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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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질 무렵 양상당에 오르다[晩登瀼上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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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 양상당에 오르다[晩登瀼上堂]


晩登 주001)
만등(晩登)
저녁에 오르다. 해질 무렵 오르다.
瀼上堂 주002)
양상당(瀼上堂)
지금의 봉절현(奉節縣) 성동문(城東門)의 매계하(梅溪河), 즉 당시의 양계(瀼溪) 강변에 있는 야당(野堂)으로, 묘우(廟宇, 신위를 모신 집)나 사당(祠堂)과 같은 집을 말한다.
주003)
만등양상당(晩登瀼上堂)
해질 무렵 양상당에 오르다. 이 시는 당나라 대종 대력 2년(767) 3월, 적갑(赤甲)으로부터 양서(瀼西)의 초가집으로 거처를 옮길 때 지은 것이라 한다.

만등양상당
(해질 무렵 양상당에 오르다)

故躋瀼岸高 頗免崖石擁

瀼水ㅅ 주004)
양수(瀼水)ㅅ
양수(瀼水)+ㅅ(관형격 조사). 양수(瀼水)의. 양수(瀼水)는 지금의 봉절현(奉節縣) 성동문(城東門)에 있는 매계하(梅溪河)로, 당시의 양계(瀼溪)를 말함.
두들기 주005)
두들기
두듥[堤, 岸]+이(주격 조사). 두둑이. 뚝이. ‘두둑’은 큰물이 넘치는 것을 막거나 물을 저장하려고 돌이나 흙 따위로 막아 쌓은 언덕을 가리킨다. ¶두듥  臘日을 기들워 將次ㅅ 버드를 펴리라 니 묏 든 치위 다딜어 梅花 퓌우고져 놋다(두둑 모습은 납일(臘日)을 기다려 장차 버들을 펴리라 하니 산의 뜻은 추위를 물리치고 매화를 피우고자 하는구나.)〈두시(초) 11:34ㄱ〉. 明帝  놀라샤 즉자히 그 두들게 가 절시니 두려 光明이 두듥 우희 現시고(명제가 아주 놀라시어 곧 그 두둑에 가서 절하시니 둥그런 광명이 두둑 위에 나타나시고)〈월석 2:68ㄱ~ㄴ〉.
노  주006)
노 
높[高]+(조음소)+ㄴ(관형사형 어미)#[處]. 높은 곳. 높은 데.
부러 주007)
부러
일부러. 실없이. ¶이틄 밤 잔 고기잡 사 도로  오고   져븨 삿기 부러 니놋다(이틀 밤 자는 고기잡는 사람은 도로 배를 띄우고, 맑은 가을의 제비 새끼는 일부러 날아다니는구나.)〈두시(초) 10:34ㄴ〉.
올오니 주008)
올오니
오르[上]-+-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오르니.
비레 주009)
비레
벼랑[崖]. ¶프른 뫼로 百里 드러오니 비레 그츠니 핫고와 호왁과 도다(푸른 산으로 백 리를 들어오니 벼랑 그치니 방앗공이와 확과 같도다.)〈두시(초) 6:2ㄱ〉.
려쇼 주010)
려쇼
리[掩(엄)]-+-어(연결 어미)#시[有]-+-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대격 조사). 가려 있음을. ¶八 比丘尼ㅣ 染心男과 손 자며 옷 자며 린 해 들며 린 해  셔며  말며  녀며 모 서르 지여며 서르 期約 씨오(팔은 비구니가 염심남과 손 잡으며, 옷 잡으며, 가려진 곳에 들며, 가려진 곳에 함께 서며, 함께 말하며, 함께 가며, 몸을 서로 기대며, 서로 기약하는 것이고)〈능엄 7:54ㄴ〉.
모 주011)
모
자못. 생각밖으로.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專門 젼혀  그 홀씨라 矛 槍이오 盾 방패라】通 사 相考라(지금을 가지고 옛날을 보건대 자못 많이 어기나 전문하는 옛 학은 모순을 면치 못하려니와【전문은 오직 한 가지 글을 배우는 것이다. 모는 창이고 순은 방패다.】통한 사람은 생각하라.)〈능엄 1:22ㄴ〉. 보미 오매 녜 일 니로니 幽閑 이리 모 서르 거리놋다(봄이 오므로 늘 일찍 일어나니, 유한한 일이 자못 서로 거리끼는구나.)〈두시(초) 10:15ㄱ~ㄴ〉.
免호라 주012)
면(免)호라
면(免)+-(동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면하도다. ¶太子ㅣ 무르샤 엇뎨 늙다 뇨 對答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 人生애 免리 업스니다(태자가 묻기를 어째서 늙었다 하느냐? 대답하되 예전에 젊던 사람도 오래 되면 늙게 되니 인생에 면할 사람이 없습니다.)〈석상 3:17ㄱ〉.
주013)
비레 려쇼 모 免호라
벼랑에 가려 있음을 자못 면하도다. 벼랑으로 둘러싸여 꽉 막힌 줄 알았는네, 일부가 터져 밖을 내다볼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한자음】 고제양안고 파면애석옹
【언해역】 양수(瀼水)의 두둑이 높은 데〈를〉 부러(실없이) 오르니 벼랑에 가리움을 자못 면하도다.

開襟野堂豁 繫馬林花動

옷기즐 주014)
옷기즐
옷[衣]+깆[襟]+을(대격 조사). 옷깃을. 중세어에도 ‘옷깃’이란 어형이 쓰이었다. ‘금(襟)’은 ‘옷깃, 마음, 가슴, 생각’의 뜻이 있으니 이 시에서는 ‘가슴을 펴니 들녘 집이 탁 트인 기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 門을 지여셔 여 라오미 이실 옷깃 녀오 길녀매 나가놋다(마을 문을 지어서 진실로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옷깃 여미고 길떠남에 나아가는구나.)〈두시(초) 8:20ㄱ〉.
여로니 주015)
여로니
열[開]-+-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여니.
햇 주016)
햇
ㅎ[野]+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ㅅ(관형격 조사). 들에의. 들의. 훈몽자회에 ‘야(野)’에 대하여 ‘ 야’와 같이 새김과 독음을 매기고 있다. 중세어의 ‘드르ㅎ/들ㅎ’도 ‘야(野)’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가 쓰인 것은 17세기 초엽까지이다. 15세기에도 ‘드르ㅎ’가 쓰였으므로, 두 말은 유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는 ‘야생’과 관련되는 뜻을 더 많이 가지고, ‘드르ㅎ/들ㅎ’은 평평한 땅과 관련되는 뜻을 더 많이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비 주017)
지비
집[家]+이(주격 조사). 집이.
훤고 주018)
훤고
훤[豁(활)]+-(형용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 훤하고. ¶東陵ㅅ 길흘 슬허셔 라노니 平生애 灞水ㅅ 우희셔 노다라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훤더라(동릉 길을 슬피 바라보니 평생 파수 위에서 놀았구나. 봄빛이 진하거든 들에 가 탄 말을 머물게 하고 밤에 자니 구름 낀 누각이 훤하더라.)〈두시(초) 3:39ㄱ〉.
 주019)

[馬]+(대격 조사). 말을. ¶東陵ㅅ 길흘 슬허셔 라노니 平生애 灞水ㅅ 우희셔 노다라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훤더라(동릉 길을 슬피 바라보니 평생에 파수 위에서 놀았구나. 봄빛이 진하거든 들에 가 탄 말을 머물게 하고 밤에 자니 구름 낀 누각이 훤하더라.)〈두시(초) 3:39ㄱ〉.
요니 주020)
요니
[繫] -+-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매니. ¶法 듣고 便安호 衆生은 塵勞애 디고 二乘은 空寂에 얽이니 이 法 듣오니 足히 塵勞 시스며 요 글어 物 밧긔 훤야 一生 놀리니 이 現世예 便安호미라(법 듣고 편안함은 중생은 진로(塵勞)에 꺼지고 이승은 공적에 얽매이니, 이 법 들은 이는 족히 진로를 씻으며, 매임을 끌러 물(物) 밖에서 훤하여 일생을 놀 것이니, 이는 현세에서 편안함이다.)〈법화 3:21ㄴ~22ㄱ〉.
수프렛 주021)
수프렛
수플[林]+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ㅅ(관형격 조사). 수풀의.
고지 주022)
고지
곶[花]+이(주격 조사). 꽃이.
움즈기다 주023)
움즈기다
움즉이[動]-+-(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움직인다. ¶사이  구의 딕킈  니르러 만히 간활 아젼게 미 배 되여 스스로 피디 몯야 어든 배 털억 귿티오  소임 이예 다시 敢히 움즉이디 몯니(사람이 갓 구유 지키는 데 이르러 많이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에게 미끼가 된 바 되어 스스로 살피지 못하여 얻은 바가 털 끝이고 한 소임 사이에 다시 감히 움직이지 못하나니)〈소학 5:61ㄱ〉.

【한자음】 개금야당활 계마림화동
【언해역】 옷깃을 여니 들의 집이 훤하고 말을 매니 수풀의 꽃이 움직인다.

雉堞粉如雲 山田麥無隴【城이 長三 주024)
장(丈)
길이의 단위. 10자(1자=3.03미터) 또는 어른 키에 해당하는 길이. 여기서는 장을 10자 단위로 보는 것보다는 어른 키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은 10미터 정도의 것이 있으나 성문과 성문 사이의 담은 일반적으로 그만큼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오 高一丈이 爲 주025)
치(雉)
성 담장의 척도 명칭. 원문 협주에서처럼, 담장 1치(雉)는 길이가 3장(丈)이고 높이가 1장이다. 다른 뜻으로는 성을 기어오르는 적군에게 활을 쏘기 쉽게 성 중간에 돌출하여 쌓은 부분을 이른다.
ㅣ니라】

雉堞 주026)
치첩(雉堞)
성가퀴. 예전 성위에 쌓은 낮은 담. 여기에 의지하여 몸을 숨기고 적을 쏘거나 치게 되어 있다. 그 종류는 크게 평가퀴, 뾰족가퀴, 둥근가퀴로 나누어진다.
허여호미 주027)
허여호미
허여[暗白]+-(형용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이(주격 조사). 허여함이. 허여한 것이. ¶먼 두들게  몰애 허여고 니 뫼해 나죄 비취옛  븕도다(먼 두둑에 가을 모래 허옇고, 이어져 있는 산에 저녁에 비추고 있는 해 붉도다.)〈두시(초) 10:32ㄱ〉.
구룸 고 주028)
구룸 고
구룸[雲]#[如]-+-고(연결 어미). 구름 같고. ‘-’가 ‘-’으로 축약된 뒤에 ‘-’에 내파화가 적용되어 ‘-’과 같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서 ‘’가 탈락한 것과 같이 되었다. ¶世間애 나미 큰 구룸 야 一切 이운 衆生 기 저져 다 受苦 여희여 安隱樂과 世間樂과 涅槃樂 得게 호리니(세간에 나는 것이 큰 구름 같아서 일체 시든 중생을 가득히 적시어 다 수고를 여의어 편안한 즐거움과 세간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할 것이니)〈법화 3:38ㄴ~39ㄱ〉.
주029)
뫼[山]+ㅅ(관형격 조사). 산의.
바틘 주030)
바틘
밭[田]+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밭에는. ¶비 려 萬物을 저지디 아니니 됴 바 누른 드트리 니렛도다(비 내려 만물을 적시지 않으니 좋은 밭에 누런 먼지가 일었도다.)〈두시(초) 10:19ㄱ〉. 이믜셔 비 오고 개어  집 아래 져고맛 받이러믈 다리고 두 돗 너븨만 부루 菜 즈야 심고니(이미 비 오고 날이 개거늘 가을 집 아래 조그만 밭이랑을 다스리고 한두 자리 넓이만큼 상추를 사이 띄어 심으니)〈두시(초) 16:65ㄱ〉.
보리 두들기 주031)
두들기
두듥[堤, 隴(롱: 고개 이름)]+이(주격 조사). 두둑이. 두렁이. ¶그 히 平正야 노며 가오며 굳과 두들기 업고 琉璃로  오 寶樹ㅣ 벌오 黃金으로 노 라 긼 느리고 여러 寶華 흐터 두루 다 淸淨리라(그 땅이 평정하여 높고 낮으며 구덩이와 두둑이 없고 유리로 땅을 만들고 보수가 벌어 있고, 황금으로 노끈을 만들어 길가에 늘이고, 여러 보화를 흩어 두루 다 청정할 것이다.)〈법화 3:59ㄱ〉.
업도다 주032)
업도다
없[無]-+-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없도다. 어간 ‘없-’이 ‘업-’이 된 것은 자음군 단순화에 의한 것이다. ‘-도다’를 감탄 어미로 보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수플 아래 개 드리운 새 잇고 믌 가온 녈  업도다(수풀 아래는 날개 드리운 새 있고, 물 가운데는 갈 배 없도다.)〈두시(초) 10:21ㄱ〉.

【한자음】 치첩분여운 산전맥무롱【성(城)은 길이 3장(丈)이고 높이 1장이 〈한〉 치(雉)가 된다.】
【언해역】 성가퀴는 허연 것이 구름 같고 들의 밭에는 보리 두둑이 없도다.

