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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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 사군과 동반하여 악양루에 오르다[陪裴使君登岳陽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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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사군과 동반하여 악양루에 오르다[陪裴使君登岳陽樓]


使君 주001)
사군(使君)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사절(使節)로 가거나 온 사람을 높이어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 때에 태수(太守)와 자사(刺史)를 가리키던 이름. 한 이후에는 주(州), 군(郡)의 장관을 높여 부르는 칭호로 쓰였다. ‘자사(刺史)’는 중국 한나라 때에, 군(郡)․국(國)을 감독하기 위하여 각 주에 둔 감찰관으로, 당나라․송나라를 거쳐 명나라 때 없어졌다.
주002)
배 사군(裴使君)
사군(使君)의 직책을 가졌던 배은(裵隱)을 가리킨다. 당시 배은은 이미 세상에 나와 악주(岳州)를 다스렸다.
岳陽樓 주003)
악양루(岳陽樓)
중국 호남성 동정호구 악주부(岳州府)에 있는 부성(府城)의 서쪽문 누각을 말한다. 지금은 악양시(岳陽市)에 있다. 누각은 동정호의 동쪽 연안에 위치하여 호수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215년 오나라의 노숙은 동정호의 파구(巴丘)에 주둔하며 수군을 훈련시키고, 파구성을 세우면서 열군루(閱軍樓)라는 망루를 지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하였다. 이것이 악양루의 시초이다. 716년 당나라 현종(玄宗) 때 악주(岳州)의 태수 장열(張說)이 이곳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고쳤다.〈위키백과 참조〉.
주004)
배배사군등악양루(陪裴使君登岳陽樓)
배(裵) 사군과 동반하여 악양루에 오르다. 배(裵) 사군을 모시고 악양루에 오르다. 이 시는 당나라 대종(代宗) 대력(大曆) 4년(769) 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배배사군 등악양루
(배(裵) 사군(使君)과 동반하여 악양루에 오르다)

湖闊兼雲霧 樓孤屬晩晴

미 주005)
미
[江]+이(주격 조사). 강이. 원문에는 ‘호(湖)’로 되어 있는데 이를 ‘’으로 번역한 것이 눈에 뜨인다. ‘강’에 대하여 ‘어위니’라고 하는 것보다는 ‘호수’에 대해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는 하다.
어위니 주006)
어위니
어위[闊(활: 트이다)]-+-니(연결 어미). 탁 트이니. 넓고 크니. 광활하니. ¶뉘 지븨 조 가 술 盞 어위키 리오 오직 그듸 醉야셔 기 어러온 客을 랑야셔 온 번 서르 디나오매 디 다디 아니다(누구의 집에 자주 가서 술잔을 넓고 크게 할 것인가? 오직 그대 취하여서 미치지 않았으나 미친 객을 생각하여서 백 번 서로 지나오는 것에 뜻이 다하지 않는다.)〈두시(초) 3:48ㄱ〉. 文章 曹植의 믓겨리 어윈 고 藥 머구믄 劉安 德業이 尊 도다(문장은 조식(曹植)의 물결이 트인 듯하고 약 먹는 것은 유안(劉安)의 덕으로 쌓은 업적이 우러러 보이는 듯하도다.)〈두시(초) 11:6ㄱ〜ㄴ〉.
雲霧ㅣ 조차 잇고 주007)
운무(雲霧)ㅣ 조차 잇고
운무(雲霧)+이(주격 조사)#좇[隨, 兼]-+-아(연결 어미)#잇[有]-+-고(연결 어미). 구름과 안개가 좇아 있고. 구름과 안개도 따라 있고.
