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도(道)는 마음으로부터 깨치는 것이거니 어찌하여 좌(坐)에 있을 것인가? 경(經)에 이르시되, ‘만약 여래(如來)가 좌(坐)하며, 와(臥)한다고 이르면, 이는 사도(邪道)를 행함이다.’라고 하시니, 어찌해서인가? 붙어 옴이 없으며, 또 감이 없어서 생겨남이 없으며, 멸(滅)함이 없는 것이 이것이 여래(如來)의 청정(淸淨)한 선(禪)이고, 제법(諸法)이 공적(空寂)한 것이 이것이 여래(如來)의 청정(淸淨)한 좌(坐)이니, 마침내 증득(證得)이 없거니 어찌하여 하물며 좌(坐)이겠는가?” 설간(薛簡)이 말했다. “제자(弟子)가 서울에 돌아가면 주상(主上)이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하건대 조사께서 자비(慈悲)로 심요(心要)를 가르쳐 보이십시오. 양궁(兩宮)에 여쭈며, 또 경성(京城)의 도(道)를 배울 사람에게도 이르면 비유하건대 한 등불이 백천 등(燈)을 붙이어 어두운 것이 다 밝아서, 밝으며 밝음이 다함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