
나미 주030) 나미 나[生]-+-아(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남이. 태어남이. 태어나는 것이. 여기에 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 ‘-아-’를 상정한 것은 ‘나미’의 ‘나-’에 상성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
期約애 주031) 기약(期約)애 기약(期約)+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기약에. 기약에 비하여. 기약보다.
듀라 주032) 듀라 디[落]-+-우(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떨어지는구나. 뒤지는구나. ¶隨意 說法은 곧 세흘 여르샤 나 나토샨 法이라 不聞 不知 不覺은 昏迷야 제 마고 니시고 不問 不信 不解 리 제 듀믈 니시니(수의 설법은 곧 셋을 여시어 하나를 나타나게 하신 법이다. 불문․불지․불각은 정신이 혼미하여 스스로 막음을 이르신 것이고, 불문․불신․불해는 거리껴 스스로 떨어짐을 이르신 것이니)〈법화 5:53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차의도잠해 오생후여기
【언해역】 이 뜻을 도잠
(도연명)
이 알았으니, 내가 태어나는 것이 네 기약(期約)에 뒤지는구나.
Ⓒ 역자 | 임홍빈 / 2011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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