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하)

  •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하)
  • 회고(懷古)
  • 옛일을 추억하며 2수[憶昔二首]
메뉴닫기 메뉴열기

옛일을 추억하며 2수[憶昔二首]


憶昔二首 주001)
억석이수(憶昔二首)
이 시는 764년(광덕 2)에 두보가 엄무(嚴武)의 막부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시에서는 두보가 지난 일을 추억하고 있는데, 제1수는 숙종이 환관을 신임하여 나라를 파탄의 지경으로 이끈 것을 말하고, 제2수는 현종의 개원 시대를 기억하고 대종이 국가를 진흥시킬 것을 바라는 내용이다.

억석 이수
(옛일을 추억하며 2수)

〈첫째 수〉

憶昔先皇巡朔方 千乘萬騎入咸陽【此 肅宗 주002)
숙종(肅宗)
앞의 주 참조.
이 卽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0ㄱ

位靈武샤 還京師 주003)
경사(京師)
장안(長安). 즉 서안(西安).
也ㅣ라】

랑호니 주004)
랑호니
생각하니. [憶]#-+오+니. 중세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주005)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先皇이 주006)
선황(先皇)이
선황(先皇)이. 즉 현종(玄宗)이.
北方애 巡幸야 주007)
순행(巡幸)야
순행(巡幸)하여.
千乘萬騎로 주008)
천승만기(千乘萬騎)로
천승만기(千乘萬騎)로.
咸陽 주009)
함양(咸陽)애
함양에.
드러오시니라 주010)
드러오시니라
들어오셨다. 들-+어#오-+시+니+라.

【한자음】 억석선황순삭방 천승만기입함양【이것은 숙종(肅宗)이 영무(靈武)에서 즉위하여 경사(京師)로 돌아온 것이다.】
【언해역】 생각하니 옛 선황(先皇)이 북방(北方)에 순행(巡幸)하여, 천승만기(千乘萬騎)로 함양(咸陽)에 들어오셨네!

陰山驕子汗血馬 長驅東胡胡走藏胡人 주011)
호인(胡人)
오랑캐. 여기서는 회흘(回紇)을 가리킨다.
이 自謂天之驕子ㅣ라니 此 指回紇다 東胡 주012)
동호(東胡)
동쪽 오랑캐. 여기서는 안경서(安慶緖)를 가리킨다.
 指安慶緖니 言回紇이 助唐야 討慶緖也ㅣ라】

陰山엣 驕子 주013)
교자(驕子)
음산의 교만한 아들. 회흘(回紇)이 스스로를 하늘의 교만한 아들이라 불렀다 한다.
피 나  주014)
피 나 
피땀을 흘릴 정도로 매우 빨리 달리는 말. 한혈마(汗血馬). 앞에서는 ‘피 내 ᄆᆞᆯ’이라 하였다.
타 東胡 기리 주015)
기리
길게. 멀리. 길이. 길[長] +이. ‘기리’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모니 주016)
모니
모니. 몰아내니. 몰-+니. ¶큰 鐵城에 火蛇와 火狗와 虎와 狼과 師子와 牛頭獄卒와 馬頭羅刹왜 소내 鎗 자바 모라 城門애 드료 보아(見大鐵城에 火蛇火狗虎狼師子와 牛頭獄卒와 馬頭羅刹이 手執鎗矟야 驅入城門야)〈능엄 8:105ㄴ〉. 어느 술위 모라  자최 同홀 고 알리오(豈知驅車複同軌)〈두시 15:45ㄴ〉.
주017)
오랑캐. 여기서는 동호(東胡)를 가리킨다. ‘되’에 대해서는 ‘지덕 2년 ~ 지난 일을 서글퍼하며(至德二載예 ~ 有悲往事노라)’의 ‘西郊애 되 正히 어즈럽더라(西郊胡正煩)’ 구절 참조.
라가 주018)
라가
달려가. 도망가. -+아#가-+아. ¶百姓히 림 몯야 헤 조쳐 더니(國中男女亡走失魄)〈석상 24:21ㄴ〉. 노 우희 라  터리  셔 도라셔더니라(走索背秋毫)〈두시 11:39ㄱ〉.
수므니라 주019)
수므니라
숨으니라. 숨-+으니+라. ¶져재  저기어든 대 두드리여 숨니라〈석상 11:21ㄱ〉. 수므락 나락  바횟  냇도다(隱見巖姿露)〈두시 12:18ㄴ〉.

【한자음】 음산교자한혈마 장구동호호주장【호인(胡人)이 스스로 하늘의 교만한 아들이라 하니, 이것은 회흘(回紇)을 가리킨다. 동호(東胡)안경서(安慶緖)를 가리키니, 회흘(回紇)이 당을 도와 안경서를 토벌하였다는 말이다.】
【언해역】 음산(陰山)의 교자(驕子)가 피땀 나는 말을 타고, 동호(東胡)를 길이 모니 오랑캐 도망가 숨네!

鄴城反覆不足怪 關中小兒壞紀綱 張后不樂上爲忙鄴城 주020)
업성(鄴城)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 성 한단 시 린장 현과 허난 성 안양 시의 경계에 위치하였던 옛날 도시. 후조(後趙)·염위(冉魏)·전연(前燕)·동위(東魏)·북제(北齊)의 수도였으며, 사사명이 여기를 근거로 하였다.
反覆 慶緖 주021)
경서(慶緖)
안경서. 즉 안녹산의 아들로 아버지를 죽이고 잠시나마 반란군의 총수가 되었다.
ㅣ 敗走얫다가 復據鄴城也ㅣ라 小兒 指李輔國 주022)
이보국(李輔國)
당나라 숙종 때의 환관. 704-762년. 양국충 등의 알력 속에서도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라 張后 주023)
장후(張后)
숙종의 비로 이보국(李輔國)과 결탁하여 정권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肅宗 주024)
숙종(肅宗)
앞의 주 참조.
ㅅ 皇后ㅣ니 干預政事야 專權用事ㅣ어든 帝畏之니라】

鄴城두위힐후믄 주025)
두위힐후믄
뒤집음은. 반복함은. 두위-+힐후-+우+ㅁ+은. ‘두위힐우다’는 ‘반복하다’와 ‘뒤집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三世와 四方괘 드위힐훠 十二론 젼로 그 예 든 거시 다 그 變을 좃니(三世四方이 宛轉十二故로 涉乎其間者ㅣ 悉從其變니)〈능엄 7:76ㄱ〉. 鄴城의 두위힐후믄 足히 妖怪ㅣ롭디 아니니 關中엣 죠고(鄴城反覆不足怪,關中小兒壞紀綱 張後不樂上爲忙)〈두시 3:60ㄱ〉.
足히 妖怪ㅣ롭디 주026)
요괴(妖怪)ㅣ롭디
요괴롭지. 요괴+롭+디.
아니니 關中 주027)
관중(關中)
관중 분지(關中盆地), 또는 관중 평원(關中平原). 북쪽의 소관(蕭關), 동쪽의 함곡관(函谷關), 남쪽의 무관(武關), 서쪽의 대산관(大散關) 사이를 가리키는 지명.
죠고맛 주028)
죠고맛
조그마한. 조그만. 작은. 죠고마[小]+ㅅ. ‘죠고맛’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두시 3:5ㄱ〉 구절 참조.
아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0ㄴ

綱
주029)
기강(紀綱)
기강(紀綱)을. 즉 나라의 기강을.
허러 리며 주030)
허러리며
헐어버리며. 헐-+어#리-+며. ‘헐-’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人民의 헐므믈 문 디 아니도다(不似問瘡痍)’ 구절 참조.
張后ㅣ 즐기디 아니커든 님그미 爲야 주031)
위(爲)야
위하여. 즉 장후(張后)를 위하여.
驚忙더시니라 주032)
경망(驚忙)더시니라
놀라 겨를이 없으시니라. 즉 숙종(肅宗)이 장후(張后)를 두려워하여 매사에 어쩔 줄을 모른다는 말이다.

【한자음】 업성반복부족괴 관중소아괴기강 장후불악상위망【업성반복(鄴城反覆)은 안경서가 패주하였다가 다시 업성(鄴城)을 근거로 하였다는 것이다. 소아(小兒)는 이보국(李輔國)을 가리킨다. 장후(張后)숙종(肅宗)의 황후니 정사(政事)에 일일이 간여하여 전권(專權)을 휘둘렀는데, 숙종(肅宗)이 이를 두려워하였다.】
【언해역】 업성(鄴城)의 뒤집음은 족히 요괴스럽지 않으니, 관중(關中)의 조그마한 아이 기강(紀綱)을 헐어버리며, 장후(張后)가 즐기지 아니하니 임금이 위하여 놀라 겨를이 없으시네!