春氣晩更生 江流靜猶湧【靜猶湧 言無風而 波也ㅣ라】

 氣運이 나조 주033)
나조
나조ㅎ[夕]+(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저녁에. 해질 무렵에. ¶긴  可히 나조히 외디 마니 더위 내 애 모딜오 다(긴 해 가히 저녁이 되지 않으니, 더위 내 장(腸)을 참기 어렵게 한다.)〈두시(초) 10:20ㄱ〉. 震 東方이오 旦 아미니  東녀긔 이시면 아미오 西ㅅ녀긔 가면 나조힐 東녀글 아미라 니라 西天에셔 中國이 東녀길 震旦이라 니라』(진은 동쪽이고, 단은 아침이니, 해가 동쪽에 있으면 아침이고, 서쪽에 가면 저녁이므로, 동쪽을 아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서천에서 중국이 동쪽이므로 진단이라 한다.』)〈월석 2:50ㄱ〉.
나니 주034)
나니
나[生]-+-(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나니. 생기니. ¶부톄 阿難이 려 니샤 사미 世間애 나아 이셔 머즌 이리 이브로 나니 이비 블라와 더으니 브리 盛야 나면  뉘 어니와 모딘 이비 盛야 나면 無數 뉘 며 브리 盛야 나면 世間앳 쳔랴 어니와(부처님이 아난이더러 이르시되, 사람이 세간에 나서 궂은 일이 입으로부터 생겨나니 입이 불보다 더하니, 불이 성하게 나면 한 세상을 불사르거니와 모진 입이 성해서 불이 나면 무수한 세상을 불사르며, 불이 성하게 나면 세간의 재물을 불사르거니와)〈석보 11:42ㄴ~43ㄱ〉.
 주035)

[江]+(관형격 조사). 강(江)의.
흘로 주036)
흘로
흐르[流]-+-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보조사). 흐름은. 흐르는 것은. ¶낫 만야  흘로미 더니 北녁 이우제셔 사미 들에다(한낮이 되어 땀 흐르는 것이 덜하니, 북쪽 이웃에서 사람이 떠든다.)〈두시(초) 10:25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4ㄱ

마니 주037)
마니
가만[靜]+-(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가만히.
이셔 주038)
이셔
이시[有]-+-어(연결 어미). 있어. 있어서.
오히려 소사나다 주039)
소사나다
솟[湧]-+-아(연결 어미)#나[生]-+-(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솟아난다. ¶그 부텻 알 七寶塔이 노 五百由旬이오 縱廣이 二百五十由旬이  조차 소사나 空中에 머므러 이시니(그때에 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높이 오백유순이고, 넓이가 이백오십 유순되는 것이 땅으로부터 솟아나 공중에 머물러 있으니)〈법화 4:109ㄱ〉.

【한자음】 춘기만갱생 강류정유용【정유용(靜猶湧)은 바람이 없는데 파도가 이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봄 기운이 해질 무렵에 또 생기니, 강물의 흐름은 〈바람이〉 가만히 있어도 오히려 〈파도가〉 솟아난다.

四序嬰我懷 群盜久相踵

四時ㅣ 주040)
사시(四時)ㅣ
사시(四時)+ㅣ(주격 조사). 사시가. 네 계절이. 사서(四序)가. 사철이.
디너가미 주041)
디너가미
디너[過]-+-어(연결 어미)#가[去]-+-아(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지나감이. 지나가는 것이. ‘디너가-’는 그 예가 여기에 쓰인 것이 거의 유일한 예인 것으로 여겨진다. 흔히 쓰이는 것은 ‘디나가-’란 형식이었다. ¶부톄 舍利弗려 니샤 일롯 西方로 十萬億 부텻  디나가 世界 이쇼 일후미 極樂이라【極樂  즐거 씨라】(부처님이 사리불더러 이르시되, 여기에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부처님 땅을 지나가 한 세계가 있는데, 이름이 극락이다.【극락은 매우 즐겁다는 것이다.】)〈월석 7:62ㄴ~63ㄱ〉.
내 매 주042)
내 매
나[我]+(관형격 조사)#[心]+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나의 마음에.
버므럿니 주043)
버므럿니
버믈[嬰]-+-어(연결 어미)#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얽매여 있나니. 억매여 있으니. 걸리어 있나니. 둘러싸 있으니. 애워싸 있으니. ¶곳다온 프른 두들글 버므렛 園圃ㅣ오 나모 뷔여 밥 짓닌 여흐레 지옛 로다(꽃다운 푸른 두둑을 둘러 있는 〈것은〉 채소밭이요, 나무 베어 밥 짓는 것(곳)은 여흘에 기대고 있는 배로다.)〈두시(초) 10:16ㄴ〉.
주044)
물[衆]+ㅅ(관형격 조사). 뭇. 무리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무리지은. ¶믌 비치 뭀 뮈 거슬 머구멋니 아 비 큰 虛空애 랏도다(물빛이 만상의 움직이는 것을 머금고 있나니 아침 빛은 큰 허공에 가로놓여 있도다(큰 허공을 가르고 있도다.)〈두시(초) 14:29ㄱ〉.
도 주045)
도
도[盜]+(보조사). 도적은. ¶여슷 도이 사 바랍게 니 다시 마골디니라(여섯 도둑이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니 다시 막을 것이니라.)〈남명 하:33ㄴ〉.
주046)
뭀 도
무리지은 도적은. 군도(群盜)는. 여기서 도적 무리는 최간(崔旰)이나 주지광(周智光)과 같은 부류를 일컫는 것이라고도 하고, 『찬주분류두시』에서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시 촉나라에는 최간(崔旰)의 난이 있었고, 촉나라 서울 근처에는 주지광(周智光)의 난이 있었다(한성무 외(1997) 참조).
오래 서르 와 주047)
와
[踵(종: 발꿈치)]-+-아(연결 어미). 밟아. 밟고. 원문의 ‘종(踵)’이 발꿈치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상 서로 끊임없이 이어 다니는 것을 말한다. ¶大迦葉히 喩說을 아와 부텻 正道 得야 반기 부텻 位 오릴 오 果 주샤 니시니 일후미 授記品이라(대가섭들이 유설을 깨달아 부처의 정도를 얻어 마땅히 부처의 위를 밟을 것이므로, 오는(미래의) 과(果)를 주시어 이르시니, 이름이 수기품이다.)〈법화 3:55ㄱ〉. 이 妙心을 와 眞實ㅅ 터흘 사모미 일후미 니샨 治地니(이 묘심을 밟아 진실한 터를 삼는 것이 이름이 이르신 바 치지(治地)니)〈능엄 8:23ㄱ〉.
니놋다 주048)
니놋다
[走]-+니[行]-+(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ㅅ(사이시옷)-+-다(종결 어미). 다니는구나. ¶夜叉 나고 모디다 혼 디니 虛空애 라 니니라(야차는 날래고 모질다 하는 뜻이니 허공에 날아다니는 것이다.)〈월석 1:14ㄴ〉.

【한자음】 사서영아회 군도구상종
【언해역】 네 계절이 지나감이 내 마음에 둘러싸여 있으니 뭇 도적은 오래 서로 밟고 다니는구나.

黎民困逆節 주049)
역절(逆節)
반역(反逆). 역적 행위. 반역자. 역적.
天子渴垂拱【言人民이 困於逆亂이오 天子ㅣ 播遷샤 未得垂衣拱手也 ㅣ라】

百姓 逆節의 거긔 주050)
역절(逆節)의거긔
역적(逆賊)+의(관형격 조사)#걱(의존 명사?)+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역적에게. ‘의(관형격 조사)#걱(의존 명사)+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는 어원적 분석을 보인 것이며, 여격의 의미를 가지는 부사격 조사 ‘의거긔’로 재구조화되었다.
困고 주051)
곤(困)고
곤(困)+-(형용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 곤궁하고. 괴롭고. ¶窮子 五道애 困야 功德 財 업수믈 가비니라(궁자는 오도(五道)에 곤궁하여 공덕의 재물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법화 2:188ㄱ〉.
天子 주052)
천자(天子)
천자(天子)+(보조사). 황제는.
垂拱 주053)
수공(垂拱)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다는 뜻으로, 성군이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잘 다스려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수도를 떠나 피난을 다니므로, 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는 정식 조회를 할 수 없게 된 것을 뜻한다. ¶筋骨 몬져 고샤 玉體創瘢이 두 곧 아니시니 兵衛 儼然커든 垂拱臨朝샤 이 들 닛디 마쇼셔(근육과 뼈(몸)를 먼저 힘들이게 하시어 옥체(玉體) 부스럼 자국이 한두 곳 아니시니 경비병 틀림없거든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고 조회에 임하시어 이 뜻을 잊지 마십시오.)〈용가 114〉.
호
주054)
수공(垂拱)호
수공(垂拱)+-[爲]-+-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대격 조사). 수공(垂拱)함을. 수공하는 것을.
渴望시놋다 주055)
갈망(渴望)시놋다
갈망(渴望)+-(동사 파생 접미사)-+-시(주체 높임의 선어말 어미)-+-(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ㅅ(사이시옷)-+-다(종결 어미). 갈망하시는구나. 갈망하시도다.

【한자음】 여민곤역절 천자갈수공【백성들이 역적들의 난에 시달리고 천자(天子)가 수도를 옮기셔 옷을 드리우고 팔짱을 끼는 것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말한다.】
【언해역】 백성은 역적에게 힘들고, 천자는 옷을 드리우고 팔짱을 끼는 것을 갈망하시도다.

所思注東北 深峽轉脩聳【言ㅣ 在峽深險之中야 思長安也ㅣ라】

논 주056)
논
[思]+-(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생각하는. 못 잊어 하는.
주057)
바[所]+이(주격 조사). 바가. ¶이런 전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훈언 2ㄱ〉.
東北으로 주058)
동북(東北)으로
동북(東北)+으로(부사격 조사, 방향격 조사). 동북으로. 동북쪽은 기주(夔州)의 동북쪽으로, 그것은 낙양(洛陽)으로 가는 방향임.
브 주059)
브
[注]-+-어(연결 어미). 부어. 물을 부어. 많이 흘러감을 나타낸다. ¶重陽애 올로 盃中에 수를 브 病을 아나셔 니러  웃 臺예 올오라(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홀로 잔 속에 술을 부어 병을 안고서 일어나 강의 높은 곳에 오르노라.)〈두시(초) 11:28ㄴ〉.
가니 주060)
가니
가[行]-+-(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가나니. 가니. 가는 것이니.
기픈 山峽은 주061)
기픈 산협(山峽)은
깊[深]-+-으(조음소)-+-ㄴ(관형사형 어미)#산협(山峽)+은(보조사). 깊은 산골짜기는.
 주062)

아주. 끝까지. 많이. 더없이. 한껏. ¶우리 새벽에 젹이 밥 먹고 져녁이 되도록 밥 먹지 못야시매  장 골푸니 네 밧고와 둔 을 우리게 젹이 주라 粥 어 먹쟈(우리 새벽에 조금 밥 먹고 저녁이 되도록 밥 먹지 못하였음에 배 아주 고프니 네 사 둔 쌀을 우리에게 조금 주어라. 죽 쑤어 먹자.)〈몽노 3:21ㄱ〉.
길오 주063)
길오
길[長]-+-고(연결 어미). 길고. ¶고히 놉고 길오 고며 니마히 넙고 平正며 面目이 다 端嚴야(코가 높고 길고 곧으며 이마가 넓고 평정하며 면목이 다 엄정하고 단정하여)〈법화 6:18ㄴ〉.
티바댓도다 주064)
티바댓도다
티[上向, 접미사]-+받[聳(용: 솟다), 攻以頭(머리로 치다)]-+-아(연결 어미)#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치받고 있도다. 치솟아 있도다. 산협의 사방을 두른 산들이 높이 솟아 있음을 말한다. 쉽게 그곳을 나가기 어려움을 암시한다. ‘티받다’의 용례는 아주 드물다. 중세어나 근세어 자료에서 이 예 외에 다른 예를 찾기 어렵다.

【한자음】 소사주동북 심협전수용두보가 깊고 험한 협곡 가운데서 장안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생각하는 바가 동북(東北)으로(낙양으로) 부어(흘러) 가나니 깊은 산협은 아주 길고 〈높이〉 치솟아 있도다.

