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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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을 풀어내며 5수[遣興五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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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을 풀어내며 5수[遣興五首]


遣興五首 주001)
견흥오수(遣興五首)
이 시는 759년(건원 2)에 두보가 진주(秦州)에 있을 때 지었다. 제1수는 공명(孔明)과 혜강(嵇康)이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얻는 것이 소중함을 읊었고, 제2수는 방덕공(龐德公)이 난리를 피해 은거한 것을 읊었으며, 제3수는 도연명(陶淵明)이 자신의 이상을 펴지 못한 것을 빌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으며, 제4수는 하지장(賀知章)의 높은 품격을 찬탄하였고, 제5수는 맹호연(孟浩然)이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음을 애도하였다.

견흥 오수
(흥을 풀어내며 5수)

〈첫째 수〉

蟄龍三冬臥 老鶴萬里心【三冬 冬三朔이라 此 以興賢士 未遇之時니라】

蟄藏 주002)
칩장(蟄藏)
숨어 있는.
龍 三冬애 주003)
삼동(三冬)애
삼동(三冬)에. 즉 음력으로 동짓달, 섣달, 정월을 말한다.
누웻고 주004)
누웻고
누워 있고.
늘근 鶴 萬里예 갈  뒷도다 주005)
뒷도다
두고 있도다. 두-+어#잇-+도+다. ¶ 두겨시다 듣고 婚姻 求노다(聞君有女 欲求婚姻)〈석상 11:28ㄱ〉. 나라히 乾坤의 쿠믈 두겨시니(國有乾坤大)〈두시 8:10ㄴ〉.

【한자음】 칩룡삼동와 노학만리심【삼동(三冬)은 겨울 삼삭(三朔)이다. 이것은 현명한 선비를 일으킴에 만나지 못한 때이다.】
【언해역】 칩장(蟄藏)한 용(龍)은 삼동(三冬)에 누워 있고, 늙은 학(鶴)은 만 리(萬里)에 갈 마음을 두고 있도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7ㄴ

昔時賢俊人 未遇猶視今【言昔人의 未遇ㅣ 視今人而無異也ㅣ라】

녯 時節ㅅ 어딘 주006)
어딘
어진.
사ᄅᆞ 주007)
사ᄅᆞ
사람의. 사+. ‘’는 내포문의 주어에 붙는 속격조사이다. 이 구절은 ‘[사 님금 맛나디 못홈]이’로 분석되며 주어는 명사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는 주어인 명사절의 주어이다.
님금 맛나디 주008)
맛나디
만나지. 맞나[湡]-+아.
못호미 이젯 사 봄 니라 주009)
니라
같으니라. -+니+라.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다 ; 太子ㅣ 金으로 겨지븨  시고 겨지븨 德을 쓰샤 이 야 妃子 사모리라(使上工立妙金像 女人德義如吾所疏 能應娉耳)〈석상 3:11ㄱ〉. 두들겟 든 鶺鴒과 니라(原情類鶺鴒)〈두시 24:8ㄴ〉. 다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 :4ㄱ〉. 어느 말로 녜 려뇨(何由似平昔)〈두시 7:26ㄱ〉.

【한자음】 석시현준인 미우유시금【옛 사람이 만나지 못함이 지금 사람이 다르지 않음을 본다는 말이다.】
【언해역】 옛 시절(時節)의 어진 사람이 임금 맛나지 못함이 지금의 사람 봄 같네!

嵇康不得死 孔明有知音

嵆康 주010)
혜강(嵆康)
앞의 주를 참조.
 됴히 주구믈 주011)
주구믈
죽음을. 죽-+우+ㅁ+을.
得디 몯고 주012)
득(得)디 몯고
얻지 못하고. 得-+디 몯-+고. 15세기 국어의 장형부정문의 보조적 연결어미는 ‘-디’로 구개음화하여 현대국어의 ‘-지’가 되었다. 부정문 보문자에 대해서는 ‘중풍이 들어 배에서 베개를 베고 누어 회포를 쓰면서 호남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36운(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일우 몯야 므를 비 오 노라(無成涕作霖)〈두시 3:19ㄱ〉’ 구절 참조.
孔明 주013)
공명(孔明)
제갈양은. ‘공명’은 제갈양의 자(字)이다.
 알 리 주014)
 알 리
마음 알 이. 즉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문은 ‘지음(知音)’이다.
이시니라 주015)
이시니라
있으니라. 이시-+니+라.

【한자음】 혜강부득사 공명유지음
【언해역】 혜강(嵆康)은 좋게 죽음을 얻지 못하고, 공명(孔明)은 마음 알아줄 이 있네!

又如隴底松 用捨在所尋【此 言賢士ㅣ 如在山之木니 用捨ㅣ 在上之人 尋與不尋耳니라】

묏 미틧 솔 주016)
묏 미틧 솔
산의 밑의 소나무. 밑+의+ㅅ.
니 거나 리거나 호미 주017)
거나 리거나 호미
쓰거나 버리거나 함이. ‘-거나 -거나 호미’는 선택 나열을 표현하는 구문이다. ¶이제 出家 아니샤 닐웨 디나면 轉輪 王位 自然히 오시리다(今不出家過七日已 轉輪王位自然來應)〈석상 3:24ㄱ〉. 장 술 머거셔 나니거나 드덧거나 호 밋고 이쇼라(痛飲信行藏)〈두시 2:41ㄴ〉.
사 조매 주018)
조매
찾음에. -+옴+애.
잇니라

【한자음】 우여롱저송 용사재소심【이것은 현명한 선비는 산에 있는 나무와 같으므로 나무가 쓰이고 버려짐은 산 위의 사람이 살피는가 그렇지 못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또 산 밑의 소나무 같으니, 쓰거나 버리거나 함이 사람의 찾음에 있네!

〈둘째 수〉

大哉霜雪幹 歲久爲枯林【霜雪幹은 指松다 此 傷有才者ㅣ 不見用也ㅣ라】

큰 서리와 누넷 주019)
누넷
눈의. 눈[雪]+에+ㅅ.
읏드미 주020)
읏드미
으뜸이. 큰 줄기.
오라 주021)
오라
오래되어. 오라-+아. 15세기의 ‘오라-’는 정상적인 형용사로 기능했으나 현대국어의 ‘오래-’는 활용에 제약이 있다.
이운 주022)
이운
시든. 마른. 이울[枯]-+ㄴ. ‘이울다’는 국어사전에 ‘①꽃이나 잎이 시들다. ②점점 쇠약하여지다. ③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지다.’ 등의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다. 참조. 이울다. 이울우다. ¶뎌 남 이울에 면 내 그 오시리라 고(我今當作方便殺菩提樹 可得與我常相娛樂)〈석상 24:41ㄴ〉. 오히려 이우러 이슈믈 슬티 말라(忽悲尙枯槁)〈두시 5:35ㄱ〉.
수프리 외옛도다 주023)
외옛도다
되어 있도다. 외-+어#잇-+도+다. ‘외어’는 ‘외야’로도 나오는데 ‘야/여’는 ‘외’의 음절 부음 ‘y’의 영향으로 ‘아/어’가 바뀐 것이다. ¶ㅇ 입시울쏘리 아래 니 쓰면 입시울 가야 소리 외니라(ㅇ 連書脣音之下면 則爲脣輕音니라)〈훈언 :12ㄱ〉. 기리 兄弟 외요 結約노라(永結爲弟昆)〈두시 1:13ㄴ〉.

【한자음】 대재상설간 세구위고림【상설간(霜雪幹)은 소나무를 가리킨다. 이것은 재주 있는 자가 쓰이지 않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언해역】 큰 서리와 눈의 큰 줄기가 해 오래되어, 시든 수풀이 되었도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8ㄱ

昔者龐德公 未曾入州府龐德公 주024)
방덕공(龐德公)
동한 말의 명사. 본명은 알 수 없고 자는 상장(尙長)이다. 형주(荆州) 양양(襄陽) 사람으로 양양의 남쪽에 있는 현산(岘山)에서 몸소 경작을 하였다. 사마의(司馬懿), 제갈양(諸葛亮), 서서(徐庶) 등과 친하였다.
襄陽 주025)
양양(襄陽)
후베이성의 도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명한 두 도시 샹양과 판청이 결합해 형성되었다.
人이니 隱峴山 주026)
현산(峴山)
방덕공이 홀로 경작을 하고 살았다는 양양 남쪽의 산.
니라】

주027)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龐德公이 일즉 주028)
일즉
일찍. 일찍이. ¶부톄 니샤 大王아 네 일즉 업디 아니야셔 엇뎨 업수믈 아다(佛言샤 大王아 汝ㅣ 未曾滅야셔 云何知滅다)〈능엄 2:4ㄴ〉. 奸邪 아쳐라 일즉 힘 토니라(嫉邪嘗力爭)〈두시 24:19ㄱ〉.
올 주029)
올
고을에. 올ㅎ+.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 이 經을 너비 펴며(村城國邑 空閑林中 若有流布此經)〈석상 9:40ㄱ〉. 中歲에 녯 올셔 貢擧요라(中歲貢舊鄉)〈두시 2:40ㄱ〉.
드러가디 아니니라 주030)
아니니라
아니하니라. 아니-+니+라.

