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래는 바로 경문(經文)을 새기되, 모아서 세 분(分)으로 나누노니, 이르되 서(序)와 정(正)과 유통(流通)이다. 서(序) 중에 증신(證信)이 곧 이 발기(發起)이니,【증신(證信)은 증명하여 믿게 하는 것이고, 발기(發起)는 발명(發明)하여 일으키는 것이다.】 이르되, 부처께서 대광명장에 드시어 일체 부처와 중생의 청정한 각지(覺地)에 함께 계시어 많은 정토(淨土)를 나타내시어 보살 주반(主伴)이 다 삼매(三昧)에 드시어 한 부처의 경지에 함께 계시어 인(因)과 과(果)가 다름 없으며, 범(凡)과 성(聖)이 근원이 한 가지인 것을 표(表)하시어 이 경전의 뜻이 이 같은 것을 나타내어 펼치신다. 그러나 증신서(證信序)의 모든 경전이 다 같으니, 이는 아난(阿難)이 청(請)하여 여쭈거늘 부처께서 두게 하시니,【부처께서 열반(涅槃)하실 때에 아난이 네 가지 일을 여쭈거늘 부처께서 일일이 대답하시되, “나 멸도(滅度)한 후에 너희가 반드시 네 가지 염처주(念處住)에 의지하며 계(戒)를 스승 삼으며 악성(惡性) 비구(比丘)를 말없이 계속 따르며, 일체 경전의 처음에 다 이르되, 이 같음을 내가 들으니, 일시에 부처께서 아무 곳에 계시어 어떠어떠한 무리 약간의 사람들이라 하라.” 하셨다.】 또 의심을 끊으며 쟁론(諍論)을 그만 두게 하며, 사(邪)로부터(-와) 다르기를 위하신 까닭이다.【의심을 끊음은 결집(結集)할 때에 아난(阿難)이 자리에 올라 법장(法藏)을 펼치려 하니 홀연히 상호(相好)가 부처 같거늘 대중이 세 가지 의심을 일으키니, 하나는 부처께서 다시 일어나 설법하시는가 하는 의심이고, 둘은 타방불이 오셨는가 하는 의심이고, 셋은 아난이 몸을 옮겨 부처가 되었는가 하는 의심이니, ‘여시아문(如是我聞)’ 등의 말을 금방 이르거늘(이르자마자) 세 가지 의심이 다 그치니라. 쟁론(諍論)을 그침은 만약 부처를 추종하여 듣자옴으로 믿지 않고 내가 지었노라 하고 이르면 곧 쟁론(諍論)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邪)와 다름은 외도경(外道經)의 처음에 다 아우(阿憂)가 길(吉)하다 함을 세우니, 아(阿)는 무(無)라 일컬음이고, 우(憂)는 유(有)라 일컬음이다.】 그러나 비록 여섯 성취(成就)가 갖추어졌으나【여섯 연(緣)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교(敎)가 일어나지 못하나니, 모름지기 여섯이 갖추어져야 비로소 교(敎)가 일어나므로 이르되 ‘성취’라 하니라.】 이제 문(文)이 편안(便安)함을 좇아 많음과 적음을 고르게 하여 모두 나누어 셋을 만드노니, 하나는 신(信)과 문(聞)과 시(時)와 주(主)이고, 둘은 이르신 곳이 진(眞)에 의지하심이고, 셋은 체(體)가 한 가지인 법중(法衆)이다. 이제 처음 신(信)과 문(聞)과 시(時)와 주(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