衰老自成病 郞官未爲冗

늘거 주065)
늘거
늙[老]-+-어(연결 어미). 늙어. 늙어서. ¶癡愛病이 덜면 生死緣이 그처 眞常 頓證리어니 엇뎨  늘거 주그리오(치애병이 없어지면 생사연이 끝나 진상을 돈증할 것이니 어찌 또 늙어 죽을 것인가?)〈법화 6:181ㄴ〉.
절로 病이 이럿건마 주066)
이럿건마
일[成]-+-어(연결 어미)#잇[有]-+-거(대상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마(연결 어미). 이루어진 것이건마는. 생긴 것이건마는. ¶미 기픈 므른 래 아니 그츨 내히 이러 바래 가니(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치기 때문에 내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용가 3〉.
郞官 주067)
낭관(郞官)
두보가 자신을 칭한 것이다. 두보는 당시 검교공부(檢校工部)의 원외랑(員外郞)이었다. 검교는 마지막 교정지에 지적된 대로 정확히 고쳐졌는가를 검사해 보는 교정 단계 가운데 초교, 재교, 완교 다음에 이어지는 최종 교정 단계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이라 賤冗티 주068)
천용(賤冗)티
천용(賤冗)+-(형용사 파생 접미사)-+-디(어말 어미). 천하고 쓸모없지. ‘’에서 ‘ㆍ’가 탈락하고 ‘디’와 합하여 ‘티’가 된 것이다.
아니호라 주069)
아니호라
아니[不]+-(형용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아니하구나. ¶王이 니샤 내 미 歡喜야 셟디 아니호라(왕이 이르시되 내 마음이 환희하여 서럽지 아니하구나.)〈월석 11:5ㄴ〉.

【한자음】 쇠로자성병 랑관미위용
【언해역】 늙어서 저절로 병이 생긴 것이건마는 낭관(郞官)이라 천하고 쓸모없지 아니하구나.

凄其望呂葛 不復夢周孔

凄然히 주070)
처연(凄然)히
처연(凄然)+-(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처량하게. 기운이 차고 쓸쓸하게.
呂望 주071)
여망(呂望)
속칭 강태공(姜太公)의 씨명(氏名). 씨(氏)가 여(呂), 이름이 상(尙)이어서 여상(呂尙)인데, 본성이 강(姜)이었다고 한다. 자(字)는 자아(子牙) 혹은 단호아(單呼牙). 다른 이름으로 ‘망(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망(呂望)’으로도 불린다. 기원전 1156년에 나서 1017년에 139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전후 주나라의 6왕을 보좌하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어 ‘태공망(太公望)’으로 칭하였다. ‘강태공’이란 속칭은 이에서 비롯한다. 서주(西周) 초년에는 주 문왕에 의하여 ‘태사(太師, 무관명)’에 봉해지고, 지위가 높아져 ‘사상부(師尙父)’로 봉해지고, 주 문왕을 보좌하여 ‘상나라 치기[翦商]’를 도모하고, 후에 주 무왕을 보좌하여 상을 멸하였다. 이 공으로 제(齊)의 제후로 봉해졌는데, 나아가 주대의 제나라 시조가 되었다. 강태공의 곧은 낚시질은, 강태공이 위수변에서 주문왕을 기다리듯 때를 기다리는 모양을 이른다.
諸葛 주072)
제갈(諸葛)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말한다.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전략가였다.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로, 지금의 산동성 근수현(沂水縣)에서 호족(豪族)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와 여의고 형주(荊州)에서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 말 전란을 피하여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불렸다. 건안 12년(207) 위(魏)의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劉備)의 간곡한 청을 받아 유비를 돕게 된다.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다음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益州)를 차지하였다. 그 후도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장무(章武) 1년(22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가 죽은 후 어린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였으나, 위(魏)와의 국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어, 국세가 기울어가는 가운데, 위의 장군 사마 의(司馬懿)와 오장원(五丈原)에서 대진 중 병사하였다.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두산백과 참조〉.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4ㄴ

라노니 주073)
라노니
라[望]-+-(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바라니. 기다리니.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서기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하는 뜻이다.)〈석보 서:6ㄱ〉.
周公 주074)
주공(周公)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단(旦).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 무왕과 그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무왕이 죽은 뒤 나이 어린 성왕의 섭정(攝政)이 되었을 때, 당시 은족(殷族) 무경(武庚)과 녹부(祿夫), 그리고 주공의 동생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등이 동이(東夷)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소공(召公)과 협력하여 이 난을 진압하였다. 주공은 은족을 회유하기 위하여 주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을 중원(中原)의 요지에 배치하여 다스리게 하는 대봉건제(大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였다.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왕실 특유의 제도문물(制度文物)을 정비하였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정치, 사상, 문화 등 다방면에 공헌하여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주례(周禮)』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두산백과 참조〉.
孔子 주075)
공자(孔子)
중국 고대의 사상가, 교육자로, 유교의 창시자로 세계의 4대 성인의 하나로 추앙되는 인물(BC 552~BC 479).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陬邑,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의 남동)에서 낳았다고 한다.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로, 성명은 공구(孔丘)이다. 그를 높여 이르는 것이 ‘공자’ 또는 ‘공부자(孔夫子)’라고 한다. 공자는 은(殷) 왕족의 혈통을 이어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고,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삼시이립)’이라고 하고 있다. 15세에 배음에 뜻을 두고 30에 섰다(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경지)고 한다. 공자는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였다.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의 계획은 노나라의 실력자인 3중신의 세력을 눌러 공실(公室)의 권력을 회복하고, 주공의 정신을 살린 질서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이 드러나 BC 497년, 56세 때 실각하고 그 후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였으나, BC 484년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 무렵 아들 이(鯉)와,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 제자는 모두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敎人不倦(교인불권, 사람을 가르침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이라고 술회했던 것처럼,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언행은 그의 저서인 『논어(論語)』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다.
메 주076)
메
[夢]+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꿈에. ¶喝고 니샤 愚癡 사 알  니르디 마디니라(갈(喝)하고 이르시되, 어리석고 정신 나간 사람 앞에서 꿈을 이르지 말 것이니라)〈몽법 55ㄱ〉.
보디 주077)
보디
보[見]-+-디(연결 어미). 보지. ¶正朝앳 使臣 보디 몯야 믌 그제를  기 드리우노라(새해 인사를 드리는 사신을 보지 못하여 눈물 흔적을 얼굴 가득히 드리우노라.)〈두시(초) 11:3ㄱ〉.
몯리로다 주078)
몯리로다
몯[不能]+-(동사 파생 접미사)-+-ㅭ(미래 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로(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못할 것이로다. 감탄 선어말 어미 ‘-로-’는 지정 형용사의 어간 ‘*일-’ 뒤에서 감탄 선어말 어미 ‘-도-’가 ‘-로-’로 바뀐 것이다. 기본형을 ‘-도-’로 제시해도 좋을 것이다.

【한자음】 처기망려갈 불부몽주공
【언해역】 처연하게 여망(呂望, 강태공)과 제갈(諸葛, 제갈량)을 바라니(기다리니) 또 주공(周公) 공자(孔子)를 꿈에 보지 못할 것이로다.

濟世數嚮時 斯人各枯冢【이 呂葛周孔 랑호니 주079)
호니
[思]+-(동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생각하니.
이 사미 셔 주080)
셔
벌써. 이 문맥에서는 ‘이미’의 뜻이 적합하다. ‘벌써’는 문장의 주어에 대하여 긍정적 함축을 가지는 데 대하여 ‘이미’는 화자에 대하여 부정적 함축을 가지는데, 그들이 죽은 것이 그들에게 좋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인 나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현대어와 같으면 ‘이미’로 쓰는 것이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죽도다 니니라】

時世 주081)
시세(時世)
당시의 세상.
거리치던 주082)
거리치던
거리치[濟]-+-더(회상 시제 선어말 어미/단절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구하던. 건지던. 구제하던. 구원하던.
이 주083)
이
일[事]+을(대격 조사). 일을.
주084)
저[彼]. 사물 지시에서는 ‘저’가 화자나 청자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대상으로 청자의 의식에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문맥 지시에서는 일반적으로 ‘저’가 쓰이지 않는다. 앞선 문맥에 등장하는 사물은 청자의 의식에도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뎌’는 앞에 나온 ‘당시 세상을 구원하던 일’을 가리킨다.
주085)
[時]+ㄹ(대격 조사). 때를. ¶밤 낫 여슷 로 뎌 藥師瑠璃光如來 저 供養고(밤낮 여섯 때로 저 약사유리광여래에게 절하여 공양하옵고)〈석상 9:32ㄱ〉.
혜요니 주086)
혜요니
혜[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세니. 생각하니. 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 ‘-오-’가 ‘요’로 된 것은 ‘ㅣ’ 모음 순행 동화에 의한 것이다. ¶ 덥듯 과 뫼해 구룸안개와 모딘 긔를 고티며 답답호믈 업게 호 삽듓 불휘를 횩게 싸라 하며 져그믈 혜디 말오 므레 가 밤 재여 브레 외여 라  므레 프러 머그라(또 더운 듯한 병(유사 전염성 열병)과 산에 구름안개와 모진 기운을 고치며 답답함을 없게 하되 삽주 뿌리를 작게 썰어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상관하지) 말고 뜨물에 잠가 밤새 재여 불에 말리어 갈아 따뜻한 물에 풀어 먹으라.)〈온역 23ㄴ〉.
주087)
시세(時世) 거리치던 이 뎌  혜요니
‘시세(時世) 거리치던 이 뎌 ’은 그 현대역인 ‘당시 세상을 구원하던 일을 그 때를’과 같이 ‘을/를’이 두 번 나타난다. 이를 ‘이중 목적어’ 혹은 ‘이중 대격’ 현상이라 부르는 일이 있다. 여기서는 앞에 나오는 ‘시세(時世) 거리치던 이’을 ‘을/를’ 주제로 본다. ‘은/는’만이 한국어의 주제 표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나, ‘을/를’이나 ‘이/가’에도 특이한 의미 기능과 함께 주제를 도입하는 기능이 있다. ‘을/를’은 문제의 대상을 드러내어 문제로 제시하는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주088)
화자 가까이 있으며 화자의 의식에는 있으나, 청자의 의식에는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관형사이다. ‘이’ 단독으로는 흔히 단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복수 대상 앞에 쓰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괄호 속에 ‘들’을 보충하여 그것이 복수 대상을 가리키는 것임을 명시하였다.
사미 주089)
사미
사[人]+이(주격 조사). 사람이.
주090)
이 사미
이 사람이. 문맥으로 보면, ‘이 사람’이 가리키는 것은 여망(呂望), 제갈(諸葛), 주공(周公), 공자(孔子)이다. 이들은 그들이 살던 당시 세상을 구원하려고 노력한 인물들이다. 두보가 살던 당시의 장호(張鎬), 방관(房琯), 엄무(嚴武) 등과 같은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일도 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서로 세상을 구원하기로 기약한 벗들이다(한성무 외(1997) 참조). ‘마른 무덤이 되었다’고 하는 싯구에서 보면 앞의 인물들이 너무 오래 전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지적될 수 있다.
여망(呂望)은 속칭 강태공(姜太公)의 씨명(氏名)이다. 씨(氏)가 여(呂), 이름이 상(尙)이어서 여상(呂尙)인데, 본성이 강(姜)이었다고 한다. 자는 자아(子牙) 혹은 단호아(單呼牙). 다른 이름으로 ‘망(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망(呂望)으로도 불린다. 기원전 1156년에 나서 1017년에 139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전후 주나라의 6왕을 보좌하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어 ‘태공망(太公望)’으로 칭하였다.
제갈(諸葛)은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말한다.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전략가였다.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다음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益州)를 차지하였다. 그 후도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장무(章武) 1년(22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두산백과 참조〉.
주공(周公)은 중국 주나라의 정치가(?~?). 문왕의 아들로 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단(旦).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은족(殷族)의 대표자 무경(武庚)과 녹부(祿夫), 그리고 주공의 동생 관숙(管叔), 채숙(蔡叔) 등이 동이(東夷)와 결탁하여 대반란을 일으켰는데, 주공은 소공(召公)과 협력하여 이 난을 진압하였다. 은을 회유하기 위하여 주초(周初) 대봉건제(大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였다.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존숭되고 있다. 예악 제도(禮樂製度)를 정비하였으며, 《주례(週禮)》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두산백과 참조〉.
공자(孔子)는 세계 4대 성인의 하나.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학자(B.C.551~B.C.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여 덕치 정치를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내고, 《시경》과 《서경》 등의 중국 고전을 정리하였다.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하여 놓은 《논어》 7권이 있다.〈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장호(張鎬, ?~764)는 당나라 때의 중신(重臣)으로, 자는 종주(從周)이고 지금의 요성시(聊城市)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첨보(天宝) 말년에 좌습유(左拾遗)의 벼슬을 하였고, 현종(玄宗)을 극진히 따랐고, 숙종(肃宗)이 즉위하자 보필하여 간의대부(谏议大夫)가 되고, 중서(中書)로 옮겨 시랑(侍郞)이 되고 중서문하(中書门下)에서 평장사(平章事)가 되고, 숙종 때에는 ‘안양창생(安养苍生,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는 것)’을 권하기도 하도 불사(佛事)를 믿지 말 것을 권하였다. 그는 봉명(奉命) 겸 하남 절도사가 되어 회남(淮南) 등의 제군(诸軍)을 통솔하였다. 안사의 난을 토벌한 인물로, 군기를 엄히 세워 군대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매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한다.
방관(房琯, 697~763)은 당나라 현종(玄宗)과 숙종(肅宗) 때의 재상. 하남(河南)의 구씨(缑氏, 지금의 언사구씨진(偃师缑氏镇) 사람으로, 자는 차율(次律), 부친은 융(融)이었다. 무즉천(武则天, 624~705) 시에는 정간대부(正谏大夫), 봉각만대(鳳閣蠻臺)의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방관은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성품이 침착하고 조용하여, 동평여향(東平呂向)과 함께 육혼이양산(陸浑伊陽山) 속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개원(開元) 12년(726) 불과 10여세에 『봉선서(封禪書)』 1편과 전(箋)과 계(啓)를 지어 바쳤는데, 그것이 당시의 중서령(中書令) 장열(張說)의 마음에 들었다. 장열은 그를 뛰어난 인재로 보아, 비서성(秘書省)의 교서랑(校書郞)으로 추천하였다. 그후 당 조정은 두보의 후원자였던 방관(房琯, 697~763)을 재상의 직에서 파면하였다. 패전의 책임을 그에게 물은 것이다. 이에 두보도 좌습유의 벼슬을 내놓게 되었다.
엄무(嚴武)는 개원(開元) 13년(725) 생으로, 두보의 절친한 친구이고 후원자였던 인물. 궁중의 문서나 조칙 따위를 맡아보았던 중서(中書)의 시랑이었던 정(珽)의 아들. 신동의 기운을 가지고, 견문을 널리 쌓았으며, 어렸을 때에도 어른의 풍모를 풍겼다고 한다. 용우(隴右) 절도사 가서한(哥敍翰)의 진언으로 판관(判官)이 되고 다시 시어사(侍御史)가 되었다. 광덕 2년(764)에는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엄무는 두보를 천거해서 절도참모(節度參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으로 삼았다. 두보가 53세(영태(永泰) 1, 765)로 관직을 사퇴하였을 때 성도 근교 완화계(浣花溪) 부근에 초당을 마련하여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하였다. 4월에 엄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두보는 그의 유일한 후원자를 잃게 되었다.
제여곰 주091)
제여곰
각각. 제각각. 제가끔. 저마다 따로따로. ¶이른 雲霞 類를 조 그르메오  므른 제여곰 그제 브텟도다(이른 구름노을은 유(類)를 따른 그림자이고, 찬 물은 제각기 흔적에 붙어 있도다.)〈두시(초) 10:44ㄴ〉.
 주092)