【한자음】 석자방덕공 미증입주부【방덕공(龐德公)은 양양(襄陽) 사람이니 현산(峴山)에 은거하였다.】
【언해역】 옛 방덕공(龐德公)이 일찍 고을에 들어가지 아니하였네!

襄陽耆舊間 處士節獨苦

襄陽ㅅ 늘근 사 주031)
양양(襄陽)ㅅ 늘근 사
양양의 늙은 사람의. 즉 방덕공(龐德公)과 같은 은사들의.
예 주032)
예
사이에. +예.
處士 節介ㅣ 호올로 주033)
호올로
홀로.
淸苦도다 주034)
청고(淸苦)도다
‘청고(淸苦)’는 청렴하게 고생을 견디며 산다는 뜻이다.

【한자음】 양양기구간 처사절독고
【언해역】 양양(襄陽)의 늙은 사람의 사이에, 처사(處士)의 절개(節介)가 홀로 청고(淸苦)하도다!

豈無濟時策 終竟畏羅罟

엇뎨 주035)
엇뎨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곰 사미로라 리오(何以爲蒸黎)〈두시 4:12ㄱ〉.
時節 주036)
시절(時節)
세상의 형편. 당시 혼란스런 정세와 싸움이 계속됨을 이른다.
거느리츌 주037)
거느리츌
구제할. 거느리-+치+우+ㄹ. ¶泉公禪師ㅣ 그 무레 소사나샤 千頃ㅅ 徒衆 거느리신 餘睱애 그 놀애 句句ㅅ 예 호아 頌 지시니(泉公禪師ㅣ 頻出其類샤 千頃領徒之暇애 於其歌句句之間애 分爲之頌시니)〈남명 하:77ㄱ〉. 乾坤을 고텨 時世ㅣ 거느리츄믈 도다(整頓乾坤濟時了)〈두시 4:17ㄱ〉.
謀策이 업스리오마 주038)
업스리오마
없겠는가마는. 없-+으리+오+마.
ᄆᆞ매 주039)
ᄆᆞ매
마침내. 끝내. ¶根本이 善티 아니면 마매 善을 일우디 몯리라(根本이 不善면 終莫成善리라)〈능엄 6:94ㄴ〉.
그므레 걸가 주040)
걸가
〈그물에〉 걸릴까. 걸-+가. ‘걸-’은 자타동 양용 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자동사) ; 엇뎨 마래 거러 理 惑리오〈영가 하:34ㄱ〉. 眞實로 거부비 그므레 거러시며(信然龜觸網)〈두시 19:9ㄱ〉. (타동사) ; 거어나 을히어나  어나 모 거러 잇거든(鵝鴨及鷄骨鯁在喉中)〈구간 6:9ㄴ〉. 碧海 그륜 新圖 거러 뵈놋다(碧海掛新圖)〈두시 16:43ㄴ〉.
저흐니라 주041)
저흐니라
두려워하니라. 젛-+으니+라. ¶내 凡愚에 여러 불어 니디 아니호 뎨 分別야 자바 나 사가 전노라(我ㅣ 於凡愚에 不開演 恐彼分別야 執爲我노라)〈능엄 5:13ㄴ〉. 늘근 나해 幽獨호 전노라(衰年怯幽獨)〈두시 25:3ㄴ〉.

【한자음】 기무제시책 종경외라고
【언해역】 어찌 시절(時節) 구제할 모책(謀策)이 없겠는가마는, 마침내 그물에 걸릴까 두려워하네!

林茂鳥有歸 水深魚知聚 舉家隱依鹿門 劉表焉得取【鳥歸林魚聚水 比士之隱深山니라 荊州 주042)
형주(荊州)
형주(荊州)는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구주 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후한 13주 중 한 지역이며, 중심지는 한수(漢壽, 현재의 후난성 창더시 한서우현)와 양양(襄陽, 현재의 후베이성 샹양시)이다.
刺史 주043)
자사(刺史)
주목(州牧). 한나라의 조정에서 상설한 벼슬로 각 주 안에 있는 군(郡) 태수들을 감찰하는 직위.
劉表 주044)
유표(劉表)
후한 말의 정치가. 142~208년.
ㅣ 數迎請德公 주045)
덕공(德公)
방덕공.
야 携妻子야 隱鹿門山 주046)
녹문산(鹿門山)
방덕공이 가족을 이끌고 은거하였다는 산.
不返니라】

수프리 기면 주047)
기면
무성(茂盛)하면. 깃-+으면. ¶뒷 東山이 淸淨고 납기 盛히 기니(可於後園 其中清淨 林木茂盛)〈석상 11:37ㄱ〉.
새 가미 잇고 므리 기프면 고기 모도 주048)
모도
모임을. 몯-+오+ㅁ+. ‘몯-’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눈 머니와 귀 머그니와 입 버우니와 寃讎 믜우니 몯 苦와(所謂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盲과 聾과 瘖瘂와 寃讎會苦와 愛別離苦와)〈능엄 7:43ㄱ〉. 공경홈은 德의 몯 거시니 能히 공경면 반시 德이 이실디라〈소학 4:34ㄴ〉.
아니 지비 다 鹿門 주049)
녹문(鹿門)
녹문산(鹿門山). 한강(漢江)의 동안(東岸)에 있다. 한나라 말기의 저명한 은상인 방덕공(龐德公)이 벼슬을 마다하고 가족을 끌고 산으로 들어가 약을 캐면서 살았다. 이 일 이후로 녹문산은 은자의 성지가 되었다.
에 隱居니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8ㄴ

劉表ㅣ 엇뎨 주050)
엇뎨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야아 一萬 사을 어더(何以爲蒸黎)〈두시 4:14ㄴ〉.
시러곰 주051)
시러곰
능히. ‘시러곰’은 문증되지 않는 ‘*실-’이라는 용언을 상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실-+어+곰’으로 분석될 수 있다. ‘시러곰’은 항상 ‘得’의 번역에 쓰였다. ¶이제 누의 나히 늙고 나도 늙그니 비록 조 누의 위야 쥭을 글히고져  다시 시러곰 려〈번소 9:79ㄱ〉. 시러곰 디나가  妙處 다 보노라(得盡所曆妙)〈두시 1:47ㄱ〉.
자리오 주052)
자리오
잡겠는가. 잡-+리+오.

【한자음】 임무조유귀 수심어지취 거가은록문 유표언득취【조귀림 어취수(鳥歸林魚聚水)는 선비가 깊은 산에 은거하는 것을 비유한다. 형주자사(荊州刺史) 유표(劉表)가 자주 덕공(德公)을 청하여 맞이하거늘 처자(妻子)를 데리고 녹문산(鹿門山)에 은거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언해역】 수풀이 무성하면 새 감
(깃듦)
이 있고, 물이 깊으면 고기 모임을 아니, 집이 다 녹문(鹿門)에 은거(隱居)하니, 유표(劉表)가 어찌 능히 잡겠는가?

〈셋째 수〉

陶潛避俗翁 未必能達道

陶潛 주053)
도잠(陶潛)
중국 동진의 시인. 365~427년. 자는 연명(淵明)이다. “내 5두미(斗米)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 말은 현(縣)을 시찰하러 온 군의 관리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현령의 자리를 내동댕이쳤을 때의 명문구이다. 그때 전원으로 돌아갈 심경을 말한 것이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 世俗 에여 주054)
에여
피하여. 에[避]-+어. ¶길흘 양야도 일 거름을 에디 아니며〈소학 5:83ㄱ〉. 사 에여 가 諫諍던 긄草 브레 오(避人焚諫草)〈두시 6:15ㄱ〉.
니 한아비니 주055)
한아비니
할아비니. 한+아비+니. ‘아비’ 또한 원래 ‘압’과 접미사 ‘이’가 결합한 것이다.
반기 주056)
반기
반드시[必]. ¶네 이제 반ᄃᆞ기 알라〈월석 17:78〉. 오며  體 반기 알며(必驗升沉體)〈두시 12:2ㄴ〉.
能히 道理 아디 몯니라 주057)
몯니라
못하니라. 몯-+니+라.

