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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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성에 오르다[上白帝城]


白帝城 주001)
백제성(白帝城)
기주성(夔州城) 동쪽에 있는 암산에 공손술(公孫述)이 지은 성. 중국 사천성(四川城) 중경(重慶)의 봉절현(奉節縣)의 구당협(瞿塘峽) 입구 장강(長江) 북안에 있다. 왕망(王莽) 찬위시에 그 수하 대장 공손술이 사천 지방에서 할거하였는데, 어느날 말 타고 구당협에 와 보니 지세가 험하고 요긴하며 공격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쉬운 것을 알고 성을 수리하고 확장하였다. 그는 25년 자신을 스스로 ‘백제(白帝)’라 하고, 그가 건설한 성을 백제성이라 하였다.
주002)
상백제성(上白帝城)
백제성에 오르다. 이 시는 당나라 대종 대력(大曆) 원년(766), 두보가 처음 기주(夔州)에 왔을 때 지은 시라고 한다.

상백제성
(백제성에 오르다)

城峻隨天壁 樓高更女墻【女墻 城上堞也ㅣ라】

城이 노파 주003)
노파
높[高, 峻]-+-아(연결 어미). 높아. 높아서.
하 주004)
하
하[天]+ㅅ(관형격 조사). 하늘의. ¶부텻나라해션 부텻나라 하 가온라 고 中國을 東녁 라 야 東土ㅣ라 니 土 히라(부처님의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나라를 하늘 가운데라 하고, 중국을 동녘 가장자리라 하여 동토라 하나니 토는 땅이다.)〈월석 1:30ㄱ~ㄴ〉.
石壁을 주005)
석벽(石壁)을
석벽(石壁)+을(대격 조사). 석벽을. 석벽은 돌로 쌓은 벽이나 담을 말한다. ‘하 석벽(石壁)’은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뜻한다.
조니 주006)
조니
좇[隨]-+-(조음소)-+-니(연결 어미). 좇으니. ¶우리 方便으로 맛을 조샤 니샤 아디 몯와 처 佛法 듣고 맛나와 곧 信受와 야 證을 取호다(우리가 방편으로 마땅함을 따라서 이르심을 알지 못하여 처음에 불법을 듣고 만나서는 곧 믿고 생각하여 증득을 취한 것입니다.)〈법화 2:6ㄴ〉.
주007)
성(城)이 노파 하 석벽(石壁)을 조니
성이 높아서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좇으니. 성이 높아서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따르니.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따라 성이 높으니.
樓ㅣ 주008)
누(樓)ㅣ
누(樓)+ㅣ(주격 조사). 누(樓)가. 누각이.
놉고 주009)
놉고
높[高]-+-고(연결 어미). 높고. ¶그 술위 놉고 넙고 한 보로 미고 欄楯 두르고 四面에 올 오  그 우희 幰蓋 펴고【술위 우희 깁 펼씨 幰이라】(그 수레가 높고 넓으며 많은 보배로 꾸미고 난순을 두르고 사면에 방울을 달고 또 그 위에 헌개(幰蓋)를 펴고【수레 위에 비단 편 것이 헌(幰)이다.】〈법화 2:72ㄴ〉.
女墻이 주010)
여장(女墻)이
여장(女墻)+이(주격 조사). 여장이. 성가퀴가. 성 위에 쌓은 낮은 담이. 여장(女墻)은 성가퀴라 하는 것으로, 성 위에 쌓은 낮은 담을 만한다. 그 뒤에 숨어 적을 감시하거나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거나 쇳물을 붓거나 하는 것과 같은 공격을 하는 엄폐물의 일종이다.
잇도다
주011)
 잇도다
[更]#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또 있도다. 그 위에 더 있도다. ‘-도다’를 감탄 어미로 분석하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한자음】 성준수천벽 루고갱녀장【여장(女墻)은 성 위의 성가퀴이다.】
【언해역】 성이 높아서 하늘의 석벽을 좇으니 누각이 높고 또 〈그 위에〉 성가퀴가 있도다.