[乾]-+-ㄴ(관형사형 어미). 마른. ¶藥王아 가비건댄 사미 목라 므를 求야 노 두들게 우믈 파 求호    보면 므리  먼  아다가 功夫를 마디 아니야 저즌  보아 漸漸 즌 개 다면 매 決定히 므리 갓가 아니라(약왕아, 비유하건댄 사람이 목이 말라 물을 구하려 높은 두둑에 우물을 파서 구하되, 아직 마른 흙을 보면 물이 아직 먼 줄 알다가 일을 그만 두지 않고 〈계속하여〉 젖은 흙을 보며 점점 진 흙에 다다르면 마음에 분명히 물이 가까움을 아는 것이다.)〈월석 15:52ㄴ~53ㄱ〉.
무더미 주093)
무더미
무덤[墓, 塚]+이(보격 조사). 무덤이. ¶寂靜 무덤 써리예 이숌과 나모 아래 이숌과 한예 이숌과 녜 눕디 아니홈과 가며니 艱難니 디 아니야 次第로 빌머굼과 세 가짓 옷 가져 뇸괘라(적정한 무덤 사이에 있음과 나무 아래 있음과 한데에 있음과 늘 눕지 아니함과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아니하고 차례로 빌어먹음과 세 가지 옷만 가지고 지내는 것이다.)〈월석 7:31ㄴ〉.
외얫도다 주094)
외얫도다
외[化]-+-아(연결 어미)#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되어 있도다. ‘외[化]-+-아(연결 어미)’가 ‘되외야’가 된 것은 ‘ㅣ’ 모음 순행 동화에 의한 것이다.

【한자음】 제세수향시 사인각고총【이는 여망(呂望), 제갈(諸葛), 주공(周公), 공자(孔子)를 생각하니 이 사람들이 벌써(이미) 죽었도다 함을 이른 것이다.】
【언해역】 당시 세상을 구원하던 일을 그 때를 생각하니 이〈들〉 사람이 제각기 마른 무덤이 되어 있도다.

楚星南天黑 蜀月西霧重【楚蜀의 昏亂 가비니라】

주095)
초(楚)
중국 오대 십국(五代十國)의 하나(907~951). 시조 마은(馬殷)은 하남(河南) 출생으로, 당나라 말 진종권(秦宗權)에게 투항하여 전전하다가 하남(河南) 절도사 유건봉(劉建峰)의 부하가 되었다. 유봉건이 죽은 뒤, 896년 여러 장수들에게 추대되어 유후(留后)가 되었으며, 이어 당나라로부터 하남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907년 후량(後梁)을 통하여 초나라 왕에 봉해져 담주(潭州, 長沙)를 수도로 하남을 지배하면서 무역을 진흥하고 연철전(鉛鐵錢)을 주조하여 한때 부강하였으나, 내분으로 6대 45년 만에 남당(南唐)에 의해 멸망하였다. 〈두산백과 참조〉.
벼렌 주096)
벼렌
별[星]+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별에는. ¶챗 갌 氣運이 벼레 소왓니 간 혀고 匣  거믄고애 흐르는 므를 내 모로매 노라(차고 있는 칼의 기운이 별에 쏜 것을 잠깐 빼내고 갑(匣)에 끼어 있는 거문고에 흐르는 물을 내 모름지기 타노라.)〈두시(초) 11:8ㄴ〉.
南녃 주097)
남(南)녃
남(南)+녁[方]+ㅅ(관형격 조사). 남녘의.
하히 주098)
하히
하ㅎ[天]+이(주격 조사). 하늘이.
어듭고 주099)
어듭고
어듭[暗, 黑]-+-고(연결 어미). 어둡고. 중세어에는 ‘어둡고’와 같이 어간이 ‘어둡-’으로 된 형태도 나타난다. ¶다가 사외요 得면 諸根이 어둡고 鈍며 뎌르고 더럽고 손 고 발 절며 눈 멀오 귀 먹고  구버 닐온 마리 이셔도 사미 信受 아니며(만약 사람됨을 얻으면 제근이 어둡고 둔하며 짧고 더럽고 손 굽고 발 절며 눈 멀고 귀 먹고 등 굽어 이른 말이 있어도 사람이 믿지 아니하며)〈개간법화 2:58ㄴ〉. 거츤 드트리 믄득 니러 어듭게  일후미 無明이니(거친 먼지가 문득 일어 어둡게 하기 때문에 이름이 무명이니)〈월석 2:21ㄱ〉.
주100)
초(楚)ㅅ 벼렌 남(南)녃 하히 어듭고
초나라의 별에는 남녘의 하늘이 어둡고. 초나라가 남당에 의하여 멸망하게 될 어두운 운명을 말한다.
주101)
촉(蜀)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후손 현덕(玄德) 유비(劉備)가 촉(蜀, 四川省) 지방에 창건한 나라(220~263). 정식 명칭은 한(漢). 계한(季漢)이라고도 하며, 촉(蜀) 또는 촉한(蜀漢)으로 통칭된다. 후한(後漢) 말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 후한의 권위는 무너지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되었다. 형주(荊州) 목사 유표(劉表)의 객장(客將)이던 유비는 유표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종(琮)이 조조(曹操)에게 투항하자, 제갈 량(諸葛亮)의 협력을 얻어 천하 ‘3분의 계(計)’를 세우고 손권(孫權)과 동맹하여 적벽(赤壁) 전투에서 조조를 격파하고 형주의 목사가 되었다. 양자강(揚子江) 중류 유역을 거의 장악하자, 익주(益州, 成都) 목사 유장(劉璋)을 공략하여 스스로 익주 목사가 된 뒤 219년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라 칭하였다. 연호(年號)를 세웠으므로 바야흐로 3국 정립의 형세가 되었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를 둘러싼 촉한과 오(吳)의 대립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유비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오를 쳤으나 백제성(白帝城)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그 후 장완(蔣琬), 비위(費褘), 강유(姜維) 등이 국정을 담당하였으나, 위(魏)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환관 황호(黃晧)의 전횡까지 겹쳐, 국력이 쇠퇴하여 263년 위군의 대공격에 유선이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두산백과 참조〉.
랜 주102)
랜
[月]+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달에는.
西ㅅ 녁 주103)
서(西)ㅅ녁
서(西)+ㅅ(관형격 조사)#녁[方]. 서녘[西方].
雲霧ㅣ 주104)
운무(雲霧)ㅣ
운무(雲霧)+이(주격 조사). 운무가. 구름과 안개가.
둗겁도다 주105)
둗겁도다
둗겁[厚]-+-고(연결 어미). 두껍고. ¶東陵ㅅ 길흘 슬허셔 라노니 平生애 灞水ㅅ 우희셔 노다라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훤더라(동릉 길을 슬피 바라보니 평생 파수 위에서 놀았구나. 봄빛이 진하거든 들에 가 탄 말을 머물게 하고 밤에 자니 구름 낀 누각이 훤하더라.)〈두시(초) 3:39ㄱ〉.
주106)
촉(蜀)ㅅ 랜 서(西)ㅅ녁 운무(雲霧)ㅣ둗겁도다
촉나라의 달에는 서녘의 구름과 안개가 두껍도다. 촉한이 위와의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망하게 될 어두운 운명을 말한다.

【한자음】 초성남천흑 촉월서무중【초(楚)와 촉(蜀)의 혼란(昏亂)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초(楚)의 별에는 남녘 하늘이 어둡고, 촉(蜀)의 달에는 서녘 구름과 안개가 두껍도다.

安得騎鴻鵠 迫此懼將恐ㅣ 欲騎鴻鵠奮飛而去야 以免恐懼也ㅣ라】

엇뎨 주107)
엇뎨
어찌. 어떻게.
시러곰 주108)
시러곰
싣[得, 能]-+-어(연결 어미)+곰(보조사). 능히. ¶로 니윤 軒檻이 큰 믌겨레 머옛니 엇뎨 시러곰 기 드리디 아니리오(띠로 이은 헌함이 큰 물결에 메이어 있나니 어찌 능히 나직하게 들이지 아니할 것인가?)〈두시(초) 6:43ㄴ〉.
鴻鵠 주109)
홍곡(鴻鵠)
홍곡(鴻鵠)+(대격 조사). ‘홍(鴻)’은 큰 기러기를 뜻하고, ‘곡(鵠)’은 고니를 뜻한다. 둘 다 멀리 가는 새이다. 현실을 떠나 멀리 가고 싶은 시인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주110)
타[乘]-+-아(연결 어미). 타고. 중세어의 연결어미 ‘-아/아’가 현대어의 ‘-고’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예이다. ‘타 가다’라는 말은 현대어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가려뇨 주111)
가려뇨
가[去]-+-리(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거(대상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고(의문 어미). 가려는가? 갈 것인가?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는 미래 동명사 어미 ‘-ㅭ’ 뒤에 지정 형용사 어간 ‘이-’가 와서 이룬 구성이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로 재구조화된 것이다.
이적콕 주112)
이적콕
이러[如此]+-(형용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ㄱ(보조사). 이렇게. 이렇게 하여. 이토록. ‘이적콕’은 원문의 ‘此(차)…將(장)’의 의미에 해당하는 번역이다. ‘此(차)’는 ‘이’에 해당하는 것이나, 주어진 대로의 ‘적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15세기 이후에 간행된 어떠한 자료에서도 이러한 어형은 찾을 수 없다. 초간본 『두시언해』 14권에서만 이 어형이 나타날 뿐이다. 중간 『두시언해』 14권의 해당 부분에 나타나는 어형은 ‘이적고’나 ‘이석고’와 같은 형식이다. 이 또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중간 『두시언해』 14권 간행자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적콕’에서 ‘적’의 ‘저’가 ‘러’의 오각(誤刻)인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럭’을 반영하면 본래적인 어형은 ‘이럭콕’과 같은 것이 된다. ‘럭콕’은 ‘렇’의 받침 ‘ㅎ’과 ‘곡’의 두음 ‘ㄱ’의 합음 ‘코’가 오분석되어 선행 음절의 받침으로 ‘ㄱ’이 쓰이고 후행 음절의 두음으로 다시 ‘코’가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본상태로 환원하면, ‘이렇곡’이 된다. 이를 발음나는 대로 표기하면 ‘이러콕’이 된다. 다행히도, ‘이러콕’은 『번역소학』에 나타난다. ‘이토록’나 ‘이렇게 하여’와 같이 풀이할 수 있다. ¶어딘 이 며 어딘 이 고 이러콕 어딘 사 도의디 아니리 잇디 아니며(어진 일을 행하며 어진 일을 생각하고 이토록(이렇게 하여) 어진 사람 되지 아니할 사람이 있지 아니하며)〈번소 6:33ㄴ〉.
저호매 주113)
저호매
젛[懼]-+-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두려워함에. ¶부텻 威德 젼로 가 窮子 아비 저호미 니라(부처님의 위덕 때문에 물러갔다는 것은 가난한 아들이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법화 1:196ㄴ〉.
逼迫얘라 주114)
핍박(逼迫)얘라
핍박(逼迫)+-(동사 파생 접미사)-+-y(조음소)-+아(연결 어미)#이(지정 형용사)-+-라(종결 어미). 못 견디게 괴로워하노라. 못 견디어 하노라. 못 견디게 괴로워하는 것이다. ¶하히 길오 關塞ㅣ치우니 歲暮애 주우리며 어루미 逼迫얘라(하늘이 길고 요새가 추우니 세모에 굶주리며 (몸이) 어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롭구나.)〈두시(초) 9:17ㄱ〉. 몃   프리 이울어니오 오 나래 나좃 길히 窮迫얘라(몇 해를 봄풀이 이울었던 것인가? 오늘날 저녁 길이 몹시 가난하고 구차하구나.)〈두시(초) 5:43ㄴ〉.