【한자음】 도잠피속옹 미필능달도
【언해역】 도잠(陶潛)은 세속을 피해 다니는 할아비니, 능히 반드시 도리를 알지 못하네!

觀其著詩集 頗亦恨枯槁

주058)
스스로. 제가. ‘제’는 재귀대명사로 주격일 경우에는 ‘:제(상성)’, 관형격일 경우에는 ‘제(평성)’으로 쓰였다. 자기의. 평성의 ‘제’는 ‘저+관형격’ 구성이고, 상성의 ‘제’는 ‘저+주격’ 구성이다.
지 주059)
지
지은. 짓-+오+ㄴ. ¶著述은 글 지 씨라〈영가 서:17ㄱ〉. 새지비 도혀 글 지 직니(茅屋還堪賦)〈두시 10:13ㄴ〉.
詩集을 보니 모 주060)
모
자못[頗]. 한시의 의문사 ‘하(何)’를 번역한 것이다. 〉/믇//믓〉몯. ‘모’는 현대국어의 ‘자못’의 15세기 어형이나 수사의문문의 번역에서 의문사의 번역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특히 『두시언해』에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然이나 以今視昔건댄 稍多違戾니 專門舊學 不免矛盾려니와)〈능엄 1:22ㄴ〉. 江湖앳 興心이 모 좃다(江湖興頗隨)〈두시 15:10ㄴ〉. (의문사의 번역어) ; 너비 내 아로로 여러  깃기시니 모 盛시다(普以吾覺로 悅可衆心시니 何其盛哉라)〈남명 서:3ㄱ〉. 薏苡로 하로미 모 도다(薏苡謗何頻)〈두시 16:6ㄴ〉.
이우로 주061)
이우로
시듦을. 이울[枯]-+오+ㅁ+. ‘이울다’는 국어사전에 ‘①꽃이나 잎이 시들다. ②점점 쇠약하여지다. ③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지다.’ 등의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다. 참조. 이울다. 이울우다. ¶뎌 남 이울에 면 내 그 오시리라 고(我今當作方便殺菩提樹 可得與我常相娛樂)〈석상 24:41ㄴ〉. 오히려 이우러 이슈믈 슬티 말라(忽悲尙枯槁)〈두시 5:35ㄱ〉.
슬허도다 주062)
슬허도다
슬퍼하도다. 슳-+브+어#-+도+다. 15세기 국어의 ‘슳다’는 ‘슬퍼하다’의 뜻이며 ‘슳다’에 형용사 파생 접미사 ‘-/브-’가 결합하여 형성된 형용사가 ‘슬프다’이다. 그런데 ‘슬프다’에서 ‘-어다’가 결합하여 ‘슬퍼다’로 발전하여 현대국어의 ‘슬퍼하다’가 된 반면에 파생의 주체이었던 ‘슳다’는 소실되었다. ‘슳다’와 같은 운명을 보인 단어들로는 ‘믜다, 다’ 등이 있다. ‘슬프다. 슳다(슬퍼하다). 슳다(싫다). 슲다. 슬다. 슬여다. 슬하야다. 슬여다. 슬허다. 슬흐여다. 슬희다. 슬희여다. 슬히. 슬히다’ 참조. ¶슬허다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是時須達悲心憐傷)〈석상 6:38ㄱ〉. 늙고 큰 藤蘿를 슬허고 굽고 서린 남그란 기피 입노라(惆悵老大藤 沈吟屈蟠樹)〈두시 9:14ㄱ〉. 슳다(슬퍼하다) ; 王이 더욱 슬허 니샤 이 네 가짓 願은 녜록브터 일우니 업스니라(王聞重悲 此四願者古今無獲)〈석상 3:21ㄴ〉. 나 涅槃 後에 天上이며 人間이며 一切 衆生이 내 舍利 어더 슬흐며 깃거(我涅槃後 天上人間一切衆生 得我舍利悲喜)〈석상 23:6ㄱ〉.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展轉仲宣哀)〈두시 3:9ㄴ〉. 그 소리 슬허 셟고 이베 피 흘리니(其聲哀痛口流血)〈두시 17:5ㄱ〉. 님금 히 조보 슬허 라더니라(悵望王土窄)〈두시 24:14ㄴ〉. 슳다(싫어하다) ; 이러틋 布施ㅣ 種種 微妙로 깃거 슬호미 업서 無上道 求며(如是等施ㅣ 種種微妙로 歡喜無厭야 求無上道며)〈법화 1:83ㄱ〉. 슳다(싫어하다) ;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暮年漂泊恨)〈두시 3:19ㄴ〉. 슬다(슬퍼하다) ; 摩耶ㅣ 더 슬샤  무르샤 네 아래브터 부텨를 뫼 니며 듣 잇니(時摩訶摩耶聞此語已 又憎感絶卽問阿難 汝於往昔侍佛已來 聞世尊說)〈석상 23:31ㄴ〉. 슬다(싫어하다) ; 사미 受苦 맛나아 老病死 슬야 거든 위야 涅槃 니샤 受苦 업게 시며(若人遭苦 厭老病死 爲說涅槃 盡諸苦際.)〈석상 13:18ㄱ〉. 슬프다 ; 이 그른 잇 고대 流通커 기튼 자최 괴외호미 슬프도다  슬프다 셜우믈 매 얼규니 슬푸믄 一方 누니 滅시니(斯文은 在庱에 流通이어 遺跡은 堪悲牢落이로다 嗚呼哀哉라 痛纏心腑호니 所嗟 一方眼이 滅시니)〈영가 서:15ㄱ〉.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 셜워 우러 슬픈 미 닐에 디 마롤디어다(莫令回首地 慟哭起悲風)〈두시 5:9ㄱ〉. 슬퍼다 ; 내 항거시 여러이 멀니 귀향가거늘 뉘 며이고 고 장 슬허거 본 사이 다 슬퍼더라〈속삼강 중:충5ㄴ〉.

【한자음】 관기저시집 파역한고고
【언해역】 제 지은 시집을 보니, 자못 또 시듦을 슬퍼하도다!

達生豈是足 默識蓋不早

生理 주063)
생리(生理)
생활하는 습성이나 본능.
通達히 주064)
통달(通達)히
통달하게. 통달++이.
아로 엇뎨 주065)
엇뎨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너희  엇뎨 님 힘 닙와 쇼믈 알리오(汝等豈知蒙帝力)〈두시 4:14ㄴ〉.
주066)
이것을. 15세기의 ‘이’는 대명사와 관형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용법으로 쓰였다. ¶대명사 ; 내 이 爲야 어엿비 너겨(予ㅣ 爲此憫然야)〈훈언 2ㄴ〉. 이 내 애와토  논 고디라(臣甫憤所切)〈두시 1:2ㄱ〉. 관형사 ; 이  부텻 나히 닐구비러시니〈석상 3:7ㄱ〉. 어느 나래 이 軍卒을 習호믈 말려뇨(幾日休練卒)〈두시 1:7ㄱ〉.
足리오 안 로 아로 주067)
안 로 아로
안 마음으로 앎을.
주068)
일찍. 일찍이. ¶남진 겨집은 人倫의 큰 리오 일 주그며 오래 사롤 니(夫婦 人倫大綱이며 夭壽之萌也ㅣ라)〈번소 7:30ㄱ〉. 셴 머리 보 일 아니론 고 내 알언마(自知白發非春事)〈두시 11:21ㄴ-22ㄱ〉.
몯도다 주069)
몯도다
못하도다. 몯-+도+다.

【한자음】 달생기시족 묵식개부조
【언해역】 생리(生理)를 통달(通達)하게 앎은 어찌 이것을 족하겠는가? 안 마음으로 앎을 일찍 못하도다!