樓ㅣ 외외니 주008)
외외니
외외[孤]-+-니(연결 어미). 외로우니. ‘외다’는 어간 ‘외-’ 뒤에 동명사 (혹은 관형사형) 어미 ‘-ㄴ, -ㅭ, -ㅁ’이나 기원적으로 이들 어미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어미(이들 앞에는 조음소 ‘으’나 ‘’가 오기 때문에 이들 어미를 ‘은, 을(), 음’과 같이 상정하기도 한다) 및 연결 어미 ‘-디’가 올 때에는 그 어간이 ‘외외-’와 같이 바뀐다. 어간을 ‘외-, 외외-’와 같이 두 가지 형식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외-’과 ‘외외-’를 음운론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죗 주009)
나죗
나조[夕, 晩]+(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ㅅ(관형격 조사). 저녁의. ‘나죄’를 저녁으로 풀이한 사전도 있으나, ‘나죄’는 ‘나조ㅎ’의 부사격(처격) 형식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개요매 주010)
개요매
개[晴]-+-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갬에. 개는 것에.
브텃도다 주011)
브텃도다
븥[附, 屬]-+-어(연결 어미)#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붙어 있도다. ‘븥-’이 ‘붙-’이 된 것은 순음 ‘ㅂ’ 아래에서 ‘ㅡ’가 ‘ㅜ’로 바뀐 순모음화이다.

【한자음】 호활겸운무 루고속만청
【언해역】 강이 넓고 크니 구름과 안개가 좇아 있고 누각이 외로우니 저녁의 〈날씨〉 갬이 붙어 있도다.

禮加徐孺子 詩接謝宣城【徐孺子 豫章 주012)
예장(豫章)
한(漢)나라 때,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에 설치되었던 군. 중심지는 남창(南昌)이다.
人이니 陳蕃 주013)
진번(陳蕃)
후한 여남(汝南) 평여(平輿) 사람. 자는 중거(仲擧)이다. 처음에 군(郡)에서 벼슬하다가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다. 태위(太尉) 이고(李固)의 천거로 의랑(議郞)이 되고, 예장태수(豫章太守)와 대홍려(大鴻臚), 광록훈(光祿勳) 등을 역임했다. 환제(桓帝) 때 거듭 승진하여 태위까지 올랐다. 대장군 양기(梁冀)의 청탁을 사절하고 왕래를 끊었다고 하며, 환관의 전횡을 규탄하였다고 한다. 영제(靈帝)가 즉위하자 태부(太傅)가 되고, 녹상서사(錄尙書事)로 고양후(高陽侯)에 봉해졌다. 외척인 대장군 두무(竇武)와 함께 환관 조절(趙節), 왕보(王甫) 등을 몰아내려다 발각되어 두무가 살해되었다. 부하 80여 명을 이끌고 궁 안으로 돌입하였지만 살해당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70여 살이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참조〉. 진번은 성품이 매우 강직하여 머리를 굽히는 일이 없었다. 환제(桓帝) 때에는 얼굴을 대들고 직간(直諫)을 하여 여러 차례 좌천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방을 쓸지 않으면서 ‘대장부 마땅히 천하를 맑게 해야지 어찌 방이나 쓸고 있으랴.’ 했고, 예장 태수로 있을 때 객(客)을 접하지 않고 한 탑(榻, 평상)을 만들어 높이 달아매어 두었다가, 높은 선비인 서치(徐穉, 자 유자孺子)가 오면 그 탑을 내려 앉게 했다가 그가 가고 나면 다시 달아매어 두고 그가 또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이에서 진번하탑(陳蕃下榻, 진번이 탑을 내림)이란 성어가 유래됨.〈한시어 사전 참조〉.
이 爲太守야 設榻待之니 ㅣ 自比다 謝玄暉ㅣ 爲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4:14ㄴ

宣城太守니 比裵使君也ㅣ라】

禮 주014)
예(禮)
예(禮)+(대격 조사). 예를. 예는 진번(陳蕃)이 태수(太守)가 되어 침상을 설치하여 그를 대접한 것을 말한다.
徐孺子게 주015)
서유자(徐孺子)게
서유자(徐孺子)+게(부사격 조사, 여격 조사). 서유자에게. 서유자는 후한의 서치(徐稚)를 말한다. 자가 유자(孺子)이다.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가난했지만 남주(南洲)의 높은 선비로 일컬어졌다. 곽임종(郭林宗)의 어머니가 죽자 조문하러 가서 생풀[생추(生蒭, 생건초)] 한 다발을 집 앞에 두고 갔다고 한다.