【한자음】 안득기홍곡 박차구장공【두보가 멀리 가는 새(기러기와 고니)를 타고 떨쳐 날아가 공포와 두려움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언해역】 어찌 능히 멀리 가는 새(기러기와 고니)를 타고 갈 것인가? 이토록 두려움에 못 견디어 하노라.
Ⓒ 역자 | 임홍빈 / 2013년 11월 30일

주석
주001)
만등(晩登) : 저녁에 오르다. 해질 무렵 오르다.
주002)
양상당(瀼上堂) : 지금의 봉절현(奉節縣) 성동문(城東門)의 매계하(梅溪河), 즉 당시의 양계(瀼溪) 강변에 있는 야당(野堂)으로, 묘우(廟宇, 신위를 모신 집)나 사당(祠堂)과 같은 집을 말한다.
주003)
만등양상당(晩登瀼上堂) : 해질 무렵 양상당에 오르다. 이 시는 당나라 대종 대력 2년(767) 3월, 적갑(赤甲)으로부터 양서(瀼西)의 초가집으로 거처를 옮길 때 지은 것이라 한다.
주004)
양수(瀼水)ㅅ : 양수(瀼水)+ㅅ(관형격 조사). 양수(瀼水)의. 양수(瀼水)는 지금의 봉절현(奉節縣) 성동문(城東門)에 있는 매계하(梅溪河)로, 당시의 양계(瀼溪)를 말함.
주005)
두들기 : 두듥[堤, 岸]+이(주격 조사). 두둑이. 뚝이. ‘두둑’은 큰물이 넘치는 것을 막거나 물을 저장하려고 돌이나 흙 따위로 막아 쌓은 언덕을 가리킨다. ¶두듥  臘日을 기들워 將次ㅅ 버드를 펴리라 니 묏 든 치위 다딜어 梅花 퓌우고져 놋다(두둑 모습은 납일(臘日)을 기다려 장차 버들을 펴리라 하니 산의 뜻은 추위를 물리치고 매화를 피우고자 하는구나.)〈두시(초) 11:34ㄱ〉. 明帝  놀라샤 즉자히 그 두들게 가 절시니 두려 光明이 두듥 우희 現시고(명제가 아주 놀라시어 곧 그 두둑에 가서 절하시니 둥그런 광명이 두둑 위에 나타나시고)〈월석 2:68ㄱ~ㄴ〉.
주006)
노  : 높[高]+(조음소)+ㄴ(관형사형 어미)#[處]. 높은 곳. 높은 데.
주007)
부러 : 일부러. 실없이. ¶이틄 밤 잔 고기잡 사 도로  오고   져븨 삿기 부러 니놋다(이틀 밤 자는 고기잡는 사람은 도로 배를 띄우고, 맑은 가을의 제비 새끼는 일부러 날아다니는구나.)〈두시(초) 10:34ㄴ〉.
주008)
올오니 : 오르[上]-+-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오르니.
주009)
비레 : 벼랑[崖]. ¶프른 뫼로 百里 드러오니 비레 그츠니 핫고와 호왁과 도다(푸른 산으로 백 리를 들어오니 벼랑 그치니 방앗공이와 확과 같도다.)〈두시(초) 6:2ㄱ〉.
주010)
려쇼 : 리[掩(엄)]-+-어(연결 어미)#시[有]-+-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대격 조사). 가려 있음을. ¶八 比丘尼ㅣ 染心男과 손 자며 옷 자며 린 해 들며 린 해  셔며  말며  녀며 모 서르 지여며 서르 期約 씨오(팔은 비구니가 염심남과 손 잡으며, 옷 잡으며, 가려진 곳에 들며, 가려진 곳에 함께 서며, 함께 말하며, 함께 가며, 몸을 서로 기대며, 서로 기약하는 것이고)〈능엄 7:54ㄴ〉.
주011)
모 : 자못. 생각밖으로.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원주>【專門 젼혀  그 홀씨라 矛 槍이오 盾 방패라】通 사 相考라(지금을 가지고 옛날을 보건대 자못 많이 어기나 전문하는 옛 학은 모순을 면치 못하려니와<원주>【전문은 오직 한 가지 글을 배우는 것이다. 모는 창이고 순은 방패다.】통한 사람은 생각하라.)〈능엄 1:22ㄴ〉. 보미 오매 녜 일 니로니 幽閑 이리 모 서르 거리놋다(봄이 오므로 늘 일찍 일어나니, 유한한 일이 자못 서로 거리끼는구나.)〈두시(초) 10:15ㄱ~ㄴ〉.
주012)
면(免)호라 : 면(免)+-(동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면하도다. ¶太子ㅣ 무르샤 엇뎨 늙다 뇨 對答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 人生애 免리 업스니다(태자가 묻기를 어째서 늙었다 하느냐? 대답하되 예전에 젊던 사람도 오래 되면 늙게 되니 인생에 면할 사람이 없습니다.)〈석상 3:17ㄱ〉.
주013)
비레 려쇼 모 免호라 : 벼랑에 가려 있음을 자못 면하도다. 벼랑으로 둘러싸여 꽉 막힌 줄 알았는네, 일부가 터져 밖을 내다볼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주014)
옷기즐 : 옷[衣]+깆[襟]+을(대격 조사). 옷깃을. 중세어에도 ‘옷깃’이란 어형이 쓰이었다. ‘금(襟)’은 ‘옷깃, 마음, 가슴, 생각’의 뜻이 있으니 이 시에서는 ‘가슴을 펴니 들녘 집이 탁 트인 기분’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 門을 지여셔 여 라오미 이실 옷깃 녀오 길녀매 나가놋다(마을 문을 지어서 진실로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옷깃 여미고 길떠남에 나아가는구나.)〈두시(초) 8:20ㄱ〉.
주015)
여로니 : 열[開]-+-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여니.
주016)
햇 : ㅎ[野]+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ㅅ(관형격 조사). 들에의. 들의. 훈몽자회에 ‘야(野)’에 대하여 ‘ 야’와 같이 새김과 독음을 매기고 있다. 중세어의 ‘드르ㅎ/들ㅎ’도 ‘야(野)’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가 쓰인 것은 17세기 초엽까지이다. 15세기에도 ‘드르ㅎ’가 쓰였으므로, 두 말은 유의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는 ‘야생’과 관련되는 뜻을 더 많이 가지고, ‘드르ㅎ/들ㅎ’은 평평한 땅과 관련되는 뜻을 더 많이 가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017)
지비 : 집[家]+이(주격 조사). 집이.
주018)
훤고 : 훤[豁(활)]+-(형용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 훤하고. ¶東陵ㅅ 길흘 슬허셔 라노니 平生애 灞水ㅅ 우희셔 노다라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훤더라(동릉 길을 슬피 바라보니 평생 파수 위에서 놀았구나. 봄빛이 진하거든 들에 가 탄 말을 머물게 하고 밤에 자니 구름 낀 누각이 훤하더라.)〈두시(초) 3:39ㄱ〉.
주019)
 : [馬]+(대격 조사). 말을. ¶東陵ㅅ 길흘 슬허셔 라노니 平生애 灞水ㅅ 우희셔 노다라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훤더라(동릉 길을 슬피 바라보니 평생에 파수 위에서 놀았구나. 봄빛이 진하거든 들에 가 탄 말을 머물게 하고 밤에 자니 구름 낀 누각이 훤하더라.)〈두시(초) 3:39ㄱ〉.
주020)
요니 : [繫] -+-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매니. ¶法 듣고 便安호 衆生은 塵勞애 디고 二乘은 空寂에 얽이니 이 法 듣오니 足히 塵勞 시스며 요 글어 物 밧긔 훤야 一生 놀리니 이 現世예 便安호미라(법 듣고 편안함은 중생은 진로(塵勞)에 꺼지고 이승은 공적에 얽매이니, 이 법 들은 이는 족히 진로를 씻으며, 매임을 끌러 물(物) 밖에서 훤하여 일생을 놀 것이니, 이는 현세에서 편안함이다.)〈법화 3:21ㄴ~22ㄱ〉.
주021)
수프렛 : 수플[林]+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ㅅ(관형격 조사). 수풀의.
주022)
고지 : 곶[花]+이(주격 조사). 꽃이.
주023)
움즈기다 : 움즉이[動]-+-(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움직인다. ¶사이  구의 딕킈  니르러 만히 간활 아젼게 미 배 되여 스스로 피디 몯야 어든 배 털억 귿티오  소임 이예 다시 敢히 움즉이디 몯니(사람이 갓 구유 지키는 데 이르러 많이 간사하고 교활한 아전에게 미끼가 된 바 되어 스스로 살피지 못하여 얻은 바가 털 끝이고 한 소임 사이에 다시 감히 움직이지 못하나니)〈소학 5:61ㄱ〉.
주024)
장(丈) : 길이의 단위. 10자(1자=3.03미터) 또는 어른 키에 해당하는 길이. 여기서는 장을 10자 단위로 보는 것보다는 어른 키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으로 여겨진다. 성문은 10미터 정도의 것이 있으나 성문과 성문 사이의 담은 일반적으로 그만큼 높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025)
치(雉) : 성 담장의 척도 명칭. 원문 협주에서처럼, 담장 1치(雉)는 길이가 3장(丈)이고 높이가 1장이다. 다른 뜻으로는 성을 기어오르는 적군에게 활을 쏘기 쉽게 성 중간에 돌출하여 쌓은 부분을 이른다.
주026)
치첩(雉堞) : 성가퀴. 예전 성위에 쌓은 낮은 담. 여기에 의지하여 몸을 숨기고 적을 쏘거나 치게 되어 있다. 그 종류는 크게 평가퀴, 뾰족가퀴, 둥근가퀴로 나누어진다.
주027)
허여호미 : 허여[暗白]+-(형용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이(주격 조사). 허여함이. 허여한 것이. ¶먼 두들게  몰애 허여고 니 뫼해 나죄 비취옛  븕도다(먼 두둑에 가을 모래 허옇고, 이어져 있는 산에 저녁에 비추고 있는 해 붉도다.)〈두시(초) 10:32ㄱ〉.
주028)
구룸 고 : 구룸[雲]#[如]-+-고(연결 어미). 구름 같고. ‘-’가 ‘-’으로 축약된 뒤에 ‘-’에 내파화가 적용되어 ‘-’과 같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에서 ‘’가 탈락한 것과 같이 되었다. ¶世間애 나미 큰 구룸 야 一切 이운 衆生 기 저져 다 受苦 여희여 安隱樂과 世間樂과 涅槃樂 得게 호리니(세간에 나는 것이 큰 구름 같아서 일체 시든 중생을 가득히 적시어 다 수고를 여의어 편안한 즐거움과 세간의 즐거움과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할 것이니)〈법화 3:38ㄴ~39ㄱ〉.
주029)
묏 : 뫼[山]+ㅅ(관형격 조사). 산의.
주030)
바틘 : 밭[田]+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밭에는. ¶비 려 萬物을 저지디 아니니 됴 바 누른 드트리 니렛도다(비 내려 만물을 적시지 않으니 좋은 밭에 누런 먼지가 일었도다.)〈두시(초) 10:19ㄱ〉. 이믜셔 비 오고 개어  집 아래 져고맛 받이러믈 다리고 두 돗 너븨만 부루 菜 즈야 심고니(이미 비 오고 날이 개거늘 가을 집 아래 조그만 밭이랑을 다스리고 한두 자리 넓이만큼 상추를 사이 띄어 심으니)〈두시(초) 16:65ㄱ〉.
주031)
두들기 : 두듥[堤, 隴(롱: 고개 이름)]+이(주격 조사). 두둑이. 두렁이. ¶그 히 平正야 노며 가오며 굳과 두들기 업고 琉璃로  오 寶樹ㅣ 벌오 黃金으로 노 라 긼 느리고 여러 寶華 흐터 두루 다 淸淨리라(그 땅이 평정하여 높고 낮으며 구덩이와 두둑이 없고 유리로 땅을 만들고 보수가 벌어 있고, 황금으로 노끈을 만들어 길가에 늘이고, 여러 보화를 흩어 두루 다 청정할 것이다.)〈법화 3:59ㄱ〉.
주032)
업도다 : 없[無]-+-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없도다. 어간 ‘없-’이 ‘업-’이 된 것은 자음군 단순화에 의한 것이다. ‘-도다’를 감탄 어미로 보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수플 아래 개 드리운 새 잇고 믌 가온 녈  업도다(수풀 아래는 날개 드리운 새 있고, 물 가운데는 갈 배 없도다.)〈두시(초) 10:21ㄱ〉.
주033)
나조 : 나조ㅎ[夕]+(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저녁에. 해질 무렵에. ¶긴  可히 나조히 외디 마니 더위 내 애 모딜오 다(긴 해 가히 저녁이 되지 않으니, 더위 내 장(腸)을 참기 어렵게 한다.)〈두시(초) 10:20ㄱ〉. 震 東方이오 旦 아미니  東녀긔 이시면 아미오 西ㅅ녀긔 가면 나조힐 東녀글 아미라 니라 西天에셔 中國이 東녀길 震旦이라 니라』(진은 동쪽이고, 단은 아침이니, 해가 동쪽에 있으면 아침이고, 서쪽에 가면 저녁이므로, 동쪽을 아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서천에서 중국이 동쪽이므로 진단이라 한다.』)〈월석 2:50ㄱ〉.
주034)
나니 : 나[生]-+-(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나니. 생기니. ¶부톄 阿難이 려 니샤 사미 世間애 나아 이셔 머즌 이리 이브로 나니 이비 블라와 더으니 브리 盛야 나면  뉘 어니와 모딘 이비 盛야 나면 無數 뉘 며 브리 盛야 나면 世間앳 쳔랴 어니와(부처님이 아난이더러 이르시되, 사람이 세간에 나서 궂은 일이 입으로부터 생겨나니 입이 불보다 더하니, 불이 성하게 나면 한 세상을 불사르거니와 모진 입이 성해서 불이 나면 무수한 세상을 불사르며, 불이 성하게 나면 세간의 재물을 불사르거니와)〈석보 11:42ㄴ~43ㄱ〉.
주035)
 : [江]+(관형격 조사). 강(江)의.
주036)
흘로 : 흐르[流]-+-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보조사). 흐름은. 흐르는 것은. ¶낫 만야  흘로미 더니 北녁 이우제셔 사미 들에다(한낮이 되어 땀 흐르는 것이 덜하니, 북쪽 이웃에서 사람이 떠든다.)〈두시(초) 10:25ㄱ〉.
주037)
마니 : 가만[靜]+-(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가만히.
주038)
이셔 : 이시[有]-+-어(연결 어미). 있어. 있어서.
주039)
