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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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주성루에 오르다[登袞州城樓]


袞州 주001)
곤주(袞州)
당나라 때의 주 이름. 지금의 산동성에 속해 있었다. 당서(唐書)에 의하면 곤주(袞州)는 노군(魯郡)으로 하남도(河南都)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곤주를 노군으로 바꾼 것은 수(隋)나라 때인데, 당나라 초에 다시 곤주로 바꾸었다가 후에 또 노군으로 바꾸었다. 두보의 부친 두한(杜閑)이 곤주의 사마(司馬) 벼슬을 하였다.
城樓
주002)
등곤주성루(登袞州城樓)
곤주성루에 오르다. 이 시는 두보가 당시 제(齊)나라 월(越)나라를 제1차로 갔을 때 지은 것으로,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24년(736)에 지은 것이라 한다. 이 시는 두보의 시 가운데 가장 일찍 나타나는 오언율시(五言律詩)로, 결구가 근엄하고, 격률(格律)이 교묘하고도 평온하여, 이후 전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격식으로 삼았다.

등곤주성루
(곤주성루에 오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5ㄱ

東郡趨庭日 南樓縱目初【論語에 鯉趨而過庭 주003)
이추이과정(鯉趨而過庭)
논어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 공자의 아들 이(鯉, 백어(伯魚)라고도 함)가 조심스럽게 잰 걸음으로 정원을 지나는데, 공자가 묻기를, “시를 배웠느냐?”라고 하니, 이(鯉)가 대답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것이 없다.”라고 하니, 이가 물러나 시를 공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에 ‘추정(趨庭)’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고 받아들이는 것을 칭하게 되었다. 추(趨)는 빠른 걸음을 뜻하는 것으로, 공경하는 인물 옆에 지날 때 존경하는 뜻으로 빨리 지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경의 뜻을 나타낸다.
이라 니 甫의 父閑이 爲袞州司馬ㅣ어 ㅣ 省侍故로 云다 】

東郡 주004)
동군(東郡)
동쪽에 있는 군으로, 아버지 두한이 사마가 되어 살던 곤주(袞州)를 가리킴.
헤 주005)
헤
ㅎ[庭]+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뜰에. ¶모로매 白髮을 가져 헷 남 가 비교리니 故園엣 못과 臺와 이제 올가 왼가(모름지기 백발을 가지고 뜰의 나무에 가 의지할 것이니, 옛 동산의 연못과 대(臺)는 이제 옛 그대로인가 아닌가?)〈두시(초) 10:28ㄱ〉.
주006)
동군(東郡)에 헤
동군에 뜰에. 곤주에 뜰에. 곤주에서 뜰에. ‘동군(東郡)에 헤’는 부사격 조사인 처격 조사 ‘에’ 조사구가 거듭 쓰인 것으로, 그 처소의 범위를 축소해 갈 때 쓰인다. 앞에 쓰인 ‘동군에’는 처격 조사구로 주제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격 조사구가 단순히 평면적으로 나열된 것이거나 첫 처격 조사구를 잘못 쓰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 쓰인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종로에서, 뒷골목에서 사건이 터졌다’와 같이 그것은 엄연히 주어진 처소에서 그 범위 안의 처소로 범위를 축소해 가는 구성이다.
 주007)

[走]-+-(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달리는. 성큼성큼 가는. ‘-’의 받침 ‘ㄷ’이 ‘’의 ‘ㄴ’에 동화되어 ‘’이 된 것이다.
나리여 주008)
나리여
날[日]+이여(호격 조사). 날이여. ¶다 나래  盞을 고파 나아 머구미 어려우니 내 히미 故鄕ㅅ 뫼해 그르추믈 다시곰 슬허노라(다른 봄날에 한 잔을 억지로 나아가 먹는 것이 어려우니, 내 힘이 고향 산에 어그러짐을(미치지 못함을) 다시금 슬퍼하노라.)〈두시(초) 10:46ㄴ〉.
南樓에 주009)
남루(南樓)에
남루(南樓)+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남루에. 남루에서. 성(城)의 남쪽 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누늘 주010)
누늘
눈[眼, 目]+을(대격 조사). 눈을. ¶가마오디와 믌가 쇽졀업시 오 깃디 말라 나도 네 물와 다야 다 누니 번호라(가마오지와 물닭아, 속절없이 혼자서 기뻐하지 말라. 나도 네 무리와 함께하여 다 눈이 훤하구나.)〈두시(초) 10:4ㄱ〉.
 주011)