더으시니 주016)
더으시니
더으[加]-+-시(주체 높임의 선어말 어미)-+-(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더하시나니. 더하시니.
그를 주017)
그를
글[文, 詩]+을(대격 조사). 글을. 여기서 ‘글’을 ‘시’를 말한다.
謝宣城 주018)
사 선성(謝宣城)
남제(南齊)의 시인 사조(謝脁)를 말한다. 일찍이 선성(宣城,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선성) 태수가 되었다. 그래서 이름이 사 선성(謝宣城)이 된 것이다. 배 사군이 일찍이 태수가 된 것에 비유하고 있다.
接對호라 주019)
접대(接對)호라
접대(接對)+-(동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접대한다. 접대하는구나.
주020)
그를 사 선성(謝宣城)을 접대(接對)호라
글을 사 선성을 접대하는구나. ‘을/를’ 성분이 둘이 나타난다. 기저로, ‘사 선성(謝宣城)에게 글을 접대(接對)호라’ 또는 ‘글로 사 선성을 접대호라’와 같은 두 구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글을’이 ‘접대-’의 목적어라면 ‘사 선성(謝宣城)을’이 ‘을/를’ 주제가 되고, ‘사 선성을’이 ‘접대-’의 목적어라면 ‘글을’이 ‘을/를’ 주제로 분석된다.

【한자음】 예가서유자 시접사선성서유자(徐孺子)예장(豫章) 사람이니 진번(陳蕃)이 태수(太守)가 되어 침상을 설치하여 그를 대접하니 두보가 자신을 비교한 것이다. 사현휘(謝玄暉)선성(宣城) 태수(太守)가 되니 배(裵) 사군(使君)을 비교한 것이다.】
【언해역】 예(禮)를 서유자(徐孺子)에게 더하시니 글을 사 선성(謝宣城)을 접대하는구나.

雪岸叢梅發 春泥百草生

눈 잇 주021)
눈 잇
눈[雪]#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눈 있는. 눈이 남아 있는.
두들게 주022)
두들게
두듥[岸]+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보조사). 두둑에는. ¶그 히 平正야 노며 가오며 굳과 두들기 업고 琉璃로  오 寶樹ㅣ 벌오 黃金으로 노 라 긼 느리고(그 땅이 평정하여 높고 낮으며 구덩이와 두둑이 없고 유리로 땅을 만들고 보수가 벌여 있고, 황금으로 노(노끈)를 만들어 길가에 늘이고)〈법화 3:59ㄱ〉.
들굴 주023)
들굴
떨기[叢]. 무더기. ‘들굴’은 뗏목을 뜻하기도 한다. ¶藤蘿ㅅ 架子 고  엿 桂樹ㅅ 들구를 스치노라(등라의 가자를 생각하고 연기 끼어 있는 계수의 무더기를 스치노라.)〈두시(초) 19:9ㄱ〉. 奉命使者 八月ㅅ 들구를 虛히 조차 갯도다(봉명사자는 8월의 뗏목을 헛되이 좇아 가 있도다.)〈두시(초) 10:34ㄱ〉.
梅花ㅣ 주024)
매화(梅花)ㅣ
매화(梅花)+이(주격 조사). 매화가. 매화는 매화나무의 꽃을 말한다. 매화나무를 매실나무라고 하며, 열매를 매실(梅實)이라고 한다. 매화나무는 중국 원산이며 관상용 또는 과수로 심는다. 잎은 어긋나고 난형 또는 넓은 난형이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잎자루에 선(腺)이 있다. 나무껍질은 황백색, 녹백색(綠白色), 홍색 등이다. 꽃이 중부지방에서는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홍색이 도는 흰빛이며 향기가 강하다.〈두산백과사전 참조〉.
