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문의 오래된 별장을 지나가며[過宋員外之問舊莊]
更識將軍樹 悲風日暮多
【漢ㅅ 馮異 주014) 풍이(馮異) 동한의 장군. ?~34년. 『좌씨춘추(左氏春秋)』, 『손자병법(孫子兵法)』 등에 정통하였고 유수(劉秀)를 따라 하북(河北)을 안정시키기도 하였다. 유수가 동한을 건국하였을 때 큰 공을 세웠으나, 그 후 공신들이 공과를 따질 때 마이는 오히려 큰 나무 아래로 피하였었기 때문에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는 별칭이 있다.
軍中이 呼爲大樹將軍이라 此 比之問의 弟ㅣ 執金吾之悌니 時예 之悌ㅣ 亦死故로 有悲風語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용어 realname="" type="">將軍樹용어> 주015) 장군수(將軍樹) 마이가 공과를 따지는 공신들의 무리를 피해 서 있던 나무.
아다니 주016) 슬픈 미
나조 주017) 나조 저녁에. 나조ㅎ+. ¶아 虛空애 노니고 나조 므레 가 자니(旦遊虛空고 暮歸水宿니)〈능엄 9:33ㄱ~34ㄱ〉. 뭀가마괴 절로 아 나조 잇고(群烏自朝夕)〈두시 24:21ㄱ〉.
하도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경식장군수 비풍일모다【한(漢)의 풍이(馮異)를 군중(軍中)이 대수장군(大樹將軍)이라 부른다. 이것은 비지문(比之問)의 동생이 <용어 realname="" type="">금오(金吾)용어>의 공경함을 잡아 그때에 공경함이 역시 죽었기 때문에 슬픈 풍어(風語)가 있다고 말한다.】
【언해역】 또 장군수(將軍樹)를 아니, 슬픈 바람이 저녁에 많도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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