소사나다 : 솟[湧]-+-아(연결 어미)#나[生]-+-(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솟아난다. ¶그 부텻 알 七寶塔이 노 五百由旬이오 縱廣이 二百五十由旬이  조차 소사나 空中에 머므러 이시니(그때에 부처님 앞에 칠보탑이 높이 오백유순이고, 넓이가 이백오십 유순되는 것이 땅으로부터 솟아나 공중에 머물러 있으니)〈법화 4:109ㄱ〉.
주040)
사시(四時)ㅣ : 사시(四時)+ㅣ(주격 조사). 사시가. 네 계절이. 사서(四序)가. 사철이.
주041)
디너가미 : 디너[過]-+-어(연결 어미)#가[去]-+-아(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 지나감이. 지나가는 것이. ‘디너가-’는 그 예가 여기에 쓰인 것이 거의 유일한 예인 것으로 여겨진다. 흔히 쓰이는 것은 ‘디나가-’란 형식이었다. ¶부톄 舍利弗려 니샤 일롯 西方로 十萬億 부텻  디나가 世界 이쇼 일후미 極樂이라<원주>【極樂  즐거 씨라】(부처님이 사리불더러 이르시되, 여기에서부터 서쪽으로 10만억 부처님 땅을 지나가 한 세계가 있는데, 이름이 극락이다.<원주>【극락은 매우 즐겁다는 것이다.】)〈월석 7:62ㄴ~63ㄱ〉.
주042)
내 매 : 나[我]+(관형격 조사)#[心]+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나의 마음에.
주043)
버므럿니 : 버믈[嬰]-+-어(연결 어미)#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얽매여 있나니. 억매여 있으니. 걸리어 있나니. 둘러싸 있으니. 애워싸 있으니. ¶곳다온 프른 두들글 버므렛 園圃ㅣ오 나모 뷔여 밥 짓닌 여흐레 지옛 로다(꽃다운 푸른 두둑을 둘러 있는 〈것은〉 채소밭이요, 나무 베어 밥 짓는 것(곳)은 여흘에 기대고 있는 배로다.)〈두시(초) 10:16ㄴ〉.
주044)
뭀 : 물[衆]+ㅅ(관형격 조사). 뭇. 무리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무리지은. ¶믌 비치 뭀 뮈 거슬 머구멋니 아 비 큰 虛空애 랏도다(물빛이 만상의 움직이는 것을 머금고 있나니 아침 빛은 큰 허공에 가로놓여 있도다(큰 허공을 가르고 있도다.)〈두시(초) 14:29ㄱ〉.
주045)
도 : 도[盜]+(보조사). 도적은. ¶여슷 도이 사 바랍게 니 다시 마골디니라(여섯 도둑이 사람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니 다시 막을 것이니라.)〈남명 하:33ㄴ〉.
주046)
뭀 도 : 무리지은 도적은. 군도(群盜)는. 여기서 도적 무리는 최간(崔旰)이나 주지광(周智光)과 같은 부류를 일컫는 것이라고도 하고, 『찬주분류두시』에서는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시 촉나라에는 최간(崔旰)의 난이 있었고, 촉나라 서울 근처에는 주지광(周智光)의 난이 있었다(한성무 외(1997) 참조).
주047)
와 : [踵(종: 발꿈치)]-+-아(연결 어미). 밟아. 밟고. 원문의 ‘종(踵)’이 발꿈치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상 서로 끊임없이 이어 다니는 것을 말한다. ¶大迦葉히 喩說을 아와 부텻 正道 得야 반기 부텻 位 오릴 오 果 주샤 니시니 일후미 授記品이라(대가섭들이 유설을 깨달아 부처의 정도를 얻어 마땅히 부처의 위를 밟을 것이므로, 오는(미래의) 과(果)를 주시어 이르시니, 이름이 수기품이다.)〈법화 3:55ㄱ〉. 이 妙心을 와 眞實ㅅ 터흘 사모미 일후미 니샨 治地니(이 묘심을 밟아 진실한 터를 삼는 것이 이름이 이르신 바 치지(治地)니)〈능엄 8:23ㄱ〉.
주048)
니놋다 : [走]-+니[行]-+(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ㅅ(사이시옷)-+-다(종결 어미). 다니는구나. ¶夜叉 나고 모디다 혼 디니 虛空애 라 니니라(야차는 날래고 모질다 하는 뜻이니 허공에 날아다니는 것이다.)〈월석 1:14ㄴ〉.
주049)
역절(逆節) : 반역(反逆). 역적 행위. 반역자. 역적.
주050)
역절(逆節)의거긔 : 역적(逆賊)+의(관형격 조사)#걱(의존 명사?)+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역적에게. ‘의(관형격 조사)#걱(의존 명사)+의(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는 어원적 분석을 보인 것이며, 여격의 의미를 가지는 부사격 조사 ‘의거긔’로 재구조화되었다.
주051)
곤(困)고 : 곤(困)+-(형용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 곤궁하고. 괴롭고. ¶窮子 五道애 困야 功德 財 업수믈 가비니라(궁자는 오도(五道)에 곤궁하여 공덕의 재물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법화 2:188ㄱ〉.
주052)
천자(天子) : 천자(天子)+(보조사). 황제는.
주053)
수공(垂拱) :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낀다는 뜻으로, 성군이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잘 다스려지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수도를 떠나 피난을 다니므로, 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는 정식 조회를 할 수 없게 된 것을 뜻한다. ¶筋骨 몬져 고샤 玉體創瘢이 두 곧 아니시니 兵衛 儼然커든 垂拱臨朝샤 이 들 닛디 마쇼셔(근육과 뼈(몸)를 먼저 힘들이게 하시어 옥체(玉體) 부스럼 자국이 한두 곳 아니시니 경비병 틀림없거든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팔짱을 끼고 조회에 임하시어 이 뜻을 잊지 마십시오.)〈용가 114〉.
주054)
수공(垂拱)호 : 수공(垂拱)+-[爲]-+-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대격 조사). 수공(垂拱)함을. 수공하는 것을.
주055)
갈망(渴望)시놋다 : 갈망(渴望)+-(동사 파생 접미사)-+-시(주체 높임의 선어말 어미)-+-(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ㅅ(사이시옷)-+-다(종결 어미). 갈망하시는구나. 갈망하시도다.
주056)
논 : [思]+-(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생각하는. 못 잊어 하는.
주057)
배 : 바[所]+이(주격 조사). 바가. ¶이런 전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훈언 2ㄱ〉.
주058)
동북(東北)으로 : 동북(東北)+으로(부사격 조사, 방향격 조사). 동북으로. 동북쪽은 기주(夔州)의 동북쪽으로, 그것은 낙양(洛陽)으로 가는 방향임.
주059)
브 : [注]-+-어(연결 어미). 부어. 물을 부어. 많이 흘러감을 나타낸다. ¶重陽애 올로 盃中에 수를 브 病을 아나셔 니러  웃 臺예 올오라(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홀로 잔 속에 술을 부어 병을 안고서 일어나 강의 높은 곳에 오르노라.)〈두시(초) 11:28ㄴ〉.
주060)
가니 : 가[行]-+-(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가나니. 가니. 가는 것이니.
주061)
기픈 산협(山峽)은 : 깊[深]-+-으(조음소)-+-ㄴ(관형사형 어미)#산협(山峽)+은(보조사). 깊은 산골짜기는.
주062)
 : 아주. 끝까지. 많이. 더없이. 한껏. ¶우리 새벽에 젹이 밥 먹고 져녁이 되도록 밥 먹지 못야시매  장 골푸니 네 밧고와 둔 을 우리게 젹이 주라 粥 어 먹쟈(우리 새벽에 조금 밥 먹고 저녁이 되도록 밥 먹지 못하였음에 배 아주 고프니 네 사 둔 쌀을 우리에게 조금 주어라. 죽 쑤어 먹자.)〈몽노 3:21ㄱ〉.
주063)
길오 : 길[長]-+-고(연결 어미). 길고. ¶고히 놉고 길오 고며 니마히 넙고 平正며 面目이 다 端嚴야(코가 높고 길고 곧으며 이마가 넓고 평정하며 면목이 다 엄정하고 단정하여)〈법화 6:18ㄴ〉.
주064)
티바댓도다 : 티[上向, 접미사]-+받[聳(용: 솟다), 攻以頭(머리로 치다)]-+-아(연결 어미)#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치받고 있도다. 치솟아 있도다. 산협의 사방을 두른 산들이 높이 솟아 있음을 말한다. 쉽게 그곳을 나가기 어려움을 암시한다. ‘티받다’의 용례는 아주 드물다. 중세어나 근세어 자료에서 이 예 외에 다른 예를 찾기 어렵다.
주065)
늘거 : 늙[老]-+-어(연결 어미). 늙어. 늙어서. ¶癡愛病이 덜면 生死緣이 그처 眞常 頓證리어니 엇뎨  늘거 주그리오(치애병이 없어지면 생사연이 끝나 진상을 돈증할 것이니 어찌 또 늙어 죽을 것인가?)〈법화 6:181ㄴ〉.
주066)
이럿건마 : 일[成]-+-어(연결 어미)#잇[有]-+-거(대상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마(연결 어미). 이루어진 것이건마는. 생긴 것이건마는. ¶미 기픈 므른 래 아니 그츨 내히 이러 바래 가니(샘이 깊은 물은 가물에 아니 그치기 때문에 내가 되어 바다에 가나니.)〈용가 3〉.
주067)
낭관(郞官) : 두보가 자신을 칭한 것이다. 두보는 당시 검교공부(檢校工部)의 원외랑(員外郞)이었다. 검교는 마지막 교정지에 지적된 대로 정확히 고쳐졌는가를 검사해 보는 교정 단계 가운데 초교, 재교, 완교 다음에 이어지는 최종 교정 단계이다. 〈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주068)
천용(賤冗)티 : 천용(賤冗)+-(형용사 파생 접미사)-+-디(어말 어미). 천하고 쓸모없지. ‘’에서 ‘ㆍ’가 탈락하고 ‘디’와 합하여 ‘티’가 된 것이다.
주069)
아니호라 : 아니[不]+-(형용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아니하구나. ¶王이 니샤 내 미 歡喜야 셟디 아니호라(왕이 이르시되 내 마음이 환희하여 서럽지 아니하구나.)〈월석 11:5ㄴ〉.
주070)
처연(凄然)히 : 처연(凄然)+-(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처량하게. 기운이 차고 쓸쓸하게.
주071)
여망(呂望) : 속칭 강태공(姜太公)의 씨명(氏名). 씨(氏)가 여(呂), 이름이 상(尙)이어서 여상(呂尙)인데, 본성이 강(姜)이었다고 한다. 자(字)는 자아(子牙) 혹은 단호아(單呼牙). 다른 이름으로 ‘망(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망(呂望)’으로도 불린다. 기원전 1156년에 나서 1017년에 139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전후 주나라의 6왕을 보좌하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어 ‘태공망(太公望)’으로 칭하였다. ‘강태공’이란 속칭은 이에서 비롯한다. 서주(西周) 초년에는 주 문왕에 의하여 ‘태사(太師, 무관명)’에 봉해지고, 지위가 높아져 ‘사상부(師尙父)’로 봉해지고, 주 문왕을 보좌하여 ‘상나라 치기[翦商]’를 도모하고, 후에 주 무왕을 보좌하여 상을 멸하였다. 이 공으로 제(齊)의 제후로 봉해졌는데, 나아가 주대의 제나라 시조가 되었다. 강태공의 곧은 낚시질은, 강태공이 위수변에서 주문왕을 기다리듯 때를 기다리는 모양을 이른다.
주072)
제갈(諸葛) :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말한다.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전략가였다.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로, 지금의 산동성 근수현(沂水縣)에서 호족(豪族)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와 여의고 형주(荊州)에서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손에서 자랐다. 후한 말 전란을 피하여 벼슬을 하지 않았으나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불렸다. 건안 12년(207) 위(魏)의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劉備)의 간곡한 청을 받아 유비를 돕게 된다.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다음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益州)를 차지하였다. 그 후도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장무(章武) 1년(22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 유비가 죽은 후 어린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였으나, 위(魏)와의 국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어, 국세가 기울어가는 가운데, 위의 장군 사마 의(司馬懿)와 오장원(五丈原)에서 대진 중 병사하였다. 위와 싸우기 위하여 출진할 때 올린 ‘전출사표(前出師表)’, ‘후출사표(後出師表)’는 천고(千古)의 명문으로 이것을 읽고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두산백과 참조〉.
주073)