江流思夏后 風至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7ㄴ

憶襄王【夏后 주012)
우(禹)
중국의 전설 가운데 나오는 인물로, 기원전 21세기, 고대 부락 연맹의 우두머리. 아비는 곤(鲧)이고 사성(姒姓) 하후씨(夏后氏)로,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대홍수를 다스린 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전의 ‘변을 단순히 담으로 막는 판법(邊單純用堵的辦法)’을 ‘소도의 판법(疏導的辦法)’으로 바꾸어 물을 다스리는 데 성공하였다. 애초 요임금 때에 중국의 중원은 홍수와 범람으로 물 재난이 계속되었다. 백성들은 근심과 걱정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요임금은 곤(鯀)에게 물을 다스릴 것을 명령하였다. 명을 받은 곤은 홍수와 물재난을 다스는 데 장수법(障水法)을 썼다. 이것은 강안 변에 뚝을 쌓는 것이다. 그러나 물은 갇혀 있지 못하였고 넘쳐 흘렀다. 시간이 9년이나 흘렀으나 홍수 재난을 다스리지 못하였다. 곤의 아들 우(禹)가 치수의 일을 이어 맡게 되었다. 우는 백성들을 소집하여 협조를 해 줄 것을 요청하고, 하도(河道)를 시찰하고, 아울러 치수 실패의 원인을 검토하였다. 그 아비의 치수 실패의 교훈을 종합하여 치수의 방법을 하천의 물흐르는 길을 트는 소도(疏導)의 방법으로 치수의 기본을 삼았는데,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9개의 강을 소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평지의 물을 강으로 유도하고 다시 바다로 흘러들게 함으로써 13년간의 고투 끝에 치수하는 데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ㅣ 治水시니라 宋玉 주013)
송옥(宋玉)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의 문인(?B.C.290~?B.C.222). 다른 이름으로는 자연(子淵)이다. 전국 시대의 언(鄢, 지금의 양번의성(襄樊宜城)) 사람으로 사부 작가(辭賦作家)임. 굴원(屈原) 다음에 났기 때문에 굴원의 제자라고 하는 일도 있다. 사부를 많이 썼다. 흘러 전하는 작품에 〈구변(九辨)〉, 〈초혼(招魂)〉, 〈풍부(風賦〉, 〈고당부(高唐賦)〉, 〈등도 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 등이 있다.
 風賦에 襄王이 遊於蘭臺之宮 주014)
난대지궁(蘭臺之宮)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대명(臺名). 전설에 나오는 고지(故址)로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종상현(鍾祥縣) 동쪽에 해당한다. 송옥(宋玉)의 〈풍부(風賦)〉 서에는 ‘초양왕이 난대지궁(蘭臺之宮)에서 놀다’란 글귀가 있다.
이어 有風이 颯然而至라 다】

미 주015)
미
[江]+이(주격 조사). 강이.
흐르거늘 주016)
흐르거늘
흐르[流]-+-거늘(연결 어미). 흐르거늘. 흐르니.
夏后 주017)
하후(夏后)
중국의 오래된 성씨의 하나. 『사기(史記)』의 하(夏) 본기에 의하면, 우(禹)는 그 성이 사성(姒姓)이었는데, 그 제후들이 나라를 나누어 봉작(封爵)을 받아, 나라 이름으로 성을 삼아서 하후 씨가 생기게 되었다. 유호(有扈) 씨, 유남(有男) 씨, 짐심(斟鄩) 씨, 동성(彤城) 씨, 포(褒) 씨, 비(费) 씨, 기(杞) 씨, 증(繒) 씨, 신(辛) 씨, 명(冥) 씨, 짐과(斟戈)씨 등이 이렇게 해서 생기게 된 것이다. 사기의 하 본기에서는 우(禹)의 아비가 곤(鲧)이고, 곤의 어미가 제(帝) 전욱(颛頊)이고, 전욱의 아비가 창의(昌意)이고, 창의의 아비가 황제(黄帝)이다. 즉 우(禹)라는 사람은 황제의 현손이고 제 전욱의 손자가 된다. (백도백과 참조)
고 주018)
고
[思]+-(동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 생각하고.
미 주019)
미
[風]+이(주격 조사). 바람이. ¶맷 고기 놀라온 믌겨레 옮기여 가고 가 새 노 매 맛랫도다(잠기어 있는 고기 놀라운 물결에 옮기어 가고, 가는 새는 높은 바람에 맞닥뜨려 있도다.)〈두시(초) 10:32ㄱ〉.