至今今上猶撥亂 勞心焦思補四方【今上 代宗 주033)
대종(代宗)
당의 제8대 황제. 726-779년. 본명은 이예(李豫). 당 숙종 이형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추존된 장경황후 홍씨이다. 즉위한 이듬해에 7년 동안 당나라를 어지럽힌 안·사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곳곳에서 반란은 끊이지 않고 발발했다. 또한 토번(吐番)에게 비단을 공납하던 것을 중지해, 토번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장안을 공격해 수도 장안이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수모를 당하였다. 더군다나 그는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 사찰에 많은 토지와 면세 혜택을 주기도 하여 당의 재정이 한층 더 악화되었다.
이라】

이제 니르러 주034)
이제 니르러
지금까지. 니르-+어.
이젯 님그미 주035)
이젯 님그미
현재의 임금이. 즉 대종(代宗)을 가리킨다.
오히려 亂 혀 려 주036)
난(亂) 혀 려
난을 빼어 버리어. 즉 난을 종식시켰다는 말이다.
 며 주037)
 며
마음을 쓰며. 즉 난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리저리 노심초사 마음을 썼다는 말이다.
호 글탈하 주038)
글탈하
끓고 다리어. 즉 난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마음을 마치 물을 끓이고 달이듯이 썼다는 말이다. 긇-+닳-+아. ‘탈’은 ‘긇-’의 ‘ㅎ’과 ‘닳-’의 ‘ㄷ’이 결합되어 생긴 음운현상을 반영한 표기이다. ¶시름야 글탈호미 煩이오〈능엄 4:16ㄱ〉. 百姓의  杼柚이 뷔여 글탈놋다(氓心杼軸焦)〈두시 20:46ㄱ-ㄴ〉.
四方 주039)
사방(四方)
사방을. 즉 나라 전체와 행정의 여러 곳을.
기우시니라 주040)
기우시니라
기우시니라. 기우-+시++니+라.

【한자음】 지금금상유발란 노심초사보사방【금상(今上)은 대종(代宗)이다.】
【언해역】 지금까지 현재의 임금이 오히려 난(亂)을 빼어 버려, 마음을 쓰며 생각함을 끓고 다려 사방(四方)을 기우시네!

我昔近侍叨奉引 出兵整肅不可當【此 言ㅣ 授拾遺掌供奉야 爲近侍而見收復京師也ㅣ라】

주041)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갓가이 주042)
갓가이
가까이. 갓갑[近]-+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뫼와 주043)
뫼와
뫼시어. 즉 숙종을 뫼셨다는 말이다.
奉引 더러이오니 주044)
봉인(奉引) 더러이오니
봉인(奉引)을 더럽혔으니. 봉인은 손윗사람을 받들어 인도하는 것을 말하므로, 임금을 잘못 보필하였다는 말이다.
兵卒 내요미 整肅야 주045)
병졸(兵卒) 내요미 정숙(整肅)야
병졸 냄이 정숙하여. 즉 대종(代宗)이 안·사의 난을 종식시켰으므로 저간의 사정은 어떻든 군사를 잘 운용하였다는 말이 된다.
可히 當티 몯리러라 주046)
가(可)히 당(當)티 몯리러라
가히 대종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즉 누가 황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종(代宗)에게 대적할 만큼 잘 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한자음】 아석근시도봉인 출병정숙불가당【이는 두보가 좌습유의 벼슬을 받아 공봉(供奉)을 관장하여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며 경사(京師)를 수복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이다.】
【언해역】 내 옛날 가까이 뫼시어 봉인(奉引)을 더럽히니, 병졸 냄이 정숙(整肅)하여 가히 당치 못하겠도다!

爲留猛士守未央 致使岐雍防西羌西羌 주047)
서강(西羌)
서쪽의 강족. 즉 토번(土蕃)을 말한다.
吐蕃 주048)
토번(吐蕃)
티베트. 대종 당시에 그때까지 비단을 바치던 토번(吐番) 왕조에게 비단 공납을 중지해, 당시 토번의 임금이던 치쏭데찬(赤松德贊)의 분노를 사서, 763년에 토번의 장수 다짜뤼공(達扎樂宮)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장안을 11일간 점령하였다. 당시 곽자의는 대종이 머무르던 미앙궁(未央宮)을 수비하기 위하여 서쪽 군사를 모두 미앙궁 근처에 두었으므로 토번이 쉽게 장안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구절은 토번의 군사가 장안을 점령하기 직전에 먼저 기주(岐州), 옹주(雍州)를 함락시켰다는 말이다.
이라 時예 留子儀 주049)
자의(子儀)
곽자의(郭子儀). 대종(代宗)의 선왕인 숙종(肅宗)이 임종에 임했을 때 따로 그를 불러 “하동의 일은 경에게 맡기노라.”라고 했을 정도로 신임했던 장군으로, 대종(代宗) 때에도 뛰어난 장군으로서 활약하였으나, 이 당시에는 대종의 명령으로 토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서쪽에 군사를 두지 못하고 대종이 머무르던 미앙궁(未央宮)을 방어하기 위하여 주력 군사를 미앙궁 근처에 두고 있었다.
守京師而邊無戍兵야 使吐蕃入寇로 直至岐雍 주050)
기옹(岐雍)
기주(岐州)와 옹주(雍州). 기주는 현재 산시성(陝西省) 봉상현(鳳翔縣)의 남쪽이며, 옹주(雍州)는 현재 산시성(陝西省)의 경계이므로 토번이 장안을 공격하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지역들이다.
니라】

勇猛 將士 주051)
용맹(勇猛) 장사(將士)
용맹한 장사를. 즉 곽자의(郭子儀)를.
머믈워 주052)
머믈워
머무르게 하여. 머믈-+우+어. ‘우’는 사동접미사이다.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이다.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魚復浦애 간 머믈오(暫留魚復浦)〈두시 21:19ㄴ〉. 머믈우- : 뉘 能히 네 얼구 머믈우리오(뉘 能히 네 얼구)〈능엄 6:74ㄱ〉. 가 야미 우루믈 머믈우디 아니니(玄蟬無停號)〈두시 10:29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1ㄱ

央宮
주053)
미앙궁(未央宮)
미앙궁을. 당시 대종(代宗)은 미앙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守直요 주054)
수직(守直)요
지킴을. 수직(守直)-+오+ㅁ+.
爲야 岐州 雍州로 여 西羌 마고 주055)
마고
막음을. 막[防]-+오+ㅁ+.
닐위니라 주056)
닐위니라
이르게 하였느니라. 닐-++우+이+니+라. ‘’는 사동접미사이다. ‘니-’는 ‘닐-’의 사동사이며, ‘’는 사동접미사이다. ‘왇’은 강세접미사이다. ¶ 念 믌겨리 닐면 여러 妄이 토아 짓니(一念波興면 諸妄이 競作니)〈금삼 4:23ㄴ〉. 옮겨 라  셔메 돈 六天 닐위니(轉致斛六千)〈두시 1:18ㄱ〉.

【한자음】 위류맹사수미앙 치사기옹방서강서강(西羌)토번(吐蕃)이다. 그때에 곽자의(郭子儀)가 서울을 수성하기 위하여 머물러 있어 변방에는 병사가 없었다. 토번(吐蕃)의 군사들이 곧바로 들어와서 기주(岐州), 옹주(雍州)에 이르게 하였다.】
【언해역】 용맹(勇猛)한 장사(將士)를 머무르게 하여 미앙궁(未央宮)을 지키기 위하여, 기주(岐州), 옹주(雍州)로 하여금 토번(吐蕃)의 군사가 막음에 이르게 하였네!

犬戎直來坐御床 百官跣足 주057)
선족(跣足)
맨발.
隨天王【此 言吐蕃 주058)
토번(吐蕃)
앞의 주를 참조할 것.
陷京師 주059)
함경사(陷京師)
토번이 경사(京師)를 점령한 것을 말한다.
ㅣ어 百官 주060)
백관(百官)
문무백관.
이 隨代宗 주061)
대종(代宗)
앞의 주를 참조.
幸陝이니라】

犬戎 주062)
견융(犬戎)
토번(土蕃).
바 주063)
바
바로.
御床애 주064)
어상(御床)애
어상(御床)에.
안니 百官이 신 바사 주065)
바사
벗어. 밧-+아. ¶옷 바사도 이시며 나못닙도 머그며(裸形曝露 以求神仙 或食樹葉或吸風服氣)〈석상 24:26ㄱ〉. 큰 구스리 허믈와 무든 거슬 바사 린 고(大珠脫玷翳)〈두시 9:18ㄴ〉.
天王 주066)
천왕(天王)
천왕(天王)을. 곧 대종(代宗)을.
졷와 주067)
졷와
쫓아. 좇-+ᆸ+아. ¶憍陳如 다 사도 졷 苦行더라(憍陳如五人住處 尼連河側)〈석상 3:39ㄱ〉. 輦에 同야 님그믈 졷와 님 겨틔 뫼더니라(同輦隨君侍君側)〈두시 11:15ㄴ-16ㄱ〉.
가니라

【한자음】 견융직래좌어상 백관선족수천왕【이것은 토번(吐蕃)이 경사(京師)를 함락시키거늘, 백관(百官)이 대종(代宗)을 따라 행차하였다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견융(犬戎)이 바로 와 어상(御床)에 앉으니, 백관(百官)이 신 벗어 천왕(天王)을 쫓아 가니라!

願見北地傅介子 老儒不用尙書郞【漢ㅅ 北地人傅介子 주068)
부개자(傅介子)
전한 북쪽 사람으로 누란의 왕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
ㅣ 使樓蘭 주069)
누란(樓蘭)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있는 고대 도시의 국가. 서역 남로와 이어져 공작하 하류의 로프누르 호수 서안에 위치하며 비단길 교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공작하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약 1,600년 전 멸망하였으며 지금은 옛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 기원전77년에는 한나라의 영향 아래에 샨샨(鄯善)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기도 하였지만 그 후에도 누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야 斬其王首而還니라 此 ㅣ 言願得如介子者야 以討平亂賊이면 於予心에 足矣니 豈復更望朝廷所用也ㅣ리오】

北地옛 傅介子 보고져 주070)
보고져
보고자. 보-+고#지-+어.
願노니 늘근 션 주071)
늘근 션
늙은 선비는. 즉 두보 자신을 말한다.
尙書郞 주072)
상서랑(尙書郞)
상서랑(尙書郞)을.
고져 주073)
하지. -+디. ‘’의 ‘’가 탈락하고 ‘ㅎ’과 ‘디’의 ‘ㄷ’이 결합하면서 ‘ㅌ’이 되었다.
아니노라 주074)
아니노라
아니하노라. 아니+-++오+라.