라노니 : 라[望]-+-(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바라니. 기다리니.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서기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하는 뜻이다.)〈석보 서:6ㄱ〉.
주074)
주공(周公) :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단(旦).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 무왕과 그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무왕이 죽은 뒤 나이 어린 성왕의 섭정(攝政)이 되었을 때, 당시 은족(殷族) 무경(武庚)과 녹부(祿夫), 그리고 주공의 동생 관숙(管叔)과 채숙(蔡叔) 등이 동이(東夷)와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소공(召公)과 협력하여 이 난을 진압하였다. 주공은 은족을 회유하기 위하여 주왕실의 일족과 공신들을 중원(中原)의 요지에 배치하여 다스리게 하는 대봉건제(大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였다. 예악(禮樂)과 법도(法度)를 제정하여 주왕실 특유의 제도문물(制度文物)을 정비하였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정치, 사상, 문화 등 다방면에 공헌하여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주례(周禮)』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두산백과 참조〉.
주075)
공자(孔子) : 중국 고대의 사상가, 교육자로, 유교의 창시자로 세계의 4대 성인의 하나로 추앙되는 인물(BC 552~BC 479).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陬邑,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의 남동)에서 낳았다고 한다. 자는 중니(仲尼). 이름은 구(丘)로, 성명은 공구(孔丘)이다. 그를 높여 이르는 것이 ‘공자’ 또는 ‘공부자(孔夫子)’라고 한다. 공자는 은(殷) 왕족의 혈통을 이어 춘추시대 말기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이고, 어머니는 안징재(顔徵在)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삼시이립)’이라고 하고 있다. 15세에 배음에 뜻을 두고 30에 섰다(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경지)고 한다. 공자는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였다. 50세가 지나서 노나라의 정공(定公)에게 중용되어, 정치가로서의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의 계획은 노나라의 실력자인 3중신의 세력을 눌러 공실(公室)의 권력을 회복하고, 주공의 정신을 살린 질서있는 문화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이 드러나 BC 497년, 56세 때 실각하고 그 후 14년간 문하생들을 데리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유세(遊說)를 계속하며 이상실현을 꾀하였으나, BC 484년 69세 때 그 불가능함을 깨닫고 고향에 돌아가 제자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이 무렵 아들 이(鯉)와, 고제자(高弟子) 안회(顔回) 및 자로(子路)가 잇달아 죽는 불행을 겪었고, 74세로 자공(子貢)·증삼(曾參) 등 뛰어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계하였다. 제자는 모두 3,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는 ‘敎人不倦(교인불권, 사람을 가르침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이라고 술회했던 것처럼, 이상을 미래에 건 위대한 교육자였다. 그의 언행은 그의 저서인 『논어(論語)』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다.
주076)
메 : [夢]+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꿈에. ¶喝고 니샤 愚癡 사 알  니르디 마디니라(갈(喝)하고 이르시되, 어리석고 정신 나간 사람 앞에서 꿈을 이르지 말 것이니라)〈몽법 55ㄱ〉.
주077)
보디 : 보[見]-+-디(연결 어미). 보지. ¶正朝앳 使臣 보디 몯야 믌 그제를  기 드리우노라(새해 인사를 드리는 사신을 보지 못하여 눈물 흔적을 얼굴 가득히 드리우노라.)〈두시(초) 11:3ㄱ〉.
주078)
몯리로다 : 몯[不能]+-(동사 파생 접미사)-+-ㅭ(미래 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로(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못할 것이로다. 감탄 선어말 어미 ‘-로-’는 지정 형용사의 어간 ‘*일-’ 뒤에서 감탄 선어말 어미 ‘-도-’가 ‘-로-’로 바뀐 것이다. 기본형을 ‘-도-’로 제시해도 좋을 것이다.
주079)
호니 : [思]+-(동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생각하니.
주080)
셔 : 벌써. 이 문맥에서는 ‘이미’의 뜻이 적합하다. ‘벌써’는 문장의 주어에 대하여 긍정적 함축을 가지는 데 대하여 ‘이미’는 화자에 대하여 부정적 함축을 가지는데, 그들이 죽은 것이 그들에게 좋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인 나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현대어와 같으면 ‘이미’로 쓰는 것이 적합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081)
시세(時世) : 당시의 세상.
주082)
거리치던 : 거리치[濟]-+-더(회상 시제 선어말 어미/단절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구하던. 건지던. 구제하던. 구원하던.
주083)
이 : 일[事]+을(대격 조사). 일을.
주084)
뎌 : 저[彼]. 사물 지시에서는 ‘저’가 화자나 청자에서 다소 멀리 떨어진 대상으로 청자의 의식에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가리킬 때 쓰인다. 문맥 지시에서는 일반적으로 ‘저’가 쓰이지 않는다. 앞선 문맥에 등장하는 사물은 청자의 의식에도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뎌’는 앞에 나온 ‘당시 세상을 구원하던 일’을 가리킨다.
주085)
 : [時]+ㄹ(대격 조사). 때를. ¶밤 낫 여슷 로 뎌 藥師瑠璃光如來 저 供養고(밤낮 여섯 때로 저 약사유리광여래에게 절하여 공양하옵고)〈석상 9:32ㄱ〉.
주086)
혜요니 : 혜[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세니. 생각하니. 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 ‘-오-’가 ‘요’로 된 것은 ‘ㅣ’ 모음 순행 동화에 의한 것이다. ¶ 덥듯 과 뫼해 구룸안개와 모딘 긔를 고티며 답답호믈 업게 호 삽듓 불휘를 횩게 싸라 하며 져그믈 혜디 말오 므레 가 밤 재여 브레 외여 라  므레 프러 머그라(또 더운 듯한 병(유사 전염성 열병)과 산에 구름안개와 모진 기운을 고치며 답답함을 없게 하되 삽주 뿌리를 작게 썰어 많고 적음을 생각하지(상관하지) 말고 뜨물에 잠가 밤새 재여 불에 말리어 갈아 따뜻한 물에 풀어 먹으라.)〈온역 23ㄴ〉.
주087)
시세(時世) 거리치던 이 뎌  혜요니 : ‘시세(時世) 거리치던 이 뎌 ’은 그 현대역인 ‘당시 세상을 구원하던 일을 그 때를’과 같이 ‘을/를’이 두 번 나타난다. 이를 ‘이중 목적어’ 혹은 ‘이중 대격’ 현상이라 부르는 일이 있다. 여기서는 앞에 나오는 ‘시세(時世) 거리치던 이’을 ‘을/를’ 주제로 본다. ‘은/는’만이 한국어의 주제 표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나, ‘을/를’이나 ‘이/가’에도 특이한 의미 기능과 함께 주제를 도입하는 기능이 있다. ‘을/를’은 문제의 대상을 드러내어 문제로 제시하는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여겨진다.
주088)
이 : 화자 가까이 있으며 화자의 의식에는 있으나, 청자의 의식에는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지시 관형사이다. ‘이’ 단독으로는 흔히 단수 대상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복수 대상 앞에 쓰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괄호 속에 ‘들’을 보충하여 그것이 복수 대상을 가리키는 것임을 명시하였다.
주089)
사미 : 사[人]+이(주격 조사). 사람이.
주090)
이 사미 : 이 사람이. 문맥으로 보면, ‘이 사람’이 가리키는 것은 여망(呂望), 제갈(諸葛), 주공(周公), 공자(孔子)이다. 이들은 그들이 살던 당시 세상을 구원하려고 노력한 인물들이다. 두보가 살던 당시의 장호(張鎬), 방관(房琯), 엄무(嚴武) 등과 같은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는 일도 있다. 이들은 모두 당시 서로 세상을 구원하기로 기약한 벗들이다(한성무 외(1997) 참조). ‘마른 무덤이 되었다’고 하는 싯구에서 보면 앞의 인물들이 너무 오래 전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지적될 수 있다.
여망(呂望)은 속칭 강태공(姜太公)의 씨명(氏名)이다. 씨(氏)가 여(呂), 이름이 상(尙)이어서 여상(呂尙)인데, 본성이 강(姜)이었다고 한다. 자는 자아(子牙) 혹은 단호아(單呼牙). 다른 이름으로 ‘망(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망(呂望)으로도 불린다. 기원전 1156년에 나서 1017년에 139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한다. 전후 주나라의 6왕을 보좌하고,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어 ‘태공망(太公望)’으로 칭하였다.
제갈(諸葛)은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말한다.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전략가였다. 자는 공명(孔明),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하고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를 맺었다. 다음해, 오(吳)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와 익주(益州)를 차지하였다. 그 후도 수많은 전공(戰功)을 세워, 장무(章武) 1년(22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재상이 되었다.〈두산백과 참조〉.
주공(周公)은 중국 주나라의 정치가(?~?). 문왕의 아들로 성은 희(姬). 이름은 단(旦). 중국 주(周)나라의 정치가. 이름은 단(旦). 주왕조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동생. 무왕과 무왕의 아들 성왕(成王)을 도와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은족(殷族)의 대표자 무경(武庚)과 녹부(祿夫), 그리고 주공의 동생 관숙(管叔), 채숙(蔡叔) 등이 동이(東夷)와 결탁하여 대반란을 일으켰는데, 주공은 소공(召公)과 협력하여 이 난을 진압하였다. 은을 회유하기 위하여 주초(周初) 대봉건제(大封建制)를 실시하여 주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였다. 유교학자에 의해 성인으로 존숭되고 있다. 예악 제도(禮樂製度)를 정비하였으며, 《주례(週禮)》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두산백과 참조〉.
공자(孔子)는 세계 4대 성인의 하나. 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 학자(B.C.551~B.C.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인(仁)을 정치와 윤리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여 덕치 정치를 강조하였다. 만년에는 교육에 전념하여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내고, 《시경》과 《서경》 등의 중국 고전을 정리하였다. 제자들이 그의 언행을 기록하여 놓은 《논어》 7권이 있다.〈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장호(張鎬, ?~764)는 당나라 때의 중신(重臣)으로, 자는 종주(從周)이고 지금의 요성시(聊城市)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경사(經史)에 정통하였다고 한다. 첨보(天宝) 말년에 좌습유(左拾遗)의 벼슬을 하였고, 현종(玄宗)을 극진히 따랐고, 숙종(肃宗)이 즉위하자 보필하여 간의대부(谏议大夫)가 되고, 중서(中書)로 옮겨 시랑(侍郞)이 되고 중서문하(中書门下)에서 평장사(平章事)가 되고, 숙종 때에는 ‘안양창생(安养苍生,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는 것)’을 권하기도 하도 불사(佛事)를 믿지 말 것을 권하였다. 그는 봉명(奉命) 겸 하남 절도사가 되어 회남(淮南) 등의 제군(诸軍)을 통솔하였다. 안사의 난을 토벌한 인물로, 군기를 엄히 세워 군대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매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한다.