오거늘 주020)
오거늘
오[來]-+-거늘(연결 어미). 오거늘. 오니.
襄王 주021)
양왕(襄王)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 초나라 회왕(懷王)의 아들. 초양왕(楚襄王) 또는 초경양왕(楚顷襄王)이라고도 한다. 성은 미성(芈姓)이고, 씨는 웅씨(熊氏)이며, 이름은 횡(橫)이다. 양왕은 신녀(神女) 무심(无心)에게 뜻이 있었다고 한다. 송옥이 전설 속의 양왕과 무산 신녀와의 연애 고사를 노래로 읊었다. 송옥의 『고당부서(高唐賦序)』, 『신녀부서(神女賦序)』 참고.
思憶노라 주022)
사억(思憶)노라
사억(思憶)+-(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생각하노라. 생각하고 추억하노라.

【한자음】 강류사하후 풍지억양왕【하후(夏后)는 우(禹)가 물을 다스렸다. 송옥(宋玉)의 풍부(風賦)에 양왕(襄王)이 난대지궁(蘭臺之宮)에서 놀거늘 바람이 가볍게 불어온다고 하였다.】
【언해역】 강이 흐르거늘 하후(夏后)를 생각하고 바람이 오거늘 양왕(襄王)을 생각하며 추억하노라.

老去聞悲角 人扶報夕陽

늘거 가매 주023)
늘거 가매
늙[老]-+-어(연결 어미)#가[去]-+-아(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늙어 감에. 늙어 가는데.
슬픈 吹角ㅅ 소리 주024)
취각(吹角)ㅅ 소리
취각(吹角)+ㅅ(관형격 조사)#소리[音]+(대격 조사). 취각소리를. 뿔피리를 부는 소리를. 취각 소리를.
드로니 주025)
드로니
듣[聞]-+-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들으니.
사미 더위자바셔 주026)
더위자바셔
더위잡[扶]-+-아(연결 어미)+셔(보조사). 붙들고서. 부축하고서. ‘더위잡다’는 높은 곳에 오르려고 무엇을 끌어 잡는 것이나, 의지가 될 수 있는 든든하고 굳은 지반을 잡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부축하는 것을 뜻한다. ¶君王ㅅ 臺榭ㅣ 巴山 벼엿니 萬丈인 블근 리 오히려 可히 더위자리로다(군왕(君王)의 큰 정자가 파산(巴山)을 베었나니 만 길이나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오히려 가히 휘어잡을 것이로다.)〈두시(초) 14:35ㄱ〉.
주027)
해[太陽].
주028)
디[落]-+-어(연결 어미). 져. ¶ 뎌 네 뫼히 어드우니 묏 헤 雲嵐 氣運이 侵逼놋다(해 져서 네〈사방의〉 산이 어두우니 산에 있는 마당에 구름아지랑이 기운이 침입하여 닥쳐오는구나.)〈두시(초) 11:43ㄱ〉.
가다 알외다 주029)
알외다
알외[報]-+-(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알린다. ¶이 부톄 生死 저픈 中에 一眞凝常 道로 群物을 여러 알외샤 처 업스며 내 업수믈  아라 죽디 아니며 사디 아니호매 들에 시니 世間 저푸미 허러 滅토다(이 부처가 생사 두려운 가운데 일진웅상한(진여가 엉기어 항상 한가지인) 도로써 군물(群物)을 열어 알리시어 처음 없으며 나중 없음을 사무치게 알아 죽지 아니하며 살지 아니함에 들게 하시니,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함이 헐어 없어지도다.)〈법화 3:161ㄱ〉.

【한자음】 노거문비각 인부보석양
【언해역】 늙어 감에 슬픈 취각 소리를 들으니 사람이 부축하고서 해 져 간다고 알린다.

