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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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자취를 읊으며 3수[詠懷古跡三首]


詠懷古跡三首 주001)
영회고적삼수(詠懷古跡三首)
이 시는 766년(대력 원년) 가을에 기주(蘷州)에서 지은 것이다. 기주 지역의 고적을 돌면서 고적의 유래에 빗대어 자신의 처량함을 노래하였다. 원래는 5수인데, 여기에는 제1수, 제2수, 제3수만 수록되어 있고, 제4수와 제5수는 『두시언해』 권제6에 「영회고적이수(詠懷古跡二首)」의 제목으로 실려 있다. 기주(蘷州)와 삼협(三峽) 일대의 고적은 유신(庾信)의 살던 집, 송옥(宋玉)의 집, 소군의 마을, 영안궁(유비의 묘), 무후사(제갈양의 묘) 등이 있다. 왕소군(王昭君)에 대해서는 『고문진보 전집(古文眞寶前集)』에 수록되어 있는 「명비곡(明妃曲)」과 이 시 제3수에 실려 있는 ‘왕소군’의 주석 참조.

영회고적 삼수
(옛 자취를 읊으며 3수)

〈첫째 수〉

支離東北風塵際 漂泊西南天地間【支離 分散流離之意라】

東北에  드틄 주002)
드틄
티끌의. 드틀[塵]+ㅅ. ¶六塵 여슷 가짓 드트리니 여슷 가짓 불휘예셔 니러나아 眞實ㅅ 智慧 드틀 무틸 드트리라 니라〈석상 13:38ㄴ〉.  가온 몰애와 드틀와 업슨 나리 업스니(舟中無日不沙塵)〈두시 1:44ㄱ〉.
 支離히 주003)
지리(支離)히
흩어져.
니고 西南ㅅ 하  예 주004)
떠. -+어. ¶(물에 뜨다) ; 므레도  가디 아니야(水ㅣ 不能漂리니)〈석상 20:28ㄴ〉. 남기  니 호매 便安 히 업스니(漂梗無安地)〈두시 5:13ㄱ〉. (눈 뜨다) ; 눈먼 龍도 누니  祥瑞 보고〈석상 3:42ㄱ〉.  불 제 우 누 (颯颯開啼眼)〈두시 8:38ㄴ〉.
브터 니노라 주005)
브터 니노라
흘러 다니노라. 븥-+어 니-++오+라. 15세기 국어의 ‘븥다’는 ‘①붙다, ②의지하다, ③정박하다, ④말미암다, ⑤불이 붙다, ⑥편지를 부치다, ⑦정박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附는 브틀 씨라〈훈언 :12ㄴ〉. 龍을 더위자며 鳳을 브터 그 勢를 當디 몯리로소니(攀龍附鳳勢莫當)〈두시 4:17ㄴ〉.

【한자음】 지리동북풍진제 표박서남천지간【지리(支離)는 분산되고 흩어지는 뜻이다.】
【언해역】 동북(東北)에 바람 티끌 가에 흩어져 다니고, 서남(西南)의 하늘 땅 사이에 떠 흘러 다니네!

三峽樓臺淹日月 五溪衣服共雲山三峽 주006)
삼협(三峽)
주석에 월협(月峽), 파협(巴峽), 무협(巫峽)이라 되어 있는데, 주로 구당협(瞿塘峡), 서릉협(西陵峡), 무협(巫峽)을 삼협이라 한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7ㄱ

주007)
월협(月峽)
장강 삼협 중의 구당협(瞿唐峽).
巴峽 주008)
파협(巴峽)
장강 삼협 중의 서릉협(西陵峡).
巫峽 주009)
무협(巫峽)
장강 삼협 중의 하나.
이오 五溪 雄溪樠溪酉溪潕溪辰溪ㅣ라 共雲山 言與之雜處ㅣ라】

三峽ㅅ 樓臺예  래 머믈오 주010)
머믈오
머물고. 머믈-+고.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蓬萊閣애 간 머믈오(暫住蓬萊閣)〈두시 15:25ㄱ〉.
五溪ㅅ 오란 구룸  뫼햇 사과 다 주011)
다
함께. 같이. 더불어. ¶다 : 與 다 여 並 다 병〈광천 40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況在狄與戎)〈두시 5:29ㄴ〉. 사과 다 디 마롤 디니라〈내훈 1:55ㄱ〉. 可히 온 忠과 다 孝(可憐忠與孝)〈두시 24:4ㄴ〉.
노라

【한자음】 삼협루대엄일월 오계의복공운산삼협(三峽)월협(月峽), 파협(巴峽), 무협(巫峽)이고, 오계(五溪)웅계(雄溪), 만계(樠溪), 유계(酉溪), 무계(潕溪), 진계(辰溪)이다. 공운산(共雲山)은 잡처(雜處)에 더불어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삼협(三峽)의 누대(樓臺)에 해 달에 머물고, 오계(五溪)의 옷은 구름 낀 산의 사람과 함께 하네!

羯胡事主終無賴 詞客哀時且未還羯胡 주012)
갈호(羯胡)
안녹산을 가리킨다.
 指安祿山 주013)
안녹산(安祿山)
당나라의 무장. 703(?)-757년. 안녹산의 반란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이란계 소그드인, 어머니가 돌궐족이다. 안(安)이라는 성은 소그디아나의 부하라를 가리키는 중국식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명(兒名)은 안녹사(安綠絲)이며 녹산(禄山)이라는 이름은 빛을 의미하는 이란어 로우샨(rowshan)을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의 부족의 지도자인 카파간 카간이 716년에 죽게 되자, 일족들은 혼란을 피하여 중국으로 망명했다. 영주에서 호시아랑을 맡았는데 6개 국어를 능통하였다. 30대에는 장수 규를 섬겨서 무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현종의 눈에 들어 하동절도사로 부임하였다가 난을 일으켰다.
니 言負明皇 주014)
명황(明皇)
당 현종.
之恩而叛也ㅣ라 詞客 ㅣ 自謂니 言未還鄕也ㅣ라】

되 주015)
되
오랑캐의. 되[胡]+. ‘되’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우리나라에서는 북방 민족들이나 한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되’는 주로 ‘호(胡), 이(夷), 적(狄)’ 등에 대응하는 번역어로서 쓰이며 『두시언해』에서는 ‘호(胡)’에 대응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으나, 포로의 뜻인 ‘로(虜)’에 대응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두시 ’에서 포로는 모두 ‘오랑캐[胡, 夷, 狄]’이기 때문에 번역어로 쓰인 것이지 ‘되’ 자체에 ‘포로’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수호(愁胡)의 호(胡)를 ‘후(猴)’로 보아 ‘졸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되 : 夷 되 이, 戎 되 융, 蠻 되 만, 狄 되 뎍, 羗 되 , 虜 되 로〈훈몽 중:2ㄴ〉. 되 兵馬ㅣ 다시 외니라(胡兵更陸梁)〈두시 2:43ㄱ〉.
님금 셤규믄 주016)
셤규믄
섬김은. 셤기-+우+ㅁ+은.
매 주017)
매
마침내. ¶다가 有에 자며 無에 걸면 매 邊見에 가리니(如其執有며 滯無면 則終歸邊見리니)〈영가 하:84ㄴ〉. 외로이 라 매 노피 몯놋다(孤飛卒未高)〈두시 17:23ㄱ〉.
資賴홀 주018)
자뢰(資賴)
믿을. 자뢰-+ㄹ.
 업스니 글 客이 슬픈 주019)
때에. ᄢᅳ[時]+의. ¶그  太子ㅅ 나히 漸漸 라거시(爾時太子年漸長大)〈석상 3:5ㄱ〉. 처 亂  請 니노니(請陳初亂時)〈두시 6:37ㄴ〉.
 도라가디 몯얫노라 주020)
몯얫노라
못하여 있노라. 몯#-+야#잇-++오+라.