有子賢與愚 何其掛懷抱【陶潛이 有責子詩니라】

잇 아 주070)
아
아들의. 아[子]+. ‘’는 내포문 주어에 쓰인 속격 조사.
어딜며 주071)
어딜며
어질며. 어딜-+며.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 3:2ㄱ〉. 슬픈 들 머거셔 네 어디로 아노라(含悽覺汝賢)〈두시 2:6ㄱ〉.
다 주072)
다
그리고. ‘다’은 ‘함께’와 ‘그리고’의 뜻이 있다. ¶다 : 與 다 여 並 다 병〈광천 40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況在狄與戎)〈두시 5:29ㄴ〉. 사과 다 디 마롤 디니라〈내훈 1:55ㄱ〉. 可히 온 忠과 다 孝(可憐忠與孝)〈두시 24:4ㄴ〉.
어료 주073)
어료
어리석음을. 어리-+오+ㅁ+. 15세기 국어의 ‘어리-’는 ‘어리석다’의 뜻이다.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훈언 2ㄱ〉. 乃終내 得디 몯니 어리여 미혹야 邪曲 보 信(終不能得 愚癡迷惑 信邪倒見)〈석상 9:36ㄴ〉. 진실로 이 어디니와 어리니왜 다니라(固應賢愚異)〈두시 16:20ㄱ〉.
엇뎨 주074)
엇뎨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시러곰 西極으로 브터(安得自西極)〈두시 4:22ㄴ〉.
그 매 거니오 주075)
거니오
거는가? 걸-+니+오. ‘걸다’는 자동사와 타동사 양자로 쓰인 자타동 양용동시이다. 참조. 걸이다. ‘걸-’은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걸다(자동사) ; 엇뎨 마래 거러 理 惑리오〈영가 하:34ㄱ〉. 眞實로 거부비 그므레 거러시며(信然龜觸網)〈두시 19:9ㄱ〉. 걸다(타동사) ; 거어나 을히어나  어나 모 거러 잇거든(鵝鴨及鷄骨鯁在喉中)〈구간 6:9ㄴ〉. 碧海 그륜 新圖 거러 뵈놋다(碧海掛新圖)〈두시 16:43ㄴ〉. 걸이며 딘 긴 무 시며〈법화 서:16ㄱ〉. 엇뎨 虞人의 그 믌 가온 걸여 이슈믈 보니오(胡爲見羈虞羅中)〈두시 5:50ㄱ〉.

【한자음】 유자현여우 하기괘회포도잠(陶潛)이 아들을 꾸짖는 시(詩)가 있다.】
【언해역】 있는 아들의 어질며 그리고 어리석음을 어찌 그 마음에 거는가?

〈넷째 수〉

賀公 주076)
하공(賀公)
하지장(賀知章). 오(吳)나라 사람.
雅吳語 在位常清狂知章 吳人이라 清狂 주077)
청광(清狂)
미친 척함. 청광은 『두시언해』 제2권에 수록되어 있는 「장유(壯遊)」에 “清狂 不狂而狂ㅣ니 猶白癡也ㅣ라〈두시 2:40ㄴ〉”라는 주석이 있다. 해석하면, “청광은 미치지 않고 미친 것을 말하는 백치(白癡)와 같다.”이다.
 見前注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9ㄱ

다】

賀公이 녜 주078)
녜
항상. ‘상(常)’에 대한 번역어이다. ¶ 慈觀을 녜  보아 울월오져 願홀 띠니라(及慈觀을 常願常瞻仰이니라)〈법화 7:93ㄴ〉. 녜  마자 뇸 토다(常如中風走)〈두시 2:48ㄴ〉.
吳國ㅅ 마 더니 벼슬야셔 녜 淸狂더니라 주079)
청광(淸狂)더니라
청광(淸狂)하였다. 미친 척하였더라.

【한자음】 하공아오어 재위상청광지장(知章)은 오나라 사람이다. 청광(淸狂)은 앞의 주를 보라.】
【언해역】 하공(賀公)이 항상 오나라의 말을 하더니, 벼슬하여서 항상 청광(淸狂)하였네!

上疏乞骸骨 黃冠歸故鄉【黃冠 道士冠이라】

上䟽야 주080)
상소(上䟽)야
상소하여.
모 비러 주081)
모 비러
몸을 빌려. 빌-+어. ‘빌-’과 ‘빌이-’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주려셔 집마다  빌오(飢籍家家米)’ 구절 참조.
누른 곳갈로 주082)
누른 곳갈로
누른 고깔로. 즉 도사가 되어.
故鄕애 도라가니라 주083)
도라가니라
돌아가니라. 돌-+아#가-+니+라.

【한자음】 상소걸해골 황관귀고향【황관(黃冠)은 도사(道士)의 관(冠)이다.】
【언해역】 상소(上䟽)하여 몸을 빌려, 누른 고깔로 고향에 돌아가는구나!

爽氣不可致 斯人今則亡

淸爽 주084)
청상(淸爽)
맑고 시원한.
氣運 可히 닐위디 주085)
닐위디
이르지. 니르-+우+이+디. ‘닐위다’는 ‘~에 이르다’의 뜻인 ‘니르다/니다’에 사동접미사 ‘우’와 사동접미사 ‘이’가 접미된 사동사이다. ¶내 닐위디 몯 젼로 아니 드롬과 호미 밥 닐옴 니라(卒無以致故로 與不聞과 等호미 猶說食也니라)〈능엄 1:94ㄱ〉. 놀래여 雷雨를 닐위니라(驚惶致雷雨)〈두시 25:11ㄴ-12ㄱ〉.
몯리로소니 주086)
몯리로소니
못하니. 몯-+리+로+소+니.
이 사ᄅᆞ미 이제 업도다

【한자음】 상기불가치 사인금칙망
【언해역】 청상(淸爽)한 기운(氣運)을 가(可)히 이르지 못하니, 이 사람이 이제 없도다!

山陰一茅宇 江海日凄凉山陰 주087)
산음(山陰)
저장성 소흥시(紹興市)의 한 지역명.
 在越州 주088)
월주(越州)
지금의 저장성 소흥시(紹興市).
니 知章의 所居ㅣ라】

山陰엣  새지비 江海예 주089)
강해(江海)예
강과 호수에.
이셔 나날 주090)
나날
나날이. 날마다. 날+날.
서의여 도다 주091)
서의여도다
처량(凄凉)하도다. ‘서의-, 서의-, 서의여-’에 대해서는 ‘서의여히 허리 것거 뇰 이 爲얘니라(淒涼爲折腰)’〈두시 3:22ㄱ〉 구절 참조.

【한자음】 산음일모우 강해일처량【산음(山陰)은 월주(越州)에 있으니, 하지장(賀知章)이 사는 곳이다.】
【언해역】 산음(山陰)의 한 새 집이 강해(江海)에 있어 나날이 처량하도다!

〈다섯째 수〉

吾憐孟浩然 短褐即長夜【墳墓ㅣ 一閉면 不復見明故로 云長夜ㅣ라】

나 孟浩然 주092)
맹호연(孟浩然)
당나라의 시인. 689~740년. 이름은 호이며, 자는 호연이며, 호(號)는 녹문거사(鹿門處士)이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그의 시는 왕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뎌른 주093)
뎌른
짧은. 뎌르[短]-+ㄴ. ¶管애  簧 두 길며 뎔오미 다니〈원각 하2-1:48ㄴ〉. 셴 머리 글구니  뎌르니(白頭搔更短)〈두시 10:7ㄱ〉.
옷 닙고 長夜애 나가 어엿비 주094)
어엿비
불쌍히. 어엿브-+이.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아래론 萬民 헐므오 어엿비 너교롸(下憫萬民瘡)〈두시 2:43ㄴ〉.
너기노라 주095)
너기노라
여기노라. 너기-++오+라.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裘夷心疑其欲去 坐起不解其側)〈석상 3:22ㄱ〉. 當貴호 픐 그텟 이슬와 엇더니오 너기놋다(富貴何如草頭露)〈두시 22:52ㄴ〉.

【한자음】 오련맹호연 단갈즉장야【분묘(墳墓)가 없어지면 다시는 밝음을 볼 수 없으므로 긴 밤[長夜]이라 한다.】
【언해역】 나는 맹호연(孟浩然)의 짧은 옷 입고, 긴 밤에 나아감을 불쌍히 여기네!