公孫初恃險 躍馬意何長蜀都賦 주030)
촉도부(蜀都賦)
서진(西晋)의 문학가인 좌사(左思)가 지은 촉도(蜀都)에 관한 부(賦). 위도부(魏都賦도부), 오도부(吳都賦)와 함께 삼도부(三都賦)로 불린다. 좌사의 자는 태충(太冲)이고 임치(臨临淄, 지금의 산동성 치박(淄博)) 사람이다. 생몰년 미상. 그의 집은 세업이 유학이었는데 소년 시절에는 일찍이 서법과 거문고 타기를 배웠으나 모두 이루지 못하였다. 뒤에 와서 부친의 격려와 스스로 분발하여 부지런히 배움을 닦았다. 좌사는 얼굴이 못 생겼고 말이 어눌하여 교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글에는 특색이 있었고 장려하였다. 일찍이 일년의 시간을 들여 〈제도부(齊都賦)〉를 썼으나 전문은 일실되고 일부가 〈수경주(水經注)〉와 〈태평어람(太平御覽)〉에 보인다고 한다. 진시왕 8년(272) 전후에 그의 누이가 궁에 뽑혀 들어가게 되자, 온 가족이 낙양으로 옮아와 살게 되었고, 좌사는 비서랑(秘書郞)이 되었다. 원강(元康, 291~299) 연간에는 당시의 문학 서클인 ‘24인의 벗[二十四友]’에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가밀(贾谧)에게 『한서(漢書)』를 강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밀이 주살을 당하자, 좌사는 의춘리(宜春里)에 퇴거하여 오로지 전적에만 뜻을 두었다. 제나라 왕이 그를 쓰려 하였으나 그는 병을 핑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안(太安) 2년(303)에 익주로 옮겨 살다가 수년 후 병으로 죽었다. 좌사의 작품집은 5권이라고 하나, 지금 전하는 것은 부 2편과 시 14수뿐이다.
에 公孫이 躍馬而稱帝라 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公孫述이 주031)
공손술(公孫述)이
공손술(公孫述)+이(주격 조사). 공손술이. 공손술은 후한(後漢) 때의 군웅(群雄)의 하나. 그는 부풍(扶風) 출생으로 처음에는 왕망(王莽)을 섬겼으나, 전한(前漢) 말 경시제(更始帝)가 반란을 일으키자, 성도(成都)에서 군사를 일으켜, 촉(蜀)나라와 파(巴)나라를 평정하고, 25년 스스로 천자(天子)라 일컫고 국호를 성가(成家)라고 하였다. 촉나라와 파나라의 부(富)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36년 후한의 광무제(光武帝)에게 패하여, 일족과 함께 멸망하였다. 왕망(王莽) 찬위시에 어느 날 말을 타고 구당협에 와 보니 지세가 험하고 요긴하며 공격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쉬운 것을 알고 성을 수리하고 확장하였다. 그는 25년 자신을 스스로 ‘백제(白帝)’라 하고, 그가 건설한 성을 백제성(白帝城)이라 하였다.
처믜 주032)
처믜
처[初]+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처음에. ¶처믜  믈 마쇼 因커나 시혹 치위예 니거나 시혹  골커나 시혹 너무 怒커나 시혹 와 술위와 타 胃氣 傷면 사미 우흐로 吐케 니(처음에 찬물 마시는 것에 인하거나 때로 추위에 다니거나 때로 배골커나 때로 너무 성내거나 때로 배와 수레를 타서 위(胃)의 기(氣)를 상하면 위로 토하게 되는데)〈구급방 상:31ㄱ〉.
險  주033)
험(險) 
험(險)+-(형용사 파생 접미사)-+-ㄴ(관형사형 어미)#{場所]+ㄹ(대격 조사). 험한 데를. 험한 곳을.
미더 주034)
미더
믿[信, 恃(시: 믿다)]-+-어(연결 어미). 믿어. 믿고.
 타 주035)
 타
[馬]#타[乘(승: 타다)]-+-아(연결 어미). 말 타고.
이니던 주036)
이니던
이[走]-+니[行]-+-더[회상 시제 선어말 어미/단절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달려가던. ¶恒山앤 오히려  이니고 遼海옌 토아 旌旗 폣도다(항산에는 오히려 말을 달려가고 요해(遼海)에는 다투어 정기를 펴고 있도다.)〈두시(초) 3:3ㄱ〉.
디 주037)
디
[意]+이(주격 조사). 뜻이. ¶文은 글와리라 不은 아니 논 디라 相 서르 논 디라(문은 글월이다. 불은 아니한다는 뜻이다. 상은 ‘서로’ 하는 뜻이다.)〈훈언 1ㄴ〉.