【한자음】 원견북지부개자 노유불용상서랑한(漢)의 북쪽 땅 사람의 부개자(傅介子)가 누란(樓蘭)으로 하여금 그 임금을 베고 돌아오게 하였다. 이것은 두보개자(介子)와 같은 사람을 얻기를 원한다는 말이니, 난적(亂賊)을 토벌하면 내 마음에 족하니, 어찌 다시 조정에서 쓰임을 바라겠는가하고, 말하는 것이다.】
【언해역】 북지(北地)의 부개자(傅介子)를 보고자 원(願)하니, 늙은 선비는 상서랑(尙書郞)을 하고자 하지 아니하네!

〈둘째 수〉

憶昔開元全盛日 小邑猶藏萬家室【此 言開元 주075)
개원(開元)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 당 왕조의 역사에서 개원 연간은 국가가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로 평가받는다. 역사에서는 당 왕조의 전성기였던 개원 시대를 두고 개원성세(開元盛世), 또는 개원의 치라고도 부른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1ㄴ

時예 戶口ㅣ 充實也ㅣ라】

랑호니 주076)
랑호니
생각하니. 생각해 보니.
녜 開元ㅅ 오로 주077)
오로
오직. 올-+오. ¶ 光明이 두루 초 妙體 오로 나토시니라(一光이 周亘은 全彰妙體也ㅣ시니라)〈법화 1:60ㄴ〉. 風化 베푸믈 어늬 오로 通達리오(宣風豈專達)〈두시 1:37ㄱ-ㄴ〉.
盛 나래 져근 주078)
져근
작은. 참고. 쟉다, 젹다, 죡다, 횩다, 휵다. ¶이 사미 欲心이 젹고 足 고 아라(是人이 少欲知足야)〈석상 21:62ㄱ〉. 朝와 野왜 겨르왼 나리 젹도다(朝野少暇日)〈두시 1:1ㄴ〉. 젹다(작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或現大身滿虛空中 而復現小)〈석상 6:34ㄱ〉.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縣小更無丁)〈두시 4:5ㄱ〉.
올도 주079)
올도
고을에도. 올ㅎ++도. ㅎ말음체언이다.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 이 經을 너비 펴며(村城國邑 空閑林中 若有流布此經)〈석상 9:40ㄱ〉. 中歲에 녯 올셔 貢擧요라(中歲貢舊鄉)〈두시 2:40ㄱ〉.
오히려 萬家室이 藏얫더니라 주080)
만가실(萬家室)이 장(藏)얫더니라
만가(萬家)를 이루고 있었느니라. 즉 아무리 작은 고을이라도 만호(萬戶)를 이룰 만큼 인구가 많았다는 말이다.

【한자음】 억석개원전성일 소읍유장만가실【이것은 개원(開元) 시기의 번영하던 시기에 호구(戶口)가 충실(充實)하였음을 말한다.】
【언해역】 생각해 보니 옛 개원(開元)의 오직 성(盛)한 날엔, 작은 고을도 오히려 만가(萬家)를 이루고 있었네!

稻米流脂粟米白 公私倉廩俱豐實

니 주081)
니
입쌀은. 니+ᄡᆞᆯ+.
기르미 주082)
기르미
기름이. 기름+이.
흐르 고 조 주083)
조
좁쌀은. 조+ᄡᆞᆯ+.
니 주084)
니
희니. -+니. 15세기에 ‘희다’를 표현하는 단어는 ‘-’와 ‘희-’가 있다. ¶- ; 가마괴 本來 거므며 鵠이 本來 며(烏ㅣ 從來예 黑며 鵠이 從來예 白며)〈능엄 10:9ㄱ〉. 돐 門읜 서리와 이슬왜 오(石門霜露白)〈두시 6:17ㄴ〉. 희- ; 제 므레 미론 흰 깁과  깁과 잇다(水光絹 白絲絹)〈번노 하:26ㄱ〉. 비치 누르며 흰 繡衣 니븐 郞이(繡衣黃白郞)〈두시 22:30ㄴ〉.
그위와 주085)
그위와
관청과. 그위+와. 15세기 국어의 ‘그위’는 ‘관청’과 ‘관리’의 뜻이 있었다. 『두시언해』에서는 항상 ‘관청’의 뜻으로 쓰인다. ¶(관청) ; 太子와 야 그위예 決라 가려 더니(即共太子欲往訟了)〈석상 6:24ㄴ〉. 一物이라도 그위예셔 다 아ᅀᅩ 슬노라(一物官盡取)〈두시 18:18ㄱ〉. (관리) ; 百官 온 그위니 한 臣下 니니라〈석상 3:7ㄱ〉.
아 주086)
아
개인의. 아+ㅅ. ¶訐露 眼耳通이라  아 일 發호 닐오 訐露ㅣ라〈능엄 9:103ㄴ〉. 營營히 아 口實 노라(營營爲私實)〈두시 2:59ㄴ〉.
倉廩이 주087)
창름(倉廩)이
창고가.
豐實더니라 주088)
풍실(豐實)더니라
풍부하느니라. 풍실(豐實)-+더+니+라.

【한자음】 도미류지속미백 공사창름구풍실
【언해역】 입쌀은 기름이 흐르는 듯하고 좁쌀은 희니, 관청과 개인 창고가 다 가득 찼네!

九州道路無豺虎 遠行不勞吉日出豺虎 주089)
시호(豺虎)
승냥이와 호랑이. 즉 도적들을 말한다.
 喩盜賊니 言道路ㅣ 無阻難야 不墿日而出也ㅣ라】

아홉 옰 길헤 주090)
아홉 옰 길헤
아홉 고을 길에. 즉 사방팔방에 있는 고을로 가는 길에.
豺虎ㅣ 업스니 머리 주091)
머리
멀리. 멀[遠]+이. ‘머리’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녀매 주092)
녀매
감에. 녀-+우+ㅁ+애. ¶太子ㅣ 아 예 八百里 녀샤 雪山 苦行林에 가시니라(乘虗而行至雪山苦行林中 詰旦已行八百里)〈석상 3:30ㄴ〉. 돌 우희 믈 잇 로 일 녀고(早行石上水)〈두시 1:12ㄴ〉.
됴 나래 나 주093)
나
나감을. 출발함을.
잇비 주094)
잇비
피곤해. 가쁘게. 잇-+브+이. ‘이’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自然히 本來ㅅ 眞 得야 功夫 잇비 아니리라(自得本眞야 不勞功用리라)〈능엄 2:43ㄱ〉. 版築노라 사 功夫 잇비 놋다(版築勞人功)〈두시 1:24ㄴ-25ㄱ〉.
아니더니라 주095)
아니더니라
아니하니라. 아니+-+더+니+라.

【한자음】 구주도로무시호 원행불로길일출【시호(豺虎)는 도적을 비유하니, 도로가 어려움이 없어 날을 택하여 나가지 않았다는 말이다.】
【언해역】 아홉 고을의 길에 시호(豺虎)가 없으니, 멀리 감에 좋은 날에 나감을 수고스럽게 하지 않지 않았네!

齊紈魯縞車班班 男耕女桑不相失

齊國 주096)
제국(齊國)
제나라. 여기서는 당나라 때 제나라가 있던 제나라가 영토를 차지하던 지역 즉 제남(齊南)을 중심으로 한 산둥성 일대를 가리킨다.
ㅅ 깁과 魯國 주097)
노국(魯國)
노나라. 여기서는 당나라 때 노나라가 있던 제나라가 영토를 차지하던 곡부(曲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가리킨다.
기블 주098)
기블
깁을. 비단을.
술위로 주099)
술위로
수레로.
班班히 싣고 남지 받 갈며 겨지븐 누에 츄믈 주100)
츄믈
기름을. 치-+우+ㅁ+을. 15세기 국어의 ‘치다’는 ‘기르다’의 뜻이다. ¶ 늘근 어미 치다가 乃終내 몯며 그 오녀 고 고티면(養人老母而不能卒 許人以諾而不能信)〈삼강(런던) 효:5ㄱ-ㄴ〉. 우 비두리와 삿기 치 졔비예 프른 보미 기펫도다(鳴鳩乳燕靑春深)〈두시 6:13ㄴ-14ㄱ〉.
서르 주101)
서르
서로.
失業디 주102)
실업(失業)디
일거리를 잃지.
아니터니라 주103)
아니터니라
아니하니라. 아니++더+니+라.

【한자음】 제환로호거반반 남경녀상불상실
【언해역】 제나라의 비단과 노나라의 비단을 수레로 끊임없이 실어 나르고, 남자는 밭 갈며 여자는 누에 기름을 서로 실업(失業)하지 아니하였네!

