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언해 발문[心經跋]
이종찬(李鍾燦, 동국대 명예교수) 역
대저 상(相)을 당하여 상(相)에 집착하는 것은 중생(衆生)이 번뇌에 떨어지는 까닭이요, 상(相)을 보고 상(相)이 아니라 하는 것이 부처가 열반을 증득하는 까닭이다. 겉보기의 쌓인 것으로 뜻을 삼으면 숨겨진 이름이 있고, 알음알이의 대상에다 의지함으로부터 〈진리로〉 드는 이름이 생긴다. 경계와 구별에서 취하여 마침내 경계를 세우는 말씀이 성립된다. 모두가 마음이 모습에 미혹됨으로 인해서 점점 더 멀어지니, 삼과(三科)의 의의가 설정되는 까닭이다.
이 경전이 번역된 당나라에서 지금까지 주소(注疏)를 짓고 의해(義解)를 저술한 사람이 시대마다 있었지만, 법장(法藏)의 주소(註疏)가 홀로 그 종지(宗旨)를 터득하였다.
임금께서 효령대군(孝寧大君) 신(臣) 보(補)에게 명하셔서, 신(臣) 계희(繼禧)와 더불어 곧 번역 반포하게 하시고, 또 대송(大宋) 사문(沙門) 중희(仲希)가 저술한 현정기(顯正記)를 구하여 장소(藏疏)를 나누어 글귀마다 해석하니, 극히 소상하게 갖추어져 소(疏)에 따라 절을 나누고 각기 본문(本文) 밑에 바로잡아 넣었으나, 중희가 저본으로 한 책이 지금에는 통행되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같지 않은 것이 있다.
대군과 명승(名僧)들이 상세히 교정을 가해 이미 탈고하니, 급히 인쇄하여 널리 유포하게 하였다.
아! 중생(衆生)은 전도되어 다만 상(相)이 상(相)인 줄만 알고, 상(相)이 상(相)이 아님은 알지 못하니, 부처께서 이러함을 민망하게 여겨 먼저 오온(五蘊)을 들어내어 강령(綱領)을 총괄하고, 다시 십이처(十二處)를 펴서 십팔계(十八界)로 넓히시니, ‘색불이공(色不異空)’이라 함은 마음에 어리석음이 있는 무리를 위한 말씀이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함은 색(色)에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을 위한 말씀이니, 어느 것이나 진리를 본받을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상(相)을 비워 만법의 지혜를 이루게 하심이 아닌 것이 없다.
아! 우리 주상전하께서 이 경이 승려들이 평소 늘 익히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펴서 번역하게 하셨으니, 대저 새벽 저녁으로 외우면서도 외워야 하는 까닭을 모름을 민망히 여기심이니, 곧 석가여래께서 이 중생들이 종일토록 상(相)에 노닐면서도 그 상(相)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을 애석히 여김이다. 인천(人天)을 깨우쳐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들게 하고자 하는 뜻은 성인(聖人) 성인(聖人)이 같은 생각이시니, 아! 지극하시도다.
세조 10년(1464년, 천순 8년) 2월 중순에 가정대부 인순부윤(嘉政大夫 仁順府尹) 신(臣) 한계희(韓繼禧)는 삼가 발(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