모 주038)
모
자못.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지금을 가지고 옛날을 보건대 자못 많이 어기나 전문하는 옛 학은 모순을 면치 못하려니와)〈능엄 1:22ㄴ〉.
기도다 주039)
기도다
길[長]-+-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길도다. ‘-도다’를 감탄 어말 어미로 취급하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긴 댓 수피 더위 받디 아니니 섯거 흐 므리 쇽졀업시 믌겨리 솟놋다(긴 대나무 숲이 더위를 타지 아니하나니 섞여 흐르는 물이 속절없이(보람없이) 물결이 솟는구나.)〈두시(초) 14:32ㄴ~33ㄱ〉.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공손초시험 약마의하장【촉도부(蜀都賦)에, 공손술(公孫述)이 말에 뛰어 올라 황제라 하였다고 한다.】
【언해역】 공손술이 처음에 험(險)한 곳을 믿고 말 타고 달려가던 뜻이 자못 길도다.
Ⓒ 역자 | 임홍빈 / 2013년 11월 30일

주석
주001)
백제성(白帝城) : 기주성(夔州城) 동쪽에 있는 암산에 공손술(公孫述)이 지은 성. 중국 사천성(四川城) 중경(重慶)의 봉절현(奉節縣)의 구당협(瞿塘峽) 입구 장강(長江) 북안에 있다. 왕망(王莽) 찬위시에 그 수하 대장 공손술이 사천 지방에서 할거하였는데, 어느날 말 타고 구당협에 와 보니 지세가 험하고 요긴하며 공격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쉬운 것을 알고 성을 수리하고 확장하였다. 그는 25년 자신을 스스로 ‘백제(白帝)’라 하고, 그가 건설한 성을 백제성이라 하였다.
주002)
상백제성(上白帝城) : 백제성에 오르다. 이 시는 당나라 대종 대력(大曆) 원년(766), 두보가 처음 기주(夔州)에 왔을 때 지은 시라고 한다.
주003)
노파 : 높[高, 峻]-+-아(연결 어미). 높아. 높아서.
주004)
하 : 하[天]+ㅅ(관형격 조사). 하늘의. ¶부텻나라해션 부텻나라 하 가온라 고 中國을 東녁 라 야 東土ㅣ라 니 土 히라(부처님의 나라에서는 부처님의 나라를 하늘 가운데라 하고, 중국을 동녘 가장자리라 하여 동토라 하나니 토는 땅이다.)〈월석 1:30ㄱ~ㄴ〉.
주005)
석벽(石壁)을 : 석벽(石壁)+을(대격 조사). 석벽을. 석벽은 돌로 쌓은 벽이나 담을 말한다. ‘하 석벽(石壁)’은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뜻한다.
주006)
조니 : 좇[隨]-+-(조음소)-+-니(연결 어미). 좇으니. ¶우리 方便으로 맛을 조샤 니샤 아디 몯와 처 佛法 듣고 맛나와 곧 信受와 야 證을 取호다(우리가 방편으로 마땅함을 따라서 이르심을 알지 못하여 처음에 불법을 듣고 만나서는 곧 믿고 생각하여 증득을 취한 것입니다.)〈법화 2:6ㄴ〉.
주007)
성(城)이 노파 하 석벽(石壁)을 조니 : 성이 높아서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좇으니. 성이 높아서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따르니. 하늘처럼 높게 쌓아올린 돌벽을 따라 성이 높으니.
주008)
누(樓)ㅣ : 누(樓)+ㅣ(주격 조사). 누(樓)가. 누각이.
주009)
놉고 : 높[高]-+-고(연결 어미). 높고. ¶그 술위 놉고 넙고 한 보로 미고 欄楯 두르고 四面에 올 오  그 우희 幰蓋 펴고<원주>【술위 우희 깁 펼씨 幰이라】(그 수레가 높고 넓으며 많은 보배로 꾸미고 난순을 두르고 사면에 방울을 달고 또 그 위에 헌개(幰蓋)를 펴고<원주>【수레 위에 비단 편 것이 헌(幰)이다.】〈법화 2:72ㄴ〉.
주010)
여장(女墻)이 : 여장(女墻)+이(주격 조사). 여장이. 성가퀴가. 성 위에 쌓은 낮은 담이. 여장(女墻)은 성가퀴라 하는 것으로, 성 위에 쌓은 낮은 담을 만한다. 그 뒤에 숨어 적을 감시하거나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거나 쇳물을 붓거나 하는 것과 같은 공격을 하는 엄폐물의 일종이다.