끝. 끝까지. 모두. 다. 한껏. ¶이 戒撿을 니즈며 婬亂 樂  야 마시며 머그며 어즐야(이에 계율과 도덕을 잊으며 음란한 즐거움을 한껏 하여 마시며 먹으며 정신이 흐리멍텅하여)〈능엄 9:113〉. 내 精誠을  며  다야 皇后 셤교 매 도오미 도외디 몯호니(내 정성을 끝까지 하며 마음을 다하여 황후를 섬기되 마침내 도움이 되지 못하니)〈내훈 2:66〉.
보 주012)
보
보[見]-+-(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보는.
처미로다 주013)
처미로다
처[初]#이(지정 형용사)-+-로(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처음이로다. 처음이도다. ¶구루믄 처 시울 오  리오고 곳다온 내 져고맛 남 고 傳놋다(구름은 처음 시울(둥근 가장자리) 오르는 달을 가리우고, 꽃다운 냄새는 조그만 나무의 꽃에 전하는구나.)〈두시(초) 3:26ㄱ〉.

【한자음】 동군추정일 남루종목초【〈‘추정(趨庭)’이란 말은〉 논어에, ‘공자의 아들 이(鯉)가 빠른 걸음으로 정원을 지나다’ 한 것이니, 두보의 부친 두한(杜閑)이 곤주(袞州)의 사마(司馬)가 되었거늘 두보가 살펴 모시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언해역】 동군(東郡)에서 뜰에 달리는 날이여. 남루(南樓)에서 눈을 한껏 〈떠서〉 보는 처음이로다.

浮雲連海岱 平野入靑徐

주014)
[浮]-+-ㄴ(관형사형 어미). 뜬. ¶ 들구레 와 안자쇼미 됴니 仙人 늘그니 간 서르 디녯도다(뜬 뗏목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좋으니 선인 늙으니 잠깐 서로 지니고 있도다.)〈두시(초) 16:44ㄴ~45ㄱ〉.
구루믄 주015)
구루믄
구룸[雲]+은(보조사). 구름은.
바와 주016)
바와
바[海]+와(접속 조사). 바다와. ‘바’은 ‘바〉바〉바〉바다’와 같이 변화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 福聚ㅣ 바 샤 利澤이 다디 아니실 歸命올띠니라(그 복취가 바다 같으시어 이익과 혜택이 다하지 아니하시므로 귀명하올 것이니라.)〈법화 7:99ㄴ〉.
岱山애 주017)
대산(垈山)애
대산(垈山)+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대산에. 태산(泰山)에. 태산(泰山)은 중국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태산산맥의 주봉(主峰)으로 대종(岱宗), 태악(太岳)이라고도 한다. 높이 1,532m. 5악(五岳)의 하나인 동악(東岳)으로서, 도가(道家)의 설(說)에 따라 제왕이 된 사람은 산꼭대기와 산기슭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행하였다. 산꼭대기에는 태산부군(泰山府君)의 딸 벽하원군(碧霞元君)을 모신 옥황묘(玉皇廟)가 있고, 매년 3월에 열리는 묘회(廟會)에는 전국에서 수십만의 참배자들이 몰려든다. 지금은 휴양 유람지로서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두산백과 참조〉.
니고 주018)
니고
[連]-+-어(연결 어미)#잇[有]-+-고(연결 어미). 이어 있고. ¶돗 니 로매 茱萸ㅣ 됴니  우니 蓮ㅅ고지 衰殘도다(자리를 이어깖에 수유(茱萸)가 좋으니 배를 띄우니 연꽃이 쇠잔하도다.)〈두시(초) 10:23ㄴ〉. 諸天宮殿이 虛空애 갓가 잇거든 사과 하쾌 섯거 니 둘히 서르 보며 惡道히 업스며  女人이 업스며 一切 衆生이 다 化야 나고 婬欲이 업스며(여러 하늘 궁전이 허공에 가까이 있는데 사람과 하늘이 섞여져 이어져 있어 〈사람과 하늘이〉 서로 보며, 악도(惡道)들이 없으며 또 여인이 없으며, 일체 중생이 다 교화하여 태어나고 음욕(婬欲)이 없으며)〈월석 15: 13ㄴ~14ㄱ〉.
平 주019)
평(平)
평(平)+-(형용사 파생 접미사)-+-ㄴ(관형사형 어미). 평평한.
드르흔 주020)
드르흔
드르ㅎ[野]+은(보조사). 들은. 들판은. 평야(平野)를 ‘평 들’로 풀이하였다. ¶雲霧엔 平 드르헷 남기 그얏고  너븐 두들겟 믌겨를 머겟도다(구름과 안개에는 평평한 들[평야]의 나무가 그윽하고, 바람은 넓은 두둑의 물결을 머금었도다.)〈두시(초) 10:3ㄴ〉.
靑州 주021)
청주(靑州)
곤주(袞州)와 이웃한 주.
徐州 주022)
서주(徐州)
곤주(袞州)와 이웃한 주. 지금은 강소성(江蘇省)의 2대 성시(城市)의 하나이다. 강소성(江蘇省) 북서부에 있는 인구 약 86만(1990)의 도시. 산둥성(山東省)과의 경계 부근, 12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 황하강[黃河]이 흐르던 옛 하도(河道)를 시가지 북쪽에 끼고 평야지대에 자리하면서도 구리산(九里山), 자방산(子房山) 등 산지가 주위를 둘러싸기 때문에 군사상, 교통상의 요지이다. 옛날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도읍했던 곳으로, 옛 이름을 팽성(彭城)이라 하고 동산(銅山)이라고도 한다.〈두산백과 참조〉.
드리 주023)
드리
들[入]-+-이(부사 파생 접미사). 들게. 들도록. 여기서 문맥에 맞게 의역하면 ‘안쪽으로’와 같은 뜻이 된다.
버덧도다 주024)
버덧도다
벋[延]-+-어(연결 어미)#잇[有]-+-도(감탄의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뻗어 있도다. ‘-도다’를 감탄형 어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는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 시긔옛 모딘  고툐 녀고[그]로 버 복홧 가지 리 싸라 달혀 모욕면 됴니라(또 계절성 모진 (전염) 병 고치되 동녘으로 뻗은 복사나무 가지를 가늘게 썰어 달여 목욕하면 좋으니라.)〈온역 21ㄴ〉.

