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一切)에 진(眞)이 없어 진(眞)을 보지 못할 것이니, 만약 진(眞)을 볼 것인즉 이러한 보는 것이 다 진(眞)이 아니니라. 만약 능(能)히 스스로 진(眞)이 있으면 가(假)를 여의여 곧 마음이 진(眞)할 것이다. 자심(自心)이 가(假)를 여의지 아니하고서는 (眞)이 없으니, 어느 곳이 진(眞)이리오? 유정(有情)은 곧 동(動)을 알고 무정(無情)은 부동(不動)에 즉(卽)하니, 만약 부동행(不動行)을 닦으면 무정(無情)과 부동(不動)이 같을 것이다. 만약 진실(眞實) 부동(不動)을 구(求)할 것인즉, 동(動) 위에 부동(不動)이 있을 것이다. 부동(不動 : 움직이지 않음)이 이것이 부동(不動)이니 무정(無情)하면 불종(佛種 : 부처의 씨앗)이 없느니라. 능(能)히 잘 상(相)을 분별(分別)하면 제일의(第一義)가 부동(不動)할 것이다. 오직 이와 같은 〈바른〉 견(見)을 지으면 곧 이것이 진여용(眞如用)이다. 모든 도(道) 배우는 사람에게 알리느니, 힘써 반드시 용의(用意)하고 대승문(大乘門)에 도리어 생사지(生死智 : 나고 죽는 지혜)를 잡지 말라. 만약 언하(言下)에 서로 응(應)하면 곧 모두 불의(佛義 : 부처님의 뜻)를 의논(議論)할 것이니, 만약 실로 서로 응하지[相應] 못할 것이면 합장(合掌)하여 〈이 법문에〉 환희(歡喜)하게 할 것이다. 이 종(宗)은 본래(本來) 다툼이 없으니, 다투면 곧 도의(道意)를 잃을 것이다. 거스름을 잡아 법문(法門)을 다투면 자성(自性)이 생사(生死)에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