방관(房琯, 697~763)은 당나라 현종(玄宗)과 숙종(肅宗) 때의 재상. 하남(河南)의 구씨(缑氏, 지금의 언사구씨진(偃师缑氏镇) 사람으로, 자는 차율(次律), 부친은 융(融)이었다. 무즉천(武则天, 624~705) 시에는 정간대부(正谏大夫), 봉각만대(鳳閣蠻臺)의 평장사(平章事)를 지냈다. 방관은 어려서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성품이 침착하고 조용하여, 동평여향(東平呂向)과 함께 육혼이양산(陸浑伊陽山) 속에서 책을 읽으며 지냈다. 개원(開元) 12년(726) 불과 10여세에 『봉선서(封禪書)』 1편과 전(箋)과 계(啓)를 지어 바쳤는데, 그것이 당시의 중서령(中書令) 장열(張說)의 마음에 들었다. 장열은 그를 뛰어난 인재로 보아, 비서성(秘書省)의 교서랑(校書郞)으로 추천하였다. 그후 당 조정은 두보의 후원자였던 방관(房琯, 697~763)을 재상의 직에서 파면하였다. 패전의 책임을 그에게 물은 것이다. 이에 두보도 좌습유의 벼슬을 내놓게 되었다.
엄무(嚴武)는 개원(開元) 13년(725) 생으로, 두보의 절친한 친구이고 후원자였던 인물. 궁중의 문서나 조칙 따위를 맡아보았던 중서(中書)의 시랑이었던 정(珽)의 아들. 신동의 기운을 가지고, 견문을 널리 쌓았으며, 어렸을 때에도 어른의 풍모를 풍겼다고 한다. 용우(隴右) 절도사 가서한(哥敍翰)의 진언으로 판관(判官)이 되고 다시 시어사(侍御史)가 되었다. 광덕 2년(764)에는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엄무는 두보를 천거해서 절도참모(節度參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으로 삼았다. 두보가 53세(영태(永泰) 1, 765)로 관직을 사퇴하였을 때 성도 근교 완화계(浣花溪) 부근에 초당을 마련하여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하였다. 4월에 엄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두보는 그의 유일한 후원자를 잃게 되었다.
주091)
제여곰 : 각각. 제각각. 제가끔. 저마다 따로따로. ¶이른 雲霞 類를 조 그르메오  므른 제여곰 그제 브텟도다(이른 구름노을은 유(類)를 따른 그림자이고, 찬 물은 제각기 흔적에 붙어 있도다.)〈두시(초) 10:44ㄴ〉.
주092)
 : [乾]-+-ㄴ(관형사형 어미). 마른. ¶藥王아 가비건댄 사미 목라 므를 求야 노 두들게 우믈 파 求호    보면 므리  먼  아다가 功夫를 마디 아니야 저즌  보아 漸漸 즌 개 다면 매 決定히 므리 갓가 아니라(약왕아, 비유하건댄 사람이 목이 말라 물을 구하려 높은 두둑에 우물을 파서 구하되, 아직 마른 흙을 보면 물이 아직 먼 줄 알다가 일을 그만 두지 않고 〈계속하여〉 젖은 흙을 보며 점점 진 흙에 다다르면 마음에 분명히 물이 가까움을 아는 것이다.)〈월석 15:52ㄴ~53ㄱ〉.
주093)
무더미 : 무덤[墓, 塚]+이(보격 조사). 무덤이. ¶寂靜 무덤 써리예 이숌과 나모 아래 이숌과 한예 이숌과 녜 눕디 아니홈과 가며니 艱難니 디 아니야 次第로 빌머굼과 세 가짓 옷 가져 뇸괘라(적정한 무덤 사이에 있음과 나무 아래 있음과 한데에 있음과 늘 눕지 아니함과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을 가리지 아니하고 차례로 빌어먹음과 세 가지 옷만 가지고 지내는 것이다.)〈월석 7:31ㄴ〉.
주094)
외얫도다 : 외[化]-+-아(연결 어미)#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되어 있도다. ‘외[化]-+-아(연결 어미)’가 ‘되외야’가 된 것은 ‘ㅣ’ 모음 순행 동화에 의한 것이다.
주095)
초(楚) : 중국 오대 십국(五代十國)의 하나(907~951). 시조 마은(馬殷)은 하남(河南) 출생으로, 당나라 말 진종권(秦宗權)에게 투항하여 전전하다가 하남(河南) 절도사 유건봉(劉建峰)의 부하가 되었다. 유봉건이 죽은 뒤, 896년 여러 장수들에게 추대되어 유후(留后)가 되었으며, 이어 당나라로부터 하남 절도사로 임명되었다. 907년 후량(後梁)을 통하여 초나라 왕에 봉해져 담주(潭州, 長沙)를 수도로 하남을 지배하면서 무역을 진흥하고 연철전(鉛鐵錢)을 주조하여 한때 부강하였으나, 내분으로 6대 45년 만에 남당(南唐)에 의해 멸망하였다. 〈두산백과 참조〉.
주096)
벼렌 : 별[星]+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별에는. ¶챗 갌 氣運이 벼레 소왓니 간 혀고 匣  거믄고애 흐르는 므를 내 모로매 노라(차고 있는 칼의 기운이 별에 쏜 것을 잠깐 빼내고 갑(匣)에 끼어 있는 거문고에 흐르는 물을 내 모름지기 타노라.)〈두시(초) 11:8ㄴ〉.
주097)
남(南)녃 : 남(南)+녁[方]+ㅅ(관형격 조사). 남녘의.
주098)
하히 : 하ㅎ[天]+이(주격 조사). 하늘이.
주099)
어듭고 : 어듭[暗, 黑]-+-고(연결 어미). 어둡고. 중세어에는 ‘어둡고’와 같이 어간이 ‘어둡-’으로 된 형태도 나타난다. ¶다가 사외요 得면 諸根이 어둡고 鈍며 뎌르고 더럽고 손 고 발 절며 눈 멀오 귀 먹고  구버 닐온 마리 이셔도 사미 信受 아니며(만약 사람됨을 얻으면 제근이 어둡고 둔하며 짧고 더럽고 손 굽고 발 절며 눈 멀고 귀 먹고 등 굽어 이른 말이 있어도 사람이 믿지 아니하며)〈개간법화 2:58ㄴ〉. 거츤 드트리 믄득 니러 어듭게  일후미 無明이니(거친 먼지가 문득 일어 어둡게 하기 때문에 이름이 무명이니)〈월석 2:21ㄱ〉.
주100)
초(楚)ㅅ 벼렌 남(南)녃 하히 어듭고 : 초나라의 별에는 남녘의 하늘이 어둡고. 초나라가 남당에 의하여 멸망하게 될 어두운 운명을 말한다.
주101)
촉(蜀) :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후손 현덕(玄德) 유비(劉備)가 촉(蜀, 四川省) 지방에 창건한 나라(220~263). 정식 명칭은 한(漢). 계한(季漢)이라고도 하며, 촉(蜀) 또는 촉한(蜀漢)으로 통칭된다. 후한(後漢) 말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나 후한의 권위는 무너지고 군웅할거의 시대가 되었다. 형주(荊州) 목사 유표(劉表)의 객장(客將)이던 유비는 유표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종(琮)이 조조(曹操)에게 투항하자, 제갈 량(諸葛亮)의 협력을 얻어 천하 ‘3분의 계(計)’를 세우고 손권(孫權)과 동맹하여 적벽(赤壁) 전투에서 조조를 격파하고 형주의 목사가 되었다. 양자강(揚子江) 중류 유역을 거의 장악하자, 익주(益州, 成都) 목사 유장(劉璋)을 공략하여 스스로 익주 목사가 된 뒤 219년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라 칭하였다. 연호(年號)를 세웠으므로 바야흐로 3국 정립의 형세가 되었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를 둘러싼 촉한과 오(吳)의 대립은 해결되지 않았으므로, 유비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오를 쳤으나 백제성(白帝城)에서 병사하고 말았다. 그 후 장완(蔣琬), 비위(費褘), 강유(姜維) 등이 국정을 담당하였으나, 위(魏)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환관 황호(黃晧)의 전횡까지 겹쳐, 국력이 쇠퇴하여 263년 위군의 대공격에 유선이 항복함으로써 멸망하였다.〈두산백과 참조〉.
주102)
랜 : [月]+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달에는.
주103)
서(西)ㅅ녁 : 서(西)+ㅅ(관형격 조사)#녁[方]. 서녘[西方].
주104)
운무(雲霧)ㅣ : 운무(雲霧)+이(주격 조사). 운무가. 구름과 안개가.
주105)
둗겁도다 : 둗겁[厚]-+-고(연결 어미). 두껍고. ¶東陵ㅅ 길흘 슬허셔 라노니 平生애 灞水ㅅ 우희셔 노다라 비치 둗겁거든 해 가   머믈오고 바 자니 구룸  樓ㅣ훤더라(동릉 길을 슬피 바라보니 평생 파수 위에서 놀았구나. 봄빛이 진하거든 들에 가 탄 말을 머물게 하고 밤에 자니 구름 낀 누각이 훤하더라.)〈두시(초) 3:39ㄱ〉.
주106)
촉(蜀)ㅅ 랜 서(西)ㅅ녁 운무(雲霧)ㅣ둗겁도다 : 촉나라의 달에는 서녘의 구름과 안개가 두껍도다. 촉한이 위와의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망하게 될 어두운 운명을 말한다.
주107)
엇뎨 : 어찌. 어떻게.
주108)
시러곰 : 싣[得, 能]-+-어(연결 어미)+곰(보조사). 능히. ¶로 니윤 軒檻이 큰 믌겨레 머옛니 엇뎨 시러곰 기 드리디 아니리오(띠로 이은 헌함이 큰 물결에 메이어 있나니 어찌 능히 나직하게 들이지 아니할 것인가?)〈두시(초) 6:43ㄴ〉.
주109)
홍곡(鴻鵠) : 홍곡(鴻鵠)+(대격 조사). ‘홍(鴻)’은 큰 기러기를 뜻하고, ‘곡(鵠)’은 고니를 뜻한다. 둘 다 멀리 가는 새이다. 현실을 떠나 멀리 가고 싶은 시인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주110)
타 : 타[乘]-+-아(연결 어미). 타고. 중세어의 연결어미 ‘-아/아’가 현대어의 ‘-고’로 번역되는 대표적인 예이다. ‘타 가다’라는 말은 현대어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주111)
가려뇨 : 가[去]-+-리(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거(대상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ㄴ(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고(의문 어미). 가려는가? 갈 것인가?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는 미래 동명사 어미 ‘-ㅭ’ 뒤에 지정 형용사 어간 ‘이-’가 와서 이룬 구성이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로 재구조화된 것이다.
주112)
이적콕 : 이러[如此]+-(형용사 파생 접미사)-+-고(연결 어미)+ㄱ(보조사). 이렇게. 이렇게 하여. 이토록. ‘이적콕’은 원문의 ‘此(차)…將(장)’의 의미에 해당하는 번역이다. ‘此(차)’는 ‘이’에 해당하는 것이나, 주어진 대로의 ‘적콕’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다. 15세기 이후에 간행된 어떠한 자료에서도 이러한 어형은 찾을 수 없다. 초간본 『두시언해』 14권에서만 이 어형이 나타날 뿐이다. 중간 『두시언해』 14권의 해당 부분에 나타나는 어형은 ‘이적고’나 ‘이석고’와 같은 형식이다. 이 또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중간 『두시언해』 14권 간행자도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서는 ‘이적콕’에서 ‘적’의 ‘저’가 ‘러’의 오각(誤刻)인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제 ‘럭’을 반영하면 본래적인 어형은 ‘이럭콕’과 같은 것이 된다. ‘럭콕’은 ‘렇’의 받침 ‘ㅎ’과 ‘곡’의 두음 ‘ㄱ’의 합음 ‘코’가 오분석되어 선행 음절의 받침으로 ‘ㄱ’이 쓰이고 후행 음절의 두음으로 다시 ‘코’가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본상태로 환원하면, ‘이렇곡’이 된다. 이를 발음나는 대로 표기하면 ‘이러콕’이 된다. 다행히도, ‘이러콕’은 『번역소학』에 나타난다. ‘이토록’나 ‘이렇게 하여’와 같이 풀이할 수 있다. ¶어딘 이 며 어딘 이 고 이러콕 어딘 사 도의디 아니리 잇디 아니며(어진 일을 행하며 어진 일을 생각하고 이토록(이렇게 하여) 어진 사람 되지 아니할 사람이 있지 아니하며)〈번소 6:33ㄴ〉.
주113)
저호매 : 젛[懼]-+-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동명사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두려워함에. ¶부텻 威德 젼로 가 窮子 아비 저호미 니라(부처님의 위덕 때문에 물러갔다는 것은 가난한 아들이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법화 1:196ㄴ〉.
주114)
핍박(逼迫)얘라 : 핍박(逼迫)+-(동사 파생 접미사)-+-y(조음소)-+아(연결 어미)#이(지정 형용사)-+-라(종결 어미). 못 견디게 괴로워하노라. 못 견디어 하노라. 못 견디게 괴로워하는 것이다. ¶하히 길오 關塞ㅣ치우니 歲暮애 주우리며 어루미 逼迫얘라(하늘이 길고 요새가 추우니 세모에 굶주리며 (몸이) 어는 것이 못 견디게 괴롭구나.)〈두시(초) 9:17ㄱ〉. 몃   프리 이울어니오 오 나래 나좃 길히 窮迫얘라(몇 해를 봄풀이 이울었던 것인가? 오늘날 저녁 길이 몹시 가난하고 구차하구나.)〈두시(초) 5:43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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