宮中聖人奏雲門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2ㄱ

天下朋友皆膠漆<용어 realname="" type="">雲門 주104)
운문(雲門)
황제(黃帝) 시대의 무도(舞蹈).
黃帝 주105)
황제(黃帝)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 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중국을 다스린 오제(五帝)의 첫 번째 왕이다. ‘황제(黃帝)’라는 명칭은 재위 기간 중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사실상 신화로 여겨졌던 삼황과 달리 황제를 필두로 한 오제는 실존한 제왕들로서 추앙되었으며 황제는 중국 문명의 시조로 여겨졌다. 도교의 시조로 추앙되기도 한다.
ㅅ 樂名이라 此 言以禮樂로 爲治而朋友ㅣ 以信義로 相交而無睽乖也ㅣ라】

宮中에셔 聖人 雲門樂 奏시고 주106)
주(奏)시고
연주하시고.
天下앳 벋 다 膠漆티 주107)
교칠(膠漆)티
교칠(膠漆)같이.
사괴더니라 주108)
사괴더니라
사귀었느니라. 사괴-+더+니+라. ¶안팟긧 四大 녜 서르 사괴야 感니(內外四大常相交感니)〈능엄 6:26ㄱ〉.  번 벋 사괴요미 어려우믈 議論고(一論朋友難)〈두시 16:18ㄱ〉.

【한자음】 궁중성인주운문 천하붕우개교칠【<용어 realname="" type="">운문(雲門)황제(黃帝)의 음악 이름이다. 이것은 예악(禮樂)으로 다스리고 벗은 신의(信義)로 서로 사귐이 어그러져 있지 않음을 말한다.】
【언해역】 궁중(宮中)에선 성인(聖人)이 <용어 realname="" type="">운문악(雲門樂)을 연주하시고, 천하의 벗들은 다 교칠(膠漆)같이 사귀네!

百餘年間未災變 叔孫禮樂蕭何律叔孫通 주109)
숙손통(叔孫通)
진나라에서 전한 초의 학자. 생몰연대 미상.
이 制禮고 蕭何 주110)
소하(蕭何)
진나라에서 전한 초기에 걸쳐 활약한 정치가. ?-기원전193년. 유방의 참모로서 그가 천하를 얻도록 도왔으며, 전한의 초대 상국을 지냈다. 한신, 장량과 함께 한의 삼걸(三傑)로 꼽힌다.
ㅣ 定律令니 此 言開元之時예 禮樂律令이 修明야 爲太平之盛也ㅣ라】

百餘 年 주메 주111)
주메
즈음에. 사이에. 주+에. ‘주’은 ‘즈’과 같다. ‘즈’이 ‘주’으로 사용된 것은 『두시언해』가 유일하다. ¶干戈ㅅ 주메 疎拙 모 養고(養拙幹戈際)〈두시 7:14ㄴ〉.
災變티 아니야 주112)
재변(災變)티 아니야
재앙이 일어나지 않아.
叔孫 禮樂이오 蕭何 律令이러니라

【한자음】 백여년간미재변 숙손례악소하률【한(漢)의 숙손통(叔孫通)이 예를 제정하고, 소하(蕭何)가 율령(律令)을 제정하니, 이것은 <용어 realname="">개원(開元)의 시대에 예악과 율령이 수명(修名)하여 태평한 성세(盛世)가 되었음을 말한다.】
【언해역】 백여 년 즈음에 재앙이 일어나지 않아, 숙손(叔孫)의 예악(禮樂)이고 소하(蕭何)의 율령(律令)이네!

豈聞一絹直萬錢 有田種穀今流血【此 言開元之盛에 未聞絹一匹에 直萬錢이러니 今則年荒야 物價ㅣ 湧貴而前日種穀之田이 皆爲戰場也ㅣ라】

주113)
깁.
 피레 주114)
 피레
한 필에. 필(匹)+에.
비디 주115)
비디
값이. 빋+이. 15세기 국어에서 ‘빋’의 연어로는 ‘빗 내다, 빗 갚다, 빗 받다, 빋 하 다, 빋디다’와 현대국어의 ‘비싸다’의 의미인 ‘빋다’가 있다. ¶일훔난 됴 오시 비디 千萬이 며 빋 업슨 오로 [하 貴야 비디 업스니라] 부텨와 괏 그 布施며(名衣上服 價直千萬 或無價衣 施佛及僧)〈석상 13:22ㄴ〉. 비디 온 硨磲ㅣ라와 重리라(價重百車渠)〈두시 9:19ㄴ〉.
萬錢 엇뎨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2ㄴ

드르리오
주116)
엇뎨 드르리오
어찌 듣겠는가. 들-+으리+오. 세월이 급변하여 번성하던 개원 시대와 비교해 보면 지금 비싼 비단 값을 어떻게 듣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시러곰 甲을 지여 農器 라(焉得鑄甲作農器)〈두시 4:29ㄴ〉.
穀食 시므던 주117)
시므던
심던. 시므-+더+ㄴ. ¶諸佛 한 德 미틀 시므샤(諸佛所애 植衆德本샤)〈법화 1:37ㄴ〉. 번득번드기 매 뉘 시므니오(歷歷竟誰種)〈두시 12:8ㄴ〉.
바 이제 피 흐르놋다 주118)
흐르놋다
흐르는구나. 흐르네. 흐르[流]-++옷+다.

【한자음】 기문일견직만전 유전종곡금류혈【이것은 개원 시대의 번성함에 비단 한 필에 만 전(錢)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지금 흉년이 들어 물가가 치솟아 곡식을 기르던 밭이 다 전장(戰場)이 되었음을 말한다.】
【언해역】 깁 4한 필에 값이 만 전(萬錢)을 어찌 듣겠는가? 곡식 심던 밭에 지금은 피 흐르는구나!

洛陽宮殿燒焚盡 宗廟新除狐兔穴【此 言安史之亂 주119)
안사의 난(安史之亂)
안·사의 난은 755년 12월 16일부터 763년 2월 17일에 걸쳐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녹산(安祿山)과 그 부하인 사사명(史思明) 및 그 자녀들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 반란이다. 안사의 난이란 안녹산과 사사명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안녹산의 난」 또는 「천보의 난」[天寶之亂]이라고도 한다. 안녹산은 나라 이름을 연(燕)이라고 하여 황제를 칭하였으며, 이 난은 9년 동안 지속하였다. 이 난은 두보의 나이 44세 때부터 시작하여 52세 때까지 계속되었으므로 두보의 생활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애 宮殿이 燒焚고 宗廟ㅣ 爲虎兎之窟이어 今收復而除修也ㅣ라】

洛陽 주120)
낙양(洛陽)
동주, 후한, 육조 시대의 수도. 현재 허난 성에 있다.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은 낙수(洛水)의 북쪽에 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해는 강의 남쪽 부분에서 뜨기 때문에 햇빛은 항상 강의 북쪽 부분이 받게 된다. 당나라 때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동도(東都)라 불렸는데 장안 다음의 제2대 도시였다. 두보의 출생지인 공현(鞏縣)은 낙양에 가깝다.
ㅅ 宮殿이 블 브터 주121)
브터
붙어. 븥-+어. 15세기 국어의 ‘븥다’는 ‘①붙다, ②의지하다, ③정박하다, ④말미암다, ⑤불이 붙다, ⑥편지를 부치다, ⑦정박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붙다) ; 附는 브틀 씨라〈훈언 :12ㄴ〉. 龍을 더위자며 鳳을 브터 그 勢를 當디 몯리로소니(攀龍附鳳勢莫當)〈두시 4:17ㄴ〉. (의지하다) ; 悲觀 慈觀로 萬物 應시논 德을 브터 니건댄 觀世音이시다 고(依悲觀慈觀으로 應物之德샤 言之故로 號 觀世音이시다시고)〈석상 21:19ㄱ〉. 믈 을 브터 예셔 자니(依沙宿舸船)〈두시 2:3ㄴ〉. (정박하다) ; 雲安縣에 와 브터쇼니(棲泊雲安縣)〈두시 6:51ㄱ〉. (말미암다) ; 오직 妄量앳 미 믄득 니러나 브트면 識境이 난겻 뮈여 나거든(只緣妄心이 瞥起면 識境이 競動거든)〈월석 1:석상 서:3ㄱ〉. (불이 붙다) ; 제 能히 거우루에셔 나 게 브투(自能於鏡에셔 然于艾호)〈능엄 3:75ㄴ〉. (편지를 부치다) : 올 使者ㅣ 잇거든 곧 音信 브터(有使即寄書)〈두시 1:40ㄴ-41ㄱ〉. (정박하다) ; 雲安縣에 와 브터쇼니(棲泊雲安縣)〈두시 6:51ㄱ〉.
다 업더니 宗廟 주122)
종묘(宗廟)
중국 역대 왕조의 제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
여 주123)
여
여우. ¶野干 여 니(野干은 類弧니)〈법화 2:111ㄴ〉. 뎌 여와 일희 厄 免리라(彼免狐貉厄)〈두시 17:13ㄴ〉.
톳 주124)
톳
토끼의. 톳기+. ¶이 보미 本來 거부븨 터리와 톳 와 니(是見이 元同龜毛兎角니)〈능엄 3:95ㄱ〉. 이젠 그믌 소갯 톳기 도다(今如罝中兔)〈두시 21:38ㄱ〉.
굼긔 주125)
굼긔
구멍에. 구무+의. ‘구무’는 주격조사를 만나면 ‘굼기’, 처격조사를 만나면 ‘굼긔’의 형태를 취한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나모’가 있다. ¶구무 : 곳구무 데군케 드위고〈석상 3:25ㄴ〉. 서근 에 가야미 구무 들워 드렛고(朽骨穴螻蟻). 굼긔 : 살 든 굼긔셔 미 나아 우므리 외니〈석상 3:14ㄴ〉. 괴외호 이 버믜 굼긔 니도다(靜應連虎穴)〈두시 7:30ㄴ-31ㄱ〉.
새려 주126)
새려
새로. ‘새’와 ‘려’로 분석이 되지만 ‘려’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다. ‘새려’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이는 단어이다. ¶두 아리 새려 사호다가 죽도다(二男新戰死)〈두시 4:8ㄱ〉. 驄馬ㅣ 새려 구블 팻도소니(驄馬新鑿蹄)〈두시 22:30ㄴ〉.
짓놋다 주127)
짓놋다
짓는구나. 짓-++옷+다.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월석 4:18ㄴ〉. 陸機 스믈헤 文賦 지니 너 가야 나히 져고 能히 그를 짓놋다(陸機二十作賦 汝更小年能綴文)〈두시 8:39ㄱ〉.