【한자음】 갈호사주종무뢰 사객애시차미환【<용어 realname="">갈호(羯胡)안녹산(安祿山)을 가리키니, 현종(玄宗)의 은혜(恩惠)를 배반한 것을 말한다. 사객(詞客)은 두보가 스스로 말한 것이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오랑캐의 임금 섬김은 마침내 자뢰(資賴)할 것이 없으니, 글하는 객이 슬플 때 또 돌아가지 못하고 있네!

庾信平生最蕭瑟 暮年詩賦動江關庾信 주021)
유신(庾信)
남북조시대의 시인. 513~581년. 4·6 변려문(騈儷文)의 대가로 남북조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 대표작으로 『애강남부(哀江南賦)』, 『고수부(枯樹賦)』 등이 있다.
이 常有鄕關之思야 作哀江南賦 주022)
애강남부(哀江南賦)
남북조(南北朝)시대 유신(庾信)이 지은 사부(辭賦). 나라를 떠나온 슬픔과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니 此 卽懷古迹也ㅣ라】

庾信이 平生애 안직 주023)
안직
가장. ‘안직’은 ‘최(最)’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의 독법으로도 ‘最’를 ‘[안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언해 문헌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번역노걸대』 등에서 보이는 ‘안직’은 ‘아직’의 뜻이다. ¶안직(가장) ; 驥子아 안직 너를 憐愛노라(驥子最憐渠)〈두시 8:48ㄱ〉. 나그내 예 머리 안직 셰니(客間頭最白)〈두시 23:17ㄴ〉. 안직(아직) ; 우리 잡말 안직 니디 마져(咱們閑話且休說)〈번노 상:17ㄱ〉. 오나라 오나라 안직 가디 말라 내 너려 말솜 무러지라(來來 且休去 我問伱些話)〈번노 상:26ㄱ〉.
蕭瑟니 주024)
소슬(蕭瑟)니
소슬하니. 즉 으스스하고 쓸쓸하다.
늘근 나해 주025)
나해
나이에. 나ㅎ+애. ¶畜魅鬼ㅣ 畜ㅣ 주거 報ㅣ 다면 世間애 나해  類 외니라(畜魅之鬼ㅣ 畜死報盡면 生於世間야 多爲孤類니라)〈능엄 8:120ㄱ〉. 늘근 나해 녜 길헤 니노니(老年常道路)〈두시 2:14ㄴ〉.
詩賦ㅣ 江關앳 주026)
강관(江關)앳
강의 관문의.
들 뮈우니라 주027)
뮈우니라
움직이니라. 뮈-+우+니+라. 15세기 국어에는 ‘움직이다’의 뜻으로 ‘뮈-’와 ‘움즈기-’가 있다. ¶뮈- ; 聲聞 辟支佛 히 모미 뮈  몰라 니러 추믈 츠니(聲聞辟支佛等 不覺動身起舞)〈석상 11:15ㄱ〉. 兵戈 무여 니도다(兵戈動接聯)〈두시 20:20ㄱ〉. 움즈기다 ; 오직 그기 노로 야 能히 움즈기게 니〈남명 상:17ㄴ〉. 비치 수맷 龍 소니 움즈기고(光射潛虯動)〈두시 12:6ㄱ〉.

【한자음】 유신평생최소슬 모년시부동강관【유신(庾信)이 항상 향관(鄕關)을 생각하여 애강남부(哀江南賦)를 지으니, 이것은 곧 옛 자취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언해역】 유신(庾信)이 평생에 가장 소슬(蕭瑟)하니, 늙은 나이에 시부(詩賦)가 강관(江關)의 뜻을 움직이네!

〈둘째 수〉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7ㄱ

搖落深知宋玉悲 風流儒雅亦吾師宋玉 주028)
송옥(宋玉)
중국 고대의 시인. 기원전 3세기 무렵. 굴원의 초사의 후계자. 『두시언해』에서는 고대의 훌륭한 시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를 참조할 것.
九辯 주029)
구변(九辯)
송옥(宋玉)의 작품. 세상의 쇠망과 자신의 불우함을 탄식하고, 가을의 쓸쓸함을 슬퍼하는 구절이 유명하다.
에 云悲哉秋之爲氣여 草木이 搖落而變衰라니라 風流言標格也ㅣ라 此 因其宅而詠其古迹也ㅣ라】

이어 러듀메 주030)
러듀메
떨어짐에. ᄠᅥᆯ-+어#디-+우+ㅁ+에. 15세기 국어에서 ‘·디-’는 ‘떨어지다, 거꾸러지다’의 뜻으로 쓰였고, ‘:디-’는 ‘떨어뜨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타동사) ; 阿難이 듣고 다시 슬허 믈 디여(阿難이 聞已고 重復悲淚야)〈능엄 1:92ㄴ〉. 彈子 쇠로기  새 디놋다(彈落似鴞禽)〈두시 3:14ㄴ〉. (자동사) ; 내 님금 그리샤 後宮에 드르 제 하 벼리 눈  디니다〈용가 50〉. 수프렛 고 비 다니 臙脂ㅣ 디 고(林花著雨燕脂落)〈두시 11:21ㄱ〉.
宋玉 슬호 기피 주031)
기피
깊이. ‘기피’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알리로소니 주032)
알리로소니
알겠으니. 알-+리+도+소+니.
風流와 儒雅 주033)
유아(儒雅)
유아. 즉 시문(詩文)을 짓고 읊는 풍류의 도(道).
왜  내 스이로다

【한자음】 요락심지송옥비 풍류유아역오사송옥(宋玉)의 구변(九辯)에 말하기를, 슬프다! 가을의 기운이여! 초목이 흔들려 떨어지고 변화하여 쇠락하다 하였다. 풍류는 표격(標格)을 말한다. 이것은 그 집으로 인하여 그 고적(古迹)을 읊은 것이다.】
【언해역】 이어 떨어짐에 송옥(宋玉)의 슬픔을 깊이 알겠으니, 풍류와 유아(儒雅)가 또 내 스승이도다!