주011)
 잇도다 : [更]#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또 있도다. 그 위에 더 있도다. ‘-도다’를 감탄 어미로 분석하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주012)
우(禹) : 중국의 전설 가운데 나오는 인물로, 기원전 21세기, 고대 부락 연맹의 우두머리. 아비는 곤(鲧)이고 사성(姒姓) 하후씨(夏后氏)로,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대홍수를 다스린 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전의 ‘변을 단순히 담으로 막는 판법(邊單純用堵的辦法)’을 ‘소도의 판법(疏導的辦法)’으로 바꾸어 물을 다스리는 데 성공하였다. 애초 요임금 때에 중국의 중원은 홍수와 범람으로 물 재난이 계속되었다. 백성들은 근심과 걱정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에 요임금은 곤(鯀)에게 물을 다스릴 것을 명령하였다. 명을 받은 곤은 홍수와 물재난을 다스는 데 장수법(障水法)을 썼다. 이것은 강안 변에 뚝을 쌓는 것이다. 그러나 물은 갇혀 있지 못하였고 넘쳐 흘렀다. 시간이 9년이나 흘렀으나 홍수 재난을 다스리지 못하였다. 곤의 아들 우(禹)가 치수의 일을 이어 맡게 되었다. 우는 백성들을 소집하여 협조를 해 줄 것을 요청하고, 하도(河道)를 시찰하고, 아울러 치수 실패의 원인을 검토하였다. 그 아비의 치수 실패의 교훈을 종합하여 치수의 방법을 하천의 물흐르는 길을 트는 소도(疏導)의 방법으로 치수의 기본을 삼았는데,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에, 9개의 강을 소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평지의 물을 강으로 유도하고 다시 바다로 흘러들게 함으로써 13년간의 고투 끝에 치수하는 데 성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주013)
송옥(宋玉) :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초나라의 문인(?B.C.290~?B.C.222). 다른 이름으로는 자연(子淵)이다. 전국 시대의 언(鄢, 지금의 양번의성(襄樊宜城)) 사람으로 사부 작가(辭賦作家)임. 굴원(屈原) 다음에 났기 때문에 굴원의 제자라고 하는 일도 있다. 사부를 많이 썼다. 흘러 전하는 작품에 〈구변(九辨)〉, 〈초혼(招魂)〉, 〈풍부(風賦〉, 〈고당부(高唐賦)〉, 〈등도 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 등이 있다.
주014)
난대지궁(蘭臺之宮) :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대명(臺名). 전설에 나오는 고지(故址)로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종상현(鍾祥縣) 동쪽에 해당한다. 송옥(宋玉)의 〈풍부(風賦)〉 서에는 ‘초양왕이 난대지궁(蘭臺之宮)에서 놀다’란 글귀가 있다.
주015)
미 : [江]+이(주격 조사). 강이.
주016)
흐르거늘 : 흐르[流]-+-거늘(연결 어미). 흐르거늘. 흐르니.
주017)
하후(夏后) : 중국의 오래된 성씨의 하나. 『사기(史記)』의 하(夏) 본기에 의하면, 우(禹)는 그 성이 사성(姒姓)이었는데, 그 제후들이 나라를 나누어 봉작(封爵)을 받아, 나라 이름으로 성을 삼아서 하후 씨가 생기게 되었다. 유호(有扈) 씨, 유남(有男) 씨, 짐심(斟鄩) 씨, 동성(彤城) 씨, 포(褒) 씨, 비(费) 씨, 기(杞) 씨, 증(繒) 씨, 신(辛) 씨, 명(冥) 씨, 짐과(斟戈)씨 등이 이렇게 해서 생기게 된 것이다. 사기의 하 본기에서는 우(禹)의 아비가 곤(鲧)이고, 곤의 어미가 제(帝) 전욱(颛頊)이고, 전욱의 아비가 창의(昌意)이고, 창의의 아비가 황제(黄帝)이다. 즉 우(禹)라는 사람은 황제의 현손이고 제 전욱의 손자가 된다. (백도백과 참조)
주018)
고 : [思]+-(동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 생각하고.