【한자음】 부운련해대 평야입청서
【언해역】 뜬 구름은 바다와 대산(岱山)에 이어 있고, 평평한 들판은 청주(靑州)와 서주(徐州)에 안쪽으로 뻗었도다.

孤嶂秦碑在 荒城魯殿餘 주025)
추(鄒)
주대(周代)의 나라 이름.
嶧山
주026)
추역산(鄒嶧山)
역산(嶧山) 또는 추산(鄒山). 동산(東山)이라고도 한다. 공자, 맹자의 고향인 추성시(鄒城市)의 동남쪽 10킬로미터 되는 위치에 있다. 자연 경관이 뛰어나 ‘천하 제일 기산(奇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애 有秦始皇ㅅ碑다 魯ㅅ 靈光殿 주027)
영광전(靈光殿)
한(漢)나라 경제(景帝)와 정희(程姬)의 아들인 노(魯)나라의 공왕(恭王)이 지은 궁전.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시(曲阜市) 동쪽에 있다.
恭王 주028)
공왕(恭王)
한(漢)나라 경제(景帝)와 정희(程姬)의 아들. 노(魯)나라 땅을 맡아 다스렸다.
所作이라】

외왼 주029)
외왼
외로외[孤]-+-ㄴ(관형사형 어미). 외로운. 음운 변화에 의해서는 ‘외-’에서 ‘외외-’까지 가는 방법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외외-’란 어간이 아주 특이하다. 어간 ‘외-’은 ‘외고, 외도다, 외롭고, 외롭도다’와 같은 활용을 보이나, ‘외왼’의 어간을 ‘외롭-’이나 ‘외-’과 같이 상정하기 어렵다. ‘외-’에서 ‘외외-’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어와 같은 ‘*외로운’과 같은 형식도 나타나지 않는다. ‘외외며, 외외디, 외외니’와 같은 형식이 쓰였다. ¶서늘 비치 大虛에 다 다 므리 외외디 아니타 호 므렛 리 외외디 아니시라(서늘한 빛이 대허에 가득하다 한다, 물이 외롭지 않다 하는 것은 물에 있는 달이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남명 하:10ㄴ〉.
묏부리옌 주030)
묏부리옌
뫼[山]+ㅅ(관형격 조사)#부리[口]+예(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ᄂ(보조사). 산부리에는. 산봉우리에는. 산부리는 산의 어느 부분이 길쭉하게 뛰어나온 것을 가리킨다.
秦ㅅ碑 주031)
진(秦)ㅅ비(碑)
진의 비. 진시왕이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새긴 비를 말한다. 『진본기(秦本纪)』에는 진시왕 28년에 동으로 군현에 가서 추봉산(鄒峰山)에 올라 진나라의 공덕을 기려 돌에 새기었다고 한다.
잇고 주032)
잇고
잇[有]-+-고(연결 어미). 있고.
거츤 주033)
거츤
거츨[荒]-+-ㄴ(관형사형 어미). 거친. ¶거츤 드트리 믄득 니러 어듭게  일후미 無明이니(거친 먼지가 문득 일어 어둡게 하기 때문에 이름이 무명이니)〈월석 2:21ㄱ〉.
城엔 魯ㅅ殿이 주034)
노(魯)ㅅ전(殿)이
노의 궁전이. 노의 궁전은 영광전(靈光殿)을 가리킨다.
나맛도다 주035)
나맛도다
남[餘]-+-아(연결 어미)#잇[有]-+-도(감탄의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남아 있도다. ‘-도다’를 감탄형 어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는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길헷 酒樽 다시 먹디 몯호니 셴 머리예 올로 슬푸미 나맛도다(길의(길에 있는) 술잔을 다시 먹지 못하니 센 머리에 홀로 슬픔이 남아 있도다.)〈두시(초) 11:38ㄴ〉.