悵望 주034)
창망(悵望)
① 슬퍼하면서 바라봄. ② 슬퍼하면서 불평을 품고 원망함.
千秋 주035)
천추(千秋)
오래고 긴 세월.
一灑淚 蕭條異代不同時【蕭條 空遠也ㅣ라】

千秋에 슬허 주036)
슬허
슬퍼하여. 슳-+어.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라셔 주037)
라셔
바래서. 라-+아+셔. ¶바라보다 ;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時彼大師毘奢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 怱起 屈身頂禮於太子足 禮拜起已 四面顧視生大羞慚)〈석상 3:8ㄱ〉. 渭水ㅅ 셔 머리 횟돌아 라노라(回首清渭濱)〈두시 19:3ㄱ〉. 원하다 ;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석상 서:6ㄱ〉. 밤나 官軍의 오 다시 라다(日夜更望官軍至)〈두시 4:4ㄱ〉.
 번 므를 리노니 주038)
리노니
뿌리니. ᄲᅳ리-++오+니. ¶어마니미 드르시고 안답샤 낫라 아샤 것죽거시 믈 리여 시니라(其母聞是語已 心生悶絕 即前抱其太子 悶絕 以冷水灑面 良久乃穌)〈석상 11:20ㄴ〉. 눈믈 리고 님금 가 겨신  호니(揮涕戀行在)〈두시 1:2ㄱ〉.
머러 주039)
머러
멀어. 멀-+어.
代ㅣ 달아 주040)
달아
달라. 다-+아. ¶中國에 달아 與文字로 不相流通(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훈언 1ㄴ〉. 그 젯 이리 녯 님그믜 敗亂과 다니라(事與古先別)〈두시 1:8ㄴ〉.
 주041)

함께.
나라 주042)
나라
난다. 나-+오+라.

【한자음】 창망천추일쇄루 소조이대부동시【소조(蕭條)는 비어 있는 먼 것이다.】
【언해역】 천추(千秋)에 슬퍼하여 바라보고 한 번 눈물을 뿌리니, 멀어 대(代)가 달라 함께 못 나네!

江山故宅空文藻 雲雨荒臺豈夢思【宋玉宅이 在荊州 주043)
형주(荊州)
형주(荊州)는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구주 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후한 13주 중 한 지역이며, 중심지는 한수(漢壽, 현재의 후난성 창더시 한서우현)과 양양(襄陽, 현재의 후베이성 샹양시)이다.
니라 宋玉神女賦 주044)
여신부(神女賦)
송옥(宋玉)이 지은 부의 하나.
에 朝爲行雲暮爲行雨陽臺之下ㅣ라다】

江山 녯 지븨 쇽졀업시 주045)
쇽졀업시
속절없이. 쇽졀#없-+이.
文章곳 주046)
문장(文章)곳
문장만. 문장+곳. ‘곳’은 강세보조사이다. ¶密因곳 아니면 나다 나디 아니리며(非密因이면 不顯리니)〈능엄 1:8ㄴ〉. 즈믄 뫼곳 갓 제 하도다(千山空自多)〈두시 5:12ㄴ〉.
잇도소니 주047)
잇도소니
있으니. 잇-+도+소+니. ‘-도소니’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蕭育의  술위 便安히 定止 몯얏도소니(蕭車安不定)〈두시 3:5ㄴ〉’ 구절 참조.
구룸과 비왓 거츤 臺 어느 메 주048)
메
꿈에. ᄭᅮ-+우+ㅁ+에.
료 주049)
료
생각하겠는가. #+리+오. 15세기 국어의 ‘-’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으나 전자의 용법이 강하다. 여기서도 전자로 쓰였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한자음】 강산고댁공문조 운우황대기몽사송옥(宋玉)의 집이 형주(荊州)에 있다. 송옥신여부(神女賦)에, “아침에 구름이 가고 저녁에 구름이 되도다!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를 적시네!”라고 하였다.】
【언해역】 강산(江山) 옛 집이 속절없이 문장만 있으니, 구름과 비와 거친 누대(樓臺)를 어느 꿈에 생각하겠는가?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8ㄱ

是楚宮俱泯滅 舟人指點到今疑

안직 주050)
안직
가장[最].
이 楚ㅅ 宮闕이 다 泯滅니 주051)
민멸(泯滅)니
자취나 흔적이 아주 없어지니. 민멸++니.
  사미 쳐셔 주052)
쳐셔
가리켜서. 치[指]+어+셔. 15세기 국어의 ‘치-’는 ‘가리키다’와 ‘가르치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로 쓰였다. ¶(가리키다) ; 太子ㅣ 妃子ㅅ  치시며 니샤(太子以手指妃腹曰)〈석상 3:22ㄱ〉. 伊洛 손바 치 修復리니(伊洛指掌收)〈두시 1:8ㄱ〉. (가르치다) ; 訓民正音은 百姓 치시논 正 소리라〈훈언 1ㄱ〉. 프른 깃  옷 니븐 아 치고(訓喻靑衿子)〈두시 11:3ㄴ〉.
이제 니르리 주053)
이제 니르리
이제까지. 니를-+이. ‘니르리’는 동사 ‘니를-’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연결되어 파생된 단어로 석독구결에서도 ‘至’로 표기되었다. -까지. 이르기까지.
疑心다 주054)
의심(疑心)다
의심한다. 의심+++다.

【한자음】 최시초궁구민멸 주인지점도금의
【언해역】 가장 이 초(楚)의 궁궐(宮闕)이 다 민멸(泯滅)하니, 배 탄 사람이 가리켜서 지금까지 의심(疑心)하네!

〈셋째 수〉

群山萬壑赴荊門 生長明妃尙有村明妃村 주055)
명비촌(明妃村)
왕소군(王昭君)의 마을. 진(晉)나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소군(昭君)을 고쳐 명비(明妃)라 하였다.
이 在歸州 주056)
귀주(歸州)
당 고조(高祖) 때 기주(夔州)를 자귀현(姉歸縣)과 파동현(巴東縣)으로 나누었는데, 파동 현이 귀주가 되었다.
니라 此 因其村而詠其古迹也ㅣ라】

한 묏 萬壑 주057)
만학(萬壑)
첩첩이 겹쳐진 많은 골짜기.
앳 므리 荊門 주058)
형문(荊門)
현재 후베이 성 형문 시. 북쪽으로 강한(江漢) 평원(平原)이, 동쪽으로 무한(武漢)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삼협(三峡)이 면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소상팔경(瀟湘)을 바라보고 있어 형초문호(荆楚門戶)라 한다.
로 가니 明妃ㅣ 기러난 주059)
기러난
자라나. 길-+어#나-+ㄴ. 15세기의 ‘길-’은 ‘길다’의 뜻으로 형용사로 쓰이고, ‘자라다’의 뜻으로 동사로도 쓰였다. ¶길다(길다) ; 勞度差ㅣ 다가 몯야 제 모미 夜叉ㅣ 외야 모미 길오(勞度差不如 復變其身作夜叉鬼 形體長大)〈석상 6:33ㄱ〉. 잡드런 디 나리 길어다(提攜日月長)〈두시 15:23ㄱ〉. 길게 다 ; 실 혀믄 모로매 길에 고 모로매 하야켄 아니홀 디로다(繅絲須長不須白)〈두시 25:50ㄱ〉. 길다(자라다) ; 富貴예 나 기런 모로매 蠶桑 쉽디 아니호 아롤디니(生長富貴얀 當知蠶上之不易니)〈내훈 2:101ㄴ〉. 기다 ; 太子ㅣ 져머 겨시니 뉘 기려뇨 오직 大愛道ㅣ 기리다(或有說言 太子年幼誰能養育 唯大愛道能使長大耳)〈석상 3:3ㄱ〉. 이 南堀ㅅ 仙人이   길어 내니  端正야 世間애 쉽디 몯니(大王 是南窟仙人生育一女 姿容端正)〈석상 11:27ㄴ〉. 기르다 ; 果實  머겨 기르니 나히 열네히어시(採衆妙果 隨時將養 至年十四)〈석상 11:26ㄱ〉. 業은 尸鄕을 화  해 기르놋다(業學屍鄉多養雞)〈두시 8:33ㄴ〉. 길오다 ; 種種  주겨 神靈 플며 돗가비 請야 福 비러 목숨 길오져 다가 乃終내 得디 몯니(殺種種衆生解奏神 明呼諸魍魎請乞福祐 欲冀延年終不能得)〈석상 9:36ㄴ〉. 길우다 ; 種種앳 모딘 罪業을 길워 녜 有益디 아니 이 고(增長種種惡業 常為不饒益事)〈석상 9:17ㄱ〉. 집 西ㅅ녀긔 竹笋 길우노라 門을 다 로 여로니(堂西長筍別開門)〈두시 25:19ㄴ〉.
村이 오히려 잇도다