주019)
미 : [風]+이(주격 조사). 바람이. ¶맷 고기 놀라온 믌겨레 옮기여 가고 가 새 노 매 맛랫도다(잠기어 있는 고기 놀라운 물결에 옮기어 가고, 가는 새는 높은 바람에 맞닥뜨려 있도다.)〈두시(초) 10:32ㄱ〉.
주020)
오거늘 : 오[來]-+-거늘(연결 어미). 오거늘. 오니.
주021)
양왕(襄王) :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 초나라 회왕(懷王)의 아들. 초양왕(楚襄王) 또는 초경양왕(楚顷襄王)이라고도 한다. 성은 미성(芈姓)이고, 씨는 웅씨(熊氏)이며, 이름은 횡(橫)이다. 양왕은 신녀(神女) 무심(无心)에게 뜻이 있었다고 한다. 송옥이 전설 속의 양왕과 무산 신녀와의 연애 고사를 노래로 읊었다. 송옥의 『고당부서(高唐賦序)』, 『신녀부서(神女賦序)』 참고.
주022)
사억(思憶)노라 : 사억(思憶)+-(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생각하노라. 생각하고 추억하노라.
주023)
늘거 가매 : 늙[老]-+-어(연결 어미)#가[去]-+-아(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늙어 감에. 늙어 가는데.
주024)
취각(吹角)ㅅ 소리 : 취각(吹角)+ㅅ(관형격 조사)#소리[音]+(대격 조사). 취각소리를. 뿔피리를 부는 소리를. 취각 소리를.
주025)
드로니 : 듣[聞]-+-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들으니.
주026)
더위자바셔 : 더위잡[扶]-+-아(연결 어미)+셔(보조사). 붙들고서. 부축하고서. ‘더위잡다’는 높은 곳에 오르려고 무엇을 끌어 잡는 것이나, 의지가 될 수 있는 든든하고 굳은 지반을 잡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을 부축하는 것을 뜻한다. ¶君王ㅅ 臺榭ㅣ 巴山 벼엿니 萬丈인 블근 리 오히려 可히 더위자리로다(군왕(君王)의 큰 정자가 파산(巴山)을 베었나니 만 길이나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오히려 가히 휘어잡을 것이로다.)〈두시(초) 14:35ㄱ〉.
주027)
 : 해[太陽].
주028)
뎌 : 디[落]-+-어(연결 어미). 져. ¶ 뎌 네 뫼히 어드우니 묏 헤 雲嵐 氣運이 侵逼놋다(해 져서 네〈사방의〉 산이 어두우니 산에 있는 마당에 구름아지랑이 기운이 침입하여 닥쳐오는구나.)〈두시(초) 11:43ㄱ〉.
주029)
알외다 : 알외[報]-+-(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알린다. ¶이 부톄 生死 저픈 中에 一眞凝常 道로 群物을 여러 알외샤 처 업스며 내 업수믈  아라 죽디 아니며 사디 아니호매 들에 시니 世間 저푸미 허러 滅토다(이 부처가 생사 두려운 가운데 일진웅상한(진여가 엉기어 항상 한가지인) 도로써 군물(群物)을 열어 알리시어 처음 없으며 나중 없음을 사무치게 알아 죽지 아니하며 살지 아니함에 들게 하시니,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함이 헐어 없어지도다.)〈법화 3:161ㄱ〉.
주030)
촉도부(蜀都賦) : 서진(西晋)의 문학가인 좌사(左思)가 지은 촉도(蜀都)에 관한 부(賦). 위도부(魏都賦도부), 오도부(吳都賦)와 함께 삼도부(三都賦)로 불린다. 좌사의 자는 태충(太冲)이고 임치(臨临淄, 지금의 산동성 치박(淄博)) 사람이다. 생몰년 미상. 그의 집은 세업이 유학이었는데 소년 시절에는 일찍이 서법과 거문고 타기를 배웠으나 모두 이루지 못하였다. 뒤에 와서 부친의 격려와 스스로 분발하여 부지런히 배움을 닦았다. 좌사는 얼굴이 못 생겼고 말이 어눌하여 교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글에는 특색이 있었고 장려하였다. 일찍이 일년의 시간을 들여 〈제도부(齊都賦)〉를 썼으나 전문은 일실되고 일부가 〈수경주(水經注)〉와 〈태평어람(太平御覽)〉에 보인다고 한다. 진시왕 8년(272) 전후에 그의 누이가 궁에 뽑혀 들어가게 되자, 온 가족이 낙양으로 옮아와 살게 되었고, 좌사는 비서랑(秘書郞)이 되었다. 원강(元康, 291~299) 연간에는 당시의 문학 서클인 ‘24인의 벗[二十四友]’에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가밀(贾谧)에게 『한서(漢書)』를 강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밀이 주살을 당하자, 좌사는 의춘리(宜春里)에 퇴거하여 오로지 전적에만 뜻을 두었다. 제나라 왕이 그를 쓰려 하였으나 그는 병을 핑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태안(太安) 2년(303)에 익주로 옮겨 살다가 수년 후 병으로 죽었다. 좌사의 작품집은 5권이라고 하나, 지금 전하는 것은 부 2편과 시 14수뿐이다.