【한자음】 낙양궁전소분진 종묘신제호토혈【이것은 <용어 realname="" type="">안사의 난(安史之亂)에 궁전이 불에 타고 종묘(宗廟)가 여우와 토끼의 굴이 되었는데 이제 수복하여 수리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낙양(洛陽)의 궁전(宮殿)이 불 붙어 다 없어졌는데, 종묘(宗廟)를 여우와 토끼의 구멍에 새로 짓는구나!

傷心不忍問耆舊 復恐初從亂離說

 슬허셔 주128)
슬허셔
슬퍼하여서. 슳[傷]-+어+셔.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늘근 사 더브러 무루 마 주129)
마
차마. ¶懺  씨니 내 罪 마 리쇼셔 논 디오〈석상 6:9ㄱ〉. 아 마 서르 리리아(宗族忍相遺)〈두시 8:60ㄴ〉.
디 몯노니  亂離ㅅ 처믈 브터 주130)
처믈 브터
처음부터. 처+을 븥-+어. ‘븥-’은 원래 실사인 동사이지만 ‘- 브터’는 ‘-부터, -로부터’의 뜻을 가진 조사로 문법화하는 단계이다.
니가 전노라 주131)
니가 전노라
이를까 두려워 하노라. 니-++가 젛-++오+라. ¶내 凡愚에 여러 불어 니디 아니호 뎨 分別야 자바 나 사가 전노라(我ㅣ 於凡愚에 不開演 恐彼分別야 執爲我노라)〈능엄 5:13ㄴ〉. 늘근 나해 幽獨호 전노라(衰年怯幽獨)〈두시 25:3ㄴ〉.

【한자음】 상심불인문기구 부공초종난리설
【언해역】 마음을 슬퍼하여서 늙은 사람과 더불어 물음을 차마 하지 못하니, 또 난리(亂離)의 처음부터 이를까 두려워하네!

小臣魯鈍無所能 朝廷記識蒙祿秩【小臣 ㅣ라】

小臣 주132)
소신(小臣)
작은 신하.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어리고 주133)
어리고
어리석고. 어리-+고. 15세기 국어의 ‘어리-’는 ‘어리석다’의 뜻이다.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훈언 2ㄱ〉. 乃終내 得디 몯니 어리여 미혹야 邪曲 보 信(終不能得 愚癡迷惑 信邪倒見)〈석상 9:36ㄴ〉. 진실로 이 어디니와 어리니왜 다니라(固應賢愚異)〈두시 16:20ㄱ〉.
鈍야 能 배 주134)
능(能) 배
능한 바가. 잘하는 것이.
업소니 주135)
업소니
없으니. 없[無]+오+니.
朝廷이 아라 시 주136)
시
쓰시거늘. -+어+시+. ‘ᄡᅥ’의 ‘어’는 ‘-’와 ‘시’ 가운데 있으므로 분석할 수 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다.
祿秩 주137)
녹질(祿秩)
녹봉(祿俸)을.
닙오라 주138)
닙오라
입었다. 닙-++오+라. 즉 재주와 능력이 없는 내가 녹봉을 받는 은택을 입었다는 뜻이다. ¶오라건 劫으로셔 부텨 接引샤 닙(我從久遠劫來 蒙佛接引)〈석상 11:8ㄴ〉. 虢國ㅅ 夫人이 님 恩惠 닙와(虢國夫人承主恩)〈두시 24:10ㄴ〉.

【한자음】 소신노둔무소능 조정기식몽녹질【소신(小臣)은 두보이다.】
【언해역】 소신(小臣)은 어리석고 둔(鈍)하여 능한 바가 없으니, 조정(朝廷)이 알아 쓰시거늘 녹봉을 받게 되었네!

