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이 삼십육(三十六) 대법(對法)을 만약 〈잘〉 알아서 쓰면, 곧 도(道)가 일체의 경법(經法 : 경에서 가르친 법)을 꿰뚫어 출입(出入)에 곧 양변(兩邊)을 여의며, 자성(自性) 동용(動用)에 사람과 말하며, 밖으로 상(相)에서 상(相)을 여의며, 안으로 공(空)에서 공(空)을 여읠 것이다. 만약 온전히 상(相)에 집착(執着)하면, 곧 사견(邪見)을 기르고, 만약 온전히 공(空)을 잡으면, 곧 무명(無明)을 기를 것이다. 공(空) 을 잡는 사람은 경(經)을 비방(誹謗)하여 바로 말하되, ‘문자(文字)를 쓰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니, 이미 ‘문자(文字)를 쓰지 말라.’ 하고, 사람도 또한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할 것이니, 이 말이 곧 문자상(文字相)이다. 또 이르되, ‘직도(直道)는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고 할 것이니, 이 ‘세우지 아니하다[不立].’라고 하는 두 자(字)가 또 이 문자(文字)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고, 곧 그를 비방하여, ‘문자에 집착한다.’고 말할 것이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알 것이다. 자기가 미혹(迷惑)함은 오히려 옳거니와 또 불경(佛經)을 비방할 것이니, 경(經) 비방함을 구하지 말라. 〈그〉 죄장(罪障)이 수(數)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