可憐後主還祠廟 日暮聊爲梁甫吟
【須溪 주034) 수계(須溪) 남송(南宋)의 시인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자는 회맹(會孟)이다. 길주(吉州)의 여릉(廬陵, 지금 강서성의 길안(吉安)) 사람이다. 이른 나이에 태학(太學)에 들고, 경정(景定) 3년1262)에 진사가 되고, 함순(咸淳) 원년(1265)에 태학박사를 제수하였다. 덕우(德佑) 원년(1275) 문천상근왕(文天祥勤王)이 되어 강서막부(江西幕府)에 참여하였다. 송이 망하고 원이 들어선 이후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시에 능하였다고 한다. 『수계집(須溪集)』 10권과 『수계사(須溪詞)』 3권이 남아 있다.(유기백과 참조).
ㅣ 云 後主는 亡國者ㅣ니 何足祠 ㅣ리오 徒使人으로 思諸葛의 梁父之恨이니 梁父吟이 亦廢興之感也ㅣ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可히 슬프도다 주035) 가(可)히 슬프도다 가히 슬프도다. 정말 슬프도다.
後主 주036) 후주(後主) 유비(劉備)의 아들 유선(劉禪)를 가리킴.
를 도로혀 祭祀니
나조 주037) 나조 [日]+ㅅ(관형격 조사)#나조ㅎ[夕]+(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해의 저녁에. 해 저녁에. 해 저물어. ¶金鐙子로 뫼해 려오매 블근 나조히로소니 엄 대예 두루 힐후메 프른 樓ㅣ 머도다(황금의 등자(鐙子)로 산에 내려오매 붉은 해의 저녁이로소니 어금니 같은 돛대에 노를 두루 다투매 푸른 누각이 멀도다.)〈두시(초) 11:12ㄴ〉. 時節이 오매 벼스를 通達호 아노니 나조 들 疎薄히 말라(시절이 오매 벼슬을 막힘없이 통함을 아노니 해가 저물 어 뜻을 엷게 하지 말라.)〈두시(초) 21:12ㄱ〉.
梁甫吟 주038) 양보음(梁甫吟) 고악부(古樂府) 중의 한 수(首)로, 장사지내는 노래이다. 양부음(梁父吟)이라고도 한다. 제갈량(諸葛亮)이 산을 나오기 전에 즐겨 이 곡을 읊조리었다고 한다. 두보도 이 곡을 읊조리고 있다. 이는 제갈량과 같은 현명한 재상이 없는 것을 한탄하는 의미를 가지며, 또한 제갈량의 나라를 보필하는 재능을 자신이 스스로 맡으려는 의미를 가진다.
을 노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가련후주환사묘 일모료위량보음【수계(須溪) 유진옹(劉辰翁)이 말하기를, 뒤를 이은 임금은 나라를 망한 자이니, 어찌 제사지내는 것이 족하겠는가? 헛되이 사람으로 하여금 제갈량(諸葛亮)의 양부(梁父)의 한을 생각하게 하니 양부음(梁父吟)이 또한 감흥을 앗아가는 것이다.】
【언해역】 가히 슬프도다. 뒤를 이은 임금을 도리어 제사지내니. 해 저녁에(날이 저물어) 양보음(梁甫吟)을 하노라.
Ⓒ 역자 | 임홍빈 / 2013년 1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