【한자음】 군산만학부형문 생장명비상유촌【명비촌(明妃村)이 귀주(歸州)에 있다. 이것은 그 촌으로 인하여 그 고적(古迹)을 읊은 것이다.】
【언해역】 많은 산의 만학(萬壑)의 물이 형문(荊門)으로 가니, 명비(明妃)가 자라난 촌(村)이 오히려 있도다!

一去紫臺連朔漠 獨留靑塚向黃昏紫臺 주060)
자대(紫臺)
강엄(江淹)의 부(賦)에 나오는 말로 자금(紫禁)과 같은 말이다.
 宮名이오 朔漠 胡地라 胡中草色이 皆白호 明妃家草 獨靑니라 漢元帝 주061)
한 원제(漢元帝)
전한의 제11대 효원황제 유석(劉奭). 기원전 76~기원전 33년. 현실주의자였던 선제와 달리 유교를 중시한 정책을 실시했다. 즉위하면서 황태자 시대의 학사인 소망지(蕭望之) 등 유생을 등용했지만, 선제시대부터 측근으로서 중용되고 있던 환관인 홍공(弘恭), 석현(石顯)과 대립해 실각했다. 이후 원제의 치세는 환관에 의해 마음대로 결정되었다. 원제는 원정을 앞에 두고, 세금을 경감해, 어려운 형법을 개정하는 등의 정책을 채용하여, 민중의 생활의 안정을 도모했다. 그 외 원제는 대규모 연회를 금지, 수렵용의 별장이나 황실 소유지의 경비를 억제하여 종묘 등 제사에 걸리는 경비를 삭감하고 재정의 건전화를 도모했지만, 재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이르지 않았다. 한편으로 유교에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에 근거하는 정책도 실시되어 전매제를 폐지해 재정을 악화시키는 등 국정을 혼란시켰다. 선제에 의해 중흥된 국세는 다시 쇠약해져 원제의 황후 왕씨 일족으로부터 나온 왕망의 찬탈의 요인을 만들어 냈다.
ㅣ 後宮이 頗多야 令毛延壽 주062)
모연수(毛延壽)
한 원제 때의 궁중의 화공(畫工).
로 畵其形容야 按圖召幸이어 宮人이 多賂畵工이러니 昭君 恃其美고 不賂대 遂醜其貌야 及匈奴ㅣ 請婚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8ㄴ

而昭君로 嫁之니라】

 번 紫臺 으리왇고 주063)
으리왇고
(사이가) 떨어지게 하고. 벙을-+이+왇+고. ‘으리왇다’는 ‘을다’에 사동접미사와 강세접미사가 붙은 형식이다. ¶을다 ; 三昧예 드르샤 三昧力으로 耆闍崛山애 法座애 으로미 머디 아니(而入三昧샤 以三昧力으로 於耆闍崛山애 去法座不遠에)〈법화 7:14ㄱ〉. 으리다 ; 조 니예 츠면 절로 으리리라〈구간 1:3ㄱ〉. 으리왇다 ; 裴氏ㅅ 아비 엳 婚姻 으리왇더니 德武ㅣ 裴氏더브러 닐오(矩表離婚 德武謂裵曰)〈삼강(런던) 열:14ㄱ〉. 들에 란 마 사 무를 으리왇도다(喧已去人群)〈두시 7:30ㄴ〉.
朔漠애 니 가니 올로 주064)
올로
홀로. 올[獨]+로. ‘올로’에 대해서는 ‘중풍이 들어 배에서 베개를 베고 누어 회포를 쓰면서 호남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36운(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桃源엣 고 올로 조 해 노라(源花費獨尋)〈두시 3:16ㄴ〉’ 구절 참조.
프른 무더믈 머믈워 주065)
머믈워
머무르게 하여. 머믈-+우+어.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이다.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拾遺 能히 머믈다 말다(拾遺能住否)〈두시 15:42ㄴ〉. 머믈우- ; 뉘 能히 네 얼구 머믈우리오(誰能留汝야 使不解脫哉리오)〈능엄 6:74ㄱ〉. 대 손 머믈웟 해 깁고(竹深留客處)〈두시 15:30ㄱ〉.
黃昏애 向야 잇도다

【한자음】 일거자대련삭막 독류청총향황혼자대(紫臺)는 궁궐의 이름이고, 삭막(朔漠)은 오랑캐의 땅이라 오랑캐들 중 풀의 색은 다 흰데 명비(明妃)의 무덤의 풀은 홀로 푸르다. 한(漢) 원제(元帝)가 후궁(後宮)이 많아 모연수(毛延壽)로 하여금 그 자태를 그리게 하고, 그림을 보고 총애하였다. 많은 궁인(宮人)들이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주었는데 소군(昭君)은 그 미모를 믿고 뇌물을 주지 않아서 드디어 그 모습을 추하게 그려 흉노가 소군을 신부로 데리고 갔다.】
【언해역】 한 번 자대(紫臺)를 사이를 두고 삭막(朔漠)에 이어 가니, 홀로 푸른 무덤을 머무르게 하여 황혼(黃昏)을 향하여 있도다!

畫圖省識春風面 環佩空歸月夜魂【言春風面 猶可見於今之圖畵中也ㅣ라 或云毛延壽ㅣ 減誌於畵圖也ㅣ니라】

그리메 주066)
그리메
그림자.
春風   보아 알리로소니 주067)
알리로소니
알 수 있으니. 알-+리+도+소+니.
챗 주068)
챗
차고 있는. 15세기의 ‘-어 잇-’ 중에는 현대국어로 번역하면 ‘-고 있-’으로 번역하여야 하는 것들도 있는데, 여기의 ‘-어 잇-’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어 있-) ; 즉자히 入定야 펴엣던  구필 예(即入禪定 屈伸臂頃)〈석상 6:2ㄱ〉. 모미 라가고져 나 病야 床애 누어 잇노라(身欲奮飛病在床)〈두시 19:17ㄴ-18ㄱ〉. (-고 있-) ; 예 니르러셔 머믈어 잇더니〈소학 6:45ㄱ〉. 疎拙호  내 道 뒷노니(朗鑒存愚直)〈두시 3:29ㄴ〉.
玉  바 넉시 갓 주069)
갓
① 마음껏. ② 한갓. ‘갓’은 고어사전류에 ‘한갓’으로 풀이되어 있으나 여기서 ‘갓’은 ‘만(漫)’에 대응하므로 ‘한껏’의 의미로 해석한다. 현대국어의 ‘한갓’은 국어사전에 ‘다른 것 없이 겨우’로 풀이되어 있다. ¶香 갓 옷곳 것 분 아니라 고로 맏 거슬 다 니르니라〈석상 13:39ㄱ〉. 그  블근 殿에 오리 갓 卿相이 尊니 아니러니라(當時上紫殿 不獨卿相尊)〈두시 16:3ㄱ〉.
도라오놋다 주070)
도라오놋다
돌아오는구나. 돌[歸]-+아#오-++옷+다.

