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해 칠월 이십오일에 〈진신을〉 감(龕)에서 내어 제자(弟子) 방변(方辯)이 향니(香泥)로 발랐다. 문인(門人)들은 ‘머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라고 하신 예언[記]을 생각하여 먼저 철엽(鐵葉)과 칠포(漆布)로 조사의 목을 굳게 호지(護持)하여 탑(塔)에 모셨다. 〈그랬더니〉 문득 탑(塔) 안에서 흰 광명(光明)이 나타나 바로 하늘을 대질렀다가 사흘만에야 비로소 흩어졌다. 소주(韶州)의 자사(刺史)가 주문(奏聞)하고, 칙명(勅命)을 받들어서 비(碑)를 세워 조사(祖師)의 도행(道行)을 올렸다. ‘조사의 세수(世數)는 일흔여섯이고, 연세 스물넷에 옷을 전해[傳衣] 받으셨다. 서른아홉에 머리를 깎으시고[祝髮], 법(法)을 이르시어 중생(衆生)을 이익되게 하심은 서른일곱 해였다. 종지(宗旨)를 얻어 법(法)을 이은 이는 마흔세 사람이고, 도(道)를 깨쳐 범부(凡夫)의 자리에서 건너뛴 이는 그 수(數)를 알지 못할 것이다. 달마(達磨) 대사께서 전(傳)하신 신의(信衣)와【서역(西域) 굴순(屈眴)의 베이다.】 중종(中宗)이 사(賜)하신 마납가사(磨衲袈裟)와 보발(寶鉢)과 또 방변(方辯)이 흙으로 만들어 세운 조사의 진상(眞相)과 또 도구(道具)들을 탑을 주관[主塔]하는 시자(侍者)로 〈하여금〉 맡게 하여, 보림도량(寶林道場)을 영원히 유진(留鎭)하고, 단경(壇經)을 유전(流傳)하여 종지(宗旨)를 밝히고, 삼보(三寶)를 흥성(興盛)하여 모든 중생[群生]을 널리 이롭게 하였다.
육조선사법보단경 하(六祖禪師法寶壇經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