펫고 주025)
펫고
프[開]-+-어(연결 어미)#잇[有]-+-고(연결 어미). 피어 있고.
  주026)
 
봄[春]+ㅅ(관형격 조사)#[土]+(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봄의 흙에는. ¶爲土〈훈해 21ㄴ〉. 泥 즌기니 香泥 香로 즌 티 론 거시라(니는 진흙이니 향니는 향으로 진흙같이 만든 것이다.)〈석상 23:50ㄴ〉.
온 가짓 주027)
온 가짓
온[百]#가지[種類]+ㅅ(관형격 조사). 온 가지의. 온갖.
프리 주028)
프리
플[草]+이(주격 조사). 풀이.
낫도다 주029)
낫도다
나[生]-#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나 있도다.

【한자음】 설안총매발 춘니백초생
【언해역】 눈 있는 두둑에는 무더기 매화가 피어 있고 봄의 흙에는 온갖 풀이 나 있도다.

敢違漁父問 從此更南征屈原 주030)
굴원(屈原)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시인.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道, 좌의정)를 맡아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하였으나,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권력을 잃게 되었다. 굴원은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였으나, 연형파(連衡派)인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愛妾)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리석은 왕은 제나라와 외교를 끊고 진나라에 기만당하였으며, 출병(出兵)하여서도 고전할 따름이었다. 진나라와의 화평조건에 따라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마저 석방하였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왕이 진나라를 방문하는 것도 반대하였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 재상)이 되었다. 자란은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자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굴원은 〈어부사〉를 지은 후, 실제로 가슴에 돌을 품고 멱라강에 뛰어내려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뒷북치는블로그, 한시어사전 참조〉. #어부사(漁父詞) : 굴원이 양자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굴원이 권력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릴 적에, 한 어부가 그를 보고는 묻고 대답한 이야기다. 이 어부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굴원 이후의 사람이 듣고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굴원 스스로 정신세계 속의 이야기를 풀어 쓴 것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고대문학 중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한시어사전 참조〉.
이 放逐江南이어 漁父ㅣ 問之니 甫今南行면 漁父亦問也ㅣ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漁父의 무루믈 주031)
무루믈
묻[問]-+-우(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을(대격 조사). 물음을.
주032)
어부(漁父)의 무루믈
어부(漁父)+의(관형격 조사)#묻[問]-+-우(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을(대격 조사). 어부의 물음을. 초(楚) 나라 굴원이 지은 어부가(漁父歌)에서 어부가 굴원에게 던진 물음을 말함.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소?”라는 물음이다. 그 중에서도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라는 질문이 핵심이다.
구틔여 주033)
구틔여
구태여.
違避야리아 주034)
위피(違避)야리아
위피(違避)+-(동사 파생 접미사)-+-y(조음소)-+-아(연결 어미/확정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ㅭ(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가(의문 어미). 기피할 것인가? 여기서는 ‘야리아’의 ‘-야’를 본래 연결 어미였던 것으로 가정한다. 파생 접미사 ‘--’ 뒤에오는 연결 어미 ‘-아/어’의 이형태가 ‘-야’인 점을 중시한 것이다. 여기에 ‘야’가 어간으로 재구조화되는 과정이 개재된다. 재구조화 뒤에 ‘-아/어/야’가 일종의 선어말 어미와 같은 것으로 재구조화된 것으로 본다. 그 뒤에 동명사 어미 ‘-ㅭ’이 오고 다시 지정 형용사 ‘이다’의 어간이 온 것이다. ‘-아/어/야’를 ‘-거’의 이형태로 보기도 한다.
일로브터 주035)
일로브터
이[此]+로브터(부사격 조사, 출격 조사). 이로부터. 이제부터. ‘로브터’는 부사격 조사 ‘로’에 보조사 ‘브터’가 결합한 것이 출격(출발점)의 부사격 조사로 재구조화된 것이다. 지시 대명사 ‘이’에 조격 조사 ‘로’가 결합할 때에는 ‘ㄹ’이 덧나게 된다. ¶여슷 가짓 불휘 눈과 귀와 고콰 혀와 몸과 괘니 凡夫ㅣ 妄量로 자바 實 것만 너겨 種種 모딘 罪業이 일로브터 날 불휘라 니라(여섯 가지 뿌리는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니, 범부가 망량으로 잡아 실한 것으로만 여겨 갖가지 모진 죄업이 이로부터 생겨나므로 뿌리라고 하는 것이다.)〈석보 13:38ㄴ〉.