【한자음】 화도성식춘풍면 환패공귀월야혼【춘풍면(春風面)을 지금 그림 속에서 볼 수 있음을 말한다. 혹자는 말하기를 모연수(毛延壽)가 그림을 덜 그렸다고 한다.】
【언해역】 그림자 춘풍(春風) 같은 낯을 보아 알 수 있으니, 차고 있는 옥은 달밤의 넋이 한갓 돌아오는구나!

千歲琵琶作胡語 分明怨恨曲中論昭君 주071)
소군(昭君)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 왕소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연지(선우의 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원제는 흉노에게 보내는 여성으로 후궁 중 가장 추한 여성으로 선택하기 위해 초상화에 그려진 가장 보기 흉한 여성을 선택한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던 장인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던, 왕소군은 가장 보기 흉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왕소군이 선택된 것이다. 황제에게 이별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원제는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말았고 격노한 원제는 화상의 목을 쳤다고 한다. 왕소군은 형주 남군(후베이 사시) 출신으로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고대 중국 사대 미인의 한 사람에 손꼽힌다. 두보의 「영회고적(詠懷古蹟)」이 왕소군을 읊은 시로 유명하며 이외에도 백거이의 「왕소군이수(王昭君二首)」가 있다.
이 適匈奴 주072)
흉노(匈奴)
기원전 3세기부터 5세기까지 몽골 및 중국 북부 지역에 존재한 유목제국. 기원전 3세기 무렵 몽골 고원 지역에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여,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중화인민공화국의 내몽골 자치구(內蒙古自治區), 간쑤성(甘肅省),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까지 지배하였다. 한나라와 군사적 충돌을 겪기도 하였고, 때로는 조공무역이나 결혼동맹을 하는 등 복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결국 한 무제 때 한나라의 공격으로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야 馬上애 彈琵琶 주073)
비파(琵琶)
몸체는 길이 60~90cm의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자루는 곧고 짧은 현악기.
야 以寄其恨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千歲 주074)
천세(千歲)
많은 세월. ‘천세(千歲)’는 ‘천재(千載)’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예 琵琶애 되 마 지니 주075)
지니
지으니. [作]-+으니. ¶지블 지 龍 치더니〈월천 36ㄱ〉. 지블 度量야 지미 빗내 됴히 아니노니(度堂匪華麗)〈두시 6:46ㄱ〉.
번득히 주076)
번득히
분명히. 번득이. 번득#-+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참조. 번득다. ¶번득히 ; 세 서린 時節 야 번득히 달옴 업스며(如三歲時야 完然無異며)〈능엄 2:9ㄱ〉. 번득히 怨恨 놀엣 가온 議論도다(分明怨恨曲中論)〈두시 3:68ㄴ〉. 번득- ; 이제 宗師ㅣ 두드료미 바 번득거늘(今夫宗師叩擊이 直下歷然커)〈능엄 4:55ㄴ〉. 내 모미 번득디 아니커니(妾身未分明)〈두시 8:67ㄴ〉. 번득번득이 ; 번득번득이 開元ㅅ 時節ㅅ 이리(歷歷開元事)〈두시 5:17ㄴ〉.
怨恨 놀엣 가온 議論도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천세비파작호어 분명원한곡중론소군(昭君)흉노(匈奴)로 가 말 위에서 비파(琵琶)를 연주하여 그 한을 위탁하였다.】
【언해역】 천세(千歲)에 비파(琵琶)에 오랑캐의 말을 지으니, 분명히 원한을 노래 가운데 의논하도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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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영회고적삼수(詠懷古跡三首) : 이 시는 766년(대력 원년) 가을에 기주(蘷州)에서 지은 것이다. 기주 지역의 고적을 돌면서 고적의 유래에 빗대어 자신의 처량함을 노래하였다. 원래는 5수인데, 여기에는 제1수, 제2수, 제3수만 수록되어 있고, 제4수와 제5수는 『두시언해』 권제6에 「영회고적이수(詠懷古跡二首)」의 제목으로 실려 있다. 기주(蘷州)와 삼협(三峽) 일대의 고적은 유신(庾信)의 살던 집, 송옥(宋玉)의 집, 소군의 마을, 영안궁(유비의 묘), 무후사(제갈양의 묘) 등이 있다. 왕소군(王昭君)에 대해서는 『고문진보 전집(古文眞寶前集)』에 수록되어 있는 「명비곡(明妃曲)」과 이 시 제3수에 실려 있는 ‘왕소군’의 주석 참조.
주002)
드틄 : 티끌의. 드틀[塵]+ㅅ. ¶六塵 여슷 가짓 드트리니 여슷 가짓 불휘예셔 니러나아 眞實ㅅ 智慧 드틀 무틸 드트리라 니라〈석상 13:38ㄴ〉.  가온 몰애와 드틀와 업슨 나리 업스니(舟中無日不沙塵)〈두시 1:44ㄱ〉.
주003)
지리(支離)히 : 흩어져.
주004)
 : 떠. -+어. ¶(물에 뜨다) ; 므레도  가디 아니야(水ㅣ 不能漂리니)〈석상 20:28ㄴ〉. 남기  니 호매 便安 히 업스니(漂梗無安地)〈두시 5:13ㄱ〉. (눈 뜨다) ; 눈먼 龍도 누니  祥瑞 보고〈석상 3:42ㄱ〉.  불 제 우 누 (颯颯開啼眼)〈두시 8:38ㄴ〉.
주005)
브터 니노라 : 흘러 다니노라. 븥-+어 니-++오+라. 15세기 국어의 ‘븥다’는 ‘①붙다, ②의지하다, ③정박하다, ④말미암다, ⑤불이 붙다, ⑥편지를 부치다, ⑦정박하다’ 등의 의미가 있다. ¶附는 브틀 씨라〈훈언 :12ㄴ〉. 龍을 더위자며 鳳을 브터 그 勢를 當디 몯리로소니(攀龍附鳳勢莫當)〈두시 4:17ㄴ〉.
주006)
삼협(三峽) : 주석에 월협(月峽), 파협(巴峽), 무협(巫峽)이라 되어 있는데, 주로 구당협(瞿塘峡), 서릉협(西陵峡), 무협(巫峽)을 삼협이라 한다.
주007)
월협(月峽) : 장강 삼협 중의 구당협(瞿唐峽).
주008)
파협(巴峽) : 장강 삼협 중의 서릉협(西陵峡).
주009)
무협(巫峽) : 장강 삼협 중의 하나.
주010)