【한자음】 고장진비재 황성로전여【추역산(鄒嶧山)에는 진시황의 비가 있다. 노(魯)나라의 영광전(靈光殿)은 공왕(恭王)이 지은 것이다.】
【언해역】 외로운 산부리에는 진(秦)의 비가 있고, 거친 성(城)에는 노(魯)의 궁전이 남아 있도다.

從來多古意 登眺獨躊躇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녜로브터 주036)
녜로브터
녜[古]+로브터(부사격 조사, 출격 조사). 예로부터.
오매 주037)
오매
오[來]-+-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옴에. 오는 데 있어서. 내려옴에.
녯 일 주038)
녯 일
옛 일. ‘녯’은 ‘녜[古]’에 사이시옷 또는 관형격 조사 ‘ㅅ’이 첨가된 것이다.
논 주039)
논
[思]+-(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생각하는.
디 주040)
디
[意]+이(주격 조사). 뜻이. ¶人生 디 이실 므를 가매 저지거니와 믈와 맷 고 어느 미 이시리오(인생은 정이 있기 때문에 눈물을 가슴에 적시거니와 강물과 강꽃은 어찌 마침이 있으리오?)〈두시(초) 11:26ㄱ〉.
주041)
하[多]-+-아(연결 어미). 많이. 이 문맥에서는 ‘많아’로 해석되지 않는다. ‘많이’로만 해석되는데, 이미 부사로 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多]-+-아(연결 어미)’가 부사로 재구조화된 것으로 보인다. ¶二月에 오로미 하 昏昏니 갓 바미 뎌  아니라 나지 호록 오노라(2월에 졸음이 많아 정신이 몽롱하니 단지 밤이 짧을 뿐 아니라 낮이 나뉘도록(한낮이 될 때까지) 조노라.)〈두시(초) 11:53ㄴ〉.
잇노니 주042)
잇노니
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있노니. 있으니.
올아 주043)
올아
오[上, 登]-+-아(연결 어미). 올아. ‘올아’가 ‘올라’가 되는 것은 1588년 『소학언해 6: 26ㄴ』에서부터인 것으로 여겨진다. 〈순천김씨묘출토언간〉에도 나타나지만, 그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동경본(東京本) 『삼강행실도』에도 나타나나 이 역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라 주044)
라
라[望, 眺(조: 바라보다)]-+-아(연결 어미). 바라. 바라보고. ¶두 부톄  안시니 空中에 울워라 寶塔 라더니 四衆을 다 올이시니 (두 부처님께서 한데 앉으시니 공중에 우러러 寶塔을 바라보시더니 四衆을 다 올리시니)〈월석 15:62ㄱ〉.
오 주045)
오
혼자. ¶東西南北에 뇨 다시 議論얌 직니아 셴 머리예 죠고맛  고 病야 오 잇노라(동서남북에 다니는 것은 다시 의논함 직한 것인가? 센 머리에 조그만 배타고 병들어 혼자 있노라.)〈두시(초) 11:6ㄴ~7ㄱ〉.
머므노라 주046)
머므노라
머믈[留, 躊躇]-+-(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머무노라. 머무르노라. ¶며 리며 서 뎐염얏 을 고툐 너고릐고기나 너고릐이나 므레 글혀 그 즙을 머믈워 거든 이베 브으라(소든지 말이든지 서로 전염하는 병을 고칠 때에는, 너구리고기나 너구리똥을 물에 끓여 그 즙을 기다려 차지거든(식거든) 입에 부으라.)〈온역 1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종래다고의 등조독주저
【언해역】 예로부터 내려옴에 옛 일 생각하는 뜻이 많이 있노니, 〈곤주성루에〉 올라 바라보고 혼자 머무노라.
Ⓒ 역자 | 임홍빈 / 2013년 11월 30일