 南으로 가노라 주036)
가노라
가[去]-+-(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가노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감위어부문 종차갱남정【굴원(屈原)이 강남에 추방되었을 때 한 어부가 물음을 던졌는데, 두보가 이제 남행하면 어부가 또 물을 것이다.】
【언해역】 어부(漁父)의 물음을 구태여 기피할 것이겠느냐? 이제부터 또 남으로 가노라.
Ⓒ 역자 | 임홍빈 / 2013년 11월 30일

주석
주001)
사군(使君) :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사절(使節)로 가거나 온 사람을 높이어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 때에 태수(太守)와 자사(刺史)를 가리키던 이름. 한 이후에는 주(州), 군(郡)의 장관을 높여 부르는 칭호로 쓰였다. ‘자사(刺史)’는 중국 한나라 때에, 군(郡)․국(國)을 감독하기 위하여 각 주에 둔 감찰관으로, 당나라․송나라를 거쳐 명나라 때 없어졌다.
주002)
배 사군(裴使君) : 사군(使君)의 직책을 가졌던 배은(裵隱)을 가리킨다. 당시 배은은 이미 세상에 나와 악주(岳州)를 다스렸다.
주003)
악양루(岳陽樓) : 중국 호남성 동정호구 악주부(岳州府)에 있는 부성(府城)의 서쪽문 누각을 말한다. 지금은 악양시(岳陽市)에 있다. 누각은 동정호의 동쪽 연안에 위치하여 호수를 한눈에 전망할 수 있다. 215년 오나라의 노숙은 동정호의 파구(巴丘)에 주둔하며 수군을 훈련시키고, 파구성을 세우면서 열군루(閱軍樓)라는 망루를 지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하였다. 이것이 악양루의 시초이다. 716년 당나라 현종(玄宗) 때 악주(岳州)의 태수 장열(張說)이 이곳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고쳤다.〈위키백과 참조〉.
주004)
배배사군등악양루(陪裴使君登岳陽樓) : 배(裵) 사군과 동반하여 악양루에 오르다. 배(裵) 사군을 모시고 악양루에 오르다. 이 시는 당나라 대종(代宗) 대력(大曆) 4년(769) 봄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주005)
미 : [江]+이(주격 조사). 강이. 원문에는 ‘호(湖)’로 되어 있는데 이를 ‘’으로 번역한 것이 눈에 뜨인다. ‘강’에 대하여 ‘어위니’라고 하는 것보다는 ‘호수’에 대해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는 하다.
주006)
어위니 : 어위[闊(활: 트이다)]-+-니(연결 어미). 탁 트이니. 넓고 크니. 광활하니. ¶뉘 지븨 조 가 술 盞 어위키 리오 오직 그듸 醉야셔 기 어러온 客을 랑야셔 온 번 서르 디나오매 디 다디 아니다(누구의 집에 자주 가서 술잔을 넓고 크게 할 것인가? 오직 그대 취하여서 미치지 않았으나 미친 객을 생각하여서 백 번 서로 지나오는 것에 뜻이 다하지 않는다.)〈두시(초) 3:48ㄱ〉. 文章 曹植의 믓겨리 어윈 고 藥 머구믄 劉安 德業이 尊 도다(문장은 조식(曹植)의 물결이 트인 듯하고 약 먹는 것은 유안(劉安)의 덕으로 쌓은 업적이 우러러 보이는 듯하도다.)〈두시(초) 11:6ㄱ〜ㄴ〉.
