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태조께서 개국하실 처음에 나라의 병사(兵師)가 남해(南海)를 평정시킬 때, 유씨(劉氏)의 잔병(殘兵)이 작경(作梗 : 항거)하는 중에 조사(祖師)의 탑묘(塔廟)가 마음대로 하여 〈불타〉 없어졌다. (그러나) 진신(眞身)은 탑을 지킨 중의 보호(保護)가 되어 하나도 손상 당한 데가 없었다. 이윽고 고치게 하는 법(法)이 생겨셔(있어서) 공(功)을 못 마치었는데, 마침/ 송의 태조가 즉위하여 선문(禪門)에 뜻을 두[留心]어 조서(詔書)해서 이 탑 칠층(七層)을 새로 하셨다. 시호(諡號)를 ‘대감진공선사(大鑑眞空禪師)’라 더하고, 〈탑을〉 태평흥국탑(太平興國塔)이라 하셨다./ 송나라 인종(仁宗) 천성(天聖) 십 년에 안여(安輿)를 갖추어 조사(祖師)의 진신과 또 의발을 맞아(모셔서) 대전(大殿, 大內)에 들이어 공양하시고,/ 시호를 ‘대감진공보각선사(大鑑眞空普覺禪師)’라 더하셨다./ 송(宋) 신종(神宗)이 시호를 ‘대감진공보각원명선사(大鑑眞空普覺圓明禪師)’라 더하셨다. 본주(本州)의 범찰(梵刹)을 부흥(復興)시킨 사적(事蹟)은 원헌공(元獻公) 안수(晏殊)가 지은 비문의 기록[碑記]에 갖추어 실려 있다. 육조선사(六朝禪師)께서 당(唐) 개원(開元) 원년 계축세(癸丑歲 : AD.713)에 시적(示寂)하시니,/ 대원(大元) 지원(至元) 이십칠 년 경인세(庚寅歲 : AD.1290)에 이르러 이미 오백칠십팔 년이도다.
성화 주036) 성화(成化): 명(明)나라 헌종(憲宗)의 연호.
(成化 : 명나라 헌종의 연호) 십오년(十五年) 기해(己亥 : 1479) 주037) 성화(成化) 십오년(十五年) 기해(己亥): 서기 1479년(조선 성종 10년).
오월일(五月日) 백운산(白雲山) 병풍암(屛風庵) 개판(開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