주석
주001)
곤주(袞州) : 당나라 때의 주 이름. 지금의 산동성에 속해 있었다. 당서(唐書)에 의하면 곤주(袞州)는 노군(魯郡)으로 하남도(河南都)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곤주를 노군으로 바꾼 것은 수(隋)나라 때인데, 당나라 초에 다시 곤주로 바꾸었다가 후에 또 노군으로 바꾸었다. 두보의 부친 두한(杜閑)이 곤주의 사마(司馬) 벼슬을 하였다.
주002)
등곤주성루(登袞州城樓) : 곤주성루에 오르다. 이 시는 두보가 당시 제(齊)나라 월(越)나라를 제1차로 갔을 때 지은 것으로, 당나라 현종(玄宗) 개원(開元) 24년(736)에 지은 것이라 한다. 이 시는 두보의 시 가운데 가장 일찍 나타나는 오언율시(五言律詩)로, 결구가 근엄하고, 격률(格律)이 교묘하고도 평온하여, 이후 전시대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격식으로 삼았다.
주003)
이추이과정(鯉趨而過庭) : 논어 계씨(季氏)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가 홀로 서 있을 때, 공자의 아들 이(鯉, 백어(伯魚)라고도 함)가 조심스럽게 잰 걸음으로 정원을 지나는데, 공자가 묻기를, “시를 배웠느냐?”라고 하니, 이(鯉)가 대답하기를,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것이 없다.”라고 하니, 이가 물러나 시를 공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후에 ‘추정(趨庭)’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고 받아들이는 것을 칭하게 되었다. 추(趨)는 빠른 걸음을 뜻하는 것으로, 공경하는 인물 옆에 지날 때 존경하는 뜻으로 빨리 지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공경의 뜻을 나타낸다.
주004)
동군(東郡) : 동쪽에 있는 군으로, 아버지 두한이 사마가 되어 살던 곤주(袞州)를 가리킴.
주005)
헤 : ㅎ[庭]+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뜰에. ¶모로매 白髮을 가져 헷 남 가 비교리니 故園엣 못과 臺와 이제 올가 왼가(모름지기 백발을 가지고 뜰의 나무에 가 의지할 것이니, 옛 동산의 연못과 대(臺)는 이제 옛 그대로인가 아닌가?)〈두시(초) 10:28ㄱ〉.
주006)
동군(東郡)에 헤 : 동군에 뜰에. 곤주에 뜰에. 곤주에서 뜰에. ‘동군(東郡)에 헤’는 부사격 조사인 처격 조사 ‘에’ 조사구가 거듭 쓰인 것으로, 그 처소의 범위를 축소해 갈 때 쓰인다. 앞에 쓰인 ‘동군에’는 처격 조사구로 주제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격 조사구가 단순히 평면적으로 나열된 것이거나 첫 처격 조사구를 잘못 쓰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 쓰인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 종로에서, 뒷골목에서 사건이 터졌다’와 같이 그것은 엄연히 주어진 처소에서 그 범위 안의 처소로 범위를 축소해 가는 구성이다.
주007)
 : [走]-+-(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달리는. 성큼성큼 가는. ‘-’의 받침 ‘ㄷ’이 ‘’의 ‘ㄴ’에 동화되어 ‘’이 된 것이다.
주008)
나리여 : 날[日]+이여(호격 조사). 날이여. ¶다 나래  盞을 고파 나아 머구미 어려우니 내 히미 故鄕ㅅ 뫼해 그르추믈 다시곰 슬허노라(다른 봄날에 한 잔을 억지로 나아가 먹는 것이 어려우니, 내 힘이 고향 산에 어그러짐을(미치지 못함을) 다시금 슬퍼하노라.)〈두시(초) 10:46ㄴ〉.
주009)
남루(南樓)에 : 남루(南樓)+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남루에. 남루에서. 성(城)의 남쪽 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