周宣中興望我皇 灑血江漢長衰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3ㄱ

【此 ㅣ 以周宣 주139)
주선(周宣)
주나라 선왕.
中興之功로 期望於君고 恨身在江漢而未能輔助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周 宣王 주140)
주 선왕(周宣王)
서주의 제11대 선왕(宣王). ?~기원전782년. 재위 중에 주 정공(周定公), 소 목공(召穆公)이 정치를 도와 국세가 중흥해 선왕중흥(宣王中興)으로 불리는 시기를 구축하였다.
ㅅ 다시 니와샤 주141)
니와샤
일으키심을. 니[興]-+왇+시+오+ㅁ+. ‘니-’는 ‘닐-’의 사동사이며 ‘’는 사동접미사이다. ‘왇’은 강세접미사이다. ¶ 念 믌겨리 닐면 여러 妄이 토아 짓니(一念波興면 諸妄이 競作니)〈금삼 4:23ㄴ〉. 九萬里 가 일로브터 닐리로다(九萬起於斯)〈두시 20:49ㄴ〉.
우리 님긔 라노니 江漢애 주142)
강한(江漢)애
강가에.
피 므를 리고 주143)
리고
뿌리고. ᄲᅳ리-+고. ¶어마니미 드르시고 안답샤 낫라 아샤 것죽거시 믈 리여 시니라(其母聞是語已 心生悶絕 即前抱其太子 悶絕 以冷水灑面 良久乃穌)〈석상 11:20ㄴ〉. 눈믈 리고 님금 가 겨신  호니(揮涕戀行在)〈두시 1:2ㄱ〉.
기리 주144)
기리
길이. ‘기리’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늘거 病야 주145)
병(病)야
병들어.
잇노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주선중흥망아황 쇄혈강한장쇠질【이것은 두보가 주나라 선왕(宣王)의 중흥의 공을 임금께 바라고 자신이 강한(江漢)에 있어 임금을 보필하지 못함을 한탄하는 것이다.】
【언해역】 주 선왕(周宣王)이 다시 일으키심을 우리 임금께 바라니, 강가에 피눈물 뿌리고 길이 늙어 병들어 있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8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억석이수(憶昔二首) : 이 시는 764년(광덕 2)에 두보가 엄무(嚴武)의 막부에 있을 때 지은 것이다. 시에서는 두보가 지난 일을 추억하고 있는데, 제1수는 숙종이 환관을 신임하여 나라를 파탄의 지경으로 이끈 것을 말하고, 제2수는 현종의 개원 시대를 기억하고 대종이 국가를 진흥시킬 것을 바라는 내용이다.
주002)
숙종(肅宗) : 앞의 주 참조.
주003)
경사(京師) : 장안(長安). 즉 서안(西安).
주004)
랑호니 : 생각하니. [憶]#-+오+니. 중세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주005)
녜 :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주006)
선황(先皇)이 : 선황(先皇)이. 즉 현종(玄宗)이.
주007)
순행(巡幸)야 : 순행(巡幸)하여.
주008)
천승만기(千乘萬騎)로 : 천승만기(千乘萬騎)로.
주009)
함양(咸陽)애 : 함양에.
주010)
드러오시니라 : 들어오셨다. 들-+어#오-+시+니+라.
주011)
호인(胡人) : 오랑캐. 여기서는 회흘(回紇)을 가리킨다.
주012)
동호(東胡) : 동쪽 오랑캐. 여기서는 안경서(安慶緖)를 가리킨다.
주013)
교자(驕子) : 음산의 교만한 아들. 회흘(回紇)이 스스로를 하늘의 교만한 아들이라 불렀다 한다.
주014)
피 나  : 피땀을 흘릴 정도로 매우 빨리 달리는 말. 한혈마(汗血馬). 앞에서는 ‘피 내 ᄆᆞᆯ’이라 하였다.
주015)
기리 : 길게. 멀리. 길이. 길[長] +이. ‘기리’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주016)
모니 : 모니. 몰아내니. 몰-+니. ¶큰 鐵城에 火蛇와 火狗와 虎와 狼과 師子와 牛頭獄卒와 馬頭羅刹왜 소내 鎗 자바 모라 城門애 드료 보아(見大鐵城에 火蛇火狗虎狼師子와 牛頭獄卒와 馬頭羅刹이 手執鎗矟야 驅入城門야)〈능엄 8:105ㄴ〉. 어느 술위 모라  자최 同홀 고 알리오(豈知驅車複同軌)〈두시 15:45ㄴ〉.
주017)
되 : 오랑캐. 여기서는 동호(東胡)를 가리킨다. ‘되’에 대해서는 ‘지덕 2년 ~ 지난 일을 서글퍼하며(至德二載예 ~ 有悲往事노라)’의 ‘西郊애 되 正히 어즈럽더라(西郊胡正煩)’ 구절 참조.
주018)
라가 : 달려가. 도망가. -+아#가-+아. ¶百姓히 림 몯야 헤 조쳐 더니(國中男女亡走失魄)〈석상 24:21ㄴ〉. 노 우희 라  터리  셔 도라셔더니라(走索背秋毫)〈두시 11:39ㄱ〉.
주019)
수므니라 : 숨으니라. 숨-+으니+라. ¶져재  저기어든 대 두드리여 숨니라〈석상 11:21ㄱ〉. 수므락 나락  바횟  냇도다(隱見巖姿露)〈두시 12:18ㄴ〉.
주020)
업성(鄴城) :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 성 한단 시 린장 현과 허난 성 안양 시의 경계에 위치하였던 옛날 도시. 후조(後趙)·염위(冉魏)·전연(前燕)·동위(東魏)·북제(北齊)의 수도였으며, 사사명이 여기를 근거로 하였다.
주021)
경서(慶緖) : 안경서. 즉 안녹산의 아들로 아버지를 죽이고 잠시나마 반란군의 총수가 되었다.
주022)
이보국(李輔國) : 당나라 숙종 때의 환관. 704-762년. 양국충 등의 알력 속에서도 정권을 장악하였다.
주023)
장후(張后) : 숙종의 비로 이보국(李輔國)과 결탁하여 정권에 깊숙이 개입하였다.
주024)
숙종(肅宗) : 앞의 주 참조.
주025)
두위힐후믄 : 뒤집음은. 반복함은. 두위-+힐후-+우+ㅁ+은. ‘두위힐우다’는 ‘반복하다’와 ‘뒤집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三世와 四方괘 드위힐훠 十二론 젼로 그 예 든 거시 다 그 變을 좃니(三世四方이 宛轉十二故로 涉乎其間者ㅣ 悉從其變니)〈능엄 7:76ㄱ〉. 鄴城의 두위힐후믄 足히 妖怪ㅣ롭디 아니니 關中엣 죠고(鄴城反覆不足怪,關中小兒壞紀綱 張後不樂上爲忙)〈두시 3:60ㄱ〉.
주026)
요괴(妖怪)ㅣ롭디 : 요괴롭지. 요괴+롭+디.
주027)
관중(關中) : 관중 분지(關中盆地), 또는 관중 평원(關中平原). 북쪽의 소관(蕭關), 동쪽의 함곡관(函谷關), 남쪽의 무관(武關), 서쪽의 대산관(大散關) 사이를 가리키는 지명.
주028)
죠고맛 : 조그마한. 조그만. 작은. 죠고마[小]+ㅅ. ‘죠고맛’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두시 3:5ㄱ〉 구절 참조.
주029)
기강(紀綱) : 기강(紀綱)을. 즉 나라의 기강을.
주030)
허러리며 : 헐어버리며. 헐-+어#리-+며. ‘헐-’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人民의 헐므믈 문 디 아니도다(不似問瘡痍)’ 구절 참조.
주031)
위(爲)야 : 위하여. 즉 장후(張后)를 위하여.
주032)
경망(驚忙)더시니라 : 놀라 겨를이 없으시니라. 즉 숙종(肅宗)이 장후(張后)를 두려워하여 매사에 어쩔 줄을 모른다는 말이다.
주033)
대종(代宗) : 당의 제8대 황제. 726-779년. 본명은 이예(李豫). 당 숙종 이형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추존된 장경황후 홍씨이다. 즉위한 이듬해에 7년 동안 당나라를 어지럽힌 안·사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곳곳에서 반란은 끊이지 않고 발발했다. 또한 토번(吐番)에게 비단을 공납하던 것을 중지해, 토번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장안을 공격해 수도 장안이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수모를 당하였다. 더군다나 그는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 사찰에 많은 토지와 면세 혜택을 주기도 하여 당의 재정이 한층 더 악화되었다.
주034)
이제 니르러 : 지금까지. 니르-+어.
주035)
이젯 님그미 : 현재의 임금이. 즉 대종(代宗)을 가리킨다.
주036)
난(亂) 혀 려 : 난을 빼어 버리어. 즉 난을 종식시켰다는 말이다.
주037)
 며 : 마음을 쓰며. 즉 난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이리저리 노심초사 마음을 썼다는 말이다.
주038)
글탈하 : 끓고 다리어. 즉 난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마음을 마치 물을 끓이고 달이듯이 썼다는 말이다. 긇-+닳-+아. ‘탈’은 ‘긇-’의 ‘ㅎ’과 ‘닳-’의 ‘ㄷ’이 결합되어 생긴 음운현상을 반영한 표기이다. ¶시름야 글탈호미 煩이오〈능엄 4:16ㄱ〉. 百姓의  杼柚이 뷔여 글탈놋다(氓心杼軸焦)〈두시 20:46ㄱ-ㄴ〉.
주039)
사방(四方) : 사방을. 즉 나라 전체와 행정의 여러 곳을.
주040)
기우시니라 : 기우시니라. 기우-+시++니+라.
주041)
녜 :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주042)
갓가이 : 가까이. 갓갑[近]-+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주043)
뫼와 : 뫼시어. 즉 숙종을 뫼셨다는 말이다.
주044)
봉인(奉引) 더러이오니 : 봉인(奉引)을 더럽혔으니. 봉인은 손윗사람을 받들어 인도하는 것을 말하므로, 임금을 잘못 보필하였다는 말이다.
주045)
병졸(兵卒) 내요미 정숙(整肅)야 : 병졸 냄이 정숙하여. 즉 대종(代宗)이 안·사의 난을 종식시켰으므로 저간의 사정은 어떻든 군사를 잘 운용하였다는 말이 된다.
주046)
가(可)히 당(當)티 몯리러라 : 가히 대종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즉 누가 황제가 되었다 하더라도 대종(代宗)에게 대적할 만큼 잘 하지 못하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주047)