머믈오 : 머물고. 머믈-+고.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蓬萊閣애 간 머믈오(暫住蓬萊閣)〈두시 15:25ㄱ〉.
주011)
다 : 함께. 같이. 더불어. ¶다 : 與 다 여 並 다 병〈광천 40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況在狄與戎)〈두시 5:29ㄴ〉. 사과 다 디 마롤 디니라〈내훈 1:55ㄱ〉. 可히 온 忠과 다 孝(可憐忠與孝)〈두시 24:4ㄴ〉.
주012)
갈호(羯胡) : 안녹산을 가리킨다.
주013)
안녹산(安祿山) : 당나라의 무장. 703(?)-757년. 안녹산의 반란을 일으켰다. 아버지가 이란계 소그드인, 어머니가 돌궐족이다. 안(安)이라는 성은 소그디아나의 부하라를 가리키는 중국식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명(兒名)은 안녹사(安綠絲)이며 녹산(禄山)이라는 이름은 빛을 의미하는 이란어 로우샨(rowshan)을 중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의 부족의 지도자인 카파간 카간이 716년에 죽게 되자, 일족들은 혼란을 피하여 중국으로 망명했다. 영주에서 호시아랑을 맡았는데 6개 국어를 능통하였다. 30대에는 장수 규를 섬겨서 무관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현종의 눈에 들어 하동절도사로 부임하였다가 난을 일으켰다.
주014)
명황(明皇) : 당 현종.
주015)
되 : 오랑캐의. 되[胡]+. ‘되’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우리나라에서는 북방 민족들이나 한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되’는 주로 ‘호(胡), 이(夷), 적(狄)’ 등에 대응하는 번역어로서 쓰이며 『두시언해』에서는 ‘호(胡)’에 대응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으나, 포로의 뜻인 ‘로(虜)’에 대응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마도 ‘두시 ’에서 포로는 모두 ‘오랑캐[胡, 夷, 狄]’이기 때문에 번역어로 쓰인 것이지 ‘되’ 자체에 ‘포로’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수호(愁胡)의 호(胡)를 ‘후(猴)’로 보아 ‘졸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되 : 夷 되 이, 戎 되 융, 蠻 되 만, 狄 되 뎍, 羗 되 , 虜 되 로〈훈몽 중:2ㄴ〉. 되 兵馬ㅣ 다시 외니라(胡兵更陸梁)〈두시 2:43ㄱ〉.
주016)
셤규믄 : 섬김은. 셤기-+우+ㅁ+은.
주017)
매 : 마침내. ¶다가 有에 자며 無에 걸면 매 邊見에 가리니(如其執有며 滯無면 則終歸邊見리니)〈영가 하:84ㄴ〉. 외로이 라 매 노피 몯놋다(孤飛卒未高)〈두시 17:23ㄱ〉.
주018)
자뢰(資賴) : 믿을. 자뢰-+ㄹ.
주019)
 : 때에. ᄢᅳ[時]+의. ¶그  太子ㅅ 나히 漸漸 라거시(爾時太子年漸長大)〈석상 3:5ㄱ〉. 처 亂  請 니노니(請陳初亂時)〈두시 6:37ㄴ〉.
주020)
몯얫노라 : 못하여 있노라. 몯#-+야#잇-++오+라.
주021)
유신(庾信) : 남북조시대의 시인. 513~581년. 4·6 변려문(騈儷文)의 대가로 남북조시대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 대표작으로 『애강남부(哀江南賦)』, 『고수부(枯樹賦)』 등이 있다.
주022)
애강남부(哀江南賦) : 남북조(南北朝)시대 유신(庾信)이 지은 사부(辭賦). 나라를 떠나온 슬픔과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
주023)
안직 : 가장. ‘안직’은 ‘최(最)’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의 독법으로도 ‘最’를 ‘[안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언해 문헌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번역노걸대』 등에서 보이는 ‘안직’은 ‘아직’의 뜻이다. ¶안직(가장) ; 驥子아 안직 너를 憐愛노라(驥子最憐渠)〈두시 8:48ㄱ〉. 나그내 예 머리 안직 셰니(客間頭最白)〈두시 23:17ㄴ〉. 안직(아직) ; 우리 잡말 안직 니디 마져(咱們閑話且休說)〈번노 상:17ㄱ〉. 오나라 오나라 안직 가디 말라 내 너려 말솜 무러지라(來來 且休去 我問伱些話)〈번노 상:26ㄱ〉.
주024)
소슬(蕭瑟)니 : 소슬하니. 즉 으스스하고 쓸쓸하다.
주025)
나해 : 나이에. 나ㅎ+애. ¶畜魅鬼ㅣ 畜ㅣ 주거 報ㅣ 다면 世間애 나해  類 외니라(畜魅之鬼ㅣ 畜死報盡면 生於世間야 多爲孤類니라)〈능엄 8:120ㄱ〉. 늘근 나해 녜 길헤 니노니(老年常道路)〈두시 2:14ㄴ〉.
주026)
강관(江關)앳 : 강의 관문의.
주027)
뮈우니라 : 움직이니라. 뮈-+우+니+라. 15세기 국어에는 ‘움직이다’의 뜻으로 ‘뮈-’와 ‘움즈기-’가 있다. ¶뮈- ; 聲聞 辟支佛 히 모미 뮈  몰라 니러 추믈 츠니(聲聞辟支佛等 不覺動身起舞)〈석상 11:15ㄱ〉. 兵戈 무여 니도다(兵戈動接聯)〈두시 20:20ㄱ〉. 움즈기다 ; 오직 그기 노로 야 能히 움즈기게 니〈남명 상:17ㄴ〉. 비치 수맷 龍 소니 움즈기고(光射潛虯動)〈두시 12:6ㄱ〉.
주028)
송옥(宋玉) : 중국 고대의 시인. 기원전 3세기 무렵. 굴원의 초사의 후계자. 『두시언해』에서는 고대의 훌륭한 시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를 참조할 것.
주029)
구변(九辯) : 송옥(宋玉)의 작품. 세상의 쇠망과 자신의 불우함을 탄식하고, 가을의 쓸쓸함을 슬퍼하는 구절이 유명하다.
주030)
러듀메 : 떨어짐에. ᄠᅥᆯ-+어#디-+우+ㅁ+에. 15세기 국어에서 ‘·디-’는 ‘떨어지다, 거꾸러지다’의 뜻으로 쓰였고, ‘:디-’는 ‘떨어뜨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타동사) ; 阿難이 듣고 다시 슬허 믈 디여(阿難이 聞已고 重復悲淚야)〈능엄 1:92ㄴ〉. 彈子 쇠로기  새 디놋다(彈落似鴞禽)〈두시 3:14ㄴ〉. (자동사) ; 내 님금 그리샤 後宮에 드르 제 하 벼리 눈  디니다〈용가 50〉. 수프렛 고 비 다니 臙脂ㅣ 디 고(林花著雨燕脂落)〈두시 11:21ㄱ〉.
주031)
기피 : 깊이. ‘기피’와 같은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주032)
알리로소니 : 알겠으니. 알-+리+도+소+니.
주033)
유아(儒雅) : 유아. 즉 시문(詩文)을 짓고 읊는 풍류의 도(道).
주034)
창망(悵望) : ① 슬퍼하면서 바라봄. ② 슬퍼하면서 불평을 품고 원망함.
주035)
천추(千秋) : 오래고 긴 세월.