주010)
누늘 : 눈[眼, 目]+을(대격 조사). 눈을. ¶가마오디와 믌가 쇽졀업시 오 깃디 말라 나도 네 물와 다야 다 누니 번호라(가마오지와 물닭아, 속절없이 혼자서 기뻐하지 말라. 나도 네 무리와 함께하여 다 눈이 훤하구나.)〈두시(초) 10:4ㄱ〉.
주011)
 : 끝. 끝까지. 모두. 다. 한껏. ¶이 戒撿을 니즈며 婬亂 樂  야 마시며 머그며 어즐야(이에 계율과 도덕을 잊으며 음란한 즐거움을 한껏 하여 마시며 먹으며 정신이 흐리멍텅하여)〈능엄 9:113〉. 내 精誠을  며  다야 皇后 셤교 매 도오미 도외디 몯호니(내 정성을 끝까지 하며 마음을 다하여 황후를 섬기되 마침내 도움이 되지 못하니)〈내훈 2:66〉.
주012)
보 : 보[見]-+-(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보는.
주013)
처미로다 : 처[初]#이(지정 형용사)-+-로(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처음이로다. 처음이도다. ¶구루믄 처 시울 오  리오고 곳다온 내 져고맛 남 고 傳놋다(구름은 처음 시울(둥근 가장자리) 오르는 달을 가리우고, 꽃다운 냄새는 조그만 나무의 꽃에 전하는구나.)〈두시(초) 3:26ㄱ〉.
주014)
 : [浮]-+-ㄴ(관형사형 어미). 뜬. ¶ 들구레 와 안자쇼미 됴니 仙人 늘그니 간 서르 디녯도다(뜬 뗏목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좋으니 선인 늙으니 잠깐 서로 지니고 있도다.)〈두시(초) 16:44ㄴ~45ㄱ〉.
주015)
구루믄 : 구룸[雲]+은(보조사). 구름은.
주016)
바와 : 바[海]+와(접속 조사). 바다와. ‘바’은 ‘바〉바〉바〉바다’와 같이 변화해 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 福聚ㅣ 바 샤 利澤이 다디 아니실 歸命올띠니라(그 복취가 바다 같으시어 이익과 혜택이 다하지 아니하시므로 귀명하올 것이니라.)〈법화 7:99ㄴ〉.
주017)
대산(垈山)애 : 대산(垈山)+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대산에. 태산(泰山)에. 태산(泰山)은 중국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태산산맥의 주봉(主峰)으로 대종(岱宗), 태악(太岳)이라고도 한다. 높이 1,532m. 5악(五岳)의 하나인 동악(東岳)으로서, 도가(道家)의 설(說)에 따라 제왕이 된 사람은 산꼭대기와 산기슭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행하였다. 산꼭대기에는 태산부군(泰山府君)의 딸 벽하원군(碧霞元君)을 모신 옥황묘(玉皇廟)가 있고, 매년 3월에 열리는 묘회(廟會)에는 전국에서 수십만의 참배자들이 몰려든다. 지금은 휴양 유람지로서 알려져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두산백과 참조〉.
주018)
니고 : [連]-+-어(연결 어미)#잇[有]-+-고(연결 어미). 이어 있고. ¶돗 니 로매 茱萸ㅣ 됴니  우니 蓮ㅅ고지 衰殘도다(자리를 이어깖에 수유(茱萸)가 좋으니 배를 띄우니 연꽃이 쇠잔하도다.)〈두시(초) 10:23ㄴ〉. 諸天宮殿이 虛空애 갓가 잇거든 사과 하쾌 섯거 니 둘히 서르 보며 惡道히 업스며  女人이 업스며 一切 衆生이 다 化야 나고 婬欲이 업스며(여러 하늘 궁전이 허공에 가까이 있는데 사람과 하늘이 섞여져 이어져 있어 〈사람과 하늘이〉 서로 보며, 악도(惡道)들이 없으며 또 여인이 없으며, 일체 중생이 다 교화하여 태어나고 음욕(婬欲)이 없으며)〈월석 15: 13ㄴ~14ㄱ〉.
주019)
평(平) : 평(平)+-(형용사 파생 접미사)-+-ㄴ(관형사형 어미). 평평한.
주020)
드르흔 : 드르ㅎ[野]+은(보조사). 들은. 들판은. 평야(平野)를 ‘평 들’로 풀이하였다. ¶雲霧엔 平 드르헷 남기 그얏고  너븐 두들겟 믌겨를 머겟도다(구름과 안개에는 평평한 들[평야]의 나무가 그윽하고, 바람은 넓은 두둑의 물결을 머금었도다.)〈두시(초) 10:3ㄴ〉.