주031)
공손술(公孫述)이 : 공손술(公孫述)+이(주격 조사). 공손술이. 공손술은 후한(後漢) 때의 군웅(群雄)의 하나. 그는 부풍(扶風) 출생으로 처음에는 왕망(王莽)을 섬겼으나, 전한(前漢) 말 경시제(更始帝)가 반란을 일으키자, 성도(成都)에서 군사를 일으켜, 촉(蜀)나라와 파(巴)나라를 평정하고, 25년 스스로 천자(天子)라 일컫고 국호를 성가(成家)라고 하였다. 촉나라와 파나라의 부(富)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36년 후한의 광무제(光武帝)에게 패하여, 일족과 함께 멸망하였다. 왕망(王莽) 찬위시에 어느 날 말을 타고 구당협에 와 보니 지세가 험하고 요긴하며 공격하기 어렵고 방어하기 쉬운 것을 알고 성을 수리하고 확장하였다. 그는 25년 자신을 스스로 ‘백제(白帝)’라 하고, 그가 건설한 성을 백제성(白帝城)이라 하였다.
주032)
처믜 : 처[初]+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처음에. ¶처믜  믈 마쇼 因커나 시혹 치위예 니거나 시혹  골커나 시혹 너무 怒커나 시혹 와 술위와 타 胃氣 傷면 사미 우흐로 吐케 니(처음에 찬물 마시는 것에 인하거나 때로 추위에 다니거나 때로 배골커나 때로 너무 성내거나 때로 배와 수레를 타서 위(胃)의 기(氣)를 상하면 위로 토하게 되는데)〈구급방 상:31ㄱ〉.
주033)
험(險)  : 험(險)+-(형용사 파생 접미사)-+-ㄴ(관형사형 어미)#{場所]+ㄹ(대격 조사). 험한 데를. 험한 곳을.
주034)
미더 : 믿[信, 恃(시: 믿다)]-+-어(연결 어미). 믿어. 믿고.
주035)
 타 : [馬]#타[乘(승: 타다)]-+-아(연결 어미). 말 타고.
주036)
이니던 : 이[走]-+니[行]-+-더[회상 시제 선어말 어미/단절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달려가던. ¶恒山앤 오히려  이니고 遼海옌 토아 旌旗 폣도다(항산에는 오히려 말을 달려가고 요해(遼海)에는 다투어 정기를 펴고 있도다.)〈두시(초) 3:3ㄱ〉.
주037)
디 : [意]+이(주격 조사). 뜻이. ¶文은 글와리라 不은 아니 논 디라 相 서르 논 디라(문은 글월이다. 불은 아니한다는 뜻이다. 상은 ‘서로’ 하는 뜻이다.)〈훈언 1ㄴ〉.
주038)
모 : 자못.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지금을 가지고 옛날을 보건대 자못 많이 어기나 전문하는 옛 학은 모순을 면치 못하려니와)〈능엄 1:22ㄴ〉.
주039)
기도다 : 길[長]-+-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길도다. ‘-도다’를 감탄 어말 어미로 취급하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긴 댓 수피 더위 받디 아니니 섯거 흐 므리 쇽졀업시 믌겨리 솟놋다(긴 대나무 숲이 더위를 타지 아니하나니 섞여 흐르는 물이 속절없이(보람없이) 물결이 솟는구나.)〈두시(초) 14:32ㄴ~33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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