주036)
슬허 : 슬퍼하여. 슳-+어.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주037)
라셔 : 바래서. 라-+아+셔. ¶바라보다 ;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時彼大師毘奢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 怱起 屈身頂禮於太子足 禮拜起已 四面顧視生大羞慚)〈석상 3:8ㄱ〉. 渭水ㅅ 셔 머리 횟돌아 라노라(回首清渭濱)〈두시 19:3ㄱ〉. 원하다 ;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석상 서:6ㄱ〉. 밤나 官軍의 오 다시 라다(日夜更望官軍至)〈두시 4:4ㄱ〉.
주038)
리노니 : 뿌리니. ᄲᅳ리-++오+니. ¶어마니미 드르시고 안답샤 낫라 아샤 것죽거시 믈 리여 시니라(其母聞是語已 心生悶絕 即前抱其太子 悶絕 以冷水灑面 良久乃穌)〈석상 11:20ㄴ〉. 눈믈 리고 님금 가 겨신  호니(揮涕戀行在)〈두시 1:2ㄱ〉.
주039)
머러 : 멀어. 멀-+어.
주040)
달아 : 달라. 다-+아. ¶中國에 달아 與文字로 不相流通(異乎中國야 與文字로 不相流通)〈훈언 1ㄴ〉. 그 젯 이리 녯 님그믜 敗亂과 다니라(事與古先別)〈두시 1:8ㄴ〉.
주041)
 : 함께.
주042)
나라 : 난다. 나-+오+라.
주043)
형주(荊州) : 형주(荊州)는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구주 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후한 13주 중 한 지역이며, 중심지는 한수(漢壽, 현재의 후난성 창더시 한서우현)과 양양(襄陽, 현재의 후베이성 샹양시)이다.
주044)
여신부(神女賦) : 송옥(宋玉)이 지은 부의 하나.
주045)
쇽졀업시 : 속절없이. 쇽졀#없-+이.
주046)
문장(文章)곳 : 문장만. 문장+곳. ‘곳’은 강세보조사이다. ¶密因곳 아니면 나다 나디 아니리며(非密因이면 不顯리니)〈능엄 1:8ㄴ〉. 즈믄 뫼곳 갓 제 하도다(千山空自多)〈두시 5:12ㄴ〉.
주047)
잇도소니 : 있으니. 잇-+도+소+니. ‘-도소니’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蕭育의  술위 便安히 定止 몯얏도소니(蕭車安不定)〈두시 3:5ㄴ〉’ 구절 참조.
주048)
메 : 꿈에. ᄭᅮ-+우+ㅁ+에.
주049)
료 : 생각하겠는가. #+리+오. 15세기 국어의 ‘-’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으나 전자의 용법이 강하다. 여기서도 전자로 쓰였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주050)
안직 : 가장[最].
주051)
민멸(泯滅)니 : 자취나 흔적이 아주 없어지니. 민멸++니.
주052)
쳐셔 : 가리켜서. 치[指]+어+셔. 15세기 국어의 ‘치-’는 ‘가리키다’와 ‘가르치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로 쓰였다. ¶(가리키다) ; 太子ㅣ 妃子ㅅ  치시며 니샤(太子以手指妃腹曰)〈석상 3:22ㄱ〉. 伊洛 손바 치 修復리니(伊洛指掌收)〈두시 1:8ㄱ〉. (가르치다) ; 訓民正音은 百姓 치시논 正 소리라〈훈언 1ㄱ〉. 프른 깃  옷 니븐 아 치고(訓喻靑衿子)〈두시 11:3ㄴ〉.
주053)
이제 니르리 : 이제까지. 니를-+이. ‘니르리’는 동사 ‘니를-’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연결되어 파생된 단어로 석독구결에서도 ‘至’로 표기되었다. -까지. 이르기까지.
주054)
의심(疑心)다 : 의심한다. 의심+++다.
주055)
명비촌(明妃村) : 왕소군(王昭君)의 마을. 진(晉)나라 사마소(司馬昭)의 휘(諱)를 피하여 소군(昭君)을 고쳐 명비(明妃)라 하였다.
주056)
귀주(歸州) : 당 고조(高祖) 때 기주(夔州)를 자귀현(姉歸縣)과 파동현(巴東縣)으로 나누었는데, 파동 현이 귀주가 되었다.
주057)
만학(萬壑) : 첩첩이 겹쳐진 많은 골짜기.
주058)
형문(荊門) : 현재 후베이 성 형문 시. 북쪽으로 강한(江漢) 평원(平原)이, 동쪽으로 무한(武漢)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삼협(三峡)이 면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소상팔경(瀟湘)을 바라보고 있어 형초문호(荆楚門戶)라 한다.
주059)
기러난 : 자라나. 길-+어#나-+ㄴ. 15세기의 ‘길-’은 ‘길다’의 뜻으로 형용사로 쓰이고, ‘자라다’의 뜻으로 동사로도 쓰였다. ¶길다(길다) ; 勞度差ㅣ 다가 몯야 제 모미 夜叉ㅣ 외야 모미 길오(勞度差不如 復變其身作夜叉鬼 形體長大)〈석상 6:33ㄱ〉. 잡드런 디 나리 길어다(提攜日月長)〈두시 15:23ㄱ〉. 길게 다 ; 실 혀믄 모로매 길에 고 모로매 하야켄 아니홀 디로다(繅絲須長不須白)〈두시 25:50ㄱ〉. 길다(자라다) ; 富貴예 나 기런 모로매 蠶桑 쉽디 아니호 아롤디니(生長富貴얀 當知蠶上之不易니)〈내훈 2:101ㄴ〉. 기다 ; 太子ㅣ 져머 겨시니 뉘 기려뇨 오직 大愛道ㅣ 기리다(或有說言 太子年幼誰能養育 唯大愛道能使長大耳)〈석상 3:3ㄱ〉. 이 南堀ㅅ 仙人이   길어 내니  端正야 世間애 쉽디 몯니(大王 是南窟仙人生育一女 姿容端正)〈석상 11:27ㄴ〉. 기르다 ; 果實  머겨 기르니 나히 열네히어시(採衆妙果 隨時將養 至年十四)〈석상 11:26ㄱ〉. 業은 尸鄕을 화  해 기르놋다(業學屍鄉多養雞)〈두시 8:33ㄴ〉. 길오다 ; 種種  주겨 神靈 플며 돗가비 請야 福 비러 목숨 길오져 다가 乃終내 得디 몯니(殺種種衆生解奏神 明呼諸魍魎請乞福祐 欲冀延年終不能得)〈석상 9:36ㄴ〉. 길우다 ; 種種앳 모딘 罪業을 길워 녜 有益디 아니 이 고(增長種種惡業 常為不饒益事)〈석상 9:17ㄱ〉. 집 西ㅅ녀긔 竹笋 길우노라 門을 다 로 여로니(堂西長筍別開門)〈두시 25:19ㄴ〉.
주060)
자대(紫臺) : 강엄(江淹)의 부(賦)에 나오는 말로 자금(紫禁)과 같은 말이다.
주061)
한 원제(漢元帝) : 전한의 제11대 효원황제 유석(劉奭). 기원전 76~기원전 33년. 현실주의자였던 선제와 달리 유교를 중시한 정책을 실시했다. 즉위하면서 황태자 시대의 학사인 소망지(蕭望之) 등 유생을 등용했지만, 선제시대부터 측근으로서 중용되고 있던 환관인 홍공(弘恭), 석현(石顯)과 대립해 실각했다. 이후 원제의 치세는 환관에 의해 마음대로 결정되었다. 원제는 원정을 앞에 두고, 세금을 경감해, 어려운 형법을 개정하는 등의 정책을 채용하여, 민중의 생활의 안정을 도모했다. 그 외 원제는 대규모 연회를 금지, 수렵용의 별장이나 황실 소유지의 경비를 억제하여 종묘 등 제사에 걸리는 경비를 삭감하고 재정의 건전화를 도모했지만, 재정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이르지 않았다. 한편으로 유교에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에 근거하는 정책도 실시되어 전매제를 폐지해 재정을 악화시키는 등 국정을 혼란시켰다. 선제에 의해 중흥된 국세는 다시 쇠약해져 원제의 황후 왕씨 일족으로부터 나온 왕망의 찬탈의 요인을 만들어 냈다.
