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聞細柳散金甲 腸斷秦州流濁涇
【此 甫ㅣ 言盜賊이 未平며 干戈ㅣ 未息 望秦州 주020) 진주(秦州) 간쑤성(甘肅省) 천수시(天水市). 두보가 활약하던 당나라 때에는 진주(秦州)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천수시 안에는 진주구(秦州區)가 있다. 두보는 화주(華州)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있다가, 48세 때인 759년(건원 2) 7월에 관직을 버리고 늦은 봄 화주를 떠나 농산을 지나 진주(秦州)로 가게 된다. 그러나 오래 머물지 못하고, 그 해 10월에 다시 적곡, 철당협, 한협, 청양협, 적초령을 지나 동곡(同谷; 감숙 성현)으로 갔다가 계속 목피령, 백사도, 비선각, 석거각, 검문을 지나 12월 1일에 성도에 도착하게 된다.
故鄕而斷腸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細柳營 주021) 세류영(細柳營) 한 문제 때의 장군이 주아부의 군영 이름. 주아부는 흉노가 변경을 침입하자 군을 편성해 흉노를 막으면서 종정 유례(劉禮), 축자후 서여(徐厲)와 함께 주아부를 장군으로 삼아 막도록 하였다. 이윽고 문제가 각 군영을 방문하였는데 유례와 서여의 군영은 질서가 문란하였으나 주아부의 군영에 도착하자 세류(細柳)에서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황제의 선발대의 진입을 저지했다. 천자가 곧 도착한다고 선발대가 말했으나 통하지 않았고, 황제가 부절을 사자에게 줘 조명을 전하게 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에도 군중에서는 말을 타고 달리지 못하는 군법을 황제 일행에게 지키게 했으며, 절하지 않고 군례에 따라 인사했다. 문제는 매우 감동했고, 나와서는 놀라워하는 신하들에게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군영이라며 주아부의 군영인 세류영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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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甲 주022) 흐로 듣디
몯리로소니 주023) 몯리로소니 못할 것이니. 몯-+리+도+소+니. ‘-도소니’는 『두시언해』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구성 성분에는 감동법 선어말어미 ‘돗’과 화자 호응의 ‘오’, 그리고 연결어미 ‘니’가 있다. 현대국어의 연결어미 ‘-니’에 약간의 감탄, 감동의 의미가 더 있는 것이다. 현대국어로는 선어말어미 ‘돗’을 번역할 수 없어 단순히 ‘-니’로 번역하였다. ¶바 가다가 귓것과 모딘 이 므엽도소니 므스므라 바 나오나뇨(今夜故闇 若我往者 為惡鬼猛狩見害)〈석상 6:19ㄴ〉. 어즈러온 돌해 수릐 자최를 다 로 갈 업도소니(亂石無改轍)〈두시 1:16ㄱ〉.
秦州에 흐린
涇水 주024) 경수(涇水) 경하(涇河). 황하의 지류인 웨이허(渭河)의 지류로, 영하(宁夏)의 육반산(六盘山)에서 감숙성(甘肅省)을 지나 산시성(陝西省) 고릉현(古陵縣)에서 웨이허로 들어간다.
흐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37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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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긋노라 주025) 애 긋노라 애를 끊노라. 즉 애가 탄다는 뜻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미문세류산금갑 장단진주류탁경【이것은 두보가 도적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으며 전쟁이 아직 그치지 않았으므로 진주(秦州) 고향을 바라보면서 애가 끓고 있음을 말한다.】
【언해역】 세류영(細柳營)에 금갑(金甲) 흐름을 듣지 못할 것이니, 진주(秦州)에 흐린 경수(涇水) 흐르는 땅에 애를 끊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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