賦詩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9ㄴ

何必多 往往凌鮑謝

지믄 주096)
지믄
지음은. [作]-+우+은. ¶著述은 글 지 씨라〈영가 서:17ㄱ〉. 글 지메 氣象 화 주니(賦詩分氣象)〈두시 15:25ㄴ〉.
엇뎨 주097)
엇뎨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오 나래 엇뎨 十萬 兵馬를 기들우리오(今日何須十萬兵)〈두시 4:26ㄱ〉.
구틔여 주098)
구틔여
구태여.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엇디 구틔여 므를 기리 흘리리오(何必淚長流)〈두시 2:1ㄴ〉.
주099)
많이. 자주. 하-+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而終不得伸其情者ㅣ 多矣라)〈훈언 :2ㄴ〉. 묏 果實ㅣ 횩뎌근 거시 하니(山果多瑣細)〈두시 1:3ㄴ〉.
리오 므리므리예 주100)
므리므리예
때때로. 왕왕(往往). 므리+므리+예. ¶아 데 디내디 아니혼 거슬 므리므리예 기 夢寐예 得니(往往애 煥然得於夢寐니)〈능엄 9:56ㄴ〉. 醉中에도 므리므리예 逃去야 坐禪호 놋다(醉中往往愛逃禪)〈두시 15:41ㄱ〉. 아 데 디내디 아니혼 거슬 므리므리예 기 夢寐예 得니(往往애 煥然得於夢寐니)〈능엄 9:56ㄴ〉. 醉中에도 므리므리예 逃去야 坐禪호 놋다(醉中往往愛逃禪)〈두시 15:40ㄴ〉.
鮑照 주101)
포조(鮑照)
남북조 시대의 시인. 414~466년.
謝眺 주102)
사조(謝眺)
남조의 시인. 464~499년.
凌犯더니라 주103)
능범(凌犯)더니라
능범(凌犯)하니라. 능범(凌犯)-+더+니+라.

【한자음】 부시하필다 왕왕릉포사
【언해역】 글 지음은 어찌 구태여 많이 하겠는가? 왕왕 포조(鮑照), 사조(謝眺)를 능범(凌犯)하였네!

清江空舊魚 春雨餘甘蔗【魚與蔗 浩然의 平日所食故로 言舊餘니라】

 주104)

맑은. -+.
매 주105)
매
강에. +애. ¶ 우희 나조 드믄 비 디나니(江上晩來예 疏雨ㅣ 過니)〈금삼 4:5ㄱ〉. 시혹 열다브터 北녀그로 매 가 防禦고(或從十五北防河)〈두시 4:1ㄴ〉.
주106)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잡던 고기 쇽졀업시 주107)
쇽졀업시
속절없이. 쇽졀+없-+이.
잇고  비예 甘蔗 주108)
감자(甘蔗)
중국에서 사탕수수를 부르는 이름. ‘깐저[gānzhe]’라고 한다.
나맷도다 주109)
나맷도다
남아 있도다. 남[餘]-+아#잇-+도+다.

【한자음】 청강공구어 춘우여감자【고기와 감자는 호연(浩然)의 평일 먹는 것이므로 구여(舊餘)라 말한다.】
【언해역】 맑은 강에 옛날 잡던 고기 속절없이 있고, 봄비에 감자(甘蔗)가 남아 있도다!

每望東南雲 令人幾悲咤【浩然所居襄陽 주110)
양양(襄陽)
후베이성에 있는 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한 맹호연의 고향이다.
이 在秦州 주111)
진주(秦州)
간쑤성에 있는 시. 두보는 화주(華州)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진주(秦州)로 갔다.
東南니 ㅣ 時예 寓秦州야 望而悲嘆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 주112)