주007)
운무(雲霧)ㅣ 조차 잇고 : 운무(雲霧)+이(주격 조사)#좇[隨, 兼]-+-아(연결 어미)#잇[有]-+-고(연결 어미). 구름과 안개가 좇아 있고. 구름과 안개도 따라 있고.
주008)
외외니 : 외외[孤]-+-니(연결 어미). 외로우니. ‘외다’는 어간 ‘외-’ 뒤에 동명사 (혹은 관형사형) 어미 ‘-ㄴ, -ㅭ, -ㅁ’이나 기원적으로 이들 어미와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는 어미(이들 앞에는 조음소 ‘으’나 ‘’가 오기 때문에 이들 어미를 ‘은, 을(), 음’과 같이 상정하기도 한다) 및 연결 어미 ‘-디’가 올 때에는 그 어간이 ‘외외-’와 같이 바뀐다. 어간을 ‘외-, 외외-’와 같이 두 가지 형식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외-’과 ‘외외-’를 음운론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주009)
나죗 : 나조[夕, 晩]+(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ㅅ(관형격 조사). 저녁의. ‘나죄’를 저녁으로 풀이한 사전도 있으나, ‘나죄’는 ‘나조ㅎ’의 부사격(처격) 형식으로 보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주010)
개요매 : 개[晴]-+-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애(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 갬에. 개는 것에.
주011)
브텃도다 : 븥[附, 屬]-+-어(연결 어미)#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붙어 있도다. ‘븥-’이 ‘붙-’이 된 것은 순음 ‘ㅂ’ 아래에서 ‘ㅡ’가 ‘ㅜ’로 바뀐 순모음화이다.
주012)
예장(豫章) : 한(漢)나라 때,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에 설치되었던 군. 중심지는 남창(南昌)이다.
주013)
진번(陳蕃) : 후한 여남(汝南) 평여(平輿) 사람. 자는 중거(仲擧)이다. 처음에 군(郡)에서 벼슬하다가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다. 태위(太尉) 이고(李固)의 천거로 의랑(議郞)이 되고, 예장태수(豫章太守)와 대홍려(大鴻臚), 광록훈(光祿勳) 등을 역임했다. 환제(桓帝) 때 거듭 승진하여 태위까지 올랐다. 대장군 양기(梁冀)의 청탁을 사절하고 왕래를 끊었다고 하며, 환관의 전횡을 규탄하였다고 한다. 영제(靈帝)가 즉위하자 태부(太傅)가 되고, 녹상서사(錄尙書事)로 고양후(高陽侯)에 봉해졌다. 외척인 대장군 두무(竇武)와 함께 환관 조절(趙節), 왕보(王甫) 등을 몰아내려다 발각되어 두무가 살해되었다. 부하 80여 명을 이끌고 궁 안으로 돌입하였지만 살해당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70여 살이었다. 〈중국역대인명사전 참조〉. 진번은 성품이 매우 강직하여 머리를 굽히는 일이 없었다. 환제(桓帝) 때에는 얼굴을 대들고 직간(直諫)을 하여 여러 차례 좌천을 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 방을 쓸지 않으면서 ‘대장부 마땅히 천하를 맑게 해야지 어찌 방이나 쓸고 있으랴.’ 했고, 예장 태수로 있을 때 객(客)을 접하지 않고 한 탑(榻, 평상)을 만들어 높이 달아매어 두었다가, 높은 선비인 서치(徐穉, 자 유자孺子)가 오면 그 탑을 내려 앉게 했다가 그가 가고 나면 다시 달아매어 두고 그가 또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이에서 진번하탑(陳蕃下榻, 진번이 탑을 내림)이란 성어가 유래됨.〈한시어 사전 참조〉.
주014)
예(禮) : 예(禮)+(대격 조사). 예를. 예는 진번(陳蕃)이 태수(太守)가 되어 침상을 설치하여 그를 대접한 것을 말한다.