주021)
청주(靑州) : 곤주(袞州)와 이웃한 주.
주022)
서주(徐州) : 곤주(袞州)와 이웃한 주. 지금은 강소성(江蘇省)의 2대 성시(城市)의 하나이다. 강소성(江蘇省) 북서부에 있는 인구 약 86만(1990)의 도시. 산둥성(山東省)과의 경계 부근, 12세기에서 19세기 중엽까지 황하강[黃河]이 흐르던 옛 하도(河道)를 시가지 북쪽에 끼고 평야지대에 자리하면서도 구리산(九里山), 자방산(子房山) 등 산지가 주위를 둘러싸기 때문에 군사상, 교통상의 요지이다. 옛날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도읍했던 곳으로, 옛 이름을 팽성(彭城)이라 하고 동산(銅山)이라고도 한다.〈두산백과 참조〉.
주023)
드리 : 들[入]-+-이(부사 파생 접미사). 들게. 들도록. 여기서 문맥에 맞게 의역하면 ‘안쪽으로’와 같은 뜻이 된다.
주024)
버덧도다 : 벋[延]-+-어(연결 어미)#잇[有]-+-도(감탄의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뻗어 있도다. ‘-도다’를 감탄형 어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는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 시긔옛 모딘  고툐 녀고[그]로 버 복홧 가지 리 싸라 달혀 모욕면 됴니라(또 계절성 모진 (전염) 병 고치되 동녘으로 뻗은 복사나무 가지를 가늘게 썰어 달여 목욕하면 좋으니라.)〈온역 21ㄴ〉.
주025)
추(鄒) : 주대(周代)의 나라 이름.
주026)
추역산(鄒嶧山) : 역산(嶧山) 또는 추산(鄒山). 동산(東山)이라고도 한다. 공자, 맹자의 고향인 추성시(鄒城市)의 동남쪽 10킬로미터 되는 위치에 있다. 자연 경관이 뛰어나 ‘천하 제일 기산(奇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주027)
영광전(靈光殿) : 한(漢)나라 경제(景帝)와 정희(程姬)의 아들인 노(魯)나라의 공왕(恭王)이 지은 궁전.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곡부시(曲阜市) 동쪽에 있다.
주028)
공왕(恭王) : 한(漢)나라 경제(景帝)와 정희(程姬)의 아들. 노(魯)나라 땅을 맡아 다스렸다.
주029)
외왼 : 외로외[孤]-+-ㄴ(관형사형 어미). 외로운. 음운 변화에 의해서는 ‘외-’에서 ‘외외-’까지 가는 방법이 잘 찾아지지 않는다. ‘외외-’란 어간이 아주 특이하다. 어간 ‘외-’은 ‘외고, 외도다, 외롭고, 외롭도다’와 같은 활용을 보이나, ‘외왼’의 어간을 ‘외롭-’이나 ‘외-’과 같이 상정하기 어렵다. ‘외-’에서 ‘외외-’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어와 같은 ‘*외로운’과 같은 형식도 나타나지 않는다. ‘외외며, 외외디, 외외니’와 같은 형식이 쓰였다. ¶서늘 비치 大虛에 다 다 므리 외외디 아니타 호 므렛 리 외외디 아니시라(서늘한 빛이 대허에 가득하다 한다, 물이 외롭지 않다 하는 것은 물에 있는 달이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남명 하:10ㄴ〉.
주030)
묏부리옌 : 뫼[山]+ㅅ(관형격 조사)#부리[口]+예(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ᄂ(보조사). 산부리에는. 산봉우리에는. 산부리는 산의 어느 부분이 길쭉하게 뛰어나온 것을 가리킨다.
주031)
진(秦)ㅅ비(碑) : 진의 비. 진시왕이 사람들에게 명하여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노래를 새긴 비를 말한다. 『진본기(秦本纪)』에는 진시왕 28년에 동으로 군현에 가서 추봉산(鄒峰山)에 올라 진나라의 공덕을 기려 돌에 새기었다고 한다.
주032)
잇고 : 잇[有]-+-고(연결 어미). 있고.