매양.
東南녁 구루믈 라오니 주113)
라오니
바라보니. 라[望]-+오+니.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 怱起 屈身頂禮於太子足 禮拜起已)〈석상 3:8ㄱ〉. 渭水ㅅ 셔 머리 횟돌아 라노라(回首清渭濱)〈두시 19:3ㄱ〉.
사로 여 주114)
사로 여
사람으로 하여금. ‘-로 여’는 15세기 국어의 장형사동문의 피사동 표지이다.
몃 버 슬허케 주115)
슬허케
슬프게. 슳-+어#-+게.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거뇨 주116)
거뇨
하는가. -+거+니+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매망동남운 영인기비타【맹호연(孟浩然)이 살았던 양양(襄陽)이 진주(秦州)의 동남쪽에 있으니, 두보가 그때 진주에 있어서 바라보고 슬프게 한탄한 것이다.】
【언해역】 매양 동남쪽 구름을 바라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몇 번을 슬프게 하는가?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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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견흥오수(遣興五首) : 이 시는 759년(건원 2)에 두보가 진주(秦州)에 있을 때 지었다. 제1수는 공명(孔明)과 혜강(嵇康)이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얻는 것이 소중함을 읊었고, 제2수는 방덕공(龐德公)이 난리를 피해 은거한 것을 읊었으며, 제3수는 도연명(陶淵明)이 자신의 이상을 펴지 못한 것을 빌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으며, 제4수는 하지장(賀知章)의 높은 품격을 찬탄하였고, 제5수는 맹호연(孟浩然)이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음을 애도하였다.
주002)
칩장(蟄藏) : 숨어 있는.
주003)
삼동(三冬)애 : 삼동(三冬)에. 즉 음력으로 동짓달, 섣달, 정월을 말한다.
주004)
누웻고 : 누워 있고.
주005)
뒷도다 : 두고 있도다. 두-+어#잇-+도+다. ¶ 두겨시다 듣고 婚姻 求노다(聞君有女 欲求婚姻)〈석상 11:28ㄱ〉. 나라히 乾坤의 쿠믈 두겨시니(國有乾坤大)〈두시 8:10ㄴ〉.
주006)
어딘 : 어진.
주007)
사ᄅᆞ : 사람의. 사+. ‘’는 내포문의 주어에 붙는 속격조사이다. 이 구절은 ‘[사 님금 맛나디 못홈]이’로 분석되며 주어는 명사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는 주어인 명사절의 주어이다.
주008)
맛나디 : 만나지. 맞나[湡]-+아.
주009)
니라 : 같으니라. -+니+라.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다 ; 太子ㅣ 金으로 겨지븨  시고 겨지븨 德을 쓰샤 이 야 妃子 사모리라(使上工立妙金像 女人德義如吾所疏 能應娉耳)〈석상 3:11ㄱ〉. 두들겟 든 鶺鴒과 니라(原情類鶺鴒)〈두시 24:8ㄴ〉. 다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 :4ㄱ〉. 어느 말로 녜 려뇨(何由似平昔)〈두시 7:26ㄱ〉.
주010)
혜강(嵆康) : 앞의 주를 참조.
주011)
주구믈 : 죽음을. 죽-+우+ㅁ+을.
주012)
득(得)디 몯고 : 얻지 못하고. 得-+디 몯-+고. 15세기 국어의 장형부정문의 보조적 연결어미는 ‘-디’로 구개음화하여 현대국어의 ‘-지’가 되었다. 부정문 보문자에 대해서는 ‘중풍이 들어 배에서 베개를 베고 누어 회포를 쓰면서 호남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36운(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일우 몯야 므를 비 오 노라(無成涕作霖)〈두시 3:19ㄱ〉’ 구절 참조.
주013)
공명(孔明) : 제갈양은. ‘공명’은 제갈양의 자(字)이다.
주014)
 알 리 : 마음 알 이. 즉 내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문은 ‘지음(知音)’이다.
주015)
이시니라 : 있으니라. 이시-+니+라.
주016)
묏 미틧 솔 : 산의 밑의 소나무. 밑+의+ㅅ.
주017)
거나 리거나 호미 : 쓰거나 버리거나 함이. ‘-거나 -거나 호미’는 선택 나열을 표현하는 구문이다. ¶이제 出家 아니샤 닐웨 디나면 轉輪 王位 自然히 오시리다(今不出家過七日已 轉輪王位自然來應)〈석상 3:24ㄱ〉. 장 술 머거셔 나니거나 드덧거나 호 밋고 이쇼라(痛飲信行藏)〈두시 2:41ㄴ〉.
주018)
조매 : 찾음에. -+옴+애.
주019)
누넷 : 눈의. 눈[雪]+에+ㅅ.
주020)
읏드미 : 으뜸이. 큰 줄기.
주021)
오라 : 오래되어. 오라-+아. 15세기의 ‘오라-’는 정상적인 형용사로 기능했으나 현대국어의 ‘오래-’는 활용에 제약이 있다.
주022)
이운 : 시든. 마른. 이울[枯]-+ㄴ. ‘이울다’는 국어사전에 ‘①꽃이나 잎이 시들다. ②점점 쇠약하여지다. ③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지다.’ 등의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다. 참조. 이울다. 이울우다. ¶뎌 남 이울에 면 내 그 오시리라 고(我今當作方便殺菩提樹 可得與我常相娛樂)〈석상 24:41ㄴ〉. 오히려 이우러 이슈믈 슬티 말라(忽悲尙枯槁)〈두시 5:35ㄱ〉.
주023)
외옛도다 : 되어 있도다. 외-+어#잇-+도+다. ‘외어’는 ‘외야’로도 나오는데 ‘야/여’는 ‘외’의 음절 부음 ‘y’의 영향으로 ‘아/어’가 바뀐 것이다. ¶ㅇ 입시울쏘리 아래 니 쓰면 입시울 가야 소리 외니라(ㅇ 連書脣音之下면 則爲脣輕音니라)〈훈언 :12ㄱ〉. 기리 兄弟 외요 結約노라(永結爲弟昆)〈두시 1:13ㄴ〉.
주024)
방덕공(龐德公) : 동한 말의 명사. 본명은 알 수 없고 자는 상장(尙長)이다. 형주(荆州) 양양(襄陽) 사람으로 양양의 남쪽에 있는 현산(岘山)에서 몸소 경작을 하였다. 사마의(司馬懿), 제갈양(諸葛亮), 서서(徐庶) 등과 친하였다.
주025)
양양(襄陽) : 후베이성의 도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명한 두 도시 샹양과 판청이 결합해 형성되었다.
주026)
현산(峴山) : 방덕공이 홀로 경작을 하고 살았다는 양양 남쪽의 산.
주027)
녜 :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주028)
일즉 : 일찍. 일찍이. ¶부톄 니샤 大王아 네 일즉 업디 아니야셔 엇뎨 업수믈 아다(佛言샤 大王아 汝ㅣ 未曾滅야셔 云何知滅다)〈능엄 2:4ㄴ〉. 奸邪 아쳐라 일즉 힘 토니라(嫉邪嘗力爭)〈두시 24:19ㄱ〉.
주029)
올 : 고을에. 올ㅎ+.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 이 經을 너비 펴며(村城國邑 空閑林中 若有流布此經)〈석상 9:40ㄱ〉. 中歲에 녯 올셔 貢擧요라(中歲貢舊鄉)〈두시 2:40ㄱ〉.
주030)
아니니라 : 아니하니라. 아니-+니+라.
주031)
양양(襄陽)ㅅ 늘근 사 : 양양의 늙은 사람의. 즉 방덕공(龐德公)과 같은 은사들의.
주032)
예 : 사이에. +예.
주033)
호올로 : 홀로.
주034)
청고(淸苦)도다 : ‘청고(淸苦)’는 청렴하게 고생을 견디며 산다는 뜻이다.
주035)
엇뎨 :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곰 사미로라 리오(何以爲蒸黎)〈두시 4:12ㄱ〉.
주036)
시절(時節) : 세상의 형편. 당시 혼란스런 정세와 싸움이 계속됨을 이른다.
주037)
거느리츌 : 구제할. 거느리-+치+우+ㄹ. ¶泉公禪師ㅣ 그 무레 소사나샤 千頃ㅅ 徒衆 거느리신 餘睱애 그 놀애 句句ㅅ 예 호아 頌 지시니(泉公禪師ㅣ 頻出其類샤 千頃領徒之暇애 於其歌句句之間애 分爲之頌시니)〈남명 하:77ㄱ〉. 乾坤을 고텨 時世ㅣ 거느리츄믈 도다(整頓乾坤濟時了)〈두시 4:17ㄱ〉.
주038)
업스리오마 : 없겠는가마는. 없-+으리+오+마.
주039)
ᄆᆞ매 : 마침내. 끝내. ¶根本이 善티 아니면 마매 善을 일우디 몯리라(根本이 不善면 終莫成善리라)〈능엄 6:94ㄴ〉.
주040)
걸가 : 〈그물에〉 걸릴까. 걸-+가. ‘걸-’은 자타동 양용 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자동사) ; 엇뎨 마래 거러 理 惑리오〈영가 하:34ㄱ〉. 眞實로 거부비 그므레 거러시며(信然龜觸網)〈두시 19:9ㄱ〉. (타동사) ; 거어나 을히어나  어나 모 거러 잇거든(鵝鴨及鷄骨鯁在喉中)〈구간 6:9ㄴ〉. 碧海 그륜 新圖 거러 뵈놋다(碧海掛新圖)〈두시 16:43ㄴ〉.