서강(西羌) : 서쪽의 강족. 즉 토번(土蕃)을 말한다.
주048)
토번(吐蕃) : 티베트. 대종 당시에 그때까지 비단을 바치던 토번(吐番) 왕조에게 비단 공납을 중지해, 당시 토번의 임금이던 치쏭데찬(赤松德贊)의 분노를 사서, 763년에 토번의 장수 다짜뤼공(達扎樂宮)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장안을 11일간 점령하였다. 당시 곽자의는 대종이 머무르던 미앙궁(未央宮)을 수비하기 위하여 서쪽 군사를 모두 미앙궁 근처에 두었으므로 토번이 쉽게 장안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 구절은 토번의 군사가 장안을 점령하기 직전에 먼저 기주(岐州), 옹주(雍州)를 함락시켰다는 말이다.
주049)
자의(子儀) : 곽자의(郭子儀). 대종(代宗)의 선왕인 숙종(肅宗)이 임종에 임했을 때 따로 그를 불러 “하동의 일은 경에게 맡기노라.”라고 했을 정도로 신임했던 장군으로, 대종(代宗) 때에도 뛰어난 장군으로서 활약하였으나, 이 당시에는 대종의 명령으로 토번을 방어하기 위하여 서쪽에 군사를 두지 못하고 대종이 머무르던 미앙궁(未央宮)을 방어하기 위하여 주력 군사를 미앙궁 근처에 두고 있었다.
주050)
기옹(岐雍) : 기주(岐州)와 옹주(雍州). 기주는 현재 산시성(陝西省) 봉상현(鳳翔縣)의 남쪽이며, 옹주(雍州)는 현재 산시성(陝西省)의 경계이므로 토번이 장안을 공격하기 위해서 지나야 하는 지역들이다.
주051)
용맹(勇猛) 장사(將士) : 용맹한 장사를. 즉 곽자의(郭子儀)를.
주052)
머믈워 : 머무르게 하여. 머믈-+우+어. ‘우’는 사동접미사이다.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이다.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魚復浦애 간 머믈오(暫留魚復浦)〈두시 21:19ㄴ〉. 머믈우- : 뉘 能히 네 얼구 머믈우리오(뉘 能히 네 얼구)〈능엄 6:74ㄱ〉. 가 야미 우루믈 머믈우디 아니니(玄蟬無停號)〈두시 10:29ㄱ〉.
주053)
미앙궁(未央宮) : 미앙궁을. 당시 대종(代宗)은 미앙궁에 머무르고 있었다.
주054)
수직(守直)요 : 지킴을. 수직(守直)-+오+ㅁ+.
주055)
마고 : 막음을. 막[防]-+오+ㅁ+.
주056)
닐위니라 : 이르게 하였느니라. 닐-++우+이+니+라. ‘’는 사동접미사이다. ‘니-’는 ‘닐-’의 사동사이며, ‘’는 사동접미사이다. ‘왇’은 강세접미사이다. ¶ 念 믌겨리 닐면 여러 妄이 토아 짓니(一念波興면 諸妄이 競作니)〈금삼 4:23ㄴ〉. 옮겨 라  셔메 돈 六天 닐위니(轉致斛六千)〈두시 1:18ㄱ〉.
주057)
선족(跣足) : 맨발.
주058)
토번(吐蕃) : 앞의 주를 참조할 것.
주059)
함경사(陷京師) : 토번이 경사(京師)를 점령한 것을 말한다.
주060)
백관(百官) : 문무백관.
주061)
대종(代宗) : 앞의 주를 참조.
주062)
견융(犬戎) : 토번(土蕃).
주063)
바 : 바로.
주064)
어상(御床)애 : 어상(御床)에.
주065)
바사 : 벗어. 밧-+아. ¶옷 바사도 이시며 나못닙도 머그며(裸形曝露 以求神仙 或食樹葉或吸風服氣)〈석상 24:26ㄱ〉. 큰 구스리 허믈와 무든 거슬 바사 린 고(大珠脫玷翳)〈두시 9:18ㄴ〉.
주066)
천왕(天王) : 천왕(天王)을. 곧 대종(代宗)을.
주067)
졷와 : 쫓아. 좇-+ᆸ+아. ¶憍陳如 다 사도 졷 苦行더라(憍陳如五人住處 尼連河側)〈석상 3:39ㄱ〉. 輦에 同야 님그믈 졷와 님 겨틔 뫼더니라(同輦隨君侍君側)〈두시 11:15ㄴ-16ㄱ〉.
주068)
부개자(傅介子) : 전한 북쪽 사람으로 누란의 왕의 목을 베고 돌아왔다.
주069)
누란(樓蘭) : 신장-위구르 자치주에 있는 고대 도시의 국가. 서역 남로와 이어져 공작하 하류의 로프누르 호수 서안에 위치하며 비단길 교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공작하가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약 1,600년 전 멸망하였으며 지금은 옛 성터의 유적만 남아 있다. 기원전77년에는 한나라의 영향 아래에 샨샨(鄯善)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기도 하였지만 그 후에도 누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주070)
보고져 : 보고자. 보-+고#지-+어.
주071)
늘근 션 : 늙은 선비는. 즉 두보 자신을 말한다.
주072)
상서랑(尙書郞) : 상서랑(尙書郞)을.
주073)
티 : 하지. -+디. ‘’의 ‘’가 탈락하고 ‘ㅎ’과 ‘디’의 ‘ㄷ’이 결합하면서 ‘ㅌ’이 되었다.
주074)
아니노라 : 아니하노라. 아니+-++오+라.
주075)
개원(開元) : 당 현종(唐玄宗)의 연호. 당 왕조의 역사에서 개원 연간은 국가가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시대로 평가받는다. 역사에서는 당 왕조의 전성기였던 개원 시대를 두고 개원성세(開元盛世), 또는 개원의 치라고도 부른다.
주076)
랑호니 : 생각하니. 생각해 보니.
주077)
오로 : 오직. 올-+오. ¶ 光明이 두루 초 妙體 오로 나토시니라(一光이 周亘은 全彰妙體也ㅣ시니라)〈법화 1:60ㄴ〉. 風化 베푸믈 어늬 오로 通達리오(宣風豈專達)〈두시 1:37ㄱ-ㄴ〉.
주078)
져근 : 작은. 참고. 쟉다, 젹다, 죡다, 횩다, 휵다. ¶이 사미 欲心이 젹고 足 고 아라(是人이 少欲知足야)〈석상 21:62ㄱ〉. 朝와 野왜 겨르왼 나리 젹도다(朝野少暇日)〈두시 1:1ㄴ〉. 젹다(작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或現大身滿虛空中 而復現小)〈석상 6:34ㄱ〉.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縣小更無丁)〈두시 4:5ㄱ〉.
주079)
올도 : 고을에도. 올ㅎ++도. ㅎ말음체언이다.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 이 經을 너비 펴며(村城國邑 空閑林中 若有流布此經)〈석상 9:40ㄱ〉. 中歲에 녯 올셔 貢擧요라(中歲貢舊鄉)〈두시 2:40ㄱ〉.
주080)
만가실(萬家室)이 장(藏)얫더니라 : 만가(萬家)를 이루고 있었느니라. 즉 아무리 작은 고을이라도 만호(萬戶)를 이룰 만큼 인구가 많았다는 말이다.
주081)
니 : 입쌀은. 니+ᄡᆞᆯ+.
주082)
기르미 : 기름이. 기름+이.
주083)
조 : 좁쌀은. 조+ᄡᆞᆯ+.
주084)
니 : 희니. -+니. 15세기에 ‘희다’를 표현하는 단어는 ‘-’와 ‘희-’가 있다. ¶- ; 가마괴 本來 거므며 鵠이 本來 며(烏ㅣ 從來예 黑며 鵠이 從來예 白며)〈능엄 10:9ㄱ〉. 돐 門읜 서리와 이슬왜 오(石門霜露白)〈두시 6:17ㄴ〉. 희- ; 제 므레 미론 흰 깁과  깁과 잇다(水光絹 白絲絹)〈번노 하:26ㄱ〉. 비치 누르며 흰 繡衣 니븐 郞이(繡衣黃白郞)〈두시 22:30ㄴ〉.
주085)
그위와 : 관청과. 그위+와. 15세기 국어의 ‘그위’는 ‘관청’과 ‘관리’의 뜻이 있었다. 『두시언해』에서는 항상 ‘관청’의 뜻으로 쓰인다. ¶(관청) ; 太子와 야 그위예 決라 가려 더니(即共太子欲往訟了)〈석상 6:24ㄴ〉. 一物이라도 그위예셔 다 아ᅀᅩ 슬노라(一物官盡取)〈두시 18:18ㄱ〉. (관리) ; 百官 온 그위니 한 臣下 니니라〈석상 3:7ㄱ〉.
주086)
아 : 개인의. 아+ㅅ. ¶訐露 眼耳通이라  아 일 發호 닐오 訐露ㅣ라〈능엄 9:103ㄴ〉. 營營히 아 口實 노라(營營爲私實)〈두시 2:59ㄴ〉.
주087)
창름(倉廩)이 : 창고가.
주088)
풍실(豐實)더니라 : 풍부하느니라. 풍실(豐實)-+더+니+라.
주089)
시호(豺虎) : 승냥이와 호랑이. 즉 도적들을 말한다.
주090)
아홉 옰 길헤 : 아홉 고을 길에. 즉 사방팔방에 있는 고을로 가는 길에.
주091)
머리 : 멀리. 멀[遠]+이. ‘머리’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주092)
녀매 : 감에. 녀-+우+ㅁ+애. ¶太子ㅣ 아 예 八百里 녀샤 雪山 苦行林에 가시니라(乘虗而行至雪山苦行林中 詰旦已行八百里)〈석상 3:30ㄴ〉. 돌 우희 믈 잇 로 일 녀고(早行石上水)〈두시 1:12ㄴ〉.
주093)
나 : 나감을. 출발함을.
주094)
잇비 : 피곤해. 가쁘게. 잇-+브+이. ‘이’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自然히 本來ㅅ 眞 得야 功夫 잇비 아니리라(自得本眞야 不勞功用리라)〈능엄 2:43ㄱ〉. 版築노라 사 功夫 잇비 놋다(版築勞人功)〈두시 1:24ㄴ-25ㄱ〉.
주095)
아니더니라 : 아니하니라. 아니+-+더+니+라.
주096)
제국(齊國) : 제나라. 여기서는 당나라 때 제나라가 있던 제나라가 영토를 차지하던 지역 즉 제남(齊南)을 중심으로 한 산둥성 일대를 가리킨다.
주097)
노국(魯國) : 노나라. 여기서는 당나라 때 노나라가 있던 제나라가 영토를 차지하던 곡부(曲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을 가리킨다.
주098)
기블 : 깁을. 비단을.
주099)
술위로 : 수레로.
주100)
츄믈 : 기름을. 치-+우+ㅁ+을. 15세기 국어의 ‘치다’는 ‘기르다’의 뜻이다. ¶ 늘근 어미 치다가 乃終내 몯며 그 오녀 고 고티면(養人老母而不能卒 許人以諾而不能信)〈삼강(런던) 효:5ㄱ-ㄴ〉. 우 비두리와 삿기 치 졔비예 프른 보미 기펫도다(鳴鳩乳燕靑春深)〈두시 6:13ㄴ-14ㄱ〉.
주101)
서르 : 서로.
주102)
실업(失業)디 : 일거리를 잃지.
주103)
아니터니라 : 아니하니라. 아니++더+니+라.
주104)
운문(雲門) : 황제(黃帝) 시대의 무도(舞蹈).
주105)