주062)
모연수(毛延壽) : 한 원제 때의 궁중의 화공(畫工).
주063)
으리왇고 : (사이가) 떨어지게 하고. 벙을-+이+왇+고. ‘으리왇다’는 ‘을다’에 사동접미사와 강세접미사가 붙은 형식이다. ¶을다 ; 三昧예 드르샤 三昧力으로 耆闍崛山애 法座애 으로미 머디 아니(而入三昧샤 以三昧力으로 於耆闍崛山애 去法座不遠에)〈법화 7:14ㄱ〉. 으리다 ; 조 니예 츠면 절로 으리리라〈구간 1:3ㄱ〉. 으리왇다 ; 裴氏ㅅ 아비 엳 婚姻 으리왇더니 德武ㅣ 裴氏더브러 닐오(矩表離婚 德武謂裵曰)〈삼강(런던) 열:14ㄱ〉. 들에 란 마 사 무를 으리왇도다(喧已去人群)〈두시 7:30ㄴ〉.
주064)
올로 : 홀로. 올[獨]+로. ‘올로’에 대해서는 ‘중풍이 들어 배에서 베개를 베고 누어 회포를 쓰면서 호남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36운(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桃源엣 고 올로 조 해 노라(源花費獨尋)〈두시 3:16ㄴ〉’ 구절 참조.
주065)
머믈워 : 머무르게 하여. 머믈-+우+어.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이다.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拾遺 能히 머믈다 말다(拾遺能住否)〈두시 15:42ㄴ〉. 머믈우- ; 뉘 能히 네 얼구 머믈우리오(誰能留汝야 使不解脫哉리오)〈능엄 6:74ㄱ〉. 대 손 머믈웟 해 깁고(竹深留客處)〈두시 15:30ㄱ〉.
주066)
그리메 : 그림자.
주067)
알리로소니 : 알 수 있으니. 알-+리+도+소+니.
주068)
챗 : 차고 있는. 15세기의 ‘-어 잇-’ 중에는 현대국어로 번역하면 ‘-고 있-’으로 번역하여야 하는 것들도 있는데, 여기의 ‘-어 잇-’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어 있-) ; 즉자히 入定야 펴엣던  구필 예(即入禪定 屈伸臂頃)〈석상 6:2ㄱ〉. 모미 라가고져 나 病야 床애 누어 잇노라(身欲奮飛病在床)〈두시 19:17ㄴ-18ㄱ〉. (-고 있-) ; 예 니르러셔 머믈어 잇더니〈소학 6:45ㄱ〉. 疎拙호  내 道 뒷노니(朗鑒存愚直)〈두시 3:29ㄴ〉.
주069)
갓 : ① 마음껏. ② 한갓. ‘갓’은 고어사전류에 ‘한갓’으로 풀이되어 있으나 여기서 ‘갓’은 ‘만(漫)’에 대응하므로 ‘한껏’의 의미로 해석한다. 현대국어의 ‘한갓’은 국어사전에 ‘다른 것 없이 겨우’로 풀이되어 있다. ¶香 갓 옷곳 것 분 아니라 고로 맏 거슬 다 니르니라〈석상 13:39ㄱ〉. 그  블근 殿에 오리 갓 卿相이 尊니 아니러니라(當時上紫殿 不獨卿相尊)〈두시 16:3ㄱ〉.
주070)
도라오놋다 : 돌아오는구나. 돌[歸]-+아#오-++옷+다.
주071)
소군(昭君) : 왕소군(王昭君). 기원전 1세기. 왕소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 복주누약제 선우(復株累若鞮單于)의 연지(선우의 처)로,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원제는 흉노에게 보내는 여성으로 후궁 중 가장 추한 여성으로 선택하기 위해 초상화에 그려진 가장 보기 흉한 여성을 선택한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던 장인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던, 왕소군은 가장 보기 흉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왕소군이 선택된 것이다. 황제에게 이별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원제는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지만, 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말았고 격노한 원제는 화상의 목을 쳤다고 한다. 왕소군은 형주 남군(후베이 사시) 출신으로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고대 중국 사대 미인의 한 사람에 손꼽힌다. 두보의 「영회고적(詠懷古蹟)」이 왕소군을 읊은 시로 유명하며 이외에도 백거이의 「왕소군이수(王昭君二首)」가 있다.
주072)
흉노(匈奴) : 기원전 3세기부터 5세기까지 몽골 및 중국 북부 지역에 존재한 유목제국. 기원전 3세기 무렵 몽골 고원 지역에서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하여, 전성기에는 시베리아 남부, 만주 서부, 중화인민공화국의 내몽골 자치구(內蒙古自治區), 간쑤성(甘肅省), 신장 위구르 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까지 지배하였다. 한나라와 군사적 충돌을 겪기도 하였고, 때로는 조공무역이나 결혼동맹을 하는 등 복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결국 한 무제 때 한나라의 공격으로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주073)
비파(琵琶) : 몸체는 길이 60~90cm의 둥글고 긴 타원형이며, 자루는 곧고 짧은 현악기.
주074)
천세(千歲) : 많은 세월. ‘천세(千歲)’는 ‘천재(千載)’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75)
지니 : 지으니. [作]-+으니. ¶지블 지 龍 치더니〈월천 36ㄱ〉. 지블 度量야 지미 빗내 됴히 아니노니(度堂匪華麗)〈두시 6:46ㄱ〉.
주076)
번득히 : 분명히. 번득이. 번득#-+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참조. 번득다. ¶번득히 ; 세 서린 時節 야 번득히 달옴 업스며(如三歲時야 完然無異며)〈능엄 2:9ㄱ〉. 번득히 怨恨 놀엣 가온 議論도다(分明怨恨曲中論)〈두시 3:68ㄴ〉. 번득- ; 이제 宗師ㅣ 두드료미 바 번득거늘(今夫宗師叩擊이 直下歷然커)〈능엄 4:55ㄴ〉. 내 모미 번득디 아니커니(妾身未分明)〈두시 8:67ㄴ〉. 번득번득이 ; 번득번득이 開元ㅅ 時節ㅅ 이리(歷歷開元事)〈두시 5:17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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