주041)
저흐니라 : 두려워하니라. 젛-+으니+라. ¶내 凡愚에 여러 불어 니디 아니호 뎨 分別야 자바 나 사가 전노라(我ㅣ 於凡愚에 不開演 恐彼分別야 執爲我노라)〈능엄 5:13ㄴ〉. 늘근 나해 幽獨호 전노라(衰年怯幽獨)〈두시 25:3ㄴ〉.
주042)
형주(荊州) : 형주(荊州)는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구주 중 한 곳으로 전해 내려오는 지역이다. 후한 13주 중 한 지역이며, 중심지는 한수(漢壽, 현재의 후난성 창더시 한서우현)와 양양(襄陽, 현재의 후베이성 샹양시)이다.
주043)
자사(刺史) : 주목(州牧). 한나라의 조정에서 상설한 벼슬로 각 주 안에 있는 군(郡) 태수들을 감찰하는 직위.
주044)
유표(劉表) : 후한 말의 정치가. 142~208년.
주045)
덕공(德公) : 방덕공.
주046)
녹문산(鹿門山) : 방덕공이 가족을 이끌고 은거하였다는 산.
주047)
기면 : 무성(茂盛)하면. 깃-+으면. ¶뒷 東山이 淸淨고 납기 盛히 기니(可於後園 其中清淨 林木茂盛)〈석상 11:37ㄱ〉.
주048)
모도 : 모임을. 몯-+오+ㅁ+. ‘몯-’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눈 머니와 귀 머그니와 입 버우니와 寃讎 믜우니 몯 苦와(所謂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盲과 聾과 瘖瘂와 寃讎會苦와 愛別離苦와)〈능엄 7:43ㄱ〉. 공경홈은 德의 몯 거시니 能히 공경면 반시 德이 이실디라〈소학 4:34ㄴ〉.
주049)
녹문(鹿門) : 녹문산(鹿門山). 한강(漢江)의 동안(東岸)에 있다. 한나라 말기의 저명한 은상인 방덕공(龐德公)이 벼슬을 마다하고 가족을 끌고 산으로 들어가 약을 캐면서 살았다. 이 일 이후로 녹문산은 은자의 성지가 되었다.
주050)
엇뎨 :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야아 一萬 사을 어더(何以爲蒸黎)〈두시 4:14ㄴ〉.
주051)
시러곰 : 능히. ‘시러곰’은 문증되지 않는 ‘*실-’이라는 용언을 상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실-+어+곰’으로 분석될 수 있다. ‘시러곰’은 항상 ‘得’의 번역에 쓰였다. ¶이제 누의 나히 늙고 나도 늙그니 비록 조 누의 위야 쥭을 글히고져  다시 시러곰 려〈번소 9:79ㄱ〉. 시러곰 디나가  妙處 다 보노라(得盡所曆妙)〈두시 1:47ㄱ〉.
주052)
자리오 : 잡겠는가. 잡-+리+오.
주053)
도잠(陶潛) : 중국 동진의 시인. 365~427년. 자는 연명(淵明)이다. “내 5두미(斗米)의 봉급 때문에 허리를 굽히고 향리의 소인에게 절을 해야 하느냐”라고 한 말은 현(縣)을 시찰하러 온 군의 관리에게 절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현령의 자리를 내동댕이쳤을 때의 명문구이다. 그때 전원으로 돌아갈 심경을 말한 것이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주054)
에여 : 피하여. 에[避]-+어. ¶길흘 양야도 일 거름을 에디 아니며〈소학 5:83ㄱ〉. 사 에여 가 諫諍던 긄草 브레 오(避人焚諫草)〈두시 6:15ㄱ〉.
주055)
한아비니 : 할아비니. 한+아비+니. ‘아비’ 또한 원래 ‘압’과 접미사 ‘이’가 결합한 것이다.
주056)
반기 : 반드시[必]. ¶네 이제 반ᄃᆞ기 알라〈월석 17:78〉. 오며  體 반기 알며(必驗升沉體)〈두시 12:2ㄴ〉.
주057)
몯니라 : 못하니라. 몯-+니+라.
주058)
제 : 스스로. 제가. ‘제’는 재귀대명사로 주격일 경우에는 ‘:제(상성)’, 관형격일 경우에는 ‘제(평성)’으로 쓰였다. 자기의. 평성의 ‘제’는 ‘저+관형격’ 구성이고, 상성의 ‘제’는 ‘저+주격’ 구성이다.
주059)
지 : 지은. 짓-+오+ㄴ. ¶著述은 글 지 씨라〈영가 서:17ㄱ〉. 새지비 도혀 글 지 직니(茅屋還堪賦)〈두시 10:13ㄴ〉.
주060)
모 : 자못[頗]. 한시의 의문사 ‘하(何)’를 번역한 것이다. 〉/믇//믓〉몯. ‘모’는 현대국어의 ‘자못’의 15세기 어형이나 수사의문문의 번역에서 의문사의 번역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특히 『두시언해』에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然이나 以今視昔건댄 稍多違戾니 專門舊學 不免矛盾려니와)〈능엄 1:22ㄴ〉. 江湖앳 興心이 모 좃다(江湖興頗隨)〈두시 15:10ㄴ〉. (의문사의 번역어) ; 너비 내 아로로 여러  깃기시니 모 盛시다(普以吾覺로 悅可衆心시니 何其盛哉라)〈남명 서:3ㄱ〉. 薏苡로 하로미 모 도다(薏苡謗何頻)〈두시 16:6ㄴ〉.
주061)
이우로 : 시듦을. 이울[枯]-+오+ㅁ+. ‘이울다’는 국어사전에 ‘①꽃이나 잎이 시들다. ②점점 쇠약하여지다. ③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지다.’ 등의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다. 참조. 이울다. 이울우다. ¶뎌 남 이울에 면 내 그 오시리라 고(我今當作方便殺菩提樹 可得與我常相娛樂)〈석상 24:41ㄴ〉. 오히려 이우러 이슈믈 슬티 말라(忽悲尙枯槁)〈두시 5:35ㄱ〉.
주062)
슬허도다 : 슬퍼하도다. 슳-+브+어#-+도+다. 15세기 국어의 ‘슳다’는 ‘슬퍼하다’의 뜻이며 ‘슳다’에 형용사 파생 접미사 ‘-/브-’가 결합하여 형성된 형용사가 ‘슬프다’이다. 그런데 ‘슬프다’에서 ‘-어다’가 결합하여 ‘슬퍼다’로 발전하여 현대국어의 ‘슬퍼하다’가 된 반면에 파생의 주체이었던 ‘슳다’는 소실되었다. ‘슳다’와 같은 운명을 보인 단어들로는 ‘믜다, 다’ 등이 있다. ‘슬프다. 슳다(슬퍼하다). 슳다(싫다). 슲다. 슬다. 슬여다. 슬하야다. 슬여다. 슬허다. 슬흐여다. 슬희다. 슬희여다. 슬히. 슬히다’ 참조. ¶슬허다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是時須達悲心憐傷)〈석상 6:38ㄱ〉. 늙고 큰 藤蘿를 슬허고 굽고 서린 남그란 기피 입노라(惆悵老大藤 沈吟屈蟠樹)〈두시 9:14ㄱ〉. 슳다(슬퍼하다) ; 王이 더욱 슬허 니샤 이 네 가짓 願은 녜록브터 일우니 업스니라(王聞重悲 此四願者古今無獲)〈석상 3:21ㄴ〉. 나 涅槃 後에 天上이며 人間이며 一切 衆生이 내 舍利 어더 슬흐며 깃거(我涅槃後 天上人間一切衆生 得我舍利悲喜)〈석상 23:6ㄱ〉.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展轉仲宣哀)〈두시 3:9ㄴ〉. 그 소리 슬허 셟고 이베 피 흘리니(其聲哀痛口流血)〈두시 17:5ㄱ〉. 님금 히 조보 슬허 라더니라(悵望王土窄)〈두시 24:14ㄴ〉. 슳다(싫어하다) ; 이러틋 布施ㅣ 種種 微妙로 깃거 슬호미 업서 無上道 求며(如是等施ㅣ 種種微妙로 歡喜無厭야 求無上道며)〈법화 1:83ㄱ〉. 슳다(싫어하다) ;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暮年漂泊恨)〈두시 3:19ㄴ〉. 슬다(슬퍼하다) ; 摩耶ㅣ 더 슬샤  무르샤 네 아래브터 부텨를 뫼 니며 듣 잇니(時摩訶摩耶聞此語已 又憎感絶卽問阿難 汝於往昔侍佛已來 聞世尊說)〈석상 23:31ㄴ〉. 슬다(싫어하다) ; 사미 受苦 맛나아 老病死 슬야 거든 위야 涅槃 니샤 受苦 업게 시며(若人遭苦 厭老病死 爲說涅槃 盡諸苦際.)〈석상 13:18ㄱ〉. 슬프다 ; 이 그른 잇 고대 流通커 기튼 자최 괴외호미 슬프도다  슬프다 셜우믈 매 얼규니 슬푸믄 一方 누니 滅시니(斯文은 在庱에 流通이어 遺跡은 堪悲牢落이로다 嗚呼哀哉라 痛纏心腑호니 所嗟 一方眼이 滅시니)〈영가 서:15ㄱ〉.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 셜워 우러 슬픈 미 닐에 디 마롤디어다(莫令回首地 慟哭起悲風)〈두시 5:9ㄱ〉. 슬퍼다 ; 내 항거시 여러이 멀니 귀향가거늘 뉘 며이고 고 장 슬허거 본 사이 다 슬퍼더라〈속삼강 중:충5ㄴ〉.
주063)
생리(生理) : 생활하는 습성이나 본능.
주064)
통달(通達)히 : 통달하게. 통달++이.
주065)
엇뎨 :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너희  엇뎨 님 힘 닙와 쇼믈 알리오(汝等豈知蒙帝力)〈두시 4:14ㄴ〉.
주066)
이 : 이것을. 15세기의 ‘이’는 대명사와 관형사가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용법으로 쓰였다. ¶대명사 ; 내 이 爲야 어엿비 너겨(予ㅣ 爲此憫然야)〈훈언 2ㄴ〉. 이 내 애와토  논 고디라(臣甫憤所切)〈두시 1:2ㄱ〉. 관형사 ; 이  부텻 나히 닐구비러시니〈석상 3:7ㄱ〉. 어느 나래 이 軍卒을 習호믈 말려뇨(幾日休練卒)〈두시 1:7ㄱ〉.