주033)
거츤 : 거츨[荒]-+-ㄴ(관형사형 어미). 거친. ¶거츤 드트리 믄득 니러 어듭게  일후미 無明이니(거친 먼지가 문득 일어 어둡게 하기 때문에 이름이 무명이니)〈월석 2:21ㄱ〉.
주034)
노(魯)ㅅ전(殿)이 : 노의 궁전이. 노의 궁전은 영광전(靈光殿)을 가리킨다.
주035)
나맛도다 : 남[餘]-+-아(연결 어미)#잇[有]-+-도(감탄의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남아 있도다. ‘-도다’를 감탄형 어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는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길헷 酒樽 다시 먹디 몯호니 셴 머리예 올로 슬푸미 나맛도다(길의(길에 있는) 술잔을 다시 먹지 못하니 센 머리에 홀로 슬픔이 남아 있도다.)〈두시(초) 11:38ㄴ〉.
주036)
녜로브터 : 녜[古]+로브터(부사격 조사, 출격 조사). 예로부터.
주037)
오매 : 오[來]-+-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옴에. 오는 데 있어서. 내려옴에.
주038)
녯 일 : 옛 일. ‘녯’은 ‘녜[古]’에 사이시옷 또는 관형격 조사 ‘ㅅ’이 첨가된 것이다.
주039)
논 : [思]+-(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생각하는.
주040)
디 : [意]+이(주격 조사). 뜻이. ¶人生 디 이실 므를 가매 저지거니와 믈와 맷 고 어느 미 이시리오(인생은 정이 있기 때문에 눈물을 가슴에 적시거니와 강물과 강꽃은 어찌 마침이 있으리오?)〈두시(초) 11:26ㄱ〉.
주041)
하 : 하[多]-+-아(연결 어미). 많이. 이 문맥에서는 ‘많아’로 해석되지 않는다. ‘많이’로만 해석되는데, 이미 부사로 전성된 것으로 보인다. ‘하[多]-+-아(연결 어미)’가 부사로 재구조화된 것으로 보인다. ¶二月에 오로미 하 昏昏니 갓 바미 뎌  아니라 나지 호록 오노라(2월에 졸음이 많아 정신이 몽롱하니 단지 밤이 짧을 뿐 아니라 낮이 나뉘도록(한낮이 될 때까지) 조노라.)〈두시(초) 11:53ㄴ〉.
주042)
잇노니 : 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있노니. 있으니.
주043)
올아 : 오[上, 登]-+-아(연결 어미). 올아. ‘올아’가 ‘올라’가 되는 것은 1588년 『소학언해 6: 26ㄴ』에서부터인 것으로 여겨진다. 〈순천김씨묘출토언간〉에도 나타나지만, 그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동경본(東京本) 『삼강행실도』에도 나타나나 이 역시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
주044)
라 : 라[望, 眺(조: 바라보다)]-+-아(연결 어미). 바라. 바라보고. ¶두 부톄  안시니 空中에 울워라 寶塔 라더니 四衆을 다 올이시니 (두 부처님께서 한데 앉으시니 공중에 우러러 寶塔을 바라보시더니 四衆을 다 올리시니)〈월석 15:62ㄱ〉.
주045)
오 : 혼자. ¶東西南北에 뇨 다시 議論얌 직니아 셴 머리예 죠고맛  고 病야 오 잇노라(동서남북에 다니는 것은 다시 의논함 직한 것인가? 센 머리에 조그만 배타고 병들어 혼자 있노라.)〈두시(초) 11:6ㄴ~7ㄱ〉.
주046)
머므노라 : 머믈[留, 躊躇]-+-(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머무노라. 머무르노라. ¶며 리며 서 뎐염얏 을 고툐 너고릐고기나 너고릐이나 므레 글혀 그 즙을 머믈워 거든 이베 브으라(소든지 말이든지 서로 전염하는 병을 고칠 때에는, 너구리고기나 너구리똥을 물에 끓여 그 즙을 기다려 차지거든(식거든) 입에 부으라.)〈온역 1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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