주015)
서유자(徐孺子)게 : 서유자(徐孺子)+게(부사격 조사, 여격 조사). 서유자에게. 서유자는 후한의 서치(徐稚)를 말한다. 자가 유자(孺子)이다.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매우 가난했지만 남주(南洲)의 높은 선비로 일컬어졌다. 곽임종(郭林宗)의 어머니가 죽자 조문하러 가서 생풀[생추(生蒭, 생건초)] 한 다발을 집 앞에 두고 갔다고 한다.
주016)
더으시니 : 더으[加]-+-시(주체 높임의 선어말 어미)-+-(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니(연결 어미). 더하시나니. 더하시니.
주017)
그를 : 글[文, 詩]+을(대격 조사). 글을. 여기서 ‘글’을 ‘시’를 말한다.
주018)
사 선성(謝宣城) : 남제(南齊)의 시인 사조(謝脁)를 말한다. 일찍이 선성(宣城,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선성) 태수가 되었다. 그래서 이름이 사 선성(謝宣城)이 된 것이다. 배 사군이 일찍이 태수가 된 것에 비유하고 있다.
주019)
접대(接對)호라 : 접대(接對)+-(동사 파생 접미사)-+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접대한다. 접대하는구나.
주020)
그를 사 선성(謝宣城)을 접대(接對)호라 : 글을 사 선성을 접대하는구나. ‘을/를’ 성분이 둘이 나타난다. 기저로, ‘사 선성(謝宣城)에게 글을 접대(接對)호라’ 또는 ‘글로 사 선성을 접대호라’와 같은 두 구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글을’이 ‘접대-’의 목적어라면 ‘사 선성(謝宣城)을’이 ‘을/를’ 주제가 되고, ‘사 선성을’이 ‘접대-’의 목적어라면 ‘글을’이 ‘을/를’ 주제로 분석된다.
주021)
눈 잇 : 눈[雪]#잇[有]-+-(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눈 있는. 눈이 남아 있는.
주022)
두들게 : 두듥[岸]+에(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보조사). 두둑에는. ¶그 히 平正야 노며 가오며 굳과 두들기 업고 琉璃로  오 寶樹ㅣ 벌오 黃金으로 노 라 긼 느리고(그 땅이 평정하여 높고 낮으며 구덩이와 두둑이 없고 유리로 땅을 만들고 보수가 벌여 있고, 황금으로 노(노끈)를 만들어 길가에 늘이고)〈법화 3:59ㄱ〉.
주023)
들굴 : 떨기[叢]. 무더기. ‘들굴’은 뗏목을 뜻하기도 한다. ¶藤蘿ㅅ 架子 고  엿 桂樹ㅅ 들구를 스치노라(등라의 가자를 생각하고 연기 끼어 있는 계수의 무더기를 스치노라.)〈두시(초) 19:9ㄱ〉. 奉命使者 八月ㅅ 들구를 虛히 조차 갯도다(봉명사자는 8월의 뗏목을 헛되이 좇아 가 있도다.)〈두시(초) 10:34ㄱ〉.
주024)
매화(梅花)ㅣ : 매화(梅花)+이(주격 조사). 매화가. 매화는 매화나무의 꽃을 말한다. 매화나무를 매실나무라고 하며, 열매를 매실(梅實)이라고 한다. 매화나무는 중국 원산이며 관상용 또는 과수로 심는다. 잎은 어긋나고 난형 또는 넓은 난형이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고 잎자루에 선(腺)이 있다. 나무껍질은 황백색, 녹백색(綠白色), 홍색 등이다. 꽃이 중부지방에서는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고 연한 홍색이 도는 흰빛이며 향기가 강하다.〈두산백과사전 참조〉.
주025)
펫고 : 프[開]-+-어(연결 어미)#잇[有]-+-고(연결 어미). 피어 있고.
주026)
  : 봄[春]+ㅅ(관형격 조사)#[土]+(부사격 조사, 처격 조사)-+-ㄴ(보조사). 봄의 흙에는. ¶爲土〈훈해 21ㄴ〉. 泥 즌기니 香泥 香로 즌 티 론 거시라(니는 진흙이니 향니는 향으로 진흙같이 만든 것이다.)〈석상 23:50ㄴ〉.