주067)
안 로 아로 : 안 마음으로 앎을.
주068)
일 : 일찍. 일찍이. ¶남진 겨집은 人倫의 큰 리오 일 주그며 오래 사롤 니(夫婦 人倫大綱이며 夭壽之萌也ㅣ라)〈번소 7:30ㄱ〉. 셴 머리 보 일 아니론 고 내 알언마(自知白發非春事)〈두시 11:21ㄴ-22ㄱ〉.
주069)
몯도다 : 못하도다. 몯-+도+다.
주070)
아 : 아들의. 아[子]+. ‘’는 내포문 주어에 쓰인 속격 조사.
주071)
어딜며 : 어질며. 어딜-+며.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 3:2ㄱ〉. 슬픈 들 머거셔 네 어디로 아노라(含悽覺汝賢)〈두시 2:6ㄱ〉.
주072)
다 : 그리고. ‘다’은 ‘함께’와 ‘그리고’의 뜻이 있다. ¶다 : 與 다 여 並 다 병〈광천 40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況在狄與戎)〈두시 5:29ㄴ〉. 사과 다 디 마롤 디니라〈내훈 1:55ㄱ〉. 可히 온 忠과 다 孝(可憐忠與孝)〈두시 24:4ㄴ〉.
주073)
어료 : 어리석음을. 어리-+오+ㅁ+. 15세기 국어의 ‘어리-’는 ‘어리석다’의 뜻이다.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훈언 2ㄱ〉. 乃終내 得디 몯니 어리여 미혹야 邪曲 보 信(終不能得 愚癡迷惑 信邪倒見)〈석상 9:36ㄴ〉. 진실로 이 어디니와 어리니왜 다니라(固應賢愚異)〈두시 16:20ㄱ〉.
주074)
엇뎨 :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엇뎨 시러곰 西極으로 브터(安得自西極)〈두시 4:22ㄴ〉.
주075)
거니오 : 거는가? 걸-+니+오. ‘걸다’는 자동사와 타동사 양자로 쓰인 자타동 양용동시이다. 참조. 걸이다. ‘걸-’은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걸다(자동사) ; 엇뎨 마래 거러 理 惑리오〈영가 하:34ㄱ〉. 眞實로 거부비 그므레 거러시며(信然龜觸網)〈두시 19:9ㄱ〉. 걸다(타동사) ; 거어나 을히어나  어나 모 거러 잇거든(鵝鴨及鷄骨鯁在喉中)〈구간 6:9ㄴ〉. 碧海 그륜 新圖 거러 뵈놋다(碧海掛新圖)〈두시 16:43ㄴ〉. 걸이며 딘 긴 무 시며〈법화 서:16ㄱ〉. 엇뎨 虞人의 그 믌 가온 걸여 이슈믈 보니오(胡爲見羈虞羅中)〈두시 5:50ㄱ〉.
주076)
하공(賀公) : 하지장(賀知章). 오(吳)나라 사람.
주077)
청광(清狂) : 미친 척함. 청광은 『두시언해』 제2권에 수록되어 있는 「장유(壯遊)」에 “清狂 不狂而狂ㅣ니 猶白癡也ㅣ라〈두시 2:40ㄴ〉”라는 주석이 있다. 해석하면, “청광은 미치지 않고 미친 것을 말하는 백치(白癡)와 같다.”이다.
주078)
녜 : 항상. ‘상(常)’에 대한 번역어이다. ¶ 慈觀을 녜  보아 울월오져 願홀 띠니라(及慈觀을 常願常瞻仰이니라)〈법화 7:93ㄴ〉. 녜  마자 뇸 토다(常如中風走)〈두시 2:48ㄴ〉.
주079)
청광(淸狂)더니라 : 청광(淸狂)하였다. 미친 척하였더라.
주080)
상소(上䟽)야 : 상소하여.
주081)
모 비러 : 몸을 빌려. 빌-+어. ‘빌-’과 ‘빌이-’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주려셔 집마다  빌오(飢籍家家米)’ 구절 참조.
주082)
누른 곳갈로 : 누른 고깔로. 즉 도사가 되어.
주083)
도라가니라 : 돌아가니라. 돌-+아#가-+니+라.
주084)
청상(淸爽) : 맑고 시원한.
주085)
닐위디 : 이르지. 니르-+우+이+디. ‘닐위다’는 ‘~에 이르다’의 뜻인 ‘니르다/니다’에 사동접미사 ‘우’와 사동접미사 ‘이’가 접미된 사동사이다. ¶내 닐위디 몯 젼로 아니 드롬과 호미 밥 닐옴 니라(卒無以致故로 與不聞과 等호미 猶說食也니라)〈능엄 1:94ㄱ〉. 놀래여 雷雨를 닐위니라(驚惶致雷雨)〈두시 25:11ㄴ-12ㄱ〉.
주086)
몯리로소니 : 못하니. 몯-+리+로+소+니.
주087)
산음(山陰) : 저장성 소흥시(紹興市)의 한 지역명.
주088)
월주(越州) : 지금의 저장성 소흥시(紹興市).
주089)
강해(江海)예 : 강과 호수에.
주090)
나날 : 나날이. 날마다. 날+날.
주091)
서의여도다 : 처량(凄凉)하도다. ‘서의-, 서의-, 서의여-’에 대해서는 ‘서의여히 허리 것거 뇰 이 爲얘니라(淒涼爲折腰)’〈두시 3:22ㄱ〉 구절 참조.
주092)
맹호연(孟浩然) : 당나라의 시인. 689~740년. 이름은 호이며, 자는 호연이며, 호(號)는 녹문거사(鹿門處士)이다. 양양(襄陽) 사람으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하였다. 한때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살면서 시 짓는 일을 매우 즐겼다. 그의 시는 왕유의 시풍과 비슷하며, 도연명의 영향을 받아 5언시에 뛰어났다. 왕유와 함께 ‘산수 시인의 대표자’로 불린다.
주093)
뎌른 : 짧은. 뎌르[短]-+ㄴ. ¶管애  簧 두 길며 뎔오미 다니〈원각 하2-1:48ㄴ〉. 셴 머리 글구니  뎌르니(白頭搔更短)〈두시 10:7ㄱ〉.
주094)
어엿비 : 불쌍히. 어엿브-+이. ¶憫然은 어엿비 너기실 씨라〈훈언 2ㄴ〉. 아래론 萬民 헐므오 어엿비 너교롸(下憫萬民瘡)〈두시 2:43ㄴ〉.
주095)
너기노라 : 여기노라. 너기-++오+라.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裘夷心疑其欲去 坐起不解其側)〈석상 3:22ㄱ〉. 當貴호 픐 그텟 이슬와 엇더니오 너기놋다(富貴何如草頭露)〈두시 22:52ㄴ〉.
주096)
지믄 : 지음은. [作]-+우+은. ¶著述은 글 지 씨라〈영가 서:17ㄱ〉. 글 지메 氣象 화 주니(賦詩分氣象)〈두시 15:25ㄴ〉.
주097)
엇뎨 :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오 나래 엇뎨 十萬 兵馬를 기들우리오(今日何須十萬兵)〈두시 4:26ㄱ〉.
주098)
구틔여 : 구태여.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엇디 구틔여 므를 기리 흘리리오(何必淚長流)〈두시 2:1ㄴ〉.
주099)
해 : 많이. 자주. 하-+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而終不得伸其情者ㅣ 多矣라)〈훈언 :2ㄴ〉. 묏 果實ㅣ 횩뎌근 거시 하니(山果多瑣細)〈두시 1:3ㄴ〉.
주100)
므리므리예 : 때때로. 왕왕(往往). 므리+므리+예. ¶아 데 디내디 아니혼 거슬 므리므리예 기 夢寐예 得니(往往애 煥然得於夢寐니)〈능엄 9:56ㄴ〉. 醉中에도 므리므리예 逃去야 坐禪호 놋다(醉中往往愛逃禪)〈두시 15:41ㄱ〉. 아 데 디내디 아니혼 거슬 므리므리예 기 夢寐예 得니(往往애 煥然得於夢寐니)〈능엄 9:56ㄴ〉. 醉中에도 므리므리예 逃去야 坐禪호 놋다(醉中往往愛逃禪)〈두시 15:40ㄴ〉.
주101)
포조(鮑照) : 남북조 시대의 시인. 414~466년.
주102)
사조(謝眺) : 남조의 시인. 464~499년.
주103)
능범(凌犯)더니라 : 능범(凌犯)하니라. 능범(凌犯)-+더+니+라.
주104)
 : 맑은. -+.
주105)
매 : 강에. +애. ¶ 우희 나조 드믄 비 디나니(江上晩來예 疏雨ㅣ 過니)〈금삼 4:5ㄱ〉. 시혹 열다브터 北녀그로 매 가 防禦고(或從十五北防河)〈두시 4:1ㄴ〉.
주106)
녜 :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주107)
쇽졀업시 : 속절없이. 쇽졀+없-+이.
주108)
감자(甘蔗) : 중국에서 사탕수수를 부르는 이름. ‘깐저[gānzhe]’라고 한다.
주109)
나맷도다 : 남아 있도다. 남[餘]-+아#잇-+도+다.
주110)
양양(襄陽) : 후베이성에 있는 시. 절개와 의리를 존중한 맹호연의 고향이다.
주111)
진주(秦州) : 간쑤성에 있는 시. 두보는 화주(華州)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진주(秦州)로 갔다.
주112)
 : 매양.
주113)
라오니 : 바라보니. 라[望]-+오+니.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 怱起 屈身頂禮於太子足 禮拜起已)〈석상 3:8ㄱ〉. 渭水ㅅ 셔 머리 횟돌아 라노라(回首清渭濱)〈두시 19:3ㄱ〉.
주114)
사로 여 : 사람으로 하여금. ‘-로 여’는 15세기 국어의 장형사동문의 피사동 표지이다.
주115)
슬허케 : 슬프게. 슳-+어#-+게.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주116)
거뇨 : 하는가. -+거+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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