황제(黃帝) :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 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중국을 다스린 오제(五帝)의 첫 번째 왕이다. ‘황제(黃帝)’라는 명칭은 재위 기간 중 황룡이 나타나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다고 하여 붙여졌다. 사실상 신화로 여겨졌던 삼황과 달리 황제를 필두로 한 오제는 실존한 제왕들로서 추앙되었으며 황제는 중국 문명의 시조로 여겨졌다. 도교의 시조로 추앙되기도 한다.
주106)
주(奏)시고 : 연주하시고.
주107)
교칠(膠漆)티 : 교칠(膠漆)같이.
주108)
사괴더니라 : 사귀었느니라. 사괴-+더+니+라. ¶안팟긧 四大 녜 서르 사괴야 感니(內外四大常相交感니)〈능엄 6:26ㄱ〉.  번 벋 사괴요미 어려우믈 議論고(一論朋友難)〈두시 16:18ㄱ〉.
주109)
숙손통(叔孫通) : 진나라에서 전한 초의 학자. 생몰연대 미상.
주110)
소하(蕭何) : 진나라에서 전한 초기에 걸쳐 활약한 정치가. ?-기원전193년. 유방의 참모로서 그가 천하를 얻도록 도왔으며, 전한의 초대 상국을 지냈다. 한신, 장량과 함께 한의 삼걸(三傑)로 꼽힌다.
주111)
주메 : 즈음에. 사이에. 주+에. ‘주’은 ‘즈’과 같다. ‘즈’이 ‘주’으로 사용된 것은 『두시언해』가 유일하다. ¶干戈ㅅ 주메 疎拙 모 養고(養拙幹戈際)〈두시 7:14ㄴ〉.
주112)
재변(災變)티 아니야 : 재앙이 일어나지 않아.
주113)
깁 : 깁.
주114)
 피레 : 한 필에. 필(匹)+에.
주115)
비디 : 값이. 빋+이. 15세기 국어에서 ‘빋’의 연어로는 ‘빗 내다, 빗 갚다, 빗 받다, 빋 하 다, 빋디다’와 현대국어의 ‘비싸다’의 의미인 ‘빋다’가 있다. ¶일훔난 됴 오시 비디 千萬이 며 빋 업슨 오로 [하 貴야 비디 업스니라] 부텨와 괏 그 布施며(名衣上服 價直千萬 或無價衣 施佛及僧)〈석상 13:22ㄴ〉. 비디 온 硨磲ㅣ라와 重리라(價重百車渠)〈두시 9:19ㄴ〉.
주116)
엇뎨 드르리오 : 어찌 듣겠는가. 들-+으리+오. 세월이 급변하여 번성하던 개원 시대와 비교해 보면 지금 비싼 비단 값을 어떻게 듣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시러곰 甲을 지여 農器 라(焉得鑄甲作農器)〈두시 4:29ㄴ〉.
주117)
시므던 : 심던. 시므-+더+ㄴ. ¶諸佛 한 德 미틀 시므샤(諸佛所애 植衆德本샤)〈법화 1:37ㄴ〉. 번득번드기 매 뉘 시므니오(歷歷竟誰種)〈두시 12:8ㄴ〉.
주118)
흐르놋다 : 흐르는구나. 흐르네. 흐르[流]-++옷+다.
주119)
안사의 난(安史之亂) : 안·사의 난은 755년 12월 16일부터 763년 2월 17일에 걸쳐 당나라의 절도사인 안녹산(安祿山)과 그 부하인 사사명(史思明) 및 그 자녀들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 반란이다. 안사의 난이란 안녹산과 사사명의 첫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안녹산의 난」 또는 「천보의 난」[天寶之亂]이라고도 한다. 안녹산은 나라 이름을 연(燕)이라고 하여 황제를 칭하였으며, 이 난은 9년 동안 지속하였다. 이 난은 두보의 나이 44세 때부터 시작하여 52세 때까지 계속되었으므로 두보의 생활을 더욱 궁핍하게 만든 이유가 되었다.
주120)
낙양(洛陽) : 동주, 후한, 육조 시대의 수도. 현재 허난 성에 있다.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은 낙수(洛水)의 북쪽에 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고 해는 강의 남쪽 부분에서 뜨기 때문에 햇빛은 항상 강의 북쪽 부분이 받게 된다. 당나라 때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로 동도(東都)라 불렸는데 장안 다음의 제2대 도시였다. 두보의 출생지인 공현(鞏縣)은 낙양에 가깝다.
주121)
브터 : 붙어. 븥-+어. 15세기 국어의 ‘븥다’는 ‘①붙다, ②의지하다, ③정박하다, ④말미암다, ⑤불이 붙다, ⑥편지를 부치다, ⑦정박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붙다) ; 附는 브틀 씨라〈훈언 :12ㄴ〉. 龍을 더위자며 鳳을 브터 그 勢를 當디 몯리로소니(攀龍附鳳勢莫當)〈두시 4:17ㄴ〉. (의지하다) ; 悲觀 慈觀로 萬物 應시논 德을 브터 니건댄 觀世音이시다 고(依悲觀慈觀으로 應物之德샤 言之故로 號 觀世音이시다시고)〈석상 21:19ㄱ〉. 믈 을 브터 예셔 자니(依沙宿舸船)〈두시 2:3ㄴ〉. (정박하다) ; 雲安縣에 와 브터쇼니(棲泊雲安縣)〈두시 6:51ㄱ〉. (말미암다) ; 오직 妄量앳 미 믄득 니러나 브트면 識境이 난겻 뮈여 나거든(只緣妄心이 瞥起면 識境이 競動거든)〈월석 1:석상 서:3ㄱ〉. (불이 붙다) ; 제 能히 거우루에셔 나 게 브투(自能於鏡에셔 然于艾호)〈능엄 3:75ㄴ〉. (편지를 부치다) : 올 使者ㅣ 잇거든 곧 音信 브터(有使即寄書)〈두시 1:40ㄴ-41ㄱ〉. (정박하다) ; 雲安縣에 와 브터쇼니(棲泊雲安縣)〈두시 6:51ㄱ〉.
주122)
종묘(宗廟) : 중국 역대 왕조의 제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
주123)
여 : 여우. ¶野干 여 니(野干은 類弧니)〈법화 2:111ㄴ〉. 뎌 여와 일희 厄 免리라(彼免狐貉厄)〈두시 17:13ㄴ〉.
주124)
톳 : 토끼의. 톳기+. ¶이 보미 本來 거부븨 터리와 톳 와 니(是見이 元同龜毛兎角니)〈능엄 3:95ㄱ〉. 이젠 그믌 소갯 톳기 도다(今如罝中兔)〈두시 21:38ㄱ〉.
주125)
굼긔 : 구멍에. 구무+의. ‘구무’는 주격조사를 만나면 ‘굼기’, 처격조사를 만나면 ‘굼긔’의 형태를 취한다. 이와 유사한 단어로 ‘나모’가 있다. ¶구무 : 곳구무 데군케 드위고〈석상 3:25ㄴ〉. 서근 에 가야미 구무 들워 드렛고(朽骨穴螻蟻). 굼긔 : 살 든 굼긔셔 미 나아 우므리 외니〈석상 3:14ㄴ〉. 괴외호 이 버믜 굼긔 니도다(靜應連虎穴)〈두시 7:30ㄴ-31ㄱ〉.
주126)
새려 : 새로. ‘새’와 ‘려’로 분석이 되지만 ‘려’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다. ‘새려’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이는 단어이다. ¶두 아리 새려 사호다가 죽도다(二男新戰死)〈두시 4:8ㄱ〉. 驄馬ㅣ 새려 구블 팻도소니(驄馬新鑿蹄)〈두시 22:30ㄴ〉.
주127)
짓놋다 : 짓는구나. 짓-++옷+다.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월석 4:18ㄴ〉. 陸機 스믈헤 文賦 지니 너 가야 나히 져고 能히 그를 짓놋다(陸機二十作賦 汝更小年能綴文)〈두시 8:39ㄱ〉.
주128)
슬허셔 : 슬퍼하여서. 슳[傷]-+어+셔.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주129)
마 : 차마. ¶懺  씨니 내 罪 마 리쇼셔 논 디오〈석상 6:9ㄱ〉. 아 마 서르 리리아(宗族忍相遺)〈두시 8:60ㄴ〉.
주130)
처믈 브터 : 처음부터. 처+을 븥-+어. ‘븥-’은 원래 실사인 동사이지만 ‘- 브터’는 ‘-부터, -로부터’의 뜻을 가진 조사로 문법화하는 단계이다.
주131)
니가 전노라 : 이를까 두려워 하노라. 니-++가 젛-++오+라. ¶내 凡愚에 여러 불어 니디 아니호 뎨 分別야 자바 나 사가 전노라(我ㅣ 於凡愚에 不開演 恐彼分別야 執爲我노라)〈능엄 5:13ㄴ〉. 늘근 나해 幽獨호 전노라(衰年怯幽獨)〈두시 25:3ㄴ〉.
주132)
소신(小臣) : 작은 신하.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주133)
어리고 : 어리석고. 어리-+고. 15세기 국어의 ‘어리-’는 ‘어리석다’의 뜻이다.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훈언 2ㄱ〉. 乃終내 得디 몯니 어리여 미혹야 邪曲 보 信(終不能得 愚癡迷惑 信邪倒見)〈석상 9:36ㄴ〉. 진실로 이 어디니와 어리니왜 다니라(固應賢愚異)〈두시 16:20ㄱ〉.
주134)
능(能) 배 : 능한 바가. 잘하는 것이.
주135)
업소니 : 없으니. 없[無]+오+니.
주136)
시 : 쓰시거늘. -+어+시+. ‘ᄡᅥ’의 ‘어’는 ‘-’와 ‘시’ 가운데 있으므로 분석할 수 있으나 정체를 알 수 없다.
주137)
녹질(祿秩) : 녹봉(祿俸)을.
주138)
닙오라 : 입었다. 닙-++오+라. 즉 재주와 능력이 없는 내가 녹봉을 받는 은택을 입었다는 뜻이다. ¶오라건 劫으로셔 부텨 接引샤 닙(我從久遠劫來 蒙佛接引)〈석상 11:8ㄴ〉. 虢國ㅅ 夫人이 님 恩惠 닙와(虢國夫人承主恩)〈두시 24:10ㄴ〉.
주139)
주선(周宣) : 주나라 선왕.
주140)
주 선왕(周宣王) : 서주의 제11대 선왕(宣王). ?~기원전782년. 재위 중에 주 정공(周定公), 소 목공(召穆公)이 정치를 도와 국세가 중흥해 선왕중흥(宣王中興)으로 불리는 시기를 구축하였다.
주141)
니와샤 : 일으키심을. 니[興]-+왇+시+오+ㅁ+. ‘니-’는 ‘닐-’의 사동사이며 ‘’는 사동접미사이다. ‘왇’은 강세접미사이다. ¶ 念 믌겨리 닐면 여러 妄이 토아 짓니(一念波興면 諸妄이 競作니)〈금삼 4:23ㄴ〉. 九萬里 가 일로브터 닐리로다(九萬起於斯)〈두시 20:49ㄴ〉.
주142)
강한(江漢)애 : 강가에.
주143)
리고 : 뿌리고. ᄲᅳ리-+고. ¶어마니미 드르시고 안답샤 낫라 아샤 것죽거시 믈 리여 시니라(其母聞是語已 心生悶絕 即前抱其太子 悶絕 以冷水灑面 良久乃穌)〈석상 11:20ㄴ〉. 눈믈 리고 님금 가 겨신  호니(揮涕戀行在)〈두시 1:2ㄱ〉.
주144)
기리 : 길이. ‘기리’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주145)
병(病)야 : 병들어.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