주027)
온 가짓 : 온[百]#가지[種類]+ㅅ(관형격 조사). 온 가지의. 온갖.
주028)
프리 : 플[草]+이(주격 조사). 풀이.
주029)
낫도다 : 나[生]-#잇[有]-+-도(감탄 선어말 어미)-+-다(종결 어미). 나 있도다.
주030)
굴원(屈原) :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이자 시인.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道, 좌의정)를 맡아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하였으나, 정적들의 모함을 받아, 권력을 잃게 되었다. 굴원은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였으나, 연형파(連衡派)인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愛妾)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리석은 왕은 제나라와 외교를 끊고 진나라에 기만당하였으며, 출병(出兵)하여서도 고전할 따름이었다. 진나라와의 화평조건에 따라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마저 석방하였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왕이 진나라를 방문하는 것도 반대하였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 재상)이 되었다. 자란은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자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굴원은 〈어부사〉를 지은 후, 실제로 가슴에 돌을 품고 멱라강에 뛰어내려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뒷북치는블로그, 한시어사전 참조〉. #어부사(漁父詞) : 굴원이 양자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굴원이 권력에서 쫓겨나 강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릴 적에, 한 어부가 그를 보고는 묻고 대답한 이야기다. 이 어부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을 굴원 이후의 사람이 듣고 지은 것이라고도 하고, 굴원 스스로 정신세계 속의 이야기를 풀어 쓴 것이라고도 하는데 중국 고대문학 중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한시어사전 참조〉.
주031)
무루믈 : 묻[問]-+-우(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을(대격 조사). 물음을.
주032)
어부(漁父)의 무루믈 : 어부(漁父)+의(관형격 조사)#묻[問]-+-우(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을(대격 조사). 어부의 물음을. 초(楚) 나라 굴원이 지은 어부가(漁父歌)에서 어부가 굴원에게 던진 물음을 말함.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왔소?”라는 물음이다. 그 중에서도 “무슨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라는 질문이 핵심이다.
주033)
구틔여 : 구태여.
주034)
위피(違避)야리아 : 위피(違避)+-(동사 파생 접미사)-+-y(조음소)-+-아(연결 어미/확정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ㅭ(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가(의문 어미). 기피할 것인가? 여기서는 ‘야리아’의 ‘-야’를 본래 연결 어미였던 것으로 가정한다. 파생 접미사 ‘--’ 뒤에오는 연결 어미 ‘-아/어’의 이형태가 ‘-야’인 점을 중시한 것이다. 여기에 ‘야’가 어간으로 재구조화되는 과정이 개재된다. 재구조화 뒤에 ‘-아/어/야’가 일종의 선어말 어미와 같은 것으로 재구조화된 것으로 본다. 그 뒤에 동명사 어미 ‘-ㅭ’이 오고 다시 지정 형용사 ‘이다’의 어간이 온 것이다. ‘-아/어/야’를 ‘-거’의 이형태로 보기도 한다.
주035)
일로브터 : 이[此]+로브터(부사격 조사, 출격 조사). 이로부터. 이제부터. ‘로브터’는 부사격 조사 ‘로’에 보조사 ‘브터’가 결합한 것이 출격(출발점)의 부사격 조사로 재구조화된 것이다. 지시 대명사 ‘이’에 조격 조사 ‘로’가 결합할 때에는 ‘ㄹ’이 덧나게 된다. ¶여슷 가짓 불휘 눈과 귀와 고콰 혀와 몸과 괘니 凡夫ㅣ 妄量로 자바 實 것만 너겨 種種 모딘 罪業이 일로브터 날 불휘라 니라(여섯 가지 뿌리는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이니, 범부가 망량으로 잡아 실한 것으로만 여겨 갖가지 모진 죄업이 이로부터 생겨나므로 뿌리라고 하는 것이다.)〈석보 13:38ㄴ〉.
주036)
가노라 : 가[去]-+-(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라(종결 어미).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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