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께서 이제, ‘범부(凡夫)와 외도(外道)는 사상(邪常)을 잡고(그릇된 상에 집착하고), 모든 이승인(二乘人)은 상(常)에서 〈도리어〉 무상(無常)을 헤아려 모두 팔도(八倒) 이룸을 위하므로’,【팔도는 중생의 사도(四倒)와 이승(二乘)의 사도이다. 사도는 신(身)과 수(受)와 심(心)과 법(法) 등의 사념처(四念處)이다. 범부는 마음이 한결같음[常]이 없으나 한결같은 것[常]이라고 생각하며, 감각[受]이 즐거움[樂]이 없는데도 즐거움[樂]이라고 생각하며, 법(法)이 내[我]가 없는데도 나[我]를 생각하며, 몸이 깨끗하[淨]지 못한데도 깨끗하[淨]다고 생각한다. 이는 범부의 사도(四倒)이다. 이승(二乘)은 마음이 무상(無常)한 것을 보며, 감각[受]이 고(苦)인 것을 보며, 법(法)이 내[我]가 없는 것을 보며, 몸이 깨끗하[淨]지 못한 것을 보니, 이는 이승(二乘)의 사도(四倒)이다. 범부의 사도와 이승의 사도와 모으면 팔도이다. 도(倒)는 거꾸로 되는 것이다. 부처는 이 팔도를 뒤집으시므로 증(證)하신 열반이 진실한 상(常)이며, 진실한 낙(樂)이며, 진실한 아(我)이며, 진실한 정(淨)이라고 이르셨다.】 그러므로 ‘열반요의교(涅槃了義敎)’ 중에서 저 편견(偏見)을 무너뜨리시어 진상(眞常)과 진락(眞樂)과 진아(眞我)와 진정(眞淨)을 밝히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이제 말씀만을 의지하고, 의(義)를 배반(背叛)하여 단멸(斷滅) 무상(無常)과 또 굳게 정한 사상(死常)으로 부처님의 원묘(圓妙)하신 맨 나중의 미묘(微妙)한 말씀을 잘못 아니, 비록 천 편(徧)을 본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오?” 행창(行昌)이 문득 크게 깨달아 게송(偈頌)으로 말씀드렸다. “무상(無常)한 마음 지킴으로 인하여 부처님의 유상(有常)한 성(性)을 말씀하시니, 〈이것이〉 방편(方便)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봄 못[春池]에서 조약돌을 줍는 것과 같습니다.(조약돌을 주워 들고 그것을 보석이라고 여김과 같습니다.) 내가 이제 공(功)을 펴지(들이지) 아니하고 불성(佛性)이 앞에 나타났으니, 스승께서 서로 전하여 주심이 아니며, 나도 또한 얻는 바가 없습니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 사무쳤구나. 이름을 ‘지철(志徹)이라 함이 마땅하니라.” 지